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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오온과 오취온

  

오온과 오취온

(pañcakkhandhā pañcupādānakkhandhā)

 

후박나무

 

 

오온과 오취온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오취온이 괴로움이라는 말을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괴로움이라는 식의 이해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온과 오취온은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오온과 오취온을 설명하는 경전을 보자.

 

비구들이여, 오온이란 어떠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무엇이든지 이와 같은 것을 색온이라고 부른다.1)

 

비구들이여, 오취온이란 어떠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어떠한 물질이든 과거에 속하든 미래에 속하든 현재에 속하든 내적이건 외적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탁월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번뇌를 가지고 있고 취착함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색취온이라고 부른다.2)

 

오온과 오취온의 다른 점은 오취온의 설명에는 “번뇌를 가지고 있고 취착함(sāsava upādānīya)이 있다” 는 설명이 더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오온과 오취온의 다른 이유이다. 그러면 번뇌를 가지고 있고 취착함이 있는 것(sāsava upādānīya)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먼저 번뇌(āsava)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āsava ā(향하여) +sru(흐르다)에서 나온 단어 인데 “흘러나오는 것”의 뜻이다.

경전에서는 구체적으로 3가지 번뇌를 들고 있다.

[잠부카다까] ”번뇌는 어떠한 것입니까?󰡓�

[싸리뿟따] 󰡒�벗이여, 이와 같은 3가지 번뇌가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에 대한 번뇌, 무명의 번뇌입니다. 벗이여, 이것이 3가지 번뇌입니다.󰡓�3)

 

여기서 설명되는 3가지 번뇌(āsava)는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인간의 모든 번뇌 라고 해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전에서는 10가지의 결박(samyojana)을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것을 통해 수행의 지위인 44과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3가지 번뇌(āsava)는 이 10가지 결박의 처음과 끝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10가지 결박은 5가지 하부결박과 5가지 상부의 결박으로 나누어 설명되고 있다. 4)

그러므로 3가지 번뇌(āsava) 10가지 결박을 달리 부르는 말인 것이다.

 

그럼 취착은 무슨 의미인가?

upa(위로) +ā(향하여) +dā(주다)에서 나온 단어로 “받아들임” “거머쥠”의 뜻이다.

경전에서는 4가지 취착(upadana)을 설명한다.

[잠부카다까] 󰡒�벗이여 싸리뿟따여, 집착, 취착(upadana)이라고 하는데 벗이여, 집착은 어떠한 것입니까?󰡓�

[싸리뿟따] 󰡒�벗이여, 이와 같은 네 가지 집착이 있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 취착, 계율에 대한 취착, 자아에 대한 취착입니다. 벗이여, 이것이 4가지 취착입니다.󰡓�5)

4가지 취착(upadana)도 처음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kāmā)부터 자아에 대한 취착(attavāda=avijjā)까지 10가지 결박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번뇌와 취착은 10가지 결박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중생의 모든 번뇌를 말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번뇌와 취착 중에서도 마지막에 말해지는 자아에 대한(attavāda) 취착과 무명(avijjā)의 번뇌가 취착과 번뇌를 대표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까지의 설명으로도 오취온은 오온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전에서 괴로움을 한마디로 말할 때 이 취착이 들어간 오취온이 둑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분명히 오온이 둑카가 아니고 오취온이 둑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오온에 대해서 취착함이 괴로움이다.6)

 

오온(pañcakkhandhā)이라는 단어에 취착함(upādāna) 이란 말을 덧 붙이면 일반적으로는 pañcakkhandhā+upādāna라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 데 빠알리어에서는 그렇지 안다.

숫자와 함께 조합되는 단어들의 경우에는 기존의 단어 사이에 단어가 첨가 되어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 진다.

, pañca kkhandhā 사이에 upādāna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pañc+upādāna+kkhandhā라는 단어가 만들어 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pañcakkhandhā+upādāna가 되어서 오온에 대한 취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빠알리어에서 pañc+upādāna+kkhandhā라고 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pañcakkhandhā+upādāna로 이해 해야 한다. , 오취온을 글자 순서대로  “다섯가지 취착하는 무더기”  “다섯가지 취착의 무더기” 등으로 해석하는 그 뜻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단어는  5가지 무더기에 취착함(pañcakkhandhā+upādāna)”이라는 오온취로  해석 해야 한다. 그리고 앞에서 보았듯이 여기에서 취착의 뜻은 단순한 견해가 아니고 꽉 거머쥠으로 나타난 자아(attavāda)에 대한 취착 이다.

그러므로 오취온(pañcupādānakkhandhā)의 정확한 해석은 “오온을 나와 나의 것과 나의 자아로 취착하는 것” 의 뜻이다.

 

정리 하자면 오온은 번뇌와 취착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 혹은 번뇌와 취착을 벗어나 버린 아라한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고 오취온은 3가지 갈애를 원인으로 해서 4가지 취착의 결과가 나타난 모습이다우리가 할 일은 오온은 그대로 뇌두고 단지 취착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7) 이 취착함을 벗어난 상태를 고의 소멸인 열반이며 그것은 이 오온을  가지고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4성제에서는 果로 나타난 괴로움을 고성제라하고  고의 因이 되는  갈애8)를 집성제라고 설명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러한 해탈을 아비담마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직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완전한 열반이 아닌 유여열반을 획득한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초기 불교에서의 무여 열반이란 이 몸을 가지고 완전히 탐진치를 부순 상태를 무여 열반이라고 말한다.

오온이 파괴되지 않은 그 자체가 무여열반이다.

 

이렇게 오취온은 [취착함]이 그 핵심 뜻이기 때문에 5취온은 모두 취착이라는 마음부수(색취온,수취온,상취온,행취온,식취온)가 된다. 그러나 5온의 식온은 마음이고 수온,상온,행온은 마음부수이며 색온은 물질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오온과 오취온은 다르다.

그러므로 5가지 무더기에 취착(오온에대한 취착)을 버리는 것이 열반이지 오온을 버리는 것이 열반이 아니다.

 

괴로움에 대한 논의에서 많이 오해되는 것은 삼고(고고,행고,괴고)에 대한 것이다. 특히 행고의 설명을 “조건 지어진 것이기에 고다”라거나 “오온이 고다”라거나 “諸行皆苦 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행고이다.9)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오취온의 설명에서도 보았듯이 조건 지어진 것에 취착함(오취온)이 괴로움인 것이지 조건지어진 것(오온) 자체가 괴로움은 아니다.

이 점을 혼동하기에 많은 책들이 “책상도 苦요, 자전거도 苦요, 해와 달도 苦다” 라는 상식적이지 않은 설명을 하고 있다.

삼고는 느낌을 3가지(고수,락수,불고불락수)  나누어 설명하면서  나타나는 법문이다.10) 그래서 삼고의 바른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설명 될 수 있다.

 

苦苦-이것은 일반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느낌이다. 육체를 가진 이상 깨달은 피할 수없는 근본적인 고통과 비탄, 근심, 슬픔 등을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거개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잘못된 견해와 집착으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이것을 경전에서는 苦受를 화살이라고 보아라고 말한다

 

 

行苦-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다른 말로 평안함이라고 불린다. 경전에서는 6가지 재가의 평안과 6가지 출가의 평안을 설명하고 있고  각자의 정신 수준에 따라 논서 에서는 10가지 종류의 평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평안이란 말은 낮게는 덤덤한 느낌부터 높게는 삼매의 평안함까지 포함하는 느낌이다. 이 평안함도 무상하기에 괴로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무상하기에 괴로움(yadanicca ta dukkha)이란 말은 평안한 느낌에 취착하면 그 느낌도 변화하기에 괴로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오온에 취착함이 있을 때 괴로움이 되듯이 평안함에 취착 이라는 정신현상이 나타날 때 그것이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무조건 조건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괴로움이 아니다.

 

壞苦-행복한 느낌이 변화 할 때 괴로움을 느끼는데  여기서의 행복이란 일반적인 행복뿐만이 아니라 색계4선등의 행복과 평안 까지도 포함된다. 이러한 행복한 느낌은 변화하고 무너지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고가 된다고 말해진다. 정신 물리적인 모든 행복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괴로움이 됨을 말한다. 이것도 행복=괴로움이 아니라 행복한 느낌에 취착하기에 그것이 괴로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위 경전에서는 즐거운 감수는 괴로움이라고 설명한다.

 

위와 같이 삼고의 뜻은 12처에서 발생한 접촉에서 생겨난 온갖 종류의 느낌은 갈애를 일으키고 그 갈애는 취착이 되어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해서 취착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발생하는 것이지 오온 자체가 괴로움이 아니다.

취착하기에 생긴 이 3가지 괴로움은 금생에 능히 소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생겨나는 느낌들이 갈애로 취착으로 흘러가는 것을 여실히 지켜보고 ,돌이켜서 집착을 끊어버리는 것이 위빠사나이다. 행고를 [오온=괴로움], [조건지어진 것=괴로움], [일체=괴로움] 이라고 설명하여 금생에 행고를 소멸시키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설명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일체개고]나 삼고의 [행고]를 지금 여기서 소멸시킬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때 붓다가 “나는 항상 고와 고의 소멸만을 이야기 한다”는 설명이 분명하게 이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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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Katame ca bhikkhave, pañcakkhandhā: ya kiñci bhikkhave, rūpa atītānāgatapaccuppanna ajjhatta vā khahiddhā vā, oārika vā sukhuma vā, hīna vā paīta vā, ya dūre santike vā, aya vuccati rūpakkhandho.

2) Katame ca bhikkhave, pañcupādānakkhandhā: ya kiñci bhikkhave, rūpa atītānāgatapaccuppanna ajjhatta vā bahiddhā vā, oārika vā sukhuma vā, hīna vā paīta vā, ya dūre santike vā, sāsava upādānīya, aya vuccati rūpūpādānakkhandho.

3) Katamo nu kho āvuso āsavoti. Tayo me āvuso āsavā, kāmāsavo bhavāsavo avijjāsavo. Ime kho āvuso tayo āsavāti. (s.n.4.256.Āsavasutta)

4) 첫번째 예류과는 3가지 결박(見結, 戒禁取結, 疑結) 끊은 자를 말한다. 두번째 일래과란 3결이 없고 3(탐진치) 적어진 자를 말하며, 세번째 불환과는 5하결박을 모두 끊은 자로서 죽어서 천계에 태어나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아 불환이라 하며, 네번째 아라한이란 10가지 결박을 끊은 사람을 말한다.

5가지 하부의 결박 : 유신견(有身見), ( ), 계금취(戒禁取), 애욕(愛欲), 진에()

5가지상부의 결박 : 색탐(色貪), 무색탐(無色貪), (), 도거(掉擧), 무명(無明)

5) kāmūpādāna diṭṭhūpādāna sīlabbatūpādāna attavādūpādāna imāni kho āvuso cattāri upādānānīti.(s.n.4 .258 .Upādānasutta)

6) sa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pi dukkhā.

7) 그런데 세존이시여, 그들 오온취가 바로 취착입니까, 혹은 오온취를 제외하고 취착이 따로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취착이 그들 오온취가  아니고 또한 오온취를 제외하고 취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욕망이나 탐욕이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 취착이다.

taññeva nu kho bhante, upādāna te pañcupādānakkhandhā udāhu aññatra pañcupādānakkhandhehi upādānanti?" "Na kho bhikkhu, taññeva upādāna te pañcupādānakkhandhā na'pi aññatra pañcupādānakkhandhehi upādāna, api ca yo tattha chandarāgo ta tattha upādānanti.(s.n.3.100.Puṇṇamāsutta) ....이것은 오온취와 추착의 不一不二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그래서 열반을 취착을 없애는 것이 아닌 취착의 원인인 갈애, [갈애의 소멸] 표현된다그러나 갈애가 소멸되면 역시 취착이 소멸되는 관계에 있음으로 여기서는 취착을 [마음부수] 보았다.

 

8) 갈애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잠부카다까갈애는 어떠한 것입니까?󰡓�

[싸리뿟따] 󰡒�벗이여, 이와 같은 가지 갈애가 있습니다. 감각적 쾌락의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입니다. 벗이여, 이와 같은 갈애들이 있습니다.󰡓�

Katamā nu kho āvuso tahāti. Tisso imā āvuso tahā: kāmatahā bhavatahā vibhavatahā. Imā kho āvuso tahā(s.n.4 .258 .Tahāsutta)

9) 1.“조건 지어진 것이기에 고다”(대부분의 학자) 2.“오온이 고다”(왈폴라 라훌라)  3.諸行皆苦 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행고이다.(빠알리 디가니까야 주석서)

10) ...비구들이여, 즐거운 감수는 괴롭다고 보아야 하며, 괴로운 감수는 화살이라고 보아야 하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는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운 감수는 괴롭다고 보고, 괴로운 감수는 화살이라고 보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는 무상하다고 본다면,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바른 관찰자󰡑� 라고 불린다. 그는 갈애를 부수고 결박을 자르고 아만을 부수고 괴로움의 종극에 도달한다

..Sukhā bhikkhave vedanā dukkhato daṭṭhabbā, dukkhā vedanā sallato daṭṭhabbā, adukkhamasukhā vedanā aniccato daṭṭhabbā.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sukhā vedanā dukkhato diṭṭhā hoti, dukkhā vedanā sallato diṭṭhā hoti, adukkhamasukhā vedanā aniccato diṭṭhā hoti, aya vuccati bhikkhave bhikkhu sammaddaso acchecchi taha, vāvattayī saññojana, sammā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s.n.4. Daṭṭhabbasutta.  p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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