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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나는 저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수정)

 

 

박구용는 교수의 강의 -지독한 사랑, 대중정당의 길

민주당에서 초청받아 강연한 이 동영상이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종계종에서 나아갈 방향을 밝힌것 같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중공의로 운영되어야 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승가는 이런 동영상을 보고 따로 배울건 없었다. 

없었다.라는 과거형을 쓰는 이유, 다시 이 동영상을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현재 종단운영이 그렇치 않기 때문이다. 아래 박구용교수가 강의한 것중에서 귀에 걸리는 몇가지를 적는다. 

 

 
"사실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호남 사람들이 예전부터 사랑한 줄 알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분이 고난 받으면서부터 호남사람들이 그 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5.18때 전라남도 도청에 남은 사람들의 구호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김대중을 석방하라였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정치 현상은 전 세계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정치 현상은 우리의 생각으로 해석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복잡성의 증가이다.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복잡성의 증가를 견뎌내기 위해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을 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시스템의 안과 밖을 넘나들어야 한다."


"현대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 하는 것이다."

"컴퓨터 CPU 와 GPU의 관계는 인간의 '생각'과 '각감'의 관계이다.
이제 정치는 '생각(이성)'으로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감각'으로 해야 된다.
나를 보는 나를 다시 보는 것 이것이 메타 인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되는 것은 컨텍스트.
맥락적인 면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시대이다."

 

"대중은 우매하기에 대중이 많아도 누구도 베토벤의 곡을 작곡하지 못한다. 이렇게 대중정당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러한 생각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이다."

"비판적 지지자라고 하는 것은 비겁자의 변명일 뿐이다.
마치 "내가 너와 비판적으로 결혼해 주마"라는 말처럼 비겁하고 폭력적인 말이다."

"
최근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누군가 고통 받는 존재가 생겨나면 그 고통 받는 존재를 관계망속에서 함께 지켜나가는 것이 지금의 연결망 민주주의다. 이제 민주당은 문제를 해결하는 연결망 대중 정당이 되었다. 대중은 문제를 찾는 사람이고 국회의원은 문제를 푸는 사람이다. 국회의원들의 책무는 받아쓰기다. 공부해야한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훌륭한 노예로 성장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었는데 그것을 하게 만드는 것이 권력이다.(박스 베버) 너를 살릴 순 없지만은 너를 죽일 수는 있는 것이다.그러나 그러한 권력은 이제 권력이 아니라 폭력이다.지금은 대중의 의견을 모아놓은 것이 권력이다. 이것이 의사소통적 권력, 이것이 생명권력이다. 이렇게 70%의 의견을 꺾어 버리는 것은 폭력이다. 이번에 국회의장 선거에 우원식을 뽑은 89명은 폭력을 행사 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전서율 1위는 대통령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속닥속닥하며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악마의 혀다."

"그리스에서 아고라에 토론하러 나오는 사람은 가족 대표였다. 그 뒤에는 지역 대표가 오게 되었고 이것이 데모스크라시.
마땅히 지배해야 되는 사람과 지배를 당해야 되는 사람을 나누는 것, 이것이 예전의 아르케 국가체제."

" 정치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의 정치, 우정의 정치이다."

"모든 것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간다.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치안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미래의 천사는 항상 괴물처럼 다가온다. 지금 괴물처럼 보이는 것이 미래의 천사이다."

 

......

 

박구용교수의 말처럼 이제 태초와 근원을 찾는 지대는 지나갔다. 부처님 시대의 브라흐마교와 육사외도가 하나의 근원이나 요소설을 주장하였다. 서양에서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 예를 들어 성경에서 그랬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한일서1:1

 

성경에서 “태초”라는 용어는 헬라어 ἐν ἁρχᾖ(엔 아르케)인데 “태초에”로 번역 하였고 요한일서에는 ajp! ajrch(앞프 아르케)는 “태초부터”로 번역하였다. 그동안 인류는 태초, 하나의 중심을 찾아서 헤메여왔고 중세시대까지 인간은 신이라는 이름과 권위아래에 허덕이어야 했다. 그후 과학이 더욱 발달하면서 하나의 시발점, 하나의 시발점을 추구하는 인간의 생각은 무지와 어리석음이라고 판단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진리 하나의 원본, 원천,태초(앤 아르케) 같은 것은 없다. 

 

부처님은 업과 연기와 무아라는 단어로 그것을 설명하였다. 업과 연기를 간단하게 설명하는 일은 하나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나 이해가 어렵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불교집단의 이론과 삶의 모습은 닮아있다. 그래서 승가운영에서는 대중공의가 선택되었고, 이론적으로는 연기법, 무아법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계와 통섭의 이론이 현상적으로 유일신을 믿는 종교보다 더 고리타분한 종교로 취급받고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가? 종단운영에서 대중공의로 운영하는 종단이 된다면, 그 속에서 세밀하고 정미로운 불교사상이 꽃피워 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교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와 도움을 줄 것인가? 지금은 각자도생으로 화합이 이루어질수 없고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다. 침체되어 있는 종단의 분위기, 아무 생각이 없는 승려들에 대해 한숨이 절로난다. 누굴 탓하겠나. 내가 거기 한 복판에 있는데.....

 

박구용교수 덕에 대중공의, 대중정치, 다수결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대중정당 정치는 모든 것의 발생과 소멸은 조건성의 원리에 의한다는 연기사상을 설명하고있다.  대중공의가 지혜요, 자비다. 대중공의 승가의 평등과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중공의는 사랑이다.서로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다. 대중공의는  자유다. 서로를 인정해 주는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수결은 사랑이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결정에는 동의해 주는 것은 동료에 대한 사랑없이는 불가능하다.

 

부처님이 다수결로 정법과 비법, 율과 비율을 결정하라고 한 이유를 생각해보라. 연기법이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정치도 이제 특정한 사상이나 주의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인간이 인지하는 즉각성 즉, 고통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알베르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Je me révolte, donc nous sommes) 라고 말했다한다. 나는 이것을 개인의 고통을 易地思之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드디어 自利利他하는 보살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권투를 빈다.

 

 

 

 

 

 

 

 



 

 

 

다른 동영상에서 박구용이 말하는 ' 법치주의와 법률주의'
 
●법치주의와 법률주의는 다르다.이것을 착각하기에 권력자들이 법치주의를 한다면서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하고있다.
 
●법치주의- 인권과 참정권등 기본권을 보호하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
●법률주의- 법치주의를 위하여 상황에 따라 정해진 형법,민법등을 지키는 것.

 

●실체적정의-인권과 주권등 내 몫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정의관.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사유로서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을 확인 할 수 없다.
●절차적정의-절차가 정의로우면 누구나 결과를 수용하는 정의관. 칼을 쥐고 파이를 자르는 자가 가장 나중에 조각을 선택한다. 
●소유적인 사랑-고정되어 있지 않고 소유할수 없음에도 소유할수 있다고 착가하는 사랑
●존재적인 사랑-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인정하여 상대에게 자유를 주는사랑
●악의 평범성-명령을 받고 유태인을 학살하는 방법을 설계한 아이슈만이 너무 평범한 인간인 것을 알고나서 안나 하렌트가 작명함 -정의 로운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직분을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명령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는 말.

 

●계승정당(대중이 주인이 되는 대중정당)-민주당, 이식정당(위원정당)-국민의 힘
●이식정당(위원이나 전문가든이 주인이 되는 원내정당)-국민의 힘
●권력 -모아서 합의된 힘을 쓰는 것 - 존재적사랑
●폭력- 합의되지 않은 힘을 쓰는것 - 소유적사랑
 
* 이러한 관점에서 '불성(佛性)'을 인정하는 불교는 인간을 무한정 긍정적으로 보게하는 측면이 있다. 불교의 원래 관점과 다르다. 인간을 선하다 혹은 악하다라고 측면적으로 보게 만드는 것은 연기법에 어긋난다. 

 

 

 

https://www.youtube.com/live/9tSZNUMOT00?si=nIhbI1FgLaqAiN9C

 

 

 

 

https://youtu.be/e09GafCe2hM?si=H0P27v_gzvyAwm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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