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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분노를 일으키라고 선동하는 일은 부처님 법에 없다

아래 글은 조계종 종무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지금은 <어의운하>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성동거사의 글 입니다.


"조계종의 승려대회, 범불교도대회 등 이런 강공은 중앙종회를 장악하고 조계종을 쥐락펴락하는 최고 실세로 꼽히는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 일변도의 자승 스님 쪽 공세에 원행 스님을 비롯한 총무원 집행부도 곤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겨레신문 2022.1.6)  

그랬다. 늘 문제는 '이 사람'이다. 옛 조사께서 "명리승", "가사입은 도둑"(선가귀감)을 우려한 이유다. 총무원 집행부를 차마 무조건 비판할 수가 없다. 기울어진 구조를 넘어 수직화된 권력 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총무원 비판은 뒤에서 웃는 '이 사람'이 바라는 바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던질 수 있다. 종무 행정 구조에서 이를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어렵다. 총무원 행정 구조에서 자승의 입장을 관철하는 소수의 재가종무원들이 있고, 이들이 종무 행정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 벌써 오래된 마름들이다.   문화재관람료와 종교편향 문제는 종단의 종책 방향 속에서 물밑 작업으로 진행되고, 관철시켰어야 할 문제다. 특히 문화재관람료 문제는 외부로 터질수록 종단에 정서적 불리함이 있기에 오래 전부터 물밑 작업으로 진행했다. 내부 실무팀에서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풀어갔다. 지금 보니, 이게 작동하지 않은 것 같다. 당연히 이 문제는 정부 협상 실무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종책 부재다. 실무 책임을 맡은 재가 책임자를 징계할 사항이다. 

역량 없고,  종단 정치에 골몰하는 재가 실무책임자들이 엉뚱하게 자신의 책임을 동료 종무원의 징계를 운운하고, 외부 정치 문제로 넘기는 꼴이 그들의 주인인 자승 전 원장과 닮은 꼴이다.   외부와의 싸움은 늘 내부를 단속하게 만드는 정당성을 강제한다. 최근의 '걷기 순례 쇼'를 비판한 종무원의 징계 논의와 징계 촉구를 열심히 주장하는 이들도 바로 자승 전 원장의 마름들이란 소리가 들리다. 자신들의 종권 강화와 종책 실패를 감추기 위해 엉뚱하게 동료의 징계를 꺼내들고, 승려대회를 강행하는 것이다. 이 마름들은 자승 전 원장과 기득권으로 연결된다. 이런 기득권 세력들이 종단의 종무를 전체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구조, 아주 단단하다. 물론 자승 전 원장의 권력에서 기생하기에 가능한 구조이다. 

문제는 다시 자승 전 원장이다.  자승 전 원장은 왜 승려대회를 강행할까? 패권 강화를 위해 그가 잘 할 수 있는 거니까 하는 것이다. 그도 안다. 몇 가지 '쇼'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은 자신이 잘 하는 걸 한다. 스스로 밝혔듯이 평생을 '절 뺏기'의 호르몬이 물들었기 때문에 그가 익숙한 것은 이런 물리적인 행동들이다. 뭐든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하게 된다. 쩍벌과 도리도리가 잘 고쳐지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런 쇼를 잘 하니, 그냥 익숙한 것을 하는 것이다. 그 낡고 오랜 버릇, 고치기 힘들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쇼는 계속 버전을 바꿔가면 상영할 것이다.   

이 패권 강화의 방식 중, 문화재관람료, 종교편향 등의 주제는 쇼를 상영하는 좋은 장치가 된다. 문화재관람료는 각 교구본사 이해관계와 맞물리고, 종교편향은 기득권세력의 내부 통제용으로 사용되기 적절하다. 문화재관람료와 종교편향은 오래 전부터 종단 내부의 전략 방향이 존재했다. 정부와 물밑에서 밀고 당기고, 힘겨루며, 국민과 교단의 공공적 이익을 위한 방향을 만들어왔다. 자승 패권 체제에서 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담당부서인 기획실에서 이를 전체 관리하면서 사안을 미리 살피고, 제어하였다. 지금은 이게 없으니, 사전 조율과 제어를 하지 못한 것이다. 실무력이 이토록 무너진 것이다. 정책 생산력을 높이지 못하고, 쇼를 위한 실무와 패권 강화에 종무를 쏟은 탓이다.    승려대회와 종교편향은 종단의 종책 역량 실패의 귀결이다. 무너진 내부 종책 실무력을 다시 갖추고, 종책의 전문성과 실행력을 높이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또다시 문제는 계속 터질 것이다. 그때마다 승려대회를 한다고 교단 전체를 들쑤실 일은 아니다.   자기 허물을 감추고자 사부대중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키라고 선동하는 일은 부처님 법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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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월간 <해인> 편집장이자 승려시인 출신 도정스님 글입니다.

 

살다보면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이 흉보고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집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이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싸우고 다투며 약점을 잡아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인격의 사람은 혹시 내가 모르는 잘못은 없었던가 되돌아 보고, 상대방의 주장이 나온 이유를 곰곰히 살펴보고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을 고치려 애씁니다.

정청래 의원의 발언을 두고 요즘 대한불교조계종 종단이 정치적 시위에 돌입한 상황을 보면서 매우 우려스럽고도 소속 승려의 일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사찰문화재 관람료가 나름 정당성이 충분히 있음을 압니다만,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으며 문화재 관람료가 아니라 마치 사찰 땅을 밟고 지나가는 통행세로 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사찰문화재 관람료의 의구심을 덜어내지 못하는 많은 국민들의 인식의 책임이 단순히 국민과 일부 정치인에게만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계종 집행부가 국민의 의구심을 덜어내고 이해를 구하는 지속적 노력은 등한시하고 선거를 앞둔 시위와 실력행사에 올인한다면 불자들이 스님들에 대해 어떻게 인천의 스승으로 여기며 존경하겠습니까.

대한불교조계종이 언제부터 일개 정치인 한 명의 발언으로 뿌리까지 흔틀렸단 말입니까. 이익집단으로 비춰지지 않겠습니까?

스님들이 세속의 정치를 평할 수는 있어도 정치의 수렁에 뛰어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작금의 승려대회 계획은 정녕, 부끄러워 해야 할 행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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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불교저널>에 실린 칼럼입니다.

 

조계종이 1월 21일 ‘전국승려대회’를 연다고 한다. 정청래 의원의 ‘봉이 김선달’, ‘통행세’ 발언과 문화체육관광부의 크리스마스 캐럴 활성화 캠페인, 경기도 광주시의 천주교 성지순례길 등 현 정부 들어 이어진 종교편향과 불교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종교 편향과 불교 왜곡이 성행한다면 교법과 교단을 지키기 위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기와 방법, 수단이 적절한 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종단 내부의 일을 따지는 전국승려대회라는 초법적인 행위로 외부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 타당한지, 안거에 든 선방 대중까지 불러내 강행하는 것이 옳은지, 잇따른 변이 출현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것이 무책임하지는 않은지, 현 정부 들어 거듭됐다는 종교편향 사태의 책임을 임기 말, 그것도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두고 묻는 것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 전국승려대회를 강행함으로써 실리를 취하는 대신 더 큰 것을 잃는 것은 아닌지 엄중히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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