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회복
현재 조계종의 일부 재가자와 스님들이 승가의 의미를 모르므로 승가에 우바새(남성불자),우바이(여성불자)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재가자들을 승가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스님들의 이기주의라고 비판합니다. ‘승가=스님들’이라고 이해하며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이 잘된 번역이라고 주장합니다. 승가에 대해서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것이 조계종의 현실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승단(승가)만 있습니다. 승단의 일에 재가자가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단'이 만들어 지면서 재가자들이 종단의 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헌 제8조 “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파새, 우파이)로서 구성한다.”라고 명시함으로서 출가자와 함께 재가자도 종단운영의 주체가 된 것입니다. 승가는 부처님이 만들고 종단은 사부대중이 만들었기에 승가가 잘못 운영되면 회복(回復)시켜야하고, 종단이 부패하면 개혁(改革)해야 합니다. 종단에서는 재가자들이 부처님 당시 꼬삼비 불자들이 승가분쟁을 해결한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일을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상가(Saṅgha)는 가나(Gaṇa)와 함께 부처님 이전에 인도에서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그 단어는 집단, 모임, 단체등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승가의 유지 방법, 운영방법등은 계속 변화하고 확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가는 특별하고 종합적인 의미와 역활을 갖게됩니다. 이것이 상가의 어원을 분석하고 번역어를 살펴보아도 그 뜻을 알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상가를 중국에서 衆,衆団,僧団,教団,和合衆으로 번역하였니다만 이러한 번역어들은 승가를 이해하기 더욱 어렵게 합니다. 특히 음사한 승가(僧伽)를 승(僧)으로 단축시킨 것은 공동체를 개인으로 오해하게 만든 주범입니다. 대중공의를 모으는 법,범계자를 참회시켜서 청정하게 만드는법등을 알아야 승가의 의미와 역할을 알 수 있습니다. 조계종은 출가자에게 승가의 의미를 가르치고 승가의 역할을 가르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종단에서 '스님들께' 귀의한다고 말하며 가르치고 있는게 그 증거입니다. 행자 때 배우는 초발심자경문에는 승가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화합승가(Samagga saṅgha)’에서 ‘화합’이라고 번역한 사막가(Samagga)도 크게 오해되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사막가(Samagga)는 unified, in concord, harmonious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율장에서는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화합이 아닙니다. 사분율에 “화합(和合)이란 다함께 갈마(회의)를 행하고(同一磨), 포살설계를 함께 하는 일(同一說戒)”이라고 설명하고, 오분율에는 “화합이란 포살.자자.갈마.일상사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마하승기율에는 “화합승가는 별중(別衆)이 아니다. 비구들이 다투거나(鬪爭) 서로 다른 견해를 가졌을 지라도, 동일계(一界), 동일대중(一衆), 동일주처(一住處), 동일포살자자(一布薩自恣)를 하기 때문에 화합승가다.”라고 설명합니다. 스님들이 설사 입으로 몸으로 싸우더라도 포살과 자자등 갈마(회의)를 같이 하면 화합이라는 의미입니다. ‘화합갈마(samagga kamma)’라는 단어에서 사막가(Samagga)는 갈마에 필요한 정족수가 채워져 성원(成員)된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몇몇 구성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위임을 받았고 제척사유가 없는 구성원이면 ‘화합(Samagga)’입니다. 이처럼 ‘화합’은 전체 구성원이 포살자자를 함께하는 것이고, 회의참석자가 성원(成員)된 상태등 맥락에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사마가마 경(M104)에 의하면 승가에서 법과 율에 대하여 이견이 생겨서 승가가 분열하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중공사를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아난다여, 여기 비구들이 '이것이 법이고(dhammo), 이것은 법이 아니다(adhammo). 이것은 율이고(vinayo) 이것은 율이 아니다(avinayo).'라고 분쟁을 일으킨다. 아난다여, 그 비구들은 모두 화합하여(samaggehi)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dhammanetti)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그에 따라서 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만일 그 비구들이 그 대중공사를 그 처소에서 가라앉히지 못하면, 그 비구들은 많은 비구들이 머무는 그런 처소로 가야 한다. 거기서 모두를 화합하여 모여야 한다. 함께 모여서 법도를 만들어야 한다. 법도를 만들고 나서 ‘다수결’에 따라서 대중공사를 가라앉혀야 한다.”
여기서도 '화합하여(samaggehi) 모여야 한다'는 뜻은 ‘회의 구성원이 성원(成員)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법(法)과 율(律)에 대한 이견(異見)으로 승가분열이 예상되는 때도 부처님은 '다수결'을 말한다는 점입니다. 승단이 쪼개질지도 모르는 중대한 상황에서도 만장일치를 말하지 않고 다수결을 말합니다. 만약 부처님이 만장일치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승가는 2700년동안 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역사에 나타났던 제1차 결집, 제2차 결집,제3차 결집등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고 1994년 승려대회도 인정받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현재 조계종단안에 ‘승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보시물에 대한 평등한 나눔, 정의로운 징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발언의 자유가 억압받고, 주지스님이 부전스님을 면접을 보고 고용하는 시대가 되어 사찰이 돈 벌기 위한 사업장이 되었습니다. 승려간에 빈부(貧富)차이로 불신(不信)이 깊어졌지만 개선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출가자도 재가자도 남의 일인냥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재가자가 종단 구성원의 주체로서 마땅히 종단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데도 주인노릇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1994년 만들어진 총무원,교육원, 포교원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재가자가 적극 참여해서 의견을 내어야합니다. 주인은 여러가지 조건중에서 내 마음의 의도가 가장 강력한 조건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종단개혁’과 ‘승가회복’을 위해 먼저 해야하는 일은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대안언론을 만드는 것입니다. 입이 없는 주인은 없습니다. 다음으로 한글 삼귀의 개정운동입니다, 이것은 제도개혁이면서 의식개혁운동입니다. 출가자는 승가의 의미를 알 때, 재가자는 종단의 의미를 알때 비로서 주인이 되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게됩니다.
승려들은 자신이 불자(佛子)이고 왕자(王子)인데도 거지인 줄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점차적으로는 상시적인 소통의 장 만들기, 정기적인 설문조사, 사부대중의 자유로운 말하기와 쓰기, 종단의 근간이 되는 종헌종법개정 청원등의 순서로 나아가야합니다. 이러한 해결책을 놔두고 재가자들이 종단일은 스님들만의 문제라고 외면하거나 출가자들이 ‘출가정신의 해이함’ ‘신심(信心)부족’ ‘교육부족’등 개인의 문제로 끌고가는 것은 권승들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것입니다. 이제 종단개혁을 말할 때 그럴듯한 말로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말아야 합니다. 조계종은 사상적으로는 모든 종파를 포함하고 제도적으로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찰과 임야, 문화재를 관리하는 거대한 조직입니다. 조계종이 개혁되면 전국의 사찰과 임야, 문화재와 자연환경은 국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게됩니다. 종단개혁이 곧 불교중흥의 길입니다. 종단개혁이 곧 사회개혁입니다.
https://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53752
참고할 글-삼귀의 한글화 문제점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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