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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불교

[스크랩] 초기불교 대승불교의 논쟁자료(법보신문)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

* 동국대 불교학과, 김용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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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계와 학계에서 일고 있는 대중불교의 신행 문제와 이의 교학적 배경이 되고 있는 불설의 정통성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국불교의 장래를 위해 한번은 결택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며, 이에 대한 보다 정밀한 해석학적 재검토와 광범위한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

제기되고 있는 문제 중 ‘대승경전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와 아울러 ‘대소승 간의 신행상의 문제점을 초기경전 신앙으로 돌아가 극복하자’는 논리는 합리주의와 역사주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서구의 불교학자 군의 다수가 주장해온 바 있으며, 테라바다(上座部, Theravada) 불교도들이 대승불교를 비불교라고 비판하는 논리와 유사하다.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하는 중요한 문제는 실로 역사적, 철학적, 해석학적 통찰이 필요한 난제라 할 것이다. 불설의 정법성 논쟁이 생겼을 때 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각 종파별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초기경전인 [칼라마경]에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진리탐구의 방법을 가르치고 있으며, [마하파데사]에는 경전의 정통성과 정법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초기 승단의 권위와 삼장(三藏)에 의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테라바다의 불설의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른 해석학의 입장에 서 있는 대승의 신봉자들은 깨달은 이의 언어는 다 불설로 인정하는 경전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깨달음의 영원한 현재성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정신과도 일치된다. 수많은 깨달은 제자들의 가르침도 역사적 붓다의 언어와 동일한 경전적 권위와 지위를 가질 수 있다. 대승경전의 궁극적 권위와 가치는 경전을 설한 자가 누구인가 보다도 그 경전이 주는 효용성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불타의 설법은 진리 자체가 아니라 진리로 가는 방법과 길(m-arga)을 가르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함경의 교설도 역시 그 당시의 청법 대중의 필요와 근기에 따라 설해진 상황적이고 맥락적인 진리 (contextual truth)이다. 그러므로 모든 경전은 방편이라는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 대승의 심오한 진리를 크게 왜곡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특히 특정 경전의 절대화는 불교에서 금기로 하고 있는 법집(法執)의 하나로 연기법과 공사상의 즉각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종교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사상은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신앙하는 이들의 마음은 초역사적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관음, 정토, 지장, 미륵 신앙 등의 대승신앙도 타종교 문화의 영향으로 성립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이들의 신앙의 가치를 역사주의에 입각한 정법주의의 잣대로 쉽게 비하할 수 없는 차원이 엄존하는 것이다. 현대종교학은 ‘신앙의 존중’과 ‘다른 신앙형태에 대한 구조화된 감정이입’이라는 방법론을 견지하면서 종교현상을 이해하고자 한다. 또한 종교 기능주의 이론을 내 세우지 않는다 해도, 어떤 신앙이 믿는 자에게 주는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신의 실재성에 대한 논증의 결과와는 관계없이 신을 믿는 자들의 종교 체험과 거기에서 나오는 힘을 보면 알 수 있다.

오늘의 불교는 붓다의 깨달음과 그 교설에 대한 창조적이고 열린 해석학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편협한 진리 주장에서 벗어나, 대소승의 구분은 물론, 종교와 불교라는 개념에서도 벗어난 열린 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대 한국불교도의 신행의 혼란과 문제점도 테라바다식의 문자주의적 경전해석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열려있는 대승의 가르침에 바탕 한 참된 신앙으로 회귀하는 데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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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의 다신적 신앙 불설과 모순"

*  불교평론 주간,  홍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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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 사상적 공헌 크지만 불교 왜곡-타락도 시켜

역사적 부처님 내세워 불설 가탁한 것은 부정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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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교수의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는 글은 대체로 세 가지 주장을 핵심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첫째,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은 다양한 시각의 통찰이 필요한데 초기불교에서만 그 근거를 찾으려는 것은 문제다. 둘째 대승불교는 깨달은 사람의 말을 불설로 인정하는 경전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대승경전을 비불설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셋째 모든 종교현상은 역사적 문화적 산물이며 따라서 대승시대에 제시된 관음·정토·지장·미륵신앙을 정법주의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역사적 부처님’떠나면 거짓

김 교수의 이 같은 입론은 대승불교의 신앙적 교리적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나온 반론을 요약한 것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불교의 교리이해와 신행의 원천을 역사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하는 초기불교보다 대승에서 찾아야 하는 것은 유의할 대립각이다. 하지만 김 교수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첫 번째 주장은 불교의 출발선과 정체성을 잘못 설정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다. 대승이든 소승이든 선이든 밀교든 석가모니라는 역사적 부처님의 존재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심지어 신불교를 표방하며 제작된 대승경전도 석가모니부처님을 등장시켜 그 입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설파한다. 이는 부처님에 근거하지 않는 불교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가 불교이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해서 설명되고 이해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다. 이를 문자주의라고 한다면 불설을 부정해야 하는 모순에 빠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초해야한다는 생각을 법집(法執)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두 번째 대승경전 문제는 아무리 변명해도 논리가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대승의 경전이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사상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 그것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임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 사상 훌륭해도 위경은 위경

그렇지만 대승경전이 대승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내가 체험한 깨달음은 이렇다’고 썼어야 옳다. 역사적 부처님을 내세워 불설을 가탁하는 것은 정직하지도 않고, 신앙상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후대에 누가 또 경전을 만든다 해도 위경(僞經)이라고 말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인도에서 만든 것은 진경(眞經)이고 중국에서 만든 것은 위경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더구나 만들어진 것이 밝혀졌는데도 불설로 믿어야 한다는 것은 지성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경전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그 내용이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경전이 소설적 허구이거나 부처님이 가르친 내용과 상반될 때 그 가치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오시교판론은 경전성립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내세웠던 역설적 사건임을 상기할 일이다.

 * 부처님 가르침과 ‘부합’이 관건

세 번째 대승불교의 잡다한 신앙을 종교사학적 안목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법을 결택하는데 기여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종교사학적 관점은 종교현상에 대한 배경과 의미를 분석할 뿐이지 가치판단에는 중립적이다. 대승불교에 왜 유신교적 다불다보살 신앙이 생겨났는지만 ‘설명’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되냐 모순되냐 하는 질문에는 침묵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 동안 무조건 ‘대승불교는 위대한 불교’라는 가위에 눌려 한번도 그 잘잘못을 따져보지 못했다. 그 사이에 무당이나 점쟁이까지, 유신론이나 다신론까지 불교라는 우산아래 들어왔다. 이런 터에 문제점을 덮어두고 종교현상학적 설명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로 기복신앙이 창궐하는 것도 이런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 무책임한 태도가 기복 창궐로

 냉정히 살펴보면 대승불교는 사상적으로 위대한 공헌을 했지만 신앙적으로는 불교를 왜곡하고 타락시킨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측면도 많다. 따라서 오늘의 불교는 대승의 위대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을 제거하는데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그래야 대승이 또 다른 외도라는 누명을 쓰지 않게 되고, 바른 신행도 가능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초기불교에 눈 돌려야 할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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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의 ‘이성-합리’ 환상 버려라”

* 진현종 불교저술가 홍사성 씨에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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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친설 고집은 시대착오적 주장

‘잡다한 신앙’치부는 대승의 참뜻 외면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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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성 선생의 반론에 이견을 제시하기 앞서 용어 문제를 짚어본다.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가 먼저 제시하고 홍 선생이 그대로 답습한 ‘역사주의’라는 말은 ‘실증주의’ 혹은 ‘역사적 실증주의’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홍 선생이 지금까지 역설하신 모든 주장은 ‘서구학자들이 실증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해 구성한 초기불교’에 근거하고 있음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는 그 본산지에서조차 더 이상 무소불위한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 불교에서 실증주의는 망설

그런데 서양철학은 별도로 치더라도 불교교학사의 전개과정에서 보면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는 비록 오늘날의 모습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맹아는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여러 논사들에 의해 박살난, 비록 그 근대적 모습은 어디까지나 방편의 하나로 일고의 가치는 있다해도 불교 본연의 입장에서 보면 재고의 여지는 여전히 손톱만큼도 없는 사견과 망설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초기불교라는 말 그 자체가 가진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386세대는 ‘청년 맑스’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이는 맑스주의의 적대 진영에 선 학자들이 ‘인간’ 맑스를 청년 혹은 초기 그리고 후기 맑스로 구분하여 양자간의 논리적 모순을 제기함으로써 난파시키고자 했던 의도에서 나온 전형적인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이다. 한마디로 이 수법은 적대 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수법이지 자기 진영 안에서의 반성적인 사고를 도모할 때 쓰는 방법이 아니란 말이다. 이에 나는 홍 선생이 과연 종교인으로서 불자이신지 아니면 특히 실증주의와 합리주의를 불교 자체보다 신뢰하는 학자이신지 감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차후 답변에 따라 다시 조목조목 따져보기로 하고, 이제 지난 호에 실린 홍 선생의 말씀에 이견을 제시해보겠다.

* 불교는 다양한 해석 가능

첫째, 역사적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친설 만을 어떻게 실증해서 단정하시겠다는 것인가? 그 좋아하시는 초기불전에도 신고층(新古層)이 존재한다. 더욱이 최고층이라해도 부처님이 직접 기록한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수백년에 걸쳐 구두로 전수하던 끝에 기록한 것이므로 친설에 집착하다간 결국 ‘나는 아무 것도 가르친 바가 없다’라는 말에 도달할 공산이 크다. 부처님은 실제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전부로 여긴 분이 아니시다. 똑같은 말을 들어도 근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즉 실증주의적 입장은 논사는 고사하고 부처님 스스로 거부하신 것이란 말씀이다.

* 대승 찬술자들은 겸손-정직했다

아마 후대 부파교단들은 서로 자기네 부파가 역사적인 부처님을 더 많이 그리고 자세히 기억하고 있으므로 정통이라고 다퉜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금강경을 찬술한 불자들은 한심함을 금할 수 없어 “형상과 음성으로 나를 구하는 것은 곧 사도를 행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실증주의적 환상을 산산조각내버린 것이다.

또한 용수보살은 『전유경』의 무기(無記)를 발전시켜 부처님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만 체계화하려는데 급급한 여러 부파들을 귀류논증을 통해 이율배반에 빠지게 함으로써 이론 이성만으로는 열반을 증득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급기야 선불교에 이르면 논리로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즉 화두를 제시함으로써 이론 이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부치며 합리주의의 환상을 한방에 끝장내버리는 것이다.

둘째, 깨달음이 보편적인 것이라면 굳이 ‘내가 체험한 깨달음은 이렇다’고 쓰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나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깨달음이 둘이 아님을 믿기에 또 그럴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이 너무 고마워서 감히 제 이름은 들먹이지 못하고 모든 영광을 부처님에게 돌리는 선배 불자들의 겸손이 아름다워 보이기는커녕 한낱 거짓말쟁이로 보이는가? 내가 보기엔 요즘 한 소식 했다하며 부처님 제쳐놓고 기고만장하는 인간들이 더 문제로 보인다. 또한 중생구제의 염원을 시공을 초월하여 확대하고자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한 대승불전 찬술자들의 노고가 그저 삼류 작가의 소설적 허구에 불과하단 말인가?

셋째 부처님은 스스로 과거불을 언급하셨다. 그것은 스스로 유일한 신격이나 인격으로 자처하는 것을 거부하시고 만중생이 성불할 수 있음을 직접 예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불다보살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이 부처님의 본래 사상과 뭐가 위배되길래 감히 ‘잡다한 신앙’이라고 하는가? 또한 그것이 타종교의 여러 신을 받아들여 성립되었다할지라도 이미 불자들의 신관은 외도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 불교와 외도신관은 천차만별

홍 선생은 비불설 그 자체인 대승불교를 따르는 한국 불자들의 행태를 눈감아주려하면 ‘지성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남의 집에서 빌려온 낡은 칼로 으름장을 놓는 홍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철학과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수행의 빈곤을 느끼다 못해 ‘지성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미 암시했지만 나는 홍 선생의 입장은 전혀 뗏목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겨우 한두사람이 탈까말까한 좁고도 위태로운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홍 선생은 그것만이 유일한 뗏목이며 우리 대승불자들의 커다란 반야용선을 자꾸 태워버리시려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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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는 대승 옷 입은 힌두교”

* 마성스님 홍사성님의 주장을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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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관용성 때문에 순수불교 갈수록 희석

역사적 붓다 외면하면 외도로 빠질 가능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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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표 교수의 기고문을 계기로 시작된 이번 법보신문의 지상 논쟁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쟁이 감정 대립이 아닌 예의와 격식을 갖춘 건전한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토론 참여자는 물론 일반 불자들의 불교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김용표 동국대 교수와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간의 주된 쟁점은 불교의 정통성과 정법의 기준, 그리고 신앙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필자는 여기서 주로 대승불교의 신앙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보고자 한다.

* 한국불교는 타락한 대승불교

불교의 출발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불이다. 후대 불신관(佛身觀)의 변천으로 다불(多佛) 다국토(多國土) 사상으로 전개되었지만, 대승불교의 모든 신앙형태, 즉 관음·지장·아미타불 등도 최종적으로는 역사적 붓다에 의존해야 한다고 본다. 만일 역사적 붓다로 회귀하지 않으면 불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거나 외도로 빠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교의 정체성과 기준을 역사적 붓다와 초기불교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용표 교수는 “신앙의 가치를 역사주의에 입각한 정법주의 잣대로 쉽게 비하할 수 없는 차원이 엄존한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편협한 진리주장에서 벗어나, 대소승의 구분은 물론, 종교와 불교라는 개념에서도 벗어난 열린 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불교의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불교의 포용성, 관용성, 그리고 원융성 등으로 말미암아 순수한 불교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도의 후기 대승불교가 여러 가지 힌두교의 사상을 받아들임으로 해서 인도의 불교는 힌두교 속에 습합되어 버렸다. 또한 중국에서는 도교와 유교의 습합으로 중국화 되었고, 일본에서는 신도(神道)와 습합하여 일본화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재래 무속신앙을 받아들여 불교의 무속화 혹은 무속의 불교화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순수불교인지 모를 정도로 희석되어 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변형된 불교의 형태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승불교라고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불교 현상을 대승불교라고 보기 때문에 초기불교 지상주의를 경계한다는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한국불교는 순수한 의미의 대승불교라고 보기 어렵다. 대승불교라는 이름을 띤 바라문교 혹은 대승불교라는 옷을 입은 범신론적 힌두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의 극동지역 불교는 이미 원래의 대승불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본다. 대승불교의 변형된 타락한 모습으로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전개과정에서 잡다한 신행들이 습합되어 본래의 순수한 대승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흔히 대승불교에서는 기복신앙이 용인되는 것처럼 잘못 알고 있다. 원래의 대승철학, 즉 용수의 중관사상이나 무착의 유식사상 등은 물론 중국에서 태동한 선불교의 선의 절대경지에 기복이 발붙일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붓다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잊어버린 대승불교의 본래 모습을 되찾자는 것이다. 초기대승불교도의 주장도 붓다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부파불교의 타락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붓다의 본뜻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중국에서 일어난 선불교도 당시 종파불교의 병폐와 비불교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붓다의 본래 정신으로 되돌아가자는 혁신적인 운동이었다.

* 기복은 대승불교 아니다

엄격히 말해서 붓다시대의 불교를 100% 혹은 90% 순도의 순금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한국불교는 몇 퍼센트의 순도가 되겠는가? 완전한 순금일 때 황금의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다시 100%의 순도로 되돌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불교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서 그 순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불교가 순수한 대승불교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부에 존재하는 비불교적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의 대승불교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초기불교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초기불교를 강조하는 것은 대승불교를 똑바로 잘 하기 위함이다. 이제 다시 붓다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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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김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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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승불교의 발생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반야경}과 {화엄경}의 용궁 유래설, 유식불교의 정통성에 대한 교증(敎證)과 이증(理證), 밀교의 정통성을 입증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 이 모두가 대승이 불설임을 입증하기 위해 대승 측에서 벌인 논의들이다.

그러나 대승 내에서 이런 논의가 있었다는 사실로 인해 오히려 대승비불설이 반증된다고 일군의 불교학자들은 말한다. 한편, 대승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그렇다면 당신이 알고 있는 초기불교는 불설인가?'라고 이들에게 되묻는다. 현존하는 4아함이나 5부 니까야 모두 불멸 후 수백 년 후에 취합, 편집된 것이기에 초기불전만을 불설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함, 니까야와 대승불전의 편집 과정을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누구나 동의하는 '진정한 불설'을 제시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과거에 편집되어 전승된 문헌들뿐이다. 따라서 대승의 정법성 여부에 대해 의견이 갈릴 경우, 사실이 아니라 그 흔적인 현존하는 문헌들에 토대를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번 논쟁에서 근본주의(Fundamentalism)적 불교관을 견지하는 분들이 대승을 비판하면서 문제로 삼은 내용은 기복과 다불사상의 비불교성, 그리고 대승 위경설이다. 대승의 기원에 대해서는, '굴외(窟外) 결집이 있었다'든지 '후대에 편집되었다'는 둥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지만 이에 대해 아직 어떤 단언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대승불전이 설혹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교리는 아함이나 니까야, 율장과 같은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먼저 기복적 신행에 대해 검토해 보자. 우리는 초기불전 도처에서 기복과 작복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다.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를 대하실 때 해탈의 가르침 이전에 보시하고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베푸셨다. 이를 차제설법이라고 부른다. 또, 대열반 이후 사리탑의 관리를 재가자에게 맡기심으로써 발복을 권하셨다.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물을 올리고 탑을 조성하며 사원을 건축하는 것이 복을 짓는 행위임은 초기불전 곳곳에서 강조된다. 물론 기복과 작복이 불교신행의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초기불전의 가르침에 의거할 경우, 기와불사, 법당불사, 가사불사 등을 위한 시주와 지계 등의 선업으로 인해 우리가 복을 받는다는 이치는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설사 그것이 기복적 동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이러한 작복적 신행에만 머물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계도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다불·다보살사상에 대해 검토해 보자. 단적으로 말해, 초기불전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설(三千大千世界說)과 일체지자설(一切智者說)을 종합할 경우, 현재 생존하신 타방의 부처님들께 기도를 올리는 대승적 신행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모든 것을 아는 분'(一切智者)이시기에 우리의 존재를 아시고 우리의 기도에 감응하시고 우리의 공양을 받으시고 우리의 참회를 들어주신다. 이는 타방 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 출가 구도하신 부처님의 현생이 아니라, 보살로 살아가신 부처님의 전생을 닮고자 할 경우 대승보살도가 도출된다.

셋째, 대승불전은 위경일까? 또,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말하면, 과거 대승시대의 전개와 함께 계속 새로운 경전들이 편집되었다는 사실, 또 그에 토대를 두고 계속 새로운 불교 사상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그 당시의 불교가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교는 도그마가 아니기에 부처님 당시에도 교화 상대의 수준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가르침이 설시되었다. 불교의 이러한 응병여약, 대기설법의 정신은 불멸 후 약 1500년 간 면면히 살아 숨쉬며 새로운 불교사상들을 탄생시켜 왔던 것이다. 새롭게 편집된 대승경전과 이에 토대를 두고 새롭게 출현한 대승논서는 법신불의 대(對)-시대적 설법이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우리는 과거 인도에서 발생했던 대승불교인 중관, 유식, 밀교, 중국에서 발생했던 천태, 화엄, 선, 정토 사상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모두가 불멸 후 1500년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승사상들이다. 불교역사 2500여 년 중, 정법과 상법과 말법의 시대마저 모두 끝나고 최근까지 1000년 동안 불교는 잠자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승불교를 논할 때 우리는 위경의 출현을 경계할 것이 아니라, 위경이 탄생하지 못하고, 새로운 대승사상이 탄생하지 못했던 지난 1000년간의 나태(懶怠)를 오히려 통탄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홍사성의 불교사랑
글쓴이 : 사자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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