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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천상천하유아위존?천상천하유아독존?

천상천하유아위존?천상천하유아독존?

 

붓다의 생애와 사상(37)


탄생게(誕生偈)에 대하여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탄생게(誕生偈)는 붓다께서 탄생하실 때,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설한 사구게(四句偈)를 말합니다. 이 탄생게와 관계가 있는 경전의 게문(偈文)은 많이 있으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탄생게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입니다. 그런데 탄생게는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히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대한 오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이를테면 이 말은 지금에 와서는 ‘천하에 자기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고 자부하거나, 또는 그런 아집(我執)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 이 외에도 탄생게는 과연 역사적 사실인가? 혹은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등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는 탄생게에 담겨져 있는 참된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러 문헌에 나타난 탄생게

탄생게의 내용은 각 문헌에 따라 각기 다르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여러 문헌에 나타난 탄생게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즉 [장아함경(長阿含經)] 권1 [대본경(大本經)]에는 ‘천상천하유아위존, 요도중생생노병사(天上天下唯我爲尊, 要度衆生生老病死)’2)라고 되어 있고,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권상(卷上)에는 ‘천상천하유아위존, 삼계개고오당안지(天上天下唯我爲尊, 三界皆苦吾當安之)’3)로 되어 있으며,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6에는 ‘천상천하유아독존, 금자이왕, 생분이진(天上天下唯我獨尊, 今玆而往, 生分已盡)’4)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 권1과 [보요경(普曜經)] 권2 등에서는 비록 탄생게에 해당하는 문구가 있지만 게송과 같은 형태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는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 권상(卷上),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권8, [비나야잡사(毘奈耶雜事)] 권20,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권4 등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전등록(傳燈錄)]에서는 “석가모니불께서 처음 탄생할 때,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말씀하시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하셨느니라.”(釋迦牟尼佛初生 一手指天 一手指地 周行七步 目顧四方曰 天上天下唯我獨尊.)로 기록되어 있고, [대장엄경(大莊嚴經)] 「전법륜품」에서는 “천상천하유아최승(天上天下唯我最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탄생게의 원형은 어떤 것일까? 팔리어 씌어진 [마하빠다나-숫따(Mahapadana-sutta, 大本經)]에 나오는 다음의 대목이 탄생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의 제일 앞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 위이다. 나는 세상의 최고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Aggo 'ham asmi lokassa, jettho 'ham asmi lokassa, settho 'ham asmi lokassa, ayam antima jati na'atthi 'dani punabbhavo ti.)5)


이것은 과거 비사시불(毘婆尸佛, Vipassi)이 읊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 팔리 경전에 해당되는 한역의 [대본경(大本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비바시 보살은 세상에 날 때 오른쪽 옆구리로 나와 생각을 오로지해 어지럽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나와 땅에 떨어지자 일곱 걸음[七步]을 걸었는데 아무도 부축하는 사람도 없었다. 두루 사방을 둘러보고 손을 들어 ‘천상과 천하에서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다.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제도하려 하노라’(天上天下唯我爲尊 要度衆生生老病死)고 외쳤다. 이것이 그의 공통된 법이니라.”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양족존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에/ 고요하고 편안하게 칠보를 걷고/ 사방을 둘러보고 큰 소리 외쳤나니/ 마땅히 나고 죽는 고통을 끊으리라./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날 때/ 짝할 이 없는 부처와 같고/ 스스로 나고 죽는 근본을 보아/ 이 몸은 마지막 다시 나지 않으리.”(兩足尊生時 安行於七步 觀四方擧聲 當盡生死苦. 當其初生時 無等等與等(=無尊尊與尊) 自觀生死本 此身最後邊.)6)


위 인용문은 석가모니불의 탄생 광경이 아니고, 과거 비바시불의 탄생 장면입니다. 이처럼 과거불의 탄생 유형(類型)를 만들어 놓고, 석가모니불도 과거의 여러 붓다와 똑같이 적용시켰습니다. 따라서 갓 태어난 영아(嬰兒)가 이런 게송을 외쳤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무척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고 하나의 상징적 표현입니다. 붓다는 성도 직후 탄생게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언급하였습니다.7)

붓다는 처음 깨달음을 이룬 뒤, 다섯 고행자들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를 떠나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가던 도중에 ‘우빠까(Upaka, 優波迦)’라는 아지비까(Ājivika, 邪命外道) 교도를 만났습니다. 우빠까는 세존께 “벗이여, 당신의 모든 감각기관은 깨끗하고 피부색은 맑고 아름답습니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삼고 집을 떠났습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의 교리를 신봉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붓다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에 더럽혀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따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세상에서 완전한 자이므로/ 내가 최고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깨달아/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다./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까시(Kasi)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리기 위해.”8)


이것은 붓다의 자각선언(自覺宣言)입니다. 즉 붓다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 이 세간에 비길 데 없는 정각자(正覺者)라고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붓다의 고백인 것입니다.9) 이것을 후대의 불전(佛傳)에서는 보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탄생게인 것입니다.   


2) 불전문헌에 나타난 탄생게

불교의 수많은 문헌 중에서 붓다의 생애와 관련된 것을 통틀어 ‘불전문학(佛傳文學)’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비록 대장경의 본연부(本緣部)에 수록되어 있지만, 학자들은 이것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묘사된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다만 그 문헌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즉 그 상징성과 참된 의미를 놓치지 않고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본기경(修行本起經)] 「보살강신품(菩薩降身品)」 제2에 탄생게와 관련된 대목이 나옵니다.


“열 달이 다 차서 태자의 몸이 이루어지고 4월7일에10) 이르렀다. 부인이 밖으로 나와 여행하여 유민수(流民樹) 아래를 지나다가 뭇 꽃이 피고 샛별이 돋아날 때에 부인은 나뭇가지를 잡았더니, 문득 오른 겨드랑이로부터 탄생하며 땅에 떨어지면서 일곱 걸음을 걸어가 손을 들고서 말하기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를 존귀하게 여긴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바로 그 때에 하늘과 땅은 크게 진동하고 삼천대천세계는 크게 밝지 않음이 없었느니라.”(十月已滿. 太子身成. 到四月七日. 夫人出遊. 過流民樹下. 衆花開化. 明星出時. 夫人攀樹枝. 便從右脇生墮地. 行七步. 擧手而言. 天上天下. 唯我爲尊. 三界皆苦. 吾當安之. 應時天地大動. 三千大千刹土. 莫不大明.)11)


위 경전에 나오는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를 존귀하게 여긴다. 삼계가 모두 괴로우니, 내가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天上天下唯我爲尊 三界皆苦吾當安之)’라는 대목이 현행 탄생게와 가장 비슷합니다. 그리고 [보요경(普曜經)]에서는 보살의 탄생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때 보살은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 몸은 보배의 연꽃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땅으로 내려와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범음성으로 드러내었다. 무상(無常)의 가르침이었다. ‘나는 마땅히 하늘 위와 하늘 아래를 구제하고 제도하기 위해 생사의 괴로움을 끊어 하늘과 인간의 존귀한 자가 되리라.’ 삼계는 한량이 없다. 일체 중생에게 함이 없는 영원한 안락을 주리라.”(爾時菩薩從右脇生. 忽然見身住寶蓮華. 墮地行七步顯揚梵音. 無常訓敎. 我當救度天上天下爲天人尊斷生死苦. 三界無上. 使一切衆無爲常安.)12)


위 경전에 나오는 ‘나는 마땅히 하늘 위와 하늘 아래를 구제하고 제도하기 위해 생사의 괴로움을 끊어 하늘과 인간의 존귀한 자가 되리라.’(我當救度天上天下爲天人尊斷生死苦)라는 대목이 탄생게에 해당됩니다. 또한 [방광대장엄경(方廣大莊嚴經)] 제13, 「탄생품(誕生品)」 제7에 묘사된 보살의 탄생 장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때 보살은 잘 스스로가 생각하고 헤아리며 바른 생각으로 부축을 받지 아니하고 몸소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발의 자국마다 모두 연꽃이 났느니라. 보살은 이때에 두려워하지도 않고 떠듬거림도 없이 말하기를, ‘나는 온갖 선한 법을 얻어 중생들을 위하여 말하리라’하였느니라. 또 남쪽으로 일곱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천상과 인간에서 공양을 받을만 하느니라.’하였느니라. 또 서쪽으로 일곱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세간에서 가장 높고 가장 뛰어났나니, 이 바로 나는 최후의 끝 몸이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다했느니라.’하였느니라. 또 북쪽으로 일곱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일체중생들 가운데서 위없는 우두머리가 되리라.’하였느니라. 또 아래쪽으로 일곱 걸음 가서 말하기를, ‘나는 일체 악마를 항복받고, 또 지옥의 모든 세찬 불과 여러 고통 주는 도구를 없애고 큰 법 구름을 베풀어서 큰 법 비를 내려 중생들이 다 안락을 받게 하리라.’하였느니라. 또 위쪽으로 일곱 걸음을 가서 말하기를, ‘나는 일체 중생들의 존경과 숭배를 받으리라.’고 하였느니라.

보살이 이 말을 할 때에 그 소리는 널리 일체 삼천대천세계에 들렸나니, 비구들이여! 알아야 한다. 보살은 많은 생 동안에 선한 뿌리를 쌓고 모으다가 맨 나중의 생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므로 으레 이와 같이 신통 변화를 하느니라.”(我得一切善法. 當爲衆生說之. … 我於天人應受供養. 我於世間最尊最勝. 此卽是我最後變身. 盡生老病死. 我當於一切衆生中. 爲無上上. 我當降伏一切魔軍又滅地獄猛火等所有苦具. 我當爲一切衆生之所瞻仰.)13)


위 [방광대장엄경]에는 여섯 개의 탄생게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즉 보살이 태어나서 동, 서, 남, 북, 상, 하의 여섯 방위를 걷고 탄생게를 읊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의하면 그때 보살의 어머니 마야부인(摩耶夫人)이 땅에 서서 손으로 바라차(波羅叉) 나무 가지를 잡았을 때, 2만의 하늘 옥녀(玉女)들이 마야부인 앞에 와서 주위에 둘러서서 합장하고 마야부인에게 아뢰었습니다.


“부인께서 이제 낳으실 아드님은, 능히 생사의 수레바퀴를 끊으리니, 위와 아래 하늘과 인간의 스승으로, 정녕코 짝할 없어라. 그는 모든 하늘의 태(胎)로서, 능히 중생의 괴로움을 뽑으리다. 부인이여, 고달퍼 마시라. 우리들이 함께 부축하리다.(夫人今生子. 能斷生死輪. 上下天人師. 決定無有二. 彼是諸天胎. 能拔衆生苦. 夫人莫辭淃. 我等共扶持.)”14)


위 경전에 나오는 ‘위와 아래 하늘과 인간의 스승으로, 정녕코 짝할 이 없어라.’(上下天人師 決定無有二.)라는 대목도 탄생게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고 [불본행집경]에 나오는 다음의 대목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보살이 탄생하자 사람의 부축이 없이 곧 사방으로 거닐며 각 방면으로 칠보(七步)를 걸었고 걸음마다 발을 들면 큰 연꽃이 솟아났었다. 칠보씩 걷고 나서 사방을 둘러보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으며 입에서 절로 말이 나왔다. 먼저 동쪽을 바라보며 갓난 애기의 말답지 않게 스스로 글귀에 맞게 바른 말로 게송을 읊으셨다. ‘이 세간 가운데 내가 가장 높구나. 나는 오늘부터 목숨 받는 일이 끝났네.’(世間之中. 我爲最勝. 我從今日. 生分已盡.) 이것은 보살의 희한한 일이요 미증유한 법이며 다른 방위를 바라보고도 다 그러하였느니라.

처음 탄생했을 때 사람의 부축이 없이 사방으로 각각 칠보를 걸음은 여래께서 성도하신 뒤에 일곱 가지로 도를 돕는 보리법[七助道菩提法]을 성취함이니 이는 곧 여래의 지난날의 상서로운 상(相)이었다.

보살이 탄생하자 사방을 바라봄은 여래께서 성도하시고 네 가지의 두려움이 없는 법을 구족하심이니 이는 곧 여래의 지난날의 상서로운 상이었다.

보살이 탄생한 뒤에 스스로 외치되 ‘내가 세간에서 가장 특수하고 높다’(我於世間. 最爲殊勝)고 함은 여래께서 성도하신 뒤에 일체세간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다 존중하고 공경히 섬김이니 이는 곧 여래의 지난날의 상서로운 상이었느니라.

보살이 탄생하자 스스로 외치되 ‘나는 생사를 끊고 이것이 마지막 몸이라’(我斷生死. 是最後邊)고 함은 여래께서 성도하신 뒤에 한결같이 말한 대로 행함이니 이는 곧 여래의 지난날의 상서로운 상이었다.15)


위 인용문에서 ‘이 세간 가운데 내가 가장 높구나. 나는 오늘부터 목숨 받는 일이 끝났네.’와 ‘내가 세간에서 가장 특수하고 높다’, 그리고 ‘나는 생사를 끊고 이것이 마지막 몸이라.’라는 대목이 탄생게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 경전에서는 보살이 이렇게 외친 것은 보살이 성도한 뒤에 ‘일체세간의 모든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다 존중하고 공경히 섬긴다.’(一切世間. 諸天及人. 悉皆尊重. 恭敬承事.)고 하는 의미를 상징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탄생게는 부처님의 위대함과 중생구제의 비원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안하무인이나 독선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로 잘못 오해하게 되었고, 그러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탄생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의 ‘삼계개고오당안지’를 생략한 전반부의 ‘천상천하유아독존’에 초점을 맞춰 불교의 무아설에 위배된다고 오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아(我)’는 석가모니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일컫는 말로 재해석하게 되었고, 이것을 다시 확대 해석되어 인류의 존엄성, 만 생명의 존엄성 등으로 해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탄생게에는 두 가지 큰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부처님의 위대함과 존귀함을 담고 있으며, 후반부는 삼계의 중생들을 모두 편안하게 하겠다는 부처님의 염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Notes:

1) http://100.never.com/print_100.php?id=145753


2) [大正藏] 1권, p.4下.


3) [大正藏] 3권, p.463下.


4) [大正藏] 51권, p.902上.


5) Digha-nikaya(PTS), Vol. Ⅱ, p.15.


6) [大正藏] 1권, p.4下.


7) 마스다니 후미오 지음, 반영규 옮김, [붓다, 그 생애와 사상](서울: 대원정사, 1987), p.25 참조.


8) Vinaya Pitaka(PTS), Vol. Ⅰ, p.8.


9) 마스다니 후미오, [붓다, 그 생애와 사상], p.26.


10) 경전에서는 분명히 ‘四月七日’로 표기하였고, 각주에서는 ‘七=八’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4월 7일 혹은 4월 8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4월 7일’이 맞는 것 같다. 4월 8일 하루 전날 부인께서는 여행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大正藏] 3권, p.463下.]


11) [修行本起經] 「菩薩降身品」 제2 ([大正藏] 3권, p.463下.)


12) [普曜經]([大正藏] 3권, p.494上.)


13) [方廣大莊嚴經] 제3 誕生品 제7([大正藏] 3권, p.553上-中.)


14) [佛本行集經]([大正藏] 3권, p.686中.)


15) [佛本行集經]([大正藏] 3권, p.687中.)

 

*수정 부분................................

 

윗부분은 제가 퍼온 부분이구요. 출처는 밝혀놨습니다.

 

님 말씀을 듣고 도올의 인도를 만나다 내용도 찾아봤는데 그 부분에서도 유아독존이 틀리고 유아위존이 맞다라고 하고 있지는 않더군요. 단지 유아독존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 유아위존이라고도 써있는 경도 있음을 밝히고  그 뜻을 설명해주고 있더군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놈이 태어나자 마자, 걸어가더니, 하늘과 땅을 가리키더니, 여기 천상천하라는 말도 이해해야 되요. 공중의 한 계이거든. 하늘 위에도 한 계가 있어요. 그래서 천상, 아래, 천하. 유아독존.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도올 저 새끼 건방진 새끼. 유아독존. 나쁜 의미로 쓰는데, 불교에서 유아독존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유아독존이라고 쓰여져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유아위존이라고 써요. 오로지 나만히 존귀한 자로다. 독이라는 말은, 관계가 끊겼다. 나라는 존재는 나 혼자만 존재한다. 있을 수 없고  천상천하 유아위존. 나 혼자 존귀한 존재로다 그 고귀한 존재는 고귀할 수 밖에 없다. 나쁜 말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고를 없애리라. 나 혼자 잘난 척 하는게 아니다. 잘 이해하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싯달타 . 걸어간 길, 고귀하고 외로운 길이였다. 그걸 잘 이해하세요."(도올 인도를 만나다. 4강 싯달타의 출가 부분中)

 

님은 저 위에서 불교에서 유아독존이라는 게 있을 수 없어요 라는 부분 때문에 유아독존이 틀린표현이고 유아위존이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김용옥교수가 불교에서 유아독존이 없어요라고 표현한 것은 건방진 새끼 처럼 나쁜의미로 쓰이는 유아독존이라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유아독존이든 유아위존이든 유아최승이든

그 원형은 팔리어본 대본경 탄생게에 나오는 이 부분이라는 것이고

 

“나는 세상의 제일 앞이다. 나는 세상의 제일 위이다. 나는 세상의 최고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생이다. 이제 다시 태어남은 없다.”(Aggo 'ham asmi lokassa, jettho 'ham asmi lokassa, settho 'ham asmi lokassa, ayam antima jati na'atthi 'dani punabbhavo ti.)5)

 

나머지는 번역의 차이였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탄생게의 의미는  상징적인 표현이고 그 상징적인 표현의 근본은 부처님의 성도 직후의  우빠카라는 외도의 사람을 만나 한 이야기에 있다는 것이죠  그부분만 다시 잘라오면 아래의 내용과 같습니다.

 

붓다는 성도 직후 탄생게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 언급하였습니다.7)

붓다는 처음 깨달음을 이룬 뒤, 다섯 고행자들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를 떠나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가던 도중에 ‘우빠까(Upaka, 優波迦)’라는 아지비까(Ājivika, 邪命外道) 교도를 만났습니다. 우빠까는 세존께 “벗이여, 당신의 모든 감각기관은 깨끗하고 피부색은 맑고 아름답습니다. 벗이여, 당신은 누구를 스승으로 삼고 집을 떠났습니까? 당신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의 교리를 신봉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붓다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에 더럽혀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따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세상에서 완전한 자이므로/ 내가 최고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깨달아/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다./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까시(Kasi)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의 북을 울리기 위해.”8)


이것은 붓다의 자각선언(自覺宣言)입니다. 즉 붓다는 스스로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 이 세간에 비길 데 없는 정각자(正覺者)라고 밝힌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붓다의 고백인 것입니다.9) 이것을 후대의 불전(佛傳)에서는 보다 문학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탄생게인 것입니다.   

 

흠  도움이 되셨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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