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최초의 비구니승단이 설립된 웨살리
웨살리는 세계의 비구니스님들에게 특별한 장소이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어렵게 비구니출가를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뜻있는 비구니스님들이 이곳에서 사찰을 건립하여 비구니수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베트남비구니스님은 이곳에 큰 사찰을 짓고 비구니 수계살림을 하고 있다. 비구니계가 끊긴 태국도 이곳에서 수계한 비구니스님이 사찰을 짓고 있다. 비구니파워가 상대적으로 강한 한국의 비구니스님들의 활동이 보이지않아 아쉽다. 최초의 비구니로 알려진 마하빠자빠띠는 깨달은 얻은 다음해에 고향을 방문한 부처님을 뵈었다. 첫방문에서 부처님은 거만한 사까족들에게 쌍변신의 신통을 보이고 많은 가르침을 설했는데 이때 마하빠자빠띠와 숫도다나등은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러나 이때는 숫도다나왕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출가할 마음을 내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시 고향을 방문한 것은 사까족과 꼴리야족의 농부들이 가뭄으로 물싸움이 일어났을 때다. 부처님은 물싸움을 중재했고 그 보답으로 사까족과 꼴리야족은 청년 500명이 출가하게 된다. 출가한 청년들의 아내들 500명은 몇 년후 마하빠자빠띠와 출가하게 된다. 연로한 숫도다나왕의 임종이 가까워오자 부처님의 부친의 임종을 보려고 세 번째 고향을 방문하는데 이때가 깨달음을 얻은 5년후였다. 숫도다나왕이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마하빠자빠띠는 니그로다숲에 계시던 부처님을 찾아가 세 번이나 출가를 요청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500명의 사까족 여인들과 삭발하고 가사를 걸치고 웨살리로 찾아가 아난다의 도움으로 출가를 하게된다. 이때 부처님은 웨살리의 중각강당(꾸타가라살라)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 승원은 부처님이 보배경을 설하여 질병을 해소시켜준 보답으로 만들어진 승원이다. 부처님과 비구니들은 이곳에서 첫 안거를 나게된다. 지금도 중각강당 옆에는 비구니들이 살았다는 절만자 모형의 절터가 남아있다. 특히 비구니스님들이 살던 승원터에서 발견된 수세식 소변기는 방문자들의 흥미를 이끈다.
비구니승원에서 발견된 소변기(웨살리 박물관)
아난다가 마하빠자빠띠를 대신해서 여인출가를 요청했다는 이유로 비구니출가는 아난다가 정식 시자가된 이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부처님의 고향방문시기, 중각각당의 건립시기, 500명의 사까족과 꼴리야족 여인들이 나타난 시기, 니그로다 숲에서 출가요청, 부처님의 웨살리 안거시기등의 사건을 감안해보면 비구니승가가 탄생한 것은 비구승가보다 5년이 늦은 것으로 봐야한다. 비구니부처님이 6번이나 비구니의 출가를 거절하고 팔경법을 내세우고 비구니의 출가로 정법이 500년 단축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하신걸 보면 비구니의 출가가 얼마나 큰 결단이었는지 알 수 있다. 어떤이들은 오백년 단축설과 팔경법은 부처님이 설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빠알리율장을 비롯한 모든 율장전통에 전해지고있는 팔경법을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억지스럽다. 부처님이 제시한 비구승가를 공경해야 8가지 도리는 다음과 같다.
①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지 백세가 되어도 오늘 구족계 받은 비구에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응대해야한다. 이 법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기지 않도록 공경하고 존중하고 숭앙하고 존숭해야한다.
②비구니는 비구가 없는 住處에서 雨期를 지내서는 안 된다.
③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승가에게 布薩에 대한 질문과 훈계하는 자의 방문을 요청해야한다.
④비구니는 雨安居가 끝나면 兩僧伽에서 見․聞․疑의 세 가지 일에 대해서 自恣를 행해야 한다.
⑤비구니가 敬法(garudhamma)을 범하면 兩僧伽에서 보름동안 속죄(mānatta)를 행해야 한다.
⑥正學女(sikkhamānā)가 2년 동안 六法의 學處를 배우고 나면 양승가에서 구족계를 청해야 한다.
⑦비구니는 어떠한 이유로도 비구를 비웃거나 비난해서는 안된다.
⑧오늘부터 비구니의 비구에 대한 충고는 막히고,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충고는 막히지 않는다.
비구니스님들이 살았던 승원(이곳에서 소변기가 발견되었다)
위 8가지 존중법의 특징은 비구승가는 비구승가에서 독자적으로 포살과 자자등을 행하는데 비구니는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 양쪽으로부터 통제 혹은 보호를 받아야한다는 것이다. 비구니 출가의 전제조건인 팔경법은 이미 부처님 당시에 팔경법의 대부분이 부처님에 의해서 무효화되거나 완화되었다. 재가자들은 비구니가 비구에게 무릎을 꿇고 참회를 하고 충고를 듣는 모습, 밤늦게 비구니들과 같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 심각하게 오해하고 비난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재가자의 비난으로 인해서 팔경법 ③④⑤⑥⑦⑧번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비구니들이 비구니들에게 의무계율을 송출하는 것을 허용한다.’ ‘비구니들이 비구니들에게 죄를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한다.’ ‘비구니들이 비구니들을 위해 갈마하는 것을 허용한다.’‘비구니들이 비구니들을 위해 죄를 처분하는 것을 허용한다.’ ‘비구니들이 비구들과 자자를 행해서는 안된다. 행하면 악작죄가된다.’라는 내용으로 비구니승가의 독립성이 강화되었다. 또한 율장 뒷편으로 가면 ‘비구들이 비구니들에게 포살을 차단시켜서는 안된다’ ‘자자를 차단시켜서는 안된다’ ‘명령을 내려서는 안된다’ ‘권위를 세워서도안된다’ ‘허가를 받아서도 안된다’ ‘비난을 해서도 안된다’등 의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비구와 비구니에게 똑같은 권한을 준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①번이 비구니에대한 차별이라해도 비구에게 인사 잘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지 천주교의 수녀들이 평생 신부를 시봉을 한다거나 미사집전을 못한다는등의 차별은 못된다. 평소에 하심하고 인사 잘하는 스님이라면 아무런 불편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비구니스님들은 팔경법이 후대에 만들어진 비구니차별법이니 없애야한다는 주장보다 팔경법이 만들어진 의도와 내용 그리고 어떻게 수정되고 변화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부처님은 비구비구니의 육체적차이를 아시고 팔경법을 두셨지만 정신적으로는 비구비구니가 동등하게 과위를 얻을 수 있기에 출가를 허락하셨다. 특히 ②번은 비구니들을 구속시키기 위한 조항이 아니라 비구니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다. 현대처럼 선방이나 강원처럼 비구니들이 단체생활을 하거나 시골 말사에 살더라도 경보장치가 작동되는 시스템이라면 ②번도 자연스럽게 무효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순례길에 만난 축제행렬
부처님은 “만약에 여인의 출가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천년동안 정법이 존속할것인데 비구니출가로서 단지 500년 지속될 것이다.”라는 말씀도 남기셨지만 열반경(D16)에서는 “수밧다여,이 법과 율에는 여넓 가지 성스러운 도가 있다. 그러므로 오직 여기에만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두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세 번째 사문이 있다. 여기에만 네 번째 사문이 있다. 다른 교설들에는 사문들이 텅 비어 있다. 수밧다여, 이 비구들이 바르게 머문다면 세상에는 아라한들이 텅 비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두 개의 가르침에서 모순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모순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느 한쪽만을 인정하거나 둘다 인정하거나 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웨살리는 자아나교주인 니건타나타뿟다가 태어난 곳이며 그는 이곳에서 12안거를 지내며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부처님은 이곳에서 2번의 안거를 지내셨는데 작은 이곳에서 설해진 삿짯까경(M35), 큰 삿짯가경(M36)등은 니간타의 제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들이다.
웨살리에있는 태국사찰에 머무는 동안 만난 한국비구니스님들은 고맙게도 웨살리에 한국사찰을 짓겠다는 마음을 내었다. 그래서 나와 비구니스님들은 태국사찰 주지스님이 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며칠 웨살리의 땅을 보러 다니기도했다. 웨살리는 다른 성지들에 비해 전기사정도 안좋고 교통도 안좋아 외국인들이 살기에 불편한 곳이지만 그런 이유로 다른 곳보다는 땅값이 싸다. 모쪼록 어려운 마음을 낸 비구니스님들이 역경을 이겨내어 이곳에 비구니사찰을 건립해주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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