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일본어나 중국어는 물론이고 우리말(한국어)보다도 더 많은 음절을 표시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어가 갖는 다양성,
융통성, 가변성, 상대성 때문인데 이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영어문화 자체의 융통성, 다양성, 가변성, 상대성과 직결된다.
대부분의 언어는 ‘아, 에, 이, 오, 우’의 다섯 발음을 기본적인 모음으로 삼고 있는데 영어로는 이에 해당하는 모음이 A,
E, I, O, U이다. 따라서 일단 ‘A=아, E=에, I=이, O=오, U=우’라는 기본 발음 공식이 성립되지만 영어에서 이
공식은 매우 다양하고 융통성 있게 적용된다.
참고사항이지만, 잘 알려진 대로 일본어는 원칙적으로 ‘아(あ), 이(い), 우(う), 에(え), 오(お)의 다섯 모음 밖에 없다.
일본어로 영어를 표기하기가 더 어려운 이유, 일본사람들이 영어 발음을 더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또 아랍어는 원래
기본모음이 ‘아, 이, 우’ 셋으로 되어 있고 ‘에’와 ‘이’, ‘오’와 ‘우’는 엄격히 구분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과
관습에 따라 발음과 철자가 다르긴 하지만 ‘무슬림’과 ‘모슬렘’이 같이 통용된다.
우선 영어에서 A, E, I, O, U의 이름이 ‘아, 에, 이, 오, 우’ 가 아니고 ‘에이, 이, 아이, 오우, 유-’라는
것이 특이하다. 즉, 글자들의 이름이 기본 발음 공식과 다르다는 것이 이미 영어의 융통성을 나타내고 있다 (가령, 독일어에서는
이들의 발음도 ‘아, 에, 이, 오, 우’이고 이름도 ‘아, 에, 이, 오, 우’이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에이, 비,
씨, 디, 이, 에프. 지, ...’ 하면서 노래까지 부르며 앨퍼벳을 익히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영어가 이런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특별히 지적하거나 별다른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하
지만 이는 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 기억해야 할 매우 중요한 영어의 특성이다. 첫 글자 A는 최소한 아홉 가지로 발음된다는
것을 이미 지적했지만 E도 여러 가지로 발음된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E는 ‘에’라고 발음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E는
(‘에’로도 발음되지만) 그 이름처럼 ‘이’로도 발음된다는 것을 당연히 생각해야 한다. 가령 elite이란 단어를 한국에서는
예외 없이 ‘엘리트’라고 발음하고 있지만 정확한 영어발음은 (원래는 이 말이 영어가 아닐지 모르지만) ‘일리잇’으로 첫 e의
발음이 ‘에’가 아니라 ‘이’이다. 마찬가지로 Elizabeth라는 이름도 한국에서는 모두 ‘엘리자베스’라고 하지만 정확한
발음은 ‘일리저벳’으로 첫 E의 발음이 ‘이’이다.
I
도 ‘아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융통성 있게 발음된다. 따라서 I가 어떤 경우에 ‘이’라는 단모음으로 발음되고 어떤 경우에
‘아이’라는 중모음으로 발음되는지를 가려서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sit(씻)과 site(싸잇),
combine(컴바인)과 combination(캄비네이션), Christ(크라이스트)와 Christmas(크리스마스)에 들어있는 i의 발음을 구분해야 하고 또 왜 발음이 그렇게 구분되는지 그 원리와 원칙을 깨달아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에서는 Midas, Messiah, Orion, profile, rabbi, Siberia vinyl,
vitamin, Viagra 같은 단어를 ‘미다스, 메시아, 오리온, 프로필, 랍비, 시베리아, 비닐, 비타민, 비아그라’라고
발음하지만 정확한 발음은 각각 ‘마이더스, 머싸이어, 오라이언, 프로화일, 래바이, 싸이비리어, 바이닐, 바이터민, 바이애그라’이다. 또 missile(밋쓸/밋싸일), mobile(모우블/모우바일), either(이-더/아이
더)같이 I의 단모음/중모음 발음이 통용되는 경우도 있고, give(기브)같은 예외적인 발음도 있고, live(리브/라이브)같이
발음이 달라짐에 따라 의미와 용법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데서 영어의 무한한 융통성을 볼 수 있다.
O
에 대해서는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O를 그냥 ‘오’라고 읽고 거의 모든 경우에 ‘오’라고
발음하는 잘못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O의 이름이 ‘오’가 아니라 ‘오우’라는 중모음으로 된 이름이고 따라서 그 발음도
때에 따라 단모음이나 중모음으로 달리 발음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corn(코온)에서는 o가 ‘오’ 발음이 나지만
go(고우)에서는 ‘오우’, to(투)에서는 ‘우’, blood(블러ㄷ)에서는 ‘어’, box(박스)에서는 미국식 발음으로 o가
거의 ‘아’에 가깝게 발음되는가 하면 people(피-플), jeopardy(제퍼-디), leopard(레퍼어드), Leonard(레너어드), Wilson(윌슨), Jackson(잭슨) 등에 있는 o는 거의 발음되지 않는다.
U도 rule(룰), sun(썬), abuse(어뷰-스), guitar(기타-)에서 보는 것처럼 경우에 따라 ‘우, 어, 유’로 발음되거나 또는 전혀 발음되지 않기도 한다. 따라서 uranium같은 단어를 ‘우라늄’이라고 틀리게 발음하지 말고 ‘유레이니엄’이라는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하고, 또 미국영어에서는 super나 consumer를 ‘슈퍼’ 또는 ‘컨슈머’라고 하지 않고 보통 ‘쑤-퍼’ 또는 ‘컨쑤-머’라고 한다는 것도 알아두자.
이렇게 영어는 다른 언어처럼 발음원칙이 고정적이지 않고 게다가 본래의 영국식 발음에서 변화된 독특한 미국식 발음까지 갖게 됐는데,
이는 미국문화가 그 어느 문화보다도 다양하고 융통성 있고 가변적이며 상대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말에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이것만큼은 절대로...’라고 하는 것같이 절대성이 강한 표현들이 있는데, 미국영어나 미국문화에서는 이러한 절대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영어에 원칙이 없는 듯이 보이고 혹시 원칙이 있더라도 예외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영어에도 원칙들이 있다. 숨어 있는 영어의 원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문화를 통한 영어 익히기의 진수(眞髓)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