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의 죽음을 소신공양이라고 평가하는 덕분에 의식있는 불자들 혹은 지식인들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과 스님들이 느슨하게 연대하며 지속적으로 불교의 미래를 고민하고 토론해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승려 자승의 죽음에 대한 몇몇 페북 친구들의 글
1. ------------------
<자승, 제곱으로 남긴 업장>
자승自乘은 제곱이다. 저를 스스로 곱한 게 제곱이다. 자비를 곱한다는 이름을 가진 이도 있다. 승려 자승慈乘이다. 그가 스스로 죽었다. 절집을 태워 제 몸도 함께 살랐다. 삭발도 목욕도 없이 승려로서 세상 인연을 가혹하게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승려, 불자뿐 아니라 그 소식을 듣는 귀와 눈을 가진 사람들을 송두리째 참혹하게 만들고 있다. 스스로 택한 죽음에서 어느 것 하나 좋은 기별이 들려오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어떤 죽음은 죽음마저 탐욕이고 권력일 때가 있다. 죽음에 겸손이 없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다. 놀랍게도 그의 죽음은 무언가 과시하는 형세다. 두루 알다시피 살아서 세속 권력자보다 못하지 않는 권력을 탐하더니 죽는 행위에서도 도반들과 세상을 고려한 구석이 전혀 없다. 자기 죽음이 이 세상에 충격과 상처로 전달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꺼이 이러한 일을 자행했다. 한 생명이 끝을 맞는 일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지만 천하 권세에 올라타 만복을 향유하던 승려의 죽음으로서는 혀끝이 갈라지도록 퍼붓는 대중의 매리잡언을 들어도 서운하다고 할 게 없다. 이러한 항간 인심과는 달리 정작 절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다.
우선 절집에서는 그가 함부로 남기고 간 업장을 조금이라도 소멸케 하기 위해서는 소신공양燒身供養 운운하는 말부터 고쳐 잡아야 한다. 소신이란 생명을 지닌 자로서 이루지 못할 뜻이 있을 때 이를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약한 자의 마지막 실천일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종교 이전에 온전하지 못한 그릇된 생명관이다. 이마저도 힘없는 타인을 위하고, 공동체를 구하고자 때 가까스로 명분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승려 자승의 죽음 안팎에 대중을 도탄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뜻이나 오묘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제 몸에 불을 붙여 생명을 거두는 행위는 적어도 권세를 누린 자가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스스로 몸을 태우기에 앞서 절집들을 마구니 소굴로 만들고 주무르던 돈을 바쳤는가, 누리던 권력을 사부대중에게 돌려주었는가. 어떤 연유로 이러한 행위를 했는지 알 길도 없다. 이렇게 해서는 업장 소멸은커녕 저승길에 참혹한 광경과 지탄의 말이 더 두껍게 쌓일 뿐이다. 이것이 어찌 니르바나(열반)의 세계이겠는가.
한 생을 살면서 그는 수행자로서 본분보다는 집요하게 권력과 권력 사이에 거처하다가 이내 절집 최고 권력을 양손에 쥐고 현실 정치에까지 개입하면서 불교 퇴행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이름을 얻은 이래 하루도 권력 아닌 적이 없었다. 세상과 인연을 끝내는 순간까지도 그는 이를 성찰하는 말 한 마디가 없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편가름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는 수행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서도 삶과 죽음의 도리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여러 사람에게 두루 남겼다는 마지막 말에도 성찰보다는 부하들에게 하듯 지시와 의무를 적시해놓고 있다. 죽음 앞에서도 수행자가 아니라 권력자로서 언행이 지배하고 있다.
자승은 절집을 불싸지르고 자신을 태웠다. 이는 도량을 방화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런 죽음의 언어도, 이토록 단말마 같은 죽음의 행위도 일찍이 듣지 못했다. 생명과 죽음을 차별하고자 하는 뜻은 조금도 없지만 이처럼 반상식, 반생명, 반불성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파괴에 바탕을 둔 죽음은 한 치도 옹호 받아서는 안 된다. 이게 만약 소신공양이라고 한다면 절박한 경우에 이를 따라해도 좋다는 말과 같다. 절집 권력은 이 죽음을 미화하는 언설을 거두어 버리는 것이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첫 번째 자세다. 이러한 파탄 앞에 종교집단이 성찰이 아닌 다른 말을 꾸미는 것은 이 죽음을 다시 권력화하여 재구성하는 일이자 대중에게 저지르는 커다란 죄다.
승려 자승은 자기 이름이 뜻하는 자비를 곱하기는커녕 불교와 무관한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제곱하는 가해를 하고 떠나갔다. 기운 옷과 구멍난 발우를 전수하지는 못할망정 무책임하게도 짊어지기 어려운 짐을 세상에 떠넘기고 가버린 것이다. 불에 탄 절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겠지만 사람들 가슴에 저지른 모진 행위는 다비를 치러도 불에 다 타지 않은 채 이 세상에 먼지가 되어 오래 떠돌 터이다. 업장이 제곱으로 남은 끔찍한 죽음이다. 절집 사람들에게서 화두를 타파하듯 성찰 언어가 터져나오길 깊이 비손한다.
서해성 페북에서
2. ---------------'
망한 한국불교 확실하게 보여 준 자승 중의 죽음.
분신자살!
어찌 그렇게 허접스럽게 가셨을까? 진정 수행자답게 가실 수는 없었을까.
내 종교가 불교지만 나는 자승이라는 중의 죽음에 애도할 수 없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어디에도 소신공양을 말씀하신 적이 없다.
거대 종단 총무원장까지 지냈으면, 대의 명분 하나는 들고 불 속으로 들어가야, 이생 지은 죗값이라 여기겠지만, 분신자살한 승려의 죽음 앞에 눈물짜는 불교도들을 보며 내 종교는 결국 이렇게 망해 간다는 생각뿐이다.
누가 자승 중의 죽음을 소신공양이라 하는가? 사기치지 마라!
한국불교가 망하고 있는데도, 악어의 눈물에 가려져 망하는 줄 모르고 있으니, 하늘을 삼킬 태고 보우 국사의 선풍 소식이 온들 알기는 하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매일매일 죽고 싶어, 목매달 밧줄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운동장을 메운다. 매일매일 죽고 싶어 죽을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넘친다.
머리 깎은 중이 사람 살리는 일에 일생을 살아도 부족할텐데, 자신의 몸을 함부로 버리다니, 그것이 오늘날 불교라면 볼장 다 본거다ㆍ
밧줄을 넣고 다니는 사람중에, 이참에 나도 가야겠다는 이가 있으면, 불교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그것이 총무원장까지 한 중의 마지막 모습이라 말인가ㆍ조계종은 감히 수행자니 대종사니 대중들을 기만하지 마라?
2500년 동안 법상(法床)에 앉아 설한 인과(因果)가 뭐냐 묻는다면 또 뭐라 답할 것인가?
머리 깎은 중들이 세상을 속여도, 인과는 비껴갈 수 없으니, 시시비비 분별하지 말고 멍청히 살라 할 것인가?
답답하다.
한국불교 망했다고 밤새 곡(哭)이나 하면 체증이 내려갈까. 그러기에는 산중 날짐승 들짐승 잠 깨우는 것도 미안하고, 숨이나 쉬자.
김행수 페북에서...
3. ---------------
'하도 궁금해서 물어본다'
오늘자 「경향신문」을 보니, 며칠 전 자살한 자승이란 승려가 자신의 제자 네 사람에게 ‘탄묵, 탄무, 탄원, 향림 각자 2억(원)씩 출연해서 토굴을 복원해주도록. 2025년까지 꼭 복원할 것’이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겨 화재로 소실된 칠장사를 복원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는 ‘토굴’은 ‘土窟’이다. 국어사전에는 ‘땅을 파서 굴과 같이 만든 구덩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자승이란 승려가 휘발유를 뿌리고 자신의 몸을 태워 자살을 하면서 절의 건물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하더라.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 건물은 칠장사 요사채로 알고 있는데, 이건 토굴이 아니다. 토굴은 내가 인터넷에서 가져온 사진처럼 땅굴인 것이다. 이런 땅굴을 복원하는 데 무슨 제자들이 8억 원이나 낸다는 것인가? 또 스님은 무소유 아닌가, 무슨 2억이나 되는 현금이 있다는 것인가?
죽고 싶으면 그냥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생을 마감할 것이지, 무슨 멀쩡한 건물에 불을 지르고, 남은 사람들에게 8억 원이나 내어서 자신이 태워먹은 건물을 ‘토굴’ 운운하며 다시 지으라고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 보고 배울까 두렵다.
더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자승이란 승려는 이미 절에 불을 질러 자신의 몸을 태워버렸는데, 오늘 용주사에서 다시 다비식을 했다고 한다. 다비식이란 시체를 화장하여 유골을 거두는 의식이 아닌가. 그러면 두 번이나 불길에 들어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이건 너무 잔인한 짓 같다. 불교는 원래 자비(慈悲)의 종교가 아닌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정부에서는 별다른 명분도 없이 남의 절에 불을 질러 자살을 한 승려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준다는 것이다. 어디서 들으니 ‘本來無一物’이라는 말도 있던데, 자살한 승려에게 훈장이 무슨 소용인가? 자기 몸도 초개(草芥)처럼 태워 없앤 사람에게! 정말이지 요즘 대한민국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구나.
강명관 페북에서...
4. ----------------
소신공양은 얼어죽을.
몸을 태워야 소신공양이지 죄없는 절간 (심지어 문화재급) 홀랑 태우고 제자들 돈으로 다시 세우라며 죽을 때까지 돈지랄하고 간 정치색 짙은 권승의 방화+분신자살 사건이 무슨 소신공양이냐구. 그리고 제자들의 그 돈은 다 어디서 왔나? 무슨 2억, 3억이 20만, 30만원쯤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조계종의 금전감각 자체가 이 종단이 지금 심각하게 문제 있다는 증거다.
그걸 보고 자화장입네 신도들에게 경종을 울렸네 거룩하네 눈물흘리는 조계종은 정말 대오각성해야 한다. 죽은 권승이 놓고 간 권위의 한자락을 나눠먹으려는 모습으로밖에 안 보인다.
Jay Tak 페북에서-
5. ......................
박정희 죽고 서울의 봄이 왔었다지만 박정희보다 더한 놈 나타나 만백성을 짓밟았으니, 잠깐 온 봄은 봄이 아니라 긴 겨울의 시작일 뿐이었다.
자승 죽고 조계종의 봄이 올 수도 있지만 자승보다 더한 놈 나타나 백성의 신앙을 짓밟을 수 있으니,(이미 그 조짐이 보임. 소신공양이 아닌 것을 소신공양이라고 미화하는 짓은 자승의 추한 권력을 그대로 인수하여 행사하고자 하는 사악한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것) 봄이 오더라도 겨울 채비를 해야 한다.
사이비 목사들이 다 죽고 네가 너를 다 뒤집어도 기독교의 봄이 오긴 아직은 멀었으니 긴 겨울을 걸어가는 얼어붙은 발들이 불쌍할 뿐이다.
<頌>
방방곡곡 여, 저, 빌~빌 돌아다니며
사람과 사람냄새에 실컷 취했다
이제라도 좁은 문 닫고 큰 문 열어
아주 작은 나에게로 돌아간다
김주대 페북에서
6...............................
<어떤 죽음에 대한 찬사>
선인이든 악인이든 자기가 지은 업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는 것이기에 죽은 뒤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기묘한 죽음을 다루는 조계종단의 행태가 죽은 자의 행적과 죽음의 모습만큼이나 기묘하기 짝이 없다.
1. 소신공양
여러 장의 유서가 발견되었지만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그럴만한 합리적 의심이나 타당성조차 없어 세간의 어두운 의심과 추측만 무성하고 수사결과도 발표되지 않았다.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소신공양이라니?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에 생사를 스스로 선택했다? 깨달은 사람은 그렇게 죽지 않는다. 모든 번뇌를 소멸한 아라한은 스스로 죽을만한 그 어떤 탐진치도 없다.
2.죽음의 방식
일반사람이 분신을 하더라도 집안에 들어앉아 자기 집을 불태우지는 않는다. 그것도 깨달았다는 부처가 대중이 거처하는 요사채를 몽땅 불태우면서 소신공양을 한다?
3. 유서의 내용
한국 불교 대표종단에서 총무원장을 두번씩이나 한 사람의 문장이나 맞춤법은 제쳐두자.
상좌인지 상자인지하는 제자들을 거명하며 2억씩의 거금을 각출하여 자기가 불태운 요사채를 복원시키라고 했다. 참으로 물질과 금전에 대한 개념이 놀랍기 짝이 없다.
평생 등꼴빠지게 밥벌이를 한 사람도 2억이 아니라 당장 몇 백도 선듯 내놓기 어려운데, 무소유를 실천하는 비구라는 자들이 억단위 돈을 동네 개이름부르듯 하는 저들의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그것을 무슨 거룩한 유지라고 버젓이 내놓고 미화하는 조계종단의 무개념과 미련함과 탐욕은 또 어떠한가?
4. 임종게
선의 경지라고는 근처에도 간적이 없는 사판승의 허접스럽기 짝이없는 임종게라는 것을 유서와 별도로 공개하고, 그것도 평소에 써 놓은 것을 임종게라고 하니 소가 웃을 일이다.
5. 깨달은 부처
총무원장은 그가 '깨달은 부처'라고 했다. 깨달았는지의 여부는 부처님만 알 수 있다. 총무원장은 자승을 부처로 만들고 스스로도 부처를 자처하고 있다.
무덤 앞에 송덕비를 세우지 않아도 죽음에 대한 평가는 세상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며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종교인은 더욱 그러하다.
이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자의 기묘한 죽음을 미화하여 신화를 만드는 자들은 틀림없이 그 신화를 내걸고 또 다른 자신들의 세상을 구축하려는 자들일 것이다.
권승과 타락승들의 부끄러운 행태는 또한 재가불자의 부끄러움으로 돌아온다. 그렇찮아도 힘든 세상에 종교가 위안이 되기는 커녕 더욱 힘들게 만든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지혜없는 믿음은 맹신이고 믿음없는 지혜는 교만이다.
남상욱 페북에서
7.-------------
소신공양이라 함은 모름지기 존재를 불살라 나 아닌 그러나 분리되지 않는 존재의 존엄을 지키는 것일 터, 자연과 민중의 고통을 감싸는 지극함이 아니고선 입에 담을수 없는 거룩한 일.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을 사회에 불만이 있는 한 젊은 승려의 일탈로 폄하했던 자승의 조계종단은 우리에게 염라대왕이 왜 존재하는지 일깨워 주지 않았는가?
지옥불에서 하나도 건질 것이 없는 욕망으로 가득찬 어리석고 무지한 중들, 입술에 기름 바르고 따신 방에서 보신하며 한 세상 편히 살아가는 것을 두고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겠다만, 더는 민폐 끼치지 말고 입 다물고 살라.
인과응보의 다른 표현이 자승자박 아닌가?
정호 페북에서
8.-------------
소신공양..이라니
개인의 일탈을 무마키 위해
절간을 태우면서까지
소신공양을 하다니..
그리고
상좌들에게 25년까지
2억씩 갹출해서 절을 복원하라는 유서까지..
참으로 어이없는 분신이다.
조계종이 나서서 소신공양이니 뭐니하며
장례를 치른다니 어이없어도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행보다.
소신공양의 참의미를 알고 내뱉는 소리인지..
등신불이란 단편소설에서 느꼈던 경외감이
싸그리 무너지는 느낌이다.
탁발하며 어렵게 수도를 하는 스님들도 많지만,
속세에 물들어..
사대부중과 노인들이 주머니돈 모아 시주한걸로
외제차로 떵떵거리고.. 목에 힘주어 어깨 드높이는
이런 위압과 고압적인 종교 성직자는 반성해야 한다.
지금 자신의 번뇌 욕정.. 등으로
더럽혀졌다면.. 나서서 행동하라..
소신고양으로.. 절 태우지말고 마당한복판에서..
섣불리.. 땡중으로 불리기 전에..
에구 한심타 못해 몇자 적는다.
불교를 믿는 신도지만 이건 아니다싶다..
김재형 페북에서
9.-------------
악해야 잘 사는 세상?
다른 건 다 모른다쳐도 명백한 방화범을 소신공양 입적이라 하는 것과, 소신공양 입적했다면서 또 다비식을 한다는 불교계의 무리...
뭐? 국민훈장 무궁화장까지 추서한다고?
모략과 협박, 갖은 수단을 동원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지키거나 얻어낸 것을 성공이라 말하고 승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버젓이 잘 사는 세상이다.
이런 부류들의 공통점은 쟁취의 권력을 누리는 듯하지만 이미 사람 취급 받지 못하고, 역사의 시간은 결코 묵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무시하고 산다는 점이다.
ㅡ사후는 알바 아니야, 지금 누리면 돼. 합류하지 않는 것들은 하잘 것 없는 것들이니 무시하고 억압하면 되고 비겁하고 영악한 것들은 다 힘 있는 쪽으로 붙게 돼있어.ㅡ
이런 사고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부류의 삶의 방식이 이해 불가하다. 그들의 무리가 커지면 역사가 다르게 써질 줄로 믿는 데서 오는 행위겠다. 자승의 유서 내용 중, 누구누구 중을 호명하여 몇 억씩 내어 칠장사 요사채를 복원하라 했단다. 무슨 중들이 돈이 그리 많은지 그것도 의문이다. 호명된 중들의 돈은 그보다 훠얼씬 많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시사하는 꼴 아닌가. 그것도 자승의 영향으로 소유하게 된 돈이라는 것쯤은 유추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 무리는 한정되고 국민은 무한하다.
아무리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현세중심주의라 할지라도 인간의 악이 문명의 발달 속도만큼 증강되는 것 같다. 악랄한 인간들 천지다.
지지난 주 <서울의 봄>을 보면서 두 가지를 확인했다.
분노는 시간을 타지 않는다는 것과
악랄한 과거는 까발려져서 일생 비천한 욕을 먹고 살고, 죽어서도 사람 취급 못 받는다는 것.
얻고 누린 것은 짧고 오욕은 길다.
현재 전두환 학살자는 죽어 묻힐 곳이 없다.
2021년 11월 23일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져 숨진 전 씨의 유해는 현재 연희동 자택에 임시 보관 중이다. 전 씨 유족은 파주 모 지역의 땅을 가계약했으나, 파주 민관정은 전 씨 유해 안장을 격하게 반대하고 있다.
최광임 페북에서
10.-------------
조계종 총무원은 눈뜨고 살아가고 있는 건강하고 건전한 대중 일반을 우롱(愚弄)하는 죄를 범하면 안 된다.
조계종은 발표하기를 "자승 스님은 소신공양, 자화장을 하심으로서 모든 종도들에게 경각심을 남기셨다"
넌센스고 억지스럽고 무리(無理)다.
조계종 총무원은 일명 '자승'을 중(僧)으로 보지 않는 다수 시민들의 '눈'도 의식해야 한다. 조계종과 한국 사회 불가(佛家)에 악폐(惡弊)를 끼친 자가 바로 자승이다.
마지막까지 멀쩡한 절의 요사채를 불태우고 자살한 자승의 영향 아래 있는 조계종 총무원 처지라지만 '함부로 막하는 거' 아니다.
'큰 스님'? '소신 공양'? 입적'? '조문'? '분향소 마련'? '영결식'? '다비'? '장의위원회'?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서 장례를 엄수'?
전부 가당치 않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자승이 어떤 행적이었는지 조금만 살펴,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만 좀 해도 얼마나 불가에 부끄러운 짓을 범했는가? 대중 일반의 삶에 비추어도 도저히 종교인, 불가인의 삶이라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지 않은가?
매일매일 고난의 삶을 살고 있는 대중 일반을 염두에 둔다면 자승의 죽음은 조용히 빠르게 처리해야 옳다. 민폐(民弊)를 끼치면 안 된다. 이 죽음은 조계종 내부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의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만 마땅한 것이다. 드러내고 널리 알릴 것이 전혀 아니다.
김상수 페북에서
11.-------------
2015년 경 자승 총무원장과 그 일파의 비리를 폭로한 원고를 책으로 엮어내려다 중도포기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출판을 포기했는데, 아마도 사법 리스크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원고를 보면 조계종 실세들을 비호하는 검찰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와 계약서 쓰면서 명예훼손 등으로 문제가 될 때는 변호사 비용을 어찌해야 할지 서로 고민하기도 했다. 사찰을 불지른 남자 자승을 보며 당시 원고가 떠올랐고, 그 중에 몇 개의 소제목을 적어 보았다.
이런 땡중들을 '스님'이라 부르는 게 맞나? 묵묵히 수행하는 스님들 속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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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파 승려가 장악한 조계종
조계종이 너무 썩어서 할복을 하거나 혀를 잘라야 하는 상황
적광스님 폭행사건 -승복 찢어버리고 팬티만 입힌 채 폭행 -자승 원장 지시에 의한 폭행이라고 확신
자승- 절에 다녀왔다고 2차 안 가려던 아가씨와 000, 16명의 유명 스님과 상습 도박했다고 자수한 장주 스님
-장주스님, 불교가 망할 것 같아서 도박 자수
-검찰은 16명 모두 무혐의 처리
음주 성추행, 막가는 총무원장 상좌들
조계종 도박파 - 필리핀 파, 마카오 파, 티니안 파, 라스베이거스 파
공직 사퇴한다던 절도범 00스님은 동국대 이사장까지 올랐고
범어사 석탑 몰래 빼돌린 00 스님도 종회 의원 당선
골프채 승려를 동국대 감사, 내장사 주지에 임명한 자승 총무원장
백양사 도박사건 후 손석희 시선집중에서 화투가 치매 예방에 좋다고 말한 정념 스님
조계종의 수행가풍은 주지육림(酒池肉林)?
1985년 간통사건으로 구속됐던 00 승려가 동국대 이사
-간통했으면 환속하거나 산 속에서 참회하며 도를 닦을 일이지
자승 도박장 개설-총무원장 박탈해야
MB하수인 자승-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쫓아내
자승 총무원장- 4대강반대 소신공양 한 문수 스님 장례식을 조계사에서 못 하게 해.
자승 바람막이 역할하는 진보진영의 00스님.
그런데 자승은 근래 왜 머리도 안 깍고 수염을 기르고 다닌 걸까?
자승이 사라진 조계종 과연 자정이 가능할까?
최진섭 페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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