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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

성주는 알음알이를 두고 한 말이다. 낑수까 나무 경 (S35:245)

 낑수까 나무 비유 경


2. 그때 어떤 비구가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3. 그러자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4.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네 가지 근본물질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5. 그 비구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또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도반이여, 비구가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

6. 그러자 그 비구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다른 비구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 저는 다른 비구에게 다가갔습니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 그러자 그 비구는 ‘도반이여, 비구가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 때 비구의 봄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다른 비구들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세존을 뵈러 왔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비구의 봄[見]은 아주 청정하게 됩니까?“


7. “비구여, 예를 들면 일찍이 낑수까 나무를 본적이 없는 사람이 낑수까 나무를 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하자. 그는 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무엇과 같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검은 것인데 마치 타다 남은 그루터기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에 있던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의 질문에 대한 다른 사람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낑수까 나무를 본 적이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무엇과 같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붉은 것인데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에 있던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사람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낑수까 나무를 본 적이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무엇과 같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껍질이 길게 늘어뜨려지고 꼬투리가 터진 것이 마치 아카시아 나무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에 있던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사람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하여 낑수까 나무를 본 적이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무엇과 같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여보시오, 낑수까 나무는 많은 잎사귀를 가지고 있어서 큰 그늘을 드리우는데 마치 니그로다 나무처럼 생겼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무렵에 있던 낑수까 나무는 그 사람이 본 것처럼 그렇게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8. “비구여, 이와 같이 그들 확신을 가진 참된 사람들은 그들의 아주 청정한 봄[見]에 따라서 설명을 한 것이다.
비구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깊은 해자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여섯 개의 대문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지혜롭고 슬기롭고 현명한 문지기가 있어,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한다.
그때 동쪽으로부터 재빠른 전령 두 명이 달려와서 그 문지기에게 ‘여보시오, 지금 이 도시의 성주는 어디에 계시오?’라고 말하면 그는 ‘지금 그분은 중앙 광장에 앉아계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 재빠른 전령은 성주에게 있는 그대로 보고를 한 뒤 들어온 길을 따라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때 서쪽으로부터 … 북쪽으로부터 … 남쪽으로부터 … 보고를 한 뒤 들어온 길을 따라서 되돌아 갈 것이다.“

9. “비구여, 이 비유는 뜻을 바르게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이다. 그 뜻은 이와 같다.
비구여, 도시라는 것은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이 몸을 두고 한 말이니 이 몸은 부모에게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비구여, 여섯 개의 대문이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을 두고 한 말이다.‘Cha dvārā’ti kho, bhikkhu, channet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adhivacanaṃ. 

비구여, 문지기란 마음챙김을 두고 한 말이다.‘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재빠른 전령 두 명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두고 한 말이다.‘Sīghaṃ dūtayuga’nti kho, bhikkhu, samathavipassanān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성주는 알음알이를 두고 한 말이다. ‘Nagarassāmī’ti kho, bhikkhu, viññāṇass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중앙 광장이란 네 가지 근본물질을 두고 한 말이니 그것은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이다.

비구여, 있는 그대로의 말씀이란 열반을 두고 한 말이다. ‘Yathābhūtaṃ vacana’nti kho, bhikkhu, nibbānassetaṃ adhivacanaṃ. 

비구여, 들어온 길이란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정도]를 두고 한 말이니 ‘Yathāgatamaggo’ti kho, bhikkhu, ariyassetaṃ aṭṭhaṅgikassa maggassa adhivacanaṃ, seyyathidaṃ – 그것은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낑수까 나무 비유 경 (S3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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