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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함께 보시공덕을 지읍시다 법구경 122번 게송

마땅히 보시해야 할 곳>

 

법구경 122번 게송

 

내게는 업보가 오지 않으리라고 선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금씩 쌓인 선이 큰 선을 이룬다.

 

그것이 내게 닥치지 않는다.’라고 선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리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 어지면 물단지가 가득 차듯

슬기로운 자는 조금씩 조금씩 모운 선으로 가득 찬다.

 

莫輕小善 以爲無福 水滴雖微 漸盈大器 凡福充滿 從纖纖積

막경소선 이위무복 수적수미 점영대기 범복충만 종섬섬적

 

莫輕於小善我不招報』,須知滴水落亦可滿水瓶智者完其善少許少許積

 

Māppamaññetha puññassa: na maṁ taṁ āgamissati.

udabindunipātena udakumbho pi pūrati,

dhīro pūrati puññassa, thokathokam-pi ācinaṁ

 

Think not lightly of good (saying) that ‘it will not come near me’. Even a water-pot is filled by the falling of drops of water. A wise man becomes full of goodness even if he gathers it little by little.

 

 

[인연담]

 

사왓티에서 온 어떤 사람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을 실천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보시에 대해서 들었는데, 보시라는 것은 혼자서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권하여 함께 함으로써 공덕도 짓고 인연도 맺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부처님과 비구 대중에게 자기 집에 오시어 공양을 받아 주십사고 청했다. 승낙을 얻은 그는 집에 돌아와 자기 동네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내일 아침에 부처님과 제자분들께서 우리 동네로 탁발을 오십니다. 여러분들은 물건이나 음식을 준비하여 공양을 올리시오. 그리하여 복도 지으십시오."

이때 그 말을 들은 사람 중에 재산이 아주 많은 빌랄빠다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떤 사람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복을 지으라고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저런 시덥잖은 친구가 있나? 제 능력껏 공양하면 될 것을 가지고 분수없이 많은 수행자를 초대해 놓고서 동네 사람들에게 짐을 떠넘기다니!"

그는 그가 가져온 그릇에 쌀ㆍ버터ㆍ당밀을 아주 조금씩만 넣어 주었다. 그 사나이는 고맙다고 치하하면서 그로부터 받은 물품을 잘 분류하여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재산가 빌랄라빠다까는 자기 몫만 따로 분류해 가는 것은 아마도 그가 자기 집에서 이것밖에 주지 않는다고 소문을 내어 자기를 부끄럽게 만들려는 것이거니 여겼다. 그는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가 자기에게서 가져간 물품을 그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보라고 일렀다.

 

집으로 돌아온 그 사나이는 재산가 집에서 나온 것을 다른 것들과 골고루 섞었고, 누가 얼마를 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심부름하는 사람은 주인에게 돌아가 이 같은 사실을 전했다. 그렇지만 주인은 그 말이 미덥지 않아 다음날 직접 공양을 올리는 곳에 가보았다. 만약 그 사나이가 자기가 공양물을 적게 낸 것을 가지고 흉을 잡는다면 그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칼로 그를 처단해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 부처님과 비구 일행이 공양올리는 장소에 도착하였다. 사나이는 부처님과 비구 대중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고 준비된 음식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음식은 모든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마련한 것입니다. 누가 많이 내고 적게 낸 것이 아닙니다. 이 공양물에는 양이 많고 적음보다는 오직 정성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에는 저희들의 신심과 보시 정신이 깃들어 있으며, 저희는 다만 모두가 평등하게 공덕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이 같은 말을 들은 빌랄라빠디까는 자기가 이 사나이에게 큰 오해를 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같이 착한 사람에게 자기가 나쁜 의심을 지닌 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결국 네 군데 낮은 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랄라빠디까는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사과했다.

"여보, 좋은 친구여. 나는 당신을 나쁘게 생각했었소. 부디 내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오."

이때 부처님께서 그 장면을 보시었다. 부처님은 그 화해가 어떻게 해서 있게 된 것인지를 아신 뒤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래의 제자들이여, 아무리 작은 선행일지라도 계속해서 행하게 되면 마침내 큰 선행으로 발전하리라." 부처님은 다음 게송을 읊었다.

 

이것이 내게 무슨 영향을 미치랴 하여

작은 공덕 짓는 것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조금씩 쌓아 큰 공덕을 만든다.

마치 방울씩 떨어진 물이 큰 독을 채우듯이.

 

부처님의 이 설법 끝에 재산가 빌랄라빠다까는 예류과를 성취하였다.

 

[해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시를 권한 그 사람의 이름은 전하지 않고 마음씨가 고약한 빌랄빠다까의 이름만 전하니 안타깝다. 요즈음도 자기 혼자서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보살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인연담에서 보시를 권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할수도 있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할 때 항상 갈등이 생기게된다. 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사심(私心)이 있으면 반드시 그러하다. "저런 시덥잖은 친구가 있나? 제 능력껏 공양하면 될 것을 가지고 분수없이 많은 수행자를 초대해 놓고서 동네 사람들에게 짐을 떠넘기다니!"라는 뒷소리는 우리가 어디서 듣던 소리다. 이제 부처님이 안계시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보시를 권하는 이는 어떤 보시를 권해야 할까? 사찰을 짓고 건물을 짓는 불사를 해야 할까? 불자가 감소하고 출가자가 감소하여 사찰이 비어가는 데 다시 건물불사를 한다는 것은 어리석다. 이제 불법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전법불사와 수행과 전법을 잘하는 건강한 승가에 보시하는 것이 좋다. 전법불사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경전을 검색하고 사용하도록 모든 경전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불교는 종교가 아니고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부처님은 법칙을 발견한 것이고 우리는 그 법칙을 배우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불교의 법칙은 그 자체가 진리라서 쉽게 접할수 있게 해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고 거기다가 쉽게 설명해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불교는 불교 그 자체가 경쟁력이다. 배우기전에 먼저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고 정기적으로 돈을 낼 필요도 없다. 전법을 하는 공덕은 헤아릴 수 없으므로 불자들은 이렇게 전법하는 곳에 보시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제까지 부처님법을 전승해 왔고 앞으로도 수행과 전법을 이어나갈 건강한 승가를 후원하는 것이다. 현재의 종단은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지 않다. 건강하게 운영된다면 대중공의로 승가를 운영해야하고 집단지성이 발휘되어야 한다. 승려간의 빈부의 차이가 없어야 하고 능력과 소질에 따라 소임이 맡겨져야한다. 이러한 승가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불자들은 모두 꼬삼비불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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