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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선학입문禪學入門 下卷

 

선학입문禪學入門 下卷

3. 색문色門부정관문不淨觀門이라고도 한다(亦名不淨觀門)

21장 구상九想

구상九想이란 첫째 창상脹想, 둘째 괴상壞想, 셋째 혈도상血塗想, 넷째 농란상膿爛想, 다섯째 청어상靑瘀想, 여섯째 담상噉想, 일곱째 산상散想, 여덟째 골상骨想, 아홉째 소상燒想을 말한다. 이 구상을 닦으면 음욕淫慾을 타파할 수 있다. 구상을 닦기 전에 먼저 죽음에 임박한 사람을 관찰한다. 그 사람은 애처롭고 간절하게 말하다가 한번 내쉰 숨이 돌아오지 않으면 사대가 흩어지고 육식이 끊어진다. 그러면 가족들이 놀라고 서러워하며 쫓아가 돌아오게 하려 하지만 방도가 없다. 그때 조금 전에 말하던 사람은 갑자기 어디로 갔는가? 생명이 있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니, 어찌 나만 홀로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곧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죽는 모습을 상상한다. 일심의 삼매로 죽은 시체를 관찰하면 마음에 심히 놀라움과 두려움이 생겨 애착심을 타파할 수 있다. 근기가 예리한 사람은 이런 생각을 마음에 떠올리기만 해도 구상 등의 법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근기가 둔한 사람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성취하지 못하니, 반드시 직접 죽은 시체를 보아야만 비로소 성취할 수 있다.

첫째 창상脹想이다. 수행자는 죽은 시신이 마치 바람을 잔뜩 불어 넣은 가죽 주머니처럼 팽팽하게 불어나서 본래의 모습과 달라진 것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몸이 살아 있을 때는 자태와 용모가 곱고 아름다우며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고 지혜로워 사람들이 한 번만 보고도 사랑하고 기뻐하는 마음을 가졌다. 지금은 이렇게 부풀어 올라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으니, 그 좋던 것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겨 놓고 살펴보면 애착할 만한 곳이 과연 어디 있겠는가.

禪學入門下卷

月窓居士金大鉉述

伊齋居士劉敬鍾校

第三色門亦名不淨觀門

九想第二十一章

九想者一脹想二壞想三血塗想

膿爛想五靑瘀想六噉想七散想

骨想九燒想修此九想者能破婬慾

九想之前先觀方死之人言辭哀切

息出不反四大還散六識泯絕室家

驚慟追還無路俄者能言奄忽何之

有生之所不免我豈能獨不然哉如是

思惟即以我所愛人作此死想一心

三昧觀此死尸則心甚驚畏能破愛

著心也利根者懸心存想九種等法

而可得成就若鈍根者懸想不成

必須親見死屍方可成就

第一脹想者行者見死屍肨脹如韋

囊盛風異於本相矣此身生時姿容

夭嵋視聽聰慧令人一見心生愛悅

今但肨脹男女之相猶不可辨好在

何處以此移觀於我所愛著之人則何

 

 

또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사실들을 면할 수 없다.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는 사대는 자성이 없고 오음은 모두 헛된 법으로서, 허망한 식에 이끌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업을 따라왔다가 연이 다하면 흩어지니, 지금 이 한 덩어리의 찬 고깃덩이는 나무나 돌과 다를 게 없고, 하나의 이 가죽 주머니는 참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다. 내가 어찌 탐하고 애착해 온갖 악업을 짓겠는가?”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세간의 탐욕과 애착을 제거할 수 있다.

둘째 괴상壞想이다. 수행자는 다시 죽은 시신이 바람에 불리고 햇볕에 쬐여 갈가리 찢긴 채 땅바닥에 놓여 있고, 썩은 물이 넘쳐흘러 악취가 진동함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이와 같이 똥주머니요 냄새나는 자루인데 얇은 가죽으로 겉을 싼 것일 뿐이다. 지금 이런 모습은 본래 스스로 이러한 법이니, 내가 애착하는 것은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또 나 자신을 살펴보아도 역시 이와 같을 뿐이다.”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된다.

셋째 혈도만상血塗漫想이다. 시신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나면 곳곳에서 고름과 피가 넘쳐흐르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한 군데도 깨끗한 곳이 없다. 냄새나고 더럽고 추하게 부풀어 올라 가까이 할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친근하게 애착하던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또 나 자신을 살펴보아도 이러한 법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넷째 농란상膿爛想이다. 시일이 점차 지남에 따라 (시신의) 아홉 구멍에서는 고름이 흘러나오고 구더기들이 온몸을 뒤덮으며, 썩은 물이 뚝뚝 땅에 떨어지고 악취는 더욱 심해진다.

아름답던 용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 몸이나 그대의 몸은 모두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다섯째 청어상靑瘀想이다. (시신에) 황적색의 어혈이 지고 혹은 검푸르게 변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놀랍고 두려우며 냄새를 맡으면 가까이 할 수가 없다.

두 뺨에 빛나던 아름다움과 얼굴의 광택은 잠깐 피었다가 지는 봄꽃과 같은 것으로 본래 너의 것이 아니었구나.

 

處可著又觀自己亦所不免今我身

四大無自性五陰皆妄法駕御妄

而爲視聽爲言動爲愛惡隨業而

緣盡而散今此一塊冷肉無異木

一顆韋囊甚可厭惡我何貪愛

諸惡業一心三昧則可除世間貪愛也

第二壞想者行者復觀死尸風吹日曝

裂壞在地臭穢盈流惡露已現我所

愛者亦應如此屎囊臭帒薄皮外裹

今日此相本自是法我所愛著何其

愚也又觀自己亦復如是一心三昧

則貪愛自除也

第三血塗漫想者旣見破壞處處膿血

流溢從頭至足無一淨處臭穢肨脹

不可親近我所愛者亦應如此我嘗

欲狎近親著者正在何處又觀自己

未脫此法一心三昧則貪愛自除也

第四膿爛想者日漸經久九孔膿出

蛆蟲被軆處處壞爛滂沱在地臭氣

轉增好容美貌今何所在我身及汝

皆是此法一心三昧則貪愛自除也

第五靑瘀想者或爲黃赤瘀或變黑靑

見其形則可驚可怖聞其臭則難近

難親雨頰韶華一面光澤暫如春花

 

 

나는 어찌 어리석게도 저런 색에 속아 미혹했을까? 너의 몸과 내 몸은 모두 이런 법이었구나.”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여섯째 담상噉想이다. (시신을) 새와 짐승이 뜯어 먹거나 구더기가 갉아 먹어 문드러지니 피부와 살이 벗겨지고 뼈마디는 산산이 흩어진다.

지난날에는 화려한 화장과 산뜻한 장식으로 위의가 단아했는데, 지금 보니 거짓으로 겉만 꾸며 자태를 헛되이 과장한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본래 애착할 만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이와 같이 그 사랑하던 사람과 자기 자신을 생각하여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일곱째 산상散想이다. 세월이 점차 오래 지남에 따라 시신의 형체가 부서져 흩어지니, 힘줄은 끊어지고 뼈는 분리되며 또한 머리와 발이 서로 뒤엉킨다.

내가 애착하던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스스로 내 몸을 생각해 보아도 어찌 또 이렇게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여덟째 골상骨想이다. 피부와 살은 이미 다 없어지고 백골만이 보이는데, 혹은 기름과 피로 더럽혀져 있거나 혹은 흰 마노나 조가비처럼 하얗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은 부드럽고 따뜻해 서로 닿으면 즐거웠는데, 지금 이 해골을 보니 기와나 돌과 다를 것이 없다. 보면 두렵고 닿으면 섬뜩하니 네 뼈의 모습이 본래 이런 것이었구나. 나는 어찌 이다지도 우매해 탐닉하고 또 탐닉하며 버리지 못하였던가. 스스로 내 몸을 생각해 보아도 또한 이러한 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렇게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이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아홉째 소상燒想이다. 시신은 불에 태워지거나 매장된다. 불에 태워질 때는 나무가 모두 타서 불이 꺼지면 형체가 재나 흙과 같아지고, 매장하면 살이 썩고 뼈가 녹아서 마침내 닳아 없어져 버린다.

너는 평소에 목욕하고 향수를 뿌리며 꽃가루로 곱게 단장하였고, 보드랍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좌우를 돌아보며 아첨하여

 

本非汝有我何愚迷誑惑彼色汝身

與我皆應此法一心三昧則貪愛自

除也

第六噉想者或爲鳥獸之挑破或爲蟲

蛆之唼爛皮肉脫落骨節解散前日

盛粧淡飾威儀端雅以今觀之假借

外飾虛張姿態細審何處本有可愛

以此想彼所愛及於自己一心三昧

則貪愛自除也

第七散想者歲月漸遠身形破散

銷骨離頭足交橫我所愛者人相何

自念我身亦豈不然一心三昧

貪愛自除也

第八骨想者皮肉已盡但見白骨

或爲膏血染汚或潔白如珂貝我所愛

柔輭溫煖相觸可樂今觀觸髏

異瓦石見之可畏觸之可厭汝之骨

本自如此我何愚昧耽耽不捨

念我身亦是此法一心三昧則貪愛

自除也

第九燒想者死尸或以火燒或以埋葬

火燒而薪盡火滅則形同灰土埋葬而

肉腐骨銷則終歸磨滅汝之平日

浴香熏華粉嚴飾輭細肥滑顧眄謟

 

 

사람들을 미혹하게 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으니 마침내 어느 곳에 있는 것인가? 나와 너는 모두 이런 법이니 본래 이 몸은 없는 것이요, 필경에도 이 몸은 없는 것이다. 그 동안의 헛된 속임수는 모두 망령된 마음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관찰하여 일심의 삼매에 들면 탐욕과 애착은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사람이 막 죽으려 할 때를 관찰해 보면 동작과 언어가 잠깐 사이에 갑자기 사라지며 무너지고 흩어져 제각기 변해 버리니 이것이 곧 무상이다. 만일 이 몸에 집착한다면 무상하게 무너질 때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만일 무상함을 알고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곧 내가 아님(非我)’을 관찰해야 한다. 몸이 더럽다는 것을 알고, 몸이 무상하다는 것을 알고, 몸이 괴로움이란 것을 알고, 몸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 알면 곧 세간의 어떤 법도 즐거워하거나 집착할 만한 것이 없게 된다.

음식이 입안에 있으면 뇌에 있는 점액이 아래로 흘러 침과 화합해 맛을 내고 목구멍으로 삼키지만, 배에 들어가면 곧 똥이 되니 이 음식은 더러운 것이다. 몸 또한 무상하여 찰나찰나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즐거움을 혐오하고 번뇌는 끊어야 할 것임을 알아 마음에 안온한 적정을 얻고 마음을 오로지해 도에 들어간다.

22장 팔념八念

팔념八念이란 첫째 염불念佛, 둘째 염법念法, 셋째 염승念僧, 넷째 염계念戒, 다섯째 염사念捨, 여섯째 염천念天, 일곱째 염입출식念入出息, 여덟째 염사念死이다.

이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반연하는 가운데 생각하면서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만일 수행자가 구상을 수행하여 바깥 사물의 더러움을 알고서 그 몸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면 곧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 더러운 똥오줌으로 가득 찬 냄새나는 가죽주머니를 가지고 스스로 쫓아다니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 깜짝 놀라고 두려워 온몸의 털이 곤두서거나 또는 악마가 찾아와 공포를 일으켜 도를 파괴하려고 할 것이다. 그럴 땐 팔념을 수행하여 두려움을 제거해야만 한다.

 

令人迷惑今皆磨滅竟何所在

及與汝都是此法本來無此身畢竟

無此身其間虛誑盡屬妄心以此觀

一心三昧則貪愛自除也

夫觀人將死動轉言語須臾間奄然已

而爛壞分散各各變異是即無常

若著此身無常壞時豈不苦哉若知無

不得自在則非我也知身不淨

身無常知身是苦知身無我則世間

諸法無可樂著處食在口中腦涎流

與唾和合成味而咽入腹即爲糞

是食不淨也身旣無常念念變易

是以厭世間樂知煩惱斷心得安隱寂

專心入道也

八念第二十二章

八念者一念佛二念法三念僧四念

五念捨六念天七念入出息八念

念者一心緣中憶持不忘失也

行者修九想外不淨而厭患其身

作是念我今云何將是不淨屎尿臭囊

以自隨逐爾時嗇然驚怖擧身毛竪

或爲惡魔來作恐怖欲令破道當行

八念以除怖畏

 

 

염불念佛을 설명하겠다. (수행자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삼십이상三十二相1)·팔십종호八十種好2)·대자대비大慈大悲·십력十力3)·사무소외四無所畏4)·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5)·지혜 광명과 무량한 신통을 갖추시고 시방의 일체중생을 제도하시는 분이 바로 나의 큰 스승이시다. 이런 분이 나를 보호하고 염려해 주시는데 내가 다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염법念法을 설명하겠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불법은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으로서 사람들이 모든 뜨거운 번뇌를 제거하고 좋은 곳에 이르게 한다. 내가 이런 법을 닦고 있는데 다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염승念僧을 설명하겠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성문승聲聞僧·벽지불승辟支佛僧·보살승菩薩僧, 이와 같은 삼승의 성자들은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로서 신통과 지혜가 한량없고, 고난을 구원하며 중생을 제도해 해탈시키는 분들이다. 이들이 나의 참다운 벗들인데 다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염계念戒를 설명하겠다. 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율의계律儀戒6), 다른 하나는 정공계定共戒7)이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계율을 지켜 선은 보호하고 악은 방지하고 있다. 나는 선정을 닦고 있으니 분명 평안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염사念捨를 설명하겠다.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보시를 베푸는 것이요, 또 하나는 번뇌를 버리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항상 재물과 법을 베풀고 모든 번뇌를 버린다. 이러한 공덕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염천念天을 설명하겠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저 천신들은 모두 옛날에 계를 닦고 보시를 베풀어 선근을 잘 길렀기 때문에 지금 쾌락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항상 계를 닦고 보시를 행하여 널리 복의 밭을 가꾸고 있으니 나중에 분명 저 천계에 태어날 것이다. 다시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일심으로 되새기면 공포가 곧 사라진다.

 

念佛者當念三十二相八十種好

慈大悲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法

智慧光明神通無量能度十方一切衆

是我大師護念於我我復何畏

心憶念恐怖即除也

念法者當念佛法善巧使人除諸熱惱

能到善處我修是法復何所畏一心

憶念恐怖即除也

念僧者當念聲聞僧辟支佛僧菩薩

如是三乘聖衆眞佛弟子神智無

能救苦難度脫衆生是我眞伴

何所畏一心憶念恐怖即除也

念戒者戒有二種一曰律儀戒二曰

定共戒當念我修戒律護善遮惡

修禪定當得安樂當何所畏一心憶

恐怖即除也

念捨者捨有二種一曰施捨二曰煩

惱捨當念我常捨財捨法捨諸煩惱

有是功德我何所畏一心憶念恐怖

即除也

念天者當念彼天皆因往昔修戒捨

養得善根今受快樂我常修戒行

廣治福田後應生彼復何所畏

心憶念恐怖即除也

 

 

염아나파나念阿那波那를 설명하겠다. 십육특승법에 의거하여 오롯한 마음으로 (호흡을) 세고 따르면 육식六識이 근으로 돌아와 바깥 경계를 반연하지 않으므로 공포가 저절로 사라진다.

염사念死를 설명하겠다.

죽음에는 자연히 죽는 경우가 있고, 다른 사람으로 인해 죽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죽는 법은 항상 이 몸을 따라다니니, 다른 사람이 죽이지 않는다면 분명 자연히 죽을 것이다. 조만간에 반드시 죽을 몸인데 두려워해서야 되겠는가?”

이와 같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일심으로 죽음을 되새기면 공포가 저절로 사라진다.

또한 팔념을 잘 닦으면 차례대로 수행하여 도에 들어갈 수도 있고, 하나하나의 염으로써 각기 도에 들어갈 수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차례대로 수행하는 것인가? 수행자가 번뇌의 병에서 해탈하고자 하면 먼저 부처님은 뛰어난 의사와 같음을 생각하고, 법은 좋은 약과 같음을 생각하고, 스님들은 환자를 돌보는 사람과 같음을 생각하고, 계는 음식을 가리고 삼가는 것과 같음을 생각하고, 버림은 보양하는 것과 같음을 생각하고, 하늘은 몸의 병에 차도가 있는 것과 같음을 생각해야 한다. 아나파나를 생각해 선정을 일으키고, 죽음을 생각하면 무상과 사제를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잘 생각하여 삼계의 병이 다 없어지면 곧 성스러운 도를 얻게 된다.

하나하나의 염으로써 각기 도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컨대 염불은 곧 염불삼매로 도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염법에서는 사제·십이인연·육바라밀·중도실상 등이 모두 도에 들어가는 법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도 이것을 예로 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23장 십상十想

십상十想이란 첫째 무상상無常想, 둘째 고상苦想, 셋째 무아상無我想, 넷째 식부정상食不淨想, 다섯째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 여섯째 사상死想, 일곱째 부정상不淨想, 여덟째 단상斷想, 아홉째 이상離想, 열째 진상盡想이다.

 

念阿那波那者依十六特勝法精心數

則六識歸根外境不緣恐怖自除

念死者有自死者亦有因他死者

二種死法常隨此身若非他殺亦應

自死早晩必死之身何足生怖如是

安心一心念死恐怖自除也

復次善修八念可以次第修行而入道

亦可以一一念各得入道云何次第修

行者欲求解脫煩惱之病先當念佛

如醫王念法如良藥念僧如瞻病人

念戒如禁忌飮食念捨如將養念天如

身病少差念阿那波那使發禪定

即悟無常四諦如是善念三界病

即得聖道也云何一一念各得入

如念佛三昧入道之相念法若四

十二緣六波羅蜜中道實相皆是

入道之法下六條例此可知也

十想第二十三章

十想者一無常想二苦想三無我想

四食不淨想五一切世間不可樂想

死想七不淨想八斷想九離想十盡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법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견도見道,8) 둘째는 수도修道,9) 셋째는 무학도無學道10)이다.

괴법壞法을 닦는 사람은 간혜지乾慧地11)에서 구상九想을 갖춰 모든 번뇌를 굴복시키고 나서는 무상··무아 등의 세 가지를 생각하는 관을 닦아야 한다. 그리하여 육십이견六十二見12)의 전도된 법을 타파하고 견도에 들어가 초과初果(수다원과)를 얻는다. 수다원須阤洹13)이나 사다함斯陁含14)은 식부정상食不淨想·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사상死想·부정상不淨想 등의 네 가지 생각을 닦음으로써 사유에 의한 미혹을 끊고 수도에 들어가서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한다. 아나함阿那含15)은 단상·이상·진상 등의 세 가지 생각을 닦아 색계와 무색계의 애착을 끊고 벗어나 무학도에 들어가서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다.

첫째는 무상상無常想이다. 일체의 유위법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고 소멸하는데 이것은 모두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또한 증가하거나 누적되지도 않는다. 생겨날 때에는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는 가는 곳이 없다. 그러므로 무상이라 한다.

모든 중생은 가라라歌羅邏 때부터 몸과 마음이 생멸하고 변화해 늙어 죽을 때까지 잠시도 정지하는 순간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일체의 유위법은 모두 생겨나 머물다가 변하여 소멸하는 네 가지 모습을 따라 변천하기 때문이다. 생겨났다 싶으면 이내 그 생겨난 모양이 달라지고, 머물러 있다 싶으면 이내 그 머물러 있는 모양이 달라지며, 소멸하는가 싶으면 이내 그 소멸의 상태가 달라진다. 이와 같이 변하고 바뀌며 잠시도 머물러 쉼이 없으니, 이것이 곧 중생의 무상함이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16)

대지와 초목 모두 닳아 없어지고

수미산 무너지고 큰 바다 또한 말라 버리며

모든 천신 머무는 곳 모두 불타 사라지는

이럴 때 세계의 어느 곳이 영원한가.

이것이 바로 세계의 무상함이다.

수행자는 생겨날 때 머묾과 소멸이 없고 또한 생겨남을 떠나서도 머묾과 소멸이 없다는 것을 관찰해야 한다. 만일 생겨날 때 이미 머묾과 소멸이 있다고 한다면 생겨남이라는 모습이 허물어진다. 또 만일 생겨남을 떠나서 머묾과 소멸이 있다고 한다면 세 가지 모습이 모두 허물어진다. 따라서 생겨남을 떠나면 소멸될 것도 없어서 네 가지 모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佛敎諸法有三種次第一曰見道

曰修道三曰無學道如修壞法者

乾慧地已具九想伏諸結使應修無

常苦無我等三想觀以破六十二見顚

倒法而入見道中得初果也如須阤洹

斯陁含人修食不淨不可樂及死想不

淨等四想以斷思惟惑入修道中

阿那含果也如阿那含人修斷離盡等

三想斷離色無色愛入無學道證阿

羅漢果也

第一無常想者觀一切有爲法新新生

皆由因緣亦不增積生時無所從

滅時無所去處故名無常一切衆

從歌羅邏以來身心生滅變易

至老死無暫停時所以者何一切有

爲法悉屬生住異滅四相遷變方生

異生方住異住方滅異滅如是變易

無暫停息是爲衆生無常也如偈云

大地草木皆磨滅須彌巨海亦崩渴

天住處皆燒盡爾時世界何處常是爲

世界無常也行者當觀如生時無住滅

又離生而無住滅若言生時已有住滅

則生相壞矣若言離生而有住滅則三

相皆壞矣故知離生則滅無所滅

 

 

만일 네 가지 모습이 없다면 무상 또한 얻을 수 없으며, 만일 무상을 얻을 수 없다면 곧 성스러운 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무상상을 닦는 것이다.

둘째는 고상苦想이다. 무상하게 변천하는 일체법을 관찰해 보면 바로 고통의 모습이다. 왜 그런가? 안의 육정六情(六根)과 밖의 육진六塵이 화합하여 육식六識이 생기며, 육식에서 세 가지 느낌이 생긴다. 첫째는 괴로운 느낌(苦受)이고, 둘째는 즐거운 느낌(樂受)이며, 셋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捨受)이다. 이 세 가지 느낌 가운데서 생····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구해도 얻지 못함·싫어하는 사람과의 만남·오음의 치성함 등 여덟 가지 괴로움에 핍박당하므로 괴로운 느낌이라 한다. 감정에 거슬리는 모든 일을 괴로움이라 하고, 감정에 순응하는 모든 일을 즐거움이라고 한다. 그러나 탐욕과 집착을 일으키면 그 대상이 무상하게 무너질 때 현세에서 많은 괴로움을 받고, 후세에서는 나쁜 과보를 받게 된다. 이로써 즐거움 역시 괴로움임을 알 수 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란 비록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아 괴로움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지만 이치에 있어서 무상하게 변천하며 핍박하니, 이것 또한 괴로움이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삼계 가운데에서 즐거워할 만한 것을 찾아볼 수 없어 탐욕과 집착을 내지 않고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것을 고상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셋째는 무아상無我想이다. 유위법을 관찰해 보면 모두 괴로운 모습이니, 오음이 모두 괴로움인 것과 같다. 괴롭다면 자재하지 못한 것이며, 자재하지 못하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음·십이입·십팔계의 모든 법은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겨나 자성이 없으므로 그 법 가운데서는 나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그 법들을 여의고 나를 찾아본다고 해도 더더욱 찾을 수 없다. 그 법에서도 그 법을 떠나서도 찾을 수 없으므로 일체의 모든 소견과 집착을 버린다. 그리하여 마음에 아무것도 취하지 않으면 곧 해탈을 얻는다. 이것을 무아상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위의 세 가지 상은 아래에서 설명되는 고제苦諦를 참고하라.

대개 무상이면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이면 곧 자아가 없는 것이다. 진실로 무상함을 알면 삼계의 괴로움에 집착하지 않으며, 삼계의 괴로움과 자아가 없다는 것을 알면 세간을 버리는 것이다.

 

四相不可得若無四相則無常亦不可

若無常不可得則可見聖道是爲

修無常想也

第二苦想者觀一切法無常遷變

是苦相何以故內六情外六塵和合

而生六識六識中生三種受曰苦受

樂受捨受是三受中生老病死恩愛

別離求不得怨憎會五陰盛等八苦

逼切故名苦受也一切違情事謂之

一切順情事謂之樂然若生貪著

則無常敗壞現受衆苦後受惡報

知樂亦是苦也捨受雖不取不棄

覺苦樂然理則無常遷逼亦是苦也

如是觀時三界中不見可樂不生貪著

心生厭畏是名修苦想也

第三無我想者觀有爲法皆是苦相

如五陰皆苦苦則不自在不自在則非

五陰十二入十八界諸法皆從緣

而無自性故即其諸法中求我不

可得又離其諸法而求我尤不可得

於即於離俱不可得故捨一切諸見執

而心無所取便得解脫是名修無

我想右三想與下苦諦叅看蓋無常即是苦苦即是

無我苟知無常不取三界苦知三界

 

 

또한 무상상을 닦으면 혐오하는 마음이 생기고, 고상을 닦으면 두려움이 생기며, 무아상을 닦으면 해탈을 얻게 된다.

넷째는 식부정상食不淨想이다. 수행자가 비록 무상···무아를 알았더라도 음식에 대해 여전히 탐욕과 집착을 금할 수 없다면 이 식부정상을 닦아 대치해야 한다. 이 음식을 잘 생각해 보면 모두 더러운 인연으로부터 온 것이다. 예를 들어 고기는 고름과 벌레가 우글대는 곳이고, 젖은 피가 변해서 된 것이다. 그것들의 시작은 더러운 것에서 생기는 것이고, 그 결말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다. 밥은 흰 벌레와 마찬가지고 국은 똥물과도 같다.

또한 음식이 만들어질 때는 요리사가 만져 때와 땀이 묻었고, 입으로 들어가면 뇌에서 수액이 흘러내려 화합하여 맛을 내는데 그 모양은 토해 놓은 것과 같다. 배 속에 들어가서 창자를 채우면 지대로 인해 유지되고, 수대로 인해 적셔지며, 풍대로 인해 움직이고, 화대로 인해 지져지니, 마치 가마솥에서 음식물을 익히는 것과 같다. 그러고 나면 맑은 것은 오줌이 되고 탁한 것은 똥이 된다. 허리에 세 개의 구멍이 있는데 바람이 불어 고름과 즙을 백 개의 맥으로 흩어지게 하면 피와 화합하여 엉겨서는 살로 변하고, 새살에서는 기름이 나온다. 이러한 인연으로 신근身根이 생기고, 신근으로부터 오정근五情根이 생기며, 오근으로부터 오식이 생기고, 차례로 의식이 생겨 모양을 분별해 취하고는 아름답고 추함 등을 마음대로 헤아린다. 그런 뒤에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등의 온갖 번뇌를 일으키며 이 번뇌로 말미암아 모든 악업을 짓는다. 음식의 본말 인연이 이처럼 갖가지로 더러운 것임을 관찰하면, 안의 사대와 밖의 사대가 다르지 않은데 단지 아견의 힘 때문에 나의 것이라고 헤아렸던 것임을 알게 된다.

수행자는 이와 같이 관찰할 때 이 음식이 바른 직업으로 벌어서 공양한 것인지 삿된 직업으로 벌어서 공양한 것인지도 생각해야 하며,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수고와 온 곳의 옳고 그름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음식이 된 생명체가 사로잡힐 때 두려움과 죽음을 당할 때의 원통함과 고통도 생각해야 하며, 이 음식이 배 속에 들어가면 이로울까 해로울까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내가 이것을 탐내고 집착하면 지옥이나 아귀, 축생 가운데 떨어져 뜨거운 쇠구슬을 삼키거나 더러운 똥을 먹어야 하리라.”라고 생각해야 한다.

 

苦無我則捨世間矣復次修無常想生

厭患苦想生怖畏無我想得解脫也

第四食不淨想者行者雖知無常苦空

無我而猶於飮食不禁貪著當修此

以爲對治諦想此食俱從不淨因

緣中來如肉是膿蟲住處乳是血變所

其始也由不淨其終也爲爛膿

似白蟲羹如糞汁且造成時厨人執

汗垢所著若入口中腦涎流下

合成味其狀如吐入腹充膓地持水

風動火煑如釜熟物淸者爲尿

者爲屎腰有三孔風吹膿汁而散布

百脉與血和合凝變爲肉從新肉生

脂膏以是因緣生身根從身根生五

情根從五根生五識次第生意識

別取相籌量好醜然後生我我所心等

諸煩惱由是煩惱造諸惡業觀食如

是本末因緣種種不淨即知內四大與

外四大無異而但以我見之力計爲我

有矣行者如是觀時又念此食之所

從來是正命是邪命又念作者勤苦

來處曲直又念物命見擒怖畏臨死

寃苦又念此食入腹利害又念若我

貪著當墮地獄餓鬼畜生之中呑熱鐵

 

 

이렇게 관찰하면 싫어하는 생각이 자연히 생겨서 음식을 혐오하게 되므로 오욕도 줄어들게 된다. 이것이 식부정상을 닦는 것이다.

다섯째는 일체세간불가락상一切世間不可樂想이다. 수행자가 만약 세간의 색욕, 기름진 음식, 권속, 친구와 무리, 집과 토지, 사업 등을 떠올리며 좋은 것이라 생각하게 되면 나쁜 생각(惡覺)17)이 그치지 않아 도를 닦는 데 방해가 된다. 따라서 중생치고 여덟 가지 괴로움의 걱정을 면하는 자가 없다. 어찌 탐내고 집착할 수 있겠는가.”라고 관찰한다.

또 다음과 같이 관찰한다.

중생들은 탐욕이 많기 때문에 삿되고 바른 것을 가리지 못하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알지 못한다. 성냄이 심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악도에 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리석음이 깊기 때문에 도리에 맞지 않는 방법으로 구한다. 혹은 높고 낮음도 알지 못하고, 혹은 은혜와 의리도 알지 못하며, 혹은 인색하고 욕심 많고 교만하며 질투하고 사납다. 아첨하고 속이고 헐뜯고 해치며 사견을 가지고 바른 길을 믿지 않는다. 죄업이 많기 때문에 오역죄를 짓고 삼보를 공경하지 않으며 착한 사람을 경멸한다. 대부분 세간 중생들은 착한 사람은 적고 나쁜 사람이 많으며, 세간의 국토 또한 괴로운 곳은 많고 즐거운 곳은 적다. 죄를 짓는 사람은 많고 복을 닦는 사람은 적으며, 허물을 늘리는 곳은 많고 복을 더하는 곳은 드물다. 또한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오고 질병과 고통이 이어지며, 나쁜 경우가 날로 닥치고 나쁜 것이 항상 틈을 엿보는 등 견디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욕계를 깊이 살펴보면 나쁜 일이 이와 같아 즐거워할 곳이 없다. 나아가 색계와 무색계도 비록 이보다 낫기는 하지만 과보가 다해 사대가 제각기 흩어질 때면 근심과 고통이 역시 심하니, 이것 역시 생사의 윤회일 뿐 해탈은 아니다. 그러므로 경전에는 삼계는 불타는 집과 같아 편안함이 없으며 온갖 괴로움들로 가득하니 매우 무섭고 두렵다’18)고 하였다.”

만약 항상 이와 같이 관찰한다면 싫어해 벗어나려는 마음이 깊이 일어나 애착하는 것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세간불가락상을 닦는 것이다.

여섯째는 사상死想이다. 수행자는 도를 닦다가 게으른 마음이 생겨 번뇌를 끊을 수 없을 땐

 

噉食糞穢如是觀食則厭想自生

因厭食故五欲亦薄是修食不淨想也

第五一切世間不可樂想者行者若念

世間色欲滋味眷屬親黨田宅事業

而生樂想則惡覺不息有妨於道

觀衆生無有能免八苦之患者何可貪

復觀衆生以貪欲多故不擇邪正

不知淨穢以瞋恚重故不受佛敎

畏惡塗以愚痴深故所求不以道理

或不識尊卑不識恩義或慳貪驕慢

嫉妬狠戾謟誑讒賊邪見無信以罪

業多故造作五逆不敬三寶輕蔑善

蓋世間衆生善者少惡者多世間

國土苦處多樂處少又造罪者多

福者少增過處多增福處少又寒熱

相代病苦相仍惡境相侵惡物相窺

以至多有難堪處深觀欲界惡事如此

旣無可樂處乃至色界無色界雖勝於

然果報盡而四大壞時憂苦亦甚

且在輪廻終非解脫是故經云三界

無安猶如火宅衆苦充滿甚可怖畏

若常如是觀則深生厭離無所愛著

是爲修世間不可樂想也

第六死想者行者修道有懈怠心

 

 

이 몸은 죽어 없어진다는 생각을 닦아야 하니, 사람의 목숨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되느냐?” 그러자 어떤 이는 한 해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한 달입니다.” “하루입니다.”라고 대답하며, 나아가 어떤 이는 밥 한 그릇 먹을 동안입니다.”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모두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어떤 비구가 저는 숨을 내쉴 때 들이쉴 것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매우 훌륭하다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참으로 사상을 닦는 것이며, 참으로 방일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사상을 닦을 줄 안다면, 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게으름의 적을 무찌르고 일체의 선법이 항상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이것을 사상을 닦는 것이라 한다.19)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것을 진실로 안다면 일찍 죽으나 늦게 죽으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저절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구차한 생각도 없어지며 오직 이치에 따를 뿐이다. 또한 무상함은 너무나 빨라서 이와 같이 보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면 공부를 잠시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또한 한번 죽으면 순식간에 세간을 버린다는 것을 알면 탐욕과 성냄, 나와 너를 따지는 시비를 저절로 마음에 두지 않게 되기 때문에 쉽게 해탈할 수 있다.

일곱째는 부정상不淨想이다. 통명관에서처럼 몸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과 다섯 가지 더러움 등의 법을 보는 것이다.

여덟째는 단상斷想, 아홉째는 이상離想, 열째는 진상盡想이다. 열반을 인연하여 (중생의 몸과 마음을) 결박하고 부리는 번뇌를 끊기 때문에 끊는 생각(斷想)이라고 하고, 결박하고 부리는 번뇌를 벗어나 무루를 얻기 때문에 벗어나는 생각(離想)이라고 하며, 결박하고 부리는 모든 번뇌를 없애 오음이 다시는 상속되지 않기 때문에 다하는 생각(盡想)이라고 한다.

24장 팔배사八背捨

배사背捨 이하 여섯 법문20)은 모두 불괴법不壞法에 속한다. 불괴법에는 네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관찰하는 선이고, 둘째는 단련하는 선이고, 셋째는 훈숙하는 선이고, 넷째는 정교하게 가다듬는 선이다. 배사·승처·일체처의 세 가지 문은 모두 관찰하는 선(觀禪)에 속하고, 구차제정은 단련하는 선(鍊禪)이며, 사자분신삼매는 훈숙하는 선(熏禪)이고, 초월삼매는 정교하게 가다듬는 선(修禪)이다.

 

能斷漏應修死無想言人命不可恃也

如佛問諸比丘人命在幾何對曰一歲

不可期或言月日乃至一食頃佛皆

不許有一比丘白佛言我於出息

保入息入息不保出息佛言善哉善哉

是眞修死想者是眞不放逸行若能如

修死想者當知是人破懈怠賊

切善法恒得現前是名修死想也

知生必有死則早晩一也自無畏死之

自無苟且之懷惟其順理而已

知無常迅速如是不可保則工夫不可

一念懈怠又知一死頓捨世間則貪欲

瞋恚人我是非自不上心故易得解

脫也

第七不淨想如通明觀見身三十六物

五種不淨等法是也第八斷想第九離

第十盡想者緣涅槃斷煩惱結使

故名斷想離結使得無漏故名離想

盡諸結使五陰不復相續故名盡想也

八背捨第二十四章

從背捨以下六種法門並屬不壞法

不壞法有四意謂觀鍊熏修也1)[3]

勝處一切處三門並屬觀禪九次第

即是鍊禪師子奮迅即是熏禪

 

 

팔배사八背捨란 내유색상외관색內有色相外觀色·내무색상외관색內無色相外觀色·정배사신작증淨背捨身作證·허공처배사虛空處背捨·식처배사識處背捨·불용처배사不用處背捨·비유상비무상배사非有想非無想背捨·멸수상배사滅受想背捨이다.

배사란 정결한 오욕(淨潔五欲)마저 등지고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사를 이루면 해탈을 얻는다. 욕계의 빛깔·소리·냄새··촉감은 거칠고 피곤하게 하는 법인데, 이 법에 탐착하여 삼악도에 빠지는 것을 더러운 오욕(不淨五欲)이라 한다. 욕계정·사선·사공정에 맛 들여 집착을 일으키는 것을 정결한 오욕이라 한다. 이 법은 능히 정결한 오욕마저 등지고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 배사를 설명하겠다. 안팎21)의 색을 무너뜨리지 않고, 안팎으로 색의 모습을 소멸시키지도 않은 채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색을 관찰한다. 이것을 초배사初背捨라고 한다. 왜 그런가? 중생에게는 애행愛行과 견행見行의 두 가지 결박하고 부리는 번뇌가 있다. 애착이 많은 사람은 즐거움의 집착에 묶이는 경우가 많아 밖의 번뇌에 속박되므로 바깥 몸을 더럽다고 관함을 닦아야 한다. 소견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내 몸이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여 안의 번뇌에 속박되므로 자신의 몸을 더럽다고 관함을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배사관背捨觀을 닦는 것이다.

수행자의 번뇌는 대부분 안에서 먼저 일어나므로 안의 관찰이 이루어진 뒤에 더럽다는 마음으로 밖을 관찰한다. 어떻게 안을 관찰하는가? 수행자가 몸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엄지발가락을 잘 관찰해 보면 마치 크고 통통한 검은 콩처럼 생각되고, 또 누에와 같은 모양으로 생각된다. 이런 모양이 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다시 불어나 배콩만큼 커지고 또 계란만큼 커지는 것을 생각한다. 이어서 모든 발가락과 발바닥까지 보고, 다음엔 오른쪽 다리도 이와 같이 관찰한다. 이어서 차례로 온몸을 두루 보는데 사지와 배와 등과 모든 마디와 모든 구멍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불어나는 것을 본다. 머리에서부터 발에 이르고 발에서부터 머리에 이르며 온몸을 돌아가며 관찰하는데,

 

越三昧即是修禪也

八背捨者一內有色相外觀色二內

無色相外觀色三淨背捨身作證

虛空處背捨五識處背捨六不用處背

七非有想非無想背捨八滅受想背

背捨者背是淨潔五欲捨是著心

言背捨成而得解脫也欲界麤弊色聲

香昧觸貪著是法沉沒三塗者名爲

不淨五欲欲界定四禪四空中生味著

名爲淨潔五欲此法能背淨潔五

捨是著心也

第一背捨者不壞內外色不內外滅色

已是不淨心觀色是名初背捨

以者何衆生有愛行見行二結使愛多

樂著多縛爲外結使故修觀外身

不淨見多者多著身見爲內結使

觀內身不淨故修背捨觀行者多先從

內起內觀旣成然後以不淨心觀外

云何觀內行者端身正心諦觀足大拇

想如大豆脹黑亦如脚蠒之相

此相成復想脹起如梨豆大如鷄卵大

次觀諸指及於脚心次觀右脚亦復如

次次至於遍身四肢腹背諸節諸

處處腫脹從頭至足從足至頭

{}

 

 

부르터서 불어나는 것만 보며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다음에는 무너지는 모습을 관찰한다. 썩어 문드러지고 피로 더럽혀지며 벌레와 고름이 흘러나오고, 배가 터져 모든 내장이 드러난다. 이와 함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은 냄새나고 문드러지고 더럽다. (이와 같이 관찰하면) 혐오하는 마음이 생겨 자기 몸이 길가에 죽어 쓰러진 개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관찰하게 된다.

밖으로 사랑하는 남녀의 몸을 관찰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러면 사랑할 수도 즐거워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이 구상九想의 방법과 같으나 다만 산상散想과 소상燒想 두 가지가 없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관을 닦을 때에 욕계의 번뇌가 아직 그치지 않았다면 이 관에 오래 머물러 싫어하고 혐오하는 마음을 완전히 성숙시켜 탐욕과 애착을 벗어나야 한다. 그런 뒤에 더 나아가 백골관白骨觀을 닦는다. 한마음으로 고요히 선정에 들어 미간을 잘 관찰하면서 피부와 살이 찢어져 벌어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면 백골이 드러나는데 손톱 크기만 한 것까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차차 마음을 위로 향하면서 피부와 살을 벗겨 내면 이마뼈가 보이고 머리카락과 이마 경계 지점의 뼈가 보인다. 나아가 정수리뼈의 피부와 살까지 벗겨지면 해골이 완전히 드러난다. 다시 생각을 머리에서부터 아래로 내려 피부와 살을 모두 마음을 따라 벗겨 내면서 차츰 발에 이른다. 그러면 뼈만 남은 사람이 마디와 마디가 서로를 지탱하며 단정하게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만 보게 된다. 수행자는 이때 선정에 든 마음으로 이 뼈가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임을 관찰한다. 발가락뼈로 인하여 발뼈가 지탱되고 있고, 발뼈로 인하여 복사뼈가 지탱되며, 복사뼈로 인하여 정강이뼈가 지탱되고, 차례로 서로 의지하여 무릎뼈·넓적다리뼈·엉덩이뼈·허리뼈·등뼈·갈비뼈에 이른다. 또한 등뼈로 인하여 위로는 목뼈가 지탱되고, 목뼈로 인하여 턱뼈가 지탱되며, 턱뼈로 인하여 치아가 지탱되고, 그 위에 해골이 있게 된다. 또한 목뼈로 인하여 어깨뼈가 지탱되고, 어깨뼈로 인하여 위팔뼈·아래팔뼈·손바닥뼈·손가락뼈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서로 의지하면서 360개의 뼈마디가 있다. 그 하나하나를 자세히 관찰해 큰 것과 작은 것,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을 안다. 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인연에 의지한 것이고 거짓된 것이므로 이 가운데는 주체도 없고 나도 없다.

 

身觀察但見腫脹心生厭惡復觀壞

腐爛血汚蟲膿流出腹旣拆破

諸內臟及三十六物臭爛不淨心生

厭惡自觀己身與路傍死狗無異矣

觀外所愛男女之身亦復如是不可愛

俱如九想法而但除散燒二相爲異

修此觀時欲界煩惱猶未息者

住此觀令厭心純熟離於貪愛爾時

應當進修白骨觀一心靜定諦觀眉間

想皮肉裂開而見白骨如爪大的的

分明次當以心向上裂開皮肉而見

額骨及髮際骨以至頂骨皮肉脫落

髑髏骨出復想從頭向下皮肉皆隨心

剝落漸漸至足但見骨人節節相拄

端坐不動行者爾時定心諦觀此骨

從因緣生依因指骨以拄足骨依因

足骨以拄踝骨依因踝骨以拄膊骨

次次依因以至膝骨䏶骨臗骨腰骨脊

骨肋骨復因脊骨上拄項骨依因項

以拄頷骨依因頷骨以拄牙齒

有觸髏復因項骨以拄肩骨依因肩

以至臂骨腕骨掌骨指骨如是展轉

相依而有三百六十骨節一一諦觀

知大知小知强知輭共相依假而是

 

 

어떻게 자신의 몸이 있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은 바람 기운이지 몸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을 관찰하고 나아가 법을 관찰해 보면 모두 거짓된 것으로서 주체도 없고 자아도 없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관찰하고 나면 아견을 타파하게 되고 오욕이 없어지게 된다. 이때 다시 머리에서 발까지 발에서 머리까지 온몸을 돌아가며 자세히 관찰하면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백골관을 깊이 연마해야 한다. 그러면 힘줄과 뼈가 모두 없어지고 뼈 색깔이 흰 마노나 조가비와 같아진다. 이렇게 깊이 관찰하기를 쉬지 않으면 뼈에서 흰 광채가 번쩍거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나서 미간을 자세히 관찰하면 또 빛나는 흰 광채가 모두 마음으로 모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이 빛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마음을 미간에 고정시키기만 한다. 그러면 그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저절로 머물게 되고, 선근이 개발되어 미간에서 여덟 가지 색의 빛이 빙글빙글 돌면서 나와 시방을 두루 비춰 모두 밝고 깨끗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여덟 가지 색이란 지····파랑(노랑(빨강(하양()인데, 이런 색의 빛은 세간에는 없는 것이다. 이때는 마음이 안온하게 안정되고 기쁨과 즐거움이 한량없다.

다시 마음을 거두어 이마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마음을 대상에 집중하면 또 여덟 색깔의 빛이 빙글빙글 돌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이와 같이 선정에 든 마음으로 이마 끝단과 정수리·두 귓구멍·눈썹뼈·눈뼈·코뼈·입뼈·이빨·턱뼈·목앞뼈·목뒤뼈 등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차례로 관찰하면 360개의 모든 골절에서 빛이 빙글빙글 돌면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고, 온몸에서 빛을 발하여 일체를 비춰 밝고 깨끗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수행자는 선정의 마음에서 희지喜支와 낙지樂支 등 다섯 가지 지를 모두 갖추게 되니, 이것을 초배사를 증득한 모습이라고 한다.

안으로는 뼈만 남은 사람의 모습이 없어지지 않았으므로 안에 색의 모습이 있다(內有色相)’고 하고, 밖으로 여덟 가지 빛과 욕계의 더러운 경계를 보므로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깥 색을 관찰한다(以不淨心觀外色)’고 한다. 수행자는 안팎의 더러운 색을 보기 때문에 욕계를 등지고 버리며 마음으로 기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게 된다.

 

中無主無我何者是身見也出入息是

風氣非身非我觀受觀心乃至觀法

悉知虛誑無主無我作此觀已即破

我見五欲除滅爾時復當從頭至足

從足至頭循身諦觀深鍊白骨百徧

千徧筋骨皆盡骨色如珂如貝深觀

不已則見骨上白光煜爚見是相已

即當諦觀眉間亦見白光焴焴悉來趣

爾時不取光相但定心眉間而若

心恬然任運自住善根開發即於眉

見八色光明旋轉而出徧照十方

皆悉明淨八色者地水火風靑黃赤

白也此色光明非世所有是時心定

安隱喜樂無量矣還復攝心諦觀於

住心緣中復見八色光明旋轉而

如是次第定心觀髮際頂兩耳孔

眉骨眼骨鼻口齒頷骨頸項骨從上

至下三百六十諸骨節悉見光明

轉而出徧身放光普照一切悉皆明

爾時行者定心喜樂五支具足

名證初背捨相以內骨人未滅故名內

有色相也見外八種光明及欲界不淨

故云以不淨心觀外色也行者

內外不淨色故背捨欲界而心不喜樂

 

 

여덟 가지 깨끗한 색을 보므로 초선初禪을 알게 되어 무명의 경계 중 거칠고 열등한 것들을 버리고 마음으로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정결한 오욕마저 등지고 거기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배사는 자기 몸 안의 색상을 무너뜨려 없애고 바깥의 색상은 없애지 않은 채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깥 색을 관찰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첫 번째 배사에서 뼈만 남은 사람이 빛을 뿜어 두루 퍼지고 나면, 수행자는 제2선의 내정지에 들어가려고 자기 몸 안의 뼈만 남은 사람을 무너뜨려 없앤다. 그러나 여전히 바깥 백골의 더러운 모습을 관찰한다.

수행자는 첫 번째 배사를 성취한 다음 각과 관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몸 안의 뼈만 남은 사람은 비고 거짓되어 알맹이가 없으며 안팎이 뻥 뚫려 있음을 자세히 관찰한다. 그리하여 오로지 무너져 흩어지고 닳아 없어지는 모습만 취한다.

이와 같이 관찰할 때, 그 뼈대가 썩고 문드러지고 부서지며 먼지처럼 흩어져 허공으로 돌아가는 것을 차례대로 보게 되고, 자기 몸 안의 색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때 다만 마음을 거두어 선정에 들어가 바깥의 광명과 더러운 대상을 반연하고, 한마음으로 대상에 집중하고 각과 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 곧 안의 마음이 활연히 밝고 깨끗해지며 삼매에 바로 들어가 큰 기쁨이 함께 일어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여덟 가지 빛이 안의 깨끗함(內淨)으로부터 나와 시방을 밝게 비추는데, 전보다 곱절로 뛰어나다.

이미 이 법을 증득했다면 곧 제2선을 알게 되어 헛되고 거짓되며 거칠고 열등한 것들을 혐오하고 물리쳐서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사라고 하며, 또 무루의 제2선이라고 한다.

세 번째는 정배사淨背捨이고 몸으로 증득하는 것(身作證)이다. 깨끗함을 반연하기 때문에 이라고 하고, 온몸으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신작증身作證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수행자가 두 번째 배사를 성취한 다음 바깥의 더러움을 관찰하는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남김없이 모두 무너뜨리며, 또한 큰 기쁨이 용솟음치는 것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지 마음을 거두어 여덟 색의 찬란한 빛을 자세히 관찰하여 깊은 삼매에 들어간다. 이 여덟 가지 색을 단련하여 지극히 밝고 깨끗하게 해 마음을 대상에 집중하면 곧 사라지듯 선정에 들어가며 즐거움이 함께 생겨난다.

 

見八種淨色故知初禪無明境界麤劣

即能棄捨而心不染著是名背是淨潔

五欲捨是著心也

第二背捨者壞滅內色相不壞滅外色

以是不淨心觀外色也所以者何

行者於初背捨中骨人放光旣徧

入二禪內淨故壞滅內骨人猶觀外白

不淨之相行者於初背捨後心中

不受覺觀動亂諦觀內身骨人虛假不

內外空踈專取壞散磨滅之相

是觀時漸見骨人腐爛碎壞猶如塵

散滅歸空不見內色是時但攝心

入定緣外光明及與不淨一心在緣

不受覺觀即覺內心豁然明淨三昧

正受與大喜俱發即見八種光明

從內淨出明十方倍勝於前旣證此

即知二禪虛誑麤劣厭背不著

名背捨亦名无漏第二禪也

第三淨背捨身作證者緣淨故云淨

身受樂故云身作證所以者何行者

於二背捨後心不受觀外不淨悉皆

壞滅無有遺餘亦不受大喜勇動

攝心諦觀八色光耀入深三昧鍊此八

極令明淨住心緣中即泯然入定

 

 

여덟 가지 색의 빛은 맑고 밝고 깨끗하여 묘한 보배의 광명처럼 온 세계에 가득 차고, 마음을 밝고 깨끗하게 비춘다. 그러면 즐거움이 점점 늘어나 몸에 두루 가득하고 온몸으로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이 법을 증득하고 나면 근본선根本禪을 버리고 마음으로 좋아하거나 집착하지 않게 되므로 정배사淨背捨라고 한다. 또 무루의 제3선이라고도 한다.

네 번째는 허공배사이다. 수행자는 욕계정을 성취한 뒤에는 자기 몸의 피부와 살 등 더러운 색을 이미 없애고, 첫 번째 배사를 성취한 다음에는 자신의 백골 등의 색을 이미 없애며, 두 번째 배사를 성취한 다음에는 바깥의 온갖 더러운 색을 이미 물리치게 되어 오직 여덟 가지 깨끗한 색만 남게 된다. 4선에 이르러 이 색은 모두 마음을 의지하여 머무르니, 비유하면 허깨비의 색이 허깨비 마음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과 같다.”고 관찰한다. 만일 마음이 색을 버리면 색은 곧 물러나 사라지고, 일심으로 공을 반연하여 공과 상응하면 곧 가없는 허공처虛空處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색을 사라지게 하는 방편이다.

수행자가 허공배사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먼저 공처정에 들어가 색을 등져서 버리고 무색無色을 반연하여야 한다. 여기서 여덟 가지 성스러운 관법(八聖種觀)22)을 닦으면 무색법 역시 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비록 공처정에 머무르지만 허공정虛空定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이것을 허공배사라 한다.

다섯 번째 식처배사, 여섯 번째 무소유처배사, 일곱 번째 비유상비무상처배사는 모두 위의 법과 같으니, 앞의 예로 비추어 보면 알 수 있다.

여덟 번째 멸수상배사는 수와 상등 온갖 심법心法과 심수법心數法(心所法)을 등지고 없애는 것이다. 왜 그런가? 비상非想(非有想非無想處)에는 거친 번뇌가 없긴 하지만 사음四陰(···)과 이입二入(意入處·法入處)과 삼계三界(意根界·法境界·意識界)의 열 가지 미세한 심수법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첫째 수, 둘째 상, 셋째 행, 넷째 촉, 다섯째 사, 여섯째 욕, 일곱째 해, 여덟째 염, 아홉째 정, 열째 혜등이다.23)

란 무엇인가? 식으로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란 무엇인가? 식으로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與樂俱生八色光明淸淨皎潔如妙

寶光徧滿諸方照心明淨樂漸增長

徧滿身中擧體怡悅旣證此法背捨

根本心不樂著故名淨背捨亦名無

漏三禪也

第四虛空背捨者行者於欲界定後

已除自身皮肉不淨之色初背捨後

滅內身白骨之色二背捨後已却外一

切不淨之色惟有八種淨色至第四禪

此色皆依心住譬如幻色依幻心住

若心捨色色即謝滅一心緣空與空

相應即入無邊虛空處此滅色方便也

行者欲入虛空背捨當先入空定

捨色而緣無色修八聖種觀即知無色

之法亦是無常故雖住空定中而不

著虛空定是名虛空背捨也

第五識處第六無所有處第七非有想

非無想處背捨皆如上法照例可知也

第八滅受想背捨者背滅受想諸心心

數法所以者何非想中雖無麁煩惱

而具足四陰二入三界十種細心數法

云何十種一受二想三行四觸

六欲七解八念九定十慧云何

爲受所謂識受云何爲想所謂識想

 

 

이란 무엇인가? 의 작용이다. 이란 무엇인가? 의근의 접촉이다. 란 무엇인가? 법을 사유하는 것이다. 이란 무엇인가? 선정에 들어가고 나옴을 말한다. 란 무엇인가? 법을 이해함이다. 이란 무엇인가? 삼매를 기억하는 것을 말한다. 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여법하게 머무름을 말한다. 란 무엇인가? 혜근慧根24)과 혜신慧身25)을 말한다.

수행자는 비상배사非想背捨(非有想非無想背捨)에서 비록 비상非想(非有想非無想處)을 집착하지는 않으나 모든 심수법을 없애지 못했기 때문에 멸수상滅受想(滅受想定)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한마음으로 진제만 반연해 음··를 끊으면 온갖 행의 인연이 다 사라진다. 가 사라짐으로부터 시작해 혜가 사라지며, 온갖 심수법이 다 사라지고 심수법이 아닌 것26) 또한 사라진다. 지금 등지고 버리고자 한다면 다시 모름지기 진제를 관찰하는 수와 상역시 궁극의 고요함이 아님을 깊이 알아서, 관찰하는 주체인 정의 수(定受)와 혜의 상(慧想)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진제를 반연하는 정과 혜의 두 가지 마음을 버리기 때문에 수와 상 등 온갖 심수법을 등지고 없앤다고 하였다.

25장 팔승처八勝處

팔승처八勝處를 설명하겠다. 첫째 안으로 색의 상이 있고 밖으로 아름답거나 추한 약간의 색을 관찰하는 것을 뛰어나게 알고 뛰어나게 보는 첫 번째 승처라고 한다. 둘째 안으로 색의 상이 있고 밖으로 아름답거나 추한 많은 색을 관찰하는 것을 뛰어나게 알고 보는 두 번째 승처라고 한다. 안으로 색의 상이 없고 밖으로 아름답거나 추한 약간의 색을 관찰하는 것을 뛰어나게 알고 보는 세 번째 승처라고 한다. 안으로 색의 상이 없고 밖으로 아름답거나 추한 많은 색이 나타나는 것을 뛰어나게 알고 보는 네 번째 승처라고 한다. 다섯째는 청승처靑勝處, 여섯째는 황승처黃勝處, 일곱째는 적승처赤勝處, 여덟째는 백승처白勝處이다.

관찰하는 마음을 잘 조절하여 깨끗하건 깨끗하지 않건 뜻대로 타파할 수 있기 때문에 승처勝處라고 한다.

 

云何爲行所謂法行云何爲觸所謂

意觸云何爲思所謂法思云何爲欲

謂入出定云何爲解所謂法解云何

爲念謂念於三昧云何爲定謂心如

法住云何爲慧謂慧根慧身行者

非想背捨中雖不著非想而未滅諸心

數法故入滅受想一心緣眞絕陰入

則一切諸行因緣悉滅從受滅至慧

一切心數法盡滅非心數亦滅

欲背捨復須深知能觀眞之受想亦非

究竟寂靜即捨能觀之定受慧想捨此

緣眞定慧二心故云背滅受想諸心數

法也

八勝處第二十五章

八勝處者一內有色相外觀色少

好若醜是名勝知勝見一勝處也

內有色相外觀色多若好若醜是名

勝知見二勝處也三內無色相外觀色

若好若醜是名勝知見三勝處也

四內無色相外現色多若好若醜

名勝知見四勝處也五靑勝處六黃

勝處七赤勝處八白勝處謂善調觀

若淨若不淨隨意能破故名勝處

 

 

만약 승처로 인해 번뇌가 끊어지면 곧 허망한 음과 입이 모두 없어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 승처를 이름을 바꿔 팔제입八除入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승처는 다음과 같다. 수행자가 스스로 자기 몸을 관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관찰하며 부정관인 구상九想을 닦을 때, 반연하는 대상이 적기 때문에 바깥으로 약간의 색을 관찰한다고 한다. 바깥의 여러 색을 관찰하면서 좋은 모습이 나타날 때는 아름답다고 하고, 나쁜 모습이 나타날 때는 추하다고 한다. 혐오스러운 더러운 색을 볼 때는 추하다고 하고, 희열을 느낄 만한 빛나는 색을 볼 때는 아름답다고 한다.

수행자는 추한 것을 볼 때 그것이 헛되고 거짓임을 알아 성내지 않으며,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그것이 인연 따라 생긴 것임을 알아 애착하거나 물들지 않는다. 이렇게 뜻대로 색을 관찰하여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것을 뛰어나게 알고 보는 것이라 한다.

두 번째 승처는 다음과 같다. 수행자는 관찰하는 마음이 조화로워진 뒤에 안으로 뼈만 있는 사람의 모습을 없애지 않은 채, 다시 선정 가운데서 널리 바깥의 색을 관찰한다. 한 구의 시신으로부터 십 백 천 만 구의 시신을 관찰하고, 나아가 한 마을, 한 나라, 한 세계에 온통 가득 찬 시신이 불룩하게 부풀고 문드러져 내리는 것을 본다. 이렇게 구상에 의지하여 매우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 다음 백골관을 닦는데, 뼈만 있는 사람이 한 명으로부터 열 명, 백 명에 이르고 나아가 한 세계에 가득 찬 것을 본다. 밖의 사람들을 백골로 관찰하고 나서는 다시 선정의 마음으로 자신의 백골을 자세히 관찰하여 흰 마노나 조가비처럼 밝고 깨끗해질 때까지 단련한다. 이때 밖의 뼈만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 서로 마주하며 줄지어 오는 것을 보게 된다. 수행자는 삼매 가운데서, 이 뼈만 있는 사람들은 다 생각을 따라서 나타난 것이지 참된 실체는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마음으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뼈만 남은 사람이 다시 모두 땅으로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자기 몸 안의 뼈를 깊이 관찰하면 광명이 널리 비춰 뼈만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빛에 비춰지고 또한 모두 밝고 맑아진다. 이 백골관이 이루어질 때 모든 원수와 친구, 모든 아름답고 추한 것에 대해 그 마음이 평등해져 좋아하거나 성내는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을 아름답거나 추한 것을 뛰어나게 알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

 

若因勝處煩惱斷盡即知虛妄陰入

皆滅爾時勝處變名爲八除入也

第一勝處者行者或自觀己身或觀

所愛之人修不淨九想時所緣者少

故云外觀色少也觀外諸色善相現時

謂好惡相現時謂醜見不淨色可厭

惡時爲醜見色光明可喜悅時爲好

行者見醜時即知虛假不生瞋恚

好時知從緣生不生愛染隨意觀色

轉變自在是名勝知勝見也

第二勝處者行者觀心旣調不除內

骨人更於定中廣觀外色從一死屍

多至十百千萬一城邑一國土乃至一

世界悉見死屍肨脹壞爛依九想觀

心甚厭惡次修白骨觀從一骨人

十至百乃成一世界外骨觀旣成

當定心諦觀內身白骨鍊使明淨

珂如貝爾時見外一切骨人起立相對

羅列而來行者於三昧中知此骨人

皆是隨想而來無有眞實心不驚怖

則見骨人還悉躃地矣深觀內骨

明普照一切骨人爲光所照亦皆明

此觀成時於一切怨親及諸好醜

其心平等無有愛恚是名若好若醜勝

 

 

또 이 관에 머물러 뼈만 있는 한 사람이 사천하에 두루한 것을 보므로 많다()’고 하고, 다시 생각을 거두어 뼈만 남은 한 사람을 관찰하기 때문에 뛰어나게 알고 본다(勝知見)’고 한다. 또 관찰하는 마음이 익숙해져서 비록 능히 관찰하는 마음에 성품이 없음을 알면서도 대상 가운데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승처勝處라고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을 관찰하여 더러운 흰 뼈라고만 보면 적다()’라고 한다. 만일 대부정관大不淨觀을 행하면 이것을 많다()’라고 한다. 대부정관은 모든 곳의 탐욕과 애착을 깨뜨리는 것이니, 날거나 달리는 짐승의 무리들까지 모두 관찰하여 구상관九想觀을 행하는 것이다.

또 음식은 벌레나 똥과 같고, 옷과 비단은 썩은 가죽이나 썩은 살덩이와 같으며, 돈과 재물, 금은보화는 독사나 도마뱀과 같다고 관찰한다. 이것은 반드시 죽어서 변하는 것들이며, 냄새나고 썩는 더러운 것들이다. 곡식은 죽은 벌레와 같고, 밭과 집, 마을은 모두 다 썩고 무너지는 것이다. 나아가 백골이 어지러이 흩어져 모든 세간이 다 더럽다고 보아 매우 혐오하게 된다.

수행자는 삼매 가운데서 관찰하는 대로 곧 보고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세간의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증오, 탐욕과 근심 등의 번뇌를 깨뜨린다. 그러므로 뛰어나게 알고 본다고 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승처는 앞의 두 가지와 대체로 같으나 안으로 색의 상이 없어진 것으로서, 두 번째 배사와 비슷하다.

다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파랑·노랑·빨강·하얀색의 네 가지 승처는 다음과 같다. 수행자가 제3선의 몸으로 증득하는 즐거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4선에 들어가면, 그때 염과 혜가 깨끗해져 네 가지 색이 더욱 밝게 빛나게 된다. 마치 묘한 보배의 광명과 같은 것이 이전의 색보다 훨씬 뛰어난 것과 같다. 또 동요하지 않는 지혜로 이 네 가지 색을 단련하여 적은 것을 많게 하고, 많은 것을 적게 하는 등 바꾸기를 자유자재로 하며, 보고 싶으면 바로 보고, 없애고 싶으면 곧 없어지므로 승처라고 한다.

또 수행자가 이 뛰어난 색을 보고 번뇌를 아직 끊지 못하면 법을 아끼는 마음이 생겨난다.

 

知勝見也復次住此觀中能見一骨人

徧四天下是名爲多還復攝念觀一

骨人故名勝知見也復次善調觀心

雖知能觀之心性無所有而於緣中

自在迴轉故名勝處也復次但觀一切

見不淨白骨是名少也若作大不

淨觀是名多也大不淨觀者爲破一

切處貪愛謂一切觀飛禽走獸之屬

作九想觀復觀飮食如蟲如糞衣服

絹布如爛皮爛肉之段錢財金寶

毒蛇蚖斯須死變臭爛不淨糓如死

田宅城邑皆悉爛壞乃至見白骨

狼藉一切世間悉皆不淨甚可厭患

行者於三昧中隨觀即見迴轉自在

能破世間好醜愛憎貪憂煩惱故名勝

知見也

第三第四勝處與上法大同而內滅色

與二背捨相似也第五六七八

黃赤白四勝處者行者不受三禪身證

之樂入第四禪時念慧淸淨四色轉

更光顯如妙寶光勝於前色又用不

動智慧鍊此四色少能多多能少

變自在欲見即見欲滅即滅故名勝

復次行者見是勝色結漏未斷

 

 

지금 법을 아끼는 마음을 끊으면, 곧 이 색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알아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게 되는데, 이때 배사背捨를 바꾸어 승처라고 부른다.

26장 일체처一切處

일체처一切處란 첫째는 파랑(), 둘째는 노랑(), 셋째는 빨강(), 넷째는 하양(), 다섯째는 지, 여섯째는 수, 일곱째는 화, 여덟째는 풍, 아홉째는 공, 열째는 식이다. 이 열 가지를 통틀어 일체변처一切徧處라고 한다. 배사와 승처에도 여덟 가지 색이 있긴 하지만 비춰지는 대상이 좁아서 보편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지금 이 선정에서는 낱낱의 색이 두루 시방에 가득하며 서로 스며들어도 방해됨이 없다. 따라서 일체입一切入이라고도 한다. 공이 두루하고 식이 두루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여덟 가지 색의 일체처는 그 단계가 사선四禪에 해당하고, 공일체처의 단계는 공처정空處定에 해당하고, 식일체처의 단계는 식처정識處定에 해당한다.

27장 구차제정九次第定

구차제정九次第定을 설명하겠다. 온갖 욕망을 여의고 모든 나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각이 있고 관이 있으며, 번뇌를 떠나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면서 초선에 들어간다. 이어 제2선에 들어가고 차례로 제3, 4, 사공정四空定에 들어가며 멸수상정까지 이른다. 이것을 구차제정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여러 선정을 닦을 때 관하는 행법이 아직 성숙되지 않으면, 그 마음에 간격이 있게 되기 때문에 차제정次第定이라 하지 않는다. 지금은 선정에서 관하는 법을 이미 성취하고 나서 더욱 단련하여 익숙해졌기 때문에, 하나의 선정에서 마음을 일으켜 다음 하나의 선정으로 들어갈 때 마음과 마음 사이에 틈이 없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하여 멸수상정에 이르는 것을 구차제정이라고 하며, 또 단련하는 선(鍊禪)이라고 한다.

 

法愛心生今斷法愛即知此色從心

而起則不生著心是時背捨變名勝

處也

一切處第二十六章

一切處者一靑二黃三赤四白

六水七火八風九空十識此十

通名一切徧處謂背捨勝處雖有

八色而所照旣狹未得普徧今此定

一一色徧滿十方互相涉入亦無

妨閡故亦名一切入空徧識徧亦復

如是也八色一切處位在四禪中

一切處位在空處中識一切處位在

識處中也

九次第定第二十七章

九次第定者離諸欲離諸惡不善法

覺有觀離生喜樂而入初禪入二禪

如是次第三禪四禪四空定以至滅受

想定是名九次第定行者修諸禪時

觀行未熟其心有間故不名次第定

今則定觀之法先已成就修鍊旣熟

能從一禪心起次入一禪心心無間

不令異念得入如是乃至滅受想是名

 

 

28장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

사자삼매師子三昧는 구차제정에 의거한다. 처음 초선에 들어가고, 초선에서 깨어나 제2선에 들어가고, 다음엔 제3, 그 다음엔 제4, 공처정, 식처정, 불용처정, 비유상비무상처정, 멸수상정에 들어간다. 다시 멸수상정에서 깨어나 비유상비무상정에 들어가고, 다음엔 불용처정, 식처정, 공처정, 4, 3, 2, 초선에 들어간다. 이것을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사자가 달릴 때 앞으로 신속하게 달려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러날 때도 신속하게 되돌아올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른 어떤 짐승도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수행자가 이 법문에 머물면 온갖 선정에 두루 들어가 여러 관법과 선정을 익숙하게 익혀 마음대로 통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유자재로 변화하며 온갖 삼매를 일으킬 수 있고 신령스러운 지혜가 점점 더 훌륭해진다. 따라서 훈숙하는 선(熏禪)이라고도 한다.

29장 초월삼매超越三昧

초월삼매超越三昧27)를 설명하겠다. 사자는 빠르게 달려 나아가고 되돌아올 뿐만 아니라 전후좌우로 뛰어넘고 도약할 수도 있다. 이렇게 뜻대로 종횡으로 내달려도 재빠르지 않은 경우가 없으며, 가까이 뛸 수도 있고 멀리 내달릴 수도 있다. 이것을 초월이라고 한다.

수행자는 선정에 들어가는 것을 익숙하게 단련하면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으로부터도 뛰어서 곧장 멸수상정에 들어갈 수 있다. 두 단계나 세 단계 혹은 여덟 단계, 아홉 단계를 건너뛰면서 나아가고 되돌아오기를 모두 신속하게 하며, 또한 옆으로도 뛰어넘어 종횡으로 자유자재한다. 그러므로 초월이라고 한다. 이 삼매를 얻으면 공덕이 깊고 두터워지며, 신통이 매우 날카로워지므로 관선觀禪이라고 한다.28) 또한 정선頂禪이라고도 부르니, 여러 선정 가운데 가장 높다는 뜻이다.

 

九次第定亦名鍊禪也

師子奮迅三昧第二十八章

師子三昧者依九次第定入初禪

初禪起入二禪次三禪次四禪次空

識處不用處非有想非無想處滅受

想定還從滅受想定起入非有想非無

想定次不用處識處空處四禪三禪

初禪是名師子奮迅三昧譬如師子

奮迅之時非但能前進奮迅而去亦能

却行奮迅而歸一切諸獸之所不能爾

行者住此法門徧入諸禪熏諸觀定

悉令通利轉變自在能生諸三昧

智轉勝亦名熏禪也

超越三昧第二十九章

超越者師子非但能奮迅順逆亦能超

前超後擲左跳右躍隨意縱橫

不迅疾可以近跳可以遠擲是爲超

行者入定鍊熟無難故從散心中

能超入滅受想定越二越三超八超九

順逆皆速亦可傍超縱橫自在故云

超越得此三昧功德深厚神通猛利

故名觀禪亦名頂禪謂於諸禪中

 

 

4. 방편문方便門

30장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춤

과 색두 문은 도를 닦고 도를 증득하는 법인데, 이 가운데에는 때에 따라 변화하여 알맞은 방편을 쓴 뒤에야 이 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만약 방편을 알지 못하면 마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는 것29)과 같아서 여러 가지로 삿된 쪽으로 나아가게 되니, 이를 맹인의 수련이라 한다. 그러므로 내외의 방편문을 세운다.

외방편外方便에는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춤(具五緣), 둘째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림(訶五欲), 셋째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림(棄五蓋), 넷째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함(調五法), 다섯째 다섯 가지 법을 행함(行五法)이다. 내방편에도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 지문止門, 둘째 선악의 근성을 증험함(驗善惡根性), 셋째 마음을 편안히 함(安心), 넷째 병을 치료함(治病), 다섯째 마사를 분별함(辨魔)이다.

무릇 이들의 대강을 앞서 입식문入式門에서 설했던 이유는 수행자로 하여금 미리 알게 하려는 뜻이었다. 지금 이 문에서 조항에 따라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수행자로 하여금 세밀한 마음으로 밝게 분별하여 도를 돕는 방편으로 삼게 하기 위함이다.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는 것(具五緣)이란 무엇인가? 첫째 계를 청정하게 지키고, 둘째 옷과 음식을 갖추며, 셋째 한적하고 고요한 곳에 머물고, 넷째 모든 인연과 업무를 쉬고, 다섯째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첫째, 계를 청정히 지키는 것이다. 재가자인 경우엔 오계五戒를 닦고, 출가자는 십계十戒를 닦되 마치 부낭浮囊30)을 지키듯이, 기름 담은 발우31)를 지니듯이 해야 한다. 오계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는 것이다. 십계는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고,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않고, 머리를 꽃으로 장식하는 짓 등을 하지 않고, 노래나 춤 등을 멀리하고, 금은보화를 갖지 않고, 식사시간이 아닌 때에는 먹지 않는 것이다.

둘째, 옷과 음식을 갖추는 것이다. 수행자는 바른 생활에 의지하여 음식을 구하며 잘못된 생활에 의지하여 음식을 구하지 않는다.32) 오직 굶주림과 추위만 면할 뿐 사치를 구하지 않는다.

 

爲高極也

第四方便門

具五緣第三十章

息色二門即修道證道之法而其中有

可以隨時通變善巧方便然後乃可坐

進此道若不知方便者如膠柱鼓瑟

種種趣邪是謂盲修瞎鍊故立內外方

便門外方便有五種一具五緣二訶

五欲三棄五蓋四調五法五行五法

內方便亦有五種一止門二驗善惡根

三安心四治病五辨魔凡此大綱

先說於入式門中者欲使行者預知之

意也今此門中逐條詳悉者欲使行

細心明辨以爲助道之方焉

云何具五緣一曰持戒淸淨二曰衣食

具足三曰 [2] 閑居靜處四曰息諸緣務

五曰得善知識也

第一持戒淸淨者如在家修五戒出家

修十戒如護浮囊如持油鉢也五戒者不殺

不淫不妄語不飮酒也十戒者不殺不盜不淫不妄語不飮酒離高廣大床離花鬘等離歌舞

離金寶物離非食時也

第二衣食具足者行者當依正命食

不依邪命食唯免飢寒不求奢侈

 

 

그러나 역시 몸과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옷과 음식을 갖추지 못해 선을 닦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한적함이라 하고, 산만하고 시끄러운 곳을 멀리 피한 것을 조용함이라 한다. 또 마음속에 일이 없는 것을 한적함이라 하고, 마음속에 시끄러움이 없는 것을 조용함이라 한다. 몸과 마음이 한적하고 조용해야 곧 도를 닦을 수 있다.

넷째, 모든 인연과 업무를 쉬는 것이다. 작위적인 어떤 사업도 하지 않고, 또한 속인을 쫓아다니며 왕래하지 않는다. 방술方術과 기예技藝를 익히지 않고 학문과 강론을 숭상하지도 않는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오직 선을 닦는 것에만 집중한다.

다섯째, 선지식을 만나는 것이다. 선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밖에서 보호하는 선지식으로서 살림을 꾸리고 공양하여 수행자를 잘 보호하며 서로 괴롭히지 않는 자들이다. 둘째는 함께 수행하는 선지식으로서 같은 도를 함께 닦으면서 서로 채찍질하고 북돋워 주며 서로 어지럽히지 않는 자들이다. 셋째는 가르쳐 주는 선지식으로서 내외의 방편과 선정의 법문을 가르쳐 이롭게 하는 자들이다.

31장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림

다섯 가지 욕망을 다스리는 것을 설명하겠다. 마음을 기쁘게 하고 몸에도 적당한 빛깔·소리·냄새··촉감 등의 법은 범부의 마음에 애착을 일으켜 온갖 악업을 짓게 한다. 그때 수행자는 자기 마음으로 이렇게 다스려서 책망한다.

일체중생은 항상 다섯 가지 욕망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구하는 짓을 멈출 줄 모른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은 얻을수록 점점 힘들어지니 마치 불에 땔나무를 더하는 것과 같다. 오욕은 개가 말라빠진 뼈를 씹는 것과 같아 아무런 이익이 없고, 오욕은 새들이 고기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 같아 다툼만 늘리며, 오욕은 역풍에 횃불을 든 것과 같아 사람을 태운다. 오욕은 모진 뱀을 밟은 것과 같아 사람을 해치고, 오욕은 꿈에서 얻은 것과 같아 실체가 없으며, 오욕은 잠시 빌린 것과 같아 오래 가지 않는다. 어리석은 저 중생은 항상 오욕의 부림을 당하므로 오욕의 노예라고 부른다.

 

亦不可使衣食不具身心不寧妨於修

禪也

第三閒居靜處者不作衆事曰閒遠避

憒閙曰靜心中無事曰閒心中無閙曰

身心閒靜乃可修道也第四息諸

緣務者謂不作一切有爲事業亦不追

尋俗人往還不習方術技藝不尙學問

講論使心專一惟在修禪也

第五得善知識者此有三種一者外護

善知識經營供養善能將護行人

相惱亂也二者同行善知識共修一道

互相勸發不相擾亂也三者敎授善知

以內外方便禪定法門示敎利益也

訶五欲第三十一章

訶五欲者如色聲香味觸等法悅於心

適於身軆能令凡夫心生愛著

諸惡業行者當自心訶責曰一切衆

常爲五欲所惱而猶求之不已

五欲者得之轉劇如火益薪五欲無

如狗齧枯骨五欲增諍如鳥竸肉

五欲燒人如逆風執炬五欲害人

踐惡蛇五欲無實如夢所得五欲不

如暫假借愚彼衆生常爲五欲所

 

 

이에 연루되어 (삼악도에) 떨어지면 영영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내가 지금 수도하는 데도 장애가 되니 이것은 큰 도적이다. 서둘러 멀리해야만 하고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된다.”

32장 다섯 가지 덮개를 버림

오개五蓋란 첫째 탐욕개貪欲蓋, 둘째 진에개瞋恚蓋, 셋째 수면개睡眠蓋, 넷째 도회개掉悔蓋, 다섯째 의개疑蓋이다. 란 덮고 가린다는 뜻으로 곧 번뇌를 의미한다. 이 다섯 가지가 마음에 있으면 구름이 해를 가리고 물건이 눈을 덮은 것과 같아 마음이 밝고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버려서 없애야 한다.

첫째, 탐욕개貪欲蓋를 버리는 것이다. 수행자가 좌선 중에 문득 탐욕을 일으켜 찰나찰나 이어 가면 착한 마음을 덮어 자라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그렇다고 지각하면 곧 버린다.

둘째, 진에개瞋恚蓋를 버리는 것이다. 수행자가 좌선 중에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힌 자, 나의 친구를 괴롭힌 자, 나의 원수를 찬탄한 자이다라고 사유하고, 이렇게 과거·현재·미래를 사유한다면 이것을 아홉 가지 고뇌라 한다. 고뇌 때문에 화가 나고, 화내기 때문에 원한이 생기며, 원한 때문에 원망이 생기고, 원망 때문에 복수하려고 든다. 이런 각과 관이 마음을 덮으므로 개라 한다. 성냄은 불선법不善法의 근본이고 악도에 떨어지는 인연이며, 법의 즐거움을 없애고 선한 마음을 빼앗아 간다. 그러므로 마땅히 자비와 인욕을 닦아 서둘러 없애고 마음을 청정하고 안온하게 해야 한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를 버리는 것이다. 안으로 마음이 어두운 것을 수라고 하고, 사지를 제멋대로 한 채 편안히 누워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을 면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명을 증장시키고 도력을 떨어뜨리는 최고의 악법이다. 다른 개는 마음으로 지각해 제거할 수도 있지만 깊은 잠에 빠지면 죽은 사람과 같아 아무런 지각도 없다. 따라서 물리치기 어려우니 항상 경책하여 어둠에 덮이지 말도록 하라.

 

使名曰五欲奴僕坐是墜墮永無出

豈不哀哉我今修道復爲障蔽

爲大賊急當遠之不留念頭也

棄五蓋第三十二章

五蓋者一曰貪欲蓋二曰瞋恚蓋

曰睡眠蓋四曰掉悔蓋五曰疑蓋

覆蔽也此五者在心則如雲遮日

如物蒙眼心不明淨故棄而祛之也

第一棄貪欲蓋者如行人坐禪中忽生

欲覺念念相續覆蓋善心令不生長

覺之即棄也

第二棄瞋恚蓋者如行者坐中思惟

人惱我及惱我親讃我怨家思惟過

去現在未來是爲九惱惱故生瞋

故生恨恨故生怨怨故欲報覺觀覆

故名爲蓋瞋是不善法之根本

惡道之因緣消滅法樂戕賊善心

修慈忍急爲除滅令心淸淨安穩也

第三訶睡眠蓋者內心惛暗名爲睡

放恣支節委臥垂熟名爲眠此能增

長無明耗損道力最是惡法他蓋情

尙可除去眠如死人無所覺悟

難却逐常須警責勿令惛覆也

 

 

넷째, 도회개掉悔蓋를 버리는 것이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유희에 빠지는 것을 몸의 들뜸(身掉)이라고 한다. 읊고 노래하기를 즐기고 시비 가리기를 좋아하며, 무익한 담론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입의 들뜸(口掉)이라 한다. 방종한 마음으로 제멋대로 상상해 문장을 짓고 재주를 부리며, 온갖 나쁜 각과 관으로 생각을 그치지 않는 것을 마음의 들뜸(心掉)이라 한다. 수행자가 마음을 거두어 단속하여도 선정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들뜨고 산란할 때이랴. 마땅히 서둘러 버려야만 한다.

만약 들떴었더라도 후회가 없다면 오히려 개가 되지는 않지만, 만일 그것을 후회하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근심과 괴로움이 마음을 덮어 곧 개가 된다. 또 큰 죄를 지은 사람이 항상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듯, 후회의 화살이 마음에 박히면 견고해 뽑을 수가 없다. 모름지기 과실을 알았으면 곧 후회하고, 후회하고 나서는 곧 잊어버려 항상 정신을 맑고 편안하고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다섯째, 의개疑蓋를 버리는 것이다. 의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이것은 도의 가장 큰 장애가 된다. 첫째는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요, 둘째는 스승을 의심하는 것이요, 셋째는 법을 의심하는 것이다.

자신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가령 어떤 사람이 스스로 나는 모든 근이 어둡고 둔하며 죄와 허물 깊고 무거우니 법의 그릇이 못되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승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스승의 위의를 보면서 저 사람의 위의와 외모를 보아하니 그럴듯하지 못하다. 스스로도 도가 없는데 어찌 나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릇 사람을 선택할 때는 단지 그 도만 취할 뿐 그 모습을 취해선 안 된다.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 속에 금이 들었을 때, 속에 금이 있기 때문에 그 주머니를 경시하거나 버리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저분이 비록 누추하고 보잘것없긴 하지만 나는 마땅히 부처님과 같다고 생각하리라.”라고 하고는, 그의 말을 공손히 받아들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믿고 복종한 뒤에야 이익이 있다.

법을 의심함이란 무엇인가? 무릇 도를 닦고자 한다면 먼저 법문을 선별하고 그것을 의심 없이 깊이 믿으며 오롯하게 공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법마다 모두 진리요, 문마다 다 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의심을 품어 어떤 법이 더 낫고 어떤 법이 못할까, 과연 이것이 참일까 거짓일까?”라고 하며 머뭇거리는 마음을 일으키면 법이 마음속으로 젖어들지 못해 법 가운데 있더라도 끝내 얻는 바가 없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의심은 버려야 옳다.

 

第四棄掉悔蓋者好遊走耽戱謔

之身掉喜吟詠好是非無益談論

皇說去謂之口掉心情放逸縱意攀

文章技藝諸惡覺觀思惟不已

之心掉行者攝心猶難得定何况掉

當急棄之也若掉而無悔猶不成

若悔之不捨憂惱覆心即能爲蓋

又如重罪人常懷怖畏悔箭入心

不可拔須當知過即悔悔而即忘

令心神淸寧無礙也

第五棄疑蓋者有三種疑最爲障道

一者疑自二者疑師三者疑法云何

疑自若人自念我之諸根暗鈍罪垢深

無乃非法器乎云何疑師觀彼威

儀相貌如是不似自尙無道何能敎

夫取人但取其道不取其相如臭

皮囊中金以其中有金故不敢慢棄其

彼雖陋拙我則應生佛想敬受其

誠心信服然後有益云何疑法

欲修道當先揀擇法門深信無疑

一做去法法皆眞門門可通若自懷

孰勝孰劣果眞果僞心生猶䂊

不染神雖在法中終無所獲此三種

棄去可也

 

 

33장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함

다섯 가지 법을 조절한다는 것은, 첫째 음식을 조절하고, 둘째 수면을 조절하고, 셋째 몸을 조절하고, 넷째 호흡을 조절하고, 다섯째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를 알맞게 조절해야 비로소 수도하는 데에 장애가 없다.

첫째, 음식을 조절하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기가 급해지고 몸이 팽만해지며 모든 맥이 통하지 않아서 마음을 막히게 하므로 좌선할 때 생각이 안정되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적게 먹으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어질어질해 생각이 견고하지 않게 된다. 더럽고 탁한 음식을 먹으면 사람의 심식이 어둡고 혼미하게 된다. 몸에 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잠복된 병을 촉발하여 사대가 어그러지기 쉽다. 이들은 모두 선정을 얻는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몸이 편안하면 도가 융성한다.”고 하였다.

둘째, 수면을 조절하는 것이다. 수면은 무명의 법이니 마음대로 내버려 둘 수 없긴 하지만 전혀 자지 않으면 정신이 멍해진다. 반대로 너무 많이 자면 공부를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우매하게 하여 선근이 가라앉아 버린다. 무상함을 생각하고 수면을 조복해 정신과 기운을 맑고 깨끗이 하고 마음과 생각을 밝고 깨끗이 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마음이 성인의 경지에 깃들어 삼매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전에 초저녁이나 새벽녘에도 공부를 그만두지 말지니, 수면의 인연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하라.”33)라고 하였다.

셋째, 몸을 조절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지 않은 때라도 걷거나 머물거나 나아가거나 멈출 때 모두 자세히 살펴야 한다. 만일 그 행동이 거칠면 기와 호흡도 따라서 거칠어지고, 기가 거칠면 마음이 산란하여 단속하기 어려워져 좌선할 때에 이르러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몸을 편안하고 고요히 유지하여 항상 마음과 호흡을 조화롭게 해야 한다. 좌선하려면 반가부좌(半跏)나 결가부좌(全跏)를 하고왼쪽 다리를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몸 가까이 끌어당겨 왼쪽 다리의 발가락은 오른쪽 넓적다리와 가지런하게 하고, 오른쪽 다리의 발가락은 왼쪽 넓적다리와 가지런하게 한다. 이것을 반가부좌라 한다. 여기에서 아래에 있던 오른쪽 다리를 들어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는 것을 결가부좌라 한다. 옷과 허리띠를 풀어 느슨히 한다. 손을 포개어 단정히 앉고왼쪽 손을 오른손 위에 놓아 겹친 손이 수평이 되게 한 뒤 왼쪽 다리 위에 놓고는 몸 쪽으로 끌어당겨 마음과 일치시키고 편안케 한다. 신체를 곧게 하며

調五法第三十三章

調五法者一曰節飮食二曰調睡眠

三曰調身四曰調息五曰調心此五

者調適乃可修道無弊矣

第一調節飮食者食若過飽則氣急身

滿百脉不通令心閉塞坐念不安

若過少則身憊心懸意慮不固若食

穢濁之物則令人心識惛迷若食不宜

身之物則易動宿疾四大違戾俱非

得定之道故云身安則道隆

第二調睡眠者眠是無明之法雖不可

然若都不眠心神虛怳若眠過多

非惟廢工令心晦昧善根沈沒當念

無常調伏睡眠令神氣淸潔心念明

乃可棲心聖境三昧現前故經云

初夜後夜亦勿有廢無以睡眠因緣

令一生空過無所得也

第三調身者雖在定外行住進止

悉詳審若所作麤獷則氣息隨之而麤

氣麤則心散難錄至於坐時亦不恬怡

故當持身安靜常使心息調和若欲坐

或半跏或全跏以左脚置右䏶上牽來近身令左脚指與右䏶齊

右脚指與左䏶齊是爲半跏上下右脚必置左脚上是爲全跏解緩衣帶

手端坐以左掌置右手上重累手相對頓置左脚上牽近身當心而安正身軆

 

 

머리와 목을 바로 하고몸을 곧게 펴서 척추가 일직선이 되게 하는데 구부정하거나 너무 꼿꼿이 세우지 말며,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이지 말며, 숙이거나 쳐들지 말라. 편편한 바닥에 바로 앉아 코와 배꼽을 일직선이 되게 한다. 그리고 입을 열어 기를 내보내 가슴을 시원하게 통하도록 한다. 입을 열어 가슴 속의 더러운 기를 토한다. 토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입을 열어 기를 내보내되 자연히 나오게 하고, 통하지 않던 몸의 여러 맥을 모두 기를 따라서 토해 낸다고 상상한다. 코로 맑은 기운을 들이마셔 몸과 호흡을 조화롭게 하고입을 닫고 코로 맑은 기운을 세 번 들이마신다. 몸과 호흡이 조화로우면 한 번만 들이마셔도 충분하다. 다음엔 입을 다물고 혀를 위에 붙이며입을 다물어 입술과 치아가 서로 맞물리게 하고 혀는 윗잇몸에 붙인다. 반쯤 눈을 감아 외부의 빛을 차단한다. 완전히 감으면 어두워 잠이 오고 완전히 뜨면 산란해 집중이 되지 않으므로 반만 감는다. 마치 발을 치는 것과 같다. 요점만 말하자면 느슨하지도 긴장되지도 않게 신체를 알맞게 조절해야 한다.

넷째,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호흡에는 풍···의 네 가지 상이 있다. 코로 쉬는 숨을 마음으로 지각할 때, 들어오고 나가며 소리가 나는 것을 풍상이라 하고,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나가고 들어오는 기운이 맺히고 막혀 통하지 않는 것을 천상이라 하며, 소리도 없고 맺힘도 없지만 들어오고 나감이 미세하지 않은 것을 기상이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조화롭지 못한 모습이다. 이를 조절하지 않고 좌선하면 병이 쉽게 생기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어렵다.

이를 조절하려면 세 가지 법을 사용해야 한다. 첫째, 마음을 가라앉혀 안정시키는 것이고, 둘째, 신체를 느슨히 하는 것이며, 셋째, 온몸의 털구멍으로 두루 호흡해 출입에 장애가 없이 잘 통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세밀하게 하고 호흡을 미미하게 해 호흡이 조절되면 온갖 병이 생기지 않고 그 마음이 쉽게 안정된다.

식상息相이란 소리가 나지 않고 맺히지 않으며 거칠지도 않은 호흡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출입이 면면히 이어져 정신이 안온해지고 마음에 기쁨이 생기도록 돕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풍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산만해지고, 천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맺히며, 기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피로하며, 식상으로 호흡을 유지하면 안정된다. 요점을 말하자면 거칠지도 매끄럽지도 않게 항상 조화롭고 편안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다.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을 조복하여 지나치지 않게 하고, 들뜨거나 가라앉거나 느슨하거나 급하지 않은 네 가지 모습을 얻는 것을 마음을 조절하는 것이라 한다.

 

正頭頸正身端直令脊相對勿曲勿聳不偏不邪不低不昻平面正住

鼻與臍對開口放氣令胸襟通暢開口吐胷

中穢氣吐法開口放氣自恣而出想身中百脉不通處悉令隨氣而出鼻納淸氣

令身息調和閉口而鼻中內淸氣三次若身息調和但一亦足閉口

脣舌抵上閉口脣齒相柱舌抵上齶半閉眼斷外光

全閉則昏暗招睡全開則散亂不一故半閉如垂廉狀也擧要言之不寬

不急令身軆調適也

第四調息者息有四相曰風曰喘

曰息心覺鼻息出入有聲者謂之

風相雖不聞聲而出入之氣結滯不

通者謂之喘相雖無聲無結而出入

不細者謂之氣相此三者不調之相

不調而坐則病患易作心識難定

欲調之當用三法一者下著安心

者寬身軆三者想氣徧毛孔出入通同

無障若細其心令息微微然息調則

衆患不生其心易定矣所謂息相者

不聲不結不麤出入綿綿若存若亡

資神安穩情抱悅䂊者是也是以守風

則散守喘則結守氣則勞守息則定

擧要言之不澁不滑常令和平也

第五調心者調伏亂想不令越逸

浮不沈不寬不急四相得所謂之調

 

 

좌선할 때 마음이 어두워져 아무 기억도 나지 않고 머리가 자꾸 밑으로 처지면 이것을 가라앉은 모습(沈相)이라 한다. 이때는 생각을 코끝에 집중하고 마음을 대상 가운데 머물게 하여 산란한 뜻을 없애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가라앉음을 다스릴 수 있다. ‘대상 가운데란 예컨대 마음을 배꼽에 집중할 때는 배꼽이 대상이 된다. 수식관에서는 호흡의 수를 세는 것이 대상이 되고, 부정관일 때는 관하는 것이 대상이 된다. 다섯 곳이 대상이 되는 것 역시 이와 마찬가지다. 지금 가라앉은 것을 다스리고자 마음을 코끝에 집중하는 것은 (가라앉은 마음을) 높여서 들어 올리려는 것이다. 대상 가운데 머물면 본래의 대상을 잃지 않게 된다.

만약 정신이 산만하게 움직여 생각이 자꾸 다른 대상으로 쏠린다면, 이것은 들뜬 모습(浮相)이다. 이때는 마음을 편안히 하여 아래쪽으로 향하고 대상에 집중하여 온갖 어지러운 생각들을 억제해 마음을 안정시킨다. 들뜸을 다스리기 때문에 아래로 향한다.

마음을 억지로 모으고 끊임없이 생각하고서는 이를 인연해 여덟 가지 선정을 얻기를 바라면 마음과 기가 위로 향하게 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하고 통증이 생기는데 이것을 급한 모습(急相)이라 한다. 이때는 그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 기가 아래로 흐르는 것을 상상하면 병이 저절로 낫는다. 마음은 기를 통솔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기가 따르는 법이니, 마치 구름이 용을 따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기를 움직여 온갖 병을 다 치료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마음이 방만하게 늘어지고 몸은 힘 빠진 뱀 같으며 입에서 침을 흘리기도 하고 마음이 혹 캄캄해지는 것을 느낀다면, 이것은 느슨한 모습(寬相)이다. 이때는 몸을 추스르고 생각을 거둬 마음을 대상 가운데 머물게 해야 한다. 무릇 좌선할 때에는 몸과 호흡과 마음 이 세 가지가 조절되고 있는지, 조절되고 있지 않은지를 잘 알아야 한다. 어긋나는 현상이 없도록 하고 융화하여 둘이 되지 않게 하면 숙환을 없앨 수 있고 어떤 방해도 없게 되어 선정의 도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선정에서 나오고 싶을 때에는 마음을 다른 대상에 풀어 놓고, 입을 열어 기를 토하며, 호흡이 모든 맥으로부터 뜻을 따라 흩어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런 뒤에 몸을 조금씩 움직이고 어깨·머리···발을 차례로 운동하여 모두 유연하게 한다. 손으로 모든 모공을 두루 쓰다듬고 두 손을 비벼 따뜻하게 해서 두 눈을 덮은 후에 눈을 뜬다. 몸의 열과 땀이 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마음대로 출입해도 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안정된 마음을 얻은 뒤 갑자기 나오면 미세한 법이 흩어지지 않고 몸에 머물게 되어 두통이 생기고, 중풍으로 고생하는 것처럼 뼈마디가 저리고 뻣뻣해진다.

 

若坐時心中昏暗無所記錄頭好

低垂者是爲沈相爾時當繫念鼻端

令心住在緣中無令散意此可治沈

緣中如繫心臍間者臍間爲緣中數息者以數爲緣不淨觀者以觀爲緣五處爲緣亦皆如此今欲治

繫心鼻端者使高以擧之也住在緣中者令勿失本緣也若心神飄動

念在異緣者是爲浮相爾時宜安心向

下係緣制諸亂想令心定住治浮故向下也

撮心用念望得因此八定是故心氣上

胷臆急痛是爲急相爾時當寬放

其心想氣流下則患自差矣心者氣之帥也心之所存

氣即從焉如雲從龍故以心運氣通治百病是也若覺心志遊漫

好萎蛇口或涎流心或晦昧者是爲

寬相爾時當歛身攝念令心住在緣中

凡坐禪之中當善識身息心三事調

不調相無相乖越和融不二則能除

宿患無有妨礙定道剋成也若欲出

放心異緣開口放氣想息從百脉

隨意而散然後微微動身肩胛頭頸手

次第運動悉令柔輭以手徧摩諸

毛孔又摩手令煖以掩兩眼然後

待身熱汗稍歇方可隨意出入

不爾者或得住心出旣斗促則細法

未散住在身中令人頭痛骨節麻强

 

 

또 나중에 좌선하고자 할 때도 번열에 들뜨고 조급해 안정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선정에서 나올 때 조절하는 법이라 한다. 선정에 들어갈 때는 거친 것에서 미세함으로 들어가고, 선정에서 나올 때는 미세함에서 거친 것으로 나온다. 몸이 거친 모습이고, 호흡이 그 중간이며, 마음이 가장 미세한 것이다. 수행자는 이것을 꼭 알아야 한다.

34장 다섯 가지 법을 행함

행해야 할 다섯 가지 법은 첫째 법욕法欲, 둘째 정진精進, 셋째 법념法念, 넷째 교혜巧慧, 다섯째 일심一心이다. 이 다섯 가지 법에 빠짐이 없으면 공부가 날로 진전된다.

첫째, 법욕法欲이란, 수행자가 처음 선을 닦을 때 욕계로부터 나와서 초선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의지이고 서원과 즐거움을 성취하려는 마음이지, 심식을 일으켜 희망하고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희망으로 생각을 일으킨다면 마음이 맑고 고요하지 않으므로 어떤 삼매도 생길 수 없다.

둘째, 정진精進이란 몸으로 하는 정진과 마음으로 하는 정진을 말한다. 십이두타행을 실천하며열두 가지란 첫째 아란야에 거처하는 것, 둘째 항상 걸식하는 것, 셋째 차례대로 걸식하는 것, 넷째 한 번만 먹고 거듭 먹지 않는 것, 다섯째 발우의 음식만으로 만족하는 것, 여섯째 정오가 지나면 과일즙이나 꿀물도 마시지 않는 것, 일곱째 떨어진 옷을 입는 것, 여덟째 옷은 중의重衣·상의上衣·내의內衣 세 벌만 가지는 것, 아홉째 묘지에 거주하는 것, 열째 나무 아래 머무는 것, 열한째 노지露地에 앉는 것, 열두째 앉기만 하고 눕지 않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모든 불선법不善法을 떨어내고, 두타는 떨어낸다는 뜻이다. 항상 방일하지 않으며 청정하게 계를 지키고, 오개五蓋를 버리고 초저녁과 새벽녘에도 오로지 정진하며 그치지 않는다. 비유하면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킬 때 불이 일어나지 않으면 끝까지 그만두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것을 정진이라 한다.

셋째는 법념法念이다. 욕계는 더럽고 거짓된 속임수며 천하다고 생각하고, 초선은 존중하여 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육행관六行觀과 내용이 같다. 육행관이란 아래의 괴로움(추함(장애() 세 가지 법을 싫어하고, 위의 수승함(묘함(벗어남() 세 가지 법을 반연하는 것이다.

 

猶如風勞後欲坐時煩躁不安此爲

出定調法入定時從麤入細出定時

從細出麤身爲麤相息居其中心最爲細行者須當知之

行五法第三十四章

行五法者一曰法欲二曰精進三曰

法念四曰巧慧五曰一心此五法不

則工夫日進矣

第一法欲者行者初修禪時欲從欲

界中出欲得初禪此乃大志成就願

樂之心非其起心希望憶想之念若希

望起念心不澄靜則諸三昧無有得發

第二精進者一謂身精進二謂心精進

如頭陁行十二事十二事者一阿蘭若處二常行乞食三次第乞食四受一

食法五節量食六中後不飮漿七著弊衣八但三衣九塚間住十樹下止十一露地坐十二常坐

不臥抖擻身心諸不善法頭陁此云抖擻常不放逸

持戒淸淨棄捨五蓋初夜後夜專精

不廢譬如鑽火未燃終不休息是名

精進也

第三法念者念欲界不淨欺誑可賤

念初禪爲尊重可貴也此與六行意同

六行觀者厭下之苦麤障三法攀上

 

 

아래를 싫어한다는 것은 수행자가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과보로 욕계의 몸을 받아 굶주림·목마름·추위·더위·질병·폭력 등 온갖 법의 핍박을 받으니,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 몸은 똥·오줌 등 서른여섯 가지 냄새나고 더러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것은 추한 것()이다. 이 몸의 바탕은 둔하고 자재하지 못해 산과 강, 돌과 벽에 막히니, 이것은 장애()이다.”

위를 반연한다는 것은 수행자가 이렇게 사유하는 것이다.

색계는 아주 즐거운 곳이다. 이 즐거움을 저 괴로움과 견줘 보면 이것이 수승한 것()이다. 색계의 기이한 몸을 받으면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형체는 있으나 질감이나 걸림이 없으니, 이것은 묘한 것()이다. 오신통을 얻어 장애물의 바깥까지 꿰뚫어 보고 산과 벽 등에 막히지 않으니, 이것은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범부의 관법이다. 무릇 욕망을 여의려고 늘 되새겨야 비로소 묘해질 수 있다.

넷째, 교혜巧慧란 욕계의 즐거움과 초선의 즐거움을 가늠하여 어느 것이 이득이고 어느 것이 손해인지, 어느 것이 무겁고 어느 것이 가벼운지를 잘 재어 보는 것이다. 헤아려 보고 나면 싫어하거나 흠모하는 마음이 실제로 생기므로 공부가 더욱 진전된다. 혹자는 방편을 잘 알아서 적절하게 사용하고, 그 마땅함을 잃지 않아 속히 선정을 얻는 것을 교혜라 한다.”고 하였다.

다섯째는 일심一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가고자 할 때 어느 길이 막히고 통했는지를 알아 의심이 없다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제 교혜로 헤아려 보고 마음 씀씀이에 오류가 없다면 그저 오롯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행해야 한다.

35장 삼지三止

무릇 도를 닦고자 하면 먼저 지를 수행해야 한다. 지란 편안하고 조용히 하며 그치고 고요히 하여 선정에 드는 것이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 둘째는 제심지制心止,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대개 모든 선문의 공덕은 다 안으로 안정된 데서 생기는데,

 

之勝妙出三法厭下者行者思惟

今感此欲界報身爲飢渴寒熱病痛刀

杖等種種諸法之所逼迫是爲苦也

此身爲三十六物屎尿臭穢之所成

爲麤也此身質鈍不得自在爲山河

石壁之所隔礙是爲障也攀上者

惟色界甚樂以樂況苦是爲勝也

得色異身如鏡中像雖有形色無有

質礙是爲妙也獲得五通徹見障外

山壁不隔是爲出也然此是凡夫觀法

若夫離欲爲念方始爲妙也

第四巧慧者籌量欲界樂與初禪樂

孰得孰失孰重孰輕籌量旣成厭慕

實生故工夫益進也或曰善識方便

巧而用之不失其宜疾得禪定是名

巧慧也

第五一心者如人欲行道路通塞

知無疑則一心而去今巧慧籌量

心無謬但當專心守一而行也

三止第三十五章

夫欲修道先須修止止者安靜止寂

而入定也一曰繫緣止二曰制心止

三曰軆眞止蓋一切禪門功德皆內定

 

 

지는 마음을 제어하고 산란함을 그침으로써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경에서 제어하여 한곳에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34)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지는 선을 닦는 첫 번째 문이다.

사람들의 스승이 된 자가 만일 도안道眼을 얻은 뒤 근기를 관찰하고 법을 가르쳐 준다면 반드시 본습本習을 북돋우고 대치하는 법을 잘 알 것이다. 본습이란 숙세에 익힌 것이다. 그가 익혔던 것을 바탕으로 법을 가르쳐 주면 공부가 쉽게 이루어진다. 사리불은 근기와 인연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금사자金師子35)에게 부정관不淨觀을 가르치고, 완의자浣衣子36)에게 수식관數識觀을 가르쳐, 오랫동안 익혀도 아무런 효과가 없고, 도리어 사견만 생기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한번 보시고 서로 바꾸어서 수행하도록 가르쳐, 곧 도를 이루게 하셨다.37) 이것을 본습을 북돋우는 것이라 한다.

나머지 사람들, 즉 도의 안목이 없고 근기를 알지 못하는 스승일 경우엔 모름지기 먼저 지의 문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리하여 번뇌의 생각들이 점차 잦아들고 도의 마음이 점차 늘어나면 곧 홀연히 선정 가운데에서 선과 악의 근성이 일어나게 된다. 선근이 일어날 때에는 그 나타난 근성에 따라 본습을 북돋워서 닦고, 악의 경계가 나타날 때에는 많은 것부터 대치해 없앤다. 이러한 까닭에 지의 문은 후세 사람들에게 법을 가르쳐 주는 바른 뜻이 된다. 진실로 그렇지 못할 경우 선과 악의 근기를 분별하기가 어려워 인연에서 벗어나는 실수를 저지를까 걱정된다.

첫째는 계연지繫緣止이다. ‘란 마음을 한곳에 붙들어 두어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매어 두는 곳에 대략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이며, 셋째는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이고, 넷째는 마음을 배꼽 사이에 매어 두는 것이며, 다섯째는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이다.

(첫째) 마음을 정수리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어둡고 가라앉으면 잠이 많아지므로 머리 위쪽에다 마음을 안치한다. 그러나 오래 하면 사람의 기운을 들뜨게 해 갑자기 중풍이 든 것처럼 되기도 하고, 신통을 얻어 날 것만 같기도 하니 항상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마음을 이마 끝단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여기는 머리털은 검은색이고, 살은 흰색이어서 마음이 머물기 쉬우며 숙세에 익힌 백골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하면 눈이 위쪽으로 쏠리기 쉽고,

 

中發生止者制心息亂定而不動

制之一處無事不辦是故止爲修

禪之初門也凡爲人師者若已得道眼

觀機授法則必扶本習善識對治本習者

宿世所習也因其習而授法則功夫易成也如舍利弗不知機緣

敎金師子以不淨觀敎浣衣子以數

久習無功欲生邪見如來一見

令相換即得成道是謂扶本也至如

餘人旣無道眼不識根機則唯當先

敎止門塵想稍歇道心稍長則忽於

定中發善惡根性善根發時隨其所

扶本而修惡境現時隨其多者

治而除 是故止門爲後世授法之正意

苟或不然善惡根機難可分別恐致

差緣之失也

第一繫緣止者繫即住著於此不使移

動也略有五處一者繫心頂上二者

繫心髮際三者繫心鼻柱四者繫心臍

五者繫心在地輪

繫心頂上者爲心惛沈多睡故在上安

然久則令人氣浮乍如風病或似

得通欲飛不可恒用也

繫心髮際者此處髮黑肉白心則易住

或發本骨觀然久則眼好上瞻或見黃

 

 

혹은 꽃이나 구름 같은 노란색, 빨간색 등이 보여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전도시키니, 또한 항상 사용해선 안 된다.

(셋째) 마음을 콧등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코는 바람이 드나드는 곳이다.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지각하면 무상을 깨닫기 쉽다. 또한 숙세에 안반安般을 익혔던 것을 북돋워안은 생이고 반은 멸이다. 안반이란 수의삼매守意三昧로서 호흡이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져 능히 선정을 일으킬 수 있다.

(넷째) 마음을 배꼽 아래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배꼽은 기의 바다(氣海)이며, 또한 중궁中宮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배꼽에 매어 두면 여러 가지 병을 없앨 수 있고, 혹은 안으로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볼 수 있어 십육특승 등의 선정이 생긴다.

(다섯째) 마음을 발바닥에 매어 두는 것은 다음과 같다. 발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기운이 마음을 따라 내려가면 사대가 조화로워지고, 또 숙세에 익힌 부정관을 북돋우게 된다.

이 다섯 곳을 대상으로 삼아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비유하면 원숭이는 뛰어오르고 건너뛰고 집어 던지며 잠시도 조용히 있을 때가 없지만, 만약 기둥에 매어 두어 오래 지나면 저절로 길드는 것과 같다. 마음 또한 이와 같다. 마음이 멈추어 머무르긴 했으나 아직 선정에 들어가기 전인 때에, 다시 하나의 지가 있으니 이것을 응심지凝心止라고 한다. 만약 선정에 들어가 몸과 마음이 모두 사라진 듯 자유자재하고 저절로 고요해지면 이것이 곧 선정에 들어간 지이다.

둘째는 제심지制心止이다. 마음은 형체와 색깔이 없고 일정하게 머무는 곳도 없는데 어찌 경계에 매어 둘 수 있겠는가. 이것은 허망한 생각으로 대상을 반연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반드시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만약 마음이 고요하게 머무른다면 다시 억제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저 그 마음을 집중하여 여러 어지러운 생각을 그치기만 하면 곧 이것이 지를 닦는 것이다. 만약 마음이 들뜨고 요동치면 의지로써 마음을 아래에 두어 그치게 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위에 두어 그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아래에 두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이익이 많으니, 첫째 마음이 쉽게 안정되고, 둘째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

셋째는 체진지體眞止이다. 바른 지혜로써

 

赤等色如華如雲令人情想顚倒

不可恒用也

繫心鼻柱者鼻是風門覺出息入息

念念不住易悟無常亦以扶本安般之

安者生也般者滅也安般者守意三昧觀息生滅也心靜能發禪

定也

繫心臍下者臍是氣海亦曰中宮

心在臍能除衆病或能內見三十六物

發特勝等禪也

繫心地輪者此最在下氣隨心下

四大調和亦以扶本不淨觀也

約此五處爲緣令心不散譬如猨猴

騰躍跳擲無時暫靜若繫之於柱

久自調心亦如是若心停住未入定

復有一止名凝心止若得入定

心泯然任運自寂即是入定止也

第二制心止者心非形色亦無處所

豈可繫之在境但是妄想緣慮故須制

若心靜住何須更制但凝其心

諸亂想即是修止若心浮動可作意

下著止之若心沈沒可上著止之

下著安心利益爲多一者心易得定

二者衆病不生也

第三體眞止者以正智慧軆一切陰入

 

 

···삼독三毒·구십팔사九十八使·십이인연十二因緣·삼계인과三界因果 등 모든 법이 다 공적하다고 체득한다.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설한 것처럼,38) 색이 그대로 공이요, 색을 멸하여 공한 것이 아니다.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니 공이 곧 색이고, 색이 곧 공이며, 색을 떠나서 공이 없고, 공을 떠나서 색이 없다. ···식 등 일체 모든 법이 또한 이와 같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음··계 등의 모든 법은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아··중생衆生·수명壽命39) 등 일체의 전도된 생각을 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공이라는 것을 아는가?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모든 법은 다만 무명으로 전도되어 허망하게 헤아린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허망하게 헤아려 생긴 법은 일체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 꿈이나 허깨비와 같고 이름만 있는 것인데, 이름이라는 법 또한 얻을 수 없음을 깨달으면 곧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의 작용 또한 없어지며 마침내는 텅 비고 고요하여 허공과 같아진다. 만일 수행자가 일체법이 허공과 같다고 체득하여 안다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무는 것도 집착하는 것도 없게 된다. 마음에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고 머물고 집착하는 것이 없으면, 곧 일체의 전도망상과 생사에 묶어 두는 업을 짓는 일이 모두 다 그친다. 하는 것도 하고자 함도 없고, 생각이나 행위도 없으며, 만들거나 짓는 것도 없고, 보여주거나 말함도 없으며, 논쟁이나 다툼도 없어서 텅 빈 듯이 청정해지니 마치 대열반과 같다. 이를 참된 지(眞止)’라고 한다. 이는 그칠 바 없는 것을 그치는 것이요, 그침 없이 그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체진지이다.

다음으로 지를 닦으면 오륜五輪이 발생하는 것을 증득한다. 오륜이란 첫째 지륜地輪, 둘째 수륜水輪, 셋째 풍륜風輪, 넷째 금사륜金沙輪, 다섯째 금강륜金剛輪이다. ‘이란 구른다는 뜻으로 이곳을 떠나 저곳에 도착하는 작용이 있다. 예를 들면 지륜의 경우 낮은 곳을 떠나 굴러서 더 높은 곳에 이르고, 내지 금강륜은 굴러서 가장 높은 무학과無學果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윤이라고 한다.

 

三毒九十八使十二因緣及三界

因果諸法悉皆空寂如大品經中說

即色是空非色滅空色性自空空即

是色色即是空離色無空離空無色

受想行識等一切諸法亦皆如是所以

者何今現見陰入界等諸法自性不有

何能生我人衆生壽命等一切諸顚倒

云何知空過去心不可得現在心

不可得未來心不可得當知諸法

是無明顚倒妄計若了知妄計之法

切虛誑猶如夢幻但有名字名字之

亦不可得則言語道斷心行處滅

畢竟空寂猶如虛空若行者軆知一

切法如虛空者無取無捨無住無著

若心無取捨住著則一切妄想顚倒

死業行悉皆止息無爲無欲無念無

無造無作無示無說無諍無競

然淸淨如大涅槃是名眞止此則止

無所止無止之止名軆眞止也

復次修止證發五輪一曰地輪二曰

水輪三曰風輪四曰金沙輪五曰金

剛輪輪者轉也有離此至彼之功

地輪因離下地轉至上地乃至金剛

轉至無學極果故名爲輪也

 

 

지륜地輪이란 다음과 같다. 땅에는 머물고 지탱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생겨나게 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지로 인하여 미도지정을 증득하면 홀연히 마음이 맑아지고 몸과 마음의 상이 공한 것을 자각하여 텅 빈 듯이 선정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선정법이 마음에 유지되어 움직이지 않으므로 머물고 지탱한다고 한다. 미도지정으로 인해 초선의 여러 가지 공덕이 생겨나는 것이 땅에서 만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므로 지륜이라고 한다.

수륜水輪이란 다음과 같다. 물은 윤택하게 적시어 생장시킨다는 뜻이 있고, 또한 체성이 유연하다. 수행자가 지륜의 단계에 있다가 수륜삼매를 증득하면 선정의 물이 마음을 적셔 주어 마음 가운데 선근이 늘어나고,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만심을 꺾고 선법을 잘 따르기 때문에 수륜이라고 한다.

풍륜風輪이란 다음과 같다. 바람에는 허공을 돌아다녀도 걸림이 없다는 뜻이 있고, 또한 만물을 움직이게 하며 능히 파괴하는 이치가 있다. 수행자가 풍륜삼매風輪三昧를 얻으면 궁극의 깨달음과 비슷한 지혜(相似智慧)와 걸림 없는 방편(無礙方便)이 발생해 바람이 허공을 돌아다니듯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된다. 이런 방편의 도로 세간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선근을 일으키고, 또한 지혜의 방편으로 온갖 견해와 번뇌를 타파하므로 풍륜이라고 한다.

금사륜金沙輪이란 다음과 같다. ‘은 참된 마음을 비유하고, 모래()는 집착이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수행자가 견혜見慧40)와 사혜思慧41)의 참된 지혜를 일으키면 물들지도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그리하여 삼도三道의 과42)를 얻어 일체의 티끌과 같은 번뇌를 타파하므로 금사륜이라고 한다.

금강륜金剛輪이란 다음과 같다. 금강은 체성이 굳고 작용이 예리하여 모든 물건을 부술 수 있다. 금강삼매金剛三昧도 이와 같아 망상과 미혹이 침범하지 못하고 모든 번뇌를 끊어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이루게 한다.

 

所謂地輪者地有住持不動義亦有出

生萬物義行者因止若證未到地定

忽然湛心自覺身心相空泯然入定

定法持心不動故名住持因未到地

出生初禪種種功德事同出生萬物

故名地輪也

所謂水輪者水有潤漬生長義亦有軆

性柔輭義行者於地輪中若證水輪三

則定水潤心自覺心中善根增長

身心柔輭折伏高心隨順善法故名

水輪也

所謂風輪者風有遊空無礙義亦有鼓

動萬物義亦能破壞行者得風輪三昧

則發相似智慧無礙方便如風遊空

一切無礙以方便道鼓發種種出世善

又以智慧方便摧破一切諸見煩惱

故名風輪也

所謂金沙輪者金譬眞心沙喩無著

行者若發見思眞慧無染無著得三

道果能破一切塵沙煩惱故名金沙輪

所謂金剛輪者金剛体堅用利能摧

碎諸物金剛三昧亦復如是不爲妄

惑所侵能斷一切結使成阿羅漢

 

 

만일 보살의 마음을 가졌다면 곧 이 금강과 같은 반야로 무명의 미세한 미혹을 타파하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증득할 것이다. 또한 청정선淸淨禪이라고도 한다.

36장 선정 중에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증험함

수행자가 지법止法을 잘 닦아 온갖 산란한 생각들을 그치면 곧 그 마음이 맑고 고요해지며,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숙세의 선악근성이 자연히 나타나고 일어난다. 경전에서 먼저 선정으로 움직이게 한 뒤에 지혜로 없애 버린다.”43)고 하였다. 마음이 이미 지를 얻으면 선과 악, 두 가지 가운데 반드시 한 가지가 나타나니, 반드시 잘 분석해야 한다.

누군가 어째서 마음이 고요해지면 업으로 익힌 것이 나타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것은 병이 극심할 때는 심한 증상만 보이고 다른 병은 알지 못하다가 병이 점점 나으면서 잡다한 증세들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들은 무명이 깊고 두터워 그 업이 익힌 대로 부림을 당하면서도 알거나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마음과 생각이 청정해져 부림을 받지 않으므로 그 업이 발현하는 것이고, 또 마음에 의해 단련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 내방편內方便의 제2절에 해당하는데 여기에서는 선근善根 2장과 악근惡根 2장으로 나누었다.

선근의 성품을 증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정 중에 홀연히 나타나는 여러 가지 좋은 경계를 말한다. 여기에는 내, 외의 두 가지가 있다.

바깥으로 선근善根이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한가? 여러 가지 보물이 보이는데 아끼거나 탐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와 금생에 보시를 행한 습과 보44)이다. 혹은 그 모습이 단엄하고 깨끗한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지계와 인욕을 행한 습과 보이다. 혹은 부모나 스승, 가족들을 보고 환희하며 공경하기도 하는데, 이는 효도를 행한 습과 보이다. 혹은 절··불경·불상에 공양하고 장식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삼보를 공경하고 믿은 습과 보이다. 혹은 삼장을 해석하고 그에 따라 곧 깨닫기도 하는데 이는 불경을 독송하고 설법을 들은 습과 보이다.

무릇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좋은 모습이 보이는 것은 대부분 보인報因의 상이 나타난 것이며,

 

在菩薩心即是金剛般若破無明細惑

證一切種智亦名淸淨禪也

定中驗善根發相第三十六章

行者善修止法息諸亂想則其心澄靜

以心靜故宿世善惡根性自然開發

經云先以定動後以智拔心旣得止

則善惡二事之中必有其一須當辨析

或問曰云何心靜故業習出現曰如

病劇時但見重症不知他症及病稍

雜症交發世人無明深厚爲其業

習之所使而不知不覺矣今心慮淸靜

不爲所使故現發亦爲心所鍊故露出

此即內方便中第二節而分爲善根

二章惡根二章

云何驗善根性謂於定中忽見種種善

境界此有內外二種何謂外善根發相

如見種種物寶心無慳貪者此過去今

生布施習報或見自身相端嚴淸潔者

此戒忍習報或見父母師僧眷屬而歡

喜恭敬者此孝順習報或見寺塔經像

供養莊嚴者此敬信三寶習報或解釋

三藏隨即開悟者此讀誦聽說習報

夫見此種種好相者多是報因相現

 

 

여러 가지 좋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대부분 습인習因의 선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모습은 모두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또한 마사魔事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만 한다.

만일 수행자의 심식을 어지럽히거나 혹은 번뇌를 증가시켜 핍박하고 가리는 등 선정의 마음에 이롭지 않다면 이는 곧 마이다. 만약 몸에 색력이 있고 마음에 선한 생각이 일어나 심신心神이 쉽게 다스려짐을 자각하며 신체가 편안하고 아픈 곳이 없다면, 이는 선근이 나타난 모습이다.

또 보인의 모습은 잠시 나타났다가 문득 사라지고 습인의 선은 상속하여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의 작용이라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없어졌다가도 다시 나타날 것이다. 또 그 선한 마음이 잠시 나타났다가 곧 없어지거나 때로 악한 생각으로 변하기도 한다면 이것은 모두 삿된 것이다. 이처럼 삿되거나 올바른 모습은 헤아리기가 아주 어려우므로 스스로 밝은 스승을 가까이하지 않고 망령되이 취해선 안 된다.

안으로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한가? 수행에는 다섯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 아나파나문阿那波那門, 둘째 부정관문不淨觀門, 셋째 자심관문慈心觀門, 넷째 인연관문因緣觀門, 다섯째 염불문念佛門이다. 다섯 문에 각기 세 가지 법이 있어 모두 열다섯 문이 되므로 나타나는 모습도 각각 다르다.

(첫째) 식문息門(阿那波那門)으로부터 선근이 모습을 드러내면 선정에 들었을 때 홀연히 몸과 마음이 고동치면서 여덟 가지 감촉이 차례로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기쁨과 즐거움과 안온함은 이루 비할 데가 없다. 이것은 수식문數息門으로부터 초선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이 나타난 뒤에 사선과 사공처정 등이 일어나는 데 이른다.

혹은 선정 중에 호흡이 출입하는 모습과 그 길고 짧음, 나아가 온몸의 모공이 허공처럼 트이는 것을 지각한다. 이로써 마음이 밝아져 창고를 열고 곡식을 보듯 몸 안의 서른여섯 가지 물질을 보면, 고요하고 편안하고 상쾌하며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특승관이다. 이는 수식문隨息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문득 내 몸의 호흡이 모공으로 드나들며 몸 전체에 걸림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

 

諸善心者多是習因善發也此等諸相

不可殫述而亦有魔事當善分別

令行人心識動亂或增煩惱逼迫障

不利定心者是魔也若身有色力

心發善念自覺心神易可攝錄身軆

安隱無患者此爲善根發相也且報因

之相暫現便謝習因之善相續不斷

若魔所作者久久不滅雖謝更來

善心暫發還滅或時變成惡念是皆邪

然邪正之相甚爲難測自非親近

明師不可妄取也

何謂內善根發相修行有五門一阿那

波那門二不淨觀門三慈心觀門

因緣觀門五念佛門五門中各有三

共爲十五門故發相各殊若從息

門中善根發相即於定中忽覺身心

運動八觸次第而起喜樂安穩不可

爲喩者此從數息門中發初禪善根之

如是發已乃至發四禪四空等定也

或於定中覺息出入長短及徧身毛孔

虛疎即以心明見身內三十六物如開

倉見糓寂靜安快心受喜樂者是爲

特勝此從隨息門中善根發相也

或於定中忽見自身氣息從毛孔出入

 

 

그러다 점점 밝고 예리해져 마치 비단을 사이에 둔 것처럼 여러 겹으로 된 살가죽을 보고 뼈와 살까지 보며, 굵고 가늘며 길고 짧은 몸 안의 팔만 마리 벌레를 보고 그 소리까지 듣게 된다. 이때 선정에 든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은 전보다 배나 된다. 혹은 자신의 몸이 마치 파초나 거품, 뜬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음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통명관이다. 이는 관식문觀息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둘째) 부정관문不淨觀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혹은 선정에 들어서 남녀의 시체가 불어 터지고, 퍼렇게 멍이 들고, 썩어 문드러지고, 벌레가 파먹고, 뼈만 남고, 바스러져 흩어지는 모습 등을 보게 된다. 이때 깜짝 놀라며 싫어하는 마음이 생겨 애착하던 오욕을 영영 가까이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구상九想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자신의 더러움과 부풀어 올랐다 낭자하게 허물어진 모습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백골 내지 뼈만 남은 사람이 휘황한 빛을 뿜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선정에 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오욕을 혐오하고 나와 남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배사背捨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자신의 몸이나 다른 이의 몸, 온갖 짐승··음식·나무 등도 모두 더러운 것을 보기도 하고, 혹은 한 집안·한 나라 내지 시방 모든 세계가 다 더러운 것을 보기도 하며, 혹은 백골이 빛을 내뿜는 등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는 대부정관大不淨觀인 승처勝處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 관이 생길 때 모든 집착하는 마음을 타파할 수 있다.

(셋째) 자심관문慈心觀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선정 중에 문득 자비로운 생각을 일으켜 먼저 가까운 사람을 반연하고 나아가 많은 사람에까지 미치며 그들이 다 즐거움을 얻는 것을 본다. 그러면 성냄이나 원한이 없어지고 무한히 넓어져 시방에 가득 차게 된다. 이것은 중생을 반연한 자심慈心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중생을 반연한 비심悲心 내지 희심喜心과 사심捨心 역시 이 모습과 같다.

 

徧身無礙漸漸明利如隔羅縠見皮

重數乃至骨肉亦見身內八萬戶蟲

麤細長短言語音聲定心喜樂倍於

上說或見自身猶如芭蕉聚沫雲影者

是爲通明觀此從觀息門中善根發相

若從不淨觀門中善根發相或於定中

忽見男女死屍肨脹靑瘀膿爛噉殘白

骨壞散等相爾時驚悟心生厭離

愛五欲永不親近者此爲九想善根發

相也

或見自身不淨肨脹狼藉或見自身白

乃至骨人光明昱燿而定心安穩

厭患五欲不著我人者此爲背捨善根

發相也

或見內身外身一切禽獸衣食林木

悉皆不淨或見一家一國乃至十方

悉皆不淨或見白骨光燿等相者此爲

大不淨觀勝處善根發相此觀發時

破一切著心也

若從慈心觀門中發者定中忽發慈念

先緣親人乃至多人悉見得樂而無

瞋恨怨惱之心廣大無量徧滿十方者

是爲衆生緣慈善根發相衆生緣悲

 

 

혹은 선정 중에 안팎의 일체에는 음과 입의 법만 있을 뿐이라서 생기는 것도 오직 법이 생기는 것이고 없어지는 것도 오직 법이 없어지는 것임을 지각한다. 이로써 중생이라든지 또는 나의 것을 보지 않으니, 단지 오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음受陰에 즐거운 느낌이 있으면 이 즐거운 느낌을 반연하여 자심의 선정을 일으켜 원한을 없애고 성냄을 없애며 무한히 확장시킨다. 이것은 법을 반연한 자심이다. 혹 법을 반연한 비심 내지 희심과 사심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역시 이와 같은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일체 모든 법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님을 깨달아 양 극단을 보지 않기도 한다. 즉 중생이건 중생이 아니건 법이건 법이 아니건 그 모두를 얻을 수 없어 반연할 것이 없다. 반연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전도된 생각이 그쳐서 고요하고 안락해지며, 마음이 자심의 선정과 상응하여 일체가 이와 똑같이 안락하다고 평등하게 관찰하게 된다. 그리하여 성냄과 고뇌를 없애고 무한히 확장시킨다. 이것은 반연함이 없는 자심의 모습이다. 비심 및 희심과 사심 역시 이와 같은 모습이다.

(넷째) 인연관문因緣觀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선정 중에 홀연히 자각하는 마음이 생겨 삼세三世를 미루어 살펴보면 과거의 무명 이래로 아상·인상을 찾아볼 수 없고, 무명 등의 법은 단절되는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다. 이로써 육십이사견六十二邪見의 그물을 찢고 마음에 올바른 선정을 얻게 되어 안온하고 고요해진다. 또한 관하는 지혜가 분명해지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몸과 입으로 짓는 행위가 청정해지고 바른 행이 성취된다. 이것은 삼세三世 십이인연을 관찰하는 지혜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심식이 밝고 예리해짐을 느끼면서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

내가 처음 생길 때 부모의 몸 일부를 빼앗아 내 것이라 여겼으니, 이를 가라라歌羅邏라 한다. 가라라 때를 무명이라 하고, 이를 반연하여 행과 식내지 노사老死가 있게 되었으니, 이를 십이인연이라 한다.

 

至喜捨亦同此相也

或於定中自覺一切內外但有陰入之

起惟法起滅唯法滅不見衆生

我我所但有五陰而於受陰中有樂

緣此樂受而發慈定無瞋恨無怨

廣大無量者是爲法緣慈或發法

緣悲乃至喜捨亦同此相也

或於定中忽悟一切諸法非有非無

不見二邊所謂若衆生非衆生若法非

皆不可得則無所緣以無緣故

倒想息寂然安樂心與慈定相應

觀一切同此安樂無瞋無惱廣大無

是爲無緣慈相悲及喜捨亦同此

相也

若從因緣觀門中發者定中忽然覺悟

心生推尋三世過去無明以來不見我

無明等法不斷不常能破六十二

種邪見網得心正定定隱寂然觀慧

分明通達無礙身口淸淨正行成就

此爲三世十二因緣觀慧善根發相也

若於定中忽覺心識明利即自思惟

我初生時攬父母身分以爲己有

曰歌羅邏歌羅邏時名曰無明因緣

則有行識乃至老死名爲十二因緣

 

 

그러나 가라라 때에는 단지 세 가지(··)의 화합이 있을 뿐 나도 없고 남도 없다. 이 세 가지도 오히려 참되지 않은 것인데 무명 등 십이인연이 끝내 어디에 의거하겠는가. 만일 무명 등 모든 법을 찾아볼 수 없다면 진정 이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와 같이 되새길 때 유무有無의 두 견해를 타파하고 마음을 정도로 돌이켜 바른 선정과 상응하고 지혜와 앎이 개발된다. 이것은 과보果報 십이인연을 관찰하는 지혜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찰나의 (생멸하는) 마음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성품에는 본래 알맹이가 없음을 지각하기도 한다. 무엇 때문인가? 한 생각이 일어날 때는 반드시 인연을 바탕으로 한다. 인연이란 곧 십이인연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연에 자성이 없는데 어떻게 한 생각에 정해진 알맹이가 있겠는가? 이미 한 생각의 알맹이를 얻지 못한다면 곧 세간의 성품에 대한 삿된 집착을 깨뜨려 마음이 바른 선정과 상응하고 지혜가 샘솟듯 개발된다. 이것은 일념一念 십이인연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다섯째) 염불문念佛門으로부터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게 된다.

여래께서는 과거 아승기겁 동안 중생들을 위해 온갖 만행을 빠짐없이 닦았기 때문에 몸에서 광채가 나고 지혜가 원만하며 마귀와 원수를 항복시킬 수 있었다.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아 자신도 깨닫고 남도 깨닫게 하며 바른 법륜을 굴려 널리 일체중생을 제도하셨으며, 열반에 드신 뒤에는 사리舍利와 경전의 가르침을 남겨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셨으니, 이러한 공덕은 한량없고 끝도 없다.”

이로써 경애하는 마음이 생기고 삼매가 개발되며 선정에 들어 안락하게 된다. 혹은 선정 중에 부처님 상호를 보거나 설법을 들어 마음이 맑아지고 믿음과 이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것은 응신불(應佛)을 염하는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시방 제불의 진실하고 원만한 과보로서의 몸을 생각하게 된다.

“(그 몸은) 고요히 상주하며 색과 마음이 청정하고 미묘하면서 적멸하다.

 

歌羅邏時但有三事和合而無人無

三事尙且不實無明等十二因緣

竟何所依若不見無明等諸法定是有

者耶無者耶如是念時破有無二見

歸心正道正定相應慧解開發此爲

果報十二因緣觀智善根發相也

若於定中忽然自覺刹那之心無人

無我性本無實所以者何一念起時

必藉因緣言因緣者即具十二緣

緣無自性一念豈有定實旣不得一念

之實即破世性邪執心與正定相應

而智慧開發猶如湧泉是爲一念十二

緣善根發相也

若從念佛門中善根發相者或於定中

忽然憶念佛之功德如來往昔阿僧祗

刼中爲諸衆生備修萬行故得身相

光明智慧圓滿降伏魔怨無師自悟

自覺覺他轉正法輪普度一切入涅

槃後舍利經敎廣益衆生如是功德

無量無邊敬愛心生三昧開發入定

安樂或於定中見佛相好聞佛說法

心淨信解者是爲念應佛發相也

或於定中忽念十方諸佛眞實圓滿果

報之身湛然常住色心淸淨微妙寂

 

 

공덕과 지혜가 법계에 충만하고 생기거나 멸하지 않으며 일부러 짓는 일도 없다. 그러니 어찌 왕궁에 태어나고 사라쌍수에서 멸도하신 일이 있겠는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생멸을 보이신 것뿐이다.”

혹은 선정 중에 불가사의한 불법의 경계를 보고 곧 한량없는 원행과 한량없는 지혜와 삼매법문이 생기기도 한다. 이것은 보신불(報佛)을 염하는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 중에 홀연히 제불 법신의 실상이 마치 허공과 같음을 생각하고는 곧바로 다음과 같이 깨닫게 된다.

일체의 법이 본래 생기지도 않았고 지금 또한 멸하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경계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며, 인도 아니고 과도 아니며, 영원한 것도 아니고 단절하는 것도 아니며, 계박된 것도 해탈한 것도 아니며, 생사도 아니고 열반도 아니다. 맑고 청정하여 성과 상이 항상 그러하고 중생과 제불이 동일한 실상이니, 이것이 곧 법신불이다. 모든 법이 참 그대로여서 곧 부처이니, 이것을 떠나 따로 특별한 부처는 없다.”

이렇게 되새길 때 삼매가 앞에 나타나 실상의 지혜(實慧)가 개발되고 한량없는 법문을 통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고요히 부동하여 불가사의한 경계가 모두 선정 중에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법신불(法佛)을 염하는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37장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의 진위 판별

선정 중에 각 선정의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에는 참된 것도 있고 거짓인 것도 있다. 따라서 마땅히 잘 구별해야지 잘못 취하거나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의 선정을 보고 선근이라 여겨 마음에 취착이 생기면 이 삿된 치우침으로 인해 병이 생기거나 정신이상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선근을 마의 선정이라고 의심하면 곧 좋은 이익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때 그 모습으로 삿됨과 바름을 검증하고, 법으로써 허와 실을 시험해야 한다.

모습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功德智慧充滿法界不生不滅

作無爲豈有王宮之生雙樹之滅

化衆生現示生滅也或於定中見不

可思議佛法境界即便出生無量願行

無量智慧三昧法門者是爲念報佛發

相也

或於定中忽念諸佛法身實相猶如虛

即便覺悟一切諸法本自不生

亦不滅非有非無非來非去非增非

非境非智非因非果非常非斷

縛非脫非生死非涅槃湛然淸淨

相常然衆生諸佛同一實相者即是

法身佛也諸法如實即是佛離是之外

更無別佛如是念時三昧現前實慧

開發通達無量法門而寂然不動

思議境界皆現定中者是爲念法佛發

相也

辨善根發相眞僞第三十七章

定中諸禪善根發相有眞有僞當善分

不可謬生取捨若見魔定謂是善

心生取著則因此邪僻得病發狂

若以善根疑謂魔定則便失善利

時當以相驗邪正法試虛實云何相驗

 

 

간략하게 열 쌍의 삿된 모습을 제시하겠다. 첫째는 감촉의 지나침과 모자람, 둘째는 안정됨과 산란함, 셋째는 없음과 있음, 넷째는 밝고 어두움, 다섯째는 근심과 기쁨, 여섯째는 괴로움과 즐거움, 일곱째는 선과 악, 여덟째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아홉째는 묶임과 해탈, 열째는 강함과 연약함이다. 무릇 이러한 삿된 법은 지나친 것이거나 알맞음에 미치지 못한 것이니 잘 분별하라.

움직이는 감촉(動觸)이 생길 때, 몸과 손이 어지러이 움직이거나 혹은 잠에 빠진 듯 꼼짝도 하지 않거나, 혹은 각종 이상한 경계가 보이는 경우는 지나친 모습(增相)’이다. 혹은 감촉이 생겨도 몸에 두루 퍼지지 못한 채 곧 사라져 버리고, 이로 인해서 선정의 경계를 잃어버려 쓸쓸하고 무료하며 몸을 지탱하는 법(持身法)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모자라는 모습(減相)’이다.

몸과 마음이 선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고 혹은 이로 인해 선정에 들어가서 이레가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삿되게 안정된 모습(邪定相)’이다. 혹은 마음과 뜻이 어지러워 반연하는 대상에 머물지 못하는 것은 산란한 모습(亂相)’이다.

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두고 공처정을 증득했다고 여기는 것은 없는 모습(空相)’이다. 혹 몸이 나무나 돌처럼 단단하게 느껴지면 이는 있는 모습(有相)’이다.

밖으로 갖가지 빛과 형상을 보거나 몸과 마음이 암실에 들어간 것처럼 어두운 것은 밝은 모습(明相)’어두운 모습(闇相)’이다.

그 마음이 번뇌에 시달려 초췌하고 기쁘지 않거나, 혹은 마음이 너무 기뻐 마구 요동치면서 안정되지 않는 것은 근심의 모습(憂相)’기쁨의 모습(喜相)’이다.

몸과 마음이 구석구석 아프거나 반대로 쾌락이 계속돼 이에 탐착하는 것은 괴로움의 모습(苦相)’즐거움의 모습(樂相)’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함이 없고 남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나쁜 마음이 생기거나, 밖으로 산선散善45)을 생각하고 각과 관이 마음을 동요시켜 삼매를 파괴시키는 것은 선한 모습(善相)’악한 모습(惡相)’이다.

심식心識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혼미하게 전도되거나, 혹은 지견이 너무 예리해 마음에 삿된 깨달음이 생겨 삼매를 파괴하는 것은 지혜로운 모습(智相)’어리석은 모습(愚相)’이다.

 

略示十雙邪相一者觸軆增減二者定

三者空有四者明闇五者憂喜

者苦樂七者善惡八者愚智九者縛

十者强輭凡此邪法若過若不及

善爲分別焉

如動觸發時身手亂動或兀兀如睡

或見諸異境者此爲增相或觸發而未

及徧身便即壞滅因此却失境界

索無聊無法持身者此爲減相也

或身心爲定所縛不得自在或因此入

至七日不得出者此爲邪定相

心意撩亂攀緣不住者此爲亂相也

或都不見身謂證空定者此爲空相

或覺身軆堅如木石者此爲有相也

或見外種種光明色象或身心闇暝

入暗室者此爲明闇相也

或其心熱惱憔悴不悅或心大慶悅

勇動不安者此爲憂喜相也

或身心處處痛惱或快樂綿綿貪著

此爲苦樂相也

或無慚無愧諸惡心生或念外散善

觀動心破壞三昧者此爲善惡相也

或心識愚惑惛迷顚倒或知見爽利

心生邪覺破壞三昧者此爲智愚相也

 

 

오개五蓋 등 온갖 번뇌가 심식을 덮어 자유스럽지 못한 것은 묶인 모습(縛相)’이다. 혹 스스로 공무상정空無相定을 증득하고 이미 도과를 얻어 번뇌를 끊고 해탈했다고 여기며 증상만增上慢을 일으키는 것은 해탈한 모습(脫相)’이다.

그 마음이 기와나 돌처럼 강해 들고 나는 것이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돌이키고 변화시키기 어려워 좋은 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강한 모습(强相)’이다. 또 심지가 진흙처럼 연약해 쉽게 파괴되는 것은 연약한 모습(輭相)’이다.

이와 같은 스무 가지 나쁜 감촉이 마음을 어지럽혀서 선정을 파괴하고 마음을 편벽되게 만드니, 이것이 삿된 선정이 발생하는 모습이다. 만일 삿되고 거짓된 것을 변별하지 못하고 마음에 애착을 일으키면 대부분 마음을 잃고 미쳐서 울고 웃으며 뛰어다니게 되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한다. 따라서 만일 이런 감촉이 생기는 것을 지각했다면 곧 방편으로 제거해야 한다.

또 이 스무 가지의 삿된 감촉이 생길 때에 외도의 96종 귀신법鬼神法 가운데 서로 감응하는 것이 있으면 귀신이 생각을 따라 붙어 버리고, 이로 인해 귀신법문鬼神法門을 증득하게 된다. 이 귀신의 힘으로 깊은 선정을 얻기도 하고 지혜와 말솜씨를 얻기도 하며 길흉을 알고 신통한 이적도 많게 된다. 그래서 삿된 교화를 널리 행하여 중생들을 감동시키는데 설령 선이 있다 해도 그 행위는 거짓되고 잡스럽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지혜가 없어 그런 기적을 보면 성현聖賢이라 칭송하며 그가 하는 짓을 믿고 복종한다. 바른 계와 바른 견해를 파괴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는 삼존三尊을 공경하지 않고 삼보三寶를 훼손하는 데까지 이른다. 혹 평등법을 설하면서 이를 인도 없고 과도 없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삿된 인과 삿된 과를 설하기도 한다. 그래도 귀신의 힘 때문에 들었다 하면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고, 보았다 하면 모두들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가 설사 몸에 승복을 걸치고 입으로 불법을 말한다 해도 그의 마음이 이미 삿되고

 

或五蓋及煩惱覆蔽心識不得自由者

此爲縛相或自謂證得空無相定已得

道果斷結解脫生憎上慢者此爲脫

相也

或其心剛强出入不得自在猶如瓦石

難可廻變不順善道者此爲强相

心志輭弱如泥易可破壞者此爲輭相

凡此二十種惡觸擾亂坐心破壞禪定

令心邪僻者是爲邪定發相若不能辨

別邪僞而心生愛著則多至失心狂逸

啼笑奔走枉死傷命若覺觸發即以

方便除之

復次二十種邪觸發時若與九十六種

外道鬼神法中有相感應則鬼神隨念

來著因證鬼神法門以鬼神勢力

得深定或得智慧辯才知吉凶多神

廣行邪化感動衆生雖或有善

所行僞雜世人無智見其奇異謂是

賢聖信服其事多有破正戒壞正見

至於不敬三尊毁壞三寶或說平等法

以爲無因無果或說邪因邪果而以鬼

力故聞者無不信受見者咸生愛敬

彼雖身被僧衣口說佛法其心已邪

 

 

그의 행위가 거짓되고 편벽하니, 이는 마귀의 권속이지 부처님의 정법은 아니다. 수행자가 모름지기 이를 잘 살펴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이런 법은 곧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감촉이 일어날 때 또한 열 가지 바른 모습이 있다. 첫째는 감촉하는 모습이 법과 같음, 둘째는 선정의 모습이 법과 같음, 셋째는 없는 모습이 법과 같음, 넷째는 밝은 모습이 법과 같음, 다섯째는 기뻐하는 모습이 법과 같음, 여섯째는 즐거운 모습이 법과 같음, 일곱째는 선한 모습이 법과 같음, 여덟째는 지혜의 모습이 법과 같음, 아홉째는 해탈이 법과 같음, 열째는 마음의 조화로운 모습이 법과 같음이다.

법과 같음(如法)’이란 무엇인가? 앞의 저 열 쌍의 나쁜 모습과는 반대로 몸과 마음이 안온하고 청정하여 알맞게 조화되는 것을 법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선법을 만나면 그 모든 것을 취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법에 따라 정진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좋은 경계이다.

법으로 시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간혹 삿된 선정의 모습이 바른 선정의 모습과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세 가지 법으로 시험해 보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진짜 금인지 알아보고자 할 때는 그것을 태워 보고, 두드려 보고, 갈아 보는 세 가지 법으로 시험해 보면 판별되지 않는 것이 없다. 진짜 금이라면 태울수록 더욱 정련되고, 두드릴수록 더욱 단단해지며, 갈수록 더욱 빛이 난다. 그러나 가짜 금은 불에 닿으면 검게 변하고, 두드리면 부서지며, 갈더라도 빛이 나지 않는다. 지금 이와 같이 지혜의 불로 비추어 보고, 본래의 법으로 잘 다스리고, 선정의 마음으로 연마하면 진위가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선정의 마음으로 연마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움직이는 감촉이 일어났지만 삿됨과 바름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곧 깊이 선정의 마음으로 들어가 그 경계 가운데에서 취하거나 버리지 말고 다만 평등한 마음으로 선정에 머물러야 한다. 만일 이것이 선근善根이라면 선정의 힘이 더욱 깊어지고 선근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마귀의 짓이라면 오래지 않아 스스로 파괴될 것이다.

본래의 법으로 잘 다스린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나타난 것이 더러움을 관하는 선이라면 곧 부정관不淨觀을 닦아서 시험해 본다. 그 닦음을 따라 경계가 더욱 분명해진다면 이것은 숙세에 지은 선근의 모습이지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만약 닦을수록 점점 소멸한다면 이것은 삿된 것으로서 참된 것이 아니다.

 

其行僞僻是魔眷屬非佛正法行者

須善照了不取不著其法即自謝退矣

觸發時亦有十種正相一觸相如法

二定相如法三空相如法四明相如法

五喜相如法六樂相如法七善相如法

八智相如法九解脫如法十心調相如

何謂如法與彼十雙惡相相反

身心安隱淸淨調和適中是名如法

遇此善法悉不取着而如法精進

是好境界也

云何法試或有邪禪相與正禪相相似

難別者當以三法試驗欲知眞金者

以燒打磨三法試之即無不判眞金則

燒之愈煉打之愈堅磨之愈光僞金

見火而黑受打而壞雖磨而闇

以智慧火照之以本法修治之以定心

硏磨之眞僞自顯矣

以定心硏磨者如發一動觸邪正未分

應深入定心於其境中不取不捨

而但平心定住若是善根則定力愈深

善根愈發若魔所爲則不久自壞也

以本法修治者如所發是不淨觀禪

修不淨觀而試之隨其修而境界增明

是宿善根相而非僞若隨漸滅者

 

 

지혜로 관찰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일어난 법을 관찰하여 그 근원을 헤아려 보면 그것이 생겨나는 곳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공적함을 깊이 알아 마음이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으면 삿됨은 저절로 없어지고 바름이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또 시험하는 방법이 있다. 일어나는 법과 더불어 함께하면서 그 삿됨과 바름을 관찰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법과 함께하면서도 그 삿됨과 바름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과 오랫동안 함께하고, 오랫동안 함께해도 알지 못할 때에는 지혜로써 관찰한다. 그러면 알지 못할 것이 없다.

또 수행자가 여러 선정을 일으킬 때 마귀가 그것을 저지하고 희롱하고자 하여 그 선 가운데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때 만일 마음에 탐욕과 집착이 있거나 근심과 두려움이 있으면 마귀가 그 틈을 노려 마귀에게 속게 된다. 그러나 만일 법대로 마음을 써서 비추어 타파하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드러나듯 마귀가 사라지고 선정의 마음이 다시 맑아지게 된다.

마귀의 유혹으로 삿된 선정을 얻었더라도 수행자가 이를 깨달아 알아차리고 법으로써 다스린다면 마귀가 물러난 뒤에 다시는 한 터럭만큼의 삿된 선법도 없게 된다.

만약 선정이 마귀의 짓인 것 같아 법으로 이를 다스렸는데도 끝내 제거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죄업의 장애이지 마귀의 짓은 아니다. 이럴 때는 부지런히 참회하여 죄를 멸하고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선정이 자연히 분명해질 것이다. 혹 선정에 들었을 때 방편이 교묘하지 못하여 법답지 못한 경계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방편을 잘 쓰면 밝고 깨끗함을 증득하게 되는데, 이 또한 마귀의 짓은 아니다.

38장 악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증험함

악근惡根의 성품을 증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악법에도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각관覺觀의 불선법不善法, 둘째는 탐욕의 불선법, 셋째는 성냄의 불선법, 넷째는 어리석음의 불선법, 다섯째는 악업의 불선법이다. 다섯 가지에 또 각각 세 가지 법이 있어 모두 열다섯 가지가 되지만, 이것은 모두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是邪而非眞也

以智慧觀察者觀所發之法推其根源

不見生處深知空寂心不住著則邪

當自滅正當自顯也

又有試法與之共事而察其邪正

事而不知則與之久處久處而不知

以智慧觀察則無不得矣

復次行者發諸禪定魔欲沮戱人其

禪中若心貪著若心憂懼則魔得其

便而爲魔所惑若能如法用心照破

則如雲除日顯魔滅而定心還淨也

若因魔惑得邪定而行者覺知用法治

則魔退之後無復一毫禪法也

若禪如魔作而用法治之終不去者

是罪障而非魔當勤修懺悔罪滅障除

則禪定自然分明矣或入定時方便不

致令境界不如法善作方便而所

證明淨者亦非魔作也

驗惡根發相第三十八章

云何驗惡根性惡法亦有五種一覺觀

不善法二貪欲不善法三瞋恚不善法

四愚痴不善法五惡業不善法五種中

亦各有三法共爲十五而皆不外乎三

 

 

(첫째) 각관의 불선법이란 다음과 같다. 수행자가 과거에 선을 심지 않고 악습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선정 중에서 선법善法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각과 관으로 대상을 반연할 뿐 찰나찰나 머물지를 못한다. 때로는 탐욕을 반연하고, 때로는 성냄과 어리석음을 반연하면서 그 반연하는 대상이 분명하고 또렷또렷해 해가 가고 달이 바뀌어도 선정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날카롭게 분별하는 마음에서 각관이 발생한 모습이다.

혹은 생각을 거두어들이는 가운데 비록 각관의 번뇌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때는 밝고 어느 때는 어두운 경우도 있다. 밝을 때는 각과 관이 대상을 반연하여 생각이 머물지를 못하고, 어두울 때는 흐리멍덩한 무기無記로 깨닫는 것이 없다. 이것은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각관이 발생한 모습이다. 만약 선정을 닦을 때 마음이 잠든 것처럼 어둡긴 하지만 어두운 가운데서도 간절히 반연하여 각과 관이 머물지 않는다면, 이것은 한결같이 혼미한 마음 가운데서 각관이 발생한 모습이다.

(둘째) 탐욕의 불선법이란 다음과 같다. 만일 선정을 닦는 가운데 탐욕의 마음이 생겨나 남자는 여자를 생각하고 여자는 남자의 모습을 사모하여 찰나찰나 머물지 못한다면, 이것은 밖으로 음욕을 탐하는 번뇌가 발생한 모습이다. 혹은 욕심이 발동하여 밖으로는 남녀를 생각하고, 안으로는 자기의 몸을 애착하여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을 어루만지며 찰나찰나 애착하여 모든 선정을 장애하기도 한다. 이것은 안팎으로 탐욕의 번뇌가 발생한 모습이다.

혹은 안팎으로 애착할 뿐만 아니라 다시 일체 만물에 탐욕을 일으키기도 한다. 혹 생애生涯를 반연하거나 또는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반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모든 곳에 두루 미치는 탐욕이 발생한 모습이다.

(셋째) 성냄(瞋恚)이 발생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좌선 중에 성난 느낌이 문득 일어나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그가 범했는지 범하지 않았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근거도 없이 성을 낸다면, 이것은 이치에 어긋나게 성내는 모습이다.

 

毒也

所謂覺觀不善法者以行人過去未有

種善而多惡習故今於定中不發善

但得覺觀攀緣念念不住或時緣

或緣瞋痴若所緣事分明了了

經年累月而禪定未發者此爲明利心

中覺觀發相也或於攝念中雖有覺觀

煩惱而或明或昏明則覺觀攀緣

想不住昏則無記瞪矒無所覺了者

此爲半明半昏覺觀發相也若於修定

心雖昏闇如睡而於昏昏之中

切攀緣覺觀不住者此爲一向昏迷心

中覺觀發相也

所謂貪欲不善法者若當修定中貪欲

心生男緣女色女慕男容而念念不

住者此爲外貪婬結使發相也或欲心

發動外而緣彼男女內而自愛己身

摩頭拭頸念念愛著障諸禪定者

爲內外貪欲煩惱發相也或非唯內外

愛著復於一切萬物之上皆起貪欲

或緣生涯或緣嗜好者此爲徧一切處

貪欲發相也

所謂瞋恚發相者若於坐中瞋覺欻起

無問是理非理他犯不犯而無端起瞋

 

 

혹은 다른 이가 성가시게 건드려 이로 인해 성을 내고 성난 느낌이 계속되어 그치지 않는 경우가 있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고 마음에 분노와 원한을 품는다면, 이것은 이치에 맞게 성내는 모습이다.

혹은 선정을 닦는 가운데 자기의 견해는 옳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그르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잘못이라 여기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괴로운 느낌이 마음에 생기게 된다. 세상에는 재물에 대해서는 참을 수 있지만 의리義理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크게 화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논쟁으로 성내는 모습이다.

(넷째) 어리석음(愚癡)이 발생한 모습은 다음과 같다. 선정 중에 홀연히 삿된 견해를 일으켜 다음과 같이 따져서 분별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의 나와 모든 법은 없어지고 현재가 있는 것일까, (과거의 나와 모든 법이) 없어지지 않고 그로 인해 지금 있는 것일까?”

이렇게 간절하게 사유하며 삼세를 헤아려 살핀다. 만약 “(과거의 나와 모든 법은) 없어졌다.”고 한다면 단견斷見에 떨어지고, “(과거의 나와 모든 법은)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상견常見에 떨어진다. 이와 같은 삿된 지각이 찰나찰나 머물지 않으면, 이로 인해 재빠른 알음알이와 걸림없는 말재주로 논쟁하고 희론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세간을 벗어나는 바른 선정을 장애하게 된다. 이것은 단견과 상견으로 헤아리는 삿된 견해의 모습이다.

혹은 나와 오음 등의 법은 확실히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확실히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라고 헤아리고 살핀다. 그리하여 사견의 마음이 곧 발생하고 그 견해를 따라 집착을 일으켜 찰나찰나 머물지를 못한다. 이것은 유무有無을 헤아리는 삿된 견해의 모습이다.

혹은 이렇게 생각한다.

미진微塵46)이 있으므로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사대四大가 있으며, 사대가 있으므로 중생세계가 차례로 있게 된다.”

그러면 곧 사견의 마음을 이루어 알음알이와 말재주가 늘어나고 시비를 다투게 된다. 이로 인해 선정이 발생하지 않고

 

此爲非理瞋相也或有外人惱觸

以此爲緣生瞋而瞋覺相續不息或見

他非法而瞋恨在心者此爲順理瞋相

或於修禪中以己見爲是以他事

爲非旣是以彼之所行所說爲非而不

順於情以其不順故惱覺心生世自

有人雖能忍於物財而於義理上

有不如意則生大瞋恨者多此爲諍論

瞋相也

所謂愚痴發相者若於定中忽發邪見

分別明利曰過去我及諸法爲滅而有

此現在耶爲不滅而因爲今有耶思惟

切切推尋三世若謂滅則墮於斷見

若謂不滅則墮於常中如是邪覺

念不住因此而利智捷疾辯才無滯

諍競戱論作諸惡行能障正定出世之

此爲計斷常邪見相也或謂我及陰

等諸法爲定實有者耶定實無者耶

非有非無者耶如是推尋而見心即發

隨見生執念念不住者此爲計有無邪

見相也或作是念由有微塵即有實

以有實法故便有四大以有四大

衆生世界次第而有即成見心

智辯增長是非競諍因是而禪定不發

 

 

비록 발생하더라도 삿된 선정에 떨어지게 되니, 이것은 세간의 성품을 헤아리는 삿된 견해의 모습이다.

(다섯째) 악업이 도를 장애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다. 선정을 닦고자 할 때, 문득 혼미하게 가라앉고 잠에 빠져 무기無記가 되고 흐리멍덩하게 분별하지 못해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혼침昏沈이 어둡게 가리는 장애가 발생한 모습이다.

혹은 비록 혼미하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나쁜 생각을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혹 십악과 오역죄를 저지르려는 생각을 하거나, 금계를 깨뜨리고 환속하려는 등의 생각이 자꾸 생기면서 그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나쁜 생각의 사유가 장애하는 모습이다.

선정을 닦을 때 몸이 갑자기 아프면서 핍박받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혹은 머리와 얼굴이 없고 옷이 갈가리 찢긴 사람을 보기도 하고, 자신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보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기도 하고, 귀신이나 사나운 짐승이 나타나기도 하고, 흉한 모습이나 나쁜 일을 꿈꾸기도 한다. 이는 모두 도를 장애하는 죄가 일어나 수행자를 핍박해 놀라고 두렵게 하거나 혹은 고뇌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경계가 핍박하고 장애하는 모습이다.

무릇 이 다섯 가지 장애는 모두 전생에 훈습된 삼독이 현세의 과보로 나타나는 장애이니, 이를 업장業障이라 한다. 과거세에 악업을 지으면 응당 미래에 악한 과보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선을 닦으려고 하자, 선과 악이 어긋나고 업이 곧 악이 발생하도록 부추겨 그 사람이 선정의 도에서 진전된 업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라 한다.

39장 나쁜 장애를 대치하는 법

대치對治란 병의 증상에 따라 상반되는 약으로 상대하여 다스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뜨거움은 차가움으로 다스리고, 차가움은 뜨거움으로 다스리는 것이 대치이다. 그러므로 지를 행하다 병이 생기면 관법으로 다스리고, 을 행하다 병이 생기면 지법으로 다스린다. 지관문止觀門에서 열다섯 가지 방법47)을 세운 것은

 

雖發而墮於邪定此爲計世性邪見相

所謂惡業障道相者欲修禪定之時

便昏沈闇睡無記瞪矒不分而爲障者

此爲昏沈闇蔽障發之相也或雖不昏

而惡念心生或念欲作十惡五逆

毁禁還俗等想生生不已者此爲惡念

思惟障相也有於修定之時身或卒痛

有逼迫之事或見無頭面破衣裳者

或見自身陷入於地或見火逼或見墮

或有鬼神惡獸或夢凶狀惡境者

是皆障道罪起逼迫行人或令驚怖

或致苦惱此爲境界逼迫障相也凡此

五障皆因前世三毒熏習而爲現世

報障名曰業障以其過去惡業應受

未來惡報而今欲修善善與惡乖

即扶惡而起令人禪道不得進業故名

爲障也

惡障對治法第三十九章

對治者隨其病症以相反藥對而治

如熱以冷治冷以熱治是爲對治

故止中病生者以觀法治之觀中病

生者以止法治之止觀門中列立十

 

 

바로 열다섯 가지 병의 증세를 대치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의술에는 바로 대치하는 방법뿐 아니라 바꾸어 치료하는 방법(轉治)과 겸해서 치료하는 방법(兼治)도 있다. 바꾸어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바뀌면 치료법도 바뀌는 것을 말하고, 겸해서 치료한다는 것은 병이 두세 가지 증상을 겸하고 있으면 치료법 역시 겸하는 것이다. 법문의 방편도 이와 같으니 해당하는 사람에 따라서 잘 분별해야만 한다.

따라서 만약 지나치게 날카로운 마음에서 각관覺觀이 일어나는 병이 있다면 응당 호흡을 세도록(數息) 가르쳐야 한다. 왜 그런가? 마음을 호흡에 집중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세면서 중간에 잊어버리지 않으면 어지러운 생각을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살피면서 숫자를 분명하게 세면 능히 날카롭게 따지는 마음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호흡을 세는 법으로 그 병을 없애는 것이다.

만일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각관의 병이 있다면 호흡을 따라야만(隨息) 한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따라 마음이 항상 호흡을 의지하면, 호흡이 거칠 때에는 마음도 따라 거칠어지고 호흡이 가늘 때에는 마음도 따라 미세해진다. 마음과 호흡이 미세할 때 각과 관을 깨뜨릴 수 있고, 마음이 밝은 거울처럼 고요해지고, 호흡의 길고 짧음과 가고 옴을 알게 되며, 비추는 작용이 분명할 때 혼침을 깨뜨릴 수 있다. (이런 병에) 만약 호흡을 세는 법을 닦으면 혼침을 부추기는 허물이 있고, 호흡을 관찰하는 법을 수행하면 들뜨고 어지러워지는 과실이 있으니, 그것은 잘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호흡을 따르는 법만이 (반은 밝고 반은 어두운 각관의 병을) 바로 대치할 수 있다.

만일 어둡고 가라앉은 마음에서 각관이 일어나는 병이 있다면 호흡을 관찰해야만(觀息) 한다. 숨이 들어올 때 이 숨이 어디로부터 와서 중간에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이르는지 자세히 관찰한다. 그 숨이 나가는 것을 관찰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그 근원을 찾아보면 나가도 흩어짐이 없고 들어와도 쌓이는 것이 없어 정해진 모습을 볼 수 없다. 밝은 마음으로 관찰하고 비추면 마음의 눈이 곧장 열리기 때문에 혼침을 깨뜨리고, 고요한 마음으로 호흡에 의지하기 때문에 그 산란함을 부순다. 그러므로 호흡을 관찰하면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

 

五方法者正以對治十五症病也然醫

方有正對治亦有轉治兼治之法

治者病轉而法亦轉兼治者病兼兩

三症而治法亦兼法門方便亦復如

惟在當人善爲分別也

是故若有利心覺觀之病者即應敎令

數息何以故繫心在息從一至十

間不忘則能破亂想潜心詳審記數

分明則能治明利是以數息能除其

病也

若有半明半昏覺觀之病者即應隨息

隨息出入心常依息則息麁心亦麤

息細心亦細心息細時能破覺觀

靜明鑒知息之長短去就照用分明時

能破昏沈若數息有扶昏之過觀息有

浮亂之失非其善對惟是隨息正爲

對治故爾

若有昏沈心中覺觀之病者即應觀息

息入時諦觀此息從何處來中間經

入至何處觀其出息亦復如是

其根源出無分散入無積聚不見定

明心觀照心眼即開故破其昏沈

靜心依息故破其散亂是以觀息

治其病也

 

 

만일 바깥 대상에 대해 탐욕이 많고 음란한 마음이 쉬지 않으면 더러움을 살피는 구상관九想觀을 닦아야만 한다. 생각만으로 대적할 수 없다면 직접 무덤으로 가서 시신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그 시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나 인연 있는 자라 여기고 위아래를 자세히 보며 안팎으로 잘 헤아린다. 그러면 부풀어 오르고 썩어 문드러져 피고름이 흘러나오며 대소변이나 탐내는 온갖 벌레들이 갉아 먹는 것만 보게 된다.

지금 내가 반연하는 대상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니 어디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면 음란한 마음이 저절로 쉬게 된다. 그러므로 구상관으로 그런 병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안팎으로 탐욕을 부르는 번뇌의 병이 있다면 배사背捨 등의 관법을 행해야만 한다. 내 몸의 더러움을 자세히 관찰하여 안(자신)에 대한 탐욕을 부수고, 또 바깥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바깥에 대한 탐욕을 떠난다. 이것이 바로 초배사初背捨이니, 더럽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로 안팎의 색을 관찰하여 안팎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병을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배사로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다.

만일 온갖 곳에 모두 탐욕과 애착을 일으킨다면 모든 곳을 반연하는 대부정관大不淨觀을 행해야 한다. 모든 남자와 여자, 자기 몸과 다른 사람의 몸, 토지와 집과 의복 등 세간의 모든 존재를 관찰하여 그것은 모두 더러운 것으로 어느 한 곳도 욕심내고 집착할 것이 없다고 본다. 이로 말미암아 온갖 곳에 대해 모두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긴다. 싫어하여 벗어나려는 마음이 생기면 곧 탐욕이 일어날 만한 연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대부정관으로 그 병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도리에 맞지 않게 잘못 성내는 병이 있다면 중생을 반연한 자심(衆生緣慈)을 닦아야만 한다. 가까운 한 사람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취하여 그것을 반연해 선정에 들어간다. 가까운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별 감정이 없는 사람이나 원한이 있는 사람까지 모두 즐거움을 얻게 하여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다. 그렇게 하여 기쁘다는 생각을 낼 수 있으면 중생들 틈에서 성내고 괴롭히고 원수지고 해치려던 마음이 저절로 파괴된다. 그러므로 자심관慈心觀으로 성내는 마음의 병을 없앨 수 있다.

 

若外貪慾多婬心不歇者應作不淨九

想觀想猶不敵直至塚間諦觀屍相

以其屍代作所愛所緣之物上下審視

內外諦量但見肨脹爛壞膿血流出

大小便利諸蟲唼食今我所緣者

應如是何處可愛作是觀已婬心自

是以九想能治其病也

若有內外貪欲煩惱病者當作背捨等

諦觀內身不淨以破內貪又觀外

身不淨以離外貪是則初背捨以是

不淨心觀內外色能捨內外愛著之病

是以背捨能治其病也

若一切處皆起貪愛者應作緣一切處

大不淨觀觀一切男女自身他身田宅

衣服世間諸有皆見其不淨而無一

可貪愛者由是一切處皆生厭離心

厭離心生則貪欲無緣可起是以大不

淨觀能除其病也

若有非理邪嗔之病者應修衆生緣慈

取一親人得樂之相緣之入定如是

見親人得樂中人怨人皆令得樂

取他樂相能生喜念則衆生中瞋惱

怨害之心自然破滅是以慈心觀

除瞋心之病也

 

 

만일 그릇된 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이치에 맞게 성을 낸다면 법을 반연한 자심관(法緣慈觀)을 닦아야만 한다.

오음은 헛되고 거짓된 것이라서 중생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지켰느니 범했느니 하며 시비할 수 있겠는가? 다만 느낌 가운데 법의 즐거움을 반연하여 다른 사람에게 자심과 사랑하는 생각을 베풀어야지 괴롭혀서는 안 된다.”

이렇게 관하면 시비가 저절로 없어지고 성내는 마음도 자연히 쉬게 된다. 이것이 법을 반연한 자심을 행하여 그 병을 다스리는 것이다.

만일 법에 대해 논쟁하며 성을 낸다면 반연함이 없는 자심(無緣慈)을 닦아야만 한다. 왜 그런가? 이 사람은 자기 견해를 옳다고 여겨 자신과 같으면 기뻐하고 자신과 어긋나면 성을 내는데, 기뻐하거나 성내는 마음은 법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 것이다. 만약 반연함이 없는 자심을 행한다면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둘 곳이 사라져 온갖 법에 대해 생각하지도 않고 기억하지도 않게 된다. 이미 기억하고 생각함이 없는데 어찌 말다툼이 일어나겠는가? 큰 사랑과 평등으로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이 없게 한다. 그러므로 그 병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의 삿된 견해가 있다면 삼세三世의 십이인연을 관찰해야만 한다. 과거에 두 가지가 있고, 현재에 여덟 가지가 있고, 미래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것이 십이인연이다. 삼세가 서로 원인이 되어 영원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십이인연은 다음과 같다. 과거의 번뇌를 무명無明이라고 하고, 과거의 업을 행이라 한다. 현세에서 처음 모태에 드는 것이 식이고, 태에 들어가 눈···혀 네 근이 갖춰진 때가 명색名色이며, 네 가지 근이 갖춰졌어도 촉감을 느끼지 못하는 때가 육입六入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분별하기 전을 촉이라 하고, 물들어 익숙해진 것을 오로지 좋아하는 것이 수이다. 다섯 가지 욕망을 익히고 가까이하는 것이 애이고, 안팎으로 탐내며 구하는 것이 취이며, ··의 삼업을 일으키는 것이 유이다. 현세의 식이 내세의 생이 되고, 현세의 명색·육입··수는 내세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된다. 따라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식을 연하여 명색이, 명색을 연하여 육입이, 육입을 연하여 촉이, 촉을 연하여 수가, 수를 연하여 애가, 애를 연하여 취가, 취를 연하여 유가, 유를 연하여 생이, 생을 연하여 노사가 있는 것이다. 이 십이인연법은 그 모습이 허깨비와 같기 때문에 영원한 것도 아니고,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완전히 끊어지는 것도 아니다. 삼세가 서로 원인이 되어 돌고 돌아 끝이 없는 것이다. 만약 십이인연을 잘 관찰할 수 있다면 삿된 견해의 병인 단견과 상견을 다스릴 수 있다.

만일 유견有見과 무견無見의 삿된 견해를 일으킨다면 과보果報의 십이인연관을 관찰해야만 한다. 현세의 가라라歌羅邏 때를 무명이라 하고, 나아가 태어남·늙음·죽음 등 현세에 존재하는 것들은 오음·십이입·십팔계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모두 인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若見人作非法而起正嗔者應修法緣

慈觀五陰虛假不見衆生豈有持犯

是非之事但緣受中法樂以與他慈

心愛念而不可加惱則是非自泯

心自息是爲行法緣慈能治其病也

若以法中諍論而起嗔者應修無緣慈

何以故此人以己見爲是而同我者喜

違我者嗔喜瞋之心生於法執若行

無緣慈則言語道斷心行處滅於一

切法不念不憶旣無憶念有何諍訟

大慈平等與樂無惱是以能治其病也

若有斷常邪見者應觀三世十二因緣

過去有二現在有八未來有二是爲

十二因緣三世相因不常不斷十二因緣者過去

煩惱名爲無明過去業爲行現在世中始受胎者爲識入胎而四根旣具時爲名色四根旣具而未知

觸時爲六入未別苦樂爲觸染習一愛爲受習近五欲爲愛內外貪求爲取起身口意業爲有現在世

爲來世生現在名色六入觸受爲來世生老病死故無明緣行行緣識識緣名色名色緣六入六入

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此十二緣法相幻故非常相續故非斷

世相因循環無窮也若能善觀十二因緣則能治

斷常邪見之病也

若發計有無邪見者應觀果報十二因

緣觀現在歌羅邏時名曰無明而乃

至生老死等現在即有五陰十二入

 

 

이 가라라 때에는 곧 명··세 가지만 있다. 따라서 무명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미 연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기에 고유한 자기 성품이 없어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나아가 늙음과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공도 아니고 존재도 아님을 안다면 공견空見과 유견有見 두 가지 견해의 병을 깨뜨릴 수 있다.

만일 세간의 성품을 헤아리는 삿된 견해가 있다면, 그는 미세한 본성이 만법을 낳을 수 있다고 헤아리게 된다. 그럴 때는 일념一念의 십이인연관을 닦도록 가르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수행자가 일념 가운데 십이인연이 갖춰져 있음을 깊이 관찰하면 일념은 십이인연이 아니요, 십이인연은 일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념에 의거하여 십이인연을 설하고, 십이인연에 의거하여 일념을 설한다. 따라서 일념에는 고정된 성품이 없음을 알아야만 한다. 이미 일념에 고정된 성품이 없다면 세간의 성품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관으로 그 병을 깨뜨릴 수 있다.

만일 어둡고 가라앉아서 캄캄하게 막히는 장애가 있다면 응신불의 삼십이상 중 먼저 한 모습을 취해 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예를 들면 눈을 감고 먼저 부처님 미간의 백호상을 관찰한다. 마음이 어둡고 둔하여 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의 불상을 마주한 뒤 한마음으로 그것을 반연한다. 이렇게 하여 선정에 들었는데도 여전히 명료하지 않으면 눈을 뜨고 쳐다본 후 눈을 감고 다시 관찰한다. 이와 같이 정진하면 하나의 상호가 분명해진다. 이렇게 차례대로 삼십이상을 두루 관찰하여 마음의 눈이 밝게 열리게 하면 어둡고 가라앉고 침침하고 졸리던 마음을 깨뜨릴 수 있다. 염불의 공덕이 죄의 장애를 없앤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일 나쁜 생각의 장애가 있다면 보신불의 공덕을 생각해야만 한다. 바르게 염하는 마음으로 부처님께서 십력·사무소외·십팔불공법·일체종지로 원만히 법계를 비추고, 항상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두루 색신을 시현하여 일체에게 이익을 주며, 그 공덕이 무량하고 불가사의함을 반연한다.

 

十八界成就皆從因緣而生也此歌羅

邏時即有命暖識三事故名無明

旣從緣而生無有自性不可言有

可言無乃至老死亦復如是若知非

空非有則能破空有二見之病也

若有計世性邪見者彼計細微之性

生萬法應敎還作一念十二緣觀何以

行者深觀一念之中具足十二

一非十二十二非一而今約一說十二

約十二說一當知一無定性也旣無定

則世性不可得是故此觀能破其

病也

若有昏沈闇塞障者敎觀應佛三十二

相中先取一相或閉目先觀佛之眉間

毫相而心若闇鈍懸作不成當對一

一心緣之入定猶不明了開眼瞻

後閉目更觀如是精進一相明了

次第徧觀三十二相使心眼開明能破

昏沈闇睡之心念佛功德即除罪障者

是也

若有惡念障者應念報佛功德以正念

之心緣佛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

一切種智圓照法界常寂不動普現

色身利益一切功德無量不可思議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즉시 장애를 대치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염불공덕은 뛰어난 선법善法을 반연하여 따르는 가운데 생겨나는 심수법이고, 악념의 사유는 악법惡法을 반연하여 따르는 가운데 생겨나는 심수법이기 때문이다. 선은 악을 깨뜨릴 수 있으니, 마음을 항상 선한 연에 머물게 하면 흠모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생겨나 찰나찰나 생각하는 가운데 모든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

만일 경계가 핍박하는 장애가 있다면 법신불을 생각해야만 한다. 법신불이란 바로 평등한 법성이니,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으며 모양과 빛깔도 없고 텅 비고 고요한 무위無爲이다. 무위 가운데 이미 경계가 없는데 무엇이 핍박하겠는가? 만일 경계가 공함을 안다면 곧 이것이 대치한 것이다. (경계가 핍박하는 장애가 있을 때) 만약 삼십이상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장애를 대치하는 바른 방법이 아니다. 왜 그런가? 이 사람은 이미 경계로 인해 혼란을 겪고 있는데 여기에 다시 상호까지 취한다면 이로 인해 마귀가 붙어 어지럽히게 되고 그 장애가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공을 관하여 경계를 제거하고, 법신불의 한량없는 공덕을 염하는 일에 마음을 두면 중죄가 없어지고 모든 장애가 제거된다.

40장 편안한 마음으로 선을 닦음

선악을 이미 증험했다면 그 편의에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닦아야 한다. 선근이 발생했을 때는 그 현상을 따라 알아차려야 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 이미 수식관을 닦은 적이 있으니 금생에서도 다시 수식관을 닦아야 옳다. 과거의 습기가 서로 도우면 선정이 쉽게 성취되고 이로 인해 도에 들어가게 된다.”고 알아야 한다. 나쁜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법에 따라 그것을 대치해야 하고, 그 병이 제거된 뒤에는 곧 더욱 정진하고 이로 인해 선정을 얻어야 한다. 이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닦고 익히는 것이라 한다.

또한 수행자가 스스로 얕은 곳에서 깊은 곳까지 모든 법을 빠짐없이 닦고자 하면 마땅히 아나파나문 가운데 수식관數息觀부터 가르쳐 사선과 사공정을 증득하게 하고,

 

如是念時即時對治何以故此念佛

功德從緣勝善法中生心數惡念思惟

從緣惡法中生心數善能破惡令心常

在善緣中則欽慕心深恥愧心生

念之中能除一切障也

若有境界逼迫障者應念法佛法佛者

即是法性平等不生不滅無有形色

空寂無爲無爲之中旣無境界何者

是逼迫之相若知境界空即是對治也

若念三十二相即非其對治何以故

是人已爲境界惱亂而又取於相則因

著魔亂其障尤甚矣今觀空除境

心念佛功德無量則滅重罪破諸障

安心修禪第四十章

善惡旣驗當隨其便宜安心修去

善根發時隨其現相當知過去已曾

數息今可還修數息與本習相扶

禪定易成而因此入道如惡相發時

隨法治之其病已除即當更加精勤

而因此得禪是謂安心修習也

又如行人自欲從淺至深具修諸法者

應從阿那波那中敎數息而證四禪空

 

 

다음에 수식관隨息觀을 가르쳐 십육특승을 증득하게 하고, 다음에 관식을 가르쳐 통명관을 증득하게 하고, 다음에 부정관을 가르쳐 구상과 배사 등의 선에 들어가게 하고, 다음에 마음의 성품을 관하여 구종대선九種大禪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 수행자는 깨닫기 쉬운 하나의 법문을 따라 편안한 마음으로 정진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41장 병을 치료하는 법

무릇 도를 닦다 보면 간혹 본래 가지고 있던 병이 지금 마음을 잘못 써 마음과 호흡이 거칠게 요동침으로 인해 발동하여 병이 되는 경우가 있고, 혹은 몸·호흡·마음이 잘 조절되지 못하여 병이 되는 경우도 있다. 사대四大가 늘거나 주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오장五臟으로부터 (병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오근五根으로부터 (병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외상이나 내상으로 인해 (병이) 발생하기도 하고, 혹은 귀신으로 인해, 혹은 마귀의 짓으로 인해, 혹은 업보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를 잘 분별해 병에 따라 즉시 치료하면 쉽게 낫지만 오래 경과해 병이 깊어지면 치료해도 낫기가 어렵다.

이미 병의 원인을 알았다면 방법을 써서 그것을 치료해야만 한다. 그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으니 기식법氣息法을 쓰는 경우가 있고, 가상법假想法을 쓰는 경우가 있고, 주술법呪術法을 쓰는 경우가 있고, 마음으로 경계를 주관하여 치료하는 경우가 있고, 관찰하고 분석하여 치료하는 경우가 있다. 무릇 이 다섯 가지 법의 요지를 잘 알면 즉시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러나 선지식을 만나지 못한다면 또한 사용할 수가 없다.

(첫째) 어떻게 기식氣息으로 병을 치료하는가? ·····의 여섯 글자에 담긴 기의 비결을 말한다. ‘로 한기를 없애고, ‘로 열기를 없애고, ‘로 통증과 풍증을 없애고, ‘로 번열을 없애고 또 기를 내릴 수 있으며, ‘로 염증을 흩어 버리고 또 과식한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으며, ‘로 피로한 부분을 보충한다. 두 가지 기로 심장을 치료하고, ‘로 간을 치료하고, ‘로 폐를 치료하고,

 

次敎隨息而證十六特勝次應觀息

而證通明次敎不淨觀而入九想

捨等禪次觀心性而入九種大禪

者當知隨一法門易悟之處而安心精

進也

治病方法第四十一章

凡修道者或有本病而因今用心失宜

心息鼓擊發動成病者或有身息心

不善調適而致病者有四大增損相者

有從五臟生者有從五根中發者而或

因外傷或因內發或因鬼神或因魔

或因業報當善分別隨即治除

得瘥効若經久病深則治亦難愈矣

旣知病源當作方法治之而方法多途

有用氣息法者有用假想法者有用呪

術法者有用心主境而治者有觀析而

治者凡此五法善得其要者無不即

而不遇善知識則亦不可用也

云何以氣息治病曰吹呼嘻呵噓呬

字氣訣如吹以去寒呼以去熱嘻以

去痛及風呵以去煩且能下氣噓以

散痰亦能消滿呬以補勞也又呼吹

二氣可以治心噓以治肝呵以治肺

 

 

로 비장을 치료하고, ‘로 신장을 치료한다.

또한 열두 가지 호흡으로 치료하는 법이 있다. 즉 올리는 호흡(上息내리는 호흡(下息채우는 호흡(滿息메마른 호흡(燋息늘어나는 호흡(增長息없어지는 호흡(滅壞息따뜻한 호흡(煖息차가운 호흡(冷息부딪히는 호흡(衝息지탱하는 호흡(持息조화로운 호흡(和息보충하는 호흡(補息)이다. 이 열두 가지 호흡은 모두 마음으로 상상하여 사용한다. 가령 올리는 호흡은 무겁게 가라앉은 것을 치료하고, 내리는 호흡은 허공에 매달린 것을 치료한다. 채우는 호흡은 파리하게 마른 것을 치료하고, 메마른 호흡은 붓고 살진 것을 치료한다. 늘어나는 호흡은 줄어드는 기운을 치료하고, 없어지는 호흡은 늘어나는 기운을 치료한다. 따뜻한 호흡은 냉기를 치료하고, 차가운 호흡은 열기를 치료한다. 부딪히는 호흡은 막히고 맺혀 통하지 않는 것을 치료하고, 지탱하는 호흡은 전율하고 요동치는 것을 치료한다. 조화로운 호흡은 사대의 부조화를 통틀어 치료하고, 보충하는 호흡은 사대를 보충해서 북돋워 준다.

(둘째) 어떻게 가상假想으로 병을 치료하는가? 잡아함경에 일흔두 가지 치료법이 있으나48) 요즘 사람들은 근기가 둔하여 그 요지를 알기가 어렵다.

(셋째) 어떻게 주술呪術로 병을 치료하는가? 비록 여러 경전에 갖가지 방법이 나와 있으나 그 요지를 알기가 어렵다.

(넷째) 어떻게 마음으로 경계를 주관하여 병을 치료하는가? 비유하자면 국왕이 이르는 곳에는 도적들이 흩어져 도망치는 것과 같다. 마음은 몸의 왕이니 병이 생긴 곳에 마음을 머물고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게 하면 병이 저절로 없어진다. 혹은 마음을 단전에 두거나 혹은 마음을 발바닥에 두어 안정시키면 모든 병을 통틀어 치료할 수 있다.

(다섯째) 어떻게 관찰하고 분석하여 병을 치료하는가? 병을 잡아들이려고 지혜로 살폈을 때 병의 실체가 이미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사대의 병환은 자연히 소멸한다. 만약 그것이 귀신이나 마귀의 짓이라면 마땅히 굳건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우고, 또 관조觀照 등의 법으로 그 치료를 도와야 한다. 만약 그것이 숙세의 업으로 생긴 병이라면 반드시 복을 닦으며 참회하거나 전독轉讀49)하는 등의 법을 써서 그 치료를 도와야 한다.

무릇 이런 치료법을 사용하는 자가 병의 원인을 잘 분별하고 거기에 알맞은 방편을 선택해 믿고 시행하며 정진한다면 땀을 내고 차도를 보이게 될 것이니, 찰나찰나 항상 대상을 생각하면서 빈틈없이 오래도록 실행하라.

 

嘻以治脾呬以治腎也又有十二種息

治法曰上息下息滿息燋息增長息

壞息煖息冷息衝息持息和息補息

十二息皆以心作想而用如上息治沈

下息治虛懸滿息治枯瘠燋息治

腫滿增長息治損滅壞息治增煖息

治冷冷息治熱衝息治壅結不通

息治戰動和息通治四大不和補息資

補四大也

云何假想治病如襍阿含中有七十二

種法而今人根鈍難得其要也云何

呪術治病雖諸經中種種有之而難

得其要也

云何用心主境治病譬如國王所至

賊迸散心是一身之王隨有病生之處

住心其中而經久不散則病自除滅

或存心丹田或安心足下通治諸病也

云何觀析治病以智慧檢受病旣不

可得則四大之患自然消滅若是鬼

神及魔事當用强心加呪又以觀照等

助治之若是業病必須助以修福

懺悔轉讀等法也

凡用方法者善能分別病源隨宜擇用

方便信用精勤以得汗爲度念念恒

 

 

이익이 있으면 부지런히 행하되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고, 손해가 있으면 버리되 의심하거나 비방하지는 말아야 한다.

42장 마사魔事를 밝힘

마라魔羅50)는 중국말로 살자殺者이다. 공덕의 재산을 강탈하고 지혜의 생명을 죽이므로 마라라고 한다. 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번뇌마煩惱魔, 둘째는 음입계마陰入界魔, 셋째는 사마死魔, 넷째는 욕계천자마欲界天子魔이다.

번뇌마와 음입계마 두 가지는 자기 마음에서 생긴다. 만약 받아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고 허공처럼 보아 덮이거나 막히지 않을 수 있다면 마귀의 짓을 파괴할 수 있다. 사마는 자기 몸에서 생긴다. 만약 잘 분별하고 법에 의지하여 다스린다면 마귀의 짓을 파괴할 수 있다. 천마는 바로 파순波旬이니,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주인으로서 불법의 원수이다. 그는 항상 수행자가 자신의 세계를 벗어날까 두려워하기에 모든 귀신의 권속들을 시켜 괴롭히고 어지럽히니, 법 가운데서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귀신마鬼神魔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정미精媚, 둘째는 부척귀埠惕鬼, 셋째는 마라魔羅이다. 무엇을 정미精媚라 하는가? 십이지(十二時)에 해당하는 짐승들51)이 갖가지 형상으로 변화해 나타나는데, 사랑스러운 몸으로 변해 수행자를 미혹시키기도 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어떻게 그것을 식별하는가? 묘시卯時에 나타나는 것은 대부분 여우와 토끼 같은 부류이니, 그들의 이름을 부리면 감히 다시 나타나지 못한다. 십이지에 해당하는 짐승들도 이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시는 쥐, 축시는 소, 인시는 호랑이와 같은 종류이다.

무엇을 부척귀埠惕鬼라 하는가? 이것 역시 잘 변화하니, 작은 벌레처럼 사람의 머리나 얼굴에 달라붙어 콕콕 찌르거나 스멀스멀 기어 다니기도 하고, 혹은 사람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를 세게 때리기도 하고, 혹은 갑자기 끌어안기도 하고, 혹은 반복해서 말하기도 하고, 혹은 여러 짐승의 형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면 수행자는 곧바로 알아차리고 한마음으로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

 

住緣中久行無間有益則勤用而莫

向人說有損則捨之而勿生疑謗可也

辨魔第四十二章

魔羅此云殺者奪功德之財殺智慧之

故名魔羅魔有四種一者煩惱魔

二者陰入界魔三者死魔四者欲界天

子魔 如煩惱陰入二種魔從自心生

若能不受不著視如虛空不爲覆障

則魔事可破也死魔者從自身生

能分別依法修治則魔事可破也

魔者即是波旬是爲他化自在天主

佛法之怨讐常恐行人出離其界

令諸鬼神眷屬惱亂法中當善審察矣

鬼神魔有三種一者精媚二者埠愓鬼

三者魔羅何謂精媚十二時獸變作

種種形相或作可愛之身而令其迷惑

或作可畏之相而令其恐怖何以別之

如其多於卯時來者是狐兎之類說其

名字則不敢復來十二時獸推此可

知也如子鼠丑牛寅虎之類也何謂埠愓鬼亦能變化

或如小蟲緣人頭面鑽刺習習或擊

攊人兩腋下或乍抱持或復言說

作諸獸之形行人即應覺知一心閉眼

 

 

나는 지금 너를 알고 있다. 너는 바로 이 염부제에서 불을 먹고 향기를 맡으며 납길지臘吉支52)를 훔치고 사견으로 파계를 즐기는 종자이다. 나는 지금 계를 지키니 끝내 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출가자라면 계의 서문을 암송하고, 재가자라면 삼귀의, 오계와 보살의 십중대계53)와 사십팔경계54) 등을 암송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곧 물러간다.

무엇을 마라라고 하는가? 그들은 간혹 감정을 거스르는 짓을 저질러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제정신을 잃게 하기도 하고, 혹은 감정에 순응하는 일을 하여 사람들이 애착하며 도를 잃게 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세 가지 법을 사용해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첫째,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분명하게 알아 받아들이거나 집착하지 않고, 근심하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으면 그것은 곧 사라진다. 둘째,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 마음을 돌이켜 관하기만 하면 생기는 곳을 볼 수 없는데 무엇에 대해 괴로워하고 어지러워하겠는가? 이와 같이 관할 때 받아들이지도 않고 분별하지도 않게 되어 그것이 곧바로 저절로 사라진다. 셋째, 위와 같이 관해도 여전히 물러나지 않으면 마땅히 바른 생각을 되새기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 그러면 불법이 눈앞에 나타나고 마귀는 스스로 물러간다.

 

陰而罵之我今識汝汝是此閻浮提中

食火嗅香偸臘吉支邪見喜破戒種

今持戒終不畏汝若出家人應誦戒

若在家人應誦三歸五戒菩薩十

四十八輕戒等則彼便退去也

何謂魔羅或作違情事使人畏怖而失

或作順情事使人愛著而失道

時當用三法而除之一者了知所見聞

覺知皆無所有不受不著亦不憂戚

亦不分別彼即不現二者但反觀能

見聞覺知之心不見生處何所惱亂

如是觀時不受不分別便自謝滅

作此觀而猶不去但當正念勿生

懼心則佛法現前而魔自退去矣

禪學入門下卷終

1)

삼십이상三十二相 : 삼십이대인상三十二大人相·삼십이대장부상三十二大丈夫相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몸에 갖춰진 서른두 가지 특별한 표상標相을 말한다. 이 상을 갖춘 자는 세속에 있으면 전륜왕轉輪王이 되고 출가하면 성자가 된다고 한다. 1. 발바닥이 판판함. 2. 손바닥에 수레바퀴 같은 금무늬가 있음. 3. 손가락이 가늘면서 긴 것. 4. 손발이 매우 보드라움. 5. 손가락·발가락 사이마다 얇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음. 6. 발꿈치가 원만함. 7. 발등이 높고 원만함. 8. 장딴지가 사슴 다리 같음. 9. 팔을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감. 10. 남근男根이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어 있는 것이 말의 것과 같음. 11. 키가 한 발(두 팔을 편 길이)의 크기와 같음. 12. 털구멍마다 새까만 털이 남. 13. 몸의 털이 위로 쓸려 남. 14. 온 몸빛이 황금색임. 15. 몸에서 솟는 광명이 한 길 됨. 16. 살결이 보드랍고 매끄러움. 17. 두 발바닥·두 손바닥·두 어깨·정수리가 모두 판판하고 둥글며 두터움. 18. 두 겨드랑이가 펀펀함. 19. 몸매가 사자와 같음. 20. 몸이 곧고 단정함. 21. 양어깨가 둥글며 두둑함. 22. 이가 40개나 됨. 23. 이가 희고 가지런하고 촘촘함. 24. 송곳니가 희고 큼. 25. 뺨이 사자와 같음. 26. 목구멍에서 맛 좋은 진액이 나옴. 27. 혀가 길고 넓음. 28.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림. 29. 눈동자가 검푸름. 30. 속눈썹이 소와 같음. 31. 두 눈썹 사이에 흰 털이 남. 32. 정수리에 살상투가 있음.

2)

팔십종호八十種好 : 세상細相을 호라 한다. 삼십이상을 더욱 자세히 팔십 가지로 분류한 것을 팔십종호라 한다.

3)

십력十力(daśa-bala) : 보살이 가지는 열 가지 힘과 구별해 불십력佛十力이라 지칭한다. 부처님께만 있는 열 가지 심력心力으로서 첫째, 이치와 이치 아닌 것을 아는 지혜의 힘인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둘째, 삼세의 업과 보의 인과관계를 아는 힘인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셋째, 모든 선정과 삼매의 깊고 얕음을 아는 힘인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넷째, 중생의 능력이나 성질을 정확히 아는 힘인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다섯째, 중생들의 기호와 이해 여부를 아는 힘인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여섯째, 중생의 소질과 그 행위를 아는 힘인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일곱째, 내세에 태어날 곳과 그 인과를 아는 힘인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여덟째, 과거세의 일을 다 기억하는 힘인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아홉째, 생사의 때와 사후에 태어날 곳을 아는 힘인 사생지력死生智力, 열째, 모든 번뇌와 습기가 영원히 다했음을 아는 힘인 누진지력漏盡智力이다.

4)

사무소외四無所畏(catvāri-vaiśāradyāni) : 부처님은 설법하실 때 네 가지 점에서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첫째, 일체법을 평등하게 깨달았다는 자신감으로 다른 이의 힐난詰難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둘째, 온갖 번뇌를 다 끊었다는 자신감으로 외부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 셋째,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악법惡法을 모두 설했다는 자신감으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넷째,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요긴한 길을 모두 설했다는 자신감으로 다른 이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이다.

5)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daśa avenika buddha dharmah) : 십팔불공불법十八不共佛法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에게만 있는 공덕으로서 이승이나 보살에게는 없는 열여덟 가지 법이다. 신무실身無失·구무실口無失·의무실意無失·무이상無異想·무부정심無不定心·무부지이사無不知已捨·욕무감欲無減·정진무감精進無減·염무감念無減·혜무감慧無減·해탈무감解脫無減·해탈지견무감解脫知見無減·일체신업수지혜행一切身業隨智慧行·일체구업수지혜행一切口業隨智慧行·일체의업수지혜행一切意業隨智慧行·지혜지견과거세무애무장智慧知見過去世無礙無障·지혜지견미래세무애무장智慧知見未來世無礙無障·지혜지견현재세무애무장智慧知見現在世無礙無障의 열여덟 가지다.

6)

율의계律儀戒 : 섭률의계攝律儀戒의 준말이다. 보살이 행위와 언어 및 뜻과 생각에 걸쳐 악을 없애고, 온갖 선계善戒를 잘 보존하는 계율을 말한다.

7)

정공계定共戒 : 정려율의靜慮律儀·선율의禪律儀라고도 한다. 색계유루정色界有漏定에 들어가면 동시에 그릇된 법을 막고 악을 그치는 계체戒體가 생겨 몸가짐과 말하는 것 등이 저절로 율의에 계합하는 것을 말한다.

8)

견도見道 : 견제도見諦道라고도 한다. 온갖 지식으로 잘못 아는 소견을 여읜 자리. 소승에서는 무루無漏의 지혜를 일으켜 욕계·색계·무색계의 사제四諦를 관찰하고, 잘못된 소견을 여의어 처음으로 성자聖者의 대열에 들어간 지위인 예류과豫流果를 견도라 한다. 대승 유식종唯識宗에서는 오위 중 통달위通達位를 견도라 한다. 가행위加行位의 맨 끝인 세제일위世第一位의 직후 무루의 지혜를 일으켜 유식唯識의 성품인 진여의 이치를 체득하여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번뇌장煩惱障·소지장所知障의 종자를 끊고, 선천적으로 갖춘 번뇌장의 활동을 완전히 다스린 십지十地의 초지인 환희지歡喜地(pramuditā bhūmiḥ)에 해당한다.

9)

수도修道 : 견도위見道位에서 온갖 지적인 미혹을 벗어난 다음 정·로부터 일어나는 온갖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려는 수양을 쌓는 기간이다. 소승에서는 사향사과四向四果 중 일래향一來向·일래과一來果·불환향不還向·불환과不還果·아라한향阿羅漢向, 대승에서는 초지에서 제10지까지를 수도라 한다.

10)

무학도無學道(aśaikṣa-mārga) : 모든 번뇌를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는 원만한 지위이다. 소승에서는 이를 아라한阿羅漢(arhat)이라 하고, 대승에서는 제10지위와 불과佛果라 한다.

11)

간혜지乾慧地 : 삼승에 공통된 십지(三乘共十地)의 제1위이다. 오정심五停心·별상념처別相念處·총상념처總相念處의 관을 닦아 지혜는 있지만 아직 궁극의 진리에 도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간혜乾慧(메마른 지혜)라 한다.

12)

육십이견六十二見 : 잘못된 견해의 총칭이다. 부처님 당시 외도들의 여러 주장을 62종으로 분류한 것이기도 하다.

13)

수다원須阤洹(srotāpanna) : 성문 사과四果의 첫 번째로 예류과預流果라고 의역한다. 삼계의 견혹見惑을 끊고 무루도無漏道에 처음 참례하여 들어간 지위이다.

14)

사다함斯陁含(sakdāgāmin) : 성문 사과의 두 번째로 일래과一來果라고 의역한다. 욕계의 수혹修惑 9품 중 6품을 끊은 사람이 얻는 지위이다. 인간과 천상에서 각각 한 번의 생을 받아 나머지 3품의 번뇌를 끊고 열반의 증과를 얻으므로 일래과라 한다.

15)

아나함阿那含(anāgāmin) : 성문聲聞 사과의 세 번째로 아나가미阿那伽彌(阿那伽迷) 또는 줄여서 나함那含이라고도 하며, 불환不還·불래不來라고 의역한다. 죽은 뒤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에 태어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16)

大智度論23 初品(T25, 229a).

17)

나쁜 생각(惡覺) : 번뇌를 일으키는 나쁜 생각이다. 보통 욕···친리親里·국토國土·불사不死·족성族姓·경모각輕侮覺 여덟 가지로 나누고 팔각八覺 또는 팔악각八惡覺이라 한다.

18)

妙法蓮華經2 譬喩品3(T9, 14c).

19)

釋禪波羅蜜次第法門9 釋禪波羅蜜修證75(T46, 540a).

20)

배사 이하 여섯 법문 : 팔배사·팔승처·일체처·구차제정·사자분신삼매·초월삼매를 말한다.

21)

안팎 : ()은 자신을 말하고, ()은 자신 이외의 사람이나 사물을 말한다.

22)

여덟 가지 성스러운 관법(八聖種觀) : 사무색정 가운데 공처정을 타파하고 식처정에 들어갈 때 행하는 관법이다. 수상행식이 모두 병·종기·부스럼·가시와 같음을 관찰하고, 또 무상···무아로서 거짓되고 실체가 없음을 관찰하는 것이다. 앞의 네 가지 관찰은 현상을 관찰하는 것(事觀)이라 할 수 있고, 뒤의 네 가지 관찰은 이치를 관찰하는 것(理觀)이라 할 수 있다. 이 여덟 가지 관찰을 통해 공처정도 수상행식이 화합한 것이므로 알맹이가 없다고 관한다.

23)

俱舍論에서는 이 열 가지를 심소법 중 대지법大地法으로 분류하고, 유식에서는 앞의 다섯 가지를 변행심소遍行心所, 뒤의 다섯 가지를 별경심소別境心所로 분류한다.

24)

혜근慧根 : 이십이근의 하나 또는 오근의 하나로서, 혜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는 수승한 능력이 있으므로 근이라 한다. 俱舍論에서는 칠십오법 중 대지법大地法으로 분류하였다.

25)

혜신慧身 : 오분법신五分法身의 하나로서 무루의 지혜로 성취한 몸을 말한다.

26)

심수법이 아닌 것 :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등을 말한다.

27)

초월삼매超越三昧 : 초입삼매超入三昧와 초출삼매超出三昧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28)

앞의 설명에서는 일관되게 팔배사·팔승처·일체처 세 가지를 관찰하는 선(觀禪)’이라 하고 초월삼매는 정교하게 가다듬는 선(修禪)’이라 하였다. 釋禪波羅蜜次第法門10(T46, 540c) 역시 이 부분에서 관선觀禪이라 표기하고 있으나 내용으로 보아 오류로 생각된다.

29)

기러기발을 아교로~타는 것(膠柱鼓瑟) : 기러기발을 아교로 고정시켜 놓으면 음조를 바꿀 수가 없어 한 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고지식해 융통성이 없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30)

부낭浮囊 : 물에서 뜰 수 있게 하는 바람 주머니로 구명정과 같다.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으로 향하는 자들에게 계율戒律은 의지해야 할 유일한 수단임을 비유로 표현한 것이다.

31)

기름 담은 발우 : 雜阿含經24 623. 世間經(T2, 174b)에 나오는 비유이다. 한 방울이라도 흘릴 땐 즉시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기름이 가득 담긴 발우를 들고 가면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과 화려한 볼거리가 있어도 한눈팔 겨를이 없다. 이에 비유하여 계율의 소중함을 강조하였다.

32)

이를 각각 정명식正命食과 사명식邪命食이라 한다. 재가자는 생활 수단의 옳고 그름에 따라 이를 나누고, 출가자는 걸식을 정명식이라 하고 길흉을 점쳐 주는 등의 방법을 생업으로 삼는 것을 사명식이라 한다.

33)

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T12, 1111a).

34)

佛垂般涅槃略說敎誡經(T12, 1111a).

35)

금사자金師子 : 쇠를 다루는 일을 하는 종족이나 그런 집안 출신을 가리킨다.

36)

완의자浣衣子 : 세탁 일을 하는 종족이나 그런 집안 출신을 가리킨다.

37)

大莊嚴論經7(T4, 293b)에 비슷한 내용이 있긴 하나 등장인물이 다르다. 대장엄론경에는 사리불이 목련으로 여래가 사리불로 표현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자 목련에게 두 제자가 있었는데, 오로지 선을 배웠지만 증득하는 바가 없었다. 한번은 존자 사리불이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수승한 법을 얻었습니까?’ 목련이 대답했다. ‘얻지 못했습니다.’ 사리불이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떤 법을 가르쳤습니까?’ 목련이 대답했다. ‘한 사람에겐 부정관을 가르치고, 다른 한 사람에겐 수식관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꽉 막혀 깨닫지를 못합니다.’ 이때 사리불이 목련에게 물었다. ‘저 두 제자는 어느 종족에서 출가했습니까?’ ‘한사람은 세탁 일을 하던 사람이고, 한 사람은 대장장이 출신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목련에게 말했다. ‘대장장이였던 사람에겐 수식관을 가르쳐 주어야 하고, 세탁 일을 하던 사람에겐 부정관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목련이 그 법대로 제자를 가르치자 그 두 제자는 곧 부지런히 닦고 익혀 아라한과를 얻었다.”

38)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으로 大品般若經에 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문장은 없다. 다만 摩訶般若波羅蜜經3 相行品10(T8, 237b)에 이와 비슷한 문장이 실려 있으므로 이러한 내용을 축약하여 인용한 듯하다.

39)

··중생衆生·수명壽命 : 흔히 아인사상我人四相이라 한다. 아상我相은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생긴 몸과 마음에 실재의 아가 있다고 여기거나 또는 아의 소유라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인상人相은 나는 인간으로서 축생 등과는 다르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중생상衆生相은 내가 오온법에 의지하여 실재로 생겨났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수자상壽者相은 생명체에게 일정 기간 유지되는 목숨이 있다고 집착하는 소견이다.

40)

견혜見慧 : 삼혜三慧의 하나로 교법을 보고 들어서 얻는 지혜며, 문혜聞慧라 한다.

41)

사혜思慧 : 깊이 고찰한 뒤에 얻는 지혜이다.

42)

삼도三道의 과: 삼도는 성문과 보살의 수행 과정인 견도·수도·무학도의 세 단계이고, 과는 예류·일래·불환·아라한의 네 가지 과를 말한다. 이를 흔히 삼도사과三道四果라 한다.

43)

大般涅槃經31(T12, 548b).

44)

과 보: 습은 습인習因, 보는 보인報因을 말한다. 선하거나 악한 습과習果를 초래하는 것이 습인이고,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무기無記의 보과報果를 초래하는 것이 보인이다. 예를 들어 탐욕심이 많은 사람(習因)이 그 때문에 악업을 지어(報因) 삼악도에 떨어졌다면 삼악도나 거기서 받는 몸은 무기이므로 보과라 하고, 그곳에서도 몸에 밴 습기 때문에 탐욕을 부리는 것을 습과라 한다. 보인은 선악의 성질이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으로 이숙인異熟因(vipāka-hetu)이라고도 하고, 습인은 같은 성질의 결과를 낳으므로 동류인同類因(sabhāga-hetu)이라고도 한다.

45)

산선散善 : 선정에 들지 않고 일상의 산란한 마음 상태에서 짓는 선.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이 그 요지이다.

46)

미진微塵 :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극미極微(paramāṇu)라 하고, 중앙의 극미 하나에 육방으로 극미가 더해져 단위를 이루는 일곱 개의 극미를 미진이라 한다.

47)

열다섯 가지 방법 : 앞서 선근이 나타나는 모습을 설명하면서 수행문을 아나파나문阿那波那門·부정관문不淨觀門·자심관문慈心觀門·인연관문因緣觀門·염불문念佛門의 다섯 가지로 나누고 각각에 세 가지 법이 있음을 밝혔다. 아나파나문에는 수식數息·수식隨息·관식觀息이 있고, 부정관문에는 구상九想·배사背捨·대부정관大不淨觀이 있고, 자심관문에는 중생연자衆生緣慈·법연자法緣慈·무연자無緣慈가 있고, 인연관문에는 삼세십이인연三世十二因緣·과보십이인연果報十二因緣·일념십이인연一念十二因緣이 있고, 염불문에는 염응불念應佛·염보불念報佛·염법불念法佛이 있다.

48)

治禪病祕要法권상 治阿練若亂心病七十二種法(T15, 333a)에 실려 있다. 품명에 사리불 존자가 들은 것으로 잡아함경에 나오는데, 아련야에서 일어난 일이다.(尊者舍利弗所問出雜阿含阿練若事中)”라는 각주가 있다.

49)

전독轉讀 : 많은 경전이나 大般若經처럼 양이 많은 경전을 읽을 때, 경문 전체를 다 읽지 않고 제목과 품명만 읽거나 처음과 중간과 끝의 몇 줄만 읽거나 또는 책장을 넘기며 띄엄띄엄 읽는 방법이다. 전경轉經이라고도 한다.

50)

마라魔羅(māra) : 말라末羅로 음역하기도 하며 마라고도 한다. 삼마三魔, 사마四魔, 팔마八魔, 십마十魔 등 다양하다.

51)

12(十二時)에 해당하는 짐승들 : 자시子時(23~1)는 쥐, 축시丑時(1~3)는 소, 인시寅時(3~5)는 호랑이, 묘시卯時(5~7)는 토끼, 진시辰時(7~9)는 용, 사시巳時(9~11)는 뱀, 오시午時(11~13)는 말, 미시未時(13~15)는 양, 신시申時(15~17)는 원숭이, 유시酉時(17~19)는 닭, 술시戌時(19~21)는 개, 해시亥時(21~23)는 돼지이다.

52)

납길지臘吉支 : 승려의 법랍을 말한다.

53)

십중대계十重大戒 : 십중금계十重禁戒·십중바라제목차十重波羅提木叉·십바라이十波羅夷·십불가회계十不可悔戒·십중금十重禁·십중계十重戒·십무진계十無盡戒·십중十重이라고도 한다. 대승의 보살이 범해서는 안 될 사항 중 그 죄가 무거운 열 가지이다. 경론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梵網經에서는 살생·도둑질·사음·거짓말·술을 파는 것·사부대중의 허물을 얘기하는 것·자신을 높이고 남을 헐뜯는 것·아까워 보시하지 않는 것·원한을 품고 상대방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삼보를 비방하고 남에게도 비방하라고 시키는 것이라 했다.

54)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 : 대승의 계율 중 48종의 가벼운 계율이다. 1. 스승과 벗을 공경하라. 2. 술 마시지 말라. 3. 고기 먹지 말라. 4.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말라. 5. 계를 범한 이는 참회시켜라. 6. 법사에게 공양 올리고 법을 청하라. 7. 법문하는 데는 가서 들어라. 8. 대승을 그르게 여기지 말라. 9. 병난 이를 잘 간호하라. 10. 죽이는 기구를 마련해 두지 말라. 11. 나라 사신이 되지 말라. 12. 나쁜 마음으로 장사하지 말라. 13. 비방하지 말라. 14. 불을 놓지 말라. 15. 불법이 아닌 다른 법으로 교화하지 말라. 16. 이양利養을 탐내지 말고 옳게 가르쳐라. 17. 세력을 믿고 달라고 하지 말라. 18. 아는 것 없이 스승이 되지 말라. 19. 두 가지로 말하지 말라. 20. 팔려가 죽거나 고생할 것을 사서 놓아주고, 죽는 것을 구제하라. 21. 성을 내거나 때려 원수를 갚지 말라. 22.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법문을 청하라. 23. 교만한 생각으로 잘못 일러 주지 말라. 24. 불법을 잘 배워라. 25. 대중을 잘 통솔하라. 26. 혼자만 이양을 받지 말라. 27. 별청別請을 받지 말라. 28. 승려들을 별청하지 말라. 29. 나쁜 업으로 살지 말라. 30. 좋은 때를 공경하라. 31. 값 치르고 구해 내라. 32. 중생을 해롭게 하지 말라. 33. 나쁜 짓을 생각하지 말라. 34. 잠깐이라도 소승을 생각하지 말라. 35. 원을 세워라. 36. 서원을 세워라. 37. 위험한 데 다니지 말라. 38. 높고 낮은 차례를 어기지 말라. 39. 복과 지혜를 닦아라. 40. 가려서 계를 일러주지 말라. 41. 이양을 위해 스승이 되지는 말라. 42. 받지 않은 이에게 포살하지 말라. 43. 계 범할 생각을 내지 말라. 44. 경전에 공양하라. 45. 중생을 항상 교화하라. 46. 높은 상에 앉아서 법문하라. 47. 옳지 못한 법으로 제한하지 말라. 48. 불법을 파괴하지 말라. 이상은 범망경의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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