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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윳따니까야

병든 수행자의 자살은 허락되는가? 찬나수따

 

 

 

찬나 경(Channasuttaṃ)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벨루바나에 있는 깔란다까니바빠에 계셨다.

그때 존자 싸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와 존자 찬나는 깃짜꿋따산에 있었다.

 

그런데 존자 찬나가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했는데 중태였다. 그래서 존자 싸리뿟따는 저녁 무렵에 홀로 명상하다가 일어나 존자 마하쭌다가 있는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존자 마하쭌다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 "벗이여, 마하쭌다여, 병 문안하러 존자 찬나가 있는 곳을 찾아갑시다."

[쭌다] "벗이여, 그렇게 합시다."

존자 마하쭌다는 존자 싸리뿟따에게 대답했다.

마침내 존자 싸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다는 존자 찬나가 있는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은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존자 싸리뿟따는 존자 찬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 "벗이여, 찬나여, 그대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만 합니까? 그대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까?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찬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벗이여, 예를 들어 힘센 사람이 날카로운 칼끝으로 머리를 쪼개듯이 이와 같이 벗이여, 과도한 풍기가 머리를 고문합니다. 벗이여, 나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벗이여, 예를 들어 힘센 사람이 단단한 가죽끈 조각으로 머리에 두건을 졸라메는 듯이 이와 같이 벗이여, 과도한 고통이 나의 머리에 느껴집니다. 벗이여, 나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벗이여, 예를 들어 노련한 소 도살자나 소 도살자의 제자가 날카로운 칼로 배를 자르듯이 이와 같이 벗이여, 과도한 풍기가 나를 고문합니다. 벗이여, 나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벗이여, 예를 들어 두 명의 힘센 사람이 보다 허약한 사람을 각각 두 팔을 붙잡아 숯불 위에 지지고 태우듯이 이와 같이 벗이여, 과도한 열이 나의 몸에 있습니다. 벗이여, 나는 참아내고 견디어 낼 수가 없습니다. 나의 고통은 점점 더하고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줄어들고 점점 더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는 칼로 자결하겠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싸리뿟따] "존자 찬나께서는 칼로 자결하지 마십시오. 존자 찬나께서는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존자 찬나께서 참아내길 원합니다. 만약 존자 찬나에게 맞는 음식이 없다면, 나는 존자 찬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줄 것입니다. 만약 존자 찬나에게 맞는 약이 없다면, 나는 존자 찬나에게 맞는 약을 찾아줄 것입니다. 만약 존자 찬나에게 맞는 시종이 없다면, 나는 존자 찬나에게 맞는 시종을 찾아줄 것입니다. 존자 찬나께서는 칼로 자결하지 마십시오. 존자 찬나께서는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존자 찬나께서 참아내길 원합니다."

[찬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에게 맞는 음식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맞는 음식이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약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맞는 약이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시종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맞는 시종이 있습니다.

그러나 벗이여, 나는 오랜 세월 기꺼이 싫증냄이 없이 스승을 모셨습니다. 벗이여, 그것은 제자의 도리입니다. 기꺼이 싫증냄이 없이 스승을 모셨다면, 수행승 찬나가 칼로 자결한다고 해서 비난받을 수 없습니다. 벗이여, 싸리뿟따여, 이와 같이 그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싸리뿟따] "만약에 존자 찬나께서 질문에 대한 대답의 기회를 주신다면, 우리는 존자 찬나께 어떤 점에 관해 물어볼까 합니다.

 

벗이여, 찬나여, 그대는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dhamme)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여깁니까?"

[찬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는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대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싸리뿟따] "벗이여, 찬나여, 그대는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dhamme)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그대는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아서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까?"

 

[찬나]

"벗이여, 싸리뿟따여, 나는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시각이나 시각의식이나 시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청각이나 청각의식이나 청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후각이나 후각의식이나 후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미각이나 미각의식이나 미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촉각이나 촉각의식이나 촉각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나는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이처럼 말하자 존자 마하쭌나가 존자 찬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쭌나] "벗이여, 찬나여, 그러므로 그 세존의 가르침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십시오.

집착하면 동요가 있으며, 집착하지 않으면 동요가 없고, 동요가 없으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성향이 사라지고, 성향이 사라지면 왕래가 사라지고, 왕래가 사라지면 죽어 태어남이 사라지게 되고, 죽어 태어남이 사라지게 되면 차안과 피안과 양자의 중유세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끝입니다."

"nissitassa calitaṃ,anissitassa calitaṃ natthi, calite asati passaddhi hoti, passaddhiyā sati nati na hoti, natiyā asati āgatigati na hoti, āgatigatiyā asati cutupapāto na hoti, cutupapāte asati nevidha na huraṃ na ubhayamantarena esevanto dukkhassāti.

 

그리고 존자 싸리뿟따와 존자 마하쭌나는 존자 찬나에게 이러한 말로 계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곧 존자 찬나는 그들 존자들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칼로 자결했다.

Atha kho āyasmā channo acirapakkantesu tesu āyasmantesu satthaṃ āharesi.

 

그후 존자 싸리뿟따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한쪽으로 물러앉아 존자 싸리뿟따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했다.

[싸리뿟따] "세존이시여, 존자 찬나는 칼로 자결했습니다. 그의 갈 곳은 어떠한 곳이고, 그의 미래의 운명은 어떠한 것입니까?"

[세존] "싸리뿟따여, 수행승 찬나가 그대 앞에서 허물이 없다는 사실을 선언하지 않았는가?"

Nanu te sāriputta, channena bhikkhunā sammukhāyeva anupavajjatā khyākatāti.

 

[싸리뿟따] "세존이시여, 그런데 뿝바빗자나라는 밧지족의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에 존자 찬나에게 친구가 되는 가문들, 절친한 가문들, 가까운 가문들이 있습니다."

 

[세존] "싸리뿟따여, 수행승 찬나에게 친구가 되는 가문들, 절친한 가문들, 가까운 가문들이 있다. 그렇지만 싸리뿟따여, 나는 그가 허물이 있다고 말하며 그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Honti hete sāriputta, channassa bhikkhuno mittakulāni suhajjakulāni upavajjakulāni, na kho panāhaṃ sāriputta, ettāvatā saupavajjoti vadāmi,

 

왜냐하면 싸리뿟따여, 이 몸(imañca kāyaṃ )을 내려놓고 다른 몸(aññañca kāyaṃ )을 받는다면 나는 그에게 허물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행승 찬나는 그렇지 않다. 수행승 찬나는 허물이 없도록 칼로 자결했다.  

yo kho sāriputta imañca kāyaṃ nikkhipati, aññañca kāyaṃ upādiyati, tamahaṃ saupavajjoti vadāmi, taṃ channassa bhikkhuno natthi, anupavajjaṃ channena bhikkhunā satthaṃ āharitanti

 

 

싸리뿟따여, 이것에 대하여 이처럼 새기도록 해라."

evametaṃ sāriputta, dhārehīti.

 

 -전재성 역-

註.

 

- 마하쭌다 : mahachunda. 싸리뿟따의 동생으로 최상의 장로 가운데 한 분이다.

 

- 쭌다의 일침 : 붓다고싸에 의하면 싸리뿟따는 찬나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찬나가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범부임을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없이 침묵했다. 반면에 쭌다는 그가 범부인 것을 알릴 생각으로 그에게 이러한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붓다고싸는 위의 쭌다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갈애, 자만, 사견에 의존하면 동요가 있게 되고 찬나는 고통을 참아낼 수 없으므로 '나는 고통 속에 있다. 고통은 나의 것이다' 와 같은 생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의 동요가 있다. 이것으로서 그는 그에게 '너는 아직 속인이다' 라고 말한다. 경향이 없는 것은 갈애의 경향이 없는 것, 다시 태어남으로서 오는 것이 없는 것, 죽음으로서 가는 것이 없는 것, 이 자체가 번뇌의 고통의 끝, 종말, 한계이다.

 

- 자결의 순간 : 찬나의 자결의 순간을 붓다고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그는 자결했다. 그는 숨통을 끊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두려움이 그를 덮쳤고 운명을 알렸다. 그는 자신의 범부상태를 인식하고 재빨리 통찰하여 모든 지어진 것을 극복하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어 이승과 알애를 같이 멸한 자로서 열반에 들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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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전재성님은 dhamme를 일괄적으로 사물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러한 번역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나는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 가운데 소멸을 보고 소멸을 알아서 정신이나 정신의식이나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에 관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여깁니다."

 

"시각의식에 알려지는 사물"은 형상이지만  "정신의식에 의해 알려지는 사물"은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번역하고 있다.

또한 그래서 사물을  dhamme는 복수인데 단수인 것처럼 번역하고 있다. 

 

내용으로 들어가서 붓다는 찬나의 자살이 허물이 없다고 말한다.

"싸리뿟따여, 이 몸(imañca kāyaṃ )을 내려놓고 다른 몸(aññañca kāyaṃ )을 받는다면 나는 그에게 허물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수행승 찬나는 그렇지 않다. "

 

경전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자살 이야기는 상윳따니까야의  Vakkali sutta (SN.3.119)에서 볼 수 있다.

병든 박깔리를 붓다가 문병 갔을 때 붓다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총고 했다.

 

 "박깔리여, 그만두어라. 나의 부서져 가는 몸을 보아서 무엇 하느냐?

박깔리여,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법을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법을 본다."

 

붓다는 박깔리의 죽음을 보고  

 

"수행승들이여, 훌륭한 아들 박깔리의 의식은 머물지 않는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Appatiṭṭhatena ca bhikkhave, viññāṇena vakkali kulaputto parinibbutoti.)라고 말했다.

 

찬나의 자살을 보고  찬나가 이 몸을 내려놓고 다른 몸을 받지 않을 것이기에 찬나에게 허물이 없다라고 말하고

박깔리의 자살을 보고 열반에 들었기에 허물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을  비추어 보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붓다는 자살도 허용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윤회의 근본적인 3가지는 '감각적인 욕망'과 '언제나 존재하기를 바라는 욕망'과 '존재하지 않으려는 욕망'이다.

자살은 존재하지 않으려는 욕망이다.

그러나 존재의 근거를 없애버리는 수행과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살은 분명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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