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은 끝났다’를 읽고
드디어 ‘대승을 끝났다’를 읽었다. 이제까지 대승불교와 초기불교를 접목 화해 화쟁 맥락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던 내게 당장 대승을 버리라고 말한다. 마음속으로는 “싫은데...”라고 거부하고 싶었지만 워낙 탄탄한 논리로 밀어붙인다. 이 책의 저자는 올해로 출가한지 20년쯤 되었다는 선방스님이다. 불교의 역사와 다양한 부파사상을 철학적인 입장에서 해부하고 수행의 입장에서 조망하여 3D로 보여주는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다. 5부 니까야경전과 빠알리 율장을 적절히 인용하고 소화시켜 인용하는 솜씨와 반야심경 금강경 구사론 대승기신론 화엄경등 대승경전이 펼쳐놓은 이야기를 몇줄로 요약하여 들려주는 능력을 보면 지은이가 얼마나 꼼꼼히 경전읽기와 지속적인 사유를 해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인데 거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더 있다. 지은이가 새롭게 번역해서 쓰는 번역어들(예를 들면 아라한을 동격자, 色을 방해물, 연기를 따라서-같이-생겨난 법등)이 낯설기도하고 쉽게 동의하기도 쉽지않고 워낙 밀도있게 문장을 밀고나가서 주석을 꼼꼼히 읽고 인용문을 찾아서 읽어야 어느정도 이해되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하라고 그려놓은 도표와 밴다이어그램도 시간을 요한다.
아라한이라면 ‘고의적인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부처님 말씀을 근거로 ‘여시아문’이라고 이름을 훔쳐서 스스로 권위를 만든 싸가지가 없는 대승경전을 비판하고, 사건이 있은 연후에 계율이 만들어졌던 초기율장에 비해 아무런 사건 연유 설명없이 ~하지마라는 명령조로 되어있는 대승보살계본은 데와닷따나 그의 계승자들이나 만들어 낼수 있는 엉터리 율이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설명에 동의하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이미 이 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나도 귀의승을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승가공동체의 의미를 간과하고 번역한 것과 ‘소승경율을 배우지 마라’는 대승범망경을 가지고 포살하는 모순,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다’는 연기 공식을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고 번역하여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글을 쓴 적이 있기에 처음부터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지은이가 특정주제를 내걸고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그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얼마나 그 문제에 허술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가 보이고 그 주제에 대해서 자연적으로 정리가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였다. 불교가 사색의 놀이터가 아니고 밥벌이 수단이 아닌, 온몸을 던져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현하려고 애쓰는 낡은 소매의 수행자가 외치는 소리여서 그랬을 것이다. 지은이가 쌓아올린 논리의 집이 정교하고 탄탄하고 심지어 난방시설까지 잘되어 있어서 두 번씩이나 정독을 하게 되었다.
대승은 끝났다. 그것은 대승의 집에서 먹고 자란 아이가 자신의 집 구들장을 도끼로 찍어 파내고 기와를 뜯어 박살내며 ‘대승은 끝났다’고 외치는 데도 소위 대승의 집에서 행세하던 어른이라는 분들, 스님들, 학자들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기에 대승은 끝났다. 가르침의 계승자가 아닌 물질의 계승자가 되어 버린 현재의 불교, 거대한 몸집을 가진 종단으로부터 아직 얻어먹을 것이 있는 스님들은 대승은 끝났든 말든 아직도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식사(食事)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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