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무주암 현기스님을 추모하며
오늘(3월20일) 새벽 03시에 상무주암 현기 노스님께서 입적하셨다. 삼일 전(3월 17일) 스님을 찾아 뵙고 상무주암을 떠나오면서 3월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일행들과 했었는데 오늘 갑자기 입적 소식을 들은 것이다. 백장선원에 방부를 들여 살던 스님들은 상무주암 현기스님과 친하게 지냈다. 스님도 백장암 대중들을 좋아하셨다. 매년 오월 단오날이면 현기스님이 사시는 산에 소금을 묻으러 가서 상무주암에서 점심공양을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10년 넘게 백장암에서 살림을 맡고 있는 주지 행선스님을 매우 좋아하셨다.
단오날 산 정상에 소금을 묻고 상무주암에 내려와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그때부터 찻 자리가 시작되었다. 최근에 스님은 방문객들에게 말차를 타주셨는데, 스님이 각기 다른 크기의 그릇에 말차 타는 모습은 무언(無言)의 법문이었다. 스님과 차를 마시고 있다보면 야외 평상에 점심공양이 차렸졌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우리 대중은 평상에서 스님과 점심 공양을 했다. 스님이 밭에서 직접 기른 곰취나물, 머위나물, 두릅나물, 상추, 된장국 등으로 점심 만찬은 풍성하였다. 스님은 백장암 대중들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미리 보살님을 올라오게 하여 공양에 특별히 신경을 쓰셨다.
어느날 스님과 상무주암 마루에 앉아있는데 어느 보살님이 들어오지는 못하고 절 문에 서서 스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보살님께 들어오시라고 말하자 보살님은 마당에서 스님께 삼배를 올렸다. 내가 스님을 대신해서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묻자 스님을 불교티비에서 뵈었는데 처음 뵙자마자 가슴에 전류가 흐르듯 찌릿하는 것이 느껴져 이렇게 혼자서 찾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스님을 보고 "저렇게 느낀 사람도 있네요. 저는 스님을 보면 40년 동안의 고독이 스님 얼굴에 뭍어있는게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가까이 앉아있으니 잘 보는 구만”이라고 대답하셨다.
스님은 백정암 대중에게는 송월상회에 복수박이 몇 박스 있으니 가지고 올라오라. 김장을 담을려고 배추를 사놨으니 배추를 지게에 지고오라. 뽕잎차를 만들려고하니 산뽕나무 잎을 따오라.는 등의 심부름을 시키셨다. 복수박을 지고 올라가면서 쉼터에 앉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수박들을 가지고 올라가면 어차피 스님은 이 수박을 우리들에게 줄텐데 지금 여기서 갈라 먹는게 낳지않을까? 스님의 허락없이 먹으면 안된다는 몇몇 스님들의 걱정을 무시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수박을 잘라서 먹었다. 어느덧 목마른 스님들은 다가와서 전부 공범이 되었다. 상무주암에 도착해서 올라오는 중간에 목말라서 수박을 깨 먹었다고 말씀드리니 스님께서는 “잘 했다”라고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한번은 스님이 신도님이 선물한 스마트폰을 통해서 ‘명진TV’를 보셨다며 허정,도정,진우스님의 이야기를 하셨다. 옆에 있던 제가 “제 법명이 허정입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으시며 “스님이 허정스님이예요?”라고 물으면서 반가워 하셨다.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바른 말을 하는 스님들은 귀하다면서 진우스님, 도정스님도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후 ‘야단법석TV’에서 현기스님을 인터뷰하였고, 그 인터뷰는 ‘야단법석TV’에서 가장 높은 조횟수를 기록하였다. 아마도 스님들이 올라와서 현기스님을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함께 인터뷰하러갔던 나와 진우스님과 카메라 감독님은 스님께 법호와 염주를 받았다. 스님은 내가 해외에 나갈 때는 사람을 보내 용돈을 챙겨주셨다.
백장암 주지 행선 스님 동생은 출가에 뜻을 둔지 오래되었지만 일주일마다 투석을 해야 병이 있어서 출가를 못하고 있었다. 백장암 대중은 종단에서 계를 받지 못한다면 상무주암 현기스님께라도 계를 받자고 의견을 모았다. 스님께 미리 연락도 안 드리고 상무주암에 도착해서 그동안 계를 받지 못한 사실을 말씀드리니, 스님은 그 자리에서 사미계 주는것을 허락하셨다. 계를 받는 이에게 불법승 삼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법문을 해주시며, 행자는 항상 도를 생각하라는 의미에서 도념(道念)이라는 법명을 내리셨다.
지난달에 스님이 갑상선암으로 갑자기 쓰러지셔서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했다가 병원에서 치료받기를 거부하시고 다시 상무주암에 돌아오셨다. 상무주암에 올라온 며칠 뒤 3월12일 행선스님, 지덕스님, 고경스님,도념스님과 거사와 보살들이 현기스님을 찾아 병문안을 하였다. 그때만해도 현기스님은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웃음도 웃으실 정도로 건강하셨다고 한다. 5일후 3월17일 나는 도정스님, 일연스님,경서보살과 스님을 찾아뵈었다. 그때 스님의 양손은 뚱뚱 부어 있었고, 누어서 일어나지도 못하시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특히 도정스님이 왔다고 말씀드리니 처음 만나는 것임에도 두 손을 잡으시며 반가워하셨다. 스님은 먼저 "제행무상". 이라는 법문을 주셨다. 도정스님이 "한국의 미래 불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은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답을 주셨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스님은 누워서 양손바닥을 벌려 흔들어 주셨다. 안녕이라는 작별 인사인지,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법문인지... 스님이 힘이 없는 가운데서도 두 손을 들어 흔들어 주시던 모습은 오래 남을 것 같다.
백장암 대중과 현기스님이 차를 마시는 동안에 질문이 오고갔다. 이를테면
질문1: 스님께서는 깊은 산중에서 오랫동안 사셨는데 제가 볼 때는 거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현기스님: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질문2:이곳에 사시는 동안 누가 피곤하게 한 적은 없었는지요?
현기스님: 내가 약하면 괴롭힘을 당하고 내가 강하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습니다.
질문3: “스님 외로울 때는 어떻게 해요?”
현기스님: “화두 들어야지!”
질문4: “스님 발심이 안되면 어떻게 발심이 되게 하나요?”
현기스님: “벌써 삽십방이야”
질문5: "스님 젊은 스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현기스님: "내가 젊은 스님들 걱정 한다고 해도 나의 일이고, 걱정을 하지 않는 다고 해도 나의 일이야."
"....걱정하지 않는 다고 말하면 무정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걱정한다고 누가 고쳐지나"
현기 스님은 단순한 삶을 실천한 선승이자,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후학을 이끈 큰스님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깊은 산중 상무주암에서 44년간 홀로 수행하셨지만, 수좌스님들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출범한 선원수좌복지회에 1억원을 기부하고, 2013년 조계사, 2016년 동화사, 2022년 전등사에서 법석을 열어 대중들에게 법비를 내렸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었고, 일상생활에서 선(禪)의 정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인간적인 따뜻함과 엄격한 수행자의 면모가 공존했습니다. 한국 불교의 현실에 대한 관심도 가지고 종단의 개혁을 바라는 젊은승려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후원하셨습니다. 스님의 입적은 한국 불교계에 큰 손실이지만, 스님이 남긴 가르침과 삶의 모습은 후대에도 많은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끝-
■ 부 고
원 적 대한불교조계종
상무주암 무주당 현기대선사(법납 64년, 세수 86세)께서
금일 3월 20일 오전 03시에
상무주암에서 첫새벽 종소리를 들으시고 원적에 드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황망한 마음에 일일이
연락 드리지 못함을 널리 혜량해 주시길 바라며
마지막 가시는 여정 일정을 알려드립니다.
※장례일정※
○ 분 향 소
- 선산 죽림사. 구미시 선산읍 교리 16~135 (구:선산힐링캠프)
[네이버 지도] 구미시 교리2길 16-135 https://naver.me/FVf9fIXD
*구글지도에서는 검색되지 않음
○ 영결일시
- 불기2569(2025)년 3월 24일(월요일) 오전 10시
○ 영결식장
- 선산 죽림사
○ 다 비 장
- 통도사 연화대
○ 문의 및 연락처
- 대구 무광산사 ☎(053)477-0108
https://youtu.be/7bPuPtKGkTc?si=yhLzsPm0Q83agv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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