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목요일 오후 9시에 '악덕에 대한 질문과 비구상가의 지도에 대한 질문(Bhikkhusanghapariharaṇapañha)에 대해서 경주에 사시는 기관 거사님의 사회로 토론공부가 진행됩니다.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는 말과 '알지 못하고 살생하는 자는 한층 더 심각한 악덕을 낳는다.'는 말이 모순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에 대한 이해를 명확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사(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붓당 사라남 가차미 (Buddham Saranam Gacchami)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담망 사라남 가차미 (Dhammam Saranam Gacchami)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강 사라남 가차미 (Sangham Saranam Gacchami) 승가에 귀의합니다.
377p.
6. [악덕에 대한 질문] (Apuññapañha)
1.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그대들은 '알지 못하고 살생하는 자는 한층 더 심각한 악덕을 낳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계율의 가르침에서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존자 나가세나여, 알지 못하고 살생하는 자는 한층 더 심각한 악덕을 낳는다면, 그로 인해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말씀은 거짓이 되고,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면, '알지 못하고 살생하는 자는 한층 더 심각한 악덕을 낳는다.'라는 그 말씀도 거짓이 됩니다. 이것도 양도논법의 질문으로 건너기 어렵고 넘어서기 어려운 것으로 그대에게 제기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대가 해명해야 할 몫입니다.“
“bhante nāgasena, tumhe bhaṇatha ‘yo ajānanto pāṇātipātaṃ karoti, so balavataraṃ apuññaṃ pasavatī’ti. puna ca bhagavatā vinayapaññattiyā bhaṇitaṃ ‘anāpatti ajānantassā’ti. yadi, bhante nāgasena, ajānitvā pāṇātipātaṃ karonto balavataraṃ apuññaṃ pasavati, tena hi ‘anāpatti ajānantassā’ti yaṃ vacanaṃ, taṃ micchā. yadi anāpatti ajānantassa, tena hi ‘ajānitvā pāṇātipātaṃ karonto balavataraṃ apuññaṃ pasavatī’ti tampi vacanaṃ micchā. ayampi ubhato koṭiko pañho duruttaro duratikkamo tavānuppatto, so tayā nibbāhitabbo”ti.
2. [나가세나]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알지 못하고 살생하는 자는 한 층 더 심각한 악덕을 낳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계율의 가르침에서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의미의 차이가 어떤 것입니까? 대왕이여, 알아차리면 무죄가 되는 죄가 있고 알아차려도 무죄가 되지 않는 죄가 있는데, 대왕이여, 그 가운데 알아차리면 무죄가 되는 죄에 관하여 세존께서 '알지 못한 자에게는 죄가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현명하십니다. 참으로 그러하니 그렇게 받아들이겠습니다.“
“bhāsitampetaṃ, mahārāja, bhagavatā ‘yo ajānanto pāṇātipātaṃ karoti, so balavataraṃ apuññaṃ pasavatī’ti. puna ca vinayapaññattiyā bhagavatā bhaṇitaṃ ‘anāpatti ajānantassā’ti. tattha atthantaraṃ atthi. katamaṃ atthantaraṃ? atthi, mahārāja, āpatti saññāvimokkhā, atthi āpatti nosaññāvimokkhā. yāyaṃ, mahārāja, āpatti saññāvimokkhā, taṃ āpattiṃ ārabbha bhagavatā bhaṇitaṃ ‘anāpatti ajānantassā”ti. “sādhu, bhante nāgasena, evametaṃ tathā sampaṭicchāmī”ti.
378p.
7. [수행승의 참모임의 지도에 대한 질문](Bhikkhusanghapariharaṇapañha)
비구승가를 이끌어 감에 대한 질문
1.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여래께서는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pariharissāmī .'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미륵세존의 본래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내가 지금 수백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가듯, 그가 수천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갈 것이다pariharissati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hante nāgasena, bhāsitampetaṃ bhagavatā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ti. puna ca metteyyassa bhagavato sabhāvaguṇaṃ paridīpayamānena bhagavatā evaṃ bhaṇitaṃ “so anekasahass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ati, seyyathāpi ahaṃ etarahi anekasat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āmī”ti.
존자 나가세나여,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여래께서는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로 인해 '내가 지금 수백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간다.'라는 말씀은 거짓이 되고, 만약에 여래께서 '내가 지금 수백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가듯, 그가 수천의 수행승의 승단 을 이끌어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그로 인해 '아난다여, 여래께서는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은 거짓이 됩니다. 이것도 양도는법의 질문으로 그대에게 제기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대가 해명해야 할 몫입니다.“
yadi, bhante nāgasena, bhagavatā bhaṇitaṃ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ti, tena hi anekasat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āmīti yaṃ vacanaṃ, taṃ micchā. yadi tathāgatena bhaṇitaṃ ‘so anekasahass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ati, seyyathāpi ahaṃ etarahi anekasat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āmī’ti, tena hi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ti tampi vacanaṃ micchā, ayampi ubhato koṭiko pañho tavānuppatto, so tayā nibbāhitabbo”ti.
[나가세나]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아난다여, 여래께서는 '내가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간다.'라든가 '수행승의 승단이 나에게 지시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미륵세존의 본래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세존께서는 '내가 지금 수백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가듯, 그가 수천의 수행승의 승단을 이끌어 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왕이여, 그 질문에서 하나의 의미는 설명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의미는 설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입니다.
“bhāsitampetaṃ, mahārāja, bhagavatā ‘tathāgatassa kho, ānanda, na evaṃ hoti “ah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āmī”ti vā, “mamuddesiko bhikkhusaṅgho”ti vā’ti. puna ca metteyyassāpi bhagavato sabhāvaguṇaṃ paridīpayamānena bhagavatā bhaṇitaṃ ‘so anekasahass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issati, seyyathāpi ahaṃ etarahi anekasataṃ bhikkhusaṅghaṃ pariharāmī’ti. etasmiñca, mahārāja, pañhe eko attho sāvaseso, eko attho niravaseso.
대왕이여, 여래께서 대중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대중이 여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나'라든가 '나의 것'이라는 것은 세속적 의미의 진리이지, 궁극적인 의미의 진리가 아닙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애착을 떠나고 집착을 떠났습니다. 여래에게는 '나의 것'이라고 붙잡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래는 자신에 대한 의착을 수용하여 사람들을 위한 의지처가 됩니다.“na, mahārāja, tathāgato parisāya anugāmiko, parisā pana tathāgatassa anugāmikā. sammuti, mahārāja, esā ‘ahan’ti ‘mamā’ti, na paramattho eso, vigataṃ, mahārāja, tathāgatassa pemaṃ, vigato sineho, ‘mayhan’tipi tathāgatassa gahaṇaṃ natthi, upādāya pana avassayo hoti.
3. [나가세나] "대왕이여, 대지는 지상에 안주하는 뭇삶들의 안주처이고 거주처이고, 이 뭇삶들은 지상에 존재하지만 대지가 '이들은 나의 것이다.'라고 애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는 모든 뭇삶의 안주처이자 거주처이고, 이 뭇삶들은 여래에 안주하고 있지만, 여래께서는 '이들은 나의 것이다.'라고 애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yathā, mahārāja, pathavī bhūmaṭṭhānaṃ sattānaṃ patiṭṭhā hoti upassayaṃ, pathaviṭṭhā cete sattā, na ca mahāpathaviyā ‘mayhete’ti apekkhā hoti, evameva kho, mahārāja, tathāgato sabbasattānaṃ patiṭṭhā hoti upassayaṃ, tathāgataṭṭhā cete sattā, na ca tathāgatassa ‘mayhete’ti apekkhā hoti.
대왕이여, 큰 구름이 비를 내리면서 초목과 가축과 인간을 키우고 지속적으로 수호합니다. 그 뭇삶들은 모두 비로 인해 생장하지만, 큰 구름은 '이들은 나의 것이다.'라는 애착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여래께서는 모든 뭇삶들을 위하여 착하고 건전한 상태를 만들어내고 수호합니다. 이 뭇삶들은 모두 스승으로 인해 삶을 영위하지만, 여래에게는 '이들은 나의 것이다.'라는 애착이 없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yathā vā pana, mahārāja, mahatimahāmegho abhivassanto tiṇarukkhapasumanussānaṃ vuḍḍhiṃ deti santatiṃ anupāleti. vuṭṭhūpajīvino cete sattā sabbe, na ca mahāmeghassa ‘mayhete’ti apekkhā hoti. evameva kho, mahārāja, tathāgato sabbasattānaṃ kusaladhamme janeti anupāleti, satthūpajīvino cete sattā sabbe, na ca tathāgatassa ‘mayhete’ti apekkhā hoti. taṃ kissa hetu? attānudiṭṭhiyā pahīnattā”ti.
[밀린다 왕] "존자 나가세나여, 현명하십니다. 질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잘 풀렸습니다. 심오한 것이 드러나고, 매듭이 풀리고, 밀림이 개간되고, 어둠이 광명이 되고, 다른 자들의 이론이 부수어졌습니다. 최승자의 자식들에게 눈이 생겨났습니다."
“sādhu, bhante nāgasena, sunibbeṭhito pañho bahuvidhehi kāraṇehi, gambhīro uttānīkato, gaṇṭhi bhinno, gahanaṃ agahanaṃ kataṃ, andhakāro āloko kato, bhaggā paravādā, jinaputtānaṃ cakkhuṃ uppādita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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