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기불교

三苦에 대하여

三苦에 대하여

 

 

후박나무

 

(dukkha)를 설명하는 법문 중에서 고(dukkha)를 다시 자세하게 3가지로 분석해서 설명하는 삼고(tisso dukkhatā)라는 법문 있다.

틱낫한 스님은 이 삼고의 법문은 후대에 고를 실체시 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쌍윳따 니까야에는 붓다와 사리뿟따가 설명하는 삼고 법문이 22번이나 나타난다. 그러므로 삼고에 대한 법문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 아니고 붓다의 직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붓다가 설명하는 삼고를 보자.

 

Dukkhatāsuttāni

비구들이여, 세가지 괴로움이 있다. 어떠한 것이 세 가지인가? 고통의 괴로움, 형성의 괴로움, 변화의 괴로움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가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괴로움을 잘 알고 두루 알고 소멸시키고 버리기 위해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을 닦아야 한다.1)

 

 

그러나 위 경전에서는 삼고에 대한 상세한 해석은 보이지 않고 이 삼고를 알기위해서는 8정도(다른 경전에서는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간단한 설명만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삼고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학자들 간에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라훌라 스님과 다른 두 분이 설명하는 삼고의 의미를 들어보자.

 

a.⑴일반적인 괴로움으로서의 둑카(dukkha-dukkha;苦苦),

태어남늙음죽음(生老病死), 싫은 사람 그리고 싫은 상태와 관계를 맺는  (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좋은 상태와 헤어지는 것(愛別離苦),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求不得苦), 통한, 비애, 고통,―이렇게 괴로움이나 고통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의 온갖 형태가 일반적인 괴로움으로서의 둑카(苦苦)에 속한다.

 

⑵변화가 만들어 내는 둑카(viparinama-dukkha;壞苦),

삶의 행복한 느낌, 행복한  상태는 영원치 않다. 늘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곧 변화하거나 나중에라도 변화한다그것이 변할 때 고통, 괴로움, 불행을 만들어낸다이 흥망성쇠는 변화가 만들어 내는 고통으로서의 둑카(壞苦)에 속한다.

 

⑶조건에 따른 상태로서의 둑카(samkhara-dukkha;行苦)

부처는 '간단히 말해서 이들 "집착하려고 하는 다섯 가지 모임"(五取蘊)이 둑카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곳에서 부처는 둑카를 다섯 가지 모임으로서 뚜렷하게 정의하였다. '! 비구들이여, 둑카란 무엇인가? "집착하려고 하는  다섯 가지 모임"이 둑카라고 말해야겠다.' 여기서 둑카와  다섯 가지 모임은 다른  것이 아님을 명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다섯 가지 모임 그 자체가 둑카이다. 2)

 

b. sakhāradukkhatā(行苦)-조건 지어진 것, 즉 연생(緣生) 자체의 괴로움을 뜻한다. 형성된 사물들은 복합적인 상호연관들을 보여준다. 따라서 세계는 물질적 실체의 덩어리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사건들의 체계이다. 사실 모든 사건은 실제로 수많은 사건에 비해 비대칭적으로 불안정하게 산출되고 적어도 그것과 연관된 수많은 다른 사건에 의해 수반된다. 존재론적으로 불안정(무상, , 무아)할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으로도 마찬가지다.3)

 

c. sakhāradukkhatā(行苦)-불고불락수는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데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찰나생 찰나멸 하는, 찰나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괴로움이라고 했습니다. 물질도 괴로움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물질은 괴로움이 아닌데 물질이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걸으면서 왜 부처님께서는 걷는 것은 괴로움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닌데 왜 이런 것을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라고 했을까? 발이 갑니다. 발을 탁 들면 발을 드는 것은 행입니다. 발을 드는 것이 행인데 왜 괴로움일까. 발을 딱 드는 순간 다시는 영원히 결코 두 번 다시 그 자리에 발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고통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들어 올린 발도 세포가 바뀝니다. 발을 딱 내딛는 순간 다시는 같은 자리에 발을 내디딜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실상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행고성이라고 합니다.4)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위에서 인용한 3가지 견해처럼 삼고중에서 행고를 가장 큰 범위로 보고 있으며 동시에 행고의 영역에 모든 물질적 정신적인 현상들이 다 포함 된다고 보며 그러한 현상 자체를 행고라고 말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행고의 설명 중에서 “오온이 그 자체로  고다.”“조건 지어진 것은 고다”라는 말은 행고의 의미를 실체시한 것이고 확대해석한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들은 항상 고고,괴고,행고의 순서로 三苦를 설명하는데  이러한 순서를 언제나 유지하는 것도 행고를 가장 넓은 의미로 풀이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항상 고고, 행고, 괴고의 순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행고의 설명이 오기 때문에 행고를 가장 넓은 의미로 해석 하는 것이라면 근거가 없는 해석이다. 그리고 인용문  c 에서 행고를 설명할 때  발을 딱 내딛는 순간 다시는 같은 자리에 발을 내디딜 수 없기에 고통”이라는 말은 집착과 관련된 말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무상한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 아니고 집착이 있을 때에만 고통이 된다. 그러므로 가장 큰 의미로 해석하는 행고라 할지라도 그것이 괴로움인 이상 지금 여기서 소멸시켜야 하고 소멸 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삼고는 느낌을 3가지(고수,락수,불고불락수)  나누어 설명하면서  나타나는 법문이다. 그것을 경전에서는 이러한 세 가지 괴로움을 잘 알고 두루 알고 소멸시키고 버리기 위해 팔정도를 닦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 가지 느낌을 어떻게 관찰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경전을 소개 한다.

 

...비구들이여, 즐거운 감수는 괴롭다고 보아야 하며, 괴로운 감수는 화살이라고 보아야 하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는 무상하다고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운 감수는 괴롭다고 보고, 괴로운 감수는 화살이라고 보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수는 무상하다고 본다면,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바른 관찰자󰡑� 라고 불린다. 그는 갈애를 부수고 결박을 자르고 아만을 부수고 괴로움의 종극에 도달한다.5)

 

 

고수,락수,불고불락수의 3가지 느낌을 관찰하여 해탈하는 것이 삼고에서 해탈하는 것이다. 주석서에서도 삼고를 3가지 느낌으로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6) 삼고(특히 행고)를 이해하려고 할 때 이점을 놓치면 삼고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행고를 실체시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 오온 그 자체가 괴로움이다”  “조건 지어진 것, 즉 연생(緣生) 자체의 괴로움이다.  “물질도 괴로움이다.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이다. 물질은 괴로움이 아닌데 물질이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등의 발언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경전에서 삼고를 말하면서 삼고는 잘 알고 두루 알고 소멸시키고 버리기 위해 8정도와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설명하고 있다.

경전에 근거하여 3가지 느낌으로 삼고의 의미를 다시 규정한다면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될 것이다.

 

苦苦-육체를 가진 이상 깨달은 피할 수없는 근본적인 고통과 비탄, 근심, 슬픔 등을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거개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잘못된 견해와 집착으로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것을 경전에서는 苦受를 화살이라고 보아라고 말한다

 

 

行苦-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다른 말로 평온함이라고 불린다. 경전에서는 여섯가지 재가의 평온과 여섯가지 출가의 평온7)을 설명하고 있고  각자의 정신 수준에 따라 논서 에서는 10가지 종류의 평온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평온이란 말은 낮게는 덤덤한 느낌부터 높게는 삼매의 평온함까지 포함하는 느낌이다. 이 평안함도 무상하기에 괴로움이 된다. 무상하기에 괴로움(yadanicca ta dukkha)이란 말은 이런 평온함도 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평온한 느낌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불고불락수를 무상하다고 관찰하라고 설명한다.

 

壞苦-행복한 느낌이 변화 할 때 괴로움을 느끼는데  여기서의 행복이란 일반적인 행복뿐만이 아니라 색계4선등의 행복과 평안 까지도 포함된다. 이러한 행복한 느낌은 변화하고 무너지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고가 된다고 말해진다.(여기서 무너진다(viparinama)는 표현은 행복의 느낌이 괴로움이 되는 상황을 실감나게 한다) 정신 물리적인 모든 행복은 영원하지 못하기에 괴로움이 됨을 말한다. 이것을 위 경전에서는 즐거운 감수는 괴로움이라고 설명한다.

 

위와 같이 삼고는 접촉에서 생겨난 온갖 종류의 느낌은 변화하는 법칙을 따르고 있는데 그 느낌에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일 뿐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 질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느낌들에서 집착으로 흘러가는 마음을 돌이켜 그 느낌의 속성을 여실히 관찰하여 집착을 끊어버리는 것이 위빠사나이다. 행고를 오온=둑카, 조건지어진 것=둑카라고 설명하여 살아서 소멸시키기 어려운 괴로움으로 만들지 말고 지금 여기서 소멸시킬 수 있는 괴로움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일체개고]나 삼고의 [행고]를 이렇게 이해할 때 붓다가 “나는 항상 고와 고의 소멸만을 이야기 한다”는 설명이 가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삼고는 8정도와 7각지를 닦아서 금생에 소멸 시킬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탐진치의 소멸이라는 열반이다. ..()

 

 

 -------------------------------------

[주석]

1) Tisso imā bhikkhave, dukkhatā. Katamā tisso: dukkhadukkhatā sakhāradukkhatā vipariāmadukkhatā. Imā kho bhikkhave, tisso dukkhatā. Imāsa kho bhikkhave tissanna dukkhatāna abhiññāya ariyo aṭṭhagiko maggo bhāvetabbo. (s.n.5.p57.Dukkhatāsuttāni.)

2)[what the buddha thought] by walpola rahula.p20 이승훈님의 번역

행고의 설명에서 이승훈님은 오취온을 "집착하려고 하는 다섯 가지 모임"이라고 설명 했는데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나와 나의 것과 나의 자아로) 집착하는 다섯 가지 모임]으로 해석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오취온=둑카라는 말이 성립할 것이다.

3)쌍윳따니까야 주석, 전재성

[상호작용하는 사건들의 체계가 존재론적으로 불안정(무상, , 무아)할 뿐만 아니라 인식론적으로도 마찬가지다]라고 행고를 설명하는 이러한 방식은 라훌라 스님등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불안정]이라는 단어에 무상, , 무아를 함께  묶어 버리는 해석이 지극히 [불안정]하다.

4)초기불전 연구원, 각묵스님

[물질은 괴로움이 아닌데 물질이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은 외부의 물질은 괴로움이 아닐 것 같은데 물질이 괴로움이라고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인 것 같다. 다음과 같은 발언도 있다.[고성제의 핵심은 오취온고입니다. 오온을 나니 내것이니 하고 취착하는 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주석서는 말하기를 중생세상에서 오온은 오취온일 뿐이라고 합니다. 중생세상에서 물질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는 반드시 취착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취착 없는 오온이라는 것은 중생세상에서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중생세상의 모든 물질과 정신은 반드시 취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욕계든 색계든 무색계든 존재하는 모든 것(오온=오취온=일체유위법)은 반드시 취착을 야기하고 그렇기 때문에 고라는 것이 오취온고가 말하는 것입니다.],,,이러한 설명에서도  중생의 오온은 오취온이며 이것은 괴로움이라는 말이며 반대로 붓다의 오온은 괴로움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5)..Sukhā bhikkhave vedanā dukkhato daṭṭhabbā, dukkhā vedanā sallato daṭṭhabbā, adukkhamasukhā vedanā aniccato daṭṭhabbā.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sukhā vedanā dukkhato diṭṭhā hoti, dukkhā vedanā sallato diṭṭhā hoti, adukkhamasukhā vedanā aniccato diṭṭhā hoti, aya vuccati bhikkhave bhikkhu sammaddaso acchecchi taha, vāvattayī saññojana, sammā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s.n.4. Daṭṭhabbasutta.  p208. )

6) (한글 d.n.3.합송경 p374) 그런데 다시 주석서에서 말하는 행고의 설명은[“苦受와 樂受를 제외한 삼계에 속한 모든 법들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괴로움이다(제행개고)”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행고성이라고 알아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해석을 잘못이해하면 고를 실체시하게 될 수 있다.

7)(s.n.4.p232. Aṭṭhasatapariyāyasutta)이 경전에서는 느낌을 여러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108가지에 대한 법문이란 어떠한 것인가?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2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3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5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6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18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36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이유가 있어 108가지의 느낌에 관해 설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