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역경가들
“어두움 속에 무수한 보물 있어도 등불이 없으면 알아볼 수 없듯,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는 이 없으면 아무리 지혜로워도 이해할 길 없다(譬如暗中寶 無燈不可見 佛法無人說 雖慧莫能了).” 〈화엄경〉에 나오는 말씀처럼, 부처님 말씀을 우리말로 옮기는 사람이 없으면 경전은 무용지물에 가깝다. 팔리어.산스크리트어.한문 삼장(三藏)을 한글화하는 역경(譯經)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역경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후속세대’를 길러내는 일. 역경은 한 세대에 그치고 말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구마라집’들을 조명했다.
-출가자 은해사 승가대학원 출신 많아
90년대 중반이후를 대표하는 ‘역경승(譯經僧)’들은 은해사 승가대학원에서 주로 배출됐다. 1996년 개원된 은해사 승가대학원에 입학해 경학을 연마한 젊은 스님들은 ‘우리 시대 언어’로 경전들을 번역, 젊은 층 사이에서도 경전이 읽히도록 하는 등 삼장연구의 선두주자로 촉망받고 있다. 응각스님.반산스님.선행스님.현진스님.원철스님.지상스님.법장스님.용학스님.능허스님.일귀스님 등이 그들. 약간 늦게 승가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현석스님(동화사 강사)도 역경에 중요한 역할을 할 스님으로 꼽힌다. 단순히 승가대학원을 졸업했다고 이들이 교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번역능력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였기에 관심을 모은다. 포교원 신도국장 원철스님. 99년 4월 역해하기 힘든 〈선림승보전〉(상.하)을 펴냈다. “중국 송나라 혜홍각범스님(1071~1128)이 발과 귀로 찾아 낸 송대 불교사”로 평가받는 이 책을 스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쉽게 번역했다. 송광사 강사인 일귀스님 역시 주목받는다. 선뜻 한글화하기 힘든 〈수능엄경〉을 99년경 우리말로 옮겼다. 지상스님 또한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98년 11월경 송나라 대혜종고스님의 〈서장〉을 기존 책들보다 훨씬 상세하게 주석을 달아 출간했다. 이 책 이전에 스님은 이미 〈현수법장의 화엄학개론〉을 펴내 실력이 간단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통도사 극락암에 있는 반산스님도 경학연구와 역경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청량징관(738~839)스님의 〈화엄경 청량소〉 4권을 일반에 선보였다. 총 18권으로 계획된 이 책들이 완간되면 우리나라 화엄학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된다. 통도사 백련암에서 원산스님에게 전강받은 선행스님(전 법주사 강사)도 〈법화경이야기〉를 출간하며 자신의 역량을 드러냈고, 범어사 강사 용학스님 역시 〈불광대사전 한글색인〉으로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
‘선림승보전’펴낸 원철스님 ‘수능엄경’ 일귀스님 등 주목 각묵스님.대림스님 등 유학파 초기불전 번역 사업 활발
송광사 강주 현진스님은 〈능엄경정맥소〉를 통해 역경의 모범을 보여주었고, 전 범어사 강사 능허스님은 〈대반열반경〉을 우리말로 옮겨 호평 받았다. 선운사 강주 법장스님은 〈조당집 주해1〉로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드러냈고, 불국사 강주 응각스님은 〈벽암록〉을 역해한 책으로 선림(禪林)에 이름을 날렸다. 동화사 강사 현석스님은 〈화엄경개요〉로 ‘역경 후속세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된다. 이들과 함께 〈화엄경 현담〉(전4권)을 낸 실상사 화엄학림팀, 조선시대 사기(私記) 초서 필사본들을 정리하고 있는 봉선사 능엄학림팀 또한 ‘우리 시대의 젊은 구마라집’으로 평가받아도 손색없는 실력들을 갖고 있다.
팔리어.산스크리트어 불전들을 옮기는 분야에도 적지 않은 스님들이 활동하고 있다.
초기불전에 대한 우리나라 스님들의 관심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그 이전에도 불교학자들이 초기불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지만, 1차 자료를 직접 옮기기보다는 일본 불교학자들의 저서를 재번역하는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차 1987년 선방 수좌들이 ‘고요한 소리’를 결성하고, 젊은 스님들과 불교학자들이 ‘경전읽기모임’을 만들면서 초기불전 번역의 초석이 놓여졌다. 물론 초기불전 번역 작업이 본격화 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후부터다. 영국,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 초기불전 자료가 풍부한 지역에 유학했던 스님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원력’과 ‘물적 기반’이 갖춰진 것.
전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미산스님,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재연스님, 초기불전연구원장 대림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각묵스님, 불회사 주지 정연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마성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2002년 10월 문을 연 초기불전연구원(원장 대림스님)은 외국 유학을 마친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등을 비롯한 10여명의 연구진이 활발하게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 3차 5개년 계획을 세워 2018년까지 초기 경.율.논 삼장을 완전 번역해 출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아비담마 길라잡이〉, 〈들숨날숨에 마음 챙기는 공부〉, 〈네 가지 마음 챙기는 공부〉, 〈청정도론〉 등이 이곳에서 출간돼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처럼 곳곳에서 ‘젊은 구마라집’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지만 ‘후학 양성’에 있어 극복해야 될 점도 적지 않다.
교단 차원의 관심과 후원이 급선무다. 역경불사는 조계종단의 3대 사업 가운데 하나이고, 불전 번역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일이기에 그렇다. 한역경전의 한글화 작업은 한글대장경 완간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됐기에, 초기불전 연구와 번역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역경가의 양성과 교육대상의 질적 향상을 위한 ‘초기팔리경전교육기관’ 설립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종단의 힘과 역량을 초기불전 번역에 집중, 종단의 정화불사와 개혁불사를 학술적으로 마무리할 때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존재 이유를 우리 사회에 더욱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병활 기자 bhcho@ibulgyo.com
- 재가자 산문밖서도 역경불사 큰성과
현재 동국역경원에서 활발한 역경활동을 펼치고 있는 역경위원으로는 〈아비달마구사론〉을 번역한 권오민 교수(경상대)를 비롯해 〈능엄경〉을 번역한 현명곤 위원, 〈대당서역기〉를 번역한 이미령 위원, 〈신화엄경론〉을 번역한 장순영 위원 등이 있다. 특히 권 교수가 번역한 〈아비달마구사론〉은 부파불교 설일체유부의 아비달마 논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논서인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에 대한 역주서로 총 1474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밖에도 역경원 초기멤버로 활동하면서 불교관련 한시들을 전담해서 번역했던 김달진 시인과 30여 년간 역경포교에 매진해온 송성수 역경위원 등 1세대 역경위원의 노력도 큰 힘이 됐다. 이후 최철환 역경원 편찬부장을 비롯해 권기종, 김영태, 김상현, 김호성 교수 등이 역경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영욱 박사를 비롯한 가산불교문화연구원들은 가산삼학총서 편찬을 통해 한문 원전번역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연구원에서 10년 넘게 편찬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영욱 박사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 어록인〈진각국사어록〉을 역해한 책을 발간해 주목받았다. 가산삼학총서 제3권에 해당하는〈진각국사어록 역해〉는 한국 간화선의 개척자로 알려진 진각 혜심스님의 선사상을 우리말로 재조명해 학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동안 한역경전을 통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달받은 한국 불교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초기불전 번역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역경활동이 이뤄진다.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 초기불전 자료가 풍부한 지역에서 유학했던 불교학자들이 귀국하면서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등 초기불전 번역 작업이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또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의 대학에서 초기불전 연구에 필요한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 등의 ‘언어’를 습득한 학자들의 동참도 가속도를 높인 요인이 됐다. 1980년대 후반 팔리어로 된 경전번역의 물꼬를 연 것은 김재성 박사를 비롯한 경전연구소 연구원들의 의욕적인 활동이다. 〈붓다의 말씀 니야나틸로카〉 번역한 김재성 소장을 비롯해 〈팔천송 반야바라밀다경〉발간한 김형준 경전연구소 부소장, 백도수 강사(동국대), 정준영 연구원 등 10여명의 연구원이 바로 그들이다. 지난 2003년 6월 인터넷 카페(cafe.daum.net/pitaka)를 개설해 전문학자들의 의견교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은 번역 용어 통일화 작업을 위해 매주 연구모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권오민.현명곤.김영욱씨 등 한문원전 우리말 번역 큰 기여 김재성.백도수.전재성씨 등은 초기불전 팔리경전 번역 물꼬
특히 경전 연구소 연구원 백도수씨는 최근 범어와 빨리 경전에 관한 강독법을 제시한〈중급 범어 불전 강독〉과〈중급 빨리 경전 강독〉을 2년간의 집필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이미 3년 전에 〈산스크리트 초급 강독〉을 펴낸바 있는 백씨의 ‘중급강독’은 불전강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경전 내용을 가려 뽑은 것이다. 그는 독일에서 오스카 폰 힌위버 교수(인도학)에게 산스크리트 기초 문법 공부와 범어불전강독 등을 배우는 등 원전번역에 앞장서고 있다. 전재성 박사를 비롯한 한국팔리성전협회 연구원들 역시 팔리어 경전 한글번역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팔리성전협회는 부처님께서 사용했던 언어인, 팔리어로 된 성전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세계팔리성전협회의 승인을 받아 지난 1997년 문을 열었다. 특히 전재성 박사는 국내 처음으로 팔리어 원전 〈숫타니파타〉를 직역하는 등 활발한 번역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 박사는 〈숫타니파타〉에 2581개에 이르는 방대한 주석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밖에도 20여 년의 노력 끝에 팔리어로 된 아함경인 〈실라칸다왁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최봉수 박사 역시 팔리 경전번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이다. 〈실라칸다왁가〉는 한역본의 〈장아함경〉에 해당하는 경전 모음집 가운데 계율근간품을 말하며 범망경, 사문과경, 마할리경, 대사자후경 등 13편의 경전이 실려 있다.
이와 함께 이종철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지수 교수(동국대), 김성철 교수(동국대), 우제선 교수(동국대), 박인성 교수(동국대) 등은 산스크리트어, 티벳어 원전 연구번역에 주력한 불교학자들이다. 인도 마이소르대학 산스크리트학과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이종철 교수는 산스크리트어로 현지 학자들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지수 교수 역시 산스크리트어 관련 문법책을 출간하고 활발한 논문번역, 후학양성으로 초기불전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또 김성철 교수는 국내 최초로 산스크리트어 원전과 함께 티벳어역본, 한역본을 서로 대조해 볼 수 있도록 한 대역본(對譯本)인 〈회쟁론〉을 출간해 학계 주목을 받았다. 이밖에도 양승규 교수(동국대), 임승택 강사(동국대), 배상환 강사(동국대), 강성용 박사(서울대), 안성두 박사(금강대) 등 많은 젊은 불교학자들이 초기불전연구에 동참하고 있다.
허정철 기자 shutup0520@ibulgyo.com
[불교신문 2052호/ 7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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