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용은 일아스님이 정리한것에다 제가 추가한 것입니다. 조금 부정확한 것도 있습니다.
석가모니(기원전 624~ 기원전 544년) 재세시에 왕성했던 마가다국은 이후 사슈나가왕조(68년통치), 난다왕조(24년통치),를 거쳐 마우리야 왕조 (136년통치)로 이어진다.
마가다 왕국
하리얀카 왕조 (131년통치)
기원전 544년 ~ 기원전 494년 빔비사라(초대 빔비사라는 부처님보다 일찍 죽었다)
기원전 494년 ~ 기원전 461년 아자타샤트루
기원전 461년 ~ 기원전 444년 우다야바드라
기원전 444년 ~ 기원전 440년 아누룻다
기원전 440년 ~ 기원전 437년 문다
기원전 437년 ~ 기원전 413년 나가다사카
마가다는 기원전 543년부터 413년까지 하리얀카 왕조에 의해 통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리얀카 왕조 시기에 마가다는 밧지와 앙가를 각각 정복하면서 대부분의 비하르지역과 벵골을 합병하며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결국 비하르, 자르칸드, 오리사, 서벵골, 동부 우타르프라데시, 그리고 오늘날 방글라데시와 네팔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빔비사라는 기원전 538년에 앙가 왕국을 정복함으로써 갠지스 강의 항행(航行)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아들인 아자타샤트루를 앙가의 총독으로 파견해 다스리게 하였다. 마가다 왕국의 동맹국들을 확보하기 위해 결혼 동맹을 자주 추진하였으며 코살라 왕국 출신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코살라 왕국이 지배하던 도시인 바라나시를 혼인 지참금으로서 할양받기도 하였다. 기원전 494년 경에 데바닷타의 사주를 받은 아자타샤트루는 앙가에서 마가다로 귀환한 후 빔비사라를 감금하며 왕위에서 몰아낸 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이웃 코살라의 왕이자 빔비사라의 처남인 파세나디는 즉시 카시 지방을 재정복했다. 아자타샤트루는 아버지인 빔비사라와 마찬가지로 불교와 자이나교 등의 신흥 종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리차비의 단결을 약화시키기 위해 3년 동안 신하를 지역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갠지스 강을 건너 공격을 시작하기 위해 아자타샤트루는 파탈리푸트라 마을에 요새를 건설했다. 불일치로 찢겨진 리차비는 아자타샤트루와 싸웠다. 아자타샤트루가 그들을 패배시키는데에는 15년이 걸렸다. 이와 동시에 마가다 왕국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기 위하여 고대 인도 중에서는 최초로 투석기를 군대에 도입하였으며, 기존의 전차에 낫을 달아 낫전차라는 신무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 신무기들을 이용해 리차비와 밧지 등의 36개의 소국들을 합병시켜 국력을 강화한 마가다 왕국은 당시 마가다 왕국의 경쟁국이었던 코살라 왕국을 공격하였으며 결국 기원전 476년에 코살라 왕국을 정복하는데 성공하였다. 기원전 460년경 아자타샤트루가 사망하자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우다야바드라는 아버지인 아자타샤트루가 건설한 신도시이자 당시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하던 파탈리푸트라가 마가다의 영토 중심지에 가까워 통치에 수월하다고 생각해 파탈리푸트라로 수도를 천도하였으며, 그 후 프라드요타 왕조가 지배하는 아반티와의 전쟁을 벌이다 기원전 444년에 사망하였다. 우다야바드라 왕 사후 마가다에는 왕의 계승권을 에워싸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 하는 몇몇 계승권 주장자가 있었기 때문에 일련의 암살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다. 기원전 413년에 당시의 재상(宰相) 샤이슈나가가 왕위에 오르면서 하리얀카 왕조는 막을 내렸다.
샤이슈나가 왕조 (기원전 413년 ~ 기원전 345년) 68년통치
마가다 왕국의 세번째 왕조인 샤이슈나가 왕조를 개창한 인물은 당시 마가다의 재상이었던 샤이슈나가로써, 그가 기원전 413년에 하리얀카 왕조를 몰아내고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샤이슈나가 왕조가 시작되었다. 왕위에 오른 샤이슈나가는 마가다의 수도를 옛 밧지의 수도였던 바이샬리로 천도한 후 밧사와 아반티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기원전 395년 샤이슈나가가 사망하자 샤이슈나가 왕조의 2대 왕으로 즉위한 칼라쇼카는 마가다의 수도를 다시 파탈리푸트라로 천도하였다. 칼라쇼카의 사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난디바르다나는 형제들과 함께 마가다 지역을 사실상 분할 통치하였으며, 난디바르다나의 사후 마가다의 왕으로 즉위한 마하난딘 왕이 기원전 345년에 마하파드마 난다에 의해 살해되면서 샤이슈나가 왕조는 막을 내렸다.
난다 왕조 (기원전 345년 ~ 기원전 321년) 24년통치
기원전 345년에 샤이슈나가 왕조가 권력다툼으로 몰락한 후 마하파드마 난다가 왕위에 오르면서 마가다 왕국의 네번째 왕조인 난다 왕조가 개창되었는데, 난다 왕조의 시조인 마하파드마는 마하난딘이라는 사람과 수드라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 1세기 그리스 출신의 로마의 역사가로 《알렉산드로스 전기》를 저술한 쿠르티오스 루포스의 기록에서는 이발사와 왕비 사이에서 난 아들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 두 기록 모두 난다 왕조의 시조인 마하파드마 난다가 하위 카스트 출신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이슈나가 왕조를 몰아내고 마가다 왕국의 권력을 장악한 마하파드마는 「모든 크샤트리아를 절멸시키고 유일한 왕으로써 통일할 것이다.」라고 선포하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십육대국 국가들을 전부 마가다 왕국에 합병시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리스인의 기록에서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대 인도는 파탈리푸트라 한 사람의 왕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난다 왕조 당시 마가다 왕국이 북인도 지역에 위치한 십육대국 국가들을 대부분 정복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즈음 펀자브 지역의 파우라바 왕국이 알렉산드로스 3세에 의해 정복되었을 때 파우라바의 왕 포루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난다 왕조가 보병 20만 명, 기병 2만 명, 전차 2000대, 전투 코끼리 3000마리 이상의 군대를 지닌다고 말하자 알렉산드로스 3세가 인도 침공을 중단하고 철수한 것으로 보아 난다 왕조 시대의 마가다 왕국은 당시 세계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던 국가로 보이지만, 기원전 321년경 사상가 카우틸랴의 보좌를 얻어 인도 북서부에서 거병한 찬드라굽타 마우리아에 의해 수도인 파탈리푸트라가 함락되면서 마가다 왕국은 멸망하였다.
마우리야 왕조 (136년통치)
1대왕 기원전 322년 ~ 기원전 298년 찬드라굽타(24년간 재위)
2대왕 기원전 298년 ~ 기원전 273년 빈두사라 (28년간 재위)
3대왕 기원전 273년 ~ 기원전 232년 아소카 (41년간 재위)
4대왕 기원전 232년 ~ 기원전 224년 다사라타 (8년간 재위)
5대왕 기원전 224년 ~ 기원전 215년 삼프라티(9년간 재위, 독실한 자이나교도로 수천 개의 사원과 마하비라상을 세움.자손을 남기지 않은 채로 사망)
6대왕 기원전 215년 ~ 기원전 202년 살리수카(13년간 재위)
7대왕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 데바바르만(7년간 재위)
8대왕 기원전 195년 ~ 기원전 187년 사타단반(8년간 재위)
9대왕 기원전 187년 ~ 기원전 185년 브리하드라타(2년간 재위)
숭가 제국
기원전 185년 ~ 기원전 151년 푸샤미트라 숭가
기원전 151년 ~ 기원전 141년 아그니미트라
... ~ 기원전 73년
* 메난드로스 왕 Menander (c. 343–291 BC)- 52에 죽음
*아소까 왕(304~232 BC )의 중요 연대기- 72에 죽음
빈두사라 302-274, 302년 즉위하여 274년 죽음.
아소까 출생 304, 빈두사라의 차남(배 다른 형이 한 명 있음), 웃자이니 총독으로 감 286 부왕 빈두사라가 총독으로 파견함. 아소까 18 세 때
아소까 결혼 286, 웨딧사에서 데위와 결혼, 아소까 18세
마힌다 출생 284, 아소까 20세
상가밋따 출생 282, 아소까 22세
아소까 왕위 계승 273, 빈두사라 왕 죽은 후 왕위 계승: 아소까 30세, 마힌다 10세,
아소까 즉위식 271, 왕이된후 4년이나 늦게 즉위식을 한 이유는 왕자들과의 다틈이었을듯, 아소까 즉위식이 부처님 열반 후 218년 되었을 때라고 계산하여 불기가 정해짐(제4차 세계불교도대회(1956년)에서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하고 양력 5월 15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결정, 석가모니의 생몰 연대는 기원전 624년∼기원전 544년으로 공식 채택) 아소까 34세, 마힌다 14세
즉위 4년 266, 아소까 왕의 동생 띳사 출가
즉위 5-7년 265-263, 3년 걸려 8만 4천 탑을 건설함(즉위 8년에 불교에 귀의했는데 귀의 이전에 8만 사천 탑을 세웠다는 것은 이상함)
즉위 6년 264, 아소까의 장자 마힌다(20세), 맏딸 상가밋따(18세) 출가- 상가밋따는 결혼까지하고 출가하였으므로 출가시기는 더 늦을듯
즉위 8년 262, 깔링가 전쟁과 정복(ㅂ13의 기록), 불교에 귀의, 아소까 42세
즉위 10년 260 , 불교 전향 후 1년 동안 그렇게 열심히 하지 못했다.(20여개의 ㅈㅂ(작은바위) 칙령에서 나오는 기록은 실제로는 12년에 새겼다. 전국의 256개 바위에 새겨졌을 것으로 봄), 칸다하르 이중 언어 바위칙령의 기록에 담마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로 결심("우리의 군주이신 삐야다시 왕은 왕위에 오른지 10년 후에 사람들에게 담마를 가르치기로 결심하셨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곳, 보드가야 방문(ㅂ(바위) 칙령 8 ) 아소까 44세, 마힌다 24세, 상가밋따 22세
즉위 12년 258, 비로서 칙령을 새기기 시작함(바위에 새겨진 칙령은 분량이 적고 뛰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읽는데 불편함) ① ㅈㅂ(작은바위) 바이라트 바위 칙령에서 자신을 '우빠사까'라고 부르고 다수 경전 이름을 언급 ② 처음으로 담마칙령을 새기도록 함(ㄷ(돌기둥) 6) '내가 왕위에 오른지 12년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 처음으로 담마칙령을 새기도록 하였다.' ③ 바라바르 언덕 동굴 칙령 I, II를 새김 "삐야다시 왕은 왕위에 오른지 12년에 이 니그로다 동굴을 아지위까 교단에 기증하였다." "삐야다시 왕은 왕위에 오른지 12년에 깔라띠까 언덕에 있는 동굴을 아지위까 교단에 기증하였다." ④ 유따, 라주까, 쁘라데시까들은 담마를 가르치 기 위해 5년마다 검열 순방을 한다.(ㅂ3) ⑤ 북소리가 담마의 소리가 되었다.(ㅂ4) ,아소까 46세
즉위 14년 256, 꼬나까마나 부처님 탑을 증축하였다. (니갈리 사가르 ㅈㄷ) 아소까 48세
즉위 17년 253, 3차 결집 개최 ① 왕은 목갈리뿟따 띳사 존자로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이단 비구들을 승단에서 추방함. 사르나트,꼬삼비, 산찌의 돌기둥에 "승가를 분열시키는 자는 비구든 비구니이든 흰옷을 입혀서 승원이 아닌 곳에 살게 해야 한다."는 칙령이 이때 만들어 졌을 것으로 추측. ② 목갈리뿟따 띳사 장로를 의장으로 3차 결집 개최, ③ 외국과 여러 지역에 담마 사절단 파견(ㅂ 13) ④ 마힌다가 스리랑카로 떠나는 길에 웨디사에 사는 모친 데위를 방문하고 스리랑카로 떠남, 아소까 51세, 마힌다 31세, 상가밋따 29세
즉위 18년 252, ① 사르나트 ㄷ, 산찌 ㄷ, 꼬삼비 ㄷ 을 새김 ② 즉위 19년 깔라띠까 언덕 동굴 II을 아지위까교에 기증 ③ 마힌다의 요청으로 동생 비구니인 상가밋따가 보드가야 보리수 묘목을 가지고 스리랑카로 가서 심고 비구니 승단을 개설함,아소까 52세
즉위 20년 250, ①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방문(룸비니 ㄷ) ② 꼬나까마나 탑을 증축하고 돌기둥 세움(니갈리 사가르 ㄷ) 아소까 54세
즉위 26년 244, 칸다하르(Kandahar) 델리미르뜨(Delhi-Meerut)델리또뽀라(Delhi-Topra) 람뿌르와(Rampurva) 라우리야난당가르트(Lauriya-Nandangarth) 라우리야아레라즈(Lauriya-Araraj)등에 다같이 1~6번의 칙령을 새김. 분량이 많고 뛰어쓰기를 하고 있어 칙령의 완성단계, 특이하게 델리미르뜨(Delhi-Meerut)에는 1~7번까지의 칙령이 있음.
① 아소까 규칙: 담마에 따라 정의로 통치(ㄷ2) ② 라주까들은 지방 사람들의 복지를 위함( ㄷ 4) ③ 지금까지 죄수들을 25번 석방함(ㄷ 5) ④ 모든 이에게 복지와 행복을 주기를 염원(ㄷ6) 아소까 60세
즉위 27년 243, 델리또뽀라(Delhi-Topra) 칙령에 사람들이 담마의 규정된 길을 따르게 되었다(ㄷ7)는 가장 긴 유일한 칙령으로 이것이 마지막 돌기둥 칙령, 아소까 61세
즉위 30년 240, 왕비 아상디밋따의 죽음 아소까 64세
즉위 33년 237, 띳사락카 왕비로 책봉됨 아소까 67세
즉위 35년 235, 띳사락카 왕비가 보리수나무를 죽이려 하다.아소까 69세
즉위 35년-37년 235-233, 띳사락카 왕비가 다른 왕비가 낳은 왕자 꾸날라의 눈을 해침
즉위 37년 232, 아소까 왕의 죽음(7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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