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연의 휴먼스토리 1._골프보다 불고기 세일에 관심 많은 남편 | |
보스톤코리아 2008/07/15, 07:24:28
|
▲ 9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거의 전신마비가 된 최혜연씨(사진 우측)와 지난 11년간 회사를 다니며 아내와 3남매를 돌봐온 최형철씨.
3남매, 장애 아내 소리없이 보살핀 남편 최형철씨에게 아내가 쓴 에세이 오래된 마른 꽃잎에서도 향기가 나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무사 합니다’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병원에 도착하자 누군가 나의 다리를 만지며 감각이 있냐고 물으며 입고 있던 옷을 가위로 잘랐다. 추위가 몰려왔다. 어느 기다란 통로로 들어가는것 같았으나 곧 바로 의식을 잃었다. 7월의 병원이다. 의식을 차렸으나 목 수술 후, 가슴 근육의 마비로 호흡의 장애가 왔다. 폐렴이었다. 스스로 호흡 할 수 없게 되자 트랙 (인공호흡)을 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있구나” 고개를 돌릴 수 없고, 손을 사용할 수 없으며, 말을 할 수 없고, 이상한 형태의 통증과 지나친 약의 투여로 잠이 전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구입한지 1년도 안된 차가 왜 갑자기 도로에서 고장을 일으켰을까? 나는 왜 이곳에 와 있을까? 세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이겨 내리라 마음먹었다. 며칠이 지나자 공급하던 산소를 중단하고 오늘 5분 내일은 10분 이렇게 자가 호흡을 시도 하였다. 마치 도마 위에 올라온 팔탁 거리는 생선 같았다. 5분만 혼자 숨 쉬어도 피로감으로 녹초가 되었다. U Mass 병원에서 악몽의 20일을 지내고 재활병원(Reheb)로 옮겼다. 몸무게는 86 pound였다. 며칠 후 스스로 호흡할 수 있게 되자 목의 구멍을 막고 위로 들어가던 호스도 뺏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먹울 수 있게 되었다. 평소에 느끼지 못한 숨 쉰다는 것, 먹는다는 것, 말 할 수 있다는 것,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고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잠은 한 달째 여전히 오지 않았다. 고통이었다. 나는 약간의 팔을 움직일 수 있었을 뿐 손가락도 사용 할 수 없는. 전신마비가 되어 있었다. 혈압이 30밖에 되질 않아 하루에 도 5번씩 정신을 잃었다. 마치 섬유질 같은 생명선이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의식을 찾을 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휄체어에 앉아 있는 느낌은 트럭에 깔려 있는 것 같았고 다리는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의사는 이것이 신경의 교신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20-30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눈 한 번 뜨기와 숨 한 번 쉬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다. 가끔 방뇨를 하는데 그 수치감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남편은 목뼈 C5를 다쳐서 걸을 확률이 2% 이지만 3달만 있으면 걸을 거라고 하였다. 4개월 동안의 병원 생활은 40년과 같았다. 티비의 자동차 선전은 아예 볼 수 없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도 볼 수 없었고 거리의 차들은 부딪칠 것만 같았다. 방안의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드는 것 같았다. 세상은 공포였다. 나는 절벽에 몰린 토끼처럼 떨고 있었다. 걱정이 되었는지 병원에서는 가끔 정신이상 체크도 했다. 사람들은 이나마 다행이라며, 아이들이라도 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했으나 위로는 상처로 다가 왔다. "아이들은어떻게 지낼까? 자다가 깰텐데" 밤이 되면 3살, 5살,12살의 세 아이들 걱정 때문에 견딜 수 가 없었다. 남편은 내가 병원에 있는 4개월동안 매일 현미식사와 야채주스를 집에서 만들어 가져 왔다. 가을이 돌아왔다. 3달만 있으면 걸을 거라는 남편의 2%의 행운은 실현되지 않은 채 1998년 11월 18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비련이 11월의 찬 기운을 타고 가슴 깊이 후벼들고 있었다. 세 아이와 남편 “엄마, 어디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디 있어요” 오랜 병원 생활 후 만난 아이들은 변해있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쿤 딸아이는 우울해 하였고 착하던 아들아이는 장난감을 던지고 막내딸은 소극적으로 변해갔다. 가장 힘든 것은 아들아이였다. 사고당시를 기억하는 아들의 일기장에는 사고 당시 보았던 헬리콥터가 항상 그려져 있었고 놀다가 돌아오면 “엄마 미워”라는 말이 첫마디였다. 엄마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과 그리움은 건강이상으로 나타났다. 울기만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솟고 구역질을 하였다. 비록 엄마가 미워 장난감을 던지지만 한참 투정하고 나면 베개를 들고 휄체어 앞에 누워 나의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훌쩍훌쩍 울었다. 이때가 5살 이었다. 우리엄마 키는 2피트 밖에 되지 않는다고 에세이를 발표하여 선생님과 친구들이 울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들의 사진 속의 모습은 항상 긴 머리였다. 음악회 날 구겨진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자 곁에 있던 담임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집안의 많은 일은 남편 몫이었다. 남편은 5시 반 에 일어나 나의 메디칼 케어를 해주고 아이들을 깨워 아침식사를 먹여 학교를 보내고 회사에 갔다. 그리고 정오 12시가 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나의 메디칼을 해결하고 점심을 주고 회사로 다시 돌아갔다. 또 다시 저녁 6시 가 되면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고 나의 메디칼 케어를 하고 밤 11시에 다시 메디칼케어를 해주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이 되면 빨래, 샤핑, 아이들 라이드 주기, 잔디 깍기, 샤워 해주기 등 의 일도 하였다. 이렇게 많은 일을 혼자서 해 나아갔다. 우리 가족은 일을 나누어 하기로 하였다. 밤에 일어나 엄마를 돌보는 일은 큰딸 아이가 하고 엄마 칫솔 도와주는 일은 3살이던 막내딸의 몫이고 세숫물을 가져다주는 일은 아들이 하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조금씩 크자 아이들의 할 일은 이들의 나이만큼 커져 갔다. 지나친 과로로 남편이 수술도 하게 되었다. 나의 침대 옆에는 차임벨이 있었다. 이 벨을 누르면 큰 딸은 새벽이든 낮이든 언제나 달려와 도와주었다. 당시 중학생 이었던 딸아이가 밤에 일어나 엄마를 돌보고 학교를 다닌 일은 대학을 가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입학예정이었던 '예일대학'에 알려져 많은 학비를 면제 받았다. 막내딸은 9살이 되던 해 큰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 엄마 메디칼 케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우리 집은 부모와 아이들의 역활이 바뀌어져 있었다. 마른 꽃잎 향기같은 남편 책갈피의 잘 마른 꽃잎이 오래된 기억처럼 누워있다 책갈피를넘기자 소리 없이 떨어졌다. 이 꽃잎은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남편이 병실의 화병에서 따 넣어둔 것이다. 부엌에서 아이들과 남편이 김치를 담근다고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남편은 “요즈음 이빨이 5개가 빠졌네” 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눈물이 후루룩 떨어졌다. 콩나물 무침은 파 맛이라는 남편은 매일 저녁반찬이 걱정이다. 골프보다 불고기 세일에 더 관심 많아진 그는 손이 거칠한 주부가 다 되었다. 자신의 인생은 하루에 4번의 나의 메디컬 케어를 해줘야 하는 6시간 인생이라며 그동안 가족여행 한번 가지 못했지만 불평도 없다. 오늘 가족들은 막내 딸 졸업식장에 간다고 김치를 담글 때부터 수선스럽다. 내가 지난 11년 동안 아이들 행사에 참석한 횟수는 다섯 손가락 미만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갈 수 없음 잘 알고 있다. 저녁시간에는 아빠가 만든 졸업축하 스테이크를 먹으며 웃음 꽃이 피었다. 아이들의 요란한 대화에 남편은 아무말 없이 웃었다. 식탁의 불빛이 어두웠으나 남편의 얼굴에 핀 검은 점들이 눈에 띄었다. 23년 전 유학길에 오른 남편은 서울공대기계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사회적 명예를 뒤로 한채 나와 아이들을 돌봐주었다. 남들이 어떻게 이런 많은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밝게 자라 주어서 기쁩니다.” 라며 그동안의 힘들었던 이야기도 말하지 않는다. 아내가 남편을 돌보는 일도 쉽지 않는데 남편이 아내를 돌보는 일이란 어디 쉬운 일이랴.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말을 남편에게 묻는다면 이 사람은 다시 웃을 것 같다. 오래된 마른 꽃잎에서도 향기가 나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글 최혜연 최혜연의 휴먼스토리 2._
도요타에 두다리 잃은 최혜연의 '13년 전쟁'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0410 |
728x90
'모셔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삶의 문제인데 어떻게 神에게 맡겨 버립니까 (0) | 2010.03.06 |
---|---|
방장스님께 다시 청하옵니다!-향산 (0) | 2010.03.06 |
도문 스님이 먼저 방바닥에 엎드려 (0) | 2010.02.27 |
무상사 대봉스님 "우리는 모두 모를 뿐" (0) | 2010.02.27 |
다만 할 뿐이다 _ 유애경 님 (0) | 2010.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