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바쁘고 긴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평온한 모습을
거의 보여 주지 못한다. 분주한 길거리의 한 모퉁이에 서서 급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들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긴장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정신적인 불안으로
편안함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분주함과 긴장이 주로 현대 문명에서 기인 한다고 말한다면 잘못일까?
외적인 세계가 분주하면 인간의 내적인 세계도 또한 들뜨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적인
평정과 평화를 상실하게 된다. 사람들은 행복을 자신 안에서가 아니라 밖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행복은 외적인 세계, 즉 현대 문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지속되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왔고 미래에도 증명할 것이다. 국가와 문명은 발생해서
번창 했다가 다시 사라진다. 그래서 세월이라는 달력은 끊임없이 변하는 인간의 역사 즉 근거 없는
비전과 흥망의 흐름을 기록하고 이다.
인간은 외적인 세계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되었고, 과학과 기술은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으며 과학적인
진보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진 것이 없다.
인간은 자신을 평화와 청정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충동들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현대 문명은
이 충동들 가운데 많은 것들을 자극한다.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이 타고 있고, 모든것이 화염에 싸여 있다. 타고 있고 화염에 싸여 있는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눈이 타고 있다. 보이는 모든 것이 타고 있다. 봄으로써 생기는 느낌들이 타고 있다. 눈과
사물의 접촉이 타고 있다. 눈과 외부 세계의 접촉으로 생기는 모든 감수 작용은, 즐겁거나 괴로운
감각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각으로 타고 있다.
그것들은 무엇과 함께 타고 있는가? 욕망의 불, 성냄의 불, 어리석음의 불과 함께 타고 있다. 그것들은
태어남, 늙음, 죽음, 한탄, 고통, 비탄과 함께 타고 있다.
마찬가지로
귀가 타고 있다...
코가 타고 있다...
혀가 타고 있다...
몸이 타고 있다...
의식이 타고 있다... 의식의 대상이 타고 있다. 의식과 의식 대상의 접촉이 타고 있다...
이와 같이 보는 현명한 사람은 눈, 보이는 모든 것, 봄으로써 생기는 느낌들, 눈과 사물의 접촉...
감각에 대해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 귀, 코, 혀, 몸, 의식에 대해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
의식의 대상, 의식과 의식 대상의 접촉... 감각에 대해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이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탐욕이 사라진다. 그리고 탐욕이 사라짐과 더불어 그의 마음이 해탈하게 된다. 그의
마음이 해탈 되었을 때 해탈되었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Vinaya, Maha-vagga "Khandaka)
불은 연료가 있는 한 계속 탄다. 연료를 더 많이 공급하면 할수록 불은 더 잘 탄다. 인생의 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은 감각의 요구를 만족 시키기 위하여 계속 감각에게 먹을 주고 있다.
우리의 감각은 먹을 것이 필요하고 그것들을 굶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올바른 음식을 주어서 각 감각 기능(기관)들의 욕망을 줄이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갈등을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즉 마음의 조화와 평화가 깨진다. 정신적인
향상을 바란다면 우리는 생각을 바로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항상 나쁜 생각들이 살그머니 들어와
게으른 사람들을 덮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구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라(Mara. 여기서 마라는 번뇌라는 의미로 쓰였다. 마라는 조종 불교에서 모든 악을 인격화한
것을 나타낸다. 즉 인간을 윤회 속에서 묶어 두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는, 쾌락만을 생각하고
감각을 절제하지 않으며 음식을 무절제하게 먹고 게으르고 무기력한 사람을 쉽게 넘어 뜨린다.
마치 바람이 연약한 나무를 넘어뜨리듯이. (법구경 7)
생각과 감각을 통제 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을 제거하고, 나쁜 성향을 제거해서 충동을
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긴장을 해소하기를 바라고, 사람과 마음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항상 마음을 해칠 준비가 되어 있는 정신적인 욕망을 제거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 어려운
일을 해 내야만 한다.
감각을 통해 위험을 느꼈을 때 재빨리 모든 사지를 오므리는 거북처럼 현명한 사람은 그가 지닌
감각의 문들을 단속하고 성적인 충동을 다스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감각을 단속해야 하는가? 눈을 감고 귀를 막음으로써 즉 감각 대상을 지각하지
않음으로써 감각을 단속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붓다는 한때 파라사리야(Parasariya)의 제자인
젊은 바라문 웃타라(Uttara)와 함께 다음과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다.
"웃타라야, 바라문 파라시리야는 제자들에게 감각을 다스리는 일에 대해서 가르치는가?"
"훌륭하신 고타마여, 바라문 파라사리야는 제자들에게 감각을 다스리는 일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바라문 파라사리야는 어떤 방법을 감각을 다스리라고 가르치는가?"
"훌륭하신 고타마여, 이 문제에 대해서, 눈으로 형체를 보지 말고 또한 귀로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한다, 바라문 파라사리야는 제자들에게 바로 이렇게 감각을 다스리라고 가르치십니다."
"웃타라야, 그렇다면 맹인과 귀머거리는 그들의 감각을 잘 다스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맹인은 눈으로 물질적 형체를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귀로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웃타라는 침묵을 지켰고 붓다는 아난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난다야, 바라문 파라사리야는 한 가지 방법으로 감각의 통제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성자의 계율에 있는 비할 데 없는 감각의 통제와는 다른다.
그러면 아난다야, 비할 데 없는 감각의 통제란 무엇인가?
아난다야, 눈으로 형체를 보는 비구에게는 좋아함, 싫어함, 좋아함과 싫어함 둘 다가 일어난다. 그는
이와 같이 '나에게 좋아함이 일어났고, 싫어함이 일어났고, 좋아함과 싫어함 둘 다가 일어났다.
이것도 역시 조건지어져 있고, 거칠고, 인과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평화롭고 지고한 것은 평정이다.'
라고 안다. 그래서 좋아함, 싫어함 그리고 좋아함과 싫어함 둘 다가 그의 내부에서 소멸하고 평정이
남는다. 마치 눈을 뜬 사람이 눈을 감고 눈을 감은 사람이 눈을 뜨듯이 그렇게 빠르게 쉽게 좋아함,
싫어함, 좋아함과 싫어함이 사라지고 평정이 남는다.
귀로 소리를 듣는 비구, 코로 냄새를 맡는 비구, 혀로 맛을 보는 비구,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비구,
의식으로 의식의 대상을 인식하는 비구에게 좋아함, 싫어 함, 좋아함과 싫어함이 일어난다. 그는
이와같이 ... 라고 안다. 그래서 평정이 남는다." (중부 152)
오늘날 가장 큰 파괴를 가져오는 정신적인 힘은 무지에 의해서 생기는 강렬하고 지나친 탐욕이다.
어둠에 싸인 중생들이 욕망과 갈애로부터 증오와 모든 다른 괴로움들이 생긴다. 핵무기가 아니라
탐욕, 증오, 미혹이 인간에게 가장 파괴적이다. 폭탄과 무기들은 정복해서 소유하려는 욕망에
의해서, 살생으로 인도하는 증오에 의해서,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미혹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명성과 권력을 얻고 지배하려는 갈망은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 준다.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욕망을 다스리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 마음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먹고 자고
성적인 충동을 만족 시키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짐승은 정신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잠재 능력을 계발해서 의식의 수준을 발전 시키고
그것을 자신과 다른 사람의 복지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고 선한 생각을
계발하며 악한 생각을 버리는 자질이 부족하며, 그의 인생에는 추진력과 자극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붓다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지속적으로 충고한다. 그리고 악한 생각을
다르리고 선한 생각을 계발하라고 훈계한다.
"일어나 앉아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우해 열심히 수행하라." (숫타니파타 332)
"비구들아, 이 법은 목적이 뚜렷하고 확고한 사람을 위한 것이지 나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증지부. iv, 234)
"비구들아, 진지하고 열성적인 사람들이 무엇을 얻지 못하겠는가?"
"진실로 살갗과 힘줄과 뼈만 남고 살과 피가 말라도 좋다. 그러나 노력으로 얻어여 할 것을 얻지
못한다면(그것을 얻을 때 까지)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중부 70.I. 481)
이와같이 붓다는 제자들을 분발하게 했다. 뒤에 붓다가 승인한 아비부(Abhibhu) 장로의 게송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용기와 힘을 주었다.
분발하고 노력하라.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라.
(그러면) 악마(번뇌)의 군대를 쳐부술 것이다.
마치 코끼리가 갈대 잎으로 엮은 헛간을 휩쓸어 버리듯이.
이 교법과 계율에 대해서 경계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되풀이 되는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상응부 i. 157)
불교에서 노력이란 육체적인 힘이 아니라 정신력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힘은 동물이 강하고 정신력은
인간이 강하다. 인간은 잘못된 생각을 점검하고 선한 생각을 계발하기 위해서 이 정신력을 분발 시키고
계발해야 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결코 희망을 포기하거나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보살이었을 때 붓다는 결코 노력으 중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힘의 화신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선인들의 말에 큰 영감을 받았다.
"열성적으로 노력하라. 주저하지 마라! 전진하라!" (0uddha-vamsa. Verse 107)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붓다는 단호한 인내심을 가지고
목숨조차 돌보지 않은 채 그의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이 세상의 생은 달갑지 않다. 패하고 사는 것보다는 (번뇌와) 싸우다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 "
(숫타피파타 440)
붓다의 올바른 노력은, 그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보리수
아랭 앉았을 때 절정에 달했다. 그의 생애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그 순간부터 그는 도덕적.
정신적인 피로에 좌우되지 않았다. 그는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 입멸할 때 까지 육체적인
피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도중에 만난 많은 장애와 어려움도 잊은채 인류의 향상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노력했다. 비록 육신이 항상 건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나태하지 않고 늘 건강
했다. 또한 교휸과 모범을 보임으로써 붓다는 열성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이상의 내용들은 붓다와 그의 제자들의 특징을 전해 주는 것들이다. 붓다는 팔정도의 여섯 번째
요소인 올바른 노력을 매우 강조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붓다의 힘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힘이기 때문이다. 붓다는 구원자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을 윤회의 굴레로부터 구해
주겠다는 어떤 보장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며 그들에게 도덕적인 성원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고 완전히 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을 나약하고 게으르고 어리석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을 무시하는
일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일이다.
붓다가 올바른 노력을 강조한 것은 불교가 염세주의적인 가르침이나 가장 비판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유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진정산 전사(戰士)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분명한 어조로 밝힌 것이다.
붓다가 설한 '올바른 노력'은 잘못되고 악한 생각을 없대고 바르고 선한 생각을 촉진하고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채소를 심는 사람이 씨를 뿌리기 전에 잡초를 뽑듯이 수행자도 마음의 들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잡초
(번뇌)들을 뽑으려고 노력한다. 잡초를 뽑지 않으면 씨를 뿌려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 들판에 비료를 주고 동물과 새들로부터 씨앗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도 마음의
들판을 잘 지키고 거기에 적당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올바른 노력에는 막으려 하고, 버리려 하고, 자라게 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네 가지 기능이 있다.
(이것을 사정근(四正勤)이라 한다).
1. 막으려는 노력이란 무엇인가?
'비구는 악이 일어나는 것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의지를
발휘한다.(이것을 위해) 그는 노력하고 힘을 키우고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비구는 형상을 보거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맛을 보고, 감촉을 느끼거나 의식의 대상을
인식해도 자취나 특색을 취하지 않는다.(아 멀운 아 여섯 가지의 일반적인 모습이나 세부적인
모습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각을 다스리지 못하면 탐욕과 낙담 그리고 악한
생각들에 침범 당하기 때문에, 그는 그와 같은 생각들을 다스리는 일에 몰두하며 감각들을 보호하고
억제한다. 이것이 막으려는 노력이다.'
2. 버리려는 노력이란 무엇인가?
'비구는 이미 일어난 악한 생각들을 버리려는 의지를 발휘한다.(이것을 위해) 그는 노력하고 힘을
기르고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비구는 이미 일어난 감각적인 욕망을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쫓아 내고 쓸어 내서 사라지도록
한다. 이미 일어난 악의와 악한 생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한다. 이것이 버리려는 노력이다.'
3. 자라게 하려는 노력이란 무엇인가?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생각을 일으키고 자라게 하려는 의지를 발휘한다.(이것을 위해)
그는 노력하고 힘을 기르고 자신의 마음을 강하게 한다.
비구는 해탈로 귀결되는 은둔, 침착, (번뇌 또는 괴로움의) 소멸에 기초한 깨달음의 요소들(七覺支.
칠각지) 즉 염각지(念覺支), 택법각지(擇法覺支), 정진각지(精進覺支), 희각지(喜覺支), 경안각지
(經安覺支), 정각지(定覺支), 사각지(捨覺支)를 자라게 한다. 이것이 자라게 하려는 노력이다.'
4. 유지하려는 노력은 무엇인가?
'비구는 알맞은 집중(定.정)의 대상을 유지 시킨다.... 이것이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이 네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막고, 버리고, 자라게 하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태양족의 후예인 그가 가르친 네 가지 노력(四精勤.사정근)이다.
이에 비추어 보아 분투의 노력을 하는 비구는
고통의 끝에 도달한다. (증지부. ii. 15 sutta 13,14)
여기서 언급된 악한 생각들이란 모든 악의 근본적인 원인들인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외의 다른 번뇌들은 이 근본적인 번뇌들의 주변에 모여든다. 반면에 선한 생각들은 그 반대
이다.
이 네 가지 노력의 유일한 목적은 명상을 잘하는 것이다. 네 가지 올바른 노력은 집중(선정)을 위한
필수품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올바른 노력은 정학(定學)에 속한다. 이렇게 올바른 노력은 다른 것과
서로 관계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이다. 올바른 노력은 정학의 다른 두 요소인 올바른 주시, 올바른
집중과 동시에 작용한다.
올바른 노력이 없다며 정신적인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들을 극복할 수 없다. 올바른 노력은 고요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데 방해물로 작용하는 악한 생각들을 제거해서 집중을 향상시키는 선한 정신적
요소들을 증가시키고 유지시켜 준다.
수행장의 마음이 느슨해졌을 때, 그때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더욱더 노력하고 게으름을 제압해야 한다.
또한 정신이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도 명상에 큰 장애가 된다. 인간의 마음이 한 상태에 계속
머무르면 게으름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음울한 무관심을 가져오는 더 큰 무기력함을
낳는다. 붓다는 이 무기력함에 대해서 경고한다.
노력해야 할 때 노력하지 않으며
비록 젊고 강하더라도 나태하고
생각이 느순하며 활발하지 못한 사람
그는 지혜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한다. (법구경 280)
"비구들아, 나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태와 무기력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고, 이미 일어난 것은 끊어
버리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가운데 노력만한 것을 알지 못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나태와 무기력함이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것은 끊어진다. " (증지부. I.4)
이 네 가지 고귀한 노력을 통해 마음을 닦는 일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여 규칙적으로 정신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운동 선수는 하루 이틀 만에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는 계획에 따라 꾸준히 훈련한다. 쓸데없이 심한 훈련을 하지 않고 규치적인 훈련을
하는 거싱 육체의 건강을 지키는 열쇠이다. 불규칙적으로 훈련 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 마음을 닦는 일에도 '규칙적인 수행과 지속적인 노력'이라는 활금룰이 적용 되어야 한다.
마음을 훈련할 때 망상과 싸울 필요는 없다. 마음의 훈련은 아주 자연스러워야 한다. 망상과 싸우려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대신 일어나는 그대로 생각들을 주시하고, 관찰해서 긴장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것은 수영을 하는 것과 같다. 만약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낮을
것이다. 또 허우적대기만 해도 수영이 안된다. 이것은 또한 잠자려는 것과도 같다. 잠을 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잠을 청하면 결코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적인 고통이 될 뿐이다. 잠자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잠은 자연스럽게 와야 한다. 그러므로 단지 긴장된 마음을 플고
근육을 이완시키기만 하면 된다.
고행은, 무익하기 때문에 붓다가 수행자들이 피하길 바랐던 두 가지 극단 가운데 하나이다. 잘못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몸을 학대해 봐야 아무런 소득이 없다. 이와 같은 고행은 종종
혐오감과 좌절로 끝나기 때문이다. 좌절감을 맛 보았을 때 무감각한 무관심이 수행자에게 찾아든다.
우리의 모든 정신 수행은 자연스러워야 하고 관찰하면서 행해야 한다.
"열의 없이 노력하는 것은 밤에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다."
붓다가 지적하고 있듯이 깨달음을 구하려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고행과 쾌락이라는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그는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길(중도.中道)을 따라야 한다. 올바른 노력의 실천에서도
마찬가지로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길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면 기수는 말의 속도를 관찰해서 말이 자기가 원하는 것보다 빨리 갈 때 마다 말고삐를 잡아당겨
속도를 조절한다. 반면에 말이 속도를 늦추려는 낌새를 보이면 말에 박차를 가해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한다. 올바른 노력도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마음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노력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게으름을 피워서도 안된다. 그래서
기수처럼 항상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다음 이야기는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소나 콜리비사(Sona-kolivisa)라는 비구에 관한 이야기이다. (Vinaya Texts. 374-75 sutta 55) 그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열심히 수행 했지만 수행에 진전이 없었다. 그러자 혼자 있는 동안
그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붓다의 제자들은 열성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데 나의 마음은
더러움(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가족은 부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를 즐길 수 있고 선행을
쌓을 수 있다. 수행을 포기하고 세속으로 돌아가서 부를 즐기고 선행을 하면서 살아가면 어떨까?'
붓다는 그의 생각을 간파하고 다가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소나야, 너는 '붓다의 제자들은 열성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간다... 세속으로 돌아가서 부를 즐기고
선행을 쌓으면서 살아가면 어떨까?'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집에 있을 때 너는 비파를 잘 타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파의 줄이 아주 팽팽할 때 소리가 잘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비파의 줄이 아주 느슨할 때 소리가 잘 나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소나야, 비파의 줄이 아주 팽팽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아 중간 정도에 맞춰졌을 때 소리가
잘 나더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소나야, 노력도 너무 지나치면 (마음의)동요를 가져오고, 너무 게으려면 나태해진다.
소나야, 그러므로 '나는 기능들(믿음,정진,관찰,집중,지혜라는 다섯가지가 있다)의 평등성을 이해해서
노력하는 데에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하겠다.'라고 굳게 결심하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는 붓다의 충고를 따라 수행한 결과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이 일화는 Thera-gatha(장로게)의 주석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붓다에게서 명상의 주제를
받았지만 '시원한 숲'에 모무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는 일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너무나 곱게 자라서 순조롭게 열반에 도달할 수 없다. 수행자으이 의무에는 육체적인 고행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경행 때문에 발에 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열심히 노력을 했다. 그러나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나는 팔정도를 이루거나 성자의
과(果)를 성취할 수 없다. 이 종교적인 생활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세속으로 돌아가
복이나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이것을 알아차린 붓다는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비파의 비유'로 그를 도와 주었다. 이와 같이 방법을 바꾼 그는 머지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맛지마 니카야(Majjhima-nikaya)의 20번째 경에는 산만한 생각을 버리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교훈이 실려 있다. 이것 또한 수행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붓다는
제자 들에게 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아, 더 높은 사고를 바라는 비구는 때때로 다섯 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1. 만약 한 가지 대상에 대해 명상하는데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연관된 악한 생각들이 일어난다면
(그것들을 제거하기 위해)선한 다른 대상을 명상해야 한다. 그러면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고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고요해지며 (명상의 주제로)통일되고 집중된다.
숙련된 목수나 그의 견습생이 구부러진 못을 빼고 새 못을 쓰듯이 비구도 선한 다른 대상을 명상하고
좋지 못한 대상을 버린다. 그러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과 연관된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집중된다.
2. 선한 다른 대상을 숙고하는 비구에게 여전히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는 다음과 같이 악한 생각이
주는 불이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생각들은 악하고 비난받을 만한 것이며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면 그의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집중된다.
3. 악한 생각들이 주는 불이익에 대해 명상하는 비구에게 여전히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는 이
악한 생각들에 관심을 두지 말고 명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집중된다.
4. 악한 생각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악한 생각을 명하지 않는 비구에게 여전히 악한 생각들이 일어
나면, 그는 이 생각들의 뿌리르 제거하는 일에 대해 명상해야 한다. 그러면 악한 생각들은 제거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집중된다.
5. 악한 생각들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에 대해 숙고하는 비구에게 여전히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는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밀어 붙인채 (선한) 마음으로 (악한) 마음을 억제하고 극복하며
조절해야 한다. 그러면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어 사라진다. 이러한 생각들을 제거함으로써 마음이
견고해지고... 집중된다.
만약 선한 대상에 대해 명상을 통해, 악한 생각들이 주는 불이익에 대한 명상을 통해, 악한 생각들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에 대한 명상을 통해, 이를 악물고 혀를 입천장에 밀어 뭍인 채 (선한) 마음으로
(악한) 마음을 억제하고 극복하며 조절함을 통해, 악한 생각들이 제거되어 마음이 견고해지고 고요해
지며 (명상의 주제로) 통일되고 집중된다면 그 비구는 생각의 길을 아는 스승이라 불린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을
제거하고 족쇄를 완전히 제거한다. 즉 자만심을 정복해서 괴로움을 종식시킨다."
진지한 명상 시간에만 '올바른 노력'이라는 매우 중요한 이 자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가능하다면 어느곳에서나 계발되어야 한다. 일상 생활속에서 이루어지는 우리들이 모든 말과 행동
속에서 자신의 의무를 전적으로 잘 수행하기 위해서도 올바른 노력이 필요하다. 열성적인 노력
이라는 이 자질이 부족해서 게으르고 나태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에 대해 신뢰를 가지고
계속해 나갈 수 없다.
인간이 빠지기 쉬운 탐욕, 성냄, 질투, 그 외 다른 악한 생각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정신력, 분투의 노력. 경계심이 필요하다. 바쁜 도시 생활과 세상의 급선무에 대한 성가신 잔소리에
물들면 더 이상 자제하는 일에 몰두하고 싶지 않게 된다. 그와 같은 실수를 점검하느느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사회속에 있을 때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을지도 모르는 어떤 명상이
이 모든 것들을 침착하게 맞이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올바른 노력을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거짓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들을 분석해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항상 선하거나 유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나 행동으로
푯현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생각들은 악하고 어리석을 때가 종종 있다. 이와 같은 생각들이
반복해서 일어나도록 낼버려 둔다면 그것은 좋지 못한 징조이다. 악한 생각들이 거듭해서 일어
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이것은 일종의 고정 관념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지하는 진지한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미 일어
났을 때는 무시해야 한다. 악한 생각에 주목하지 않고 무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까지는 항상 악한 생각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해로운 충동들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이러한 충동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충동을 낳는 모든 이야기들도 멀리해야 한다. 맑은
정신을 흐리게 하고 생각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일들을 피하려고 노력하라. 지속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는 어려운 일을 실천할 때만 통제될 수 있는 현대 사회는 항상 혼란과
유혹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세속적인 진보나 이익도 주로 우리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닦아 우리
내부에 있는 최상의 것을 계발하기 위해 한층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이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마음을 닦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을 만한 흔적을 뒤에 남겨 노지 않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플로티누스(Plotinu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서 바라보라. 아직까지 스스로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조각상을
아름답게 다듬고 있는 조각가처럼 해 보라. 그는 조각상에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날 때까지 여기느 잘라
내고 저기는 다듬는다. 이 선은 더 밝헤 하고 저 선은 더 단순화 시킨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지나친
것은 잘라 내고 삐뚤어진 것은 바르게 하고 그늘진 것은 밝게 해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빛나도록
노력하라. 그리하여 당신위에 미덕의 광채가 빛날 때 까지, 오염되지 않은 성지(聖地)에 확실하게
건립된 궁극적인 선(善)을 볼 때 까지, 당신의 (내적인) 조각상을 다듬는 일을 그치지 마라.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영햐을 미친다. 마음이 좋지 못한 쪽으로 작용하도록 허락하여 악한
생각을 가지게 되면 불행을 가져올 수 있고, 심지어 살생이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은 또한 병든 몸을 치료할 수도 있다. 올바른 노력과 견해를 가지고 올바른 생각에 집중
하면 마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결과는 엄청나다. 순수하고 선한 생각드을 가진 마음이 진실로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낳는다.
"의학과 실험 심리학, 초심리학에서의 최근의 연구 성과는 마음의 성질과 그 위치를 어느정도 밝혀
주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기능적 질환뿐만 아니라 신체 기관에서 일어나는 많은 질병의 원인들이
직접적으로 마음의 상태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확신이 꾸준히 확산되어 왔다. 몸이 아픈 것은 몸을
지배하고 있는 마음이 아프게 하거나 마음이 몸에서 일어나는 병을 막을 수 없는 혼란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상태가 어떻든지 간에 질병에 대한 저항은 의심할 여지 없이 환자의 심리
적인 상태와 서로 연관되어 있다." (J.E.R. Macdonagh, The nature of disease)
1937년 미국 의학 협회에서 발표된 논문에서는 충치와 같은 고약한 '육체적인' 질병조차도 심리적인
원인에 기인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의 저자는 완벽할 만큼 만족스러운
음식을 먹고 사는 어린 아이드로차도 충치를 앓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이 아이들이 생활이 가정이나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이 논문은
보여주고 있다. 치아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썩는다.
"마음은 병을 가져오기도 하고 치료하기도 한다. 낙천적인 환자가 걱정하고 불행해하는 환자보다
회복될 기회가 더 많다. 믿음에 의해 병을 치유한 내용을 기록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신체 기관의
질병조차도 믿음에 의해 거의 죽각적으로 치유된 경우를 찾아 볼 수 있다." (Aldous Huxley.
Ends of Means)
이 점에서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벗어나기 위해, 안녕과 복지를 촉진시키기 위해 경전을 독송할
때 곁에서 듣는 의례가 불교 국가들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독송을 하기
위해 선택된 경전들은 '파릿타 숫타(Paritta-sutta)'라 한다. 팔리어로 파릿타(Paritta)는
원래 '보호'를 의미한다. 파릿타 숫타는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고 해방시켜 주는 것으로 간주되는,
붓다가 설한 어떤 경전들 즉 설법들을 의미한다.
파릿타 숫타를 독송하고 듣는 일은 초기 불교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을 이해하면서 듣는 사람들은
이 독송으로부터 정신적인 안정을 얻고 붓다의 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정신적인 안정은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원래 인도에서 붓다의 말씀인 파릿타를
듣는 사람들은 그 독송을 이해했으며 그 효과는 대단했다.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마음은 육체와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정신적인 상태는 몸의 건강과
안정에 큰 영향을 준다. 어떤 의사들은 심지어 순수한 육체적인 질병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쁜 정신 상태가 이전의 악한 행위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어서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이 상태를
바꾸어서 정신적인 건강과 육체적인 편안함이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릿타 숫타를 독송함으로써 어떻게 악한 것에서 나오는 악영향을 없앨 수 있는가? 악영향은 악한
생각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악영향은 파릿타 숫타를 이해하며 믿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선한 마음에
의해서 파괴돌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의 말씀에 성심을 다해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집중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파릿타 숫타의 독송은 보호, 정의 또는 성취를 얻기 위해서 진리에 의존하는 한 형태이다. 이것은 한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진리의 힘에 완전히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法)의 힘이 그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것이 이 경을 독송하는 배후에 놓여 있는 원리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붓다의 말씀을 믿고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은 마음이 미덕으로
가득 차서 어떤 악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릿타 숫타의 독송으로 또한 집중력과 믿음을 가지고 경전을 듣는 데서 생긴 어떤 정신 상태를 통해서
물질적인 축복도 얻을 수 있다. 붓다는 올바른 노력은 괴로움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했다.
(상응부,i. 214) 올바른 방법으로 이 독송들 가운데 하나를 들음으로써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고 또한 부지런히 세속적인 발전의 길을 따를 수 있다.
이해력과 믿음을 가지고 이 경전의 독송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다.
고통과 불행의 원인인 정신적. 육체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데 진리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그러므로
파릿타 숫타의 독송을 올바르게 경청하면 물질적인 발전 즉 물질적인 부와 복지에 필요한 건강한
정신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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