그는 나보다 2살 많은데 나는 그를 그냥 선일이라 부른다.
인간 선일을 소개 할려니까....
괜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뭐라 고 말하기에 앞서 한번 만이라도, 그를 만나 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수 있을 테지만 하나하나 글로 표현 하려고 하니 답답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전라도 영암 출생으로 그가 태어 날때 뒷산의 소나무 2 그루가 말라 죽었다는 기이한 탄생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설명 대로라면, 그가 소나무의 기운을 빨아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서울 봉천동으로 어렸을때 이주를 한다.
그는 그저 말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는 모범생 이었다고 한다.(여기서 모범생 이란 공부와는 관련없음)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한 회의를 품고 출가를 하게 된것은 알수 없는 일이다.
왜냐 하면 그는 너무 평범해서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좋아했고 그런 사소한 일들은 분명 그를 세상에 묶어 두는
좋은 방편 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고교 졸업후 곧 출가를 했고 불행히도 군입대 문제로 잠시 나갔다가 다시 제대후 재입산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10 여년전 어느날 수덕사의 후원에서 그는 나를 만나는 행운을 거머쥐고야 말았던 거시다.
그는 스스로 생각 하길,
자신이 어디 한곳 부족한것이 없다고 판단,
스스로 우쭐할정도의 당당 함으로 살고 있었는데
오직 한가지 그의 윗 눈까풀이 보통사람보다 크다는(고행석 만화의 주인공처럼) 이유로 대전의 성모 병원에서 수녀님들의 보살핌 아래서 첫번째 수술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선일의 보호자로서 병원에서 주는 밥을 착실히 먹었다.
그런데 수술결과가 좋지 않아 누가봐도 쌍꺼풀 수술했다는 느낌을 주게 되었고 스님도 쌍꺼풀 수술 하느냐는 질투와 시기어린 질문을 자주 받게 되었다.
그런 일을 격고 난 이후로 그는 겸손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회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스님이 되는날 부터 깨달음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선방으로 내달려 봉암사 선원을 시작으로 평생?을 선원에서 지냈는데 그로부터 그의 인품이 고매해지고 덕의 향기가 십리를 넘어서매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수행자의 모범
이라 칭송하는 이가 많았다.
그렇다고 그가 근엄한 얼굴로 사람들을 기죽게 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는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어떤사람도 5분에 한번씩 웃길수 있다고 장담하는바,
그의 가공할만한 유-머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으면 복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특기는 아무런 생각없이 말하는 이른바 [無心 타법]의 고수로서 그 앞에서는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웃지않을수 없는 난감한 사태에 직면하게된다.
해제 때가 되면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디서건
만나서 정담과 탁마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2 틀밤을 지새우며 입에 거품을 무는 나날의 연속 이었다.
그풍속은 지금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오호 애재라! 세월 탓인지 이제는 하룻밤을 넘기는 것도 어려워 지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내가 해외 여행을 자주하는 까닭에 그도
나의 감화력으로 유럽과 인도,네팔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와 나의 심각한 여행관이 마찰을 빚어 만들어낸 인도 여행기는 이까페[차맛어때] 여행 이야기 란에 올려져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일독 하기를 권한다.
실로 그는 나의 사생활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나에게는 갈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또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뇌세포속에 선명하게 저장하고 있는바,
그와 나는 앞으로도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친밀감속에 살아나가야 하리라 생각 한다.
이제 그의 핸드폰을 내가 쓰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연락할 방법은 쉽지않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그는 요즘 연락이 뜸-- 하다.
요즘 최근 소식은 그가 도저히 발힐수 없는 닉네임을 쓰며 [차맛어때]에서 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가 여러분 앞에 나타 나는 것은 시간 문제 일것이다.
나는 그를 차맛 어때의 특별회원으로 영접하는 바이다.
끝^^
인간 선일을 소개 할려니까....
괜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뭐라 고 말하기에 앞서 한번 만이라도, 그를 만나 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수 있을 테지만 하나하나 글로 표현 하려고 하니 답답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전라도 영암 출생으로 그가 태어 날때 뒷산의 소나무 2 그루가 말라 죽었다는 기이한 탄생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설명 대로라면, 그가 소나무의 기운을 빨아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서울 봉천동으로 어렸을때 이주를 한다.
그는 그저 말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는 모범생 이었다고 한다.(여기서 모범생 이란 공부와는 관련없음)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한 회의를 품고 출가를 하게 된것은 알수 없는 일이다.
왜냐 하면 그는 너무 평범해서 딱지치기나 구슬치기를 좋아했고 그런 사소한 일들은 분명 그를 세상에 묶어 두는
좋은 방편 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고교 졸업후 곧 출가를 했고 불행히도 군입대 문제로 잠시 나갔다가 다시 제대후 재입산을 감행한다.
그리하여 10 여년전 어느날 수덕사의 후원에서 그는 나를 만나는 행운을 거머쥐고야 말았던 거시다.
그는 스스로 생각 하길,
자신이 어디 한곳 부족한것이 없다고 판단,
스스로 우쭐할정도의 당당 함으로 살고 있었는데
오직 한가지 그의 윗 눈까풀이 보통사람보다 크다는(고행석 만화의 주인공처럼) 이유로 대전의 성모 병원에서 수녀님들의 보살핌 아래서 첫번째 수술을 하게 된다.
그때 나는 선일의 보호자로서 병원에서 주는 밥을 착실히 먹었다.
그런데 수술결과가 좋지 않아 누가봐도 쌍꺼풀 수술했다는 느낌을 주게 되었고 스님도 쌍꺼풀 수술 하느냐는 질투와 시기어린 질문을 자주 받게 되었다.
그런 일을 격고 난 이후로 그는 겸손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회고를 하기에 이른다.
그는 스님이 되는날 부터 깨달음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선방으로 내달려 봉암사 선원을 시작으로 평생?을 선원에서 지냈는데 그로부터 그의 인품이 고매해지고 덕의 향기가 십리를 넘어서매 사람들은 그를 일러 수행자의 모범
이라 칭송하는 이가 많았다.
그렇다고 그가 근엄한 얼굴로 사람들을 기죽게 하는 경우는 없다.
오히려 그는 사람을 웃기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그는 어떤사람도 5분에 한번씩 웃길수 있다고 장담하는바,
그의 가공할만한 유-머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으면 복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의 특기는 아무런 생각없이 말하는 이른바 [無心 타법]의 고수로서 그 앞에서는 지위고하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웃지않을수 없는 난감한 사태에 직면하게된다.
해제 때가 되면 그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디서건
만나서 정담과 탁마 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2 틀밤을 지새우며 입에 거품을 무는 나날의 연속 이었다.
그풍속은 지금까지 유구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오호 애재라! 세월 탓인지 이제는 하룻밤을 넘기는 것도 어려워 지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최근에 이르러 내가 해외 여행을 자주하는 까닭에 그도
나의 감화력으로 유럽과 인도,네팔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와 나의 심각한 여행관이 마찰을 빚어 만들어낸 인도 여행기는 이까페[차맛어때] 여행 이야기 란에 올려져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일독 하기를 권한다.
실로 그는 나의 사생활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나에게는 갈수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나,또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뇌세포속에 선명하게 저장하고 있는바,
그와 나는 앞으로도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친밀감속에 살아나가야 하리라 생각 한다.
이제 그의 핸드폰을 내가 쓰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연락할 방법은 쉽지않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거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그는 요즘 연락이 뜸-- 하다.
요즘 최근 소식은 그가 도저히 발힐수 없는 닉네임을 쓰며 [차맛어때]에서 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가 여러분 앞에 나타 나는 것은 시간 문제 일것이다.
나는 그를 차맛 어때의 특별회원으로 영접하는 바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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