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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正念正知(sato sampajāno -satisampajaññā) 용례

正念正知(sati sampajaññā) 용례

 

온라인 불자회에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 )에 대하여 토론이 있었습니다.

사문과경에서  "대왕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satisampajaññena)을 잘 갖춥니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이 같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열반경처럼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사띠(sato)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삼빠자나(sampajāno)하는가?"라고 물을때는 따로 사용하고 있기도합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사띠(sato)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随観]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随観]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随観]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随観]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sampajāno satimā) 되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챙긴다(sato) .”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t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kāye kāyānupassī viharati ... Vedanāsu vedanānupassī … pe … citte cittānupassī … pe … dhammesu dhammānupassī viharati ātāpī sampajāno satimā vineyya loke abhij­jhā­do­manas­saṃ.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to hoti.

 

비구들이여, 비구는 어떻게 삼빠자나(sampajāno)하는가?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분명히 알면서[sampajānakārī 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ㆍ발우ㆍ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ㆍ서면서ㆍ앉으면서ㆍ잠들면서ㆍ잠을 깨면서ㆍ말하면서ㆍ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알아차린다(sampajāno) ."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Idha, bhikkhave, bhikkhu abhikkante paṭikkante sampajānakārī hoti, ālokite vilokite sampajānakārī hoti, samiñjite pasārite sampajānakārī hoti, saṅghā­ṭi­patta­cīvara­dhāraṇe sampajānakārī hoti, asite pīte khāyite sāyite sampajānakārī hoti, uccāra­passā­va­kamme sampajānakārī hoti, gate ṭhite nisinne sutte jāgarite bhāsite tuṇhībhāve sampajānakārī ho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Sato sampajāno)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당부이다."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sampajāno hoti. Sato, bhikkhave, bhikkhu vihareyya sampajāno, ayaṃ vo amhākaṃ anusāsanī”ti.

 

* 정리하자면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따로 사용할 때는 사띠(Sato正念)는 좌선하면서 사념처할때 사용하고, 삼빠자띠(sampajāno正知)는 행주좌와등 움직임을 관찰할 때 사용합니다.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satisampajaññena)이 같이 사용될때는 머문다(viharati)라고 할 때는 같이 사용됩니다. 머문다(viharati)라는 것은 동정(動靜)을 모두 포함하기때문입니다. 이와같이  마음챙김(正念)과 알아차림(正知)이 어떤 차이인지 사전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문장의 맥락에서는 구분이 됩니다. 이러한 특징을 살려 수자또 비구는 sati(正念)mindfulness라고 번역하고, sampajāna(正知)situational awareness라고 번역합니다. 

 

 


 

 

계 경(22:122) Sīla-sutta

 

7.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아라한은 어떤 법들을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됩니까?”

도반 꼿티따여, 아라한도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다른 사람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지녀야 합니다."

"도반이여, 아라한이 다시 더 해야 할 것이란 없고 더 보태야 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법들을 닦고 많이 수행하면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고 아울러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이 있게 됩니다.”

 “arahatā panāvuso sāriputta, katame dhammā yoniso manasi kātabbā”ti? “arahatāpi kho, āvuso koṭṭhika, ime pañcupādānakkhandhe aniccato dukkhato rogato gaṇḍato sallato aghato ābādhato parato palokato suññato anattato yoniso manasi kātabbā. natthi, khvāvuso, arahato uttari karaṇīyaṃ katassa  paticayo P.3.169; api ca ime V.2.152 dhammā bhāvitā bahulīkatā diṭṭhadhammasukhavihārā ceva saṃvattanti satisampajaññā ”ti. dasamaṃ.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무릅니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Thinamiddhaṁ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ṁ parisodheti. 

 

 

 

 "대왕이여, 다시 그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뭅니다. 

Puna caparaṁ, mahārāj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1.17 "비구들이여, 그때 위빳시 보살은 도솔천에서 몸을 버리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 이것은 여기서 정해진 법칙이다. 비구들이여, 이것도 정해진 법칙이다.

 

3.15. 다시 아난다여, 보살이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도솔천에서 몸을 버리고 모태에 들때에 땅은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세 번째 원인이요 세 번째 조건이다.

 

3.16. 다시 아난다여, 보살이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모태로부터 나올 때에 땅은 흔들리고 많이 흔들리고 강하게 흔들리고 요동친다. 이것이 큰 지진이 일어나는 네 번째 원인이요 네 번째 조건이다.

 

 

 

열반경(D1)

223. 그때 세존께서는 안거를 하시는 도중에 혹독한 병에55) 걸려서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이 생기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

 

 

3.10. 그리고 세존께서는 짜빨라 탑묘에서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수명(壽命)의 상카라를 포기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한 뒤 두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침상을 만들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발과 발을 포개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존자들이여, 여기 비구는 안으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뭅니다.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뭅니다. 느낌에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뭅니다. 이 네 가지 법을 닦아야 합니다.

 

 

촌장이여, 이런 그는 이와 같이 탐욕이 없고 악의가 없고 현혹됨이 없으며,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며, 연민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Sa kho so, gāmaṇi, ariyasāvako evaṁ vigatābhijjho vigatabyāpādo asammūḷho sampajāno paṭissato mettāsahagatena cetasā ekaṁ disaṁ pharitvā viharati, tathā dutiyaṁ, tathā tatiyaṁ, tathā catutthaṁ. Iti uddhamadho tiriyaṁ sabbadhi sabbattatāya sabbāvantaṁ lokaṁ mettāsahagatena cetasā vipulena mahaggatena appamāṇena averena abyāpajjena pharitvā viharati.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충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고 평온이 함께 한 마음으로 모든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문다.”

 

18. “예를 들면 고둥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촌장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어떠한 것도 여기에는 남아있지 않고 여기에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VīriyārambhādivaggaAN 1.61–70

9. “비구들이여, 이것 이외에 다른 어떤 법에 의해서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불선법들이 버려지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알아차림이다.비구들이여, 알아차리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법들이 일어나고, 또 이미 일어난 불선법들은 버려진다.”

69. “Nāhaṁ, bhikkhave, aññaṁ ekadhammampi samanupassāmi yena anuppannā  kusalā dhammā uppajjanti uppannā  akusalā dhammā parihāyanti yathayidaṁ, bhikkhave, sampajaññaṁ. Sampajānassa, bhikkhave, anuppannā ceva kusalā dhammā uppajjanti uppannā ca akusalā dhammā parihāyan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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