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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금강경 논강 2003.1.4

쟁점
1.최상승이란무엇인가
2.제일바라밀이란 무엇인가
3 .4쌍8배,조사는 최상승이고 아라한은 소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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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바라밀은 보시바라밀이아니고 산야를 척파하라는 금강경 자체다
(각묵)

대승의 나타난 현상만 추구하다보니 대승은 이타만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대승의 철학적 토대는 我空 法空 이다(도법)

초기불교의 관점은 苦로부터의 해탈인 반면
대승에 와서는 초점이 깨달음이 되었다.
즉 깨달음이 절대적인 목적(산야)이 되었다.

초기--> 고의 소멸--> 열반--> 열반을 세움--> 반야부에서 열반을 척파.

이와같이 불성,반야,자성,진여,진아,대원경지...이처럼 뭔가 있는 듯
세우는 말을 쓰지말자
열반을 다만 탐진치의 소멸로 보자(각묵)

산야 척파의 방법은?

북방불교는 간화선-화두-의단-산야척파
남방불교는 비파사나-무상,고,무아 관찰함.(각묵)

남방불교의 수행법은 8정도로 봐야 한다(도법)

열반의경지란 무엇인가?
산야가 있느냐 없느냐물으면 곤란하다.
고덕의 답은: "매하지 않는다"라고 했다.(각묵)

산야를 극복하는 방법은?
산야가 연기적 생성임을 아는것.(재연)

금강경의 최상의 수행법은 무주상 보시다.
무주상으로 보시를 행함이 곧 수행이다.
산야척파 라는 관념으로 수행법이 치우친 감이 있다.(성범)

산야척파 방법이 대승에서는 6바라밀이다.
산야척파방법이 한국에서는 간화선이다.(도법)

예류도-성인의 흐름에듦,일득 영득,다시는 물러나지 않음
퇴전하면 예류도에 들어간게 아니라고 분명히 나와있다(각묵)


금강경은 산야의척파를 이야기하고있지만 산야의 척파가 안된 상태에 대한 답은 없다.
그것이 금강경의 한계다. 화엄경에서는 "일체가 부처다" 라는 관점으로 그 모든 상태를 살려낸다(효원)


[[수행과 삶의 문제에 대한 토론--오늘의 주제]]

무아연기으로 사고하고 말하는것--이것이 수행이자 삶이다.
화두만 들면 무엇이든지 다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제 그 폐단이 거친 언어, 법 답지못한 행동, 윤리도덕의 부재로 나타나고있다.
종단적으로는 물질화,대형화로 나타난다.(도법)

눈비를 뚫고 여기에 왔다.논강이 끝난후에 집에갈생각을 하니 걱정이 많이된다.
지금 이런 마음으로 논강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좋은 말씀을 해달라.(거창 유홍렬)
빙판길에서 생긴 불안함은 빙판길에 놓아두라.
거사님의 마음은 항상 지금 여기에 와 있어야 한다.(도법)


제가 양심고백을 하겠다.
지나간 저의 수행은 正정진을 놓치고 있었다.
즉 무엇이 선법이고 무엇이 불선법인지 모르고 무조건 화두만 잡았다.
조실스님이라고 하는 분들이 사회현상에 대처하는 것이 실망스러운점이 보이는 것이
아마 이점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 화두가 한달동안 잘들려서 출가를했는데 막상 출가를 해보니 화두가 안들려 지더라.
그래서 일종식,오후불식등을 하며 노력해 보다가 인도유학까지가서 10년을 살고왔다.
우리가 性을 상정하게되면 바로 지금을 살피지 못하게 된다.
지금은 억지로 화두들려고하지 않는다.말할때는 말하는것에 충실하고 이야기 할 때는 이야
기하는것에 집중할뿐이다.그러다 아무것도 안하고 심심할 때 (노느니 염불한다는 식으로)화
두를 든다.나는 24시간 화두를 지속시킬 마음도 없다.그렇게 자연스럽게 들려지는 화두는 더
깊이 들어가는 것 같다.(각묵)

금강경을 제대로 공부하며 참선하면 선방의 문제가 치유될 수 있다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이것은 연기적 세계관이 없으면 안나온다)
--이것이 발심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화두만 들면 된다""산야만 척파하면 된다"는 말을 해도 좋다.(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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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금요일부터 폭설이내려 아침 저녁으로는 대중교통이 다니지 못했습니다.
하여 멀리서 논강에 참여하시던 분들이 많이 못오셨습니다.
논강이 진행되는 시간에도 함박눈이 끝임없이 내렸습니다.
평소보다 적은인원이라 오히려 가족적인 분위기로 논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오늘부터는 현실적인 주제를 하나씩 설정해 토론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오늘의 주제가[수행과 삶의 문제]였습니다.
정말 의미있었던것은 몇몇스님들이 자신의 지내온 생활에 대한 양심고백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끄러움을 들어낼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말할수 있을것입니다.

다음주(1,11) 주제는 : [방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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