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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불교

금강경에 대한 아쉬움

 

조계종의 소의 경전인 금강경은 오랫동안 수행자들의 벗이 되어왔다. 오늘날에는 종단 표준번역본 금강경이 출판되어 우리말로도 독송하고 있다. 사찰마다 금강경을 주제로한 법회가 자주 열리고 49재등 천도재에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다. 인도성지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은 금강경의 설법지라고 알려진 사위성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며 감동하기도한다. 그러나 아시는 바와같이 부처님은 기원정사에서 금강경을 설한 적이 없다. 금강경은 불멸후 500년경에 대승보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렇게 말 할수 있는 이유는 금강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첫째는 금강경은 대승초기 경전으로 산스끄리뜨로 문자화 되어 나타났다. 

 

둘째는 금강경에서 대승(大乘), 최상승(最上乘),소법(소승법)이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런 단어들은 불멸후 400년간은 나타나지 않던 용어들로서 경전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如來 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여래 위발대승자설 위발최상승자설 

 

셋째는 니까야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 책을 베껴쓰고 읽고 외워라(書寫受持讀誦)는 표현이 등장한다.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하황서사수지독송 위인해설

受持讀誦은 9번이나 등장한다.

 

넷째는 초기경전에서는 오온의 무아(人無我)를 설명하는데 긍감경은 제법의 무아(法無我)를 강조한다. 

 

다섯째는 부처님 당시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사상(四想)이나 구상(九想)의 표현이 나타난다. 구마라즙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으로 번역했고 현장은 아상(我想) 유정상(有情想) 명자상(命者想) 사부상(士夫想) 보특가라상(補特伽羅想) 의생상(意生想) 마나파상(摩納婆想) 작자상(作者想) 수자상(壽者想)으로 번역했다.

 

여섯째는 모든 수행단계를 사상(四想)이 없는 상태로 평가한다. 부처님이 오백생 인욕선인으로 사실 때에 사상(四想)이 없었고, 사지를 잘릴 때도 사상(四想)이 없었고 사과(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를 얻은 자는 사상(四想)이 없어야하고, 오백년뒤에 금강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들도 모두 사상(四想)이 없을 것이고, 부처가 되는 것도 사상(四想)이 없기에 가능하다고 설한다. 초기경에는 수행의 진행에 따라 열가지 족쇄가 점차적으로 소멸되어 '사향사과'를 얻게 되는데 금강경에서는 모든 수행의 기준을 사상(四想)이 없는 상태로 규정하므로서 사실상 수행의 단계를 무효화하고 있다.

 

일곱째는 칠보(七寶)로 탑을 쌓는 것보다 사구게(四句偈)를 법보시(法布施)하는 것이 수승하다면서 외형적인 불사의 공덕 을 비판하고 있다. 불멸후 아소카왕 이후에 나타난 외형적인 불사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 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 선여인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乃至 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
내지 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여덟째는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천대받고 멸시받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표현이 나온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한 까닭에 비난받고 멸시받는다면 그것은 업장이 소멸되는 것으로 알고 금강경을 더욱 유포하라고 강조하는 이러한 표현은 불멸후 오백년뒤에 나타난 금강경이 그당시 사람들에게 거부당하고 배척당할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다.  

復次 須菩提 善男子 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
부차 수보리 선남자 선여인 수지독송차경 약위인경천 시인 선세죄업 응타악도 이금세인경천
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고 선세죄업 즉위소멸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홉째는 보시가 아니라 보시바라밀을, 반야가 아니라 반야바라밀을 강조함으로서 보살의 바라밀수행을 천명하고 있다.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천상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의 예비법문을 바라밀 수행으로 변화시켜서 일상생활이 수행이고 수행의 일상생활임을 설파하고 있다. 출가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린 수행을 재가자들의 일상생활로 확대하는 효과를 보이고있다.  所以者何 須菩提 佛說般若波羅蜜 卽非般若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소이자하 수보리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이름하여(是名)라는 단어가 26번이나 등장한다. 

 

열째는 후오백세는 금강경이 나타난 불멸후 500년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卽爲第一希有(약당래세 후오백세 기유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열한번째 이 경전이 있는 곳은 모든 인간과 천신들에게 공양받을 것이고 그곳이 바로 부처님의 사리탑이 있는 곳과 같다고 말한다. 불멸후 사리탑이 많이 만들어진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復次 須菩提 隨說是經 乃至 四句偈等 當知此處 一切世間 天 人 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부차 수보리 수설시경 내지 사구계등 당지차처 일체세간 천 인 아수라 개응공양 여불탑묘)

 

열두번째 수보리가 금강경과 같은 깊고깊은 경전은 이제까지 들어본적이 없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이미 아라한인 장로 수보리가 금강경을 듣고서야 이렇게 깊고 깊은 경전은 일찍이 얻어 듣지 못한 경전이라고 고백하게 함으로서 이 경이 깊고깊고 특별하다는 것을 드러내고있다. 이러한 표현으로 해서 자연스럽게 금강경의 가르침이 기존의 니까야와 아가마가보다 심오한 경전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깊히 깨달아 눈물을 흘리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렇게 깊고 깊은 경전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 바있는 혜안(慧眼)으로는 일찍이 얻어 듣지 못한 경전입니다.'"(爾時 須菩提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 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曾得 聞如是之經)

 

이러한 여러가지 표현방법과 내용을 고찰해 보면 자연스럽게 금강경이 불멸후 500년에 나타난 경전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불멸후 500년경에는 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인무아(人無我)를 넘어서 법무아(法無我)를 강조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고 사상(四想)과 구상(九想)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응병여약(應病與藥)처럼 그 시대에 나타난  병(四想)을 치유하기 위해 그 시대에 맞는 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표현들이 역으로 부처님의 수행단계를 무효화 시키는 등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오로지 사상(四想)이 없어야 한다는 금강경의 반복된 설명은 그 당시 병통을 치유할 수 있을지언정 현대의 불자들을 가르치기에는 부족하다.

 특히 대승(大乘), 최상승(最上乘)이라는 용어들과 수보리가 눈물을 흘리며 금강경을 찬탄하는 장면은 경전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대승불교권의 스님들과 불자들은 최고, 최상승이라는 표현에 함몰되고 이중 삼중 부정의 논리에 도취되어 대승우월주의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이런 표현들 때문이다. 최상승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선택받은 사람이고 화두를 드는 사람만이 최상의 공부를 하는 것처럼 말하기도한다. ‘탐진치(貪瞋癡) 없음’이라는 표현이나 ‘탐진치가 본래없다. 다만 이름하여 탐진치라 부를뿐이다'라는 것은 표현만 다르지 내용과 경지는 다르지 않음에도 다른 것처럼 오해한다.

 

금강경에서 사상(四想)이 없는 것은 초기경전의 열가지 족쇄중에서 마지막 족쇄인 무명이 없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열가지 족쇄들의 점차적인 소멸을 근거로 수행계위를 설명하지만 금강경은 '일체 유위법을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 같다고 관찰하라'는 게송으로 간단하게 표현할 뿐이다. 육조혜능스님처럼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한 구절에 깨달음을 얻는 다면 다행이겠으나 그렇치 못할 경우에는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부처님이 사향사과라는 수행계위를 설명하고 37조도품으로 자세하게 수행방법을 설명하여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 부처님 이외에는 인류사에 있어서 그 누구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단계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친절이자 실력이다. 이러한 친절이자 실력이 금강경은 사상(四想) 없음으로 단순화하고 있다. 

 

금강경이 부처님이 천명한 깨달음의 경지보다 더 깊고 높은 경지를 말하거나 기존의 가르침과 차별되는 특별한 가르침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승경전에서 이야기하는 최고, 최상승이라는 표현들은 어느덧 오염되어 버린 경들에 대한 해석을 버리고 본래의 부처님 뜻에 맞게 해석하라는 뜻이다. 그러하기에 조계종에서 수많은 부처님의 많은 말씀중에서 금강경만을 소의 경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억지스럽다.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협소하게하고 불친절하게 만든다. 소의경전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종파불교의 산물이다. 부처님이 남기신 친절함과 자세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금강경보다는 초전법륜경과 무아경같은 더 포괄적이고 친절한 경을 독송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제는 역사속에서 나타난 경전들을 역사에 맞추어 이해하고 초기경전과 대승경전(금강경)의 장점과 단점을 점검해 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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