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9일
아침 포향을 마치고 금산사 부전스님이 점심공양 때 보자라고 말했는데 나는 공양시간 이전에 금산사를 떠났다. 일부러 약속을 안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침이면 떠나야 하는 나그네의 습성 때문이다. 서산 개심사로 가기전에 쉬었다 갈만한 사찰을 생각하다가 부여 무량사에 오게 되었다. 익산 미륵사지나 부여 왕궁리 오층석탑을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숙박투쟁을 하는 중이라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 절을 선택하였다. 네비게이션을 믿고 오다가 국도로 오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점신공양도 못했다. 무량사에는 매월달 김시습이 말년을 보낸 곳이라 그의 초상화를 모신 전각이 있다. 극락전의 부처님은 웅장하고 석탑은 매우 세련되었다. 무량사에 도착하니 입구에는 연등이 걸려 있었고 마당에는 연등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법당에 들러 삼존불을 친견하였다. 예전에 무량사에 들렸을 때는 법당이 수리중이어서 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했는데 오늘 그 부처님을 드디어 친견한 것이다.
아미타 부처님은 름름하고 좌우보처 관음보살과 대세지 보살은 표정이 사뭇 진지하고 아름답다. 불단이 낮아서 부처님들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요소도있다. 극락전의 삼존불이 소조불로서는 국내 최대라고 하는데 금산사 소조불을 보고 와서 그런지 잘 믿겨지지 않았다. 오래 앉아 있고 싶은 법당이다. 무량사 종무소에 가서 선방에 다니는 스님인데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무장 보살님이 오늘은 템플스테이 손님이 많아서 방이 없다고 했다. 스님 스님들이 쓰는 객실이 없느냐고 물으니 객실도 템플스테이 용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점심도 못먹고 먼 거리를 달려와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마음속에 품어둔 사찰이라서 그런지 하룻밤 자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다른 사찰에서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 보다 더 슬펐다. 아마 배가 고파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근엄한 얼굴로 ‘사찰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기 위해서 지어진 것인데 스님은 절에서 잘 수 없고,일반 사람들은 템플스테이를 할수 있다는 것이 뭔가 잘못된거 아닙니까?’ 라고 물었다. 보살님은 어색해 하면서 ‘방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주지스님께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보살님은 주지스님은 병원에 가셨다며 전화는 하지 않고 더욱 난처해 했다.
마침 도량해 개 세 마리가 방문객들과 놀고 있었다. 나도 강아지를 좋아하는 까닭에 그곳으로 가서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그때 사무장보살님이 커피를 한 잔 가지고 왔다. 그리고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저는 차비를 받으러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스님 이건 제가 드리는 거예요’라고 보살님은 말했다. 저는 ‘사찰에서 주는 것이라면 보살님이 주는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스님 저도 불자인데 스님께 보시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하면서 커피를 들고 있는 웃옷 주머니 속으로 봉투를 넣었다. 나는 보살님의 말에 감동해서 봉투를 받았다. 절에서 자지 못하는 설움과 보시하는 보살님의 따듯한 마음씨를 동시에 느끼니 기분이 묘하다. 꼭 자보고 싶었던 무량사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
어디로 가지? 라는 물음과 동시에 청양 장곡사가 떠올랐다. 예전에 내가 천장사 주지를 할 때 무량사와 장곡사를 참배한 적이 있다. 무량사에서 숙박을 거절당한 우울함을 떨쳐내면서 장곡사에 당도하였다. 처음부터 거절당할 것을 알고 문전박대 받을 것을 예상하고 다니는 만행길이지만 나그네는 곳곳에서 상처 받는다. 점심 공양을 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이유같기도해서 한끼에 9천원하는 뷔페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30분인데도 손님들이 있었다. 주인 보살님은 손님이 왔다고 따끈한 계란 후라이를 해서 가져왔다. 맛있게 늦은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장곡사는 특이하게 대웅전이 2개있다. 하(下)대웅전과 상(上)대웅전이 그것이다. 상대웅전은 건물 자체가 보물이다. 대웅전안에 모셔진 ‘철조약사여래좌상’은 국보이고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이다. 그러나 왜 대웅전을 두 개나 만들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종무소에 들려서 오늘 하룻밤 묵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종무소 보살님은 정중히 방이 없다고 했다. 주지스님과 통화를 하고 나서고 역시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내가 수덕사 스님이라고 말하자, 그 보살님은 수덕사 스님 이름을 대면서 그 스님들과의 오랜 인연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끝내 방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호소하고있었다. ‘스님이 있기에 사찰이 세워졌는데 절에서 스님이 잘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저는 조그마한 개인사찰에 와서 부탁하는 것이 아니고 천년고찰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찰에서 스님이 잠을 잘 수 없다니 스님들은 어디가서 잠을 자야 합니까?’ ‘보살님이 인연있는 수덕사 스님을 모시고 여러 가지 사찰일을 돕고 불사(佛事)를 도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하더라도 스님이 절에 잘 수 없다면 그런 봉사와 불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 모든 것은 스님들이 절에서 여법하게 수행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이 스님을 무시하고 스님이 절에서 잘 수 없다면 그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하게 됩니다. 주지스님께 이렇게 전해 주세요.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절을 나왔다. 사찰에서 숙박을 거절 당한 소감을 가장 길게 토로한 것 같다. 천년고찰 무량사에서 거절당하고, 또 천녀고찰 장곡사에서 거절당하니 마음이 서글퍼서 그랬나보다. 저녁에 차를 몰아 개심사 보현선원에 도착하였다. 보현선원에는 공양주 보살님이 혼자서 선원을 지키고 있었다. 산철이라 스님들은 모두 떠난 선원은 적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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