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안거 해제 하루전이지만 종로포교당에 머무시던 원만스님이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도회지 포교당에 계신 원만스님이 산사의 선방에서 쉬게 되면 충전이 될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4박5일 백장암선방에서 머문 원만스님은 오랫만에 고향에 온듯 편안함을 느끼셨다. 나도 오랜만에 원융살림을 하는 백장암선원에서 하안거를 나면서 느낀점이 많았다. 대중스님들이 객스님을 차별하지 않고 따듯하게 대해주는 곳이 백장암이다.
8월 17일
해제하고 이틀이 지나자 백장암에 사제스님등이 방문했다. 선방스님중에 한분의 사형이 지리산 내원사에 소임을 맡았다고하여 지리산 내원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내원사는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위치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국보와 보물까지 있으니 작지만 큰 사찰이다. 내원사주지스님이 안내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첫 주지소임을 사는 애로사항을 들었다.
공양후 산청 정각사에 들려 대현스님과 차를 마셨다. 대현스님의 선학원 사찰인 정각사에 사시는 대현스님으로부터 선학원의 역사를 들었다. 조계종 역사를 간략하게 말씀하시는 능력이 탁월하여 다음에 다시 방문하여 조계종근대역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지으신 책 2권을 대중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혜정스님이 운전하는 차는 수선사로 출발하고 나와 원만스님은 비구니 사찰인 산청 대원사에 들려 도로명주소변경하는 과정을 들었다. 사무장보살이 적극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 조만간 ‘대원사길’이라는 도로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대원사에서 나와서 스님들과 만나기로 한 산청 ‘스님의 정원’이라는 수선사를 방문했다. 송광사스님인 주지스님의 섬세한 감각이 만들어낸 정원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돌맹이 하나와 기왓장 하나까지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원래이곳은 비탈진 논밭이었는데 선방에 다니던 주지스님이 해제비를 모아 해마다 가꾸어온 곳이라한다. 수선사를 둘러보니 현대적인 포교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종교생활은 여가,문화,친목,효도,제사등과 함께 진행된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 기존의 기도와 법회위주의 신행생활은 인기가 쇠락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 수선사를 방문하면 이와 같은 복합적인 행위들이 충족될 수 있을 것 같다. 도량을 예쁘게 아름답게 가꾼 놀라운 힘, 많은 스님들이 수선사를 방문하여 감각을 배웠으면 좋겠다. 오늘의 사찰이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수선사를 나서 산청 심곡사를 방문하다. 해제를 맞은 심곡사는 알이 부화하여 떠나간 새집처럼 한산하고 쓸쓸하다. 어린이 백일장 준비를 하고있던 주지스님은 그림을 보여주며 오미자 차를 내왔다. 백장암선방이 어떻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스님은 산철에도 선방을 지키는 백장암을 부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컨데 누구나 백장암을 부러워 할 수는 있지만 백장암처럼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선방, 우유와 물처럼 화합하는 선방, 일주일마다 경전을 읽고 탁마하고 보름마다 포살하는 선방을 운영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월18일
오늘 부터 본격적인 만행의 시작이다. 백장암을 떠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달리면서 '어디로?' 라고 물음은 동시에 터져나왔다. 원만스님이 말이없자 나는 '광양 삼광사'를 제안했다. 몇해전에 삼광사주지스님이 나보고 절을 맡아 살아보라고 했는데 그절을 원만스님이 보고싶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마침 도착하니 법당에서 백중 회향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스님의 기도회향에 맞추어 백중기도가 연기되었기 때문이다.기도가 끝나고 점심을 같이 했다. 다행스럽게 절은 사제스님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여수 흥국사다. 이곳에는 명선스님이 계신데 이분이 천장암에서 출가한 수월스님의 증손자이기 때문이다. 명선스님께 수월스님의 이야기를 물으니 신이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듥려주셨다. 팔순이 넘어신 분이 아직도 주지를 하신다는 것이 놀라웠다. 상좌들에게 절 관리를 맡기고 회주스님으로 남아계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웅전옆에 송신탑이 세워져 있는 것은 옮겨져야 할 것 같다. 대웅전이 보물인데 어떻게 저런 송신탑을 세울 수 있나 절 입장에서나 통신사 입장에서나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대웅전 옆에 송신탑이 보인다.
다음으로 달려간 여수향일암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도량을 이쁘게 가꾸어 놓았고 바위와 나무등 자연경관을 살려서 불사를 한 것은 좋게 생각되었다. 계단이나 도로를 이용하는 3가지 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갈때는 도로를 이용하고 나올 때는 계단을 이용했다. 이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종무소보살에게 부탁하여 숙박부를 적고 어렵게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오후불식으로 저녁을 안먹었지만 시원한 수박은 먹을 수 있었다. 안내된 3층에 있는 객실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황홀한 숙소였다. 옆방에는 비구니스님들이 머물고 있었다. 다음날 주차장에서 나오는데 주차료 오만원을 요구하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차를 다른곳에 주차시켜 놓는 건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주차료를 어디서 받는 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부터는 1일 주차 가격이라도 써 놓았으면 한다.
여수를 떠나오는 길에 길옆에 위치한 달마사에 들리다. 달마사는 백장암에서 안거한 대산스님의 은사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주지스님과 나마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좌에 대한 사람이 넘치는 분이다. 화엄사에서 승려복지 운영에 참여하시는 분이라 한다. 절에 딸린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여러 가지 자격증을 가지신 진취적인 성격의 소유자시다. 법당에는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면 그분을 찾아가 돕겠다는 안내문까지 써놓은 걸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불자를 경책하는 글에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구산선문중에 하나인 장흥 보림사로 가자는 의견을 받아들여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휴가철인데도 보림사 도량은 고요했다. 고요한 도량 마당에서 샘물을 마시고 평상에 누워서 하늘의 구름을 감상하였다. 절에사는 누구라도 만나보았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절입구에 문화재해설사님께 해설을 듣고 건빵 파는 이에게 건빵을 사먹었다. 절라도에는 사람이 귀하다.
도반스님이 사는 부용사에 들렸다가 차 한잔 마시고 일찍 내려왔다. 원래는 하룻밤 묵으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근처의 천관산 천관사에서 1박하다. 천관사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누는데 사방이 어두워졌다. 전기불을 끄니 벌레소리만 요란하다. 이 벌레소리 듣는 템플스테이를 하더라도 흥행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연속에서 들리는 벌레소리는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을 성 싶다.원만스님은 하룻밤을 자보니 터가 좋다고 했다. 공양주보살이 없어서 아침밥은 식빵으로 떼우고 길을 나서다.
도착한 곳은 보성 대원사다. 이곳은 티벳박물관등 이섹적인 체험꺼리가 많은 곳이다. 주지스님과 찻자리를 하게되어 연잎차를 비롯 신기한 차를 마시게되었다. 김지장보살로 불리우는 신라의 스님에대해서,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서, 백만관객도 목채우고 내려진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서, 스님의 의견을 듣게 되었는데 신선했다. 티벳불교로 출가한 스님은 요가를 가르치고 6개국어를 한다는 인도스님은 박물관을 안내하고 있었다. 점심으로 먹은 연잎밥도 맛있었다. 여기 주지스님은 글도 잘쓰고 다양한 재주가 있으니 종단에서 포교원장 같은 걸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8월20일
원만스님의 추천으로 화순 운주사에오다. 너무 멀리서 달려온 나머지 와불이 있는 곳에는 둘다 오르지 않았다. 도량을 배회하며 주지스님을 만나려 하였으나 뵙지 못하고 사찰내에 위치한 찻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
나주 불회사로 가다.
오늘은 움직인 거리가 길어서 이곳에서 숙박을 하고자 했으나 주지스님이 안계시고 공양주는 휴가 갔다한다. 우리는 오후불식이므로 저녁과 아침을 안먹어도 된다고 하며 숙박을 요청했다.
광주시에 나가있는 종무소보살과 통화하여 어렵게 방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목욕탕이 딸린 방을 배정 받으니 기쁘기 그지 없다.
벌레소리 들으며 잠들다.
하룻밤 잘자고 근처의 나주 운흥사로 가서 주지스님을 만나다. 작년에 조계사앞에서 보았던 설조스님의 상좌스님이 반겨주었다. 운흥사에서 주지스님이 직접 만든 차를 마시고 차를 선물 받았다. 터는 좋은 데 도량정비가 안되어서 아쉽다. 주지스님이 폐사찰을 복원해서 본사에 등록시켰지만 과거 어른 스님들의 갈등으로 아직 주지 발령을 못 받고 있다고 한다.
도반스님의 은사스님이 계시는 나주 문성암에 들려 도반스님의 사형스님과 차를 마시다. 수염이 허옇게 자란 스님은 종단의 여러문제를 안타까워 하셨다. 이제는 종단 문제에는 관여하고 싶지가 않다고. 누구나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점심을 먹으러 김제금산사에 들렸다. 월주스님은 안계신다고 하여 인사는 못드리고 공양간에서 국수를 고양했다. 마침 중국스님들이 단체로 참배하고 있어서 그스님들과 함께 공양을 하였다. 책방에서 책을 사고 월주스님의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실에 들려 관람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귀신사 간판을 보게되었다.
절이 이쁘다. 백일홍과 대웅전이 조화로움은 나그네를 오래도록 서있게 하였다. 다행히 주지스님을 만나 차를 마셨고 귀한 선물고 받았다.
원만스님과 인연이 있는 완주군 비봉면 요덕사에 들려 대선스님을 뵙다. 예전에 대단한 선지(禪支)를 보이셨다는데 지금은 그냥 노스니일뿐이다. 노스님을 모시고 있는 비구니스님에게 절 사정과 노스님을 모시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8월21일
금산군 대둔산 태고사에서 1박하다. 원주스님과 도로명주소 변경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이곳의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변경될 것 같다. 35년간 공양주를 하셨다는 89살의 보살님을 뵈다. 이런분이 보살이고 도인이 아닐는지. 지금도 건강하시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몸에 베여 계시다. 다음에 오면 여전히 계실는지.
세종시 영평사 암자인 금선대에서 수경스님을 뵙다. 이렇게 숨어계신지 십년이 되어간다. 이렇게 양심있는 스님은 숨어있고 양심없는 것들이 설쳐 되는게 작금의 종단 현실일 것이다. 원만스님과는 오랜 도반이어서 두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문수스님이 소신공양하였을때 자승총무원장이 선배님!선배님! 하면서 수경스님을 속인 사건도 자세히 들었다. 문수스님을 모신 영단에 포살에 참석하러 조계사를 방문한 스님들이 연단을 피해 다닌 것에 대한 실망감도 들었다. 스스로 승적도 버린다고 선언하셨으니 스스로 대중앞에 나타나는 것이 어려우리라. 그러니 종도들은 수경스님을 모셔서 종단을 맑히는 일에 나서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유연스님이 차려준 점심을 먹고 도반이 살고 있는 보광사로가다.
공주시 신풍면 보광사는 비구니스님이 혼자사는 토굴이다. 차가 올라 가기가 어려운 곳에 위치해있는데 북향이라 겨울에는 몹시추운 곳이다. 이런 곳에 사는 수계도반 성준스님은 평생 참선 해온 선객이다. 도반이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라는 따듯한 눈빛을 보여주었다. 당뇨가 있어 몸관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당뇨가 유전병이라는 것을 알다.
원만스님이 출가한 공주 갑사에서 1박하다. 원만스님이 종무소에서 한참만에 나왔는데 방이 없다는 소식이다. 그래도 기다려보다가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침 종무소에 들어온 스님이 무무관템플스테이 방에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것으로 해서 방을 안내해주었다. 템플스테이방은 몇 년전에 선방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템플스테이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돈을 내는 재가자들에게는 방을 주고 스님들에게는 방으 내주지 않는 절집의 풍토가 가슴아프다. 자업자득아닌가.
무무관으로 유명한 대자암에 들리다. 허물어져가는 건물들 사이에 무문관도 빈방이 많았다. 빈방에 들어가니 방이 생각보다 좁았고 화장실도 오래되어 보였다. 다행인 것은 밥을 날라다주는 보살님이 없어서 무문관 스님들이 점심때는 공양간에 나와서 공양을 하고 2시까지 방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스님들의 건강에 무척 좋을 것이다. 책, 컴퓨터, 전화기등 어떤 것도 가지고 입실 할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경전까지 못일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점검이 없는 무문관은 위험해 보인다.
8월23일
드디어 공주버스터미널이다. 1차 만행을 정리하고 서울가는 버스를 타다. 영등포에서 치과병원을 하는 거사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 때문이다. 여기저기 잘 다녔다. 69년도에 출가하신 스님과 69년도에 출생한 스님이 함께하는 만행은 배울게 많았다. 서로서로 잘하는게 있어서 때론 협동하고 때론 경쟁하며 유쾌하게 보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발길 가는 다녔던 만행, 전라도편이 끝났다. 사두사두사두
서울에 올라와 조계사앞에서 조계종노동조합 지부장을 만나다. 총무원앞에서 해고 철회와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시위를 한지 59일이 된다한다. 노동조합은 이시대의 꼬삼비 불자들이라는 입장에서 자신들을 불자들에게 설명하고 싸워아가야 한다고 조언하다. 해제비를 조금 떼어 격려금으로 주고 제주도에서 올라온 도정스님과 인사동에서 차를 마시다. 저녁때는 신대승운동을 하는 박재현거사를 만나 차를 마시다. 승가교육의 문제, 종헌종법의 문제, 선방의 문제, 종단운영의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한마디로 ‘승가’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다. 조계종에서는 ‘승가’가 무엇인지 가르치는 사람이 없고 배우는 사람이 없어서 ‘승가’에 살아본 스님들이 하나도 없는게 문제라고.... 백장암에서는 그런 승가를 만들어 살아보려 한다고 이야기했다.
8월25일
칠곡 금곡사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우궁스님과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다. 우궁스님의 포교당 운영소식을 듣고 금곡사로 오다.
구미에 사는 탄구스님과 학해스님과 함께 갈치조림을 점심으로 먹고 죽장사 찻집에 들려 차를 마시다. 죽장사 주지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죽장사는 석탑이 보물인데 남성적인 웅장함이 매력적이다. 주지스님을 닮았다.
8월26일
칠곡 보덕사 주지스님을 찾아뵙다.
하안거중에 백장암 지대방에서 차를 마시다가 주지스님이 말했다.
"오늘 어떤 노스님이 오셨는데 백장암 안거대중 중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도 대중공양을 하고 가셨습니다."
마침 해제가 되어 칠곡군 어느사찰에 머물게 된 나는 보덕사를 찾아 스님을 뵈었다. 처음보는 객에게 '모든 시선 쓸어담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는 스님....
오룡차를 마시며 알게된 사실, 스님은 올해 백장암뿐만이 아니라 5군데 선방에 대중공양을 올렸다. 보덕사를 찾는 전문 객승들에게도 빠짐없이 보시를 한다고...
객스님을 보고 윳음 지으시며 차한잔하라고 부르는 손짓에서 스님의 자비심을 보다.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라고 묻지도 않고 우리를 보고 웃음을 지으시고 차한잔 하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마음이 아니면 그런 태도를 취하지는 못하리라. 만행중에서 가장 따듯하고 인상적인 스님으로 남았다. 오랫만에 연꽃 미소를 품은 선배스님을 뵙다.
9월1일
칠곡 영명사에 계시는 자원경담스님을 뵙기위해 스님들이 모였다. 주지도명스님, 자원스님, 우궁스님, 탄구스님, 묵연스님, 학해스님 그리고 나. 우리는 도명스님이 사주시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자원스님을 보시고 있는 도명스님은 어진 비구니 스니이시다. 비구니스님이 비구스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안좋게 보는 도반들도 있다고 하지만 도명스님은 끝까지 자원노스님을 모실 것 같다. 훌륭한 노스님을 모시고 있는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보덕사스님과 자원노스님은 후학들이 부지런히 찾아뵈어야 할 분드이다. 점심공양을 하고 근처에 있는 선석사를 참배하다. 주지스님은 출타중이라고하여 못만났다. 그런데 한 스님이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아우디가 주지스님차인 것 같다고 말해준다. 만약 그렇다면 일부러 우리를 피하는 것을 텐데...종무소보살의 말을 믿고 우리끼리 도량을 구경하고 나왔다. 자원노스님의 제안으로 대웅전 아페서 단체 사진을 찍다. 절에서 내려와 근처에 조선왕조 왕자들의 태를 묻은 태실을 둘러보다. 태가 묻혀있는 태실은 누가 보아도 명당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명당에 태를 묻었어도 조선왕조는 무너졌으니 명당은 우리의 희망일뿐이고 다만 세상은 제행무상의 법칙을 따른 것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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