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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출가를 미루어 달라

출가를 미루어 달라

 

 

 

조계종에 출가하려는 후배들이여! 출가를 미루어 달라. 출가한지 34년째가 되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참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2013821일 조계사 옆에서 자승 총무원장의 거액 상습도박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려던 적광스님은 호법부 소속 승려들에게 총무원 건물 지하 1층으로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폭행당했다. 판결문에는 적광 스님이 호법부직원들로부터 얼굴과 가슴, , 엉덩이, 허벅지 부위 등을 맞아서 퍼렇게 멍이들고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천만원을 벌금형을 받은 당시의 호법부 승려는 그 이후로 종회의원, 주지등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적광스님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렇게 비판하는 말을 한다고 선량한 승려를 두들겨 패서 정신병원에 입원 하게하는 무법천지의 종단에 어떻게 그대들을 들어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출가를 미루어 달라.

 

 

 

 

 

대낮에 적광스님에게 폭행을 해놓고도 불교신문은 몇 번이나 폭행은 없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나는 거짓 말하는 불교신문에 화가나서 SNS에 거짓말하는 쓰레기 신문, 불자들을 농락하는 기레기들 이라고 비판하였다. 불교신문은 나를 두 번이나 사회법에 고소하였고 다행히 검찰은 두 번 모두 건전한 비판은 허용된다고 혐의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비판이 정당하다는 사회법의 판단이 있었음에도 종단은 사회법에 따른 결과와는 별개로 발언의 위법성을 종단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나에게 공권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다. 사회법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도 종단에서는 문제가 있다고 징계하는 것은 구성원의 발언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언의 자유가 없는 종단에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하라 하겠는가?

 

 

 

 

 

적광스님을 폭행하도록 시킨 전 총무원장 자승은 작년 겨울에 봉암사 결사 정신을 잇는다며 위례신도시에 천막을 치고 동안거를 하였다. 안거하는 내용은 기괴하게도 석달동안 머리를 안 깎고, 목욕 안하고, 말 안하는 것인데 이것을 불교계 신문들은 새로운 수행이라고 칭송했다. 천막이 무허가 건물이고 자연훼손을 했다는 시민들의 고발과 진정이 쌓여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한 불자들은 소리높혀 다라니기도를 하고 매주음악회를 하고 수륙제를 하고 천막 가까이에 가서 아무개스님! 힘 내셔요라는 응원했다. 이것은 불교가 전래된 이래 최초로 보게되는 희한한 풍경이었다. 천막선방 옆에 인의적으로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을 만들어 놓고 요란스럽게 안거를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일자 몇몇 불교학자들을 동원하여 안거를 옹호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어느학자는 이 안거는 명상(Meditation)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메디테인먼트(Meditainment)’일종의 프레임 시프트(frame shift)’로서 시대의 흐름에 맞춘 안거라고 설명하였다. 출가자는 물론 멀쩡한 학자들까지 미쳐버리게 만드는 이리한 종단에 그대가 출가한다면 나는 그대의 정신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천막선원 해제날에는 종정이 찾아와 안거를 난 스님들의 공부는 점검하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라는 칭찬을 하였고 교욱원장이라는 스님은 아라한의 경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지 안거를 마친 승려들을 아라한이라고 칭송하였다. 석달간 안거과정은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 걸리고 본사별로 관람을 하였다. 최근에 엠비씨 피디수첩에서 현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범죄행위를 고발하는 방송이 방영되었는데도 그는 두꺼비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렇게 종단의 어른들이라는 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시키고 안거마져 안거쇼로 타락시켜도 종단의 어른 누구도 호통쳐서 말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종단에 차마 출가를 권할 수가 없다. 출가를 미루어 달라.

 

 

 

 

 

자승은 천막결사의 여세를 몰아 다시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까지 국난극복 불교중흥 자비걷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행사가 취소되는 상황인데도 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아 걷기를 하고 것이 어떻게 국난극복이 되며 어떻게 불교중흥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상월선원 수행쇼에도 법어를 내린 종정스님은 이번 걷기쇼에도 참석하여 법어를 내리는 등 자승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말로는 스스로가 부처님 혜명을 이은 79대 법손이라는 분이 해운정사도량에 자신의 석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당신의 고향 남해에 생가터를 복원한다고 절을 짓고 있으니 자승의 수행쇼를 돕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닐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도 손가락질 받을 만한 행위들을 종단의 어른이라는 분들이 저지르고 있으니 이러한 종단을 두고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출가를 미루어 달라.

 

 

 

 

 

 

 

그대들이 사는 세상에는 소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발언의 자유가 있지만 지금의 승가에서는 가사를 사야하고, 승복을 사야하고, 발우를 사야하고, 병원비를 스스로 마련해야한다. 바른 말을 하면 종단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징계를 당한다. 다 버리고 출가하라고 해놓고 막상출가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고 의식주를 걱정하게 하는 종단에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를 권하겠는가? 그대들이 사는 세상에는 남녀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지니는데 여기 승가에는 여성(비구니)이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중요한 소임을 선출할 때 선거권 피선거권도 주어지지 않기에 남자(비구)들에 비해 소외받고 있다. 이렇게 차별받는 승가에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라고 하겠는가? 출간을 잠시 미루어달라.

 

 

 

부처님이 제정해 놓으신 승가는 수행자들의 공동체이다. 모든 결정은 대중공의에 따라야 하고 모든 보시물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고 구성원의 발언권은 평등하게 주어진다. 이 승가의 의미와 운영원리에 사무쳐야지 승가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종단에 들어와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 사실을 먼저 눈을 떠라. 그렇치 못하다면 영원히 노예로 살아가게된다. 그대들이 출가하지 않고 재가신자로서 살아간다면 건강한 승가를 옹호하고 권승들을 비판하는 꼬삼비의 불자들로 남아있어 달라. 만약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출가를 하게 되었다면 아닌 건 아니다’ ‘옳은 건 옳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갖추고 출가를 하라. 그렇치 않다면 그대들도 출가하자마자 권승들에게 이용만당 하는 처지가 될 것이고 그대들도 도매금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승려가 될 뿐이다.

 

불교승려들이 사회인들의 지탄을 받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대들이 진정 부처님의 출가자가 되려한다면 청정한 승가를 복원 시키겠다는 원력을 가지고 출가하라. 그렇다면 기꺼이 그대들을 환영해 줄 것이다. 그대들이 출가하게 될 승가는 지금 오염된 바다와 같다. 이곳이 청정한 곳인 줄 알고 출가한다면 끝없이 번민의 밤을 보내게 되리라. 그렇다면 아예 출가하지 말라. 승가를 살리는 것이 불교를 살리는 것이라는 이해가 없고 원력이 없다면 출가하지 말라.

 

출가를 미루어 달라

조계종에 출가하려는 후배들이여! 출가를 미루어 달라. 출가한지 34년째가 되는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참으로 미안하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2013년 8월 21일 조계사 옆에서 자승 총무원장의 거액 상습도박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려던 적광스님은 호법부 소속 승려들에게 총무원 건물 지하 1층으로 끌려가 죽지 않을 만큼 폭행당했다. 판결문에는 적광 스님이 호법부직원들로부터 얼굴과 가슴, 팔, 엉덩이, 허벅지 부위 등을 맞아서 퍼렇게 멍이들고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고 명시되어 있다.그러나 천만원 벌금형을 받은 당시의 호법부 승려는 그 이후로 종회의원, 주지등에 임명되는등 승승장구 하고 있으며 적광스님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이렇게 비판하는 말을 한다고 선량한 승려를 두들겨 패서 정신병원에 입원 하게하는 무법천지의 종단에 어떻게 그대들을 들어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출가를 미루어 달라.

대낮에 적광스님에게 폭행을 해놓고도 불교신문은 몇 번이나 폭행은 없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나는 거짓 말하는 불교신문에 화가나서 SNS에 거짓말하는 쓰레기 신문, 불자를 농락하는 기레기들 이라고 비판하였다. 불교신문은 나를 2번이나 사회법에 고소하였고 다행히 검찰은 건전한 비판은 허용된다며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비판이 정당하다는 사회법의 판단이 있었음에도 종단은 “사회법에 따른 결과와는 별개로 발언의 위법성을 종단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며 나에게 공권정지 3년의 징계를 내렸다. 

종교집단이라는 미명하에 사회법을 무시하는 반면 절도죄로 실형을 받은 승려를 주지로 임명한 본사주지를 고발한 사건은 몇년째 뭉개고있다. 종단이 징계한 명진스님 도정스님등도 사회법에서 징계무효하라는 판결을 받아 부당한 징계라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여전히 사과도 없고 복권도 시키지 않고있다. 자기편은 어떠한 죄를 지었어도 봐주고 비판하는 승려는 사회법에서 무죄라는 판결을 받아도 징계하는 이런 종단에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하라 하겠는가?

적광스님을 폭행하도록 시킨 전 총무원장 자승은 작년 겨울에 봉암사 결사 정신을 잇는다며 위례신도시에 천막을 치고 동안거를 하였다. 안거하는 내용은 기괴하게도 석달동안 머리를 안 깎고, 목욕 안하고, 말 안하는 것인데 이것을 불교계 신문들은 새로운 수행이라고 칭송했다. 천막이 무허가 건물이고 자연훼손을 했다는 시민들의 고발과 진정이 쌓여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지한 불자들은 소리높혀 다라니기도를 하고 매주음악회를 하고 수륙제를 하고 천막 가까이에 가서 “아무개스님! 힘 내셔요”라는 응원했다.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최초로 보게되는 희안한 풍경이었다.

천막선방 옆에 인의적으로 시끌벅적한 시장바닥을 만들어 놓고 요란스럽게 안거를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일자 몇몇 불교학자들을 동원하여 안거를 옹호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어느학자는 이 안거는 ‘명상(Meditation)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를 결합한 ‘메디테인먼트(Meditainment)’며 “일종의 ‘프레임 시프트(frame shift)’로서 시대의 흐름에 맞춘 안거라고 감언이설 하였다. 출가자는 물론 멀쩡한 학자들까지 미쳐버리게 만드는 이러한 종단에 그대가 출가한다면 나는 그대의 정신건강을 장담할 수 없다.

천막선원이 해제하는 날에는 종정이 찾아와 주장자를 들고 “금일 대중은 아홉분의 진면목을 아시겠습니까?” “이제부터 광도중생에 매진합시다”라며 내용도 없는 고행을 칭찬을 하였고 교육원장이라는 스님은 안거를 마친 승려들을 아라한이라고 칭송하였다. 석달간 안거과정은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 걸렸고 그들은 머리를 기른채 영화 시사회에 다녔다. 최근에는 엠비씨 피디수첩에서 나눔의집 사태와 관련하여 현 총무원장 원행스님의 범죄행위가 고발되었는데도 당사자는 두꺼비 마냥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렇게 종단의 어른이라는 분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훼손시키고 안거를 안거쇼로 타락시키고 범죄를 저질러 지탄을 받아도 종단의 어른 선배 누구도 호통쳐서 말리지 않는다. 이런 종단에 차마 출가를 권할 수가 없다. 출가를 미루어 달라.

천막결사의 여세를 몰아 다시 대구 동화사에서 서울 봉은사까지 국난극복 불교중흥 자비걷기를 하고 있다. 코로나사태로 기존행사가 모두 취소되는 상황인데도 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아 걷기를 하고 것이 어떻게 국난극복이 되며 어떻게 불교중흥이 되는지 알 수 없다. 상월선원 안거쇼에도 법어를 내린 종정스님은 이번 걷기에도 참석하여 법어를 내리는 등 자승의 쇼를 부추기고 있다. 말로는 스스로가 부처님 혜명을 이은 79대 법손이라는 분이 해운정사도량에 자신의 석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모자라 당신의 고향 남해에 생가터를 복원한다고 절을 짓고 있으니 수행쇼를 돕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종단을 두고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하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출가를 미루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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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 사는 세상에는 소유의 자유, 발언의 자유가 있지만 승가는 종법으로 사유재산을 금지하고 사후에 모든 재산을 종단에 기증한다는 유서를 쓰게한다. 그러나 막상 출가해보면 개인이 가사를 사야하고, 승복을 사야하고, 발우를 사야하고, 병원비를 스스로 마련해야한다. 바른 말을 하면 종단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징계를 당한다. 다 버리고 출가하라고 해놓고 출가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종단인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를 권하겠는가?

그대들이 사는 세상에는 남녀가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지니는데 여기 승가에는 비구니(여성)은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중요한 소임을 선출할 때 선거권 피선거권이 주어지지 않고 수입이 좋은 대부분의 사찰은 비구(남성)들이 독차지 하고있다. 이렇게 차별받고 소외받는 승가에 어떻게 그대들에게 출가라고 하겠는가? 출가를 잠시 미루어달라.

부처님의 승가는 4인이상의 수행자 공동체이다. 모든 결정은 대중공의에 따라야 하고 모든 보시물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고 구성원의 발언권은 평등하게 주어진다. 종단에 들어와도 가르쳐주지 않는 승가의 의미와 운영원리에 먼저 눈을 떠라. 그렇치 못하다면 영원히 권승들의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 출가하지 않고 재가신자로서 살아간다면 건강한 승가를 옹호하고 권승들을 비판하는 꼬삼비의 불자들로 남아있어 달라. 

만약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출가를 하게 되었다면 ‘아닌 건 아니다’ ‘옳은 건 옳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추고 출가를 하라. 그렇치 않다면 그대들도 출가하자마자 권승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처지가 될 것이고 그대들도 같은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이라고 지탄을 받을 것이다.

승려들이 사회인들의 지탄을 받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대들이 진정 부처님의 출가자가 되려한다면 청정한 승가를 복원 시키겠다는 원력을 가지고 출가하라. 그렇다면 기꺼이 그대들을 환영해 줄 것이다. 그대들이 출가하게 될 승가는 지금 오염된 바다와 같다. 이곳이 청정한 곳인 줄 알고 출가한다면 끝없이 번민의 밤을 보내게 되리라. 그렇다면 아예 출가하지 말라. 승가를 살리는 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고 나를 살리는 것이 사회를 맑히는 것이라는 원력이 없다면 출가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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