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이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강 언덕 위의 이방인,
강처럼 물은 너의 이름에 나를 묶는다.
그 무엇도 이 먼 곳으로부터 나를
오아시스로 돌려보내 주지 않는다. 평화도, 전쟁도
그 무엇도 내가 복음서로 들어가는 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무엇도, 그 무엇도 티그리스 강과 나일 강 사이의 썰물과
밀물의 해안에서는 빛나지 않는다.
그 무엇도 파라오의 전차에서 나를 내려주지 않는다.
그 무엇도 나를 돌봐주거나, 혹은 내게 생각을 품게 해 주지 않는다.
향수도, 전망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그리고 강물을 응시하는
긴 밤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강물은 나를 너의 이름에 묶는다.
그 무엇도 꿈의 나비들로부터 나를 빼내지 못한다.
그 무엇도 나에게 현실을 주지 못한다. 먼지도 불도
사마르칸트의 장미가 없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수들이 월장석에 의해 부드럽게 연마되는 이곳, 이 광장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가벼워졌다.
먼 바람 속 우리의 집들만큼이나.
우리, 당신과 나는 구름 속의 이상한 존재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우리 둘은 정체성의 땅이 주는 중력에서 해방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그리고 강물을 응시하는 긴 밤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무엇도 우리를 돌봐주지 않는다. 길도, 집도
이 길은 처음부터 동일한 바로 그 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꿈들이 언덕에서 몽고말을 찾아
우리를 그것과 바꾸었던 걸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유랑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방인을 위한 침대(A Bed for the Stranger)』(1999)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팔레스타인 시인.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인 언어로 고향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족의 아픔을 대변하는 시를 씀. 1942년 팔레스타인 아크레(Acre) 출생. 1972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가담. 1987년 PLO의 간부로 임명되나 1993년 오슬로 협약에 반대하여 사임함. 1969년 로터스상(Lotus Prize) 수상. 대표작으로 『올리브 나뭇잎』(1964) 『팔레스타인 연인』(1966) 『새들 갈릴리에서 죽다』(1970) 『별 열하나』(1992) 등이 있음.
신문기사
“이-팔 진실 한국과 통해 기쁘다”
2007.11.08 17:36
팔레스타인의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마흐무드 다르위시(66)는 이번 AALF의 ‘간판스타’다. 30여권의 시집과 산문집이 35개 언어로 번역돼 있는 그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초청을 받았으나 “내 시집이 나오지 않은 나라에는 가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이번에 ‘팔레스타인에서 온 연인’(송경숙 옮김·도서출판 아시아)이란 시선집 출간에 맞춰 내한한 그는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점령지인 팔레스타인의 진실이 한국의 양심에 도달했다”며 기뻐했다.
팔레스타인 시인 다르위시(가운데)가 번역자 송경숙씨(왼쪽)와 고은 시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다르위시는 7살때인 1948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고향을 떠나 레바논으로 피신했다. 다음해 다시 돌아왔을 때는 유대인 거주지가 된 고향에 가지 못하고 아랍인 주거지에서 살았다. 이런 고향 상실의 경험은 다르위시의 시세계를 관통하고 있으며, 그는 이후에도 20군데가 넘는 곳을 옮겨다니는 유랑의 삶을 살고 있다.
다르위시는 “누구나 알다시피 시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양심과 느낌을 바꿀 수는 있다”며 “이 만남을 계기로 한국과 팔레스타인이 언어·문화·소통의 장벽을 넘기 바란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이라고 강조한 그는 “현재 팔레스타인은 원래 땅의 22%를 돌려달라는 요구조차 이스라엘에 거부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시인에게는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과 미학적 책임이 있다”며 “정치적 이유로 시가 과대평가되면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번 시선집에는 그의 초기 대표시집 ‘올리브 잎새들’(1964년)에서 최근 간행한 시집 ‘네가 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말라’까지 12종의 대표시집에서 뽑은 시 41편이 실렸다. 초기 저항시에서 모더니즘시, 산문시로 변해가면서 팔레스타인의 정치상황을 유토피아를 찾아 유랑하는 인류의 노래로 승화시킨 시인의 변모과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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