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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일본 여행을 마무리하며

여행의 덕이 있다면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음식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니, 잠자고 있던 느낌이 생생하게 깨어난다. 그 새로움은 때로 호기심과 감탄과 기쁨이 함께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두려움과 지루함과 외로움을 동반한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왜 가야하는지 묻게되는 것이 여행의 속살이다. 그렇다. 본래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외로움이 드러나는 것이 여행의 가장 큰 덕목일 수 있다. 그래서 여행자의 하루 하루는 더욱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다. 결국 돌고 돌고 돌다보면 그 모든게 나에게로 가는 길이다. 내가 여행하는게 아니라 나를 데리고 다니는 여행, 나는 교토의 어느 사찰에서 속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여행은 야생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야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활이 간소해지는 것이다. 하루를 사는 것이 목적이 된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심플하게 존재하는 것, 하루를 사는 것, 순간을 사는 것... 어느덧 생존이 목적이 된다. 일본에 오기전에 일본의 어디를 가야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일본에 대해, 지역에 대해, 역사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목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유를 찾아보자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도 이 나이?가 되도록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는 생각, 작년 동안거 끝나고 일본에서 유학한 선덕스님의 안내로 일본에 가자고 약속한 적이 있었는데, 그 지켜지지 않은 약속이 나를 떠민셈이다. 

토교미술관 앞 조형물

 

 

이제 여행도 끝나고 내일모레면 귀국한다. 일본에 오게 됨으로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 에서 튀어나오는 호기심과 질문에 답을 스스로가 해야 했기때문에 생생한 학습이 되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에들어오는 것이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깨끗한 일본의 거리였다. 길이든 기차역이든, 광장이든 공원이든, 어디든 휴지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못 보았다. '시로이시(siroeshi)'라는 동네에 COOP라는 큰 마트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 마트의 쓰레기 통을 보게되었다. 휴지통 안에는 우유갑이 편편하게 펴져서 쌓여있었다. 가정집도 아니고 이렇게 큰 대형 마트에서 우유갑을 저렇게 처리하다니 라는 감탄이 나왔다.(국민들은 저렇게 자연을 잘 보호하는데 일본 정부는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고 있으니...라는 탄식도 함께)

 

'시로이시'의 어느 회사 주차장을 보니 입구에 하얀 프리스틱 물통이 일열로 놓여 있었다. 뜻하는 바는 이곳에 주차하지 말라는 표시일 것이다. 주차금지의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그 방법으로 색깔있는 글자, 철문, 막대등 다른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하얀색의 물통을 일렬로 배치해 놓은 것이다. 내 말을 들으라 소리쳐서 주장하지 않고 얌전히 그러나 단호하게 전달하는 일본인의 특성을 보는듯했다. 전철이나 기차를 탈때도 일본인들의 섬세함을 느꼈다. 전철의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높고 낮게 만들어 놓아 키가 큰사람과 작은 사람들을 동시에 배려하고있다. 의자 위에 손잡이를 만들어 서있는 사람들이 잡을 수 있게 했다. 기차의 좌석 옆에 모자나 작은 배낭을 걸 수 있도록 고리가 있고,의자 옆에 둥그런 손잡이에도 무언가를 걸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리창 아래에는 팔을 걸쳐 놓을 수 있도록 타원형의 팔걸이를 만들어 놓았다. 작은 에어콘은 머리위에있는 틈사이에 숨어있고 바람은 사람이 앉아있는 곳을 비껴가게 해놓았다. 역 바닥에 객실 번호와 진행방향,자유석,지정석,현재위치등을 표시해 놓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있다.

 

도쿄역 바닥에 있는 안내도

 

 

 

 

일본은 자전거를 타기 좋은 나라다. 어느곳이나 자전거 길을 만들어 놓았다. 교토 같은 도시에는 자전거 타는 인구가 매우 많아 보였다. 특히 주부들이 아이들을 자기 앞에 한명 , 뒷 좌석에 한명을 태우고 자전거 타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여기는 살기 좋은 동네로구나하는 인식이 들었다. 엄마가 아이 둘을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은 평화 그 이상의 감정을 갖게한다. 초등학교 아이들도 친구들끼리 모여 자전거를 타고 청년들도 자전거를 많이 탄다. 교토가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가 된 것은 길을 반듯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시를 건설할 때부터 1조, 2조, 3조...9조라는 식으로 부처님의 가사모양을 본떠서 도시를 건설하였다. 부처님이 아난다에게 웨살리의 반듯한 논 바닥을 보고서 가사를 만들게 했는데 이 가사모양을 교토가 그대로 본뜬 것이다. 그래서 교토의 도로는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의 거리가 일정하고 반듯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나 보행자들이 교통질서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놀랍다. 운전자들은 보행자들에게 먼저 양보한다. '시로이시'라는 시골에서 며칠간 자전거를 타며 읍내를 구경하였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호기가 없는 길에 서있으면, 운전자는 나에게 먼저 건너 가라고 손으로 신호를 보내곤 하였다.

 

교토에서 자전거를 타는 가족

 

 

 

 

일본의 불교문화는 굉장하였다. 목조건물의 웅장함과 역사는 나를 놀라게했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당하지 않은 나라여서 그런지 오랜 세월동안 목조건물은 잘 보존되고 있었다. 세계 최대 최고의 건물이라 소개되는 건물이 즐비했다. 그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을 수 있었던 기술력, 재료, 원력이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불상과 보살상 그리고 사천왕상등의 예술성과 생동감은 세계최고라고 칭찬 받는다. 교토 동사(도지) 강당에 전시되고 있는 입체 만다라는 조각이나 배치면에서 처음 접해보는 것이었다.나라 동대사의 남문과 법당은 보는 것만으로 압도 당하였다. 아기를 가슴에 안고있는 관음상, 처절한 고통을 표현한 인물상, 부처님의 십대제자상은 기존 불교의 틀에서 벗어난 창조적인 것들이었고, 사천왕의 발을 떠 받치고 있으면서도 웃고있는 아귀상은 보는이를 웃음짓게하였다. 일본의 사찰에 딸린 아름다운 정원은 오래도록 인상에 남는다. 사찰 정원의 단아함과 단순함은 사람의 마음마저 정갈하게 한다.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연을 그렇게 이쁘게 가꾼다는 것은 분명 배울만한 문화이다. 설법하기 이전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오래도록 앉아 있게 만드는 것이 사찰 정원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한국의 사찰은 근래에 안목이 없이 중창불사를 많이 하다보니 석축은 거칠고 새로지은 건물이 옛 것과 어울리지 않는 도량이 많이있다. 작년에 춘양 각화사에 들렸다가 우악스러운 불사에 얼마나 실망했는지...나라에서 보조를 받아서 하는 불사이기에 더욱 분수를 잃어가는 것이라고본다.

 

일본의 목조건물은 단청이 되어있지 않아서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예전에는 단청이 되어있던 건물이었다. 세월이 지남에따라 단청의 색깔이 퇴색되어 어느덧 나무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단청을 벗겨냈지만 새로 단청을 하지 않는 것은 그 세월과 변화 또한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오래된 건물이 너무 많고 그 오래된 건물들은 그 세월만큼 색이 바랬다. 그 상태를 보고 나는 일본에는 단청을 하지 않는 문화인가보다라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마루바닥에 구멍이 난 부분을 보수할 때도 개성있게 보수를 하고 있다. 

 

교토 니혼지의 보수된 마루

 

 

 

 

 

일본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오백엔~천오백엔까지 비싼 입장료를 받았다. 일반인들은 관람료가 비싸서 들어가야하나라는 갈등을 해야하는 곳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승려에게는 사찰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그냥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한국의 승려입니다"라고 말했을때만 입장료를 면제해주었다. 수동적인 것이기는 했지만, 나의 말을 듣고 대개는 몰랐다는 듯이 아하! 감탄사를 내며 흔쾌히 관람료를 받지 않았다. 관람료를 면제 받는 다는것은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축복이다. 단 한번, 교토의 대덕사에 딸린 정원을 볼때 관람료를 내야했는데 정원이 사찰과 별도로 관리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한다. 일본 사찰에서 외국의 승려에게 관람료를 받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일본 국민들이 불심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일본여행에서 부담되는 입장료와 것은 숙박비다. 그나마 나는 입장료를 내지 않았고 숙소는 캡슐호텔,호스텔,게스트하우스 같은 저렴한 곳을 이용할 수 있었다. 숙소를 안내해 주는 앱을 스마트폰에 깔아서 잘 이용 하면 최소 2만원 대개는 3만원~4만원정도면 하룻밤 잘 수가 있다. 캡슐호텔이라도 공용 목욕탕, 공용 화장실, 동전 빨래방등이 있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내가 머문 오사카의 캡슐호텔

 

 

 

 

일본 사람들은 어디서 만나도 친절하였다. 도쿄나 오사카의 전철에서 헤메이고 있을 때 일본인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몇몇은 내가 원하는 전철을 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영어를 하지 못해 소통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그들의 친절은 마음에 남는다. 사찰을 찾아서 법당에 들어갔다 나오면 어느덧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여러번 이것을 경험 하였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이 뭔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도 받았다. 인도인 친구는 일본인은 세가지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사회적 자아, 가족적인 자아, 개인의 자아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 마음)'이라는 용어가 일본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본심을 말할 때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의견을 나타낼 때가 다르다. 일본인의 경우 이 두 가지를 구별하여 사용하기에 익숙하다고한다. 다테마에가 전체의 조화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미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개인 위주의 삶을 솔직히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에도 지역적인 차이가 있다. 교토에 사는 사람들은 속마음을 숨기고,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고 한다. 아무튼, 일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니혼지 법당앞에 정리 되어있는 신발

 

 

 

혼네(속마음) 다테마에(겉 마음)이라는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들이 교복과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운동장에서 놀 때도 모자를 쓰고 논다는 것이다. 햇살이 따가워서 모자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일률적으로 쓰는것을 보면  교칙이나 국가의 방침일 것이다. 이렇게 집단으로 통일되게 교육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개인의 주장을 하기 보다는 집단의 명령에 순응하도록 만들 것이다. 이것이 전체의 조화를 위해 개인이 존재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다테마에(겉 마음) 정신과 연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못살리게 되는 교육이 일본의 문화가 지금 한국의 문화를 못따라오고, 일본의 정치가 침체되게 된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혼네(속마음) 다테마에(겉 마음)는 사무라이 시대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을 즉결 처분할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무라이에게 죽지 않으려면 자기의 속마음을 내 보이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기에 그것이 관습이 되어진 것이라고.이러한 문화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것과 마주할 때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모자쓰고 운동하는 교토의 어리이들

 

 

 

 

 

이번 여행으로 일본불교 역사의 부끄러운 점도 알게 되었다. 일본불교의 비승비속의 전통, 이단논쟁 속에서 사찰에 승병을 조직하여 다른 사찰을 공격하고, 일반 군인들과 싸운 잇코잇키(一向一揆)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에 들린 교토의 정토진종에 속하는 혼간지도 승병의 본거지 였다. 그래서 그런지 부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져있고 예불의 분위기도 권위적이었다. 일본의 사찰이 관광지화가 되어버린 점은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사찰에 가서 스님을 만나보기가 어렵고 입장료를 받는 직원, 청소를 하는 직원들만 보인다. 나무를 가꾸는 일, 정원을 가꾸는 일등도 모두 고용된 일꾼들이 하고 있다. 사찰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장소가 아니라 점을 보고, 소원지를 쓰고, 호신용 기념품을 파는 일을 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금각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종을 치는 데도 돈을 받고, 점을 보게하고, 소원지를 쓰게하고, 초를 팔고, 차를 파는등 돈 되는 일만을 하고 있었다.

승병들이 사용한 깃발-싸움에 나아가는자는 왕생극락하고 물러나는 자는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금각사에 있는 기원조각

  

 

 

 

그렇치만 일본은 분명히 배울만한 것이 많은 나라이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정성과 일상생활에서 청결함, 친정함, 세밀함, 질서정연함등은 일본인들의 장점이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인도인 친구 나레스는 "일본인들의 몸은 작지만 마음은 거대하다"라고 표현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성격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크기에 같이 만나서 서로 배우면 서로에게 이득이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양국의 젊은 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각 나라를 여행했으면 좋겠다. 일본은 자전거 타기에 여건이 좋으니 자전거 여행을 해보면 좋치 않을까하는 생각이든다. 자전거 여행을 한다면 경비도 절약하고 일본의 시골 인심과 자연을 만끽할수 있으니 젊어서는 한번 해볼만한 여행이겠다. 나도 다음에 일본을 방문한다면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88개의 암자를 순례하는 시코쿠섬 순례를 자전거를 타고 하는것도 시도해 볼만 하다.     

 

 

일본에서 주문한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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