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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 원문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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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에 사람이 한 번역보다 ChatGPT 번역이 더 좋아 보여서 ChatGPT 번역을 앞에 싣는다. :

     

    ChatGPT
     
     
    人物之生生而無窮。乃天地之化。運行而不已者也。原夫太極有動靜而陰陽生。陰陽有變合而五行具。於是無極太極之眞。陰陽五行之精。妙合而凝。人物生生焉。其已生者往而過。未生者來而續。其間不容一息之停也。佛之言曰。人死精神不滅。隨復受形。於是輪廻之說興焉。易曰。原始反終。故知死生之說。又精氣爲物。游魂爲變。先儒解之曰。天地之化。雖生生不窮。然而有聚必有散。有生必有死。能原其始而知其聚之生。則必知其後之必散而死。能知其生也得於氣化之自然。初無精神寄寓於太虛之中。則知其死也與氣而俱散。無復更有形象尙留於冥漠之內。又曰。精氣爲物。游魂爲變。天地陰陽之氣交合。便成人物。到得魂氣歸于天。體魄歸于地。便是變了。精氣爲物。是合精與氣而成物。精魄而氣魂也。游魂爲變。變則是魂魄相離。游散而變。變非變化之變。旣是變則堅者腐存者亡。更無物也。天地間如烘爐。雖生物。皆銷鑠已盡。安有已散者復合。而已往者復來乎。今且驗之吾身。一呼一吸之間。氣一出焉。謂之一息。其呼而出者。非吸而入之也。然則人之氣息。亦生生不窮。而往者過。來者續之理。可見也。外而驗之於物。凡草木自根而幹而枝而葉而華實。一氣通貫。當春夏時。其氣滋至而華葉暢茂。至秋冬。其氣收斂而華葉衰落。至明年春夏。又復暢茂。非已落之葉。返本歸源而復生也。又井中之水。朝朝而汲之。爨飮食者。火煮而盡之。濯衣服者。日暴而乾之。泯然無跡。而井中之泉。源源而出。無有窮盡。非已汲之水。返其故處而復生也。且百穀之生也。春而種十石。秋而收百石。以至千萬。其利倍蓰。是百穀亦生生也。今以佛氏輪廻之說觀之。凡有血氣者。自有定數。來來去去。無復增損。然則天地之造物。反不如農夫之生利也。且血氣之屬。不爲人類則爲鳥獸魚鼈昆蟲。其數有定。此蕃則彼必耗矣。此耗則彼必蕃矣。不應一時俱蕃。一時俱耗矣。自今觀之。當盛世。人類番庶。鳥獸魚鼈昆蟲亦蕃庶。當衰世。人物耗損。鳥獸魚鼈昆蟲亦耗損。是人與萬物。皆爲天地之氣所生。故氣盛則一時蕃庶。氣衰則一時耗損。明矣。予憤佛氏輪廻之說惑世尤甚。幽而質諸天地之化。明而驗諸人物之生。得其說如此。與我同志者。幸共鑑焉。 或問。子引先儒之說。解易之游魂爲變曰。魂與魄相離。魂氣歸於天。體魄降于地。是人死則魂魄各歸于天地。非佛氏所謂人死精神不滅者耶。曰。古者。四時之火皆取於木。是木中元有火。木熱則生火。猶魄中元有魂。魄煖者爲魂。故曰鑽木出火。又曰形旣生矣。神發知矣。形。魄也。神。魂也。火緣木而存。猶魂魄合而生。火滅則煙氣升而歸于天。灰燼降而歸于地。猶人死則魂氣升于天。體魄降于地。火之煙氣。卽人之魂氣。火之灰燼。卽人之體魄。且火氣滅矣。煙氣灰燼。不復合而爲火。則人死之後。魂氣體魄。亦不復合而爲物。其理豈不明甚也哉。해석하시오.
     
    ChatGPT said:
    ChatGPT

    이 글은 자연과 인간의 생명, 죽음, 그리고 윤회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만물의 생명은 끊임없이 이어지니, 이는 천지의 조화가 운행하며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태극(太極)은 움직임과 정지의 상태가 있어 음양(陰陽)을 낳고, 음양은 변화와 결합을 통해 오행(五行)이 갖추어진다. 이리하여 무극(無極)과 태극의 진리, 음양과 오행의 정수가 묘하게 결합하여 응결되고, 그 결과로 인간과 만물이 태어나게 된다.

    이미 태어난 것은 지나가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은 앞으로 계속 이어지니, 그 사이에 한 순간의 정지도 허용되지 않는다. 불교에서 말하길, '사람이 죽어도 정신은 소멸하지 않으며, 다시 형태를 받아 윤회한다.'라고 하였다. 주역(易經)에서는 '시작을 고찰하고 끝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으니, 이는 생사에 대한 설명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정기(精氣)는 물질을 이루고, 유혼(游魂)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였다. 선유(先儒, 옛 유학자)의 해석에 따르면, 천지의 조화는 비록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할지라도, 모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흩어짐이 있고, 태어나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그 시작을 고찰하여 모여서 생겨남을 알 수 있다면, 반드시 그 뒤에 흩어져 죽음에 이를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은 기운의 자연스러운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지, 처음부터 정신이 허공 속에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에 이르면 기운과 함께 흩어지고, 다시는 형상이 어둠 속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기(精氣)는 물질을 이루고, 유혼(游魂)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였으니, 천지의 음양의 기운이 교합하여 사람과 만물이 이루어지며, 혼과 기운이 하늘로 돌아가고, 몸과 백(魄)은 땅으로 돌아가니, 이것이 바로 변화이다. 정기(精氣)는 물질을 이루는 것으로, 이는 정(精)과 기(氣)가 합쳐져서 물질을 이루는 것이며, 정(精)은 백(魄)이 되고, 기(氣)는 혼(魂)이 된다. 유혼(游魂)은 변화를 일으키니, 이는 혼과 백이 서로 분리되어 흩어지면서 변하는 것이며, 여기서 '변'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이미 변화되면, 견고한 것도 썩고, 존재하던 것도 사라지니,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천지 간은 마치 큰 화로와 같아서, 비록 생명체가 존재하더라도 결국 모두 녹아 사라지고 만다. 이미 흩어진 것이 다시 합쳐지고, 이미 지나간 것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는가? 이제 나의 몸을 증명해 보자. 한 번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 기운이 한 번 나가면 이를 한 번의 숨이라 한다. 그 내뱉은 숨은 들이마신 숨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숨결도 역시 끊임없이 이어지며, 지나간 것은 지나가고, 오는 것은 이어지는 이치가 명확히 보인다.

    외적으로 사물을 보면, 모든 초목은 뿌리에서 줄기, 가지, 잎, 꽃과 열매로 이어지는 하나의 기운이 통한다. 봄과 여름에는 그 기운이 무성하게 자라서 꽃과 잎이 무성하다. 가을과 겨울에는 그 기운이 수렴되어 꽃과 잎이 시들어 떨어진다. 이듬해 봄과 여름이 되면 다시 무성해진다. 이는 이미 떨어진 잎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또 우물 속의 물은 매일 퍼내어도, 음식을 삶아 먹으면 불에 의해 소멸되고, 옷을 빨아 햇볕에 말리면 말라 사라진다. 그러나 우물 속의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나와 한없이 이어진다. 이는 이미 퍼낸 물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백곡(百穀)이 자라나는 것도 봄에 열 석(石)을 심으면 가을에 백 석을 거두고, 천 만 석까지도 늘어나 그 이익이 배가 된다. 이 백곡도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불교의 윤회설을 보면, 혈기(血氣)를 가진 모든 존재는 그 수가 정해져 있어, 왔다 갔다 해도 다시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천지가 만드는 만물은 농부가 곡식을 재배하는 것만큼의 이익도 내지 못하는 것이 된다.

    또한 혈기(血氣)에 속한 것은 인간이 아니면 새, 짐승, 물고기, 거북, 벌레 등인데, 그 수는 일정하다. 이쪽이 번성하면 저쪽은 반드시 줄어들고, 이쪽이 줄어들면 저쪽이 반드시 번성한다. 동시에 번성하거나 동시에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보면, 태평성대에는 인류가 번성하고, 새, 짐승, 물고기, 거북, 벌레도 번성한다. 쇠퇴한 시대에는 인류가 줄어들고, 새, 짐승, 물고기, 거북, 벌레도 줄어든다. 이는 사람과 만물이 모두 천지의 기운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운이 성하면 한때 번성하고, 기운이 쇠하면 한때 줄어드는 것이 명확하다.

    나는 불교의 윤회설이 세상을 현혹시키는 것을 매우 분하게 여기며, 이를 천지의 조화에 비추어 보았고, 또한 사람과 만물의 생명을 검증해 본 결과, 이와 같은 결론에 이르렀으니,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은 함께 이 점을 주목하길 바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대는 선유(先儒)의 말을 인용하여 주역(易)에서 "유혼(游魂)이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해석하기를, "혼과 백이 분리되어 혼기(魂氣)는 하늘로 돌아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간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각각 천지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 죽어도 정신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아닌가?'라고 하였다.

    나는 대답하기를, 옛날에는 사시(四時)의 불을 모두 나무에서 취했으니, 나무 속에는 원래 불이 있었다. 나무가 열을 받으면 불이 생기는데, 이는 백(魄) 속에 원래 혼(魂)이 있는 것과 같다. 백이 따뜻해지면 혼이 된다. 그러므로 '나무를 뚫어 불을 얻는다'고 말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형이 생기면 신(神)이 발하여 지혜를 갖추게 되니, 형은 백이고 신은 혼이라 하였다. 불이 나무에 의존해 존재하는 것은 혼과 백이 합쳐져 생명을 이루는 것과 같다. 불이 꺼지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재는 땅으로 내려가니, 이는 사람이 죽으면 혼기(魂氣)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體魄)은 땅으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불의 연기와 기운은 사람의 혼기(魂氣)와 같고, 불의 재는 사람의 체백(體魄)과 같다. 불이 꺼지면 연기와 재가 다시 합쳐져 불이 되지 않듯이, 사람이 죽은 후 혼기와 체백도 다시 합쳐져 물질이 되지 않는다. 그 이치가 어찌 명백하지 않겠는가?"


    이 글은 불교의 윤회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유교적인 자연 관점에서 생사와 변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만물은 천지의 기운에 의해 태어나며, 생명이란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한 번 흩어진 것은 다시 합쳐지지 않으며, 죽음 이후에 혼과 백이 다시 결합해 재탄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①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

 

 

人物之生生而無窮, 乃天地之化, 運行而不已者也.

사람과 만물이 계속하여 낳고 낳아 끝이 없음은 바로 천지의 조화가 운행하여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原夫太極 有動靜而陰陽生, 陰陽有變合而五行具.

원래 대저 태극이 동하고 정하여 음양을 낳고 음양이 변하고 합하여 오행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於是 無極太極之眞, 陰陽五行之精, 妙合而凝人物生生焉.

이에 무극태극의 참됨과 음양오행의 정미로움이 묘합하고 엉겨 사람과 만물을 계속하여 낳고 낳는 것이다.

 

其已生者, 往而過, 未生者, 來而續. 其間不容一息之停也.

이미 생겨난 것은 과거가 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은 계속되는 것이니 그 사이가 한 순간의 멈춤도 용납되지 않는다.

 

佛之言曰 "人死, 精神不滅, 隨復受形", 於是 輪廻之說, 興焉.

불씨의 말에 가로되, "사람은 죽어도 정신은 멸하지 않아 다시 태어남에 따라 형체를 받는다" 하니, 윤회의 설을 알수 잇다.

 

易曰 "原始反終", , 知死生之說.

주역에 가로되, 처음을 근원하여 마침을 돌이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생사의 설을 알 수 있다.

 

又曰, "精氣爲物, 游魂爲變".

또 말하기를, "정기는 물이되고, 혼은 변이된다."하였다.

 

先儒解之曰, "天地之化, 雖生生不窮, 然而有聚 必有散, 有生 必有死. 能原其始而知其聚之生, 則必知其後之必散而死.

能知其生, 得於氣化之自然, 初無精神 寄寓於太虛之中, 則知其死也, 其而俱散, 無復更有形象, 尙留於冥漠之內."

먼저 유자들이 그것을 해석하여 가로되, "천지의 조화로 인하여 비록 계속하여 낳고 낳아 끝이 없으나, 모임이 있으면 반드시 흩어짐이 있고, 생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다 하였으며, 능히 그 처음을 근원하여 모여서 생한 것임을 알면, 후에 반드시 흩어져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였으며, 생이라고 하는 것이 기가 화합하여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애초에 정신이 없다. 태극의 가운데에 기우함이 없다는 것을 알면, 죽음이라는 것도 기와 더불어 함께 흩어지는 것이다. 다시 형상을 받는 것이 없고 명막함 속에 머무르는 것이다. "하였다.

 

又曰, "精氣爲物, 游魂爲變." 天地陰陽之氣, 交合, 便成人物,到得魂氣 歸于天, 體魄 歸于地, 便是變了.

"또한 말하길, '정기(精氣)는 물질이 되고, 유혼(游魂)은 변화를 일으킨다.' 하늘과 땅, 음과 양의 기운이 서로 교합하면 사람이나 사물이 탄생한다. 그러다가 혼과 기운은 하늘로 돌아가고, 몸과 백(魄)은 땅으로 돌아가니, 이것이 바로 변화이다."

 

精氣爲物, 是合精與氣而成物, 精魄而氣魂也. 游魂爲變, 變則是魂魄相離 游散而變, 變非變化之變.

"정기(精氣)는 물질이 되며, 이는 정(精)과 기(氣)가 합쳐져 물질을 이루는 것이다. 정은 백(魄)이 되고, 기는 혼(魂)이 된다. 유혼(游魂)은 변화하나, 이는 혼과 백이 서로 떨어져 흩어지면서 변하는 것이다. 여기서 '변(變)'은 일반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旣是變則 堅者 腐, 在者亡. 更無物也.

"이미 변했다면, 견고한 것도 썩고, 존재하는 것도 사라지니,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天地間 如烘爐, 雖生物 皆消鑠已盡, 安有已散者復合 而已往者復來乎.

"하늘과 땅 사이의 세계는 마치 큰 화로와 같아서, 비록 생명체가 존재하더라도 결국 모두 녹아 없어지고 만다. 이미 흩어진 것이 다시 합쳐지고, 이미 지나간 것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겠는가?"

 

今且驗之吾身, 一呼一吸之間, 氣一出焉 謂之一息.

이제 또 내 몸으로서 징험하면, 숨을 한번 내쉬고 한번 들이쉬는 사이에 기가 한번 나오니, 그것을 일러 一息이라고 한다.

 

其呼而出者, 非吸而入之也. 然則人之氣息, 亦生生不窮 而往者過來者續之理, 可見也.

숨을 내쉴 때 나와 버린 것을 숨을 들이 쉴때 그것을 흡입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한 즉 사람의 기식 또한 계속하여 나오고 나와 끝이 없다는 것과 가버린 것은 가버리고 오는 것은 와서 계속 되는 이치를 가히 볼 수 있는 것이다.

 

外而驗之於物, 凡草木自根而幹而枝而葉而華實, 一氣通貫. 當春夏時 其氣慈至而華葉暢茂, 至秋冬 其氣收斂而華葉衰落, 至明年春夏又復暢茂, 非已落之葉返本歸源而復生也.

밖으로 물로써 징험하면, 모든 초목들이 뿌리로부터 줄기 가지잎 그리고 꽃과 열매에 이르기까지 한 기가 관통하여 봄여름을 당하여서는 그 기운이 불어나 꽃과 잎이 무성하고 가을과 겨울에 이르러서는 그 기운이 오그라들어 꽃과 잎이 쇠하여 떨어지나 이듬해 봄여름에 이르면 또 다시 무성하게 되되, 이미 떨어져버린 낙엽이 다시 원래로 돌아가 소생하는 것은 아니다.

 

又井中之水, 朝朝而汲之 飮食者大煮而盡之, 濯衣服者 日曝而乾, 泯然 無跡而井中之泉 源源而出無有窮盡, 非已汲之水返其故處而復生也.

또 우물 속의 물을 보라. 아침마다 길어낸 물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불로 끓여 없애고, 옷을 세탁하는 사람이 햇 Ш에 말려 없애닌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만, 그러나 우물의 샘줄기에서는 계속하여 물이 솟아 다함이 없으니 이 때 이미 길어간 물이 그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나오는 것은 아니다.

 

且百穀之生也, 春而種十石, 秋而收百石以至千萬, 其利倍. 百穀亦生生也.

또한 백곡의 나옴도 봄에 십석을 파종하여 가을에 백석을 거두고 천만에 이르니 그 이익이 여러배가 된다. 이는 백곡도 또한 계속 하여 나온다는 것이다.

 

今以佛氏輪廻之說, 觀之凡有血氣者, 自有定數, 來來去去, 無復增.

이제 불씨의 윤회의 설을 살펴보건대, 모든 혈기 있는 것들은 스스로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 오는 것은 오고 가는 것은 가더라도 다시는 증가하거나 줄어듬이 없다.

 

然則天地之造物, 反不如農夫之生利也.

그러한즉, 천지의 만물 조성함이 농부의 이익 생산만 같지 못하.

 

且血氣之屬, 不爲人類則爲鳥獸魚鼈昆蟲, 其數有定, 此蕃則彼必耗, 此耗則彼必蕃矣. 不應一時俱蕃 一時俱耗矣.

또한 혈기의 등속이 사람의 류가 되지 못하면 새짐승물고기자라곤충이 되니, 그 수가 정해져 잇어서 이것이 번식하면

저것이 반드시 줄어들고, 이것이 줄어들면 저것이 반드시 번식하는 것이니 일시에 함께 번식하고, 일시에 함께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自今觀之, 當盛世 人類蕃庶 鳥獸魚鼈昆蟲亦蕃庶, 當衰世 人物耗損 鳥獸魚鼈昆蟲亦耗損.

이제 살펴보건데 성한 세상을 당하여서는 인류도 번식하고 새짐승물고기자라곤충도 또한 번식하나, 쇠한 세상을 당하여서는 인물도 줄어들고 새짐승물고기자라곤충도 또한 줄어든다.

 

是人與萬物 皆爲天地之氣所生, 故氣盛則一時蕃庶, 氣衰則一時耗, 明矣.

이것은 사람과 만물이 모두 천지의 기운이 소생시키는 바이니,그러므로 기가 성하면 일시에 번식하고 기가 쇠하면 일시에 줄어드는 것은 명확한 것이다.

 

予憤佛氏輪廻之說, 惑世尤甚, 幽而質諸天地之化, 明而驗諸人物之, 得其說 如此, 與我同志者, 幸共鑑焉.

나는 불씨의 윤회의 설이 세상에 더욱 의혹시키는 것에 대해 분개하여, 천지의 조화에 깊이 근본하고 사람과 만물의 생성에 밝게 징험하여, 그 설을 얻음이 이와 같으니, 나와 뜻을 함께하는 자는 共鑑하기를 바라노라.

 

或問 "子引先儒之說, 解易之'游魂爲變', 魂與魄相離 魂氣歸於, 體魄降于地, 是人死則魂魄各歸于天地 非佛氏所謂人死精神不滅者耶." "故者 四時之火 皆取於木, 是木中元有火, 木熱則生, 猶魄中元有魂, 魄煖者爲魂."

혹자가 나에게 묻기를 "선유의 설을 인용하여 에 있는 游魂爲이라는 것을 해석하여 가로되, 혼과 백이 서로 떨어져 혼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은 땅으로 내려간다 하고,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혼백은 각기 하늘과 땅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니, 씨의 이른바 사람은 죽어도 정신은 멸하지 않는 다는 것 아닌가"라고 한다면, 가로되 "옛날에 사시의 불은 모두 나무에서 취하였으니, 이것은 나무 가운데 원래 불이 있어서 백을 따듯하게 하면 혼이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는 것이다."

 

故曰, "鑽木出火", 又曰, "形氣生矣, 神發知矣.", 形 魄也, 魂也.

고로 가로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나온다."하고, 또 가로되, "형기가 생하면 신이 지를 발한다."하니, 형은 백이요, 신은 혼인것이다.

 

火緣木而存, 猶魂魄合而生.

불이 나무를 연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혼백이 합하여 생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火滅則煙氣升而歸于天 灰燼降而歸于地, 猶人死則魂氣升于天 體魄降于地. 火之煙氣卽人之魂氣, 火之灰燼卽人之體魄.

불이 멸하면 연기는 올라가 하늘로 돌아가고 회신은 내려가 땅으로 돌아 간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혼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체백은 땅으로 내려 간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 연기는 곧 사람의 혼기요 회신은 곧 사람의 체백인 것이다.

 

且火氣滅矣, 煙氣灰燼不復合而爲火 則人死之後 魂氣體魄亦不復合而爲物, 其理 豈不明甚也哉.

또한 불 기운이 멸하면 연기회신은 다시 합하여 불이 되지 않으, 사람이 죽은 후에 혼기체백도 또한 다시 합하여 물이 될 수 없다는 그 이치가 어찌 더욱 명백하지 아니하겠는가 !

 

 

 

佛氏因果之辨 a005_448b [DCI]ITKC_MO_0024A_0120_010_0020_2003_A005_XML DCI복사 URL복사 或曰。吾子辨佛氏輪廻之說。至矣。子言人物皆得陰陽五行之氣以生。今夫人則有智愚賢不肖。貧富貴賤壽夭之不同。物則有爲人所畜役。勞苦至死而不辭者。有未免網羅釣弋之害。大小強弱之自相食者。天之生物。一賦一與。何其僞而不均如是耶。以此而言釋氏所謂生時所作善惡。皆有報應者。不其然乎。 a005_448c且生時所作善惡。是之謂因。他日報應。是之謂果。此其說。不亦有所據歟。曰。予於上論人物生生之理悉矣。知此則輪廻之說自辨矣。輪廻之說辨。則因果之說。不辨而自明矣。然子旣有問焉。予敢不推本而重言之。夫所謂陰陽五行者。交運迭行。參差不齊。故其氣也有通塞偏正淸濁厚薄高下長短之異焉。而人物之生。適當其時。得其正且通者爲人。得其偏且塞者爲物。人與物之貴賤。於此焉分。又在於人。得其淸者智且賢。得其濁者愚不肖。厚者富而薄者貧。高者貴而下者賤。長者壽而短者夭。此其大略也。雖物亦 a005_448d然。若麒麟龍鳳之爲靈。虎狼蛇虺之爲毒。椿桂芝蘭之爲瑞。烏喙堇茶之爲苦。是皆就於偏塞之中而又有善惡之不同。然皆非有意而爲之。易曰。乾道變化。各定性命。先儒曰。天道無心而普萬物。是也。今夫醫卜。小數也。卜者定人之禍福。必推本於五行之衰旺。至曰。某人以木爲命。當春而旺。當秋而衰。其象貌靑而長。其心慈而仁。某人以金爲命。吉於秋而凶於夏。其象貌白而方。其心剛而明。曰水曰火。莫不皆然。而象貌之醜陋。心識之愚暴。亦皆本於五行稟賦之偏。醫者診人之疾病。又必推本於五行之相感。乃曰。某 a005_449a之病寒。乃腎水之證。某之病溫。乃心火之證之類是也。其命藥也。以其性之溫涼寒熱。味之酸鹹甘苦。分屬陰陽五行而劑之。無不符合。此吾儒之說。以人物之生。爲得於陰陽五行之氣者。明有左驗。無可疑矣。信如佛氏之說。則人之禍福疾病。無與於陰陽五行。而皆出於因果之報應。何無一人捨吾儒所謂陰陽五行。而以佛氏所說因果報應。定人禍福。診人疾病歟。其說荒唐謬誤無足取信如此。子尙惑其說歟。 今以至切而易見者比之。酒之爲物也。麴糱之多寡。瓷甕之生熟。日時之寒熱久近適相當。則其味 a005_449b爲甚旨。若糱多則味甘。麴多則味苦。水多則味淡。水與麴糱適相當。而瓷甕之生熟。日時之寒熱久近。相違而不相合。則酒之味有變焉。而隨其味之厚薄。其用亦有上下之異。若其糟粕則委之汚下之地。或有蹴踏之者矣。然則酒之或旨或不旨或上或下或用或棄者。此固適然而爲之耳。亦有所作因果之報應歟。此喩雖淺近鄙俚。亦可謂明且盡矣。所謂陰陽五行之氣。相推迭運。參差不齊。而人物之萬變生焉。其理亦猶是也。聖人設敎。使學者變化氣質。至於聖賢。治國者。轉衰亡而進治安。 a005_449c此聖人所以廻陰陽之氣。以致參贊之功者。佛氏因果之說。豈能行於其間哉。해석.
 

ChatGPT said:

ChatGPT

이 글은 유교와 불교의 사상적 대립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불교의 윤회와 인과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유교적 관점에서 인간과 만물의 생사와 운명에 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질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가 불교의 윤회설을 비판한 것은 매우 타당합니다. 그대는 인간과 만물이 모두 음양오행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혜와 어리석음, 현명함과 어리석음, 부와 가난, 귀함과 천함, 장수와 요절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물질 세계에서도 사람에게 길들여져 고생하다 죽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죽지 못해 고통받는 것이 있고, 크고 강한 자가 약하고 작은 자를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왜 이토록 불공평하게 할당했단 말입니까? 이를 두고 불교에서 말하는 생전에 지은 선악이 모두 보응을 받는다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답변: "나는 앞서 인간과 만물의 생명 이치를 다 논하였으니, 이를 알면 윤회설은 스스로 반박될 것입니다. 윤회설이 반박되면, 인과설도 논하지 않아도 자명해집니다. 그러나 그대가 물으니, 나는 이 이치를 더욱 깊이 설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음양오행이란 교차하여 움직이고 번갈아 운행되면서 일정하지 않으므로, 기운에는 통하고 막히고, 편향되고 정정하며, 맑고 탁하고, 두텁고 얇으며, 높고 낮고, 길고 짧은 차이가 있습니다. 인간과 만물의 생명은 때에 따라 적절히 이루어지니, 정정하고 통하는 기운을 얻은 것은 인간이 되고, 편향되고 막힌 기운을 얻은 것은 물질이 됩니다. 인간과 만물의 귀천은 여기에서 나뉩니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 맑은 기운을 얻은 자는 지혜롭고 현명하며, 탁한 기운을 얻은 자는 어리석고 비열합니다. 두터운 기운을 얻은 자는 부유하고, 얇은 기운을 얻은 자는 가난합니다. 높은 기운을 얻은 자는 귀하고, 낮은 기운을 얻은 자는 천합니다. 긴 기운을 얻은 자는 장수하고, 짧은 기운을 얻은 자는 요절합니다. 대체로 이러한 이치입니다.

물질 세계에서도 그러하니, 예를 들어, 기린, 용, 봉황은 영물로 여겨지며, 호랑이, 늑대, 뱀, 독사는 해로운 동물로 여겨집니다. 또한, 춘(椿)나무, 계수나무, 지란(芝蘭)은 길조로 여겨지며, 오리(烏喙), 근차(堇茶)는 쓴맛을 내는 식물로 여겨집니다. 이는 모두 편향된 기운 속에서도 선악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의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주역에서는 '하늘의 도(道)는 변화를 일으켜 각기 성품과 운명을 정한다'고 하였고, 선유(先儒)들은 '하늘의 도는 마음이 없어 만물을 두루 비춘다'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의학이나 점술은 작은 학문에 속합니다. 점술가는 사람의 화복을 정할 때 반드시 오행의 성쇠를 바탕으로 추론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나무를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데, 봄이 오면 왕성하고, 가을이 오면 쇠약해지며, 그 모습은 푸르고 길며, 마음은 자비롭고 인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금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아 가을에는 길하고 여름에는 흉하며, 그 모습은 하얗고 네모지고, 마음은 강직하고 밝습니다. 물이나 불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사람도 모두 이와 같으며, 모습이 추하고 마음이 어리석고 난폭한 것도 모두 오행의 편향된 기운에 근거합니다.

의사는 사람의 질병을 진단할 때도 반드시 오행의 상감(相感, 상호작용)에 근거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병이 추위에 의해 생겼다면 이는 신수(腎水)의 증상이요, 어떤 사람의 병이 열로 인해 생겼다면 이는 심화(心火)의 증상이라는 식입니다. 약을 지을 때는 그 성질이 따뜻하고 차가운지, 맛이 시고 짠지 단지 쓴지에 따라 음양오행에 속하게 하여 처방하니, 틀림없이 일치합니다. 이것이 유학에서 말하는 인간과 만물의 생명이 음양오행의 기운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며, 이는 분명히 검증할 수 있어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만약 불교의 가르침이 옳다면, 인간의 화복과 질병은 음양오행과는 무관하고 모두 인과응보에 따른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한 사람도 유학에서 말하는 음양오행을 버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로 인간의 화복을 정하거나 질병을 진단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까? 그 주장은 황당하고 잘못되어 신뢰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그대는 아직 그 주장에 미혹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술이란 것은 누룩과 삭힌 찌꺼기의 많고 적음, 도자기의 구워진 정도, 날씨의 차가움과 더움, 그리고 시간의 길고 짧음이 적절히 맞으면 그 맛이 매우 좋습니다. 만약 찌꺼기가 많으면 맛이 달고, 누룩이 많으면 맛이 쓰며, 물이 많으면 맛이 싱거워집니다. 물과 누룩, 찌꺼기가 적절히 맞지만 도자기의 구워진 정도, 날씨의 차가움과 더움, 시간의 길고 짧음이 맞지 않으면 술의 맛이 변하게 됩니다. 맛의 진하고 엷음에 따라 그 용도도 상하의 차이가 생기고, 찌꺼기는 더러운 곳에 버려지며 발로 밟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술이 맛있거나 맛없거나, 상등품이거나 하등품이거나, 사용되거나 버려지는 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어떤 인과응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비록 얕고 하찮지만, 이치가 명확하고 완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양오행의 기운이 서로 밀고 당기며 번갈아 운행하고, 불균등하게 교차하면서 인간과 만물의 무수한 변화가 생겨나는 이치는 이와 같습니다. 성인이 가르침을 세우는 것은 배우는 자로 하여금 기질을 변화시켜 성현에 이르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로 하여금 쇠퇴를 물리치고 치안을 이루게 합니다. 이는 성인이 음양의 기운을 돌려서 창조적인 공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불교의 인과설이 그 사이에서 행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인간과 만물의 생명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면서, 불교의 인과설과 윤회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음양오행의 편향에 따라 인간의 지혜와 어리석음, 부귀와 빈천, 장수와 요절이 결정되며, 이는 자연스러운 이치이지, 선악의 결과로 인한 인과응보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② 불씨인과지변(佛氏因果之辨)  

 

或曰 吾子 辨佛氏輪廻 之說,至矣. 子言人物 皆得陰陽五行之氣以.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네의 불씨의 윤회설에 대한 변증은 지극하다마는, 자네의 말에, 사람과 만물이모두 음양오행의 기를 받아서 태어났다고 했다.

 

今夫人則有智愚,賢不肖,貧富,貴賤,壽夭之不同. 物則有爲人所畜役勞苦 至死而不辭者, 有未免網羅釣 之害 大小强弱之自相食者. 地生物 一賦一與 何其偏而不均 如是耶.

그런데 사람은 지혜로운 자, 어리석은 자, 어진자, 불초한자, 난한 자, 부유한 자, 귀한 자, 천한 자, 장수하는 자, 요절하는

자 등이 같지 않으며, 동물의 경우에는 어떤 것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실컷 부림을 받고 드디어는 죽음을 감수하기도 하고, 크고작고 강하고 약한 것들이 저희끼리 서로 잡아 먹기도 하니, 하늘이 만물을 냄에 있어 하나 하나 부여해 줄 것이 어찌 이렇게도 치우쳐 고르지 못하단 말인가 ?

 

以此而言釋氏所謂生時所作 善惡皆有報應者 不其然乎.

이렇게 보면 석씨의 이른바 '살아 있을 때 착한 일을 하였거나 악한 일을 한 것에 보응이 있다'는 것이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

 

且生時所作善惡,是之謂因, 日報應,是之謂果. 此 其說 不亦有所據,

또 살아 있을 때 착한 일을 하거나 약한 일을 하는 것을 이라하고 다른 날에 보응을 받는 것을 라고 하였으니 이 말 또한 근거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

 

曰 予於上論.人物生生之理 悉矣. 知此則輪廻之說 自辨矣. 輪廻之說辨則因果之說 不辨而自明矣.

말하기를 내가 위에서 사람과 만물이 생생하는 이치를 앞에서 자세히 하였으니, 이를 이해한다면 윤회설은 저절로 변명될 것이요, 윤회설이 변명되면 인과설은 변명하지 않아도 자명해진다.

 

然子旣有問焉, 予敢不推本而重言之, 夫所謂陰陽五行者 交運迭行參差不齊.

그러나 이미 질문이 나왔으니 내 어찌 근본적으로 다시 말하지않으랴 ? 저 이른바 음양오행이라고 하는 것은 엇바뀌어 운행되, 서로 드나들어 가지런하지 않다.

 

故其氣也 有通塞 偏正 淸濁 厚薄 高下 長短之異焉, 而人物之生,適當其時 得其正且通者 爲人, 得其偏且塞者 爲物, 人與物之貴賤於此焉分.

그러므로 그 기는 통함과 막힘, 치우침과 바름, 맑음과 흐림, 꺼움과 얇음, 높고 낮음, 길고 짧음의 차이가 있으니, 안과 물이생겨남에 그때를 마침 당하여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그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물이 되나니, 물의 귀천이 여기에서 나누어진다.

又在於人 得其淸者 智且賢, 得其濁者 愚不肖, 厚者富而薄者貧,高者貴而下者賤, 長者壽而短者夭, 此其大略也.

 

또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기의 맑은 것을 얻은 자는 지혜롭고 어질며, 그 탁한 것을 얻은 자는 어리석고 불초하며, 두꺼운 것을얻은 자는 부자가 되고 얇은 것을 얻은 자는 가난하며, 높은 것을 얻은 자는 귀하고 낮은 것을 얻은 자는 천하며, 긴 것을 얻은자는 장수하며, 짧은 것을 얻은 자는 단명하니 이는 그 대략이.

 

雖物亦然, 若麒麟龍鳳之爲靈, 虎狼蛇之爲毒, 椿桂芝蘭之爲瑞,烏喙菫茶之爲苦, 是皆就於偏塞之中而又有善惡之不同. 然皆非有意而爲之.

비록 물일지라도 또한 그러하니 麒麟, , 의 신령함, 虎狼 蛇훼의 독함, 椿, , , 의 상서로움, 烏喙, 菫茶의 씀은 모두치우치고 막힌 가운데에서 취하였고 또한 선악이 같지 않은 것이있다. 그러나 모두 뜻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易曰 乾道變化 各定性名. 先儒曰 天道無心而普萬物 是也.

주역에 이르기를 '건의 도가 변화하여 각각 성명을 정한다.'하였으니 선유가 말한 '천도가 무심히 만물을 두루 덮는다.'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今夫醫卜 小數也, 卜者 定人之禍福 必推本於五行之衰旺.

오늘날의 의술이나 점술은 조그마한 술수지만, 점치는 사람은 복이나 화를 정하는데 반드시 행의 쇠퇴하고 왕성함을 근본으로 추구한다.

 

至曰 某人 以木爲命 當春而旺 當秋而衰 其象貌 靑而長 其心 慈而, 某人 以金爲命 吉於秋而凶於夏 其象貌 白而方 其心 剛而明,曰水, 曰火, 莫不皆然而. 象貌之醜陋, 心識之愚暴, 亦皆本於五行稟賦 之偏.

'이 사람은 木命이니 봄을 맞아서는 왕성하지만 가을을 맞으면 쇠퇴하며 그 용모는 푸르고 길며 그 마음씨는 자비롭고 어질다.'하고 '이 사람은 金命이므로 가을에는 길하나 여름에는 흉하며 그 용모는 희고 네모나며, 그 마음씨는 강하고 맑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때로는 水命을 때로는 火命을 말하며 해당시키지 않는 것이 없으니, 용모의 추함이나, 마음의 어리석고 사나움이 모두 오행의 품부가 치우침에 근거한다고 한다.

 

醫者 診人之疾病 又必推本於五行之相感 乃曰 某之病 寒 乃腎水之證 某之病 溫 乃心火之證之類 是也.

또 의사가 사람의 병을 진찰할 때에도 반드시 오행이 서로 감응함에 근본을 추구한다. '아무개 병은 한증이니 腎水의 증세'하고 '아무개의 병은 온증이니 心火의 증세'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유의 것이다.

 

其命藥也 以其性之溫凉寒熱 味之酸鹹甘苦 分屬陰陽五行而劑之 無不符合 此吾儒之說 以人物之生 爲得於陰陽五行之氣者 明有左驗無可疑矣.

따라서 약을 쓸 때에도 그 약 성질의 ,,,과 그 맛의 ,,,를 음양오행에 나누어 붙여서 조제하면 부합되지 않는것이 없다. 이는 우리 유가의 설에 '사람과 만물은 음양오행의기를 받아서 태어낳다.'는 것이 명백히 증험되는 것이니 의심할여지도 없는 것이다.

 

信如佛氏之說 則人之禍福疾病, 無與於陰陽五行 而皆出於因果之報, 何無一人, 捨吾儒所謂陰陽五行而以佛氏所說因果報應定人禍福診人疾病歟. 其說荒唐謬誤 無足取信如此 子尙惑其說歟.

과연 불씨의 설과 같다면 사람의 화복과 질병이 음양오행과 관계없이 모두 인과보응에서 나오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여 우리 유가의 음양오행을 버리고 불씨의 인과보응설을 가지고 사람의 화복을 정하고 사람의 질병을 진료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느냐 불씨의 설이 황당하고 오류에 가득차 족히 믿을 수 없음이 이와같거늘, 그대는 아직도 그 설에 미혹되려는가 ?

 

今以至切而易見者, 比之酒之爲物也, 麴蘖之多寡 甕之生熟 日時之寒熱久近, 適相當則 其味爲甚旨.

이제 지극히 절실하고도 보기쉬운 예를들어 비유해보자. 술이라하는 것은 국과 얼의 많고 적음과, 항아리의 덜 구워지고 잘 구워짐과, 날씨의 차고 더움과 기간의 오래된과 가까움이 서로 적당히 어울리면 그 맛이 매우 좋게 된다.

 

若蘖多則 味甘, 麴多則 味苦, 水多則 味淡, 水與麴蘖 適相當而甕之生熟日時之寒熱久近 相違而 不相合則 酒之味 有變焉.

그러나 만약 얼이 많으면 맛이 달게 되고, 국이 많으면 맛이 쓰, 물이 많으면 맛이 싱겁다. 물과 국과 얼이 모두 적당하게 들어갔다 할지라도 항아리의 덜 구워짐, 잘 구워짐에나, 또한 날씨의 차고 더움이나 기간의 오래됨과 가까움에 서로 어긋나 합해지지 않으면 술맛이 변하게 된다.

 

而隨其味之厚薄 其用亦有上下之異, 若其糟則委之汚下之地 或有蹴踏之者矣.

그리고 그 맛의 좋고 나쁨에 따라 그 용도도 상하로 다르게 되, 지게미 같은 것은 더러운 땅에 버려져 발길에 채이고 밟히게도 된다.

 

然則酒之或旨 或不旨 或上 或下 或用 或棄者 此固適然而爲之耳,亦有所作因果之報應歟.

그런즉, 술의 그 맛있게 되고 맛 없게 되는 것과, 상품도 되고하품도 되는 것과, 쓰이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하는 것이 모두가다 일시적으로 마침 그렇게 되어서 그럴 뿐이니 술을 만드는 데에도 역시 인과의 보응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겠는가 ?

 

此喩雖淺近鄙俚, 亦可謂明且盡矣. 所謂陰陽五行之氣 相推迭運 參差不齊.

이 비유는 비록 비근한 것이기는 하지만 극히 명백하여 두말할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른바 음양오행의 기는 서로 밀고 엇바뀌어 운행되어서 서로 드나들어 가지런하지 않다.

 

而人物之萬變生焉. 其理 亦猶是也.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만번 변하여 태어나는 것이니, 그 이치가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聖人 設敎 使學者變化氣質 至於聖賢 治國者 轉衰亡而進治安.

성인은 가르침을 베풀어, 배우는 사람에게 기질을 변화하여 성현에 이르게 하는가 하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쇠망을 바꾸어 치안으로 나아가게 한다.

 

此聖人所以廻陰陽之氣 以致參贊之功者 佛氏因果之說 豈能行於其間哉.

이것은 성인이 음양의 기를 돌이켜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공에참여하여 돕는 까닭이다. 어찌 불씨의 인과설이 그 가운데에 용납될 수 있겠는가.

 

 

 

佛氏心性之辨 a005_449c [DCI]ITKC_MO_0024A_0120_010_0030_2003_A005_XML DCI복사 URL복사 心者。人所得於天以生之氣。虛靈不昧。以主於一身者也。性者。人所得於天以生之理。純粹至善。以具於一心者也。蓋心有知有爲。性無知無爲。故曰。心能盡性。性不能知檢其心。又曰。心統情性。又曰。心者。神明之舍。性則其所具之理。觀此。心性之辨可知矣。彼佛氏以心爲性。求其說而不得。乃曰。迷之則心。悟之則性。又曰。心性之異名。猶眼目之殊稱。至楞嚴曰圓妙 a005_449d明心。明妙圓性。按楞嚴經曰。汝等遺失本妙。圓妙明心。寶明妙性。認悟中迷。言心則從妙起明。圓融照了。如鏡之光。故曰。圓明妙心。性則卽明而妙。凝然寂湛。如鏡之體。故曰寶明妙性。 以明與圓。分而言之。普照曰。心外無佛。性外無法。又以佛與法分而言之。似略有所見矣。然皆得於想象髣髴之中。而無豁然眞實之見。其說多爲遊辭而無一定之論。其情可得矣。吾儒之說曰。盡心知性。此本心以窮理也。佛氏之說曰。觀心見性。心卽性也。是別以一心見此一心。心安有二乎哉。彼亦自知其說之窮。從而遁之曰。以心觀心。如以口齕口。當以不觀觀之。此何等語歟。且吾儒曰。方寸之間。虛靈不昧。具衆理應 a005_450a萬事。其曰。虛靈不昧者。心也。具衆理者。性也。應萬事者。情也。惟其此心具衆理。故於事物之來。應之無不各得其當。所以處事物之當否。而事物皆聽命於我也。此吾儒之學。內自身心。外而至於事物。自源徂流。一以通貫。如源頭之水。流於萬泒。無非水也。如持有星之衡。稱量天下之物。其物之輕重。與權衡之銖兩相稱。此所謂元不曾間斷者也。佛氏曰。空寂靈知。隨緣不變。按佛氏以爲眞淨心。隨緣是相。不變是性。如一眞金。隨大小器物。等是隨緣相也。本金不變是性也。一眞淨心。隨善惡染淨。等是隨緣相也。本心變性也。 無所謂理者具於其中。故於事物之來。滯者欲絶而去之。達者欲隨而 a005_450b順之。其絶而去之者。固已非矣。隨而順之者。亦非也。其言曰。隨緣放曠。任性逍遙。聽其物之自爲而已。無復制其是非而有以處之也。是其心如天上之月。其應也如千江之影。月眞而影妄。其間未嘗連續。如持無星之衡。稱量天下之物。其輕重低昂。惟物是順。而我無以進退稱量之也。故曰。釋氏虛。吾儒實。釋氏二。吾儒一。釋氏間斷。吾儒連續。學者所當明辨也. 해석.
 

ChatGPT said:

ChatGPT

이 글은 유교와 불교의 심성(心性) 개념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유교적 관점에서 불교의 심성과 인식론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글은 유교와 불교의 심성에 대한 이해 차이를 비교하여, 유교의 철학적 우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란 사람에게 하늘로부터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으로, 허정(虛靈)하며 어둡지 않으며, 몸 전체를 주관하는 것입니다. 성(性)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이치로, 순수하고 지극히 선하며, 마음에 내재된 것입니다. 마음은 지각과 행동이 있지만, 성은 지각과 행동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성을 다할 수 있으나, 성은 마음을 알거나 검열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또한 "마음은 정(情)과 성을 통솔한다"라고 하며, "마음은 신명이 머무는 곳이고, 성은 그 안에 갖추어진 이치이다"라고도 합니다. 이를 통해 마음과 성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마음을 성이라고 하며, 그 의미를 명확히 밝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잃으면 마음이고, 깨달으면 성이다"라고 하며, "마음과 성은 이름만 다를 뿐이다. 이는 눈과 눈동자의 차이와 같다"라고 합니다. 《능엄경》에서는 "완전하고 미묘한 밝은 마음, 밝고 미묘한 완전한 성"이라고 말합니다. 《능엄경》에 따르면 "그대들은 본래의 미묘하고 완전한 밝은 마음과 보배 같은 밝은 미묘한 성을 잃어버렸다. 깨달음 중에서 혼미해져 마음이라고 말하며, 미묘함에서 밝음을 얻으면 완전히 투명하게 비춘다. 거울의 빛처럼, 그래서 완전한 밝은 미묘한 마음이라고 한다. 성은 밝음으로 미묘해지고, 고요하고 잔잔하여 거울의 본체와 같으니, 그래서 보배 같은 밝은 미묘한 성이라 한다"라고 합니다. 마음과 성을 밝음과 완전함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또한 "마음 밖에는 부처가 없고, 성 밖에는 법이 없다"라고도 하며, 부처와 법을 나누어 말함으로써 약간의 이해를 얻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상상 속에서 어렴풋이 얻은 것일 뿐이며, 명확하고 참된 견해가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대부분 유동적인 말일 뿐, 일관된 논리가 없습니다.

유학에서는 "마음을 다해 성을 알라"라고 하며, 이는 본래 마음을 통해 이치를 궁구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관조하여 성을 보라"고 하며, 마음이 곧 성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의 마음을 통해 다른 하나의 마음을 본다는 것이니, 마음이 어찌 두 개일 수 있겠습니까? 불교도들 역시 자신들의 주장이 궁지에 몰렸음을 알고는 "마음을 통해 마음을 관조한다. 이는 입으로 입을 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관조하지 않는 것으로 관조하라"고 도피하듯 말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란 말입니까?

유학에서는 "마음속은 허정하고 어둡지 않으며, 모든 이치를 갖추어 만사를 대처한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허정하고 어둡지 않다"는 것은 마음이고, "모든 이치를 갖추다"는 것은 성이며, "만사에 대처하다"는 것은 정입니다. 이 마음이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물에 대처할 때 각기 그에 맞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물이 나에게 달려 있게 하는 것이며, 유학의 학문은 내적으로는 심신에서, 외적으로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근본에서부터 흐름으로 이어지며, 모든 것을 관통합니다. 이는 마치 물의 근원에서부터 만천(萬川)으로 흘러가는 것이 모두 물인 것과 같습니다. 또한, 별이 없는 저울로 온 세상의 물건을 달아서 그 무게를 잰다면, 물건의 경중(輕重)이 저울의 저울대와 완전히 맞아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래부터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공(空)과 적(寂) 속에서 영지(靈知)가 따라 움직이되 변하지 않는다"고 하며, 참된 깨끗한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은 상(相)이요, 변하지 않는 것은 성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순금이 크고 작은 그릇에 따라 변하는 것이 상이요, 금 본래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 것이 성입니다. 하나의 참된 깨끗한 마음이 선악, 더러움과 깨끗함에 따라 변하는 것이 상이요, 본래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 성입니다.

불교는 이 이치를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물이 오면 막히는 자는 그것을 끊고 버리려 하며, 통달한 자는 그것을 따라 순응하려 합니다. 그것을 끊고 버리려 하는 것은 이미 그르친 것이며, 따라 순응하려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들은 "따라 움직이며 방임하고, 마음대로 유유자적한다"고 말하며, 사물이 스스로 되도록 내버려 두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대처하지 않습니다. 이는 그 마음이 하늘의 달과 같아서, 그 응답이 마치 천 개의 강물에 비친 달의 그림자와 같아, 달은 참되지만 그림자는 허망한 것과 같아서, 그 사이에는 연속성이 없습니다. 이는 별이 없는 저울로 온 세상의 물건을 달아서 그 무게를 재는 것과 같아, 물건의 경중과 저울의 움직임은 오직 물건에 순응하는 것뿐이며, 나에게는 이를 측정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허(虛)하고, 유학은 실(實)하며, 불교는 이중적이고, 유학은 일관적이며, 불교는 단절적이고, 유학은 연속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학자가 명확히 분별해야 할 점입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유교와 불교의 심성에 대한 이해 차이를 명확히 하여, 유교의 심성 이론이 보다 일관되고, 참된 진리에 가까우며, 불교의 이론이 허망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학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③ 불씨심성지변(佛氏心性之辨)

 

心者 人所得於天以生之氣 虛靈不昧 以主於一身者也 性者 人所得於天以生之理 純粹至善 以具於一心者也.

마음[]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가지고 태어난 기()로서, 허령불매(虛靈不昧:마음에 잡념이 없고 신령하여 어둡지않음)하며, 이것이 한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가지고 태어난 이()로서, 순수(純粹)하고 지극히 선()하며 한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蓋心有知有爲 性無知無爲 故曰 心能盡性 性不能知檢其心 又曰心統情性 又曰心者神明之舍 性則其所具之理.

대개 마음[]에는 지각(知覺)과 행위(行爲)가 있으나, ()는 지각도 행위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은 능히 성()을 다할수가 있으나, ()은 마음을 검속(檢束)할 줄을 알지 못한다."하고, 또 말하기를, "마음[]은 정()과 성()을 모두 통합한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마음[]이란 것은 신명(神明)[]이요, ()은 그 갖추어진 바의 이치[]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觀此心性之辨可知矣 彼佛氏以心爲性 求其說而不得 乃曰迷之則心悟之則性 又曰心性之異名 猶眼目之殊稱.

이것으로 볼 때, 마음[]과 성()의 분변(分辨)을 알 수 있다.그런데 저 불씨(佛氏)는 마음을 가지고 성()이라 하고서 그 설을 구하다가 되지 않으니까 이윽고 말하기를, "혼미[]하면 마음이요, 깨달으면[] ()이다."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마음[]과 성()의 이름이 다른 것은 마치 안()과 목()의 명칭이 다른 것과 같다."고 하였다.

 

嚴曰圓妙明心 明妙圓性 以明與圓分而言按嚴經曰 汝等 遺失本妙 圓妙明心 寶明妙性 認悟中迷言 心則從妙起明 圓融照了 如鏡之光 故曰圓明妙心 性則卽明而妙 凝然寂湛 如鏡之體 故曰 寶明妙.

<<능엄경>>( 嚴經)에 말하기를, "원묘(圓妙)는 명심(明心), 명묘(明妙)는 원성(圓性)이다."하니 이는 명()과 원()

나누어서 말한 것이다. <<능엄경>>(楞嚴經)"너희들은 본묘(本妙)를 잃어버렸도다.원묘(圓妙)는 명심(明心)이요, 보명(寶明)은 묘성(妙性)이니라.깨달음을 얻은 경지에서는 말이 필요하지 않으니, 마음은 묘로부터 명()을 일으키는지라, 그 원융(圓融)하게 비춤이 거울의 빛과 같으므로 '원묘는 명심'이라 하고, 성품은 그 자체가 곧 명()하며 묘()한지라, 엉기어 고요하고도 맑음이 거울의 본체와 같으므로 '보명은 묘성'이라 한다."고 하였다.)

 

普照曰 心外無佛 性外無法 又以佛與法分而言之 似略有所見矣 然皆得於想象방불之中 而無豁然眞實之見 其說多爲遊辭而無一定之論其情可得矣.

보조(普照)는 말하기를, "마음 밖에 부처[]가 없으며, ()밖에 법()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는 또한 불()과 법()

나누어 말한 것이다. 이는 통찰[]한 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그러나 모두가 방불한 가운데 상상(想象)으로 얻은 것이요,활연(豁然)히 진실되게 본 것이 없어, 그 설에 헛된 말[遊辭]많아 일정한 논()이 없으니, 그 실정을 알 수 있다.

 

吾儒之說曰 盡心知性 此本心以窮理也.

우리 유가(儒家)의 설에 말하기를, "마음을 다하면 성()을 안."고 하였으니, 이것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여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佛氏之說曰 觀心見性 心卽性也 是別以一心見此一心 心安有二乎哉 彼亦自知其說之窮 從而遁之曰以心觀心 如以口口 當以不觀觀之 此何等語歟.

그런데 불씨의 설에서는 말하기를, "마음을 관()하면 성()보나니, 마음이 곧 성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따로 한 마음을가지고 이 한 마음을 본다는 것이니, 마음이 어찌 둘이 있겠는. 저들도 스스로 그 설의 궁함을 알았는지라, 이에 둔사(遁辭)하여 말하기를, "마음으로 마음을 보는 것은 마치 입으로 입을깨무는 것과 같으니, 마땅히 관()하지 않는 것으로써 관()야 하느니라."고 하니, 이것은 무슨 말인가?

 

且吾儒曰 方寸之間 虛靈不昧 具衆理 應萬事 其曰虛靈不昧者心也具衆理者性也 應萬事者情也 惟其此心具衆理 故於事物之來 應之無不各得其當 所以處事物之當否 而事物皆聽命於我也.

또 우리 유가(儒家)의 말에, "한 가슴[方寸]의 사이가 허령불매(虛靈不昧:마음에 잡념이 없고 신령하여 어둡지 않음)하여 모든이치(理致)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한다." 하였는데, 여기에서 허령(虛靈)하여 어둡지 않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요, 든 이치를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성()이요, 만사(萬事)에 응한다고 하는 것은 정()이다. 오직 이 마음이 모든 이치를 갖추고있으므로 사물(事物)의 오는 것에 응()하여 각각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함이 없는 것이니, 사물의 마땅하고 마땅치 않은 것을 처리함에 있어 모든 사물이 다 나의 명령을 듣기 때문이다.

 

此吾儒之學 內自身心 外而至於事物 自源流 一以通貫 如源頭之水 流於萬派 無非水也 如持有星之衡 稱量天下之物 其物之輕重 與權衡之銖兩 相稱 此所謂元不曾間斷者也

이것은 우리 유가(儒家)의 학문이 안으로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밖으로는 사물에 이르기까지, 근원에서부터 말류(末流)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관통되어 원두(源頭;근원처)의 물이 만갈래로 흘러도 물 아님이 없음과 같고, 눈금이 있는 저울을 가지고 천하의 만물을 저울질하면 그 물건의 경중(輕重)이 저울대의 저울눈과 서로 맞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이른바 원래부터 일찍이 간(間斷)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佛氏曰 空寂靈知 隨緣不變 按佛氏以爲 眞淨心隨緣是相 不變是性如一眞金 隨大小器物 等是隨緣相也 本金不變是性也 一眞淨心 隨善惡染淨 等是隨緣相也 本心不變性也.

불씨(佛氏)는 말하기를, "공적(空寂)한 영지(靈知)는 연()따라 변하지 않는다." 하였다.

불씨는 말하기를, "진정(眞淨)한 마음이 연()을 따라 변하는 것은 상()이고, 변하지 않는 것은 성()이니, 마치 한

진금(眞金)이 크고 작은 그릇을 따르는 것은 곧 연()을 따르는 상이고, 진금 그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것은 곧 성()인 것과 같." 하니, 하나의 진정한 마음이 선악(善惡)을 따라 더럽혀지거나 깨끗해지는 것은, 곧 연()을 따르는 상()이고, 본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성()이라는 것이다.

 

無所謂理者具於其中 故於事物之來 滯者欲絶而去之 達者欲隨而順之 其絶而去之者固已非矣 隨而順之者亦非也.

이른바 이()란 것이 그 가운데에 갖추어져 있지 않으므로, 물을 대함에 막힌[]것은 끊어버리고자 하고 트인[]것은 따라순종하고자 하는데, 그 끊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원래 잘못이거니 와 따라 순종하고자 하는 것도 또한 잘못이다.

 

其言曰 隨緣放曠 任性逍遙 聽其物之自爲而已 無復制其是非而有以處之也 是其心如天上之月 其應也如千江之影 月眞而影妄 其間未嘗連續 如持無星之衡 稱量天下之物 其輕重低昻 惟物是順 而我無以進退稱量之也.

그의 말에, "()을 따라 되는대로 하고, ()에 맡겨 자연스럽게 한다." 하니, 그 물()의 하는대로를 따를 뿐이요, 다시

그 시비(是非)를 절제(節制)하여 처리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그 마음은 하늘 위의 달과 같고 그 마음의 응함은 천강(千江)달그림자와 같으니, 달은 참된 것이요, 그림자는 헛된 것이어서,그 사이에 일찍이 연속됨이 없는 것이며, 마치 눈금이 없는 저울을 가지고 천하의 만물을 저울질하는 것과 같아, 그 가볍고 무겁,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은 오직 물건에 따를 뿐, 자기가 진퇴(進退)하여 칭량(稱量)함이 없는 것이다

 

釋氏二 吾儒一 釋氏間斷 吾儒連續 學者所當明辨也.

그러므로 "석씨(釋氏)는 허무이고 우리 유가(儒家)는 진실이며,석씨는 둘이고 우리 유가는 하나이며, 석씨는 간단(間斷)이 있고우리 유가는 연속(連續)되는 것이다." 하는 것이니,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밝게 분변(分辨)해야 할 것이다.

 

 

 

 

 

 

 

佛氏作用是性之辨 a005_450b [DCI]ITKC_MO_0024A_0120_010_0040_2003_A005_XML DCI복사 URL복사 愚按佛氏之說。以作用爲性。龐居士曰。運水搬柴。無非妙用。是也。按龐居士偈曰。日用事無別。唯吾自偶諧。頭頭須取舍。處處勿張乖。神通幷妙 a005_450c用。運水及搬柴。 蓋性者。人所得於天以生之理也。作用者。人所得於天以生之氣也。氣之凝聚者爲形質爲神氣。若心之精爽。耳目之聰明。手之執足之奔。凡所以知覺運動者。皆氣也。故曰。形旣生矣。神發知矣。人旣有是形氣。則是理具於形氣之中。在心爲仁義禮智之性。惻隱羞惡辭讓是非之情。在頭容爲直。在目容爲端。在口容爲止之類。凡所以爲當然之則而不可易者是理也。劉康公曰。人受天地之中以生。所謂命也。故有動作威儀之則。以定命也。其曰。天地之中者。卽理之謂也。其曰。威儀之則者。卽理之發於作用者也。 a005_450d朱子亦曰。若以作用爲性。則人胡亂執刀殺人。敢道性歟。且理。形而上者也。氣。形而下者也。佛氏自以爲高妙無上。而反以形而下者爲說。可笑也已。學者須將吾儒所謂威儀之則與佛氏所謂作用是性者。內以體之於身心。外以驗之於事物。則自當有所得矣。해석.
 

ChatGPT said:

ChatGPT

이 글에서는 불교와 유교의 성(性)과 작용(作用)에 대한 개념을 비교하며, 유교적 관점에서 불교의 성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해석입니다.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성과 작용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불교에서는 작용을 성이라고 여기는데, 방거사(龐居士)는 "물을 나르고 장작을 패는 것 모두가 미묘한 작용이다"라고 말하였다. 방거사의 게송에 따르면, "일상생활의 일에 특별한 것이 없으니, 오직 나 자신만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뿐이다. 매 순간마다 선택과 배제가 필요하며, 모든 곳에서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신통력과 묘한 작용은 물을 나르고 장작을 패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성(性)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이치이며, 작용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어 생명을 유지하는 기운이다. 기운이 응집된 것이 형체와 기운이 되어, 예를 들어 마음의 정밀함과 맑음, 귀와 눈의 명민함, 손의 잡는 능력, 발의 달리는 능력 등 모든 지각과 운동을 담당하는 것이 모두 기운이다. 그래서 "형체가 생기면 신이 지각을 발휘한다"고 한다. 사람이 이 형체와 기운을 가지게 되면, 그 안에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마음에 있어서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성(性)으로, 슬픔과 두려움, 겸양과 사양, 옳고 그름의 감정이 그에 해당한다. 또한, 머리의 자세는 곧게, 눈의 자세는 단정하게, 입의 자세는 조용하게 유지하는 것 등, 모든 당연한 규칙으로서 바꿀 수 없는 것이 이치이다. 유강공(劉康公)은 "사람은 천지의 중심을 받아 생명을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명(命)이다. 따라서 동작과 위의(威儀)에는 그에 맞는 법도가 있어야 명이 확정된다"고 했다. 여기서 '천지의 중심'이란 곧 이치를 말하며, '위의의 법도'는 이치가 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주자(朱子)도 "만약 작용을 성으로 본다면, 사람이 함부로 칼을 들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이치란 형이상(形而上)적인 것이고, 기운은 형이하(形而下)적인 것이다. 불교는 스스로를 높고 미묘하며 최고라고 여기지만, 도리어 형이하적인 것을 말하고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학자들은 유교에서 말하는 위의의 법도와 불교에서 말하는 작용이 곧 성이라는 주장을 몸과 마음에 체득하고, 외적으로는 사물에 대해 검증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불교가 성을 작용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성이란 형이상학적인 이치로 이해되며, 작용은 기운의 움직임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필자는 불교가 이 두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보며, 학자들이 유교의 개념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佛氏作用是性之辨

<불가에서 '作用이다'라고 한 것에 대한 논변>

 

愚按, 佛氏之說, 以作用爲性, 龐居士 曰, 運水搬柴, 無非妙用,

是也.

 

내가 생각하기에, 불씨의 설에서는, 작용을 성이라 여기는데,

거사가 '물을 나르고 땔나무를 옮기는 것이 신묘한 작용이 아닌

것이 없다'라고 말했으니 이것이다.

 

, 龐居士偈 曰, 日用事無別, 唯吾自偶諧, 頭頭須取舍, 處處勿

張乖 , 神通幷妙用, 運水及搬柴.

 

:방거사가 게송에서 말했다. 날마다 행하는 일이 별다름이 없

으니, 오직 내 스스로 짝하여 일을 성취한다. 각각 모름지기 수

용할 것을 취하고, 곳곳에서 어긋나지 말면 신통이 아울러 신묘

한 작용을 겸하게 되니, 물을 나르고 땔나무를 운반하는 것이다.

 

蓋性者, 人所得於天以生之理也, 作用者, 人所得於天以生之氣也.

 

대개 성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 생겨난 이고, 작용이

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서 생겨난 기이다.

 

氣之凝聚者爲形質, 爲神氣, 若心之精爽, 耳目之聰明, 手之執,

之奔, 凡所以知覺運動者 皆氣也.

 

기가 엉기어 모인 것이 형질이 되고, 신기가 되는데, 이같은 마

음의 精爽이나, 귀와 눈의 총명함이나, 손의 잡음이나, 발의 달

림은 무릇 지각하고 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기이다.

 

故曰, 形旣生矣, 神發知矣, 人旣有是形氣, 則是理具於形氣之中.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 이미 생겨 났으면, 이 지를 발한다.'

라 한 것이니, 사람이 이미 이 형기가 있으면, 곧 이 가 형기

중에 갖추어 진다.

 

在心爲仁義禮智之性, 惻隱羞惡辭讓是非之情, 在頭容爲直, 在目容

爲端, 在口容爲止之類, 凡所以爲當然之則而不可易者, 是理也.

 

마음에 있어서 仁義禮智惻隱羞惡辭讓是非

이 되며, 머리 모양에 있어서는 직이 되며, 눈 모양에 있어서는

단이 되며, 입모양에 있어서는 가 되는 류들은, 무릇 당연한

법칙이 되는 까닭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이다.

 

劉康公曰, 人受天地之中以生, 所謂命也, 故有動作威儀之則, 以定

命也.

 

유강공이 말하기를 "사람이 천지의 중을 받아서 태어 났으니,

른바 명이다. 그러므로 동작위의의 법칙이 있어서, 이로써 명

을 정한다"라고 했다.

 

其曰天地之中者, 卽理之謂也, 其曰威儀之則者, 卽理之發於作用者

.

 

그가 말한 '天地之中'이란 것은 바로 를 일컫는 것이며, '위의

의 법칙'이란 것은 바로 가 작용에서 발하는 것이다.

 

朱子亦曰, 若以作用爲性則人胡亂執刀殺人敢道性歟.

 

주자 또한 말하기를 "만약 작용을 성이라 여긴다면, 곧 사람이

거칠고 난잡하게 칼을 잡고 사람을 죽인다면 감히 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라 하였다.

 

且理, 形而上者也, , 形而下者也, 佛氏自以爲高妙無上, 而反以

形而下者爲說, 可笑也已.

 

또한 는 형이상의 것이고 기는 형이하의 것인데, 불씨는 스스

로 고묘하며 무상하다라고 여기면서, 반대로 형이하의 것을 말하

니 가소로울 뿐이다.

 

學者須將吾儒所謂威儀之則, 與佛氏所謂作用是性者, 內以體之於身

, 外以驗之於事物, 則自當有所得矣.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우리 유가의 이른바 '위의의 법칙'과 불씨

의 이른바 '작용이 성이다'라는 것으로써 안에서는 신심에의 체

험으로써 하고 밖으로는 사물에의 증험으로 하면, 저절로 마땅

히 얻는 바가 있으리라.

 

佛氏心跡之辨

 

心者 主乎一身之中 而跡者心之發於應事接物之上者也. 故曰 有是

心 必有是跡 不可判而爲二也.

 

마음이라는 것은 한 몸 가운데의 주가 되는 것이요, 이라는 석

은 마음이 일에 응하고 물에 접하는 위에 발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이 이 있다.'고 하였으니

가희 둘로 나눌 수 없는 것이다.

 

蓋四端五典萬事萬物之理 渾然具於此心之中 其於事物之來 不一其

變 而此心之理 隨感而應 各有攸當而不可亂也.

 

대개 사단이나 오전이나 만사, 만물의 이치는 혼연히 이 마음 가

운데에 갖추어져 있는지라, 그 사물이 옴에 있어서 변함이 한결

같지 않으나 이 마음의 는 느낌에 따라 응하여 각각 마땅한

바가 있어 어지럽힐 수가 없는 것이다.

 

人見孺者匍匐入井 便有출척惻隱之心 是其心有仁之性 故 其見孺者

也 發於外者 便惻然 心與跡 果有二乎. 曰羞惡 曰辭讓 曰是非 莫

不皆然.

 

어린 아이가 우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모

두 깜짝 놀라 어쩌나 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기 마련이

, 이는 그 마음에 인의 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어린

아이를 볼 때 밖으로 발하는 것은 바로 측연한 것인데 마음과

이 과연 둘이겠는가 ? 羞惡辭讓이니 是非니 하는 것도 모두

이와 마찬가지이다.

 

次而及於身之所接 見父則思孝焉 見子則思慈焉 至於事君以忠 使臣

以禮 交友以信 是孰使之然耶. 以其心有仁義禮智之性 故發於外者

亦如此. 所謂體用一源 顯微無間者也.

 

다음으로 내 몸에 접하는 바에 비추어 보자. 아버지를 보면 효도

할 것을 생각하고, 아들을 보면 사랑할 것을 생각하고, 임금을

섬김에는 충성으로 하고, 신하를 부림에는 예로써 하고, 벗을 사

귐에는 신으로 하는 것, 이런 것은 누가 그렇게 시켜서 하는 것

일까 ? 그 마음에는 인의예지의 성이 있기 때문에 밖으로 발하

는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이른바 체와 용이 한 근원이요, 현과

미에 사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彼之學 取其心 不取其跡, 乃曰 文殊大聖 遊諸酒肆 跡雖非而心則

是也. 他如此類者 甚多 非心跡之判歟.

 

그런데 저들의 학은 그 마음을 취하나 그 을 취하지 않고,

방하여 말하기를, "문수보살이 술집에서 놀았는데, 그 행적은 비

록 그르나 그 마음은 옳다."고 하는가 하면, 그들에게는 이런 유

의 것이 매우 많으니, 이는 마음과 행적이 판이한 것이 아니냐 ?

 

程子曰 佛氏之學 於敬以直內 則有之矣 義以方外 則未之有也.

滯固者入於枯槁 疏通者 歸於恣肆 此佛氏之敎 所以隘也. 然 無義

以方外 其直內者 要之亦不是也.

 

정자는 말하기를, "불씨의 학에는 경으로 안을 곧게 함은 잇으

, 의로써 밖을 방정케 함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막히어 고루

한 자는 고고한데로 들어가고, 소통한 자는 방자한 데로 돌아가

, 이것은 불시의 교가 좁은 까닭이다." 그러나 의로서 밖을 방

정케 함이 없으면 그 안을 곧게 한다는 것도 결국은 옳지 않다.

 

王通儒者也 亦曰 心跡判矣 蓋惑於佛氏之說 而不知者也. 故 幷論

.

 

왕통이란 사람은 유학자이면서도 또한 말하기를, "마음과

판이한 것이다."하였으니, 불씨의 설에 미혹된 무지한 자다.

러므로 여기에 아울러 언급해 둔다.

 

 

佛氏昧於道器之辨

 

道則理也, 形而上者也. 器則物也, 形而下者也.

 

란 것은 이니 형이상의 것이요, 란 것은 이니 형이하의

것이다.

 

蓋道之大原 出於天而無物不有 無時不然, 卽身心而有身心之道 近

而卽於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遠而卽於天地萬物 莫不各有其道焉.

 

대저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와 물에 있지 않음이 없고 때에

그러하지 않음이 없으니, 곧 신심에는 신심의 도가 있어 가까이

는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에서 멀리는 천지만물에 그 도

가 있지 않음이 없다.

 

人在天地之間, 不能一日離物而獨立. 是以, 凡吾所以處事接物者,

亦當各盡其道, 而不可或有所差謬也.

 

사람이 천지의 사이에 있으며 하루도 물에서 떨어져 홀로 서있을

수가 없다. 이런 까닭에 대개 내가 일에 처하여 사물에 접하는

것이 또한 마땅히 각각 그 도를 다하여 혹시라도 어긋남이 있을

수 없다.

 

此吾儒之學, 所以自心而身而人而物, 各盡其性 而無不通也.

 

이는 우리 유자의 학문으로 마음으로부터 자신에게 타인에게 사

물에 각각 그 을 다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다.

 

蓋道雖不雜於器, 亦不離於器者也.彼佛氏之道, 雖無所得 以其用

心積力之久, 방불若有見處, , 如管窺天, 一向直上去, 不能四通

八達, 其所見必陷於一偏.

 

대개 도라는 것은 기에 섞이지도 않고 또한 기에서 떠나지도 않

는다. 저 불씨의 도는 비록 얻을 바는 없으나, 마음을 쓰고 힘을

쌓은 것이 오래되어 방불하게 본것이 있는것 같다. 그러나 대롱

으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으니 한결같이 위로만 향하여 올라갈

, 능히 사통팔달하지 못하니 그 본것은 반드시 한 쪽의 치우

친데로 빠진다.

 

見其道不雜於器者, 則以道與器, 岐而二之, 乃曰 凡所有相, 皆是

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案 此一段, 出般若經, 言 目前

無法, 觸目皆如, 但知如是, 卽見如來>

 

그 도가 기에 섞이지 않는 것을 보고 도와 기를 나누어 둘로하여

이에 말하기를 " 대개 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만일 모

든 상을 상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볼것이다." <상고하건

, 이 일단은 반야경에서 나왔으니 "눈앞에 부딪히는 것은 모두

모두가 그러하다. 오직 이와 같은 것을 안다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必欲擺脫群有, 落於空寂, 見其道不離於器者, 則以器爲道, 乃曰

善惡皆心, 萬法唯識. 隨順一切, 任用無爲, 猖狂放恣, 無所不爲.

<案 善心將生, 隨順一切, 任用無爲. 惡心將生, 猖狂放恣, 無所

不爲. 心之所有, 識乃爲之, 惟善惟惡, 非心無識, 非識無心. 心識

相對, 善惡生滅.>

 

반드시 모든 존재를 파탈하려고 하다가, 공적에 떨어지는가 하

, 그 도가 기에서 떠나지 않음을 보고 기를 가지고 도라하여

이에 이르기를 "선과 악이 모두 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의식이

. 그러므로 일체에 수순하되, 하는 일이 다 자연 그대로 이기

도 하고, 그와 반대로 미쳐 날뛰어 하고 싶은 대로 하여 온갖 짓

을 못할 것이 없기도 하다." 고 한다.<상고하건데 선심이 생겨나

려 하니 일체에 수순하되 하는 일이 다 자연 그대로에 맞고,

한 마음이 생겨나려 하니 미쳐 날뛰고 하고 싶은 대로 하여 못할

짓이 없으니, 마음이 소유한 것 의식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나 악이나 마음이 아니면 의식이 없고, 의식이 아니면 마음도

없나니, 마음과 의식이 상대되어 선과 악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

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此 程子所謂 滯固者, 入於枯槁, 疏通者, 歸於恣肆者也. 然 其所

謂道者, 指心而言, 乃反落於形而下者之器而不自知也. 惜哉.

 

이는 정자가 이른바 막히어 고루한 자는 고고한 데로 들어가고

소통한 자는 방자한 데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의 이른바 도라는 것은 마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만, 이는 도

리어 형이하인 기에 떨어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 애

석하다.

 

 

佛氏毁棄人倫之辨

 

明道先生, "道之外無物이오, 物之外無道是天地之

無適而非道也.

 

명도선생이 이르기를 "도 밖에 물이 없고 물 밖에 도가 없다.

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어디를 가나 도가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卽父子하여는 而父子在所親이오 卽君臣하여는 而君臣在所嚴이오

 

以至 爲夫婦 爲長幼 爲朋友하여도 無所爲而非道所以不可須臾

離也.

 

부자에 이르러서는 부자의 친한 바에 있고, 군신에 이르러서는

군신의 엄한바에 있고, 부부와 장유와 붕우에 이르러서도 각각

도가 되지 아니하는 바가 없으니 이는 그것이 잠시도 떠날 수 없

는 것이기 때문이다.

 

然則, 毁人倫去四大 <, 四大 受, , , > 其分於道

. 又曰 "言爲無不周偏이나 而實則 外於倫理라하시니 先生之

盡矣."

 

그런즉 그들이 인륜을 허물어 뜨리고 사대를 버린<안 사대는 느

, 생각, 지어감, 의식이다.> 그것이 그 도에서 분리된 점이 멀

다 하겠다." 하고 또 이르기를 "말과 행위가 주변하지 않음이 없

건만 실은 윤리에 벗어나 있다."하였으니, 선생의 말이 극진하도

.

 

 

佛氏慈悲之辨

 

天地以生物爲心이요 而人得天地生物之心以生이라. 人皆

有不忍人之心이니 此卽所謂仁也.

 

하늘과 땅이 물을 생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았는데, 사람은 이

천지가 물을 생하는 마음을 얻어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

므로 사람은 모두가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니, 이것이 바

로 이른바 이다.

 

佛雖夷狄이나 亦人之類耳安得獨無此心哉리오. 吾儒所謂 惻隱

佛氏所謂慈悲皆仁之用也.

 

불씨는 비록 오랑캐이지만 역시 사람의 종류임에는 틀림없으

, 어찌 홀로 이러한 마음이 없으리오 ? 우리 유가의 이른바 측

은은 불씨의 이른바 자비이니 모두가 인의 쓰임이다.

 

其立言雖同이나 而其所施之方則大相遠矣. 蓋親與我同氣

者也與我同類者也與我同生者也.

 

그 말을 내세움은 비록 같으나 그 시행하는 방법은 서로 크게 틀

리다. 대게 육친은 나와 더불어 가 같은 것이요, 사람은 나와

더불어 가 같은 것이요, 물은 나와 더불어 이 같은 것이다.

 

仁心之所施自親으로 而人而物이니 如水之流 盈於第一坎

以後達於第二 第三之坎이라. 其本深故其及者遠이라.

 

그러므로 어진 마음의 베푸는 바는 육친에서부터 사람에, 물에게

까지 미쳐서 흐르는 물이 첬째 웅덩이에 가득찬 후에 둘째와 세

째의 웅덩이로 흘러 가는 것과 같다. 그 근본이 깊으면 그 미치

는 바도 먼 것이다.

 

擧天下之物無一不在吾仁愛之中이라. 曰 親親而仁民하고

仁民而愛物이니 此儒者之道 所以爲一爲實爲連續也.

 

온 천하의 물이 모두 나의 인애 속에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

"친한 이를 친하게 한 에 백성에게 어질게 하고 백성에게 어

질게 한 후에 만물을 사랑한다."고 하나니 이것은 유자의 도는

하나이고 실이며 연속이 된다는 까닭이다.

 

佛氏則不然하니 其於物也毒如豺虎하고 微如蚊망하여도 尙欲以

其身으로 위之而不辭하며

 

불씨는 그렇지 않다. 그는 물에 대하여서는 표독한 승냥이,호랑

이 같은 것에나 미세한 모기 같은 것에도 자기 몸을 뜯어 먹혀가

면서 아깝게 여기려 하지 않는가하면

 

其於人也越人有飢者어든 思欲推食而食之하고 秦人有寒

어든 思欲推衣而衣之하니 所謂布施者也.

 

사람에 대하여서는 월나라 사람이냐 진나라 사람이냐를 가리지

않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먹이려 들고 추위에 떠는 자에게는

옷을 밀어주어 입히려 드니, 이른바 보시(布施)라는 것이다.

 

若夫至親如父子至敬如君臣必欲絶而去之하니 果何意歟.

且 人之所以自重愼者以有 父母,妻子爲之顧籍也.

 

그런데 부자와 같은 지친에 대하여서나 군신과 같은 지극히 공경

하여야 할 데에 대하여서는 반드시 끊어 버리려 드니 이는 무슨

뜻인가 ? 그뿐인가, 사람이 스스로 신중을 기하는 것은 부모 처

자가 있어서 그것에 배려하기 때문이거늘,

 

佛氏 以人倫으로 爲假合하여 子不父其父하고 臣不君其君하여

義衰薄하고 視至親如路人하며 視至敬如弁모하여 其本源

先失이라.

 

불씨는 인륜을 가합이라 하여, 아들은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

기지 않고 신하는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아서, 은혜와 의

리가 강쇠하고 각박한지라 자기 지친 보기를 길 가는 사람같이

보고, 공경해야할 어른 대하기를 어린아이 대하듯이 하여 그 근

본과 원류를 먼저 잃어 버렸다.

 

其及於人物者 如木之無根하고 水之無源하여 易至枯竭이니

卒無利人濟物之效. 而授劒斬蛇에는 略無愛惜이오 地獄之說

極其慘酷하니 反爲小恩之人이라.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에 미치는 것이 뿌리없는 나무나 원류없는

물이 쉽게 고갈되는 것 같아, 끝내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만물을

구제하는 효과가 없다. 그런데 칼을 빼어 뱀을 죽이는 데는 조금

도 애석함이 없는가 하면, 지옥의 설은 참혹하기 그지 없으니,

도리어 은혜라고는 적은 사람이 된다.

 

向之所謂慈悲者 果安在哉. 然而此心之天終有不可得而昧者

. 雖昏蔽之極이라도 一見父母則孝愛之心油然而生하니

何不亦反而求之하고

 

앞서 이른바 자비란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 게다가 이 마음

의 천리는 끝내 어둡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극히 혼

폐한 사람일지라도 한번 부모를 보면 효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유연히 생겨나는 것인데, 어찌 돌이켜 구하지 않고,

 

而乃曰, 多生習氣未盡除. 愛根尙在라 하니 執迷不悟

莫此爲甚이라하니 佛氏之敎 所以無義無理라하여 而名敎所不容者

此也니라.

 

이에 말하기를 "전생의 많은 습기를 다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애착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다."라고 하니 미혹에 집착되어 깨닫

지 못함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불씨의 교는 의가 없고 리가

없는 까닭으로 명교[儒敎]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런 까

닭이다.

 

 

佛氏眞假之辨

 

佛氏以心性爲眞常, 以天地萬物爲假合. 其言曰 一切衆生種種幻化,

皆生如來圓覺妙心, 猶如空華及第二月. 又曰 空生大覺中如海一

, 有漏微塵國皆依空所立.

 

불씨는 마음과 성을 진상이라하고 천지만물을 가함된 것이라 하

여 그 말에 이르기를, "모든 중생과 가지가지의 환화가 모두 여

래의 원각묘심에서 나왔으니, 마치 허공에 나타나는 꽃이나 물에

비친 달(희미한 달)과 같다."하고, 또 말하기를 "공이 대각가운

데서 나오는 것은 바다에서 하나의 물거품이 발하는 것과 같으니

유루와 미진국이 모두다 공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다." 하였다.

 

佛氏之言 其害多端, 然滅絶倫理略無忌憚者, 此其病根也. 不得不

而藥之也. 蓋未有天地萬物之前, 畢竟先有太極而天地萬物之理

已渾然具於其中. 故曰 太極生兩儀 兩儀生四象, 千變萬化 皆從此

, 如水之有源 萬派有注 如木之有根 枝葉暢茂. 此非人智力之所

得而爲也. 亦非人智力之所得而.

 

불씨의 말에 그 해가 많으나 그러나 인륜을 끊어 버리고도 조금

도 기탄함이 없는 것이 이병의 근원이니 부득이 고쳐주지 않을

수 없다. 대게 천지 만물이 있기 전에 필경 먼저 태극이 있어 천

지 만물의 이치가 이미 혼연하여 그 가운데에 갖추어졌으니 고로

말하기를 "태극이 양의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을 생한다."고 하였

으니 천만가지의 변화가 다 이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물에 근원

이 있어 만 갈래로 흐르는 것과 같고 마치 나무에 뿌리가 있어서

가지와 잎이 무성한 것과 같으니 이것은 사람이 지혜와 힘이 얻

은 바로도 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然 此固有難與初學言者以其衆人所易見者而言之, 自佛氏歿至今數

千餘年 天地昆侖於上者 若是其確然也. 地之磅於下者 若是其

然也. 人物之生於其間者 若是其燦然也. 日月寒署之往來 若是其秩

然也.

 

그러나 이것은 진실로 초학자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어려우니 그

모든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는 것부터 말하리라. 불씨가 죽은지

이미 수천년이 지났다. 하늘이 땅위를 높이 덮는 것이 이와 같이

그 확연하고, 땅이 하늘 밑에 판판이 섞여 뻗는 것이 이와같이

그 뚜렷하며, 사람과 만물이 그 사이에 태어나는 것이 이와같이

그 찬연하며, 해와 달과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옴이 이와같이 그

정연하다.

 

是以天體至大 而其周圍運轉之度 日月星辰逆順疾徐之行 雖當風雨

晦明之夕而不能外於八尺之璣, 數寸之衡, 歲年之積 至於百千萬億

之多 而二十四氣之平分與 夫朔虛氣盈餘分之積 至於毫釐絲忽之微

而亦不能外於乘除之兩策.

 

이로써 천체는 지극히 크나 그 주위의 운전하는 법칙이나, 일월

성신의 꺼꾸로 가고 바로 가고 빨리가고 천천히 가는 운행은 비

록 비바람이 불고 어두운 저녁을 당하여도 능히 8척의 선기와

몇 촌의 옥형에 벗어날 수 없고 해의 쌓임도 수 억년에 이르러도

24절기의 고루 나누어짐과 삭허, 기영하는 여분의 쌓임이 아주

털끝같은 미세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능히 스과 제의 두 방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孟子所謂天之高也 星辰之遠也, 苟求其故 千歲之日至可坐而致者

此也. 是亦孰使之然歟. 必有實理爲之主張也. 且假者可暫於一時而

不可久於千萬世 幻者可欺於一人而不可信於千萬人 而以天地之常久

萬物之常生 謂之假且幻 抑何說歟. 豈佛氏無窮理之學求其說而不得

, 抑其心隘天地之大 萬物之衆 不得容於其中歟. 豈樂夫持守之約

而厭夫窮理之煩 酬 萬變之勞歟.

 

맹자가 이르기를 "하늘이 높고 성신이 멀더라도 진실로 그 연고

를 구한다면 천년 후의 동지라도 가히 앉아서 알 수 있다."

것이 이것이다. 이것은 또 누가 시켜서 그러한 것인가 ? 반드시

실한 이치가 있어 그렇게 되도록 주장하는 것이리라. 라는

것은 한 때에 잠시 가하고 천만년동안 오래도록 갈 수는 없는 것

이며, 이라는 것은 한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천만인을 믿게

할 수는 없는 것인데, 천지의 항구함이나 만물의 상생함을

하고 이라 하니 억측컨데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 불씨는 궁리

의 학이 없어 그 설을 구하여도 얻지 못함인가 ? 아니면 그 마음

이 좁아 천지의 큼이나 만물의 많음을 그 가운데에 포용하지 못

함인가 ? 아니면 지수의 요약만을 좋아하고 궁리의 번거로움이나

만변에 수응한다는 수고로움을 싫어함인가 ?

 

張子曰 明不能盡誣. 天地日月以爲幻妄 則佛氏受病之處 必有所自

. 要之其所見蔽 故其所言如此. 嗚呼惜哉. 予豈요요而多言者

. 予所言之而不已者, 正惟彼心之迷昧爲可憐 而吾道之衰廢爲可

憂而已耳.

 

장자가 이르기를 밝은 것은 다 속일 수 없다. 천지일월을 환망이

라 하니 불씨가 병을 받은 것은 반드시 유래가 있고 보는 바가

가려져 있는 고로 그 말하는 바의 치우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아아 애석하도다. 내 어찌 말 많이 하기를 좋아하겠는가마는 내

가 말을 그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저들이 마음이 미혹되고 어

두운 것이 가엾어서 우리의 도가 쇠하고 폐할까 가히 근심스럽

기 때문이다.

 

 

佛氏地獄之辨

 

先儒, 辨佛氏地獄之說 曰, "世俗信浮屠誘 凡有喪事無不供佛飯

僧云; '爲死者滅罪資福 使生天堂 受諸快樂 不爲者 必入地獄 挫燒

磨 受諸苦楚,' 殊不知死者形旣朽滅 神亦飄散 雖有磨 且

無所施, 又況佛法 未入中國之前 人固有死而復生者 何故都無一人

誤入地獄 見所謂十王者歟, 此其無有而未足信也 明矣."

 

선유가 불씨의 지옥설에 대하여 변석하기를, "세속에서 중들을

속이고 꾀이는 말을 믿고서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부처에게 공양

하고, 중을 대접한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죽은자의 죄를 없애

고 복을 받아 천당에 태어나 쾌락을 누리도록 하기위한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않으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몸이 짤리고,

태워지고, 찧이고, 갈리는 등의 갖은 고초를 받게 된다.'고 하는

, 이는 죽은 자는 육신이 썩어 없어지고 정신도 흩어져 버려

, 짜르고 불태우고 찧고 갈려고 하여도 그렇게 할 곳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모른 소치이다. 그리고 불법이 중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죽었다가 다시 회생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째서 한 사람

지옥에 들어가 그들이 말하는 지옥의 명부시왕을 본자가 없단 말

인가 ? 지옥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며, 믿을 수 없는 말임이 분명

하다." 하였다.

 

或曰, "釋氏地獄之說 皆是爲下根之人 設此怖令爲善耳" 程子曰, "

至誠貫天地 人尙有不化 豈有立僞敎而人可化乎." 昔有僧 問予曰,

"若無地獄 人何畏而不爲惡乎" 予曰, "君子之好善惡惡 如好好色

如惡惡臭 皆由中而出 無所爲而爲之 一有惡名至 則其心愧恥 若撻

于市 豈待地獄之說然後 不爲惡乎" 其僧黙然, 於此幷書之 世之

惑於其說者 知所辨焉.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석씨의 지옥설은 모두가 근기가 낮은 사

람들을 위해 그런 겁나는 지옥설을 만들어 착한 일을 하게 하려

는 것일 뿐이다." 하였다. 이에 대해 정자는, "천지간에 가득찰

정도의 지성으로도 오히려 다 감화시키지 못하는 것인데, 어떻게

거짓말로 하는 가르침에 사람이 감화될 수 있겠는가 ?" 하였다.

옛날에 어떤 중이 나에게 묻기를, "만일 지옥이 없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무엇이 무서워 악한 짓을 안 하겠느냐 ?" 하기에,

, "군자는 마치 예쁜 여자를 좋아 하듯이 선을 좋아하고, 고약

한 냄새를 싫어 하듯이 악을 싫어 하므로,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

오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한 번이라

도 악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사람 많은 시장에서 볼기를 맞는

것처럼 부끄러워 한다. 어찌 지옥설 때문에 악한 짓을 하지 않는

다고 하겠는가 ?" 하였더니 그 중은 아무말도 못하였다. 여기에

이 사실을 함께 써서, 그들의 말에 현혹되는 세속의 사람들이 분

별할 줄 알게 하고자 한다.

 

 

佛氏禍福之辨

 

天道 福善而禍淫 人道 賞善而罰惡 蓋由人 操心有邪正 行己有是非

而禍福各以其類應之.

 

하늘의 도는 선한이에게 복을 주고 악한이에게 화를 주며, 사람

의 도는 선한 이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나니, 대개

사람에게는 마음가짐에 사특함과 바름이 있고, 행동함에 옳고 그

름이 있어서, 화와 복이 각각 그 유에 따라 응하는 것이다.

 

詩曰 求福不回. 夫子曰 獲罪於天 無所禱也. 蓋君子之於禍福 正吾

心而已 修吾己而已 福不必求而自至 禍不必避而自遠

 

그러므로 시경에 "복을 구하되 되게는 하지 않는다."하였으며

공자는, "하늘에 죄를 받으면 빌 곳이 없다."하였으니 대게 군자

는 화복에 대하여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 자기 몸을 닦을 뿐이

지만, 복은 구태여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르고, 화는 구태여

피하지 않아도 저절로 멀어지는 것이다.

 

故曰 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 禍苟有自外而至者 順而受之而

. 如寒署之過於前 而吾無所與也.

 

그러므로 말하기를, "군자는 종신토록 할 근심은 있어도 하루 아

침의 근심은 없다."하나니, 밖으로부터 화가 닥쳐오더라도 순순

히 그것을 받을 뿐이지, 추위나 더위가 앞을 지나가는 것처럼 하

여 나 자신은 그것에 관여하지 아니한다.

 

彼佛氏則不論人之邪正是非 乃曰 歸吾佛者 禍可免而福可得. 是雖

犯十惡大者 歸佛則免之 雖有道之士 不歸佛則不免也. 假使其說

不虛 皆出於私心而非公道也 在所懲之也.

 

그러나 저 불씨는 사람의 邪正이나 시비는 논하지 않고 이에

말하기를, "우리 부처에게로 오는 자는 화를 면하고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비록 열 가지의 큰 죄악을 지은 사람

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면 화를 면하게 되고, 아무리 도가

높은 선비일지라도 부처에게 귀의하지 않으면 화를 면할 수 없다

는 말이다. 가령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 할지라도 모두 사심에서

나온 것이요, 공도가 아니니 징계해야 할 것이다.

 

況自佛說興 至今數千餘秊 其間事佛甚篤 如梁武唐憲者 皆不得免焉

韓退之所謂 事佛漸謹 秊代尤促者 此其說 不亦深切著明矣乎.

 

하물며 불설이 일어난 후 오늘에 이르는 수천 년 동안에 부처 섬

기기를 매우 독실하게 한 양 무제나 당 헌종과 같은 이도 모두

화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한퇴지가 이른바, "부처 섬기기를 더욱

근실하게 할수록 연대는 더욱 단축되었다."한 그 설이 또한 깊고

도 간절하고 뚜렷하지 않은가 ?

 

 

佛氏乞食之辨

 

食之於人 大矣哉. 不可一日而無食 亦不可一日而苟食, 無食則害性

名 苟食則害義理.

 

먹는다는 것은 사람에게 크다. 하루도 먹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하루라도 구차하게 먹을 수 없으니 먹지 않으면 성명을 해치고

구차하게 먹으면 의리를 해치기 때문이다.

 

洪範八政 食貨爲先, 重民五敎 惟食居首. 子貢問政則夫子以足食告

. 此古之聖人 知生民之道 不可一日而無食故 皆汲汲於斯 敎以稼

穡 制以貢賦軍 國有須祭祀 賓客有給 鰥寡老幼 有養而無乏飢

餓之歎, 聖人之慮民 遠矣.

 

홍범팔정에서는 음식과 재화가 먼저고, 중민요교에서는 음식이

선두에 있으며, 자공이 정치를 물은 즉 부자께서는 넉넉히 먹는

것이다라고 이르니, 이는 예 성인이 백성을 살리는 길은 하루도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을 알므로 모두 이것에 급급하여 곡식을

심고 거두는 것을 가르치고 조세와 군으로 통제했으며, 나라에

반드시 제사가 있고, 손님에겐 접대함이 있고, 홀아비와 과부,

노인과 어린이에게는 봉양과 양육함이 있어서 모자람이나 굶주림

의 한탄이 없었다. 성인의 백성을 우려함은 멀기도 하다.

 

上而天子公卿大夫治民而食, 下而農工商賈 勤力而食, 中而爲士者

入孝出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而食. 此古之聖人 知其不可一

日而苟食 故自上達下 各有其職 以受天養 其所以防民者 至矣.

居此列者 姦民也, 王法所必誅而不赦者也.

 

위로 천자와 공경대부는 백성을 다스려서 밑으로 농공상고는 근

면히 노력해서 중간의 선비된 자는 들어가서 효도하고 나아가

서는 우애로 선왕의 도를 지키고 후학을 기다려서 먹으니 이것이

옛 성인이 그 하루도 구차히 먹지 않았으므로 위로부터 밑에 이

르기까지 각각 그 직책이 있었으며 천부의 자양을 받아 그 백성

을 방비한 까닭이 지극했다. 이 대열에 끼이지 않은 자는 간사한

백성이다. 왕법의 반드시 죽여서 용서하지 않을 자인 것이다.

 

金剛經曰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城 乞食於其城中, 夫釋

迦牟尼者 以男女居室爲不義, 出人倫之外 去稼穡之事 絶生生之本

欲以其道 思以易天下 信如其道, 是天下無人也 果有可乞之人乎,

是天下無食也 果有可乞之食乎.

 

금강경에 이르기를 이때 세존은 먹을 때가 되어 옷을 입고 식기

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 그 성중에서 구걸하여 먹었다. 석가

모니는 남녀가 함께 사는 것을 의롭지 못하다고 하고 인륜이 밖

으로 벗어 났으며 농사짓는 일을 버려 생을 꾸려나가는 근본을

끊고서 그 도로 천하를 바꿀 생각을 했는데 만약 그 도를 믿는다

면 천하에 사람은 없을 것이니 결과적으로 얻어 먹을 사람이 있

겠는가 ? 또 천하에 먹을 것이 없을 것이니 과연 얻어 먹을 밥이

있겠는가 ?

 

釋迦牟尼者 西域王之子也. 以父之位爲不義而不居 非治民者也,

男耕女織爲不義而去之 何勤力之有. 無父子君臣夫婦則又非守先王

之道者也. 此人雖一日食一粒 皆苟食也. 信如其道 誠不食如

然後可也, 何爲乞而食乎. 且食在自力則爲不義而在乞則爲義乎.

氏之言 無義無理 開卷便見 故於此論而辨之.

 

석가모니는 서역왕의 아들이다.아버지의 지위를 의롭지 못하다

하고 떠났으니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다. 남자는 밭갈고 여

자는 베짜는 일을 의롭지 않다고 버렸으니 근면하게 노력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부자 군신 부부가 없으니 또 선왕의 도를 지킬

것이 없다. 이런 사람은 비록 하루 한톨을 먹어도 모두 구차하게

먹는 것이다. 그 도를 믿는 다면 진실로 먹지 않음이 지렁이 같

은 연후에나 가당할 것이니 어떻게 구걸을 해서 먹는단 말인가 ?

또 먹는 것이 자력으로 하면 의롭지 못한 것이고 구걸하면 의롭

단 말인가 ? 고로 이에 론해서 판단한다.

 

佛氏其初 不過乞食而食之耳. 君子尙且以義責之無小容焉. 今也 華

堂重屋 豊衣厚食 安坐而享之 如王者之奉, 廣置田園 藏獲文簿 雲

委過於公卷, 奔走供給 峻於公務 其道所謂斷煩惱出世間淸淨寡慾者

顧安在哉. 不惟坐費衣食而已, 假托好事 種種供養 饌食狼藉 壞裂

綵帛 莊嚴幢幡 蓋平民十家之産 一朝而費之. 噫 廢棄義理 旣爲人

倫之賊而暴殄天物 實乃天地之巨.

 

불씨는 처음에 구걸해서 먹었을 뿐이었다. 군자는 항상 의로써

책할 뿐, 조금의 용납도 없었는데 오늘날에는 화려하고 수많은

가옥 풍부한 옷과 음식을 앉아서 누리니 마치 왕 받드는 것 같

. 넓게 놓인 전답과 정원 저장한 것과 걷어들인 것의 문서가

구름처럼 쌓여서 공문서보다 많으며, 분주한 공급이 공무보다 빠

르다. 그 도의 이른바 번뇌를 끊고 세간을 떠나 깨끗하고 욕심없

이 산다는 것이 돌아 보건데 어디에 있는가 ? 뿐만아니라 앉아

서 먹고 입을 뿐이며 좋은 일을 빗대서 일일이 공양하여 반찬과

음식이 이리저리 널려 있으며, 수놓은 비단을 찢어 발겨서 깃발

을 장엄하게 하니 모두 평민의 열집의 산물을 하루 아침에 낭비

하는 것이다. 슬프다 ! 의리를 폐기함이 이미 인륜을 좀먹는 벌

레와 역적이며 천물을 마구써 탕진하니 실로 천지의 큰 좀벌레이

.

 

張子曰 上無禮以防其僞 下無學以稽其蔽, 非獨立不懼 精一自信 有

大過人之才, 何以正立其間, 與之較是非計得失哉. , 先正之所以

深致歎息者 豈偶然哉.豈偶然哉.

 

장자가 말하기를 위로는 예의없이 그 위선을 가리고, 밑에서는

배움이 없어 그 폐단을 조롱하니,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

나에 정순해서 스스로 믿음이 있으며 크게 남들을 능가하는 재능

이 없다면, 어떻게 그 간에 바로 설 것이며 더불어 시비를 비교

하고 득실을 계산할 것인가 ? 슬프다 ! 선왕의 깊이 탄식함이 어

찌 우연이겠는가 ? 어찌 우연이겠는가 ?

 

 

佛氏禪敎 之辨

 

佛氏之說其初不過論因緣果報 하여 광유 愚民耳.

 

불씨의 설이 그 처음에는 인연과 과보를 논하는데 불과하여 우민

을 속이어 꾀어낼 뿐이었다.

 

雖以虛無爲宗하여 廢棄人事尙有爲善得福하고 爲惡得禍之說

使人有所懲勸持身戒律하여 不至於放肆. 人倫雖毁

未盡喪了.

 

비록 허무를 종으로 삼아 인사를 폐기 하였으나, 오히려 선을 하

면 복을 얻고 악을 하면 화를 얻는다는 설이 있어 사람으로 하여

금 징계하고 권면하며 몸가짐을 바로하고 규율을 경계하는 바가

있어 방자함에 이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륜은 비록 어그러 졌

으나, 의리가 다 상하지는 않았다.

 

至達摩 入中國自知其說淺陋하여 不足以惑高明之士.

 

달마가 중국에 들어옴에 이르러 스스로 그 설이 낮고 비루 하여

족히 높고 밝은 선비를 미혹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於是"不立文字 라 하고 言語道斷 이라 하고 直指人心이라

하며 見性成佛 이라."하다.

 

이에 말하기를 불립문자, 언어도단,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고

하였다.

 

其說一出하니 捷徑便開하여 其徒轉相論述이라.

 

그 설이 한번 나오니 지름길이 문득 열리고 그 무리가 전하여 서

로 논술하였다.

 

"善亦是心이니 不可將心修心이요 惡亦是心이니 不可將心

斷心이라."하여 善惡懲勸之道絶矣.

 

혹은 말하기를 선 또한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닦는 것

은 불가하며, 악 또한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절단하는

것은 불가하다하여 선악으로 징계하고 권면하는 도(권선징악의

)가 끊어졌다.

 

"及淫怒癡, 皆是梵行 "이라 하여 戒律持身之道失矣

以爲不落窩臼하여 解縛去械하고 傲然出於禮法之外하여 放肆自恣

하며 汲汲如狂하여 無復人理하니 所謂義理者至此都喪也.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음행, 성냄, 어리석음이 모두 범행이다"

고 하여서 규율을 경계하고 몸가짐을 바로하는 도리를 잃었으나

스스로는 굴속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기고는 속박을 풀고 형구

를 제거하고 오만히 예법의 바깥에 나와 제멋대로 스스로 자만하

며 급급하기가 미친 것 같아 다시 사람의 도리가 없으니 이른바

의리라는 것이 이에 이르러 모두 없어지게 되었다.

 

朱文公 憂之하여 "西方論緣業卑卑喩群愚하여 流傳世

代久하니 梯接凌空虛.指心性하고 名言超有無.

 

주문공이 그것을 근심하여 말하기를 "서방(불가)에서 연업을 논

하니 낮고 낮으나 뭇 어리석은 이들을 깨우쳐, 흘러 전한 세대

가 오래되니 사다리가 이어저 허공을 지났다. 돌아보며 심성을

가리키고 이름하여 유무를 초월했다 말한다.

 

(컨데 佛說大略有三이니 其初齋戒有義學하고

禪學이라. 緣之名有十二이니 曰 觸,,,,,,,,

,,,. 業之名有三이니 曰 身,,. 持心性

卽心是佛見性成佛이요 超有無謂言有則云色卽是空,言無則

空卽是色 이라.

 

(상고 하건대 불설이 대략 세가지가 있으니 그 처음은 재계요,

후에는 의학이 있고, 선학이 있다. 연 의 이름은 열 두가지가

있으니 말하기를 ,,,,,,,,,,,이다.

의 이름은 셋이 있으니 말하기를 ,,이다.持心性卽心

是佛見性成佛을 일컫는 것이요, 超有無는 유를 말하면 즉 색

즉시공이요 무를 말하면 공즉시색을 일컫는 것이다.)

 

捷徑一以開하니 靡然 世爭趨하며, 號空하며 不踐實하고 彼榛

棘塗하니, 誰哉繼三聖하여(按三聖謂 禹 ,周公 ,孔子.)爲我焚其書

."

 

지름길이 한번 열리니 바람에 쓸리듯 세상이 다투어 달려가면서

공허를 부르짖으며 실재를 밟지 않고 저 잡목 숲 가시덤불 길을

밟고 있으니, 누구인가 ! 세 성인(상고하건대 세 성인은

周公孔子이다.)을 이어서 나를 위해 그 책을 불사를 자가."

 

甚哉! 其憂之之深也. 亦爲之하여 憮然三歎하노라.

 

심하도다 ! 그것을 근심함의 깊음이여. 나도 또한 그를 위하여

무연히 세 번 탄식하노라.

 

 

儒釋同異之辨

 

先儒謂 儒釋之道 句句同而事事異.

 

선유는 이르기를 유가와 불가의 도는 "구절마다 같으나 일마다

다르다."했다.

 

今且 因是而推廣之 此曰虛 彼亦曰虛 此曰寂 彼亦曰寂. 然此之虛

虛而有 彼之虛 虛而無 此之寂 寂而感 彼之寂 寂而滅.

 

이제 또 이로 인해서 널리 미루어 보면 우리(儒家)가 허라 하고

저들(佛家)도 허라하고, 우리가 적이라고 하고 저들도 적이라

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허는 허하지만 있는 것이요, 저들의

허는 허하여 없는 것이며, 우리의 적은 적하지만 느낌이 있는

것이고 저들의 적은 적하여 멸하는 것이다.

 

此曰知行 彼曰悟修 此之知 知萬物之理具於吾心也, 彼之悟 悟此心

本空無一物也.

 

우리는 지와 행을 말하고 저들은 오와 수를 말한다. 우리의 지는

만물의 이치가 나의 마음에 구비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요, 저들

의 오는 이 마음이 본래 공해서 일물도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此之行 循萬物之理而行之 無所違失也. 彼之修 絶去萬物而不爲

吾心之累也.

 

우리의 행은 만물의 이치를 좇아서 행하여 어긋나거나 잃음이

없는 것이요, 저들의 수는 만물을 끊어 버려서 내 마음에 연루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此曰心具衆理 彼曰 心生萬法 所謂具衆理者 心中原有此理 方其靜

也 至寂而此理之體具焉 及其動也 感通而此理之用行焉 其曰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是也.

 

우리는 모든 이치가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하고 저들은 마음이

모든 법을 낳는 다고 하니 이른바 모든 이치를 갖추었다고 하

는 것은 마음속에 원래 이 리가 있어 바야흐로 그것()이 정할

때에는 지극히 고요하며 이 이치의 본체가 갖추어 지고 동하게

되면 누껴 통하여 이치의 작용을 행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해도 감지하여 드디어 천하의 연고에 통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所謂生萬法者 心中本無此法 對外境而後 法生焉 方其靜也 此心無

有所住 及其動也 隨所遇之境而生 其曰 應無所住而生其心.

 

이른바 만법을 낳는다는 것은 본래 마음 속에 이 법이 없는데

외경(外界)를 대한 후에 법이 생긴다. 바야흐로 법이 할때에

는 이 마음이 머물러 있는 곳이 없고 하면 만나는 바의 경계

에 따라 생긴다는 것이니 그가 말하되, "머무르는 바가 없음에

응하여 그 마음이 생긴다." 했다.

 

(按 此一段 出般若經 言應無所住者 了無內外 中虛無物 而不以

善惡是非介於胸中也. 而生其心者 以無住之心 應之於外而不爲物

累也. 謝氏 解論語 無適無莫 引此語.

 

-이 일단은 반야경에서 나온 것으로 "머무르는 바가 없음에 응

하여"라는 것은 내,외가 없어 가운데가 허하여 물이 없고 선악

과 시비를 가슴 속에 두지 않는 것이며, 그마음이 생긴 다는 것

無住之心으로 와 응하여도 물에 연루되지 아니하는 것이

. 사씨가 논어의 無適無莫을 해석하면서 이 말을 인용했다.)

 

又曰 心生則一切法生 心滅則一切法滅 <按出起信論> 是也.

 

또 말하되 마음이 생하면 일체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일

체의 법도 멸한다(기신론에서 나왔음)는 것이 이것이다.

 

此以理爲固有 彼以法爲緣起 何其語之同而事之異 如是耶.

 

우리는 리가 진실로 있다 하는데 저들은 법이 인연따라 일어난

다 하니 어찌 그 말은 같으나 내용은 이같이 다른가 ?

 

此則曰酬 萬變 彼則曰隨順一切 其言似乎同矣. 然 所謂酬 萬變者

其於事物之來 此心應之 各因其當然之則 制而處之 使之不失其宜

.

 

우리는 만변을 수작한다하고 저들은 일체에 따라 수순한다하니

그 말이 같은 것 같으나 이른바 酬酌萬變이란 것은 어떤 사물이

올때 이 마음이 그에 응하여 각각 그 당연의 법칙에 따라 制裁

고 알맞게 처하여 그로 하여금 그 마땅함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

 

如有子於此 使之必爲孝而不爲賊 有臣於此使之必爲忠而不爲亂

至於物 牛則使之耕而不爲觸 馬則使之載而不爲제흘 虎狼則

使之設檻置而不至於. 蓋亦各因其所固有之理而處之也.

 

만일 여기에 어떤 아들된 사람이 잇다 했을때 그로 하여금 반드

시 효도를 하여 효자가 되게 하고 불효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며

여기에 신하가 있을때 그로하여금 충신이되고 난신이 되지 않게

하며 물에 이르러서도 소는 그것으로 하여금 밭을 갈되 사람을

떠받지 못하게 하며 말은 그것으로 하여금 짐을 싣되 차거나 물

지 못하게 하며 호랑이는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를 설치하고 함정

을 놓아서 사람을 물지 못하게 하나니 대체적으로 또한 각각의

진실로 가지고 있는 이치에 따라서 그것을 처하게 하는 것이다.

 

若釋氏所謂隨順一切者 凡爲人之子 孝者自孝 賊者自賊 爲人之

臣 忠者自忠 亂者自亂 牛馬之耕且載者 自耕自載 제흘

제흘 聽其所自爲而已 吾無容心於其間

 

석씨의 이른바 隨順一切라는 것은 남의 아들이 된 사람의 경우

효자되는 사람은 스스로 효자되고, 불효자 되는 사람은 스스로

불효자 되며, 남의 신하된 사람의 경우 충성하는 자는 스스로

충신이 되고 난하는 자는 스스로 난신이 되며 우마가 밭갈고

또한 짐을 싣고 하는 것이 스스로 갈고 실으며 떠받고 차고

무는 것도 스스로 떠받고 차고 물고 하여 스스로 하는데로 들

어줄 뿐이요, 내가 그사이에 마음을 씀이 없다함과 같은 것이다.

 

佛氏之學 如此 自以爲使物而不爲所使 若付一錢則便沒奈何.

他此其事非異乎

 

불씨의 학이 이같은지라 (저들)스스로가 물을 부리기는 하되 물

에게 부림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돈 한푼을 주어도 곧

그것을 어찌할 줄을 모른다면 이는 그일이 이상하지 아니한가 ?

 

然則天之所以生此人 爲靈於萬物 付以財成輔相之職者 果安在哉

其說反復 頭緖雖多 要之 此見得心與理爲一 彼見得心與理爲二

彼見得心空而無理 此見得心雖空而萬物咸備也.

 

그런즉 하늘이 사람을 낳아 만물의 영장이 되게하고 재성과 보

상의 직책을 부여함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 그 말이 반복

되어서 두서가 비록 많으나 간단히 요약하면, 우리는 심과리가

하나라고 본것이요 저들은 심과 리가 둘이라고 본것이며 저들

은 마음이 공함으로써 이치도 없다고 보았고 우리는 비록 공

하더라도 만물이 모두 이치를 갖추었다고 본 것이다.

 

故曰 吾儒一 釋氏二 吾儒連續 釋氏間斷 然 心一也

安有彼此之同異乎. 蓋人之所見 有正不正之殊耳.

 

그러므로 말하자면 우리 유가는 하나이고 불가는 둘이며 유가

는 연속이고 불가는 간단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이니

어찌 저들과 우리가 같고 다름이 있겠는가 ? 다만 사람의 보는

바가 옳으냐 그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四大身中誰是主六根塵裏孰爲精

 

네가지 큰 원소로 된 몸가운데에 어느 것을 주라하고 육근의 번

뇌속에 무엇을 정이라 하리오 ?

 

(按 地水火風 四大 和合爲一身 而別其四大則本無主 色聲香味觸

法六根塵 相對以生 而別其六根則本無精 猶鏡像之有無也.

 

-() () (온기) (호흡) 이 네가지 큰 원소가 화합

하여 하나의 몸이 되었으나, 그 사대를 따로 떼어내면 본래

주가 없고 , , , , , 이 여섯가지 번뇌가 서로

대경되어 생기지만 그 육근을 별도로 떼어내면 본래 정이 없으

므로 거울 속의 현상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과 같

은 것이다.)

 

黑漫漫地開眸看終日聞聲不見形

 

캄캄하고 멀고 아득한 당에서 눈을 떠보라.종일 소리는 들려도

형체는 볼 수 없구나.

 

按 以慧照用則雖黑漫漫地開眸看 暗中有明 猶鏡光之暗中生明也.

 

-지혜로써 용에 비추면 비록 어둡고 아득한 땅에서 눈을 떠 보

아도 그 어둠속에 빛이 있나니 거울 빛이 어둠속에서도 빛을 냄

과 같은 것이다.)

 

此 釋氏之體驗心處.

 

이는 석씨가 그 마음을 체험한 것이다.

 

謂有寧有跡謂無復何存惟應酬 際特達見本根按 朱子詩

 

있다고 한들 어찌 자취가 있으며 없다한들 다시 무엇이 있으리

? 오직 물에 응하여 수작할 즈음에 다만 통달하여 본근을 본

.주자의 시이다.

 

此 吾儒之體驗心處

 

이는 우리 유가가 그 마음을 체험한 경지이다.

 

且道心 但無形而有聲乎. 抑有此理存於心 爲酬 之本根歟.

者 當日用之間 就此心發見處體究之 彼此之同異得失 自可見矣.

 

또 도심은 본래 형체가 없는데 소리가 있겠는가 ? 또한 이 이치

를 마음에 보존하여 두어 수작의 근본을 삼아야 할 것이니, 배우

는 자가 마땅히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이 마음이 발현되는 곳

에 나아가서 그것을 체험하고 궁구하면 피차간의 동이와 득실을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다.

 

請以朱子之說 申言之 心雖主乎一身而其體之虛靈 足以管乎天

下之理 理雖散在萬物而其用之妙微 實不外乎人之一心 初不可

以內外精粗而論也.

 

주자지설로써 거듭하여 말하건데, 마음이 비록 일신의 주가 되

나 그체의 허령함은 족히 천하지리를 주관할 수 있고 리가 비

록 온갖 사물에 흩어져 있으나 그 작용의 묘미가 실로 人之

一心을 벗어나지 아니하니 애초부터 어느 것이 안팎이고 정하

고 조함을 논할 수 없는 것이다.

 

然或不知此心之靈 而無以存之 則昏昧雜擾而無以窮衆理之妙 不知

衆理之妙 而無以窮之 則偏狹固滯 而無以盡此心之全 此其理勢之

相須 蓋亦有必然者.

 

그러나 혹 이마음의 신령함을 알지못하여 이를 보존함이 없다면

곧 어둡고 뒤섞이어서 모든 이치의 묘함을 알지 못하여 궁구함

이 없으면 편협되고 막히어서 이 마음의 온전함을 다하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 의 서로간 需用이라서 또한 필연한 것

이 있는 것이다.

 

是以 聖人設敎 使人黙識 此心之靈 而存之於端莊靜一之中 以

爲窮理之本 使人知有衆理之妙 而窮之於學問思辨之際 以致盡

心之功 巨細相涵 動靜交養 初未嘗有內外精粗之擇 及其眞積力

久而豁然貫通焉 亦有以知其渾然一致 而果無內外精粗之可言矣.

 

이 때문에 성인이 가르침을 베푸시어 사람들로 하여금 이 마음의

심령함을 묵묵히 알아 단정하고 엄숙하고 정일한 가운데에 간직

하여 이 이치를 궁구하는 근본으로 삼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이치의 묘함이 있음을 알아 베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는

즈음에 궁구하여 마음을 다하는 공을 이루어 크고 작음을 서로

흐뭇하도록 하고 동함과 정함을 서로 길러 갈 뿐, 애초부터 어

느것이 안팎이고 정하고 조함을 택하지 않게 하나니, 진실로 오

랫동안 힘을 쌓아 활연히 꿰뚫음에 미치면, 또한 혼연일치를

알아서 과연 내외와 정조함이 없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今必以是爲淺近支離 而欲藏形匿影 別爲一種 幽深恍惚 艱難阻絶之

論 務使學者 莽然措其心於文字言語之外 而曰 道必如是 然後可以

得之 則是近世佛學 ,,,遁之尤者 而欲移之 以亂古人明德新

民之實學 其亦誤矣. 朱子之言 反復論辨 親切著明 學者於此 潛心

而自得之 可也.

 

지금에 와서 반드시 이것을 천근하고 지리하게 여겨 형체를 감추

고 그림자를 숨기면서 따로 일종의 궁벽하고 황홀하고 까다롭고

막힌 논리를 만들어 배우는 자로 하여금 막연히 그 마음을 문자

와 언어의 밖에 두도록 힘쓰게 하고 말하되, "도는 반드시 이같

이 한 후에 얻을 수 있다."하니 이것은 근세 불씨학의 피음사둔

이 더욱 심한 것인데 이를 옮겨와 옛사람의 명덕과 신민의 진실

된 학문을 어지럽히고자 하니 그 또한 오류이다. 朱子의 말이 이

모든 것을 반복 논변하여 친절히 밝혔으니 배우는 자는 이에 잠

심하여 스스로 얻어야 할 것이다.

 

 

佛法入中國

 

(按此以下 至事佛甚近秊代尤促 引用眞氏大學衍義說-여기서부터 '

부처 섬기기를 극진히 할수록 년대는 단축되었다'까지는 진씨의

대학연의의 설을 인용한 것이다.)

 

漢明帝 聞西域有神 其名曰佛 遣使之天竺 得其書及沙門以來. 其書

大抵以虛無爲宗 貴慈悲不殺 以爲人死 精神不滅 隨復受形 生時所

作善惡 皆有報應.

 

한나라 명제는, 인도에 신이 있어 그 이름이 불이라는 말을 듣고

사신을 천축에 보내어 그 글과 중을 얻어 돌아왔는데 그 글은 대

개 허무를 으뜸으로 삼고, 자비와 살생하지 않는 것을 귀히 여겨

말하기를, "사람은 죽어도 정신은 멸하지 않아 다시 형체를 받아

태어나는데, 살아 있을 때에 선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한 바에

따라, 다 보응이 있다."하였다.

 

故所貴修鍊 以至爲佛 善爲宏闊 勝大之言 以勸誘愚俗 精於其道者

號曰 沙門. 於是 中國始傳其術 圖其形像 而王公貴人 獨楚王英 最

先好之.

 

그러므로 수련하여 부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 굉원 관활

하고 수승 방대한 말을 잘 하여 어리석은 백성을 유혹하였는데,

그 도에 정통한 사람을 사문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중국에

그 법이 전해져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데 왕공 귀

인으로는 유독 초왕 영이 가장 먼저 좋아하였다.

 

眞西山曰 臣按此佛法入中國之始也 是時所得者 佛經四十二章 緘

之蘭臺石室而已 所得之像 繪之淸凉臺,顯節陵而已.

 

진서산이 말하기를, "신은 상고하건데, 이것은 불법이 중국에

들어온 시초입니다. 이때에 얻어온 것은 불경 42장인데 난대

석실에 감추어 두었을 뿐이었고, 얻어온 불상은 청량대와 현절릉

에 그림으로 그렸을 뿐이었읍니다.

 

楚王英雖好之 然不過潔齋修祀而已 英尋以罪誅 不聞福利之報.

 

초왕영이 비록 불교를 좋아하였으나 재계를 정결하게 하여 제사

를 지내는데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은 이내 죄에 걸려

목 잘려 죽었고, 복리의 보답을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

.

 

其後靈帝 始立祠於宮中 魏晉以後 其法寢盛 而五胡之君 若石勒

之於佛圖澄 符堅之於道安 姚興之於鳩摩羅什 往往尊以師禮 元魏

孝文 號爲賢主 亦幸其寺 修齋聽講 自是至于蕭梁 其盛極矣 而

其源 則自永平始 非明帝之責而雖哉.

 

그 후에 한의 영제가 처음으로 궁중에 사당을 세웠고, 위진 이

후로 그 법이 점점 성하여, 오호의 임금으로서, 이를테면 석 늑

이 불도징에게, 부견이 도안에게, 요흥이 구라마습에게 이따금

스승의 예로써 받들었으며, 원위의 효문제는 현명한 임금이라

고 칭하지만, 역시 절에 나아가 재를 올리고 설법을 들었으니,

이때부터 소량에 이르기까지는 그 성함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근원은 영평 연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영제를 책하지

않고 누구를 책하겠습니까 ?"하였다.

 

 

事佛得禍

 

梁武帝 中大通元年九月 幸同泰寺 設四部無遮大會 釋御服持法衣

行淸淨大捨 群臣以錢一億萬 祈白三寶 奉贖皇帝 僧衆黙然 上還內.

上自天監中 用釋氏法長齋斷肉 日止一食惟菜羹飯而已 多造塔公

私費損.

 

양나라 무제는 중대통 원년(529) 9월에 동태사에 나아가 사부대

중을 모아 무차대회를 열고 어복을 벗고 법의를 걸친 후 청정대

사를 행하니 모든 신하들이 돈 일억만을 가지고 삼보 앞에 빌고

황제의 몸을 굽혀 속죄하는데, 중들은 그대로 절을 받으면서 말

한마디 없었고, 임금은 궁궐로 돌아왓다. 무제가 천감연간으로부

터 석씨의 법을 써서 오래도록 재계하여 고기를 먹지 않고 하루

에 한 끼니만 먹는 것도 나물국에 거친 밥뿐이요, 탑을 많이 쌓

아 공사간에 비용을 많이 소비하였다.

 

時王侯子弟多驕淫不法 上年老厭於萬機 又專精佛戒每斷重罪則終日

或謀叛逆事覺亦泣而宥之 由是王侯益橫 或白晝殺人於都街 或

暮夜公行剽掠 有罪亡命匿於主家 有司不敢搜捕 上深知其弊 而溺於

慈愛不能禁也.

 

이때에 왕후와 그의 자제들이 교만하고 음란하여 법을 지키지 않

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임금은 늙어서 정치에 권태를 느끼고 또

부처의 계율에만 오로지 정신을 써서 매양 중죄를 처단할 때에는

종일토록 괴로와 하였고, 혹은 반역을 꾀하는 일이 발각되어도

역시 울면서 용서해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왕후들은 더욱 횡포하

여 혹은 대낮에 도시의 거리에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혹은 어

두운 밤에 공공연히 약탈을 자행하기도 하며, 죄가 있으면 망명

하여 공주의 집에 숨으니 관히들이 감히 수사하여 잡지를 못하였

. 임금은 그 폐단을 알면서도 자애에 빠져 금하지 못하였다.

 

中大同元年三月庚戌 上幸同泰寺 遂停寺省 講三慧經 夏四月丙戌

解講 是夜同泰寺浮屠災 上曰 此魔也 宜廣爲法事 乃下詔曰 道高魔

盛 行善障生 當窮玆土木倍增往日 遂起十二層浮屠將成 値侯景亂而

止 及陷臺城 囚上於同泰寺 上口燥乾 求蜜於寺僧 不得竟以餓死.

 

중대동 원년(546) 3월 경술일에 임금이 동태사에 나아가 절에 머

물면서 삼혜경을 강하기 시작하여 4월 병술에야 끝마쳤다. 그런

데 이날 밤에 동태사의 탑이 화재를 당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마귀 때문이니 마땅히 불사를 크게 하리라."하고 이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도가 높을수록 마귀가 성하고, 선을 행

함에는 장애가 생기나니, 마땅히 토목공사를 크게하여 전날의 배

로 증가시키리라."하고, 드디어 12층탑을 기공하여 완성되어 갈

무렵에 후경의 난을 만나 중지되었다. 대성이 함락됨에 이르러서

는 임금을 동태사에 가두어 두었는데, 임금이 목이 말라 그 절

중에게 꿀물을 요구했으나 얻지 못하고 마침내 굶어 죽었다.

 

眞西山曰 魏晉以後人主之事佛 未有如梁武之盛者也. 夫以萬乘之尊

而自捨其身 爲佛之役 其可謂卑之極矣. 以蔬茹麵食易宗廟之生

牢 恐其有累冥道也 織官文錦有爲 人類禽獸之形者亦禁之. 恐其裁

剪有乖仁恕 臣下雖謀叛逆 赦而不誅 剽盜肆行亦不忍禁 凡以推廣佛

戒也.

 

진서산이 말하기를, "위진이후의 임금 가운데 부처 섬기기를 양

나라 무제 만큼 성하게 한 사람은 없었다. 대저 만승의 존귀함으

로서 스스로 그 몸을 버려 부처의 머슴이 되었으니 그 비열하고

아첨함이 극심하다 할 것이다. 채소와 면식으로 종묘의 제사 지

내는 생뢰와 바꾸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명도에 누됨이 있을까

두려워함이요, 직관이 비단에 무늬를 놓는데, 사람이나 금수의

형상을 놓는 것까지 또한 금하였으니, 그것은 가위로 재단할 때

에인,서에 어그러짐이 있을까 두려워함이며, 신하가 반역을 꾀하

여도 용서하고 죽이지 않고, 도둑질을 자행하여도 차마 금하지

못하였으니, 이 모두가 부처의 계율을 미루어 넓히려고 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蓋嘗論之 使仙而可求則漢武得之矣, 使佛而可求則梁武得之矣,

二君而無得焉 則知不可求而得也明矣. 縱求而得之 戎夷荒幻之

敎不可以治華夏 山林枯槁之行 不可以治國家 況不可求也. 漢武貪

仙而終致虛耗之禍 梁武佛而卒召危亡之厄 則貪之無補又明矣.

 

대개 일찌기 논하기를 신선을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한나라 무

제가 얻었을 것이요, 부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양나라 무

제가 얻었을 것인데, 두 임금이 얻지 못하였음을 볼 때 그 구해

서 얻을 수 없는 것이 명백한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비록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오랑캐의 허황한 교로는 중국을 다스릴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구할 수 있는 것이랴! 한나라 무제는 신선을 탐

하다가 마침내 국고를 텅 비도록 소모하는 화를 입고, 양나라 무

제는 부처에게 아첨하다가 마침내 위망의 액을 초래하였은 즉,

탐하고 아첨하여도 도움됨이 없는 것이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且其捨身事佛 豈非厭塵而樂空寂乎. 使其能若迦維之嫡嗣 視王位

如弊사건裳而去之 庶乎爲眞學佛者而帝也 旣以簒弑取人之國 又以

攻伐侵人之境 及其老也雖慈孝如太子統 一涉疑似忌之而至死貪戀如

此 又豈眞能捨者乎. 釋服入道 旣可浮屠之福 奉金贖還 又不失

天子之貴 是名雖佛 而實以佛也.

 

또 그몸을 버려가면서 부처를 섬기는 것은 진세의 시끄러움이 싫

어 공적함을 즐기려 함이 아닌가 ? 그들이 과연 저 가유의 맏아

들 석가처럼 임금 자리를 헌신짝같이 보고 옷을 걷어 붙이고 갈

수 있었다면 거의 참으로 부처를 배우는 사람들이라 하겠지만,

특히 양나라 무제는 이미 찬탈하고 시역하여 남의 나라를 빼앗았

, 또 공벌로써 남의 땅을 침범했으며, 급기야 늙어서는 그의

태자 소통 같은 자효한 아들도 한번 의심쩍은 일이 있음에 이를

끝내 못마땅하게 여겻다. 죽을 때까지 탐심에 연연하기가 이러했

으니, 또 어찌 참으로 몸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

옷을 바꿔 입고 수도에 들어가는 것은 이미 부도의 복을 맞이할

수 있다 하겠으나, 몸을 바쳐 속죄하고 돌아와서는 천자의 귀함

을 잃지 않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부처에게 아첨한다기보다 사실

은 부처를 속이는 것이라 하겠다.

 

且其織文之非實 猶不忍之 彼蚩蚩之氓性命 豈能鳥獸比 而連年

征伐 所殺不可勝計 浮山築堰浸灌敵境 擧數萬衆而魚鼈之 曾不小

恤 是名雖小仁而實則大不仁也.

 

또 그 비단의 무늬는 실물이 아닌데도 오히려 차마 해치지 못

하면서, 저 어리석은 백성의 목숨을 어찌 조수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런데도 해마다 정벌하여 죽인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산을 만들고 둑을 쌓아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니,

것은 비록 조그만 인의 이름은 있으나 실은 크게 불인한 것이다.

 

且國所與立 惟綱與常 帝於諸子皆任以藩維 而無禮義之訓 故正德

以梟之資 始捨父而奔敵國 終引賊以覆宗枋 若綸若繹 或摠雄師

或鎭上游 當君父在亂 不聞有灑血投袂之意方 且弟兄相仇 叔姪交

兵 極人倫之惡 此無他 帝之所學者 釋氏也.

 

또 나라가 존립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강과 상인데 무제는 여러

아들에게 다 변방을 맡기면서 예의를 가르침이 없었으므로,

덕은 효경의 자질로 처음에는 아버지를 버리고 적국으로 달아났

다가 마침내는 적병을 이끌고 들어와 국가를 전복시켰으며,

(무제의 6째 아들)이나 역(무왕의 7째 아들,梁元帝)은 혹은 큰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거나, 혹은 상유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부왕의 난을 당하고 있었지만 '피를 뿌리고 분연히 싸울 뜻이

있었다.'는 말을 듯지 못하였으며, 또한 형제끼리 서로 원수가

되고, 숙부와 조카 사이에 서로 싸워 인륜의 악이 극에 이르렀

으니, 이것은 다름아니라 무제의 배운 바가 석씨였기 때문이다.

 

以天倫爲假合 故臣不君其君 子不父其父 三四十年之間 風俗淪胥

綱常掃地 宜其致此極也 使其以堯舜三王爲師 不雜以方外之敎 必

本仁義 必尙禮法 必明政刑 顧安有是哉.

 

천륜을 가합이라고 하기 때문에, 신하는 그 임금을 임금으로 여

기지 않고, 아들은 그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아, 삼사십년

동안에 풍속은 모두 무너지고 강상은 땅에 떨어졌으니 이같이 극

에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로 하여금 요,,삼왕(夏禹,

, 周文武)을 스승으로 삼아 방외의 교를 석지 않음은 물론,

드시 인의를 근본으로 삼고, 반드시 예법을 숭상하고, 반드시 형

정을 밝히게 했다면 어찌 이 같음이 있으랴 !

 

 

舍天道而談佛果

 

唐代宗始未甚重佛 宰相元載王縉皆好佛, 縉尤甚. 上嘗問佛言報應

果有之耶. 載等對曰 國家運祚靈長非宿植福業何以致之. 福業已定

雖時有小災 終不能爲害. 所以安史皆有子禍 懷恩出門病死 二虜不

戰而退 此皆非人力所及 豈得言無報應也.

 

당대종이 처음에는 그리 부처를 중히 여기지 않았는데 재상인 원

재와 왕진이 모두 부처를 좋아 했고, 왕진이 더욱 심하였다.

금이 일찌기 묻기를 부처가 보응을 말했다 하는데 과연 있는가 ?

원재등이 대답하여 가로되 국가의 운수가 장구한 것은 일찌기 복

업을 심은 것이 아니면 무억을 가지고서 이르게 하겠습니까.

업이 이미 정해지면 비록 때때로 작은 재앙이 있더라도 결국 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녹산 사사명은 모두 그들의 자

식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회은은 군문을 나와 병들어 죽었고,

오랑캐 즉 회흘 토번은 싸우지 않고 저절로 물러 났으니 이것은

다 사람의 힘으로 미칠바가 아니니 어찌 보응이 없다고 할 수 있

겠습니까 ?

 

上由是深信之 常於禁中飯僧百餘人 有寇至則令僧講仁王經以禳之

寇去厚加賞賜良田美利多歸僧寺. 載等侍上多談佛事 政刑日紊矣.

 

임금이 이로 인하여 부처를 깊이 믿어 항상 궁중에서 승려 백여

명에게 밥을 먹여 주었으며 도둑이 이르면 중으로 하여금 인왕경

을 강하여 물리치게 하고 도둑이 물러가면 후하게 상을 줘서 좋

은 전답과 많은 이익이 중 또는 절에 돌아갔다. 원재등이 임금을

모시고 부처의 말을 많이 말하니 정사와 형벌이 점점 문란해졌

.

 

晉西山曰 代宗以報應爲問使 是時有儒者 在相位 必以福善禍淫虧盈

益謙之理 反復啓告 使人主 凜然知天道之不可誣而自彊於修德 載等

曾微一語及此乃以宿植福業爲言而謂國祚靈長皆佛之力 毋乃厚誣天

道乎.

 

진서산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종이 보응에 대하여 물었는데

가령 유자를 정승의 자리에 두었더라면 반드시 '선하면 복을 받

고 음란하면 화를 받고 차면 이지러지고 겸손하면 더함을 받는

.'는 그런 이치를 되풀이해 아뢰어 임금으로 하여금 름연히 천

도는 속일 수 없는 것임을 알아 덕을 닦는데 스스로 힘쓰게 하였

을 것인데 원재등은 일찌기 한마디도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

고 드디어는 일찌기 복업을 심는 것으로 말하였으며, 국가의 원

수가 장구한 것은 모두 부처의 힘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너무나

천도를 속인 것이 아닙니까 ?

 

夫唐之所以歷秊者 以太宗濟世安民之功不可掩也 而所以多難者 以

其得天下也 不純乎仁義綱常禮法所在有慙德焉 繼世之君克己礪善者

小 恣情悖理者 多也. 天有顯道厥類惟彰 此之謂矣.

 

저 당나라가 오랜 역사를 지나온 까닭은 태종이 세상을 구제하

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 공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이요, 천하를 얻

을 때 환란이 많았던 이유는 인의강상에 순수하지 못했고 예법으

로 보아서 부끄러워 할 만한 덕이 있었으며 세세손손 대를 이은

임금 중 이미 사욕을 이겨내고 선을 힘쓴자가 적은 반면 정을

빙자해서 이에 어긋난 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떳떳한

도가 있어 그 유에 따라 나타낸다'는 말이 이것을 이름이다.

 

載等捨天道而談佛果 是謂災祥之降 不在天而在佛也, 爲治之道 不

在修德而在於奉佛也. 代宗惟其不學 故載等得以惑之.

 

원재등이 천도를 버리고 부처의 인과설을 말하는 것은 재앙이나

상서를 내리는 것은 하늘에 있지 않고 부처에 있으며, 다스리는

도는 덕을 딱는데 있지 않고 부처를 받드는데 있다고 하니,

종이 오직 배우지 못했으므로 원재등이 미혹시킬 수가 있었다.

 

且夫安史之亂以其太眞蠱於內 楊李賊於外釀而成之也 而所以能平

之者 由子儀光弼諸人盡忠帝室驅而攘之也 其所以皆有子禍者 祿山

史明以臣叛君 故慶緖朝義以子弑父 此天道之所以類應者也. 回紇

吐蕃不戰而自退則又子儀挺身見虜 設謀反間之力 推跡本末 皆由人

事 而載等乃曰 此非人力所及 其欺且誣 顧不甚哉.

 

또 저 안녹산,사사명의 난은 양태진이 안에서 좀먹고 양국충,

림보가 밖에서 화를 빚어서 일어난 것이요, 그 난을 평정한 것은

곽자의,이광필등 여러사람이 제실에 충성을 다하여 물리쳤기 때

문이요, 그들이 모두 다 자식에게 화를 당하였다고 하는 것은 안

록산,사사명 자신이 신하로서 임금에게 반역하였기에 그들의 아

들인 안경서,사조의가 그의 아버지를 시역한 것이니, 이것은 천

도가 그 류에 따라 응하는 까닭이다. 회흘,토번이 싸우지 않고

스스로 물러간 것은 또한 곽자의가 몸소 오랑캐를 만나 꾀를 부

려 반간한 덕택이니 그 본말을 미루어 보면 모두 사람이 일에

말미암은 것인데 원재등은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미칠 바가 아니

라고 하였으니 그 속이고 속임이 살펴보건데 너무 심하지 않은가

?

 

事佛甚謹秊代尤促

 

元和十四秊 迎佛骨于京師 先是功德使上言 '鳳翔寺塔 有佛指骨相

傳 三十秊一開 開則歲豊人安 來秊應開 請迎之' 上從其言 至是

佛骨至京師 留禁中 三日 歷送諸寺 王公士民 瞻奉捨施 如恐不及.

 

원화 14년에 불골을 경사에 맞아 들여 왔는데, 이보다 먼저 공덕

아가 아뢰기를, "봉상사 탑에 부처의 지골이 있어 전하여 오는

, 30년만에 한 번씩 탑문을 열며, 탑문을 열먼 그 해는 풍년이

들며 백성들이 편안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내년에 응당 탑문을

열 것이니 였으니, 이에 임금이 그

말을 따랐다. 이 불골이 경사에 이르렀을 때 궁중에 3일 동안을

두었다가 여러 절을 거쳐가는데 왕공들과 사만들이 쳐다보며 받

들어 시주하기를 남보다 뒤질까봐 두려워할 정도이었다.

 

刑部侍郞韓愈 上表諫曰 "佛者夷狄之一法耳 自黃帝至禹湯文武 皆

享壽考 百姓安樂 當是時 未有佛也. 漢明帝時 始有佛法 其後 亂

亡相繼 運祚不長 宋齊梁陳元魏以下 事佛漸謹 秊代尤促.

 

형부시랑 한유가 표를 올려 간하여 말하기를, "부처라는 것은 이

적의 한 법일 뿐입니다. 황제로부터 우,,,무에 이르기 까지

모두 장수하였고, 백성들도 안락하게 지냈는데, 그때에는 부처가

있지 않았읍니다. 한 명제때에 비로소 불법이 들어왔는데, 그 후

부터 어지럽고 망함이 서로 계속되어 나라의 운수가 길지 못하

, ,,,,,위등의 나라 이후에는 부처 섬기기를 점점

정성스럽게 하였는데, 나라의 연대는 더욱 단촉되어졌읍니다.

 

唯梁武在位四十八秊 前後三捨身 竟爲侯景所逼 餓死臺城 事佛求福

乃反得禍 由此觀之 佛不足信 可知矣. 佛本夷狄之人 與中國言語不

通 衣服殊製 不知君臣父子之情 假如其身尙在 來朝京師 陛下容而

接之 不過宣政一見 禮賓一設 賜衣一襲 衛而出之 不令惑衆也.

其身死已久 枯槁之骨 豈宜以入宮禁 乞付有司 投諸水火 永絶禍本"

上大怒 將加極刑 宰相裵度崔群等 言"愈雖狂發於忠懇 宜寬容以開

言路" 乃貶潮州刺史.

 

오직 양무제가 48년 동안 제위에 있으면서 전후 세 차례나 몸을

부처에게 희사하였으나, 마침내는 후경의 핍박을 받아 대성에서

굶어 죽었으니, 부처를 섬겨 복을 구하다가 도리어 화를 얻었읍

니다. 이로써 미루어 본다면 부처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부처는 본시 이적의 사람이어서, 중국과는 언어도 통

하지 않고, 의복 제도도 다르며 군신,부자의 정도 알지 못하니,

가령 그의 몸이 아직 살아 있어서 경사에 들어와 조현 한다 할지

라도 폐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되 그저 선정전에서 한번 보고 손

님으로 대접하는 예를 한 번 베풀고, 옷이나 한 벌 주어서 호위

해 내 보내는데 지나지 않을 것이며, 여러 사람들을 미혹되게 해

서는 안 될 것인데, 하물며 그의 몸이 죽은지 이미 오래 되었거

늘 말라빠진 뼈를 어찌 궁중에 들어오게 할 수 있겠읍니까 ?

옵건데 유사에게 맡기시어 물에나 불에 던져 버려 화의 근본을

영원히 끊어 버리소서." 하였다. 이에 임금이 크게 노하여 장차

극형을 가하려고 하였으나 재상 배도와 최군등이 말하기를, "

유가 비록 지나치긴 했으나 충성에서 나온 말이니 마땅히 너그럽

게 용서하여 주셔서 언로를 열어 주시옵소서."하니, 이에 조주자

사로 좌천시켰다.

 

眞西山曰 "按後世人主之事佛者 大抵福田利益之事 所謂以利心而

爲之者也. 故韓愈之諫 '歷陳古先帝王之時 未有佛 而壽考 後之人

主 事佛而夭促' 可謂深切著明者矣 而憲宗弗之悟也. 方是時 旣餌

金丹 又迎佛骨 求仙媚佛 二者交擧曾未朞秊 而其效乃爾 福報果安

在耶. 臣故幷著之 以爲人主溺意仙佛者之戒"

 

진서산이 말하기를, "상고하건데 후세의 임금들이 부처를 섬긴

것은 대저 복전에 대한 이익을 구하는 것이니, 이를테면 이익되

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유가 간하

'옛날 제왕때에는 부처가 있지 않아도 장수를 하였는데 후세

의 임금들은 부처를 섬기는데도 일찍 죽는다.'고 진술하였으니,

깊고도 간절하게 나타낸 말이라 하겠거늘, 그런데도 헌종은 깨닫

지 못한 채 바야흐로 이때 금단 약을 먹고 또 불골을 맞이하였읍

니다. 신선을 구하고 부처에게 아첨하는 두 가지를 다하였으나 1

년이 못되어 효과가 그러하였으니, 복전의 보응이 과연 어디에

있다 하겠읍니까? 신이 이 때문에 이 사실을 모두 아울러 임금된

사람으로서 신선이나 부처에게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

입니다." 하였다.

 

 

闢異端辨

 

堯舜之誅四凶 以其巧言令色 方命族也. 禹亦曰 何畏乎巧言令色

蓋巧言令色 喪人之心 方命族 敗人之事 聖人所以去之 而莫之容

.

 

요순이 4흉을 벤것은 그들이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면서 명령을 거스르고 종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었다. 또 우

가 말하기를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자를 어

찌 두려워하랴?" 하였으니 대게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좋

게 꾸미는 것은 사람의 본심을 잃게하며 명령을 거스리고 종

족의 친화를 무너뜨리는 것은 사람의 일을 망치게 하는 것이

. 그러므로 성인이 제거하여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湯武之征桀紂也 一則曰 予畏上帝 不敢不正 一則曰 予不順天 厥罪

惟均 天命天討 非己之所得而辭也.

 

탕과 무왕이 걸과 주를 칠때 탕이 말하기를 "나는 감히 상제가

두려워 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으며 무왕이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죄가 주와 같다."고 하였으니 하늘

의 명과 하늘의 토벌은 자기가 사양할 수 없다는 뜻이다.

 

夫子曰 攻乎異端 斯害也已 害之一字 讀之令人凜然. 孟子之好辯

所以距揚墨也 揚墨之道不距 聖人之道不行 故孟子 以闢揚墨爲己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단을 깊이 파고들면 해로울 뿐이다."

라고 하였으니 해롭다는 한글자가 사람을 오싹하게 한다. 맹자

가 좋은말로써 양주와 묵적을 막은 까닭은 양묵의 도를 막지 않

으면 성인의 도를 행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맹자는

양묵을 물리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其言曰 能言距揚墨者 亦聖人之徒也 其望助於人者 至矣. 墨氏兼愛

疑於仁 揚氏爲我疑於義 其害至於無父無君 此孟子所以闢之之力也.

 

그의 말에 이르기를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사람은 성인

의 무리이다."고하니 그 사람들이 동조해 주기를 바란 것이 지극

하였다. 묵씨는 똑같이 사랑한다하니 인인가 의심스럽고, 양씨는

자기만을 사랑한다 하니 의인가 의심된다. 그러므로 그 해가 아

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는 데 까지 이르므로 맹자가 이를 물리치

고 자 힘썼던 것이다.

 

若佛氏 則其言高妙 出入性命道德之中 其惑人之甚 又非揚墨之比

. 朱氏曰 佛氏之言 彌近理 而大亂眞者 此之謂也.

 

그런데 불씨는 그 말이 고상하고 미묘하여 성명,도덕 가운데 출

입함으로 사람을 미혹함이 양묵에 비교가 안된다. 주자가 말하

기를 "불씨의 말이 더욱 이치에 가까워서 진을 크게 어지럽힌

."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한 말이다.

 

以予庸不知力之不足 而以闢異端爲己任者 非欲上繼六聖 一賢之

心也. 懼世之人 惑於其說 而淪胥以陷 人之道至於滅矣.

 

내 어둡고 용렬하면서도 힘이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이단을 물

리치는 것으로 나의 임무로 삼은 것은 위로 여섯 성인과 한

현인의 마음을 계승하고자 함이 아니라, 세상사람들이 이단의

설에 미혹되어 모두 빠져 버려 사람의 도가 없어지는 데 이를

까 두려워 하는 까닭이다.

 

嗚呼 亂臣賊子 人人得而誅之 不必士師, 邪說橫流 壞人心術 人人

得而闢之 不必聖賢. 此予之所以望於諸公 而因以自勉焉者也.

 

아아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모두 죽일 수 있으니 반드시 사사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며, 사특한 말이 횡류하여 사람의 마

음을 무너뜨리면 사람마다 물리 칠 수 있는 것이니 반드시 성현

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여러 사람에게 바라

는 바이며 아울러 내 스스로 힘쓰는 것이다.

 

道傳 暇日 著佛氏雜辨十五篇 前代事實四篇 旣成 客讀之曰 子辨

佛氏輪廻之說 乃引物之生生者以明之 其說似矣 然佛氏之言 有曰

凡物之無情者 從法界性來 凡有情者 從如來藏來

 

내가 틈을 내어 불씨잡변 15편과 전대 사실 4편을 지었는데 이

미 이루어짐에 객이 읽고 말하기를 "자네가 불씨의 윤회설을

변정하는데 있어서 만물이 생생하는 이치를 인용하여 밝혔는

데 그말이 근사하기는 하나 불씨의 설에 이르기를 '만물 중

에 물의 정이 없는 것은 법계성으로부터 왔고 정이 있는 것은

여래장으로부터 왔다.'고 하였다.

 

(按 無情者 猶巖石點頭之類 法界 如云無邊也 有情者 如本覺衆

生 心與諸佛性本爲如來也

 

-상고하건데 무정이란 바윗돌이나 풀,나무와 같은 것이고, 법계

란 무변이라는 말과 같으며, 유정물이란 본각이 있는 중생의

마음이 제불과 마찬가지로 성이 여래와 같다는 것이다.)

 

故曰 凡有血氣者 同一知覺 凡有知覺者 同一佛性 今子不論物之

無情與有情 比而同之 無乃徒費辭氣 而未免穿鑿附會之病歟.

 

그러므로 말하기를 '대게 혈기가 있는 은 다같이 지각이 있

고 지각이 있는 은 다같이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제

자네는 의 정이 있고 없음을 논하지 않고, 같은 격으로 동일

하게 말하니, 헛되이 말만 소비하고 천착하고 부회하는 병을

면할 수 없지 않은가 ?"하였다.

 

曰噫 此正孟子所謂二本故也 且是氣之在天地間 本一而已矣 有動

靜而陰陽分 有變合而五行具.

 

이에 대답하여 "아아! 이것이 바로 맹자의 말처럼, 근본이 두

개이기 때문이다. 또 여기에 기가 천지 사이에 있는 것은 본시

하나일 뿐인데, 이 있어서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고,

과 합이 있어 오행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周子曰 五行 一陰陽也 陰陽 一太極也. 蓋於動靜變合之間 而其

流行者 有通塞偏正之殊 得其通而正者爲人 得其偏而塞者爲物 又就

偏塞之中 而得其稍通者 爲禽獸 全無通者爲草木 此乃物之有情無

情 所以分也.

 

주자가 말하기를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

극이다.'라고 하였다. 대개 하고 하고 변하고 합하는 사이

에 그 유행하는 것은 의 다름이 있으니,

함과 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을 얻은 것은

이 되며, 가운데서도 그 조금 통한 것을 얻은

것은 금수가 되고, 전연 이 없는 것은초목이 되나니, 이것

이 바로 이 있고 없는 것으로 나누어진 까닭이다.

 

周子曰 動而無動 靜而無靜 神也 以其氣無所不通 故曰神, 動而無

靜 靜而無動 物也 以其於形氣 而不能相通 故曰物.

 

주자가 말하기를 '하되 함이 없고, 하되 함이 없는 것

이니 그 기가 통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이라 하는 것이

, 하면 함이 없고, 하면 함이 없는 것은 이니 형

과 기에 국한되어 서로 통할 수 없으므로 이라 하는 것이다.'

하였다.

 

蓋動而無靜者 有情之謂也 靜而無動者 無情之謂也 是亦物之有情

無情 皆生於是氣之中 胡可謂之二哉.

 

대개 동하여 정함이 없는 것은 유정물이라 이름이요, 정하여 동

함이 없는 것은 무정물이라 이름이니, 이 또한 물의 정이 있고

없음이 다 이 기가운데에서 생기는 것이니, 어찌 둘이라고 할수

있으랴 ?

 

且人之一身如魂魄五臟耳目口鼻手足之屬 有知覺運動, 毛髮爪齒之

屬 無知覺運動, 然則一身之中 亦有從有情底父母來者 從無情底

父母來者 有二父母耶.

 

또 사람의 한 몸에도 혼백이나 오장이나 귀,,,,,발 등속

과 같은 것은 지각과 운동이 있고, 모발,손톱,이 등속은 지각도

운동도 없으니, 그러면 한 몸 가운데에도 또한 정이 있는 부모로

부터 온 것과, 정이 없는 부모로로부터 온 것이 있으니, 부모가

둘이 있단 말인가 ?"

 

客曰 子之言是也. 然諸辨之說 出入性命道德之妙 陰陽造化之微

固有非初學之士 所能識者 況下民之愚庸乎. 吾恐子之說雖精 徒

得好辯之譏 而於彼此之學 俱無損益 且佛氏之說 雖曰無稽 而世

俗耳目習熟 恐不可以空言破之也. 況其所謂放光之瑞 舍利分身之

異 往往有之 此世俗所以歎異而信服之者. 子尙有說以攻之也.

 

객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나 여러 변론한 말이

命道德의 묘처와 음양조화의 은미한데에 출입하여 진실로 초학의

선비들도 능히 아는 바가 없는데 하물며 아래 百姓들의 우매하고

용렬함에 있어서랴 ? 나는 그대의 말이 비록 정묘하나 한갖 말하

기 좋아한다는 나무람을 받고 피차(儒佛)의 학문에 선익이 없을

까를 두려워 한다. 또 불씨의 설이 비록 헤아릴 수는 없으나 세

속의 이목에 익혀 익숙하여 빈말로는 가히 타파하지 못할까 두렵

.(염려된다) 하물며 그 말하는 바 放光의 상서로움이나 사리로

분신한다는 기이함이 왕왕있으니 이것이 세속에서 감탄하고 괴이

하게 여겨 믿고 복종하는 까닭이다. 그대는 오히려 공박할 말이

있는가 ?"

 

曰所謂輪廻等辨 予已悉論之矣. 雖其蔽之深也 不能遽曉 然一二好

學之士 因吾說而反求之 庶乎有以得之矣 玆不復.

 

말하기를 소위 윤회등의 변론은 내가 이미 다 논하였다. 비록 그

폐단이 깊어서 능히 갑자기 깨닭을 수는 없지만, 그러나 한 두

호학하는 선비가 내 말에 (감응)하여 돌이켜 구한다면 거의 얻

는 것이 있을터이니 이에 다시 군더더기를 부치지 않겠다.

 

至於放光舍利之事 豈無其說乎. 且心者氣之最精最靈的 彼佛氏之徒

不論念之善惡邪正 削了一重 又削了一重 一向收斂 蓋心本是光明物

事 而專精如此 積於中而發於外 亦理勢之當然也. 佛氏之放光 何足

怪哉.

 

放光과 사리의 일에 이르러서는 어찌 할말이 없겠는가 ? 또 마

음이란 기의 가장 정묘하고 가장 신령스러운 것인데, 저 불씨

의 무리들은 생각의 선악, 사정을 논하지 않고 깍기를 한번

거듭하고 또 깍기를 한번 거듭하면서 한쪽으로 수렴한다. 대개

마음은 본시 物事光明하고 專一하고 정묘하기가 이와 같아

서 가운데에 쌓여서 바깥에 발하는 것 또한 理勢의 당연함이

. 불씨의 放光이 어찌 기이하겠는가 ?

 

且天之生此心者 以其至靈至明 主於一身之中 以妙衆理而宰萬物

非徒爲長物而無所用也. 如天之生火 本以利人 而今有人焉 埋火於

灰中 寒者不得熱 飢者不得則雖有光焰 發於灰上 竟何益哉.

佛之放光 吾所不取者 此也. 抑火之爲物 用之新新 乃能常存而

不滅 若埋之灰中 不時時發視之 始雖熾然 終則必至於灰燼消滅.

 

또 하늘이 이 마음을 낸것은 그 至靈至明으로써 한 몸 가운데

주가 되어 여러이치의 묘로써 만물을 주재케 한 것이니 한갖 물

의 영장이 되어서 쓰이는 바가 없게 한것은 아니다. 하늘이 불을

내어 본시 사람에게 이롭게 한 것과 같은데 이제 어떤 사람이 불

을 재속에 파뭇어 추운 자가 열을 얻지 못하고 배고픈 자가 밥지

을 수 없다면 즉 비록 광염이 있어도 재 속에서 발하는 것과 같

으니 마침내 무슨 익됨이 있겠는가. 부처의 放光을 내 취하지

않는 바가 이것이다. 또한 불의 물건됨이 쓸수록 새로운 것이라

이어 능히 항상 보존해야 멸하지 않는 것인데 만약 재속에 파묻

고서 때때로 꺼내보지 않는다면 처음에 熾然하다가 마침내는 반

드시 재가 되어 꺼지고 말 것이다.

 

亦猶人之此心 常存憂勤慮之念 乃能不死而義理生焉. 若一味收

斂在裏 則雖曰惺惺 着必至枯槁寂滅而後已 則其所以光明者 乃所以

爲昏昧也. 此又不可不知也.

 

또한 사람의 마음도 같은 것이다. 근심하고,애쓰고,두려워하고,

염려하는 생각을가져야 이에 능히 죽지않고(마음의 작용) 의리가

생겨나는 것이니 만일 한결같이 수렴하여 속에 둔다면 즉 비록

惺惺할지라도 반드시 마르고 적멸한데 이르러서는 끝에 가서는

즉 광명한 所以가 혼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 또한 알아두지 않을

수 없다.

 

至於像設 亦有放光者 蓋腐草朽木 尙有夜光 獨於此 何疑哉.

 

형상을 갖추는데 이르러서도 역시 放光이 있다는 것은, 대개

썩은 풀과 나무도 오히려 야광의 비침이 있거늘 유독 이것에 대

해서만 의심을 하는가 ?

 

若夫人之有舍利 猶蛇蚌蛤之有珠 其間所謂善知識者 亦有無舍利

者 是則蛇蚌蛤而無珠之類也.

 

무릇 사람에게 사리가 있다는 것은 뱀과 조개가 구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其間(개중)의 소위 善知識이 또한 사리가 없는

것은 이는 즉 사훼나 방합에 구슬이 없는 것과 같은 종류이다.

 

世傳 人藏蚌蛤之珠 不穿不蒸者 久而發之 添得許多枚 是生意所

存 自然滋息理也. 舍利之分身 亦猶是耳. 若曰有佛至靈 感人之誠

分舍利云耳 則釋氏之徒 藏其師毛髮齒骨者多矣 何不精勤乞請 以分

其物而獨於舍利 言分身哉. 是非物性而何也.

 

세상에 전하기를 '사람이 방합의 구슬을 뚫지도 않고 찌지도 않

은 채 감추어 두고 오랬만에 꺼내보면 더해서 허다한 낱개를 얻

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生意가 있는 곳에 자연히 증가하는

이치이다. 사리가 몸으로 나뉘어 지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을 뿐이

. 만약 '부처에게 지극한 이 있어, 사람의 정성에 감동되어

사리가 나누어진다'한다면 즉 석씨의 무리가 그 스승의 毛髮,

을 수장할 사람이 많을 것인데 어찌 정성껏 그 물건을 나누어

가질 것을 빌어청하지 않고 유독 사리에 대해서만 몸이 나누어

짐을 말하는가 ? 이는 물성이 아니고 무었이겠는가 ?

 

或曰 舍利此甚堅固 雖以鐵塊擊之不能破 是其靈也. 然得羚羊角

則一擊碎爲微塵 舍利何靈於鐵而不靈於角也. 是固物性之使然 無足

怪者也.

 

혹이 말하기를 "사리라는 것은 매우 견고해서 비록 쇠망치로 쳐

도 깨뜨릴 수 없으니 이는 그 신령스러운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영양각을 얻어서 일격을 한즉 부서져 티끌이 될 것이니

사리가 어찌 쇠에는 신령스럽고 영양각에는 신령스럽지 못한가 ?

이는 진실로 물성이 그렇게 된것이지 족히 괴이할 것이 없다.

 

今或以兩木相鑽 或以鐵石相敲而火出 然此尙待人力之所爲也 以火

精之珠 向日而炷艾 則薰然而烟生 焰然而火出 固非人力之所爲.

初不過 熒熒之微 而其終也 赫赫然炎崑崙而焚玉石 何其神矣哉.

亦非其性之使然 而有一靈物 寓於冥漠之中 感人之誠而使之至此歟.

 

이제 혹이 양목을 서로 비비거나 혹은 쇠와 돌로 서로 두드려서

불을 일으키나 이는 오히려 인력의 할 火精

의 구슬로써 햇볕을 향하여 약숙에 불사르면 즉 훈연히 연기가

나면서 불꽃이 일고 불이 피어나니 진실로 인력으로 한 바가 아

니다. 그 처음에는 熒熒한 기미에 불과하지만 그 마침내는 赫赫

해져서 곤륜산을 불사르고 옥석을 태우니, 어찌 신기롭다 하겠는

? 이 또한 그 물성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신령한 물

건이 아득한 속에 붙어 살다가 사람의 정성에 감동되어 이에 이

르게 된것이겠는가 ?

 

且火之益於人者 抑大矣. 飮食則堅者柔 烘坑則寒者熱 湯藥物

則生者熟 飢可以飽 病可以愈 以至鎔鐵作 作斧作釜鼎 以利民用 作

刀槍劍戟 以威軍用 火之生也 其神如彼 火之用也 其利如此. 子皆

莫之重焉. 彼舍利者 當寒而不得以爲衣 當飢而不得以爲食 戰者不

足以爲兵器 病者不足以爲湯藥 使佛有靈 一祈而分數千枚 尙以爲無

益而廢人事 擧以投諸水火 永絶根本 況復敬奉而歸依歟.

 

또 불이 사람에게 이익됨은 크다. 음식에 불을 때면 굳은 것이

부드러워지고 온돌에 불을 때면 찬 것이 따뜻해지고 약물을 끓이

면 날것이 익으니 배고픔을 배부르게 하고 병이 있으면 나을 수

있고 쇠를 녹여 쟁기,도끼,가마솥을 만드는데 이르러서는 백성이

쓰는데 이롭게 하고 ,,,을 만들어 군대가 쓰는데 이롭

게 하니, 불의 생김이 그 신비함에 저와 같으며 불의 쓰임의 그

이로움이 이와 같은데 그대는 모두 중히 여기지 않는가 ? 저 사

리라는 것은 추움을 당하여서는 옷이 될 수 없고, 배고플 때는

음식이 될 수 없으며, 전쟁하는 사람에게 병기로도 부족하고,

자가 탕약으로도 삼을 수 없으니, 부처의 신령함으로 하여금 한

번 기도하여 수천개로 나눈다 해도, 오히려 익됨이 없어 인사만

폐하니 모두 물과 불에 던져서 영원히 근본을 끊어야 하는데 하

물며 다시 공경히 받들어 귀의할 것인가 ?

 

. 世之人 厭常而喜怪 棄實利而崇虛法 如此 可勝歎哉. 客不覺

下拜 曰 今聞夫子之言 始知儒者之言爲正 而佛氏之說爲非也. 子之

言 揚雄不如也.

 

! 세상사람들이 떳떳함을 싫어하고 괴이한 것을 좋아하며,

리를 버리고 허법을 숭상함이 이와 같으니 가이 한탄스럽구나."

하니 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제 그대의

말을 듣고 비로소 儒者의 말이 옳고 불씨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말은 양웅도 그러하지 못하다."

 

於是幷書卷末 以備一說焉.

 

이에 권말에 병서하여 일설을 갖춘다.

 

 

佛氏輪廻之辨  ① 불씨윤회지변(佛氏輪廻之辨)

佛氏因果之辨 ② 불씨인과지변(佛氏因果之辨)

佛氏心性之辨 ③ 불씨심성지변(佛氏心性之辨)

佛氏作用是性之辨 ④ 불씨작용시성지변(佛氏作用是性之辨)

佛氏心跡之辨 ⑤ 불씨심적지변(佛氏心跡之辨)

佛氏昧於道器之辨 ⑥ 불씨매어도기지변(佛氏昧於道器之辨)

佛氏毁棄人倫之辨 ⑦ 불씨훼기인륜지변(佛氏毁棄人倫之辨)

佛氏慈悲之辨 ⑧ 불씨자비지변(佛氏慈悲之辨)

佛氏眞假之辨 ⑨ 불씨진가지변(佛氏眞假之辨)

佛氏地獄之辨 ⑩ 불씨지옥지변(佛氏地獄之辨)

佛氏禍福之辨 ⑪ 불씨화복지변(佛氏禍福之辨

佛氏乞食之辨 ⑫ 불씨걸식지변(佛氏乞食之辨)

佛氏禪敎之辨 ⑬ 불씨선교지변(佛氏禪敎之辨)

儒釋同異之辨 ⑭ 유석동이지변(儒釋同異之辨)

佛法入中國 ⑮ 불씨입중국(佛氏入中國)

事佛得禍 ⑯ 사불득화(事佛得禍)

舍天道而談佛果  ⑰ 사천도이담불과(舍天道而談佛果)

事佛甚謹年代尤促  ⑱ 사불지근연대우촉(事佛至謹年代尤促)

闢異端之辨 ⑲ 벽이단지변(闢異端之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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