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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성지순례기

7.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는 어디에 있을까?

7.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는 어디에 있었을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2주째와 5주째에 머물렀다는 아자빨라(ajapāla)니그로다(ajapālanigrodha) 나무는 어디에 있었을까?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듯이 아자빨라니그로다 아래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깨달음을 얻은 2주째는 아자빨라니그로다에서 오만한 바라문을 만나서 어떻게해야 바라문이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 자만 사견을 버리고 청정한 삶을 성취한자가 바라문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중생들의 청정을 위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기 위한 것이며,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하고 옳은 방법을 터득하고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다.”라고 시작하는 도경(道經,S47:43)이 이 나무아래서 설해졌다. 5주째는 이 나무 아래서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법이 미묘하여서 알아듣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하였다.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왜 내가 지금 설해야 하나.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드네.

흐름을 거슬러가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는 보기 어렵네.

어둠의 무리에 뒤덮인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발굴되지 않은 유미죽 스투파와 수자타템플

 

 

부처님이 설법하기를 망설이고 있을 때 사함빠띠범천의 권청을 받는 범천경(S47:18)이 설해졌다. 범천의 3번에 걸친 권청은 나중에 청법게의 원형이 된다. 깨달음을 얻은 후 이 세상 그 누구도 의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내가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이 진리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거기에 의지해야겠다.”고 다짐도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밖에도 아자빨라니그로다에서는 고행경(S4:1) 코끼리경(S4:2) 아름다움경(S4:3) 권청경(S6:1) 존중 경(S6:2) 범천 경(S47:18)  사함빠띠 범천 경(S48:57) 칠 년 동안 경(S4:24) 우루웰라 경(A4:21) 많은 경들이 설해졌다. 이 경들은 모두 깨달음을 얻고 49일동안에 설해진 경전들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무엇보다도 성지를 순례자들은 경전이 설해진 장소에서 그 경전을 독송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성지순례하는 목적이 현장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재음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아자빨라니그로다의 위치를 찾는 것은 순례자에게 중요한 일인 것이다.

 

  현재 보드가야 대탑입구에 있는 아자빨라니그로다 안내판은 정확한 장소가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주석서에서는 네란자라강가에 고행을 그 만둔 싯타르타에게 수자타가 유미죽을 올렸는데 그 나무가 아짜빨라니그로다 나무라고 전한다. 아자빨라니그로다는 염소치기(아짜빨라)가 주로 찾았던 반얀나무(니그로다)라는 뜻이다. 나는 몇가지 이유로 수자타가 유미죽을 올렸던 아자빨라니그로다가 부처님이 5주째 머무신 나무라고 보게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경에서 항상 세존께서는 우루웰라의 네란자라 강둑에있는 아자빨라니그로다 아래서 머무셨다.’라고 나타나듯이 이 나무는 강옆에 있었는데 현재 유미죽을 올린 것을 기념하는 스투파도 강 옆에 있다. 둘째 6주째 머무신 무찰린다(Mucalinda) 연못이 대탑에서 남쪽으로 2km떨어진 곳에 모짜림(Mocarim)마을에 있듯이 5주째 머문 아자빨라나무도 지금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자연스럽다. 현재 아자빨라나무가 있었다는 곳은 대탑과 50m정도 떨어져있고 원래의 아자빨라나무가 있었던 유미죽 스투파는 대탑과 2km떨어져 있다. 셋째 아자빨라는 염소치기라는 뜻인데 오늘날 유미죽 스투파가 있는 동네가 염소(bakraur)마을로 불리고 있어 염소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전부터 이곳에서는 염소를 많이 길렀던 듯하다. 마지막으로 보드가야에서 45년을 사신 85세의 미얀마사찰 주지 우 냐네인다(U.Nyaneinda)스님은 이곳이 아자빨라니그로다라고 생각하여 일찌감치 스투파앞에 불상을 조성해 놓았다고 증언해 주셨다. 그런데 이 불상을 조성한 땅이 정부소유라서 더 이상 불사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들로서 5주째 머무신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는 현재 우유죽을 받은 자리에 세워진 탑이 있는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보게된 것이다.

 

 

 

 미얀마스님이 유미죽스투파 앞에 조성한 불상

 

두상인에게 공양을 받았다는 라자야따나 나무도 태국인들은 모짜림 연못에서 남쪽으로 1km떨어진 곳에 있다고 믿고 그곳을 참배하고 있다. 아자빨라니그로다아래서 받은 우유죽을 드시고 바로 앞에 있는 강물로 바루를 씻었다. 강물에 바루를 떠내려 보내며 바루가 강물을 거슬러 흐르면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실제로 바루가 강물을 거스르며 거꾸로 흘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들을 제외하더라도 이곳 주변은 싯타르타가 6년동안 고행했던 숲으로 순례자들이 목숨을 건 싯타르타의 고행을 떠올려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곳이다. 큰 사자후경(M12)에는 일반인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부처님의 고행들이 열거되어 있다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똥이나 오줌을 누려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또한 사리뿟따여, 그렇게 적은 음식 때문에 내가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손으로 사지를 문지르면, 털이 뿌리까지 썩어서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부처님은 천박하고 저열한 고행을 멀리하라고 하셨지만 순례자는 싯타르타의 고행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게으름을 채찍질하고 간절한 정진의 마음을 일으키는데 이 곳 만큼 좋은 곳도 없을것이다.

 

 

 

수자타집이 있었던 수자타스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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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미죽을 받은 스투파는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탑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없고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아서 이 스투파를 모르고 지나치는 순례자들이 더 많다. 수자타와 아무런 관계없는 힌두교들이 수자타가 공양올리는 조각상을 조성해 놓고 수자타템플이라고 부르며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이 템플 입구에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을 연출시켜 보여주며 보시를 강요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하고 있다. 수자타템플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흰두템플이 있는데 이곳에 우루웰라 가섭이 살았다고 하면서 부처님의 고행상을 2군데 모셔놓았다. 그런데 그 고행상이 하나는 담장밖에 하나는 우물앞에 모셔져있어 불편한 마음이들며 보시를 강권하고 있어 이곳도 유쾌하지 않다. 앞으로 불자들이 유미죽을 받은 아자빨라니그로다 주위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이곳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설명해주고 여행의 편의를 제공해줄 안내소 혹은 사찰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인도네팔의 불교성지에는 미얀마사찰이 60개가 있고 태국사찰이 32, 스리랑카사찰이 20, 베트남 사찰이 27개 대만사찰이 9개가 활발하게 순례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국제교류를 하고 있다. 한국은 인도네팔에 7개의 사찰이 있으나 공익적인 사찰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곳은 룸비니의 대성석가사, 사왓티의 천축선원, 그리고 최근에 생긴 보드가야의 사띠아라마 정도이다. 한국의 경제수준과 불자수를 감안해볼 때 한국사찰의 숫자는 너무적고 공익적인 활동은 초라하다. 늦었지만 한국의 불자들도 부처님 성지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기대한다.

 

 

 

 

 

 

 

7.Where was the Ajapalanigroda tree?

 

Where was the Ajapālanigrodha tree where the Buddha stayed for the second and fifth weeks after enlightenment? After Buddha attained enlightenment under the Bodhi tree, he moved to the Ajapalanigroda tree. At this time, he was asked by an arrogant Brahmin, "What should I do to become a Brahmin?", and he answered that he should give up greed, anger, foolishness, pride, and evil views.

In the Respect Sutra (S6:2), the Buddha realized that no one could depend on him and pledged, “I will respect this truth that I have realized and rely on it.” When the Buddha was hesitating to preach, he received the invitation of Sahampati Brahma and the Brahma Sutra (S47:18) was preached here.

 

‘Why should I now preach the truth that I worked so hard to achieve?

It is difficult for those caught up in greed and hatred to understand this truth.

It is difficult to go against the flow and see the mysterious, profound, and subtle truth.

Those who are covered in darkness and infected with greed do not see it.’

 

Sahampati Brahma, who recognized the Buddha's thoughts with his heart, appeared before the Buddha in the blink of an eye and persuaded him to change his mind. After three persuasions, Buddha finally decides to preach. Brahma's three-time invitation is the prototype of Cheongbeopge.

 

“For them the gates of immortality were opened.

He who has his ear, let go of his faith.

Brahma, this subtle and sublime law

Because of the perception that it will only make you tired

“I didn’t preach to people.”

 

Also, “This path is the only way, it is for the purification of living beings, to overcome all worries and sighs, to eliminate physical pain and mental pain, to learn the right way, and to realize nirvana. The Tao Sutra (S47:43), which states, “It is the establishment of the four types of mindfulness,” was preached here. Mara appeared in the form of an elephant king to arouse fear and horror in the Blessed One and make his hair stand on end (S4:2,2). Mara followed him for seven years and then left, leaving behind a verse (S4:24).

 

“The crow didn’t get anything tasty.

I have no choice but to retreat helplessly from there.

Like a crow obsessed with a rock

“We leave Gotama disappointed.”

 

When the young Buddha did not stand up to greet the old Brahmins when they approached him, the Brahmins reprimanded the Buddha. At that time, the Buddha said in the Uruvela Sutra (A4:22), “Although I was young, with black hair and blessed youth, I was in my early years. Even so, if he speaks in a timely manner, speaks of the truth, speaks of useful things, speaks of the law, speaks of the law, and is timely, has a clear reason, is refined, and speaks of benefit and worth containing, then it is true. Calling himself a wise 'elder', he youthfully scolded the attitude of the Brahmins who tried to gain respect solely because of their age without the content of their practice.

 

In addition, many sutras, including the Ascetic Sutra (S4:1), the Beauty Sutra (S4:3), the Cheongjeong Sutra (S6:1), and the Uruvela Sutra (A4:21), were preached in Ajapalanigroda. These sutras are noteworthy in that they are all sutras that were preached over a period of 49 days after enlightenment. People who make pilgrimages to holy places consider it important to recite the sutras at the place where they were preached. If the purpose of pilgrimage is to reexamine the words of Buddha on site, finding the location of Ajapalanigroda becomes an important task for the pilgrim.

 

Currently, the Ajapalanigroda signboard at the entrance to Bodh Gaya Pagoda is not in the exact location. For several reasons, I believe that Sujata raised Yumijuk and numerous sutras were preached.

I came to see that the Ajapalanigroda tree was located close to Sujata Sutupa across the Neranjara River.

The reason is that in the first commentary, it is said that Sujatha offered porridge to Siddhartha during his penance on the banks of the Neranjara River, and that the tree was an Ajjapalanigroda tree. It was under this tree that Sujata offered milk porridge to the Blessed One who had quit his asceticism (j.i.16,69).

 

As the second sutra always states, ‘The Blessed One stayed under Ajapalanigroda on the banks of the Neranjara River in Uruwela,’ there is a stupa next to the river that commemorates the Sujata House (now Stupa) and the raising of Yumi Bamboo.

 

Third, just as the Mucalinda pond, where I stayed for the 6th week, is in Mocarim village, 2km south of the pagoda, it would be natural for the Ajapala tree, where I stayed for the 2nd and 5th weeks, to be farther away than it is now. Currently, Yumijuk Stupa, where the Ajapala tree was located, is 2km away from the main pagoda, and Sujata Stupa and Yumijuk Stupa are about 500m away.

 

Fourth, Ajapala means ‘goat herding’, and today the village where Yumijuk Stupa is located is called goat (bakraur) village. It seems that many goats have been raised here since long ago. The Fifth Buddha drank the milk porridge he received under Ajapalanigroda and washed Baru with water from the river right in front of him. He sent Baru floating down the river and prophesied that if Baru flowed against the river, he would attain enlightenment. In fact, it is said that Baru flowed backwards against the river. Monk U. Nyaneinda, an 85-year-old Myanmar temple chief who lived in Bodh Gaya for 45 years, created a Buddha statue to commemorate the place where Buddha ate cosmic porridge and sent his bowl floating down the river. This place is 200m away from the Ajapala tree where the milk porridge was received, towards the river. For these reasons, I came to believe that the Ajapalanigroda tree is the current location of Yumijuk Sutupa.

 

The area around the Ajapala tree is where Uruwellakassapa stayed, and it is the forest where Siddhartha did asceticism for six years. The Great Lion's Hut Sutra (M12) lists the Buddha's penances that are difficult for the average person to even imagine.

‘Sariputta, because of such little food, when I tried to defecate or urinate, my head fell forward. Also, Sariputta, because of such little food, when I rubbed my limbs with my hands to relax my body, the hair rotted to the roots and fell off from the body.’

Although the Buddha told people to stay away from shallow and lowly ascetic practices, there is no better place for pilgrims to recall Siddhartha's asceticism and to whip out their laziness and arouse their earnest devotion.

 

Currently, the stupa that received Yumijuk has not been excavated. Therefore, there is no signboard introducing the stupa and it is not easily visible, so more pilgrims pass by without knowing this stupa. Hindus who have nothing to do with Sujata have built a statue of Sujata as an offering and are welcoming pilgrims by calling it Sujata Temple. At the entrance to this temple, students are shown sitting at desks studying and are forced to give alms, which is frowned upon. Not far from the Sujata Temple is the Huindu Temple, where Uruwella Kasyapa is said to have lived and where two ascetic statues of Buddha are placed. However, one of the ascetic statues is placed on the wall and the other in front of the well, making Buddhists feel uncomfortable. The Indians living in the Hindu temple are not happy because they are forcing Buddhists to give alms. In the future, if Buddhists become aware of the many sutras and many events preached around Ajapalanigroda, who received Yumijuk, more pilgrims will visit this place in the future. Therefore, there seems to be a need for an information center or temple to provide travel convenience to pilgrims visiting this place. Currently, in the Buddhist holy sites in India and Nepal, there are about 60 temples in Myanmar, 30 temples in Thailand, 20 temples in Sri Lanka, 27 temples in Vietnam, and 9 temples in Taiwan that are actively providing convenience to pilgrims. Korea has seven temples in India and Nepal, but the only ones that are fulfilling their duties as temples for the public interest are Daeseong Shakasa Temple in Lumbini, Cheonchuk Seonwon in Savatthi, and Bunhwangsa Temple in Bodh Gaya.

Considering Korea's economic level and the number of Buddhists, the number of Korean temples is too small and public activities are shabby. We expect Korean Buddhists to be more interested and active in sacred places such as Bodh Gaya where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gather. Thai people believe that the Rajayatana tree, which is said to have been offered as an offering by two merchants, is located 1km south of Mozzarim Pond, and they worship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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