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동안거 경전 공부
1.무아의 특징 경(S22:59)
2.외도의 주장 경(A3:61)
3.꼬삼비 경(M48)
4.배우지 못한자 경(S12:61)
5,모든 번뇌 경(M2)
무아의 특징 경 (S22:59)
3권, 234쪽 (無我經,五比丘經
非我經,五蘊皆空經)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오비구를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물질은 자아가 아니다. 만일 물질이 자아라면 이 물질은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물질은 자아가 아니기 때문에 물질은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물질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느낌은...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는 자아가 아니다. 만일 알음알이가 자아라면 이 알음알이는 고통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알음알이에 대해서 ‘나의 알음알이는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알음알이는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면 그대로 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알음알이는 자아가 아니기 때문에 알음알이는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알음알이에 대해서 ‘나의 알음알이는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알음알이는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4.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kallaṃ nu taṃ samanupassituṃ: ‘etaṃ mama, esohamasmi, eso me attā’”ti? “No hetaṃ, bhante”.
5.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This is not mine, I am not this, this is not my self.’
6.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염오(nibbidā)’란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 ‘탐욕의 빛바램(이욕, virāga)’이란 도(magga, 예류도,일래도, 불환도, 아라한도)이다.‘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는 반조(paccavekkhaṇā)의 지혜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7.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비구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상세한 설명이 설해졌을 때 오비구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SA 34 (三四) 五比丘
如是我聞:一時,佛住波羅[木*奈]國仙人住處鹿野苑中。
爾時,世尊告餘五比丘:「色非有我。若色有我者,於色不應病、苦生,亦不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以色無我故,於色有病、有苦生,亦得於色欲令如是、不令如是;受、想、行、識亦復如是。比丘!於意云何?色為是常、為無常耶?」
比丘白佛:「無常。世尊!」
「比丘!若無常者,是苦耶?」
比丘白佛:「是苦。世尊!」
「比丘!若無常、苦,是變易法,多聞聖弟子寧於中見是我、異我、相在不?」
比丘白佛:「不也,世尊!」
「受、想、行、識亦復如是。是故,比丘!諸所有色,若過去、若未來、若現在,若內、若外,若麁、若細,若好、若醜,若遠、若近,彼一切非我、非我所,如實觀察。受、想、行、識亦復如是。
「比丘!多聞聖弟子於此五受陰見非我、非我所。如是觀察,於諸世間都無所取,無所取故無所著,無所著故自覺涅槃:『我生已盡,梵行已立,所作已作,自知不受後有。』」
佛說此經已,餘五比丘不起諸漏,心得解脫。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논점
무아경과 반야심경의 비교
1).무아경은 부처님의 직설이고 반야심경은 불멸후 500년후에 편집된 것이다. 반야심경은 역사적으로 실제하지 않은 관세음보살을 등장시켜 지혜제일의 사리뿟따를 가르치는 형식으로 아라한들이 관음보살보다 낮다거나 완전치 못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2).무아경은 무상-괴로움-무너짐-마음대로 할 수 없음-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Atta)가 아니다.’라는 설명으로 논리가 단계적이며 구체적이며 반박하기 어렵다. 반면 반야심경은 법에대한 집착을 치유하는 경으로 오온과 12연기 4성제를 부정하는 표현들은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오온개공’으로 설명없이 훅 들어오는 가르침이고 설명보다는 직관을 강조한다.
3).무아경으로 최초로 아라한이 탄생하였고 반야심경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는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다.
4).무아경은 수행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 설명된다. 반야심경은 수행의 과정이 생략되어있다.
5).無我經,五比丘經, 非我經,五蘊皆空經으로 한역되었다.
1.무아경에서 부처님이 무아를 성명하는 방식은 2가지이다.
하나는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의 몸은 이와 같이 되기를. 나의 몸은 이와 같이 되지 않기를.’이라고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몸은 내가 아니다’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2가지로 무아(비아)를 설명하는 장점은 무엇인가?
2. 무아(無我)와 비아(非我)로 설명하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3.‘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Atta)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과 유신견(view of individuality)의 관계는?
20가지의 유신견은 이렇게 설명됩니다.
①몸이 자아이다, ②몸이 나의 것이다, ③몸안에 자아가 있다. ④ 자아 안에 몸이 있다라고 관찰하는 20가지 견해(5온 x 4가지 경우=20개의 유신견 발생).
주석서에 의하여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는 것은 마치 등불의 불꽃과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사로잡히면 이 몸이 무너져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고 봅니다.
②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는 것은 마치 나무가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③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부수들을 자아라고 간주하고 이 안에 물질이 놓여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마치 꽃 안에 향이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④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는 것은, 마음과 마음부수들을 자아라고 간주하고 이것이 물질 안에 놓여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마치 보석이 상자 안에 놓여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①은 단견 ②③④는 상견에 속합니다.
자아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들을 두고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취착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오온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서로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물안개와 물보라와 같은 개념적 존재일 뿐입니다. 선정, 신통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자아라는 개념을 해체하지 못하는 한 해탈, 열반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유신견의 내용이 그 시대에 자아에 집착하는 유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문제는 “오온이 공하다”는 반야심경의 언어보다는 “몸뚱이는 무상한것이고 무너지는 것이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괴로운 것이기에 몸뚱이는 내가 아니고 나의 것도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녀!” 라는 부처님의 언어가 더 친절하고 이해가 쉽다는 것이죠. ‘있다’ ‘없다’의 구렁으로 빠지고 쉬운 無我보다는 非我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고 보는 것이고요.
1.무아(無我)와 비아(非我)로 설명하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4. 이렇게 나의소유, 나, 나의 자아(Atta)가 없다는 3가지로 무아(無我)를 이해시키고 있는데 구마라즙과 현장은 반야심경을 번역할 때 왜 照見五蘊皆空으로 自性(svabhāva)을 빼고 번역했을까?
pañca-skandhāḥ tām ca svabhāva-śūnyān paśyati sma
산스끄리뜨 원전에서는 五蘊(pañca-skandhāḥ)의 自性(svabhāva)이 空(śūnyān)함을 보았다(paśyati sma)
구마라즙과 현장(649)은 각각 照見五陰空과 照見五蘊皆空으로 自性을 생략하고 번역하였고 法月(738) 智慧輪(859) 法成, 施護(982)스님은 각각 照見五蘊自性皆空, 照見五蘊自性皆空, 觀察照見五蘊體性悉皆是空, 觀見五蘊自性皆空으로 스와바와(svabhāva)를 自性, 體性으로 성실하게 번역하고 있다.
5. 반야심경을 대체하여 무아경을 매일 독송한다면 불자와 일반인들이 무아에 대해 더 쉽게 이해 할 수 있지 않을까?
6. 아라한의 오도송과 선사들의 오도송의 차이는?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出生已盡,梵行已完成,應該作的已作,不再有這樣[輪迴]的狀態了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외도의 주장 경(A3:61) Tittha-sutta(일체개고에 대한 대답)
앙굿따라니까야 1권(대림스님, 2006년) p.433-442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 등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 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ㆍ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2. “비구들이여, 나는 이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헐뜯는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잡담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마음이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3.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헐뜨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잡담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마음이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햐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4.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파괴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헐뜯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잡담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악의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에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ㆍ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들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업음에 도달하고 만다.”
5.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 내가 설한 법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虛空界], 알음알이의 요소[識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7.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눈의 감각 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 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 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 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 접촉의 장소, 마노의 감각 접촉의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8.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온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귀로 소리를 들을 때 … 코로 냄새를 맡을 때 … 혀로 맛을 볼 때 … 몸으로 감촉을 촉감할 때 … 마노로 법을 알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온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9.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반연하여 설했는가?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ㆍ물질[名色]이 있다. 정신ㆍ물질을 조건하여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하여 감각접촉[觸]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受]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Vediyamānassa,현재분사,여격)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천명한다.”
1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1.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行]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ㆍ물질이, 정신ㆍ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行]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고, 정신ㆍ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ㆍ죽음과 근심ㆍ탄식ㆍ육체적 고통ㆍ정신적 고통ㆍ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3.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덝 가지 구성요소로 된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ㆍ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논점
1.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Vediyamānassa)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천명한다.는 것을 보면 일체개고의 뜻이 한정적일 것이다. 일체개고의 뜻은?
2,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라는 불교의 업이론과 모든게 ‘전생의 원인’임을 말하는 외도의 차이는 ?
3. 육계(cha dhātu), 육촉입처(cha phassāyatanānī), 18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aṭṭhārasa manopavicārā), 사성제(cattāri ariyasaccānī)라는 부처님의 교리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이유는 ?
4.18계를 설하지 않고 18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aṭṭhārasa manopavicārā)을 설하는 이유는?
5.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의 뜻은?
Channaṃ dhātūnaṃupādāya gabbhassāvakkanti hoti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A4:46)
c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나는이러한 네 가지 진리를 풀이나 나무등걸 등에서 천명하지 않는다.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바로 이 몸에서 천명한다.’(AA.iii,88-89)
— 《잡아합경》 제13권 제335경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한문본
云何為第一義空經。諸比丘。眼生時無有來處。滅時無有去處。如是眼不實而生。生已盡滅。有業報而無作者。此陰滅已。異陰相續。除俗數法。耳.鼻.舌.身.意亦如是說。除俗數法。俗數法者。謂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如無明緣行。行緣識。廣說乃至純大苦聚集起。又復。此無故彼無。此滅故彼滅。無明滅故行滅。行滅故識滅。如是廣說。乃至純大苦聚滅。比丘。是名第一義空法經。
꼬삼비 경(M48)Kosambiya Sutta
(여섯가지로 기억할 만한 법)
맛지마니까야 2권 366쪽~368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꼬삼비의 고시따원림에 머무셨다.
2 그때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 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들은 서로를 설득 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3 그러자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세존이시여,지금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들은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그 비구들을 불러오라.
‘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 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그 비구들을 찾아갔다. 가서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
“도반이여,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그대들은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괴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세존이시여”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을 때에 그대들은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몸의 업,말의 업,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가?”
“아닙니다,세존이시여 "
“비구들이여,참으로 그러 하다. 그대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을 때에 그대들은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몸의 업, 말의 업,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지 못한다.
쓸모없는 자들이여,그대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기에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괴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는가?
쓸모없는 자들이여,그것은 그대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이 있으니, 이것은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➀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➁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➂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➃ 법답게 얻은 법다운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이 비록 발우 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그렇게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고, 계를 잘 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➄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들러붙지 않고 사마디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그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가 있으니, 여기 비구는 ➅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 [바른]견해를 그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7.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치 이층 누각 집에 이층 누각이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처럼 그와 같이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8. “비구들이여,그러면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바른]견해는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어떻게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 하는가?
비구들이여,여기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집에 가서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강박관념(pariyuṭṭhitacitto)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있는가?’라고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악의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이 세상에 대한 사색에 몰두해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저 세상에 대한 사색에 몰두해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만일 비구가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이제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제거되지 않은 강박관념(pariyuṭṭhitacitto)이 내 안에 없다.
나의 마음은(mānasaṃ)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잘 안정되어 있다.’
Suppaṇihitaṃ me mānasaṃ saccānaṃ bodhāyā’ti. 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 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첫 번째 지혜이다"
(오장애가 사라졌다.māno는 늘 부정적인 것과 결합되지 않는다.)
9. “다시 비구들이역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가 이런 견해를 받들어 행하고 닦고 거듭하면 스스로 사마타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 얻게 되는가?’라고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이런 견해를 받들어 행하고 닦고 거듭하면 스스로 사마타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 얻게 된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두 번째 지혜이다”
l0.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우리 교단 외부에(ito bahiddhā) 내 견해(예류도의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는가?’라고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우리(교단) 외부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세 번째 지혜이다“
(불교와 같은 사상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11.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성품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복권(復權)이 제정된 그런 계(yathārūpāya āpattiyā vuṭṭhānaṃ paññāyati) 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지자(智者)들이나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하여 미래를 단속한다.’
비구들이여,마치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의 손이나 발이 숯불에 닿으면 즉시에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복권이 제정된 그런 계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지자(智者)들이나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하여 미래를 단속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다. ’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네번째 지혜이다“
(정직해서 죄를 숨길 수 없다)
12 “다시 비구들이여,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yathārūpāya dhammatāya diṭṭhisampanno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성품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해야 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도 높은 계(adhisīlasikkhāya)와 높은 마음(adhicittasikkhāya )과 높은 통찰지(adhipaññāsikkhāya)를 공부짓기 위해 큰 뜻을 품는다’
비구들이여, 마치 어린 송아지를 거느린 어미 소가 풀을 뜯어 먹으면서도 송아지를 돌보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해야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기 위해 큰 뜻을 품는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다섯 번째 지혜이다“
(일상의 소임을 보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산다)
13 “다시 비구들이여,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yathārūpāya balatāya diṭṭhisampanno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힘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이다. ‘그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그는 정신을 기울이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온 마음을 쏟고 귀 기울여 법을 듣는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여섯번째 지혜이다“
14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힘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이다. ‘그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뜻에서 영감(atthavedaṃ) 을 얻고 법에서 영감(dhammavedaṃ)을 얻고 법과 관계된 환희(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를 얻는다.’
they find joy in the meaning and the teaching,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일곱 번째 지혜이다“
15 “비구들이여,이와같이 일곱 째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의 성품은 예류과를 실현함으로써 잘 검증된다. 비구들이여,이와같이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예류과를 갖춘 것이다.” Evaṃ sattaṅgasamannāgato kho, bhikkhave, ariyasāvako sotāpattiphalasamannāgato hotī”ti.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拘睒彌經
比丘們!有這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六和睦法,哪六個呢?比丘們!這裡,比丘的慈身業對同梵行者公開地與私下地被現起,這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再者,比丘們!比丘的慈語業對同梵行者公開地與私下地被現起,這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再者,比丘們!比丘的慈意業對同梵行者公開地與私下地被現起,這也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再者,比丘們!比丘是所有那些根據法而得到的如法利養,乃至包含自己鉢裡的,以像這樣的利養與有戒的同梵行者平等地受用者、共同分享者,這也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再者,比丘們!比丘對所有無毀壞的、無瑕疵的、無污點的、無雜色的、自由的、智者所稱讚的、不取著的、導向定的戒,在像這樣的戒上與同梵行者公開地與私下地住於戒的一致,這也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再者,比丘們!比丘對所有這聖的、出離的、帶領那樣的行為者到苦的完全滅盡之見,在像這樣的見上與同梵行者公開地與私下地住於見的一致,這也是可愛的推行,尊重的推行,導致凝聚、無諍論、和合、一致性的和睦法。
1.한문의 ‘육화경(六和敬)’과 맛지마 ‘여섯가지 기억할 법’이 다른 점은 ?
신화공주(身和共住)는 몸으로 화합하여 같이 살라,
구화무쟁(口和無諍)은 입으로 화합하여 다투지 말라,
의화동사(意和同事)는 뜻으로 화합해 함께 일하라.
계화동수(戒和同修)는 계율로 화합해 같이 수행하라,
견화동해(見和同解)는 바른 견해로 화합하여 같이 해탈하라,
이화동균(利和同均)은 이익을 균등히 나누라.
제자들이여,
여기 여섯 가지 화합하는 법이 있으니 잘 기억하고 존중하여 이것에 의지하여 물과 젖처럼 잘 화합하며 다투는 일이 없도록 하라.
① 규칙을 잘지녀 지키고
② 생각을 같이 지니고
③ 공양을 똑같이 나누고
④ 한 장소에 같이 모여 살고
⑤ 항상 서로 자비롭게 말하고
⑥ 언제나 남의 뜻을 존중하라.
제자들이여,
각자가 행동을 삼가고 참아야 하며 항상 너그럽게 자비심을 갖고 진리를 같이 배워서 안락하게 공부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백장암본)
여섯가지로 화합하는 가르침
비구들이여,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하고 ‘기억해야 할 여섯 가지 법’이 있다.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앞에 있거나 없거나 그들에 대해
●몸으로 자애롭게 행동한다.
●입으로는 자애롭게 말한다.
●마음으로는 자애를 유지한다.
●계를 지키는 수행자들과 공양물을 평등하게 나눈다.
●삼매로 이끄는 계를 갖추어 머문다.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바른견해를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기억해야 할 여섯 가지 법’은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하고 승가의 분쟁을 없애고 물과 우유가 섞이듯이 조화와 화합을 가져온다. 이 중에서도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바른견해를 구족하는 것이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꼬삼비경M48)
2.일곱 가지 견해를 구족한 자(sattaṅgasamannāgato)의 설명을 통해서 각자의 수행을 점검해 볼 수 있을까? ‘예류과’를 증득하기 전에 수행자의 마음상태는 어떠해야 하는가?
꼬삼비경(M48)에서 ‘여섯가지 화합하는 가르침’을 설명하였는데 여섯번째 바른견해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이다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한문 육화경에서는 보이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 7가지 바른 견해는 여기서 7가지 지혜로 표현되는데 이것은 예류도에서 나타나는 성자들의 품성입니다. 도과를 얻기전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어떠한 수행을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는 이 단원은 수행자들이 꼭 알고 있어야 할 대목이며 초발심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알려주어야할 내용입니다.
첫째는 오장애를 없야애 합니다. 감각적인 욕망을 추구하면서 수행을 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우리(교단) 외부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안다는 것은 불교가 진리하는 것을 알고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언어의 표현과 문법만 다르지 모든 종교는 다 진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보아야할 대목입니다. 넷째는 계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도반들에게 드러내고 공개한다는 것은 도를 알아가는 수행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여섯째와 일곱째는 ‘바른견해의 역량(힘)’을 갖춘 수행자는 법과 율에서 뜻을 꽤뚫고 가르침을 꽤뚫어 환희(pāmojjaṃ)를 얻는데 이것을 예류과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성인이되는 수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귀한 가르침이 있는 ‘꼬삼비경’은 수행자라면 평생 가까이 해야할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성스럽고 출세간적 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7가지 지혜
➀감각적 욕망(kāmāchanda), ➁악의(vyāpāda), ➂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⑤회의적 의심(vicikichā)이라는 오장애를 극복하여 마음이 안정된다.
2. 내가 이런 견해를 받들어 행하고 닦고 거듭하면 스스로 사마타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 얻게 된다고 안다.
3. 우리(교단) 외부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안다.
4.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은 계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지자(智者)들이나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5.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은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크고 작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기 위해 큰 뜻을 품는다’
6. 바른 견해의 역량을 구족한 수행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정신을 기울여 온 마음을 쏟고 귀 기울여 법을 듣는다.’ (6~7번지혜 설명에서는 바른견해의 역량(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근(五根)과 오력(五力,힘)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7. 바른 견해의 역량을 구족한 수행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뜻을 꽤뚫고 가르침을 꽤뚫고 가르침에 관계된 환희(pāmojjaṃ)를 얻는다.’
‘여섯가지 화합하는 가르침’에서 여섯번째 바른견해는 포괄적이고 총체적이다라는 설명이 선가(禪家)쪽으로 이어져 선문(禪門)에서는 ‘눈 밝은 것을 보지 행위를 논하지 않는다’.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꼬삼비경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눈밝은 것 안에는 이미 엄격한 계(戒)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눈 밝은 것을 보지 행위를 논하지 않는다’는 해석은 꼬삼비경을 꼭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1~5번지혜의 설명에서는 역량(힘)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다가6~7번지혜 설명에서는 바른견해의 역량(힘)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근(五根)과 오력(五力,힘)의 차이를 알게 됩니다.
3. 여섯가지 기억해야 할 법 중에서 바른견해가 최상이라고 설명하는데 현재 조계종에서는 어떤 것이 가장 최상일까?
4. 부처님도 승가를 화합시키는 것에 실패했는데 꼬삼비 시민들이 승가의 화합을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지 못한 자경(Assutavā-sutta)(S12:61)
(연기공식에 대한 이해)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왓티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도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사라지고 벗어나려 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은 활기찰 때도 있고 의기소침할 때도 있고 받을 때도 있고 내려놓을 때도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범부도 여기에 대해서 염오하고 탐욕이 사라지고 벗어나려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배우지 못한 범부는 마음[心]이라고도 마노[意]라고도 의식[識]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에 대해서 염오할 수 없고 탐욕이 사라지고 벗어날 수 없다. Yañca kho etaṃ, bhikkhave, vuccati cittaṃ itipi, mano itipi, viññāṇaṃ itipi,tatrāssutavā puthujjano nālaṃ nibbindituṃ nālaṃ virajjituṃ nālaṃ vimuccituṃ.
왜냐하면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움켜쥐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못한 범부는 여기에 대해서 염오할 수 없고 탐욕이 사라질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차라리 마음이 아니라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을 자아라고 간주하는 것이 차라리 좋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왜냐하면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은 일 년도 머물고 2년도 머물고 3년도 머물고 4년도 머물고 5년도 머물고 10년도 머물고 20년도 머물고 30년도 머물고 40년도 머물고 50년도 머물고 100년도 머물고 그 이상도 머문다는 것을 그는 보고 생각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마음(citta)이라고도 마노(mano)라고도 의식(vinnana)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낮이건 밤이건 생길 때 다르고 소멸할 때 다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원숭이가 숲에서 돌아다니면서 이 나뭇가지를 잡았다가 놓아버리고 다른 나뭇가지를 잡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마음이라고도 마노라고도 의식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낮이건 밤이건 생길 때 다르고 소멸할 때 다르다.”
4. “비구들이여, 이 경우에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연기를 철저하게 알아 차린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iti 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uppādā idaṃ uppajjati;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즉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생겨나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생겨나고,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지고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번민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라고.”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지각)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형성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식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끝났다. 청정범행은 완성되었다. 해야 할 일은 이루어졌다. 이 상태 외에 다른 삶은 없다.’라고 안다.”
논점은
1.차라리 육신을 나라고 여기라는 의미는 ?
2. 심의식(心citta, 意mano, 識vinnana)의 관계는?
마음과 마음부수
첫째, 마음이 일어날 때는 감각접촉(phassa)이 같이 일어난다.
둘째, 느낌(vedanā)이 없으면 마음은 대상을 경험할 수 없다.
셋째, 인식(sannā)이 없으면 마음은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넷째, 의도(cetanā)가 없다면 대상을 알 수가 없다.
다섯째,집중(ekaggatā)이 없으면 대상에 고정시키지 못한다.
여섯째, 생명기능(jīvitindriya)이 없으면 마음은 아무것도 못한다.
일곱째, 대상에 주의(manasikāra)를 기울이지 않으면 마음은 대상을 알아차릴 수 없다.
마음(心 : citta)과 마노(意 : mano)와 알음알이(識(식) : viññāṇa)
"Mano Citta Vinnana" by Bhante Punnaji
https://www.youtube.com/watch?v=Y5ljJTehdo8
Viṇṇāṇa is part of the khandhas and āyatanas, and hence pertains to the first noble truth: it is suffering. 유식측면 6식
Mano is typically used in an active sense of will or volition, closely related to kamma, and hence pertains to the second noble truth, the cause of suffering. 7식
Citta is to be developed and thus pertains to the fourth noble truth. Perhaps that is why we contemplate on Citta (cittanupassana) in Satipathana 8식
The cessation of all these is, of course, the third noble truth.
Manopubbaṅgammā dhammā
Manoseṭṭhā manomayā
Manasā ce paduṭṭhena
Bhāsati vā karoti vā
Tato naṃ dukkham anveti
Cakkaṃ va vahato padaṃ (DhP 1)
3.연기공식 ‘이것과 이것’의 바른 이해는 ?
‘paicca-samuppda’는 ‘연’이라는 뜻의 ‘paicca’와 ‘기’라는 뜻의 ‘uppda’ 사이에 ‘함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sam’이 들어 있다. 그래서 ‘조건적으로 함께 일어난다’라는 뜻이 된다.
연기공식은 예류과의 오도송이라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고 나타난다.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
(yaṃ kiñci samudayadhammaṃ
sabbantaṃ nirodhadhammanti” (S56.11)
연기경(S12:20)에서는 연기의 4가지 특징을 열거하고 있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는 것은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⓵그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sā dhātu) ⓶법으로서 확립되어 있으며(dhammaṭṭhitatā) ⓷법으로서 결정되어 있으며(dhammaniyāmatā) ⓸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idappaccayatā).
청정도론에서는 이 4가지를 객관성(tathatā),필연성(avitathatā), 불변성(anaññathatā) 그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idappaccayatā) 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에서는 각각 法如法爾, 法不離如, 法不異如, 是隨順라고 설명하고 있다.
연기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연기공식은 이렇다.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할 때 저것이 소멸한다.
imasmiṃ(이것이,처격) sati(있을때,현재분사) idaṃ(이것이,주격,중성) hoti.(있다,3인칭)
Imassa(이것의,소유격) uppādā(일어남으로부터,탈격) idaṃ(이것이,주격) uppajjati.(일어난다,3인칭)
Imasmiṃ(이것이) asati(없을때) idaṃ(이것이) na hoti.(없다)
Imassa(이것의) nirodhā(소멸함으로부터) idaṃ(이것이) nirujjhati(소멸한다)
한문 경전 중에는 이것(是事)과 저것(彼有)으로 번역한 경이 14개가 있지민 원전에 충실하게 이것(是事)과 이것(是事)으로 번역한 경전도 6개가 있다.
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 잡아함1-297 대공법경
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잡아함1-335 제일의공경
是事有故是事有。是事起故是事生。잡아함1-136 생사유전경
是事有故是事有。是事起故是事起。잡아함2-590 상인경
일반적으로 ’이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지칭하고 ’저것‘은 멀리에 있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것과 이것은 같거나 비슷한 종류를 지시하거나 비교할 때 사용하고 이것과 저것은 다르거나 이질적인 것을 지시하거나 비교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12연기에서는 무명과 행과 식의 명색등의 순서가 법칙으로 정해져 있으며 그러므로 a1-a2-a3-a4...a12의 관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연기를 ’이것‘과 ’저것‘의 관계로 말씀하시지 않고 ’이것‘과 ’이것‘의 관계로 설명하시게 되는 것이다. 경에서 연기공식은 항상 12연기와 함께 설해지며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다(avijjāpaccayā saṅkhārā)는 표현 대신에 무명이 있을 때 행이 있다.(avijjāya sati saṅkhārā honti)로도 나타나고 있다. 연기공식은 12연기 각지의 관계 즉 무명과 행의 관계, 행과 명색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12지에서 각 지 간의 긴밀성, 즉각성, 인과성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것‘과 ’이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연기공식과 12연기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경이 ‘우다나’에 보인다. 우다나 깨달음의 경1은 “'이것이 있을 때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순관(順觀)이 설해지고, 깨달음의 경2는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역관(逆觀)이 설해지며, 깨달음의 경3는 “이처럼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설해지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번역할 때 이것(A)과 이것(A1)의 관계를 이것(A)과 저것(B)로 바뀌어 번역하는 바람에 연기가 관념화되고 우주생성의 법칙으로 오해되는등 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빠알리어를 직접 번역하는 각묵스님과 전재성교수도 이것(A)과 저것(B)으로 번역하여 그 오류의 전철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연기공식이 변질된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자면
첫째. 이것(A)과 저것(B)로 바뀌어 번역하는 바람에 연기공식이 12연기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법칙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A와 B의 관계도 순서가 무너져 상호의존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있다’는 성립하지만 ‘행이 있으므로 무명이 있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생이 있으므로 노사가 있다’는 성립해도 ‘노사가 있으므로 생이 있다’는 맞지 않다. 단 식과 명색의 관계는 상의성이 성립한다.
ex)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라는 연기법으로는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존재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불교교리의 사상적 이론적 근거가 된다."(호진스님의 '성지에서 쓴 편지'106p)
둘째. A와 B의 의미가 관념화되어 순서는 사라지고 반대의미의 대응법칙이 되었다. 예를들어 음극과 양극, 선과악, 도둑과 경찰등의 상호의존관계가 연기인 것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
ex) 종교평화선언 초안: 연기적 세계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과 ‘저것’ ‘나’와 ‘남’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연관된 존재입니다. 연기적 세계관으로 본다면 반목과 대립은 바람직한 생존의 방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저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것’ 또한 부정하는 것이요, 남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남을 인정해야 하고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남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 연기적 세계관의 가르침입니다.
셋째, 12연기 고리가 가지는 객관성,필연성,불변성,조건성,순차성,인과성, 즉각성, 긴밀성이라는 특수관계성이 사라지게 되어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원리라는 본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A와 B의 긴밀한 순서체계가 없어지니 A와 B에 아무거나 대입하므로서 .‘조건적으로 함께 일어난다’는 본래의 의미는 사라졌다.
연기연멸의 법칙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24연(24paccaya)이 있다.
1. Root condition: hetu paccaya
2. Object: ārammana
3. Predominance: adhipati
4. Priority: anantara
5. Contiguity: samanantara
6. Co-nascence: sahajāta
7. Mutuality: aññamañña
8. Support: nissaya
9. Decisive Support: upanissaya
10. Pre-nascene: purejāta
11. Post-nascene: pacchājāta
12. Repitition: āsevana
13. Karma: kamma
14. Karma-result: vipāka
15. Nutriment: āhāra
16. Faculty: indriya
17. Jhāna: jhāna
18. Path: magga
19. Associaton: sampayutta
20. Dissociation: vippayutta
21. Presence: atthi
22. Absence: natthi
23. Disappearance: vigata
24. Non-disappearance: avigata
24연과 십현문의 관계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신(新)과 구(舊)의 구별이 있는데, 지엄(智儼)이 세운 것을 구십현(舊十玄)이라 하고, 법장(法藏)이 구십현을 계승하여 『탐현기 探玄記』에서 주창한 것을 신십현(新十玄)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 두 설을 모두 채택하였는데 의상(義湘)이 중심이 된 화엄종은 구십현을 채택하였고, 표운(表員) 등은 신십현을 전승하였다. 십현연기의 각 항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십현연기의 총설(總說)이라고 할만한 부분이다. 우주 속에 있는 한량없는 사물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일체(一體)의 연기관계에 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보면 제각기 한 법 위에 모든 법을 갖추고서도 앞과 뒤, 처음과 나중의 차별이 분명하여 서로 섞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②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만상을 일(一)과 다(多)로 나누고 그 사이에서 서로 용납하고 서로 섭입(攝入)하여도 조금도 장애가 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개개의 자신은 서로 차별한 상모(相貌)를 잃지 않으며 그 본성을 가진다는 것을 밝힌 부분이다.
③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만유제법의 자체는 모두 일체(一體)이어서 서로 원융무애자재(圓融無礙自在)함을 밝힌 부분이다. 예를 들면, 1전(錢)이 없으면 10전도 없고 10전이 없으면 1전도 없는 것과 같이, 하나가 없을 때에는 일체가 없다는 뜻에서 일즉일체(一卽一切)이며, 일체가 없으면 하나도 없다는 뜻에서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고 한다.
④ 인드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제석천(帝釋天)에 있는 보배로 된 그물의 그물코마다 달린 보주(寶珠)가 서로 그림자가 비치어 중중무진(重重無盡)함을 밝힌 부분으로, 만유의 제법이 서로 상즉상입한 것을 설명한 것이다.
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만유의 상(相)에 대하여 일즉다(一卽多)·다즉일(多卽一)의 관계를 밝힌 것이다. 상용(相容)은 일이 능히 다를 용납하고 다가 능히 일을 용납하여 융통무애함을 말한다. 이 융통하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하여 미세상용이라 하며, 일과 다는 상즉상입(相卽相入)하는 관계가 있으므로 현상을 깨뜨리지 않고 그대로 일체(一體)의 관계를 가진 것이므로 안립이라 한다.
⑥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은 무릇 한 사물을 여러 방면으로 관찰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한 방면이 숨으면서 다른 방면이 특별히 나타나는[隱顯] 경우가 있고, 각 방면이 동시에 서로 대대(對待)하므로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각 방면이 비밀스럽게 은현하여 동시에 존재하는 관계를 보인 법문이다.
⑦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은 수행하는 데 일과 다의 행이 서로 즉입(卽入)함을 말하는 한편, 순일한 행위 가운데 복잡한 행위가 그대로 덕으로서 갖추어져 서로 구애되지 아니함을 말한다. 보시(布施)의 행 가운데 다른 일체의 행을 갖추었다고 하는 것과 같이, 보시의 행이 곧 만행(萬行)이라고 보는 것과 같다.
⑧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의 십세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각 다시 삼세를 나눈 구세와 이를 총괄하는 일세, 즉 일념(一念)을 말한다. 구세는 시간적으로 전후 차별관계에 있지만 모두가 일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모두 일념 중에 현현(顯現)하여 십세의 장단이 자재하게 원융하며 상즉상입하는 것으로, 십세의 격한 법이 다르게 성취하는 문이다.
⑨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은 일체의 모든 법이 여래장(如來藏)의 일심(一心)으로 전변(轉變)하여 생긴 것임을 표시하는 부분이다.
⑩ 탁사현법생해문(托事顯法生解門)은 차별의 현상계(現象界)를 의지하여 진리(眞理)를 나타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요해(了解)하는 지혜를 내게 한다는 뜻이며, 현상계의 사물 그대로가 진리라는 것을 보이는 문이다.
1-1 깨달음의 경 Pathamabodhisuttam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 언덕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체험하면서 이레 동안을 앉아계셨다.
마침 세존께서는 이레가 지나자마자 그 삼매에서 일어나 밤의 초야에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에 대하여 순관으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atha kho bhagavā tassa sattāhassa accayena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ahitvā rattiyā paṭhamaṃ yāmaṃ paṭiccasamuppādaṃ anulomaṃ sādhukaṃ manasākāsi —
[세존] '이것이 있을 때에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
곧,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었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사실들이 원인을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므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pajānāti sahetudhamman”ti.
1:2 깨달음의 경 Dutiyabodhi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 언덕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체험하면서 이레 동안을 앉아계셨다.
마침 세존께서는 이레가 지나자마자 그 삼매에서 일어나 밤의 중야에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에 대하여 역관으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Atha kho bhagavā tassa sattāhassa
accayena tamhā samādhimhā vuṭṭhahitvā rattiyā majjhimaṃ yāmaṃ paṭiccasamuppādaṃ paṭilomaṃ sādhukaṃ manasākāsi:
[세존]'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Iti imasmiṃ asati idaṃ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
곧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었다.
[세존] "참으로 열심이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조건지어진 것들은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
그 거룩한 님에게 모든 의혹이 사라진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Athassa kaṅkhā vapayanti sabbā,
Yato khayaṃ paccayānaṃ avedī”ti.
1-3 깨달음의 경 Tatiyabodhi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 우루벨라의 네란자라 강 언덕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부좌를 하고 해탈의 지복을 체험하면서 이레 동안을 앉아계셨다.
마침 세존께서는 이레가 지나자마자 그 삼매에서 일어나 밤의 후야에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에 대하여 순관과 역관으로 이치에 맞게 정신활동을 기울였다.
[세존] '이처럼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저것이 사라진다.
곧,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며,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며,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며,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며,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며,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생겨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면 의식이 소멸하며, 의식이 소멸하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소멸하면 여섯 감역이 소멸하며, 여섯 감역이 소멸하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면 느낌이 소멸하며, 느낌이 소멸하면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면 집착이 소멸하며, 집착이 소멸하면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면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면, 늙음과 죽음,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해서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이 소멸한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그 뜻을 헤아려, 때맞춰 이와 같은 감흥어린 시구를 읊었다.
[세존] "참으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선정을 닦는 님에게 진리가 나타나면,
태양이 어두운 허공을 비추듯,
거룩한 님은 악마의 군대를 부숴버린다."
“yadā have pātubhavanti dhammā,
ātāpino jhāyato brāhmaṇassa.
vidhūpayaṃ tiṭṭhati mārasenaṃ,
sūriyova obhāsayamantalikkhan”ti.
모든 번뇌 경(M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 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의 번뇌들이 소멸 하는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과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비구들이여,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지혜롭게 마음을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4. ?비구들이여, ①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②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③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④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⑦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 있다.
Atthi, bhikkhave, āsavā ⓵das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⓶saṃvar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⓷paṭisev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⓸adhivās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⓹parivajj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⓺vinodanā pahātabbā, atthi āsavā ⓻bhāvanā pahātabbā.
수행승들이여, 관찰에 의해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호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용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인내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피함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제거에 의해서 끊어지는 번뇌가 있고 수행에 의해서 사라지는 번뇌가 있다.
5.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이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괴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지면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7. ?그는 다음과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한다.
?나는 과거에 존재했을까? 아니면 나는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했을까? 나는 미래에 존재할까? 아니면 나는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될까? 나는 미래에 어떻게 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었다가 무엇으로 변할까? 지금 현재에 대해서도 안으로 의심한다.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중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라고?
8. ?이와 같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할 때 그에게 여섯 가지 견해들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긴다.
① ?나에게 자아가 있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② ?나에게 자아란 없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③ ?나는 자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가. ④ ?나는 자아로써 무아를 인식한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⑤?나는 무아로써 자아를 인식한다.?라는 견해가 그에게 진실로 확고하게 생긴다. ⑥ 혹은 그에게 이런 견해가 생긴다. ‘이러한 나의 자아는 말하고 경험하며, 여기저기서 선행과 악행의 과보를 경험한다. 그런 나의 자아는 향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고.‘
ayaṃ attā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sassatisamaṃ tatheva ṭhassatī’ti.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에 빠짐, 견해의 밀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라 한다. 비구들이여, 견해의 족쇄에 계박되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9.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서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안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아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10.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kāmāsavo)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bhavāsavo)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 (avijjāsavo)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증가하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할 때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없어지면, 그 법들은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는 법으로서,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말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해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없어진다.?
11.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와, 의심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다.
—sakkāyadiṭṭhi(identity view), vicikicchā, sīlabbataparāmāso.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12. ?비구들이여, 무엇이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눈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눈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귀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코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혀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지혜롭게 숙고하여 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마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지 못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노의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단속하면서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13. ?비구들이여, 무엇이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옷을 수용하나니 오직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에 닿음을 물리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14.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하나니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치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잔인함을 쉬고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부양될 것이고 비난받을 일이 없고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15.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거처를 수용하나니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에 닿음을 물리치고, 오직 기후의 변화에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한거를 편안히 하기 위해서이다.?
16. ?그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나니 오직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 없음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17. ?비구들이여, 그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용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많다.비구들이여, 이를일러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18. ?비구들이여, 무엇이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감내한다.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모기·바람·뙤약볕·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과,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감내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내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19. ?비구들이여, 무엇이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사나운 코끼리를 피하고, 사나운 말을 피하고, 사나운 소를 피하고, 사나운 개를 피하고, 뱀, 나뭇등걸,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더러운 물구덩이, 더러운 웅덩이를 피한다. 적합하지 않은 자리에 앉고, 잘 곳이 아닌 곳에 다니고, 저열한 도반들을 사귀어서 지자인 동료 수행자들이 저열한 곳에 믿음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적합하지 않은 자리, 영역이 아닌 곳, 저열한 도반들을 지혜롭게 숙고하여 피한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20. ?비구들이여, 무엇이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악의에 찬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이미 일어난 해코지하려는 생각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지혜롭게 숙고하여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버리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를 닦는다.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편안함의 까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여기 비구는 지혜롭게 숙고하여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함과 열병을 초래하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행으로 없애야 할 번뇌들이라 한다.?
22. ?비구들이여, 비구는 봄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봄으로써 없애야 한다.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단속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피함으로써 없애야 한다.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버림으로써 없애야 한다. 수행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은 수행으로써 없애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물고, 갈애를 끊어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끝
논점
1.‘봄(見)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과 ‘수행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2. 두 번째 ‘나에게 자아란 없다.?라는 것이 왜 견해의 족쇄인가?
‘Atthi me attā’ti vā assa saccato thetato diṭṭhi uppajjati; ‘natthi me attā’ti vā assa saccato thetato diṭṭhi uppajjati;
Puttā matthi dhanaṃ matthi, iti bālo vihaññati;
Attā hi attano natthi, kuto puttā kuto dhanaṃ.(DhP 62)
udakaṃ hi nayanti nettikā usukārā namayanti tejanaṃ
dāruṃ namayanti tacchakā attānaṃ damayanti paṇḍitā(DhP 80)
atta hi attano natho ko hi natho paro siya
attana'va sudantena nathaj labhati dullabhaj(DhP 160)
5) 거룩한 님(S1:25)
Arahantasuttaṃ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Yo hoti bhikkhu arahaṃ katāvī,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ā”ti.
[세존]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은
오로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Yo hoti bhikkhu arahaṃ katāvī, Khīṇāsavo antimadehadhārī;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ṃ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하늘사람] "해야 할 것을 다 마치고 번뇌를 떠나 궁극의 몸을 이룬 성자인 수행승이
참으로 망상에 사로잡혀 '나는 말한다'라고 하든가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존] "망상을 버린 자에게는 속박이 없으니 망상의 모든 속박은 남김없이 부서졌네.
개념지어진 것을 넘어서는 현자는 '나는 말한다'라고 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나에 관해 말한다'라고 하여도 세상에서 불리는 명칭을 잘 알아서
오로지 관례에 따라 부르는 것이네"
Pahīṇamānassa na santi ganthā
Vidhūpitā mānaganthassa sabbe,
So vītivatto maññanaṃ sumedho
Ahaṃ vadāmītipi so vadeyya
Mamaṃ vadantītipi so vadeyya,
Loke samaññaṃ kusalo viditvā
Vohāramattena so vohareyyā'ti.
3. 여섯 번째 “그런 나의 자아는 향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법이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라는 것과 대승에서 진아(眞我)와의 차이는?
3. 무명과 번뇌의 차이는?
4.족쇄와 깨달음의 관계는?
5. 4성제를 보는데 왜 수다함만을 증득하는가?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이와 같이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와, 의심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다.
(필기공간)
'초기불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들어지지 않고,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다. (0) | 2020.05.12 |
---|---|
The Great Chronicle of Buddhas (0) | 2020.05.11 |
경에서 나타나는 신통력들 (0) | 2020.05.08 |
부처님 오신 날'이 나라마다 다른이유 (0) | 2020.05.06 |
자신의 이로움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DhP 166 (0) | 2020.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