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성운(聲均) 또한 악(樂)의 성운과 서로 비슷한 것이다. 대체로 성과 운이 서로 다르니, 성은 곧 글자의 소리이고 운은 글자의 소리를 고르게 하는 것이요 글자의 소리가 아니다.육서(六書)의 형성(形聲)이 곧 글자의 소리가 있게 된 처음인데, 글자의 소리가 있는 데는 한 가지 소리에만 그칠 뿐이 아니다.
일로 이름을 삼고 비유를 취하는 것이 서로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소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니, 글자의 소리는 다른 것과 특히 달라서 형(形)으로 소리를 겸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을 떠나서 소리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형을 떠나서 소리를 말한다면 이는 글자의 소리가 아닌 것이다.
강(江)의 소리는 물로써 공으로 소리가 나기[以水工聲] 때문에 강의 소리가 된 것이고, 하(河)의 소리는 또한 물로써 가로 소리가 나기[以水可聲] 때문에 하의 소리가 된 것이니, 비록 강하(江河)와 소리를 같이하는 소리일지라도 형의(形義)를 떠난 경우는 곧 강하의 소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고쌍반(古雙反)으로 강의 소리를 삼고, 호가반(乎哥反)으로 하의 소리를 삼고 있는데, 이는 형(形)을 떠나서 소리를 만든 것이니, 어떻게 강(江) 자와 하(河) 자의 자성(字聲)이 될 수 있겠는가. 이는 형성(形聲)의 고의(古義)에 있어 다만 서로 맞지 않는다는 정도로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손려(孫呂)등 제인(諸人)이 비록 성운을 전한 공은 있으나, 소리의 혼동되고 효란스러움은 너무나도 크게 잘못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사람들은 부득불 이것을 준용(遵用)하여 마치 글씨에서 예서(隷書)나 해서(楷書)처럼 여기고 있다. 그러나쌍성(雙聲)과 첩운(疊韻)은 바로 소리를 고르는 것이요 또한 글자의 소리는 아닌데, 지금은 또 이 쌍성과 첩운을 합쳐서 반절(反切)로 삼고 있으니, 이것은 더욱이나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질려(蒺藜)를 자(茨)라 하고폐슬(蔽膝)을 필(韠)이라 하는 경우를 보면 마치 옛날에도 반절(反切)이 있었던 것 같으나, 이는 또한 뜻으로 소리를 만든 것이니, 아무 의미도 없이 강(江) 자를 고쌍반(古雙反)으로 하고 하(河) 자를 호가반(乎哥反)으로 하여 강과 하의 소리로 삼는 것과는 같지 않다. 그러니 지금의 반절을 가지고 옛날의 반절 또한 이와 같이 반절한 것이 있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바라문(婆羅門)에서 나온 성음만 있고 뜻이 없는 자모(字母)에 이르러서는 또 더더욱 천착하여 옛 성인의 육서(六書)의 학문을 모조리 견(見)ㆍ계(溪)ㆍ군(群)ㆍ의(疑) 가운데 윤입(淪入)시킨 것으로서 그 화(禍)의 맹렬함은 홍수(洪水)와 맹수(猛獸)보다 심한 것이니, 결코 중국의 형성자(形聲字)에 배합시켜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전인(前人)들이 모두 이것을 마치 과척(科尺)처럼 숭봉해서후(喉)ㆍ설(舌)ㆍ순(脣)ㆍ아(牙)ㆍ치(齒) 오성(五聲)은 천지 자연의 소리라 하여 감히 폐하지 않았다.至如字母。出之婆羅門。有聲無義者也。又有一節深於一節。古聖人六書之學。盡爲淪入於見溪群疑之中。其禍之烈。有甚於洪水猛獸。决不可以配之中國形聲之字也。而前人皆奉之如科尺。以爲喉舌唇牙齒五聲。爲天地自然之聲。不敢廢焉。
그런데 그 자연의 소리라고 한 말이 옳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옛 성인들이 소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죽(竹 관악기)이나 사(絲 현악기)를 가지고 소리를 살피었으니, 후ㆍ설ㆍ순ㆍ아ㆍ치를 가지고 소리의 근원으로 삼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비록 사람의 소리를 귀히 여긴다 하더라도 반드시 율(律)을 가지고 소리를 조화시킨 다음에 또한 사람의 소리를 말하는 것이니, 일찍이 소리만 가지고 귀천 상하(貴賤上下)를 구분한 적은 없었다.
또, 후ㆍ설ㆍ순ㆍ아ㆍ치 오성이 비록 자연의 소리라고는 하더라도 남쪽에 사는 사람, 북쪽에 사는 사람, 경토(輕土)에 사는 사람, 중토(重土)에 사는 사람, 청수(淸水)에 사는 사람, 탁수(濁水)에 사는 사람이 각각 그 소리를 달리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또 자연의 소리라고 한단 말인가. 그러니 단연코 자모(字母)를 중국의 글자에 통용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반절(反切)에 이르러서도 글자의 소리에 결부시켜 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떤 객(客)이 힐난하여 말하기를, “이 소리는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의 소리가 아니요, 또는 금수(禽獸)의 소리도 아니며 유독 사람의 소리가 아닌가.” 하므로, 나는 위연히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직 사람의 소리만은 소리로써 형(形)을 겸하는 것인데, 사람이 어떻게 소리를 형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즉 형은 소리 가운데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람의 소리는 유독 소리에만 통하고 형에는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글자의 소리는 워낙 신묘불측한 것이라, 사람의 소리를 가지고 얽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노니, 홍초당(洪草堂 초당은 홍방(洪榜)의 호)은 바로 대진(戴震) 문하의 고제(高弟)이고, 정소아(丁小疋 소아는 청 나라 정걸(丁杰)의 호) 또한 박아(博雅)한 선비였으나, 모두가 자모(字母)에 대해서 끝내 애착심을 끊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이었던가? 그리고 강진삼(江晉三) 또한 옛 성운학(聲均學)에 밝았는데도 오히려 자모를 가지고 말하였으니, 그도 옛 형성(形聲)의 정밀한 뜻에는 미진했던가?竊甞疑洪初堂是戴門高弟。丁小疋亦博雅之儒。皆於字母。終不得割愛何歟。江晉三亦明於古聲均之學。猶以字母爲說。其未盡於古形聲之精義歟
그러나 진씨(陳氏)ㆍ고씨(顧氏)ㆍ강씨(江氏)ㆍ대씨(戴氏)ㆍ단씨(段氏)ㆍ왕씨(王氏) 이래로는 성운학이 점차로 발명되어 자못 미진함이 없게 되었고, 또 공씨(孔氏)ㆍ장씨(莊氏)ㆍ장씨(張氏)ㆍ유씨(劉氏)의 저서는 서로 같고 다름이 복잡하기는 하나, 각각 서로 좋은 점이 있어 모두 일월(日月)처럼 높이 게시(揭示)하여 반드시 방침을 정해서 절충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다.自陳顧江戴段王以來。聲均之學。漸次發明。殆無餘蘊。又有孔氏莊氏張氏劉氏之書。同異紛綸。然各有好處。皆可以懸之日月。必有所以定針而折中者矣。
주-D001] 육서(六書)의 형성(形聲) : 한자(漢字)의 구성 및 활용에 관한 여섯 가지 종류로서 즉 상형(象形)ㆍ회의(會意)ㆍ지사(指事)ㆍ형성(形聲)ㆍ전주(轉注)ㆍ가차(假借)를 말하는데, 그중 형성은 곧 해성(諧聲)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두 문자가 결합되어 한 글자가 이루어진 경우, 반(半)은 형의(形義)를 나타내고 반은 음성(音聲)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주-D002] 손려(孫呂) : 삼국 시대 위(魏) 나라 손염(孫炎)은 글자의 반절법(反切法)을 지었고, 당 唐) 나라 때 손면(孫愐)은《당운(唐韻)》을 저술하였으며, 진(晉) 나라 때 여정(呂靜)은《운집(韻集)》을 저술하였고, 명(明) 나라 때 여유기(呂維祺)는《음운일월등(音韻日月燈)》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서는 누구를 지적한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주-D003] 쌍성(雙聲)과 첩운(疊韻) : 쌍성은 두 글자로 된 숙어(熟語)의 위아래 글자의 첫 자음(子音)이 서로 같은 것으로, 이를테면 ‘겸가(蒹葭)’ㆍ’름렬(凜烈)’ 따위를 이른 말이고, 첩운은 역시 두 글자로 된 숙어에서 두 자가 모두 같은 운(韻)을 지니는 것으로, 예를 들면 ‘소요(逍遙)’ㆍ’선연(嬋娟)’ 따위를 이른 말이다.[주-D004] 질려(蒺藜)를 …… 하고 : 질려는 납가새풀인데, 《이아(爾雅)》 석초(釋草)에 의하면 “자(茨)는 질려이다.”고 하였으므로, 마치 반절음을 쓴 것 같기도 하다.[주-D005] 폐슬(蔽膝)을 …… 경우 : 폐슬은 슬갑(膝匣)인데, 《이아(爾雅)》 석명(釋名)ㆍ석의복(釋衣 服)에 의하면 역시 “필(韠)은 폐슬이다.”고 하여 이 또한 마치 반절음을 쓴 것처럼 되었으므로 이른 말이다.[주-D006] 바라문(婆羅門)에서 …… 자모(字母) : 바라문은 곧 인도(印度)의 불교(佛敎)를 뜻함. 자모는 바로 한자(漢字) 발음(發音)의 기초가 되는 삼십육(三十六)의 자음(子音)을 표한 문자로서, 당(唐) 나라 말엽에 승(僧) 수온(守溫)이 서역(西域)에서 삼십육자모설(三十六字 母說)을 가져와 전파시킨 데서 비롯되었는데, 그 삼십육자모는 바로 견(見)ㆍ계(溪)ㆍ군(群)ㆍ의(疑)ㆍ단(端)ㆍ투(透)ㆍ정(定)ㆍ니(泥)ㆍ지(知)ㆍ철(徹)ㆍ징(澄)ㆍ랑(娘)ㆍ방(幫)ㆍ방(滂)ㆍ병(竝)ㆍ명(明)ㆍ비(非)ㆍ부(敷)ㆍ봉(奉)ㆍ미(微)ㆍ정(精)ㆍ청(淸)ㆍ종(從)ㆍ심(心)ㆍ사(斜)ㆍ조(照)ㆍ천(穿)ㆍ상(牀)ㆍ심(審)ㆍ선(禪)ㆍ영(影)ㆍ효(曉)ㆍ갑(匣)ㆍ유(喩)ㆍ래(來)ㆍ일(日)이다.[주-D007] 후(喉) …… 오성(五聲) : 송(宋) 나라 때 사마광(司馬光)이 삼십육자모설을 대단히 신봉하여 그의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에서는 후(喉)ㆍ설(舌)ㆍ순(脣)ㆍ아(牙)ㆍ치(齒) 오음을 취해서 견(見)ㆍ계(溪)ㆍ군(群)ㆍ의(疑) 네 글자는 아음(牙音)으로, 단(端)ㆍ투(透)ㆍ정(定)ㆍ니(泥) 네 글자는 설두음(舌頭音)으로, 지(知)ㆍ철(徹)ㆍ징(澄)ㆍ랑(娘) 네 글자는 설상음(舌上音)으로, 방(幫)ㆍ방(滂)ㆍ병(竝)ㆍ명(明) 네 글자는 중순음(重脣音)으로, 비(非)ㆍ부(敷)ㆍ봉(奉)ㆍ미(微) 네 글자는 경순음(輕脣音)으로, 정(精)ㆍ심(心)ㆍ청(淸)ㆍ종(從)ㆍ사(斜) 다섯 자는 치두음(齒頭音)으로, 조(照)ㆍ심(審)ㆍ천(穿)ㆍ상(牀)ㆍ선(禪) 다섯 자는 정치음(正齒音)으로, 영(影)ㆍ효(曉)ㆍ갑(匣)ㆍ유(喩) 네 글자는 후음(喉音)으로, 래(來)ㆍ일(日) 두 글자는 반설반치음(半舌半齒音)으로 각각 소속시킨 데서 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