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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수경스님께

수경스님께

 

2010614, 스님은 화계사 주지와 승적을 내려놓는다는 편지를 남겨놓고 은거에 드셨습니다.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박힙니다. 스님의 일성(一聲)으로 다시 깨우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정직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란 것을. 스님이 종단을 떠나 부처님의 품으로 돌아가신지 어느덧 12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편안 하십니까? 스님이 떠난 그때나 지금이나 종단의 씁쓸한 행태를 보면서도 저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남긴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라는 그 한마디는 날마다 저의 가슴에도 와 닿습니다. 그것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고백이며, 그리하여 승적을 내려놓는 행위도 그 누구보다 종단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저도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님처럼 스스로 물러나기 보다는 싸우다가 승적을 박탈당하는 길을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여기서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상가(sangha)'의 의미를 이해하고부터입니다. 부처님은 우리의 괴로움이 어리석음이라 하셨듯이 조계종의 현재 모습은 승가의 의미를 모르는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싶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제가 나서는게 효과적일 것입니다. 제가 제방 선원에서도 살았고 말사 주지도 하였고 종단 교육원에서 소임도 살았고, 출가한지 30년이 넘어 법계중에 최고인 종사’이기 때문입니다. 저와같은 이가 종단 내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자정(自淨)의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비구만이 승가를 분열 시킬 수 있다고 하셨듯이 비구만이 승가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승가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간단합니다숨어있는 대중의 뜻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승가의 운영방식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뜻으로 종단이 운영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치도 대중의 뜻으로 지도자가 선출되고 대중의 뜻으로 그 지도자가 탄핵되기도 합니다. 대중의 뜻으로만 운영된다면 저는 종단이 망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종단이 쇠락하거나 비난듣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대중의 뜻으로 종단이 운영되지 못하면 그런 종단에 사는 개인이 진솔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위선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뜻으로 종단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소신발언을 할 수 없고, 보시물이 평등하게 나누어지지 않고, 승려 사이에 빈부의 차이가 생겨 갑을 관계가 되고, 승려가 서로 불신(不信)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으로 산다는 의미입니다. 대중의 뜻으로 운영되는 승가라고 해서 그 구성원들이 저절로 수행이 진전되거나 행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신하건데, 승복입고 사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승가의 일원이라는 당당함은 지니고 살 수 있습니다. 국민들이 '저 승가집단은 평등하고 민주적이네'라는 평가를 한다면... 제가 바라는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승적을 박탈당하거나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당하는 일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것이 제가 스스로 승적을 내려놓지 않고 나름대로 진솔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바위로 날아간 계란이 부서지듯 저는 그렇게 부서지는 길을 가렵니다. 그것이 저만의 방식으로 바위 곁에서 잠드는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과 가는 길이 같습니다. 저도 위선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 택한 길입니다. 가는 길이 같으니 언젠가 어디서든 스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허허로운 세상입니다. 그 허허로움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벗어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2022.2.1.

 

서산에서 허정드림

 

*우빨리여비구니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우빨리여정학녀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우빨리여사미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우빨리여사미니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우빨리여재가의 남자신자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우빨리여, 재가의 여자신자는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승가를 분열시키지

못한다.

(전재성역 쭐라왁가 8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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