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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道家論辨牟子理惑論) 원문 해석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은 중국 한(漢)나라 사람으로 전하는 모자(牟子)가 당시 사람들이 불교에 가지고 있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쓴 글로, 일반적으로 『모자리혹론(牟子理惑論)』 혹은 『리혹론(理惑論)』으로 불린다. 개심사 소장 도가논변모자리혹론 목판은 1580년(선조 13) 가야산 보원사(普願寺)에서 개판된 것으로, 총5판 중에서 제1장 등에 해당하는 1판이 결판되어 현재 4판이 개심사에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동안 『도가논변모자리혹론』은 목판으로 간행된 사례가 매우 희소하며, 그 중 개심사 판본이 현존 유일본이자 가장 오래된 목판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理惑論


(懸吐譯解) 道家論辨 牟子 理惑論

                               五臺山 後學 金 呑虛 譯解


(모자(牟子)는 한(漢)나라 헌제(獻帝) 때 사람이다. 불도에 전념하였고, 아울러 노자의 글을 연구하여 내포하고 있는 현묘한 진리를 마치 술이나 물을 마시듯 하고, 오경(五經)을 거문고나 피리 다루듯 하였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 중에 모자를 가리켜 유가를 배반한 이단자라고 비난(非難)하는 사람들이 많자 침묵할래야 하지 못하고 드디어 이혹론(理惑論) 37篇을 지었다.)




1○ 有一儒士가 覽大藏經하고 問於牟子曰夫至實은 不華하고 至辭는 不飾이니 言約而至者는 麗하고 事寡而達者는 明이라 故로 珠玉은 少而貴하고 瓦礫은 多而賤하나니 聖人이 制七經之本이 不過三萬言이로대 衆事備焉이어늘 今佛은 經以萬計고 言以億數하니 非一人力의 所能堪也라 余以爲煩而不要矣라하노라

○ 한 유사(儒士)가 대장경(大藏經)을 열람하고 모자(牟子)에게 물었다.

“대저 지극한 실상(實相)은 화려하지 않고 지극한 말은 꾸밈이 없으니, 말은 간결하되 지극해야 빛나고 일은 적되 앞뒤를 꿰뚫어야 명쾌하다. 따라서 주옥(珠玉)은 적기 때문에 귀하고 기와조각이나 자갈은 많기 때문에 천한 것이니, 성인께서 제청하신 근본이 되는 7경(經) <6경〔시(詩)·서(書)·역(易)·춘추(春秋)·예기(禮記)·효경(孝經)〕에 논어(論語)를 합하여 7경(經)이라 한다.> 은 그 어휘가 3만 자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이제 불교는 그 경전의 수를 만(萬)으로써 헤아리고 그 어휘를 억(億)으로써 세니, 한 사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를 번거롭기만 하고 요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牟子가 答曰江海가 所以異於行者는 以其深廣也요 五岳이 所以別於丘陵者는 以其高大也라 山阜之高也에 跛羊이 凌其하고 涓流之深也에 孺子가 浴其淵이어니와 千里之驥는 不處園之中이요 呑舟之魚는 不游數之溪니라

○ 모자(牟子)가 대답했다.

“강과 바다가 길에 고인 물[行]과 다른 까닭은 그것이 깊고 넓기 때문이요, 5악(岳) <동악은 태산(泰山), 서악은 화산(華山), 남악은 형산(衡山), 북악은 항산(恒山), 중악은 숭산(嵩山)이다> 이 구릉과 구별되는 까닭은 그것이 높고도 크기 때문이다. 낮은 언덕 정도의 높이야 절름발이 양도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고 시냇물[涓流] 정도의 깊이야 어린애도 그 못에서 목욕할 수 있겠지만, 천리를 달리는 준마는 동사(棟舍)[마굿간] 안에 머물지 않고, 배를 삼키는 큰 고기는 몇 길 깊이의 시내에서 놀지 않는다.

○ 剖三寸之蚌하야 求明月之珠하고 探枳棘之巢하야 求鳳凰之雛하면 必難獲也리니 何者오 小不能容大也일새니라 佛經은 前說億載之事가 至於無始하고 却道萬世之要가 至於無終하야 盡十方三世하고 擧四聖六凡하니 生氣之本이요 修斷之末이라 其微를 不可握이며 其纖이 不可入이로다

○ 세 치 크기의 조개를 갈라 보름달 같은 구슬을 찾고, 가시덤불[枳棘] 속 둥지를 뒤져 봉황의 새끼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작은 것은 큰 것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경(佛經)은 과거로는 수억 년 전의 일을 설한 것이 시작이 없는 때[無始]에까지 이르고, 미래로는 만세(萬世)의 긴요한 일들을 설한 것이 마침이 없는 때[無終]에까지 이른다. 따라서 시방(十方)과 삼세(三世)를 다하고 4성(聖) <불(佛)·보살(菩薩)·연각(緣覺)·성문(聲聞)을 말한다> 6범(六凡) <천상(天上)·인간(人間)·아수라(阿修羅)·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을 말한다> 을 거론하니, 생기(生氣)의 근본이요 수행(修行)과 단증(斷證)의 지말이라, 그 미묘함을 잡을 수 없고 그 섬세함에 들어갈 수 없도다.

○ 佛悉彌綸其廣大之外하고 剖析其窈妙之內하사 靡不紀之하시며 靡不委焉이라 故로 其經이 卷以萬計하고 言以億數하야 多多益具하며 衆衆益富하니 此若臨河飮水에 飽而自足이라 焉知其餘哉아

○ 부처님께서는 그 광대한 [우주] 밖까지 모두 감싸고 그 오묘한 속까지도 모두 분석하여 기록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알지 못한 것이 없으셨다. 따라서 그 경전이 권 수로는 만(萬)으로써 헤아려야 하고 어휘는 억(億)으로써 세어야 하며, [경전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완비되고 [어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풍부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큰 강가에서 물을 마실 때 배가 부르면 스스로 만족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그 나머지까지 꼭 알아야만 하겠는가?






2○ 問曰佛經이 衆多하니 欲得其要而棄其餘인댄 直說其實而除其華니라

○ 물었다.

“불경은 너무 방대하므로 요지만 취하고 그 나머지는 버리고 싶다. 그러니 곧바로 그 본질만 설명하고 그 화려한 수식들은 없애라”.

○ 答曰日月이 俱明에 各有其照하고 舟車가 俱行에 各有其路하고 二十八宿가 各有所住하고 四百四藥이 各有所愈하고 狐는 備寒하고 은 禦暑라 孔子가 不以五經之備而復作春秋之筆削하시며 子游子張이 俱問一孝而夫子의 答之各異는 攻其短也시니 何棄之有哉아

○ 대답하였다.

“해와 달 모두 밝은 것이지만 제각기 그 비추는 대상이 있고, 배와 수레 모두 길을 가는 것이지만 제각기 그 길이 있다. 28수(宿) <중국 고대의 천문학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분류한 성좌(星座)이다> 는 제각기 머무는 자리가 있고 404약(藥)은 제각기 치료하는 병이 있으며, 여우털 외투는 추위를 막고 베옺은 더위를 막는다. 공자(孔子)께서는 5경(經)으로는 완전하지 않다고 여겨 다시 춘추(春秋)를 필삭(筆削)하셨으며, 자유(子游)와 자장(子張)이 똑같이 효(孝)에 대해 물었지만 공자의 대답이 각각 달랐던 것은 그들의 단점을 고쳐 주고자 함이었다. 어찌 버릴 것이 있겠는가”







3○ 問曰佛道가 至尊至大어늘 堯舜周孔이 曷不修之乎아 子가 耽詩書悅禮樂이어니 奚爲復好佛道하야 喜異術耶아

○ 물었다.

“불도가 지극히 높고 지극히 크다면 요(堯)·순(舜)·주공[周]·공자[孔]는 왜 [불도를] 닦지 않았는가? 자네는 『시경(詩經)』?『서경(書經)』을 탐독하고『예기(禮記)』?『악기(樂記)』을 즐거워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불도를 좋아하여 이단의 술(術)을 기뻐하는가?”


○ 答曰書不必孔丘之言이요 藥不必扁鵲之方이라 合義者從이요 愈病者良이니 君子는 博取衆善하야 以輔其身이니라

○ 대답하였다.

“글은 반드시 공구(孔丘)의 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요, 약은 반드시 편작(扁鵲) <전국시대의 명의(名醫)이다> 의 처방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치에 맞는 것은 따르고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양약이니, 군자는 여러 가지 훌륭한 것을 널리 취하여 자신을 보완한다.

○ 子貢이 曰夫子가 何常師之有乎아하니 堯事尹壽하고 舜事務成하고 旦學呂望하고 丘學老聃이라 四師를 比之於佛하면 猶白鹿之與麒麟이요 烏之與鳳凰也라

○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부자(夫子) <공자에 대한 존칭이다> 께 어찌 정해진 스승이 있었으랴’고 하니, 요임금은 윤수(尹壽)를 섬기고 순임금은 무성(務成)을 섬기고 단(旦) <주공(周公)의 이름이다> 은 여망(呂望ː태공(太公)에게 배우고 공구〔孔丘ː공자(孔子)〕는 노담(老聃)에게 배웠다. 그러나 이 네 스승도 부처님께 비교하면 흰 사슴을 기린에게 비교하고, 제비나 까마귀를 봉황에 비교하는 것과 같다.


○ 況佛은 德覆天地하고 福過河沙하사 神通相好가 不可思議之大聖이시니 焉能捨而不學乎아

○ 하물며 부처님께서는 덕(德)이 하늘과 땅을 덮고, 복(福)은 항하사 세계를 뛰어넘으며, 신통력과 상호(相好)가 불가사의한 대성인이시다. 어찌 [이런 분의 가르침을] 버려두고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4○ 問曰佛之三十二相과 八十種好가 何其異於人之甚也오 殆富耳之語요 非實之云也로다

○ 물었다.

“부처의 32상과 80종호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정도가 왜 그렇게 심한가? 아마도 듣기에만 좋은 말이요 사실대로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 答曰諺에 云호대 少所見이면 多怪라하니 堯眉는 八彩요 舜目은 重瞳이요 皐陶는 馬喉요 文王은 四乳요 禹耳는 三漏요 周公은 背요 伏羲는 龍鼻요 仲尼는 反宇요 老子는 雙柱라(又云日角月鉉이요 鼻有雙柱며 手把十文이요 足踏二五也라하니라) 此非異於人乎아 佛之相好를 奚足疑哉아

○ 대답하였다.

“속담에 ‘본 것이 적으면 괴상하게 여김이 많다’고 하였다. 요(堯)임금의 눈썹은 여덟 가지 색이요, 순(舜)임금의 눈은 눈동자가 둘이요, 고요(皐陶)는 말모가지요, 문왕(文王)은 젓꼭지가 넷이요, 우(禹)임금의 귀에는 구멍이 세 개요, 주공(周公)은 곱사등이요, 복희(伏羲)는 용의 코[龍鼻]요, 공자[仲尼]는 절구통 같은 머리[反宇] <공자의 정수리는 네 모퉁이가 솟아있고 중앙이 평평하며 도톰하다고 한다. 세세생생 겸허한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고 만물을 이롭게 한 증표라고 한다> 요, 노자(老子)는 인중이 두개[雙柱] <또 이르되 “일각(日角)이요, 월현(月絃)이요, 코엔 쌍주(雙柱)가 있으며, 손엔 십(十)자 문양이 있고, 발엔 二五[陰陽五行을 表함]의 문양이 있었다.” 고 하였다> 였다. 이들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는가? 부처님의 상호를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5○ 問曰沙門은 何以棄妻子捐財貨하야 苦行이 不異於禽獸也오

○ 물었다.

“사문(沙門)은 왜 처자를 버리고 재산을 버리며 짐승과 다름없는 고행(苦行)을 하는가?”

○ 答曰妻子財物은 世之餘也요 淸躬無爲는 道之妙也라 古人이 云호대 名與身이 孰親이며 財與命이 孰多오하니 故로 前有隋珠하고 後有虎豹하면 見之走而不敢取하나니 何也오 先其命而後其利也일새라

○ 대답하였다.

“처자와 재물은 세상의 잉여물(剩餘物)이요, 몸을 청정히 하여 하는게 없음[무위(無爲)]은 도(道)의 오묘함이라, 고인께선 말씀하시기를 ‘명성과 나의 몸 중에 어느 것이 더 가까우며, 재물과 목숨 중에 무엇이 더 나은가?’ <『노자(老子)』44장에 나온다>

라고 하셨다. 따라서 앞에 수주(隋珠) <수국(隋國)의 왕이 여행 도중에 등창이 난 큰 뱀을 만나 신하에게 명령해 약을 발라 주었다. 그 후 달밤에 야광주(夜光珠)를 물고와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가 있고 뒤에 호랑이나 표범이 있으면 [구슬을] 보고도 달아나고 감히 줍지 않으니, 무슨 까닭인가? 그 목숨을 먼저로 여기고 그 이익을 뒤로 여기기 때문이다.

○ 巢許는 棲巢木하고 夷齊는 餓首陽호대 舜公이 稱其賢曰求仁得仁者也라하니 不聞譏其無後無貨也케라

○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장자』「양왕편(讓王篇)」에 나오는 인물로 요임금의 스승인 허유에게 임금자리를 양위 한다는 말을 듣고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진천수에 귀를 씻었다. 허유의 친구 소부가 그 곳에 소 물을 먹이려 왔다가 그 광경을 보고서 더러운 물을 깨끗한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소를 몰고 기산 넘어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는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지만 순공(舜公)은 그 현명함과 훌륭함을 칭찬해 “인(仁)을 구해 인(仁)을 얻은 분이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후손이 없고 재산이 없었다고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말은 듣지 못했노라.”







6○ 問曰佛生夷狄之國하니 其法을 不可取也니라

○ 물었다.

“부처는 오랑캐의 나라에서 탄생했으니 그 법(法)을 취할 수 없다.”

○ 答曰子는 可謂見禮制之華而暗道德之實이며 窺炬燭之明而昧天庭之日也로다 昔에 大禹는 出西羌而聖哲하고 는 生中國而頑하니라

○ 대답하였다.

“자네는 가히 예제의 화려함만을 보고 도덕(道德)의 실상(實相)엔 어두우며, 횃불의 밝음만을 보고 하늘의 해는 보지 못한다고 하겠다. 옛날 우임금은 서쪽의 강족(羌族) 출신이었지만 성철(聖哲)하였고, 고수()는 중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리석은 바보였다.

○ 傳에 曰北辰之星이 在天之中하고 在人之北이라하니 以此觀之컨댄 漢地가 未必爲中而竺國이 未必爲域也니라

○ 전하는 말에 ‘북극성은 하늘의 가운데 있고 인간의 북쪽에 있다’고 한다. 이로써 살펴보건대 한(漢)나라 땅이 반드시 가운데가 되는 것은 아니요, 천축국(天竺國)이 반드시 변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 河承天이 曰五印度之境이 九萬餘里에 三垂大海하고 北背雪山하야 區分大國七十餘數라하며 成光子가 曰中天竺國은 東至震旦이 五萬八千里요 南至金地國이 五萬八千里요 西至阿遮國이 五萬八千里요 北至阿?國이 五萬八千里라하니 則知彼爲中國矣로다

○ 하승천(河承天)이 말하기를 ‘5인도(印度)는 넓이가 9만 여 리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으며 북으로는 설산(雪山)을 등지고 있는데, 큰 나라로 구분해도 그 수가 70여개 국에 달한다’고 하였다. 성광자(成光子)가 말하기를 ‘중심에 있는 천축국에서 동으로 진단(震旦ː中國)까지가 5만 8천리요, 남으로 금지국(金地國)까지가 5만 8천리요, 서로 아차국(阿遮國)까지가 5만 8천리요, 북으로 아뇩국(阿?國)까지가 5만 8천리이다’고 하니, 곧 저 천축국이 중심에 있는 나라[중국(中國)]임을 알 수 있다.

○ 梁傳에 云天竺은 夏至日日正中時에 行人이 無影하고 地色도 亦黃이라 故로 用曆五行之土德하야 色尙黃하고 數尙五라하니 則知彼爲正中國矣로다 又況道無彼此하고 性無東西耶아

○『양전(梁傳)』에 이르되 ‘천축에서는 하지가 되는 날 해가 중천에 올 때면 행인의 그림자가 없어지고 땅 색깔도 또한 누렇다. 따라서 역서(曆書) 오행(五行)의 토덕(土德)을 써서 색은 황색을 숭상하고 숫자는 5를 숭상했다’하니, 곧 저 천축이 정 중앙에 있는 나라가 됨을 알수 있다. 또 하물며 도(道)에는 피차가 없고 성(性)에는 동서가 없음에 있어서랴!”






7○ 問曰佛道는 重道德樂施與하고 嚴戒律尙淸儉이어늘 今沙門은 耽迷酒色하야 取賤賣貴하야 專行詐?하니 此乃世之大僞어늘 而佛道를 謂之無爲耶아

○ 물었다.

“불도는 도덕을 중요시 하고 베풂을 즐겨하며 계율을 엄하게 지키며 검소함을 숭상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문은 술과 여색에 빠져 천한 것[주색(酒色)]을 취하고 귀한 것[도덕(道德)]을 팔아서 오로지 속이는 짓거리만 행하니, 이는 곧 세상의 큰 거짓말이다. 그런데도 불도를 무위(無爲)라 하겠는가?”

○ 答曰工輪이 能與人斤斧繩墨이나 而不能使人巧也하고 聖人이 能授人法道禮義나 而不能使人行也하며 皐陶가 能罪盜人이나 不能使貪夫로 爲夷齊하고 五刑이 能誅無狀이나 不能使惡子로 爲曾閔하며 堯不能化丹朱하고 舜不能訓商均하니 豈唐虞之法道禮義가 不備哉아 其如惡人에 何也리오

○ 대답하였다.

“수레바퀴를 만드는 장인[공륜(工輪)]은 사람에게 자귀와 도끼와 먹줄과 먹통을 줄 수는 있으나 사람을 재주있게 만들지는 못하고, 성인은 사람에게 법(法)·도(道)·예(禮)·의(義)를 가르칠 수는 있으나 사람들이 실천하게 하지는 못한다. 고요(皐陶) <순임금의 신하였다> 는 도둑놈의 죄를 다스릴 수는 있으나 욕심쟁이를 백이(伯夷)·숙제(叔齊)가 되게 하지는 못하고, 5형(刑)으로 무례함을 벌할 수는 있으나 악한 자를 증자(曾子)·민자건(閔子蹇)이 되게 하지는 못한다. 요임금은 단주(丹朱) <요임금의 아들이다> 를 교화하지 못했고, 순임금은 상균(商均)을 훈계하지 못했으니, 어찌 요임금· 순임금[唐虞]의 법·도·예·의가 완전치 못했기 때문이겠는가? 그들이 악인인 것을 어찌 하리오!

○ 今儒士는 學通七經호대 而迷於財色하니 可謂六藝之邪淫乎아 河伯이 雖神이나 不能使陸地之人으로 沈溺하고 飄風이 雖疾이나 不能使湛水之波로 揚塵이니 當患人不能行이언정 豈可謂佛道有惡乎아


○ 지금의 유사(儒士)들은 학문이 7경(經)을 통달하고도 재물과 여색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6예(藝) <예(禮)·낙(樂)·사(射)·어(御)·서(書)·수(數)> 를 삿되고 음란하다고 해도 되겠는가? 하백(河伯) <(河水의 神)> 이 비록 신이기는 하나 육지에 있는 사람을 빠뜨리지는 못하고, 표풍(飄風)이 비록 빠르기는 하나 깊은 물의 물결에서 먼지를 날리게 하지는 못한다. 마땅히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근심해야지 어찌 ‘불도에 악(惡)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8○問曰古人이 云知者는 不言이라하며 又云大辯은 若訥이라하니 今沙門은 有至道호대 不能行之어니 何復談是非論曲直乎아 可謂德之賊也로다

○ 물었다.“고인께서 이르되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고, 또 이르되 ‘위대한 변론은 어눌한 듯하다’고 하셨다. 지금의 사문들은 지극한 도가 있어도 실천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시 시비(是非)를 말하고 곡직(曲直)을 논하는가? 가히 ‘덕(德)의 적(賊)’이라 하겠다.”

○ 答曰古聖이 何得不言이시리오 如其無言인댄 五千을 何述焉이리오 若知而不言은 可也어니와 旣不能知하고 又不能言이면 愚人也니라 故로 能言不能行은 國之師也요 能行不能言은 國之用也요 能行能言은 國之寶也라 三品이 各有所施하니 何德之賊乎아

○ 대답하였다.

“옛 성인[노자(老子)]께서 어찌 말하지 않으셨겠는가? 만일 말이 없었다면 5천자를 어떻게 칭술(稱述)했겠는가? 만일 알고도 말하지 않는다면 옳다고 하겠지만, 이미 알지도 못하고 또 말하지도 못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따라서 말은 잘하지만 실천에 능하지 못한 자는 국가의 스승이요, 실천은 잘하지만 말에 능하지 못한 자는 국가의 용(用)이요, 실천도 잘하고 말도 잘하는 자는 국가의 보물이다. 이 세 가지는 쓰일 곳이 각각 따로 있으니 어찌 ‘덕(德)의 적(賊)’이겠는가?”








9○ 問曰今之沙門은 徒當學辯達修言論이어니 豈復治性情履道德乎아

○ 물었다.

“지금의 사문들은 한갓 달변만 배우고 언론(言論)만 익히니, 어찌 다시 성정(性情)을 다스리고 도덕(道德)을 실천하겠는가?”

○ 答曰言語談論이 各有時也라 孔子가 曰可與言而不與言이면 失人이요 不可與言而與言이면 失言이라하시니 故로 愚智가 自有意하고 談論이 各有時하니 何爲當言論而不行哉아 今我非好辯也라 來問에 不得不對耳니 鐘鼓가 豈有自鳴者리오 加而後에 有聲矣니라

○ 대답하였다.

“언어(言語)와 담론(談論)이 각각 때가 있는 법이다. 공자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말을 나눌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은 것이요, 말을 나눌만하지 않는데 말하면 말을 잃은 것이다’고 하셨다. 따라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스스로 뜻에 있고 담론(談論)이 각각 때가 있으니, 어찌 말하고 담론할 때를 당해 실행하지 않겠는가? 지금 나도 말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대가 찾아와 묻기에 어쩔 수 없어 대답(對答)하는 것 뿐이다. 종(鐘)이나 북이 어떻게 스스로 울리겠는가? 북채로 두드린 후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10○ 問曰今之沙門은 潛形山谷하야 徒號福田하니 無益於世也니라

○ 물었다.

“지금의 사문들은 몸을 산골짜기에 숨기고 있으니, 다만 ‘복전(福田)’이라 불리기만 할 뿐 세상에 아무 이익(利益)이 없다.”

○ 答曰舜耕歷山에 恩不及州里하고 太公이 屠牛에 惠不逮妻子라가 及其現用也엔 恩流八荒하고 惠及四海하니 今之沙門은 度人之時가 不至耳니라

○ 대답하였다.

“순임금이 역산(歷山)에서 밭갈 때엔 은덕(恩德)이 한 주(州) 한 고을에도 미치지 못했고, 태공(太公)이 소를 잡을 때엔 혜택(惠澤)이 아내와 자식에게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들이 역량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엔 은덕(恩德)이 8방〔八荒〕에 흐르고 혜택(惠澤)이 사방〔四海〕에 미쳤다. 이처럼 지금의 사문들도 아직 사람을 제도할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11○ 問曰佛經이 深廣微妙云爾則子가 胡不談之於朝廷하며 論之於君父乎아

○ 물었다.

“불경(佛經)이 심오하고 광대하며 미묘하다면 자네는 왜 조정에 말하거나 임금과 부모에게 논하지 않는가?”

○ 答曰持孔子之術하야 入商之門하며 賚孟軻之說하야 詣蘇張之庭이면 功無分寸이요 有丈尺矣리라

○ 대답하였다.

“공자의 학문을 익혀 상앙(商)의 문(門)에 들어서고, 맹자[孟軻]의 가르침을 주고 소진과 장의[蘇·張]의 뜰에 나아가게 한다면 공(功)은 분촌(分寸)도 없고 비방만 장척(丈尺) <공훈과 비방의 양적 차이의 길이인 분(分)·촌(寸)과 척(尺)·장(丈)의 차이에 비유하였다> 이나 되리라.”








12○ 問曰佛道가 至尊至快인댄 云何世人學士가 多謗之云호대 其辭說이 廓落難用이요 虛無難信고 此何以也오

○ 물었다.

“불도가 지극히 높고 지극히 즐거운 것이라면 왜 많은 세상 사람과 학자들은 ‘그 말이 막막해[廓落] 쓰기 어렵고 허무(虛無)해 믿기 어렵다’고 비방하는가? 이는 무슨 까닭인가?”

○ 答曰至味는 不合於衆口하고 大音은 不悅於衆耳니라 咸池大章과 簫韶九成은 莫之和호대 鄭衛絃歌는 時俗이 聞之에 不期而手하나니 吾曾博見廣聞호니 有客이 歌於할새 爲下里之曲에 和者千人이러니 引商激角에 莫之應이라하니 此皆悅邪聲하고 不曉大度者也니라

○ 대답하였다.

“최고급 음식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맞지 않고 훌륭한 음악은 많은 사람의 귀에 즐겁지 않다. 함지(咸池)와 대장(大章)과 소소(簫韶) <함지는 황제의 음악이고, 대장은 요임금 음악, 소소는 순임금이 지은 음악의 명칭이다> 는 아홉 번을 반복해 연주해도 화답할 자가 없지만, 정나라 위나라의 현을 타며 부르는 노래는 세상 사람들이 듣고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친다. 내가 일찍이 널리 보고 널리 들으니 ‘어떤 나그네가 정 <초나라의 수도였다> 땅에서 노래할 때에 하리(下里) <향리(鄕里)의 별칭인데 후세 시골 마을의 유행가요를 하리(下里)라 이름했다> 의 곡을 부르자 화답하는 자가 천 명이나 되더니 상음[商]으로 끌어 들이고 각음[角] <상(商)·각(角) 모두 5음(音) 중의 하나이다> 으로 격양시키자 호응하는 자가 없더라’고 하였다. 이들은 모두 저속한 음악을 좋아하고 고상한 음률[大度]을 깨닫지 못한 자들이다.

○ 夫聞商而謂之角은 非彈之過也라 聽者之不聰矣며 見和璧而名之石은 非璧之賤也라 視者之不明矣니라 神蛇는 能斷而復續호대 不能使人으로 不斷也하며 靈龜는 發夢於宋元호대 而不能免余且之網하니

○ 상음[商]을 듣고 각음[角]이라 하는 것은 연주하는 자의 허물이 아니라 듣는 자의 귀가 밝지 못한 것이며, 화벽(和璧)을 보고 돌이라 하는 것은 벽(璧)이 천해서가 아니라 보는 자가 밝지 못한 것이다. 신령스런 뱀[神蛇]은 끊어져도 다시 이어질 수 있었으나 사람이 끊지 않게 하지는 못했고, 신령스런 거북이[靈龜]는 송나라 원군(元君)의 꿈에 나타날 수는 있었으나 여차(余且) 여차(余且)는 어부의 이름이다. 둘레가 5척이나 되는 흰 거북이가 여차의 그물에 걸리자 송원군(宋元君)의 꿈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타나 말하였다. “내가 재로(宰路)의 연못으로부터 청강(淸江)을 위하여 하백(河伯)의 처소에 사신으로 가다가 어부 여차에게 잡히게 되었다.” 원군(元君)이 꿈을 깨어 사람에게 점치게 하자 점쟁이가 말하였다. “이는 신령한 거북[神龜]입니다.” 원군이 여차를 불러 이를 헌납케 한 후에 또 의심이 생겨 점을 치자 ‘거북이를 잡아 점치는 것이 길하다’고 나왔다. 이에 거북이를 잡아 72찬(鑽)을 하였으나 유책(遺策)이 없이 영험했다고 한다. 따라서 중니(仲尼)가 희롱하여 말하기를 “신령스런 거북이는 원군(元君)의 꿈에 나타날 수는 있었지만 여차의 그물을 피하지는 못했고, 72찬(鑽)을 하여 유책(遺策)이 없었지만 내장을 잘라내는 환란을 피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 大道는 無爲라 非俗所見이니 不爲譽者貴며 不爲毁者賤이니라 是故로 用不用은 天也요 行不行은 時也요 信不信은 命也니라

○ 대도(大道)는 무위(無爲)라 세속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칭찬하는 자 때문에 귀해지지 않고 헐뜯는 자 때문에 천해지지 않는다. 따라서 쓰고 쓰지 않음은 하늘의 뜻[天]이요, 행해지고 행해지지 않음은 시운[時]이요, 믿고 믿지 않음은 운명[命]이다.”








13○ 問曰見博이 其有術乎아

○ 물었다.

“견해(見解)가 넓어지는 방법이 있었는가?”

○ 答曰由佛經也니라 吾未見佛經之時엔 惑甚於子하야 雖誦五經諸子百家나 適以爲華요 未成實矣러니 旣吾覩佛經之說하며 覽老子之要하고 還視世事하니 猶臨天井而窺溪谷이요 登崇岳而見丘?이라 自得道以來로 如開雲見白日이며 秉燭入冥室矣로라

○ 대답하였다.

“불경 덕분이다. 내가 불경(佛經)을 보지 못했을 때엔 미혹(迷惑)이 자네보다 심하여 비록 5경(經)과 제자(諸子)와 백가(百家)를 외었으나 호화롭기만 할 뿐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였다. 내가 불경의 가르침을 보고 노자(老子)의 요체를 살피고 나서 다시 세상사를 보니, 마치 바다[天井]에 임하여 계곡을 들여다 보고 높은산[嵩岳]에 올라 언덕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도를 얻은 이후로는 구름을 헤치고 밝은 해를 보며, 등불을 들고 어두운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노라.”







14○ 問曰子云佛經이 如江海하고 其文이 如錦繡라하니 何不以佛經으로 答吾問하고 而復引詩書하야 合異爲同乎아

○ 물었다.

“자네는 ‘불경은 강이나 바다와 같고 그 글은 비단결 같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왜 불경으로써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다시 『시경(詩經)』?『서경(書經)』을 인용하여 다른 것을 합해 같은 것으로 만들려 하는가?”

○ 答曰渴者는 不必須江海而飮이요 飢者는 不必待傲倉而飽라 道爲智者說이요 辯爲達者通이요 書爲曉者傳이요 事爲見者明이니 吾以子知其意일새 故引其事어니와 若說佛經之語하야 談無爲之要인댄 此는 對盲者說五色이요 爲聾者奏五音也라

○ 대답하였다.

“목마른 자는 반드시 강과 바다를 기다렸다가 마시지는 않고, 주린 자는 반드시 큰 창고[傲倉]을 기다렸다가 먹지는 않는다. 도는 지혜로운 자를 위하여 설하고 변설은 달변자를 위하여 통하고 글은 깨달은 자를 위하여 전하고 일은 식견이 있는 자를 위하여 밝히는 것이니, 나는 자네가 그 뜻 [질문자가 거론한 『시경(詩經)』·『서경(書經)』등의 뜻을 가리킨다] 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만일 불경의 말로 설명하여 무위(無爲)의 요체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봉사를 마주하고 5색(色)을 설명하고, 귀먹어리를 위하여 5음(音)을 연주하는 것이다.

○ 師曠이 雖巧나 不能彈無絃之琴이요 狐掖이 雖이나 不能熱無氣之人이니라 公明儀는 爲牛彈淸角之調호대 伏食이 如舊하니 非牛不聞이라 不合其耳矣니 轉爲蚊之聲과 孤犢之鳴이면 卽掉尾奮耳하야 而聽하리니 是以로 詩書는 理子而已니라

○ 사광(師曠) [춘추시대 진(晉)나라의 유명한 음악가이다] 이 비록 재주가 뛰어나다고는 하나 줄 없는 거문고를 연주하진 못하고, 여우털이 비록 따뜻하다고는 하나 죽은 사람을 따뜻하게 하진 못한다. 공명의(公明儀)는 소를 위해 맑은 각(角)의 곡조를 연주하였지만 업드려서 먹기만 하는 것은 여전 하였으니, 이는 소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귀에 알맞지 않았던 것이다. 방법을 달리해 모기 소리나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냈다면 곧 꼬리를 흔들고 귀를 쫑긋 세우고 저벅저벅 다가오며 들었을 것이다. 따라서 『시경(詩經)』·『서경(書經)』등으로 자네에게 설명했을 뿐이다.”








15○ 問曰夫人이 行迷則改路하고 術窮則反故어늘 吾子는 曷爲耽佛이 若是之甚也오 可不思歟아 吾曾遊于塡之國할새 與數沙門으로 相見하고 以吾事로 難之호니 皆莫對而辭退하며 多改志而移意러니 ?라 子獨難改乎여

○ 물었다.

“사람이 길을 가다 헤메게 되면 길을 바꾸고 술책(術策)이 궁하면 옛 것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인데, 그대는 불교를 즐김이 어찌 이다지도 심한가? 생각해 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나는 일찍이 우전국(于塡國)을 여행한 적이 있다.그때 여러 사문(沙門)을 만나 보았는데 내가 유교의 입장에서 힐난하자 모두들 대답하지 못하고 물러섰으며 많은 자들이 뜻을 바꾸고 생각을 달리하였다. 아, 자네만은 유독 바꾸기가 어렵구나!”

○ 答曰輕羽가 在高에 遇風則飛하고 細石이 在溪에 得流則轉호대 唯泰山은 不爲飄風의 動하고 盤石은 不爲疾流의 移하며 桃李는 遇霜而落葉호대 唯松栢之難凋矣니 子所見道人은 必學未洽見未博故로 有屈退耳니라 以吾之頑으로도 尙不可窮이어든 明道者乎아 子不自改하고 而欲改人하니 라 吾未聞仲尼가 追盜이며 湯武가 法桀紂矣로라

○ 대답하였다.

“높은 곳에 있는 가벼운 깃털은 바람을 만나면 곧 날리고, 시내에 있는 작은 돌은 물살을 만나면 곧 굴러가지만 오직 태산(泰山)만은 거센바람[飄風]에도 움직이지 않고 반석(盤石)은 세찬 물살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매화와 오얏은 서리를 만나면 잎이 떨어지지만 오직 소나무 잣나무만은 좀처럼 시들지 않는 법이니, 자네가 본 도인들은 반드시 학문이 흡족하지 못하고 견해가 해박하지 못했기 때문에 꺾이고 물러선 것이다. [그대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나조차도 오히려 굴복시키지 못하는데 하물며 도(道)에 밝은 자이겠는가? 자네 스스로는 고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치려고 하는구나. 아! 나는 중니(仲尼)가 도척을 따르고 탕왕과 무왕이 걸(桀)왕과 주(紂)왕을 본받았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노라!”









16○ 問曰道는 無爲라 皆一也어늘 子何以分別其異乎아

○ 물었다.

“도(道)는 무위(無爲)라는 점에 있어 모두 하나이다. 그런데 자네는 왜 그 차이를 분별하는가?”

○ 答曰玉石이 同에 頓이 爲之改色하고 朱紫가 相奪에 仲尼가 爲之歎息하시니라 日月이 非不明也로대 衆陰이 蔽其光하고 佛道가 非不正也로대 衆私가 掩其公하나니 是以로 吾分而別之하노라

○ 대답하였다.

“옥과 돌이 같은 광주리에 담겨있자 의돈(頓)은 안색을바꾸었고, 붉은색(正色)과 자주색(間色)이 서로의 자리를 빼았자 중니(仲尼)께서는 탄식하셨다. 해와 달은 밝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많은 그늘이 그 빛을 가리고, 불도(佛道)는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많은 사사로움이 그 공정함을 가려 버린다. 따라서 내가 나누어 구별하는 것이다.”








17○ 問曰神仙之術은 秋冬에 不食하고 或入室하야 累旬而不出하나니 可謂澹泊之至也라 其尊貴가 殆過佛道乎인저

○ 물었다.

“신선술(神仙術)에서는 가을과 겨울엔 음식을 먹지 않고, 혹은 방에 들어가 몇 십 일을 나오지 않기도 하니, 그 담백함이 지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존귀함이 아마도 불도를 넘어서리라.”

○ 答曰蟬之不食은 君子之不貴요 之藏穴은 聖人之不重이니라 孔子가 曰天地之性에 人爲貴라하시니 不聞尊蟬也케라 魯尊季氏하고 卑孔子하며 吳賢宰하고 賤子胥하니 子之所疑가 不亦宜乎아

○ 대답하였다.

“매미가 먹지 않는 것을 군자는 귀하게 여기지 않고, 이무기가 굴에 숨어 있는 것을 성인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공자께서는 천지간에 성명(性命)을 가진 것 중에서 사람이 가장 귀하다’고 말씀하셨지 매미나 이무기를 높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노(魯)나라에서는 계씨(季氏)를 높이고 공자를 낮게 여겼으며, 오(吳)나라에서는 태재(太宰) 비(?)를 어질게 여기고 오자서(伍子胥)를 천하게 여겼으니, 자네가 의심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지 않겠는가?”








18○ 問曰道士는 求術하고 佛氏는 食求道하니 何其異乎아

○ 물었다.

“도사는 벽곡()하며 술(術)을 구하고 불제자는 곡물을 먹으며 도(道)를 구하니, 왜 그렇게 다른가?”

○ 答曰吾觀老子上下篇호니 聞其禁五味之語요 未睹其絶五穀之語케라 聖人이 制七典之文에 無止糧之術이니라 先聖이 有言호대 食穀者는 智하고 食草者는 痴하며 食肉者는 悍하고 食氣者는 壽라하시니 世人이 不達其事하야 見六禽이 閉氣不息하고 秋冬에 欲效而爲之하야 不知物類의 各自有性이 猶磁石取鐵하야 不能移毫毛矣어든 至道는 何關食不食耶아

○ 대답하였다.

“나도『노자』상·하편을 읽어 보았는데 5미(味)를 금한다는 말 [『노자』12장에 “5미味)는 사람의 미각을 상하게 한다”는 구절이 있다] 은 들었지만 5곡(穀)을 끊는다는 말은 보지 못했다. 성인께서 지으신 7전(典)의 글에 곡식을 끊는 방법은 없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곡식을 먹는 자는 지혜롭고 풀을 먹는 자는 어리석으며, 고기를 먹는 자는 사납고 기(氣)를 먹는 자는 장수한다’ [『노자』48장에 나온다] 고 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그 본뜻을 통달하지 못하고는 여섯 짐승이 가을 겨울에 기(氣)를 막고 숨쉬지 않는 것을 보고 본 받아 따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사물마다 각각 본성이 있는 것이 자석이 쇠는 끌어 당기지만 작은 털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같음을 모르는 것이다. 하물며 지극한 도가 먹고 먹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19○ 問曰佛在異域이라 子가 足未履其地하며 目不見其容이어늘 徒觀其文信其行하니 如視影者가 不能審形이라 殆其不誠乎인저

○ 물었다.

“부처는 이역(異域)에 있으므로 자네는 발로 그 땅을 밟지 못했고 눈으로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단지 그 글만 보고 그 행(行)을 믿으니, 그림자만 보고는 몸의 형태를 자세히 살필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마도 그것은 성실하지 못함이리라.”

○ 答曰仲尼는 聞師曠之絃而識文王之調하며 季子는 聽一欒而覽衆國之風하니 何必足履目見而後에 知吾性之法王乎아

○ 대답하였다.

“중니(仲尼)는 사광(師曠)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문왕(文王)의 곡조(曲調)를 알았고, 계자(季子) [계찰(季札)을 말한다] 는 편종의 연주를 듣고 여러 나라의 풍속(風俗)을 보았으니, 어찌 반드시 발로 밟고 눈으로 본 후에야 우리 성품의 법왕(法王)을 안다고 하겠는가!”









20○ 問曰道家에 云堯舜周公孔子七十二人이 皆不死而仙이라하야늘 佛家엔 云人皆當死에 不免無常이라하니 此何如也오

○ 물었다.

“도가(道家)에서는 요(堯)·순(舜)·주공(周公)·공자(孔子)와 공자의 제자 72명이 모두 죽지 않고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불가(佛家)에서는 사람은 모두 반드시 죽고 무상(無常)을 면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 答曰此는 妖妄之語요 非聖人之言也니라 老子가 曰天地도 尙不能長久어든 而人乎아하며 世典에 堯有落之書하고 舜有蒼梧之崩하고 禹有會稽之陵하고 夷齊는 有首陽之墓하고 文王은 有傑而沒하고 武王은 有成之終하고 周公은 有改葬之篇하고 仲尼는 有兩楹之夢하고 伯魯는 有先父之年하고 子路는 有之語하고 伯牛는 有命夭之文하고 曾參은 有啓足之辭하고 顔淵은 有短命之記하니 此皆聖人之至言也라 以經典으로 爲證컨댄 世人不死之說이 豈不惑哉아

○ 대답하였다.

“그것은 요망한 말이고 성인의 말씀이 아니다. 노자께서는 ‘천지도 오히려 장구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랴’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전적에 ‘요임금이 돌아가셨다’는 글이 있고, 순임금은 창오(蒼梧)에서 돌아가셨으며, 우임금은 회계(會稽)에 능이 있고, 백이·숙제는 수양산에 묘가 있으며, 문왕은 걸(傑)이 살아있을 때 돌아가셨고, 무왕은 성왕(成王)이 장성하기 전에 돌아가셨다. 또 주공(周公)에게는 개장(改葬)했다는 기록 [『상서』「주관(周官)」] 이 있고, 중니(仲尼)에게는 두 기둥 사이에 안좌하는 꿈을 꾸었다는 기록 [『얘기』「단궁(檀弓)」상]이 있으며, 백로(伯魯)에게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은 해가 있고 [『논어』「선진(先進)」], 자로(子路)에게는 소금에 절여졌다는 기록 [『예기』「단궁(檀弓)」상] 이 있다. 염백우에게는 명이 짧다는 기록 [『논어』「옹야(雍也)」] 이 있고, 증삼(曾參)에게는 [죽음에 임해] 발을 펴달라고 한 기록 [『논어』「태백(泰伯)」] 이 있으며, 안연(顔淵)에게는 단명했다는 기록 [『논어』「선진(先進)」] 이 있으니, 이는 모두 성인의 지극한 말씀이다. 경전(經典)으로써 증거를 삼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는 말이 어찌 미혹한 것이 아니겠는가?”







21○ 問曰子以經典之說과 華麗之辭로 褒讚佛行하며 稱譽佛德하야 高者는 凌靑雲하고 廣者는 踰地軸하야 大而無當이라 不近人情하니 得無踰其本過其實乎아

○ 물었다.

“자네는 경전의 문구와 화려(華麗)한 말로써 부처의 행적을 극구 찬양하고 부처의 덕을 칭찬하는데, 높기로는 청운(靑雲)을 능멸하고 넓기로는 대지를 넘어서니 크기만 할 뿐 타당함이 없다. 인정(人情)에 가깝지 않으니 그 본질에서 벗어나고 그 사실을 과장한 것은 아닌가?”

○ 答曰라 吾之所褒는 猶撮飛塵하야 附嵩泰하며 收朝露하야 補江海요 子之所謗은 猶握瓢하야 欲減江海하며 攝耕하야 欲損崑崙하며 側一掌하야 以日光하며 擧土塊하야 以塞河川이라 吾之所褒는 不能使佛로 少分高而子之所毁는 不能使佛로 少分下也니라

○ 대답하였다.

“아! 나의 찬사는 날리는 먼지를 모아 숭산(嵩山)이나 태산(泰山)에 보태고 아침 이슬을 거두어 강과 바다에 보탬과 같고, 자네의 비방은 표주박을 손에 들고 강과 바다를 퍼내려고 하고 쟁기를 잡고서 곤륜산을 깎으려고 하며 한 손을 기울여 햇빛을 가리고 흙덩이를 들어다 황하를 막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나의 찬사는 부처님을 조금도 높이지 못하고, 자네의 비방은 부처님을 조금도 낮추지 못한다.”









22○ 問曰子之所解가 誠悉備焉하니 固非吾之所曾聞也로다 然子所理가 何以著三十七條오 其亦有法乎아

○ 물었다.

“자네의 해석은 참으로 완벽하고 진실로 일찍이 내가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이치를 폄에 있어서 무엇 때문에 37조(條)로 저술하였는가? 그것도 또한 법(法)이 있는 것인가?”

○ 答曰夫轉蓬이 飄而車輪이 成하고 木이 流而舟楫이 設하고 蜘蛛가 布而羅網이 陳하고 鳥迹이 見而文字가 作이라 故로 有法成은 易어니와 無法成은 難이니 吾覽佛經之要가 有三十七品이요 覽道經之文이 亦三十七篇이라 故로 法之矣로라

○ 대답하였다.

“쑥다발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봄으로 인해 수레바퀴가 만들어졌고, 오목한 나무가 떠내려 가는 것을 봄으로 인해 배와 노가 만들어졌으며, 거미가 줄을 치는 것을 봄으로 인해 그물이 만들어졌고, 새 발자국이 나타난 것을 봄으로 인해 문자가 만들어 졌다. 따라서 [기준이 되는] 법도가 있는 상태에서 이루는 것은 쉽지만 법도가 없는 상태에서 이루는 것은 어렵다. 나는 불경의 요점에 37품(品)이 있는 것을 보고, 『도경(道經)』의 문장 또한 37편인 것을 보았다. 따라서 이를 본보기로 삼았다.”

○ 於是에 問者가 然失色하고 叉手避席하야 逡巡俯伏曰佛之道가 如是也여 佛之道가 如是也여 鄙人가 生於幽仄하야 敢出愚言하야 不慮禍福이러니 今也聞命호니 確如蕩雪이라 更請懺悔하야 願爲弟子하노이다

○ 이에 질문하던 자가 아연실색하여 두 손을 모으고 자리에서 물러나 뒷걸음치고는 엎드려 말하였다. “부처님의 도가 이와 같군요! 부처님의 도가 이와 같군요! 비천하고 눈이 먼 저는 벽지에서 자랐기에 감히 어리석은 말을 내뱉으면서도 화가 될지 복이 될지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는 마치 눈이 녹듯이 확실해졌습니다. 다시 청하건데 참회하고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정확하게는 22개의 문답이다.)

(懸吐譯解) 理惑論 終

[출처] 道家論辨 牟子 理惑論(모자 이혹론)|작성자 곡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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