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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지식人

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교외별전 염화미소

 

  eight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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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21:18

 

대승경전은 각자 만들어진 목적이 있습니다.

즉 어떤 목적을 위해 대승경전을 만들어 냅니다.

 

염화시중이라는 말이 실려있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도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은 중국에서 이미 오시교판에 의하여 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열반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어 화엄이 최고다 법화가 최고다 하는 입장이 강해지고 있을때

 

조사선을 주창하시는 분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아라한이나 보살보다 더 높은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이 경을 제작한것입니다.

 

 

1. 경에는 아라한들과 대보살들이 다 참석하고 있습니다.

 

 大梵天王問佛決疑經

  序品第一

如是我聞。一時佛在大靈鷲山。與大比丘八萬人俱。尊者□。尊者舍利弗。尊者摩訶目連。尊者摩訶迦葉。而為上首。與菩薩眾八萬人俱。觀世音菩薩。阿逸陀菩薩。行願普賢菩薩。文殊師利菩薩。而為上首。諸大梵王。釋提桓因。毗沙門王。大持國王。無量天眾俱。海龍王。夜叉王。阿修羅王。無量神眾俱。阿闍世王。波斯耨王。宰官波羅門。無量人眾俱。達多地獄。焰口餓鬼。金色師子。六牙象王。無量非人俱。各禮佛足。退坐一面。

나는 이렇게 들었다. 영취산... 비구들...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을 상수로... 보살대중... 관세음 아일다 보현 문수사리... 상수... 대범천왕... 제석천.... 사천왕... 등...

 

=> 사리불, 목건련, 마하가섭이 상수인 비구대중과 관세음 아일다 보현 문수사리가 상수인 보살대중과 그외 인 비인 다수 대중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2. 화엄 아함 방등 반야.... 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천태 5시교판 뒤에 쓰여진 경전이라는 말입니다.

 

爾時世尊。非現神而示妙相。成就妙大方廣佛心真如蓮華。成就五百□□劫前受用法身。成就佛佛能盡究竟諸法實相。成就華嚴阿含方等般若一實及多寶佛。

 

... 화엄 아함 방등 반야 를 ... 성취....

 

 

3. 부처님 전법기간이 50년이라고 합니다. 천태의 49년설 +1년입니다.

 

  拈華品第二


爾時娑婆世界主大梵王。名曰方廣。以三千大千世界成就之根。妙法蓮金光明大婆羅華。捧之上佛。退以作禮。而白佛言。世尊今佛。已成正覺五十年來種種說法。種種教示。化度一切機類眾生。若有未說最上大法。為我及末世行菩薩人。欲行佛道凡夫眾生。布演宣說。作是言已。捨身成座。莊嚴天衣。令坐如來。

 

이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대범천왕(이름은 방광)이 .... 묘법연금광명대바라화(妙法蓮金光明大婆羅華, 연꽃)을 들어 부처님께 올렸다. 그리고 물러나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부처님께서 이미 정등각을 성취하신지 오십년동안(已成正覺五十年來種種說法) 여러가지 설법을 하시고 보여주셔서 일체중생을 제도하셧습니다. 만약 아직 설하지 않은 최상의 대법이 있으면 저와 말세에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 중생들을 위해 설해주십시오...

 

=> 이 말은 위에서 말한 화엄 아함 반야 방등 를 포함한 천태의 5시교판론인 49년설을 다 인정하고 그 위의 가르침을 설해주라는 말입니다. 즉 화엄 법화 보다 더 뛰어난 가르침을 설해주라고 하는것입니다. 그것이 염화시중이고 조사선이라는 것을 위한 설정입니다.

 

 

4. 마하가섭은 이미 아라한이면서 보살이라고 합니다.

 

爾時尊者摩訶迦葉。即從座起。頂禮佛足。而白佛言。世尊妙哉。我念過去無量劫事。於燃燈佛。布說法處。發菩提心。從佛修行。亦復世尊布說法。於說法中。得漏盡智。成阿羅漢。亦復聞說諸法實相。入菩薩道。不動先果成大乘道。得近如來一切種智。如是妙智

 

이때 마하가섭이 일어나 ...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과거 연등불이 설법하실때 발보리심하였고.... 부처님의 설법중에 누진통을 얻고 아라한이 되었으며, 역시 제법실상에 대한 설법을 듣고 보살도에 들어갓으며 ... 대승도를 이루고... 일체종지를 얻었습니다...

 

=> 이렇게 조사선이 뿌리를 가질 마하가섭존자에 대하여 아라한이 되고 뒤에 보살이 되어 일체종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즉 아라한이 되었다가 보살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염화시중에 의해 조사선의 도리를 깨치게 되므로 마하가섭존자가 아라한 - 보살 - 조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5. 아라한 보살들이 많은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조사선의 도리를 깨치다.

 

爾時如來。坐此寶座。受此蓮華。無說無言。但拈蓮華。入大會中。八萬四千人天時大眾。皆止默然。於時長老摩訶迦葉。見佛拈華示眾佛事。即今廓然。破顏微笑。佛即告言是也。我有正法眼藏涅槃妙心。實相無相微妙法門。不立文字。教外別傳。總持任持。凡夫成佛。第一義諦。今方付屬摩訶迦葉。言已默然。

 

(대범천왕으로 부터 연꽃을 받은 부처님이) 자리에 앉으셔서 연꽃을 받으시고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단지 연꽃을 들었다. ... 대중들은 연유를 몰라 아무말 없었다.... 그때 장로 마하가섭이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시는 것을 보고...(見佛拈華示眾佛事)... 파안미소하였다. 부처님이 그것을 보시고 말하였다. "내게 정법안장 열반묘심이 있다. 실상무상 미묘법문 불립문자 교외별전 .... 제일의제이다. 지금 마하가섭에게 이것을 부촉한다.. 라고 말씀하시고.. 묵연하셨다.

 

=> 이렇게 마하가섭이 아라한과 보살들이 많은 데 홀로 부처님이 연꽃을 든 것을 알아채어...

 

아라한 보살 보다 뛰어난 조사선의 뿌리가 되고

 

화엄 아함 방등 반야 의 대승경전들보다 뛰어난 조사선의 근거가 되고...

 

49년 설법을 다 인정하고 그 위에 더 뛰어난 조사선의 근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6. 이렇게 보았을때 법우님의 질문에 답변을 해본다면

 

마하가섭이 부처님이 연꽃들때 혼자 알았다고 했잖아요? 그때 소승아라한들만 있었나요?

=> 아라한들과 관세음 보현 문수를 상수로한 보살들이 다 있었다고 합니다. ^^

 

소승아라한 중에서는 마하가섭이 뛰어나서 그것을 알은 것이에요?

=> 이 경은 아라한과 보살도를 뛰어넘는 조사선의 도리를 설하기 위해 제작된 경전이기 때문에 경전을 쓰신 분들이 마하가섭은 아라한이면서 보살이고 또 조사가 되신 분으로 "설정하였습니다." ^^

 

아니면 보살들도 있었나요?  관세음보살이라든가 보현보살이라든가 문수보살이라든가요?

=> 관세음 문수 보현 등 대승의 자비와 지혜와 실천을 대표하는 보살들이 있었지만 즉 화엄 반야 방등 법화 열반같은 최상의 가르침을 설한 대보살들이 잇었지만 조사선보다는 아래라는 것을 이때 잘 드러내기 위하여 위 대보살들은 전혀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설정" 되었습니다. ^^ 

 

 

만약에 보살들이 있었다면 어떻게 보살보다 마하가섭이 부처님의 높은 뜻을 빨리 알수 있지요?

=> 그것은 이 경전의 목적이 바로 천태5시교판에 의한 화엄 ... 법화 ...같은 대승경전보다 우월한 조사선의 도리를 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전이므로 경전을 쓰신 분이 그렇게 "설정" 한 것입니다.

 

 

괴로운 것은 大梵天王問佛決疑經만 위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진경이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위경이다라는 주장은

별로 아름답지 않습니다.

보통 대승경전의 정당성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이 쓰는 주장으론

삼법인만 있으면 경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은 당연히 삼법인이 있습니다.

그러니 유마경만 대승진경이고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은 중국제 짝퉁위경이란 말이 아닙니다.

 

 

좀더 근본적으로 유마경을 포함한 일반적인 대승경전들도 목적을 가지고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대범천왕문불경의경이 오시교판을 넘어선 조사선의 뛰어남을 위해 제작되었듯이 다른 경들도

 

그런 목적을 위해 제작된 것이란 것입니다.

 

법우님이 즐겨 인용하시는 유마경도 그런 면에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과 다르지 않습니다.

 

 

_()_

 

 

대승경전이 만들어지고 논쟁이 생기는 것은 위 두경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유마경을 믿는 법우님은 유마경을 부처님직설이라고 생각하고

마하가섭을 아라한이라 성불하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믿는 조사선을 닦는 분들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가르침만이 아니라

마하가섭이 아라한이고 보살도와 대승도를 이루고 일체종지를 이미 이룬 분으로 믿습니다.

즉 이런 일체종지를 이룬 분이 마하가섭뿐만 아니라 다른 보살들도 많이 있지만

오직 마하가섭만이 부처님의 열반묘심을 알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유마경에서 말한 아라한이라 성불하지 못한다는 말은 인정하기 싫게 됩니다.

이미 열반묘심을 얻은 조사인 마하가섭은 아라한이면서 보살이고 조사인것이지요.

 

 

보통 대승경전에서 이렇게 주장이 다를 경우 부처님의 대기설법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실상은 뭐냐하면 각자 유마경을 쓰신 분과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쓰신 분들이 생각하는게 달라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이 둘을 그냥 불설로 믿어버리면 지금 법우님이 하는 것처럼 해독스러운 작용도 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는

 

유마경을 읽고 약을 취합니다. 유마라는 거사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항상 칭찬하셨던 두분의 위대한 거사를 모델로 한것으로 볼수있습니다. 한분은 �따장자(citta, 한역 질다라)라고 하고 한 분은 핫따까장자(hattakka)라고 합니다. 특히 �따장자는 초기승단의 장로스님들과 수행에 있어서 매우 깊은 대화를 하셨던 분이고, 부처님과 승가에 많은 보시를 하셨던 분이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특히 이분이 하셧던 대론중에서 유명한 것이 이교도의 수장이었던 니건타(니건자)와 논쟁을 하여 그를 침묵시킨 일이 유명합니다. 그래서 대승경전이 항상 초기경전이나 부처님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따와 대승경전식으로 이해하여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즐겨 사용했던 것처럼 그런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핫따까장자도 �따장자와 마찬가지로 초기승단에 매우 중요하고 훌륭한 일을 하셨던 거사이고 또한 수행도 대단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 유마경의 모델은 분명 이 두분을 모델로 한것으로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유마경의 앞부분이 유마거사의 활동을 두고 여러가지로 칭찬을 많이 하는데 불제자라면 특히 재가불제자라면 귀담아 들을만하고 본받아야할것이 많음을 압니다.

 

그리고 유마의 유명한 불이법문품도 잘 받아들여 잘 닦아야 합니다. 물론 불이법문품에 나오는 제보살들이 불이라고하면서 드는 것 모두가 초기불교나 부처님의 입장에서 �을때 두개라고 할수 있는가 비교할수 있는가라것은 차츰 공부해가면서 바르게 알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는 이러한 대승보살들이 쓴 대승경전도 읽지않아도 하등 상관이 없지만, 읽어야한다면 논서라고 생각하여 약을 잘 취합니다.

 

그러나 독까지 함께 먹을수 없고, 이제 독이라고 알려진것은 먹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우님이 드시고 취한 것들이 바로 그 유마의 독입니다.

 

유마는 초기경전에 나오는 �따장자나 핫따까장자를 모델로 하였지만 실제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리고 경에 나오는 석가모니부처님이 대승법문을 설하는 것도 모두 후대의 대승보살스님들이 만든 것들입니다.

 

금강경식으로 말한다면

 

유마경에 등장하는 유마거사도 몽환포영이고 석가모니부처님도 몽환포영이고 십대제자들도 몽환포영입니다.

 

그러니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대승보살스님... 그 경전을 조작하여 할말을 하고 싶은 스님만 남습니다. 유마도 석가모니부처님도 10대제자들도 문수도 미륵도 모두 그 대승보살스님이 부리는 헛깨비인 셈입니다.

 

그러니 그 대승보살스님이 해독스럽게 조롱한 십대제자 아라한들을 따라서 욕하고 조롱하면 안됩니다.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는 이렇게 유마경을 해체분석하여 거기에서 유마도 보지않고 석가모니부처님도 보지않고 마하가섭 사리불도 미륵도 문수도 보지 않고 오직 유마경을 쓴 대승보살스님만 바로 뚫어지게 봅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부리는 환술에서 취할것만 취하고 그 스님이 부리는 해독스런 환술은 던져버립니다.

 

 

그것처럼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볼때도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는 만들어진 경을 해체하여 거기서 대범천왕도 보지 않고 연꽃도 보지 않고 마하가섭도 보지 않고 참석한 관세음 미륵도 보지 않고 석가모니부처님도 보지 않고  그 경을 제작한 조사스님을 봅니다.

 

그래서 그 스님이 부리는 환술에서 취할것만 취하고 그 스님이 부리는 해독스런 환술은 던져버립니다.

 

 

이랫을때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에게는 마하가섭이 아라한이라 성불못한다는 괴로움이나 번민이나 희론과 망상이 생기지 않고, 마하가섭이 아라한이면서 보살이고 조사엿다는 아보조상(아라한보살조사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고 부처님의 바른 불제자는 유마경을 믿고 괴로워하는 분을 봐도 미워하지 않고,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믿고 즐거워하는 분을 봐도 미워하지 않고, 바르게 보고 연민합니다.

 

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에는 거짓도 위선도 사이비도 삿된 의도(상카라, 행, 업지음)이 없습니다. 맑고 청량한 부처님의 원음에서 항상 맑고 시원합니다.

 

 

법우님도 괴로움이 가득한 유마경과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바르게 알고 보고 미혹되지 않고, 부처님의 원음인 아함경과 니까야에서 맑고 청량한 부처님의 법음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불립문자 不立文字 [아니 불/설 립/글월 문/글자 자]☞문자로써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입장을 표명한 표어
[동]以心傳心(이심전심) 敎外別傳(교외별전) 염華微笑(염화미소,점화미소) 염華示衆(염화시중)

不立文字 敎外別傳說의 由來 우리나라 禪家의 전설은 대개 중국 선종의 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는 것으로 '禪宗系譜說'이 그러하고 '東土初祖說'이 그러하며 이제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說'도 그러하다. 다른 문제는 且置하고 이 不立文字의 문제, 곧 선종에도 所依經이 있었던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된 此說의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불교라 하는 것은 교주 釋迦牟尼佛의 敎說�iddot;敎訓?iddot;敎示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교설 등이라 함은 言語와 文字로 된 經과 律 外에는 따로 없는 것이며,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교의 諸宗이므로, 만약 이것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經?iddot;律‥論 三藏을 所依로 하지 않고서 무엇으로써 어떠한 근거에서 自宗을 불교라 주장하는가. 선종의 견지에서는 釋迦牟尼佛이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 방법에는 二種이 있으니, 그 하나는 言說에 의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鈍根劣機에 대한 방법이요, 그 둘째는 言說文字에 의하지 않고 師資가 직접 以心傳心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殊勝한 근기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前者는 곧, 종교이요 후자가 곧, 선종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

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

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

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

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

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

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

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

 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

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

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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