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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말걸기

[스크랩] `백제의 미소길`을 걸으며… 사진과 동영상

 

 

제 5회 '백제의 미소 길'걷기 행사에 참여하고 왔습니다.

올해는 조계사 신도님들이 동참해서 더욱 뜻 깊은 행사였습니다.

사실 이 걷기 행사는 처음으로 참여 한 것이기 때문에 이 행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대충 아는 것은 우리의 출발지인 남연군묘는 옛날 '가야사'라는 절이 있던 곳인데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지르고 자신의 아버지 묘를 쓴 곳입니다.  그리고 보원사터는 3000명이 넘는 승도들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폐사지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남연군묘~보원사터까지 입니다.

그리고 보원사 옆에 있는 '일명백제의 미소'로 불리우는 '마애삼존불'은 서산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서산시는 마애삼존불이 국보 제84호라는 이유로 일체의 종교적 행사를 금지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경 스님 등이 꾸준히 마애불을 찾아 기도를 올리며 서산시의 부당한 정책을 지적해오자 올해 처음으로 법회가 허용됐다 합니다.

수덕사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애삼존불은 스님들이 모셔야 한다고 요구해 왔지만 서산시가 아직까지 관리권을 넘겨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처럼 법회를 할려고 해도 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남연군 묘에서 마애삼존불까지 곳곳마다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은 마애불앞에서 목이 메이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아래 동영상 참조) 

     

제가 찍은 사진을 먼저 올리고 인터넷 불교 신문인 '불교포커스'기사를 올립니다.

 

 

 

 

 

 

 

 

 

 

 외국인 스님들도 눈에 보입니다.

 

 고갯마루에서 쉬는 장소입니다. 신도님들이 수박을 준비해 주셔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당간지주와 석탑이 이절의 위용을 말해줍니다.

 

 

 보원사에서 출토된 불상들인데 늠늠하기가 이를데 없습니다. 지금은 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합니다.

 

 

 

 

 

보원사 기도처인 마애삼존불에서는 옥천암 육법공양팀의 준비로 육법공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사 '

 

2011년 06월 28일 (화) 18:37:52 신혁진 기자 webmaster@budgate.net

   
▲ 가야사터에서 열린 기념식. 올해로 다섯번째 열리는 백제의 미소길 걷기 행사다. 가야사터는 흥선대원군이 강제로 불태운 뒤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조성했다.
   
▲ 덕숭총림 방장 설정스님을 선두로 출발했다.
   
 
   
▲ 공사 중이던 인부들이 스님들이 올라오자 중장비를 잠시 멈췄다.
   
▲ '가야산순환도로건설공사'는 백제의 미소길 조성공사로 진행되고 있지만 온산이 이미 많이 잘려나갔다.
   
▲ 백제의 미소길에 이런 나무 그늘은 그리 많지 않다.
   
 
   
 
   
▲ 한 시민이 내건 현수막 백제의 미소길이 당초 이야기와는 달리 너무 넓게 조성되고 있는 것을 항의 하는 내용.
   
▲ 수년째 발굴중인 보원사지.
   
▲ 보원사지 오층석탑. 이 곳에서 발굴된 두 분의 부처님은 제자리에 계시지 못하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 보원사지를 지키고 있는 보원사.
   
▲ 서산 마애삼존불입구. 서산시는 일몰 후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일체의 종교행위를 막고 있다.
   
▲ 보원사 기도처인 서산마애삼존불(국보제84호)
   
▲ 부처님의 미소.
   

▲ 향공양을 올리는 설정스님.

 

 

 

 

2011년 06월 28일 (화) 18:35:26 신혁진 기자 webmaster@budgate.net

 

 

3천명의 수도승들이 살았던 보원사지. 지금 다 파 해치고 탑과 부도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마애삼존불 옛날에는 다 쳐져있었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처음 뜰 때 미소가 다릅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뜨면 또 다릅니다. 그리고 해가 서쪽에 뜰 때 미소가 다릅니다.

우리는 그 역사의 질곡 앞에 불교가 수많은 수난을 당했고 세도가들에 의해서 폐사가 되고 불이 싸질러지고 수많은 스님들이 수난을 당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민족의 문화를 지키고자 피나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조 5백년이라는 긴 역사 속에 수많은 굴곡의 시간을 가지면서 우리는 가슴이 터지도록 부처님을 향한 그 일념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왔습니다.

3천명이 살았던 폐사지를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느꼈습니까?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민족의 자존을 위해서 선조들이 불교를 이 땅에 수입해서 경건한 수행을 해왔던 그 현장이 이렇게 폐허로 변했습니다. 이것은 외침에 의해서도 폐사가 됐지만 세도가에 의해서 사정없이 절이 폐사가 됐습니다.

지금도 한국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참으로 근시안적이고 육감적이고 그리고 사대주의의 근성을 아직도 놓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 삼존불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50년 전부터 요구해왔습니다. “아무런 보수도 필요 없다, 우리 스스로가, 선조가 남겨놓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서 우리 부처님을 우리가 지키겠다.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는다.” 이렇게 간절하게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당국에서는 전혀 우리의 말에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담배피우고 술 먹고 온갖 잡행을 다 하는 사람들이 이 부처님을 제대로 지킬 수 있겠습니까.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이런 현상이 나왔습니다. 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깨지고 부처님이 훼손되고...

이것은 문화재가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우리 정신이 사상이 신앙이 숨 쉬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이런 형태로 계속 유지되어 왔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입니다. 이것이 한국 정부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국보를 보존해서는 안됩니다. 불교문화재가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불교문화재, 과연 국가가 사람들을 대신해서 보수를 주고서 관리한다면 1년에 얼마나 들겠는가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3조 이상은 든다고 합니다. 십 원 한 푼 들이지 않고 스님네들에 의해서 정성껏 보호하고 모시겠다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국가의 돈을 허비하면서 왜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대체 그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신앙을 갖고 안갖고 불교를 믿고 안믿고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없는 민족은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 5만불 10만불 시대가 된다고 해도 그 민족은 그 국가는 종속된 문화를 수용하면서 결국은 쇠퇴하고 맙니다.

우리 스스로가 못나면 언제든지 남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자기 문화를 소유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언제든지 남의 나라에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 종속은 물론이거니와 문화적 종속, 결국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 한민족의 문화를 이 찬란한 문화를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모두 뜻을 합쳐서 그 것이 성취되는, 우리가 걷던 그 미소의 길이 그대로 되고 이 가야산의 전통과 문화가, 옛날과 지금이 새로이 살아 움직이고 또 모든 생태계가 보호되어 동식물이 활발발하게 움직이는 가야산을 만들도록 다 같이 노력합시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3533

출처 : 암자에서 하룻밤 (천장암 홈 페이지)
글쓴이 : 천장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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