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들

연기공식 ‘이것과 이것’의 바른 이해는 ?

연기공식 ‘이것과 이것’의 바른 이해는 ? 

 

불교의 핵심은 연기이고 연기는 간단하게 “이것이 있을 때 저것이 있다.이것이 없을 때 저것이 없다.”라고 설명된다. 이것(此)과 저것(彼)으로 번역한 이 연기공식은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다양하게 응용되어왔다. 한문으로 번역될 때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기고피기(此起故彼起)처럼 차유(此有)와 피유(彼有)로 번역되고 있다. 잡아함262 천타경, 잡아함296 인연경, 잡아함297 대공법경,잡아함298 법설의설경,잡아함299 연기법경등 14곳에서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한문경전 중에는 이것(是)과 이것(是)으로 번역한 경전도 발견된다. 잡아함590 상인경,잡아함846 공포경,잡아함854 나리가경,잡아함961 유아경등 5곳에서 시사유고시사유(是事有故是事有) 시사기고시사기(是事起故是事起)처럼 시사(是事)와 시사(是事)로 번역되고 있다. 잡아함293  심심경에서는 특이하게도 유시고시사유(有是故是事有) 시사유고시사기(是事有故是事起)으로도 나타난다. 빠알리 원전에는 아래처럼 '이것(imasmiṃ)이 있을 때 이것(idaṃ)이 있다.'로 나타나고 있다.

 

 imasmiṃ(이것이,처격) sati(있을때,현재분사) idaṃ(이것이,주격) hoti.(있다) 

Imassa(이것의,소유격) uppādā(일어남으로부터,탈격) idaṃ(이것이,주격) uppajjati.(일어난다) 

Imasmiṃ(이것이) asati(없을때) idaṃ(이것이) na hoti.(없다) 

Imassa(이것의) nirodhā(소멸함으로부터) idaṃ(이것이) nirujjhati(소멸한다) 

 

특이한 것은 이 연기공식이 나타날 때 항상 12연기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것과 이것은 12연기의 각지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연기공식이 12연기를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부처님이 ‘이것’과 ‘이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이유를 알 수 있고 구테여 ‘이것’과 ‘이것’ 대신에 ‘이것’과 ‘저것’으로 번역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번역하는 이들이 이러한 문맥을 읽지않고 단지 '이것'과 '이것'이 중목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것'과 '이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의역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잉친절이 후대에 연기를 이해하는데 많은 장애를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지칭하고 ’저것‘은 멀리에 있는 것을 지칭한다. 또한 '이것'과 '이것'은 같거나 비슷한 종류를 지시하거나 비교할 때 사용하고 '이것'과 '저것'은 다르거나 이질적인 것을 지시하거나 비교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연기경(S12:20)에서는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는 것은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도리가 정해져 있으며(ṭhitāva sā dhātu) 법으로서 확립되어 있으며(dhammaṭṭhitatā) 법으로서 결정되어 있으며(dhammaniyāmatā) 이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idappaccayatā)라고 그 법칙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여기서 여실한 것, 거짓이 아닌 것,다른 것으로부터 생겨니는 것이 아닌 것, 이것의 조건짓는 성질, 이것을 일러 연기라한다.”라고 거듭 설명하고 있다. 12연기에서 무명과 행, 식의 명색등의 순서가 법칙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각지의 관계는 a1-a2-a3-a4...a12의 관계로 언제나 순서가 바뀌지 않는다. 무명을 조건으로 행이 있다(avijjāpaccayā saṅkhārā)는 표현은 연기공식과 가까운 표현인 무명이 있을 때 행이 있다.(avijjāya sati saṅkhārā honti)로도 나타나고 있다. 12연기 각지의 관계 즉 무명과 행, 행과 명색의 연속성, 긴밀성, 즉각성, 인과성등을 나타내기 위해서 부처님은 ‘이것’과 ‘이것’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연기공식과 12연기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경이 ‘우다나’에 보인다. 

우다나 ‘깨달음의 경1’은 “'이것이 있을 때에 이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이것이 생겨난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순관(順觀)이 설해지고, ‘깨달음의 경2’는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이것이 사라진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역관(逆觀)이 설해지며, ‘깨달음의 경3’는 “이처럼 이것이 있을 때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남으로 이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을 때 이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짐으로써 이것이 사라진다.”는 게송뒤에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 설해지고 있다. 우다나를 보면 연기공식과 12연기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12연기와 연기공식은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처음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연기공식을 중국에서 한문으로 번역할 때 이것(A)과 이것(A1)의 관계를 이것(A)과 저것(B)로 바뀌어 번역하는 바람에 연기의 법칙성이 무너지고 연기사상이 관념화되고 우주생성의 법칙으로 오해되기 시작하였다. 

 

연기공식이 변질된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자면 첫째. 이것(A)과 저것(B)로 바뀌어 번역하는 바람에 연기공식이 12연기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법칙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것(A)과 이것(A1)의 관계가 A와 B의 관계로 되면서 연기의 순서가 무너졌다. 12연기에서는 식과 명색의 관계에서만 상호의존성이 성립하고 다른 각지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즉 ‘무명이 있으므로 행이 있다’는 성립하지만 ‘행이 있으므로 무명이 있다’는 성립하지 않고 ‘생이 있으므로 노사가 있다’는 성립해도 ‘노사가 있으므로 생이 있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A)과 저것(B)의 관계로 바뀌고 나서는 모든 경우에도 상호의존성이 성립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라는 식으로 연기법이 확장되면 A와 B에 '생물'과 '무생물', '집단'과 '집단' 심지어 '가치'와'가치'를 삽입하여 삼라만상의 의존성과 조건성을 설명하는 우주적인 연기법이된다. 이것은 모든 불교교리의 사상적 이론적 근거가 된다."(호진스님의 '성지에서 쓴 편지'106p)고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들어 이것(A)과 저것(B)에 상호 대응되는 단어들 즉, 음극과 양극, 선과악, 도둑과 경찰등을 대입하며 연기가 상호의존관계를 설명하는 사상인 것처럼 이해되기 시작했다. 몇해전 발표된 아소카선언이라는 부제를 가진 ‘종교평화선언’에서는 “연기적 세계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과 ‘저것’ ‘나’와 ‘남’은 서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연관된 존재입니다. ‘저것’을 부정하는 것은 ‘이것’ 또한 부정하는 것이요, 남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이 종교평화선언은 연기를 확대 왜곡함으로서 불자들의 반대여론에 부딪혀서 끝내는 선포되지 못하고 말았다. 

 

둘째, 12연기 고리가 가지는 객관성,필연성,불변성,조건성,순차성,인과성, 즉각성, 긴밀성이라는 특수관계성이 사라지게 되어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원리라는 본래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A와 A의 긴밀한 순서체계가 없어지니 지금여기에서 나의 수행과 연관시켜 사유하지 않고  그저  A와 B에 아무거나 대입하므로서 우주의 존재법칙으로 여기게 되었다. 연기의 이것(A)과 이것(A)이 가진 객관성(如法爾), 필연성(法不離如), 불변성(法不異如) 조건성(是隨順)의 법칙은 이것(A)과 저것(B)으로 바뀌면서 변질되고 확장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즈음 빠알리어를 직접 번역하는 이들도 이것(A)과 저것(B)으로 번역하여 그 오류의 전철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728x90

'잘못 가르치고 있는 것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설과 비불설 논쟁을 넘어서  (0)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