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 판서 김수온(金守溫)이 면직을 청하는 상서를 올리다
공조판서 김수온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신은 근자에 전하의 은혜로운 허락을 받아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의 묘소에 참배하였습니다. 그때 전하께서 내려주신 제물로 조상들께 차례로 제사를 드리니, 은혜가 지하까지 미치고 고향 사람들 모두가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어찌 감히 바라던 바였겠습니까만, 이와 같은 은혜를 입게 되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릴 뿐입니다.
신은 지난해 5월에 모친상을 마쳤습니다. 선모(돌아가신 어머니)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묘의 풀은 이미 무성하게 자라 흔적만 또렷할 뿐, 묘의 형태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이 묘를 어루만지며 통곡하다가 땅에 쓰러지니, 마을 사람들이 부축해서 한참 뒤에야 일어났습니다.
신은 어머니께서 임종하실 때를 돌이켜 생각해 봅니다. 신이 어머니를 부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부디 마음 편히 돌아가소서. 형님(신미)은 이미 출가해 도를 얻었고, 저 또한 범상한 속인만은 아닙니다. 감히 숨기지 않자면, 저는 마땅히 산림으로 들어가 수행하여 도업을 이루고, 반드시 어머니께서 다시 태어나실 곳을 보고, 어머니가 겪는 모든 고통을 구제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안심하고 가소서.’
그러자 어머니께서 흐느끼며 제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비록 출가했지만, 아직도 너희에 대한 번뇌를 끊지 못해, 온 마음을 부처님께 향하지 못했다. 이제 내 업보가 다해, 눈으로도 너를 볼 수 없고 귀로도 너의 말을 들을 수 없다. 무슨 인연으로 내가 화상(신미)을 낳고 또 너를 낳아, 너희가 성상의 은덕을 입어 재상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비록 죽을 지경이지만, 아직 너희들에 대한 정을 잊지 못하겠다. 어미와 자식의 은혜는 깊어 영겁토록 다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땅에 들어간 뒤라도 네 말대로 한다면 나도 무슨 한이 있겠느냐.’
어머니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한데, 제가 어찌 그 마음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태생이 약하고 게을러 스스로 결단하지 못해 아직도 상소 한 장 올려 물러나겠다는 뜻도 밝히지 못하고, 함부로 전하의 은총만 입으며 헛되이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이는 어머니를 모시는 데는 불효한 자식이며, 전하를 섬기는 데는 녹만 탐하는 신하가 되었습니다. 자식의 도리도 잃었고 신하로서의 자세도 이지러졌습니다.
게다가 신은 이미 쉰여섯입니다. 지난겨울 집에는 따뜻한 방도 없어, 헌 이불에 몸을 뒤척이며 찬 기운을 들이쉬다가, 문득 정신이 쇠약해지고 몸이 늙어가는 것을 똑똑히 느꼈습니다. 수염과 머리는 더욱 하얗게 변하니, 어찌 해가 바뀌어서만 늙는 것이겠습니까? 달마다 늙어가는 것입니다. 제 스스로 살펴보건대, 늙고 기력이 쇠해짐이 이와 같습니다. 저는 포질(옛사람의 이름처럼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니니 오래 살 수 없습니다.
만일 또 몇 해를 더 끌게 된다면, 설령 전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떠나도록 허락해주신다 해도, 그때는 이미 기력도 쇠하고 마음도 지쳐서, 다시 무슨 도를 닦고 무슨 업을 이뤄 어머니가 임종 때 남긴 말씀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전하는 왕세자 때부터 효도와 충성을 다하여 성덕이 높으심을 천하가 알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신이 부모에게 효도하고자 하는 지극한 정성과, 도를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뜻을 불쌍히 여기시어, 특별히 신의 관직을 면하게 하시고 한가하게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3년의 기한을 정하여, 만약 도를 이루지 못한다면 여러 관청에 명하셔서 신의 망령된 말을 죄로 다스리시고, 불효의 벌이 드러나게 하소서.
지금 문무백관들이 구름처럼 많으니, 그들로 교화를 일으켜 태평을 이룰 수도 있고, 사방 오랑캐를 정벌할 수도 있어, 전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한낱 늙은 선비인 저에게는 쓸 곳이 없으므로, 제가 있든 없든 나라의 일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기러기 한 마리가 바다에 앉아도 창해가 차지 않고, 털 한 올을 뽑아도 아홉 마리 소가 비지 않듯, 성대한 왕조에 어찌 인재가 부족하여 저 하나를 아끼시겠습니까? 전하의 성은을 구하옵니다.”
임금은 허락하지 않았고, 친히 상소문의 끝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도라는 것은 세상을 구제하는 방편이니, 어찌 꼭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야 닦을 수 있겠는가?”
그 후 김수온은 집 안사람들에게 술과 과일을 준비시키고 마치 손님을 전송하는 것처럼 꾸며, 서울 동쪽의 보제원까지 가서 모자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게 한 뒤, 수행하던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내 따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회암사로 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자, 사람들은 그의 결심이 굳지 못하다고 조롱하였다.
김수온은 성격이 너그럽고 거친 데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문장은 호방하고 뛰어나 당시 비길 사람이 없었고, 명나라에도 이름이 알려져 유학자들이 추앙하였다.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믿어 형은 신미로서 ‘혜각존자’로 봉해졌고, 어머니 역시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으니,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려 한 상소였다.
집이 가난하고 검소하여, 비록 대신이 되었어도 납의(승려 옷) 같은 소박한 풍모가 있었다. 나라에 큰 불사가 있을 때면 김수온이 축문과 글을 지었는데, 문장이 화려하게 뻗어 나갔다. 일찍이 ‘도는 증명할 수 있고, 부처는 본받을 만하다’라고 말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工曹判書金守溫上書曰: 臣近蒙恩旨, 歸省故園, 得上父母丘壠, 卽以賜奠, 編祭祖考, 恩及九泉, 光動一方。 未何素望, 敢以及此, 頓首頓首。 臣於去年五月服闋, 自先母李永訣, 于今四年。 日月幾何, 墳草已荒, 遺迹完然, 形影莫覩。 臣循撫痛哭, 宛轉于地, 鄕人扶起, 良久乃立。 臣竊惟念先母李將終, 臣呼曰, "願母安心乘化。 和尙旣出家得道, 子亦非常俗人。 儻不諱子當長往出林, 成就道業, 必見母所生之處, 必救母所受之苦, 願母安心乘化。" 母嗚咽執臣手曰, "吾雖出家, 未斷汝等煩惱, 不能專精向佛。 今已報盡, 非惟目不能見, 耳亦不聞汝言矣。 以何夤緣旣生和尙又生汝, 驟蒙上德, 官至宰相, 今雖將死, 尙未忘情。" 於汝等母子, 恩深無刼可盡, 脫吾入地, 儻如汝言, 吾亦何憾?" 母言如在, 曷敢忘懷? 而賦性耎懶, 無自勇決, 尙未能上一章乞退, 叨冒聖上之寵, 虛抛歲月之久, 是臣事先母, 爲忘孝之子, 事殿下爲慕祿之臣。 子職旣曠, 臣儀亦虧。 且臣年五十六矣。 去年冬寒, 家無溫房, 布被轉輾, 呼吸冷氣, 精神斗覺於衰朽, 鬚髮尤增於皓白, 所謂豈惟歲遷? 兼復月化。 以臣所料, 寖加老憊如此。 決非浦質, 能久於世。 若又淹引數年, 縱殿下憐而放臣, 筋力旣違, 志慮益竭, 更復修何道、成何業, 以復老母臨死之言哉? 伏惟殿下興自首邸爲子之孝, 爲臣之忠, 聖德所隆, 天下所知。 伏望憐臣孝母之至情, 許臣求道之至意, 特免臣職, 遣使優閑。 限以三年, 如道不成, 付諸有司, 以治誣妄之罪, 以彰非孝之罰。 當今文武之臣如雲, 以之興化致治, 以之征伐四夷, 天心所向, 無不如意。 一介老儒無適於用, 有臣無臣決無所關。 比如乘雁集而滄海不爲之盈, 一毛去而九牛不爲之空, 堂堂聖朝, 豈乏人材而獨惜臣哉? 伏望聖慈。 上不允, 親書其尾曰: "道在方便濟世, 豈藉削髮乃修?" 後守溫令家人備酒果, 若餞客然, 到城東普濟院, 脫帽帶着便服, 盡還騶從, 使不得尋蹤, 到檜巖寺, 未幾還, 人譏執心不固。 守溫性疎闊不拘險, 文章浩妙, 時無比倫, 名於上國, 儒林推重。 家世學佛, 兄卽信眉, 封慧覺尊者, 母亦祝髮爲尼, 遵母遺意, 有是書。 居家寒素, 雖爲大臣, 蕭然有衲子之風。 國有大佛事, 守溫作疏語, 鋪張演溢。 嘗謂 "道可證而佛可効", 爲人所笑。.
구치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구치관(具致寬)을 영의정으로 삼고, 황수신(黃守身)을 좌의정으로, 박원형(朴元亨)을 우의정으로, 신숙주(申叔舟)를 고령군(高靈君)으로, 최항(崔恒)을 좌찬성(左贊成)으로, 조석문(曹錫文)을 우찬성(右贊成)으로, 윤자운(尹子雲)을 좌참찬(左參贊)으로, 김질(金礩)을 우참찬(右參贊)으로, 강효문(康孝文)을 예조 판서로, 김국광(金國光)을 병조 판서로, 이석형(李石亨)을 한성부 윤(漢城府尹)으로, 김수경(金守經)을 행 사헌부 장령(行司憲府掌令)으로, 김겸광(金謙光)을 평안도 절도사(平安道節度使)로 삼았다. 김겸광은 본디 유사(儒士)로서 비록 활 쏘고 말달리는 재주는 없으나 계획(計畫)이 조금 우수하였고, 김수경은 중 신미(信眉)의 아우인데, 문·무(文武)에 뛰어난 재주가 없고 불교를 숭상하고 믿어서 이름은 속인(俗人)이나 행동은 중이며, 어미와 아내가 모두 여승[尼]이 되었다. 신미가, 임금이 부처를 받들어 믿는 것을 의지하여 자주 짧은 편지로써 임금에게 통해 아뢰어, 아우·조카가 벼슬에 제수되어 뜻과 같지 아니함이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 김수경이 보은 현감(報恩縣監)으로서 벼슬에 초배(超拜)되니, 인망(人望)에 맞지 아니하여 물의가 자자하였다.
*세종실록에서 1446년(세종 28년 5월 27일) 신미의 이름이 처음 등장 할때부터 신미는 간사한 승려 신미 (奸僧信眉)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계속해서 간악한 승려 신미 (姦僧信眉), 요사스러운 승려 신미 (妖僧信眉), 신미가 그 요사스러운 말들을 퍼뜨렸다(信眉倡其妖說) 라는 식으로 등장하고있다. 1450년 문종이 내린 이 시호를 1달후에 우국이세(祐國利世)가 삭제되고 글자수도 26자에서 37자로 늘어난 시호로 변경되었다. 신하들에게 신미에게 내린 우국이세(祐國利世)만을 삭제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상관이 없었다.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우국이세(祐國利世)를 지우고 들어간 표현은 '중생을 건지고, 만물을 이롭게 하다'라는 도생이물(度生利物)이다. 종교적인 행위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문종실록2권, 문종 즉위년 7월 6일 무신 1번째기사 1450년 명 경태(景泰) 1년 이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신미에게 승직을 제수하다
禪敎宗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
(1450년 문종이 내린 이 시호를 1달후에 우국이세(祐國利世)가 삭제되고 글자수도 26자에서 37자로 늘어난 시호로 변경되었다. 신하들에게 신미에게 내린 우국이세(祐國利世)만을 삭제한다면 아무리 길어도 상관이 없었다.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하다'라는 우국이세(祐國利世)를 지우고 들어간 표현은 '중생을 건지고, 만물을 이롭게 하다'라는 도생이물(度生利物)이다. 종교적인 행위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안숭선 등의 관직을 제수하고 신미의 직첩을 고쳐 내리다
大曹溪 禪敎宗都總攝 密傳正法 承揚祖道 體用一如 悲智雙運 度生利物 圓融無礙 惠覺宗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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