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 사랑
도.”
작은 체구로 담담히 세상과 맞서는 어른 소녀. 그 소녀가 쓴 책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첫 페이지에 적힌 한 줄짜리 글이다. 소녀는 경남 함양 산골 가난한 집안의 칠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끼니가 걱정된 어머니는 막 세상 빛을 본 소녀를 당신의 품 대신 찬 윗목에 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녀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불쑥 어른이 됐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우리와 소통하며 소소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과 사람들의 참 모습을 아름다운 대사로 고민하고 그려내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아름다운 드라마로 사랑받고 있는 노희경 작가. 그는 2월 12일 정토회가 주최한 대화모임 ‘행복하기 행복전하기’에서 자신의 마음공부와 행복을 톡톡 튀지만 잔잔한 말로 풀어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은 누구나 갖고 있다고,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뿐이니 어서 움직이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역시 쉽게 상처받고 작은 일에 감동하는 마음여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행복하길 늘 바랐다. 행복하려거든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을 내려놓아야 했다. 주먹을 쥐고 펴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쥘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자신부터 변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쉼 없는 마음공부로 부여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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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작품 ‘고독’이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빠졌고, 가족 간의 관계도 풀리지 않았다. 차오르는 물속에서 코만 덜렁 내놓고 가쁜 숨을 몰아쉬기에 급급했다. 다급하고 답답하고 힘들었다. 선배 작가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선배는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이 이끄는 ‘깨달음의 장’ 수련 프로그램을 권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아니 그보다 자신이 먼저 죽을 판이었다.
이후 2003년 1월부터 매일 아침 108배와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참회했다. 드라마는 인간이었다. 인간에 대한 세심한 탐구와 이해, 앞서 자신과 가족들부터 이해해야 했다. 달라진 시선으로 1년 간 글을 썼다. 그렇게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가 탄생했다. 이 드라마는 2004년 방송가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며 그해 연말 방송대상에서 그에게 작가상을 안겨주었다. 마음공부 덕을 톡톡히 본 그는 현재 방송, 연극, 연예, 작가들의 마음공부 모임인 ‘길벗’을 이끌고 있다.
이런 그에게 법륜 스님은 존경하는 스승이자 정신적 후원자, 따뜻한 부모와도 같은 존재다. 돈 한 푼 벌어오지 않고 바람만 피우시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늘 명치 끝에 종양처럼 두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불쑥 그에게 떠맡겨진(?) 등 굽은 아버지의 존재는 또 한 번 그를 나락으로 밀쳐냈다.
아버지가 집에 온 날부터 ‘아버지 감사합니다. 있는 그대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문을 가지고 늘 하던 108배를 무려 세 배씩 늘려가며 절을 했다. 참회가 어림없다 싶었다. 참회는커녕 미워하는 이유들만 떠올랐다. 하루는 절할 때 사용하는 염주를 내팽개쳤다.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미워할거야!” 그래도 다시 염주를 주어들고 머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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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행복해지기로 했다. 아버지와 집 앞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가꾸기 시작했다. 상추, 고추 등을 키우고 여러 꽃들도 심었다. 오가피나무를 한 그루 심던 날이었다. 한 여름이었고, 몸은 땀에 젖었고, 차 한잔하기에 좋았으며, 타인 같던 아버지에게 말 걸기가 수월했다. “왜 엄마보다 바람 핀 그 여자가 좋았어?” 아버진 웃으며 말했다. “네 엄마가 제일 좋았어.” 아,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한 남자의 삶이, 죽음을 바라보는 한 남자에 대한 미움이 짧은 한 마디에 오그라들었다.
법륜 스님에게 물었다.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어요.” 스님이 답했다. “손이나 잡아드리세요.” 민망했다. 하루 30분 아버지와의 손잡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어느 날. 절을 하는 데 아버지의 젊은 날이 문득 떠올랐다. 마흔 살의 나이, 자식은 일곱, 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중년…. 살고 싶지 않았겠다 싶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는 아버지를 소재로 쓴 ‘기적’이란 드라마 첫 회가 끝날 무렵 폐암으로 2006년 눈을 감았다. 그의 말대로라면 가볍게, 갔다.
그렇게 그는 자신과 가족부터 화해의 악수를 청했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미움과 원망이 똬리 틀고 있던 마음자리를 비우자 가족들의 웃음이 보였고 행복이 수줍게 찾아왔다. 이제 자신의 변화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북한 동포 돕기 등 국제구호단체 JTS(이사장 법륜)의 캠페인에 적극 동참했다. 한 어머니가 딸을 100원에 판 돈으로 허겁지겁 산 빵을 딸에게 먹였다는 시에서 모성과 딸의 마음이 못내 밟혀 밤이 새벽에게, 새벽이 낮에게 시간을 양보할 때까지 가슴이 먹먹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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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하고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하며 아이들은 제때 배워야 했다. 1000만명 국민 서명운동도 참여했고 길거리 모금 캠페인에도 뛰어 들었다. 그는 또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의 도서 인세 30%와 불교언론문화상 특별상금을 합쳐 1000여만 원을 기부하는 등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손을 내밀고 있다.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꾼 텃밭에는 여전히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꽃이 핀다. 그의 마음에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꽃이 폈을까. 그는 정토회에서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 “나는 행복합니다. 지금 당신도 행복하십시오.”
여전히 부족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쓰다듬어주며 하루하루 날마다 좋은 날을 가꾸고 있는 그. 마음에는 봄이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이 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웃음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모든 생명에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 길이 힘들어도 가렵니다. 나의 위대한 스승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서….”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