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아난존자의 사리탑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3달후 라자가하 칠엽굴에서는 500명의 아라한이 참여하는 결집이 이루어졌다. 아난다 장로는 결집을 얼마 남기지 않고 가까스로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경을 송출하는 역할을 는다. 세월이 흘러 결집이 끝난지도 40년이 흘렀다. 백이십세가 된 아난존자는 스스로 열반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는 ‘일주일 후에 열반에 들겠다’라고 알렸다. 부처님과 제자들 사리뿟다 목갈라나 마하까사빠등이 열반에 들자 이제 사람들에게 아난다는 부처님과 같은 우뚝한 존재였다. 갠지스강을 사이에둔 마가다주민과 웨살리주민들은 서로 ‘장로께서는 우리지역에서 열반에 드십시요’라고 청하였다. 존자는 만약 내가 한쪽에서 열반에 들면 강변 다른쪽 사람들은 나의 사리를 차지하려는 문제로 싸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갠지스강 한가운데서 공중으로 솟아올라 가부좌를 하고 앉아 화광 삼매에 들어 스스를 불태웠다. 몸이 불타고나자 갠지스강 양쪽으로 똑같이 아난다존자의 사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아난다존자의 사리를 모셔다가 사리탑을 세웠다. 웨살리쪽에 떨어진 아난다존자의 사리중에서 반은 갠지스강옆에 탑에 모시고 나머지 반은 지금 아소카석주가 있는 중각강당옆에 모셨다. 아쇼카석주옆에 있는 아난다 사리탑은 많은 순례자들이 참배하는 순례의 명소가되었지만 갠지스강변에 모셨다는 아난존자의 사리탑은 잊혀져갔다. 그런데 이번 순례에서 강변에 있던 아난다사리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난존자 사리탑
날란다에 있는 나와날란다마하위하라(Nava Nalanda Mahavihara)대학을 방문했을 때 대학의 조사팀이 갠지스강변에 위치한 아난다탑을 확인했다고 말하며 사진까지 보여주었다. 이 대학에서는 새로운 날란다(Nava Nalanda)라는 대학의 이름처럼 인도불교의 부흥과 성지순례문화를 개발하고자 노력중인데 그중에 하나가 열반경을 따라서 걷는 순례프로그램이다. 부처님이 마지막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각각의 장소에서 설해졌던 가르침을 음미하는 걷기순례는 앞으로 새로운 순례문화를 만들어 낼 듯하다. 이 순례코스가 개발되면 이제 버스를 타고 둘러보는 순례에서 유럽의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부처님성지도 걷는 순례문화가 정착될 듯하다. 현재는 가장 인기있는 걷기순례코스는 제티얀(Jethian)에서 라자가하의 죽림정사까지 15km 걷기코스다. 제티얀은 부처님이 우루웰라에서 천명의 아라한을 이끌고 마가다국으로 들어갈 때 빔비사라왕이 수많은 주민들과 부처님을 맞이한 곳이다. 제티얀에서 라자가하 죽림정사까지 걷는 행사는 주로 남방불교국가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주최하고 참석하는데 2017년에는 13번째 행사가 열렸다. 올해도 12월초에 14회 걷기행사가 열릴 예정인데 혹시 올해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일정을 염두에 두고 인도에 간다면 더욱 의미있는 순례가 될 것이다. 이 걷기 행사는 10여개국의 불자들이 모여 국제초기경전 읽기행사(http://tipitakachantingcouncil.org)를 마치고 마지막날 개최되는 행사이므로 경전읽기에 관심있는 분들은 일주일동안 진행되는 경전읽기프로그램에도 참여 할 수도 있다.
아난존자 사라탑 입구
아난다 스투파가 있는 곳은 갠지스강에서 불과 600m정도 떨어진 마을이었다. 웨살리에서 만난 비구니스님 3분과 택시를 대절해서 아난다스투파에 도착하였다. 웨살리에서 빠뜨나에 다다르기전에 동쪽으로 20km쯤 가다보면 마두라뿌르(Madurapur)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에서 1km안으로 들어가니 탑모양의 봉분이 눈에들어왔다. 우리들은 아난다탑에 가까워 질수록 전설로만 전해지던 아난다스님의 열반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한다는 생각에 흥분이 고조되었다. 날란다대학에서 얻은 사진과 확인해보고 이곳이 아난다 스투파라는 것을 알았다. 이방인을 맞이하는 동네사람들도 한결같이 이곳이 아난다스투파라고 확인해주었다. 계단을 따라 봉분을 올라가니 힌두템플이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봉분의 3분의2지점을 잘라서 힌두템플을 만든 것을 보고 실망감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순례를 하다보면 불교성지의 대부분이 이렇게 힌두교템플이나 무슬림 사원이 들어서 있는 것을 자주 보아왔다. 그럴때마다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런데 아난다스님의 탑앞에서는 분노가 폭팔했다. 나는 마을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조상 릿차위들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아난다스님의 탑을 어떻게 후손이라는 자들이 이렇게 봉분탑을 싹뚝 잘라낼 수 있느냐고 소리높여 물었다. 그들은 ‘내가 한일이 아닌데...’라는 억울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동행한 비구니스님들도 화가나긴 마찬가지였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청년이 나타나 몇 년전에 비하르주지사가 이곳을 방문하고 사리탑을 복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불교스투파를 잘라내고 힌두템플을 지어놓았으니 다시 원형대로 복원하려고해도 종교분쟁이 일어날까봐 주지사도 함부로 복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조상들이 물려준 아난다 스투파를 잘 관리해왔다면 지금 이곳은 전세계의 불자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되었을 텐데... 무식한 힌두교인들이 조상들이 물려준 성인의 탑을 잘라내고 흰두교템플을 만들어 버렸으니 탑은 잊혀지고 탑의 역사도 잊혀지간 것이다. 마을 청년은 이곳에 일단 불상을 조성해서 모시는 것이 어떤가하는 의견을 내었다. 나는 사리탑위에 불상을 모신다는 것이 과연 어울릴지 그리고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혼란스러워 아무 대답도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그들과 작별하고 근처에 갠지스강으로 갔다.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졌다. 모든 부처님의 스투파와 제자들의 스투파는 힌두교성지로 변했다. 최근들어 전세계의 불자들이 역사의 흔적을 찾아 순례를 하게되니 힌두교인들은 이제야 유적지의 가치에 눈뜨고 있다. 불교유적지를 개발하면 돈이 들어올테지만 힌두교를 버리고 불자가 되기도 싫은 그들은 유적지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아난존자 사라탑에서 가까운 갠지스강
바라나시에서 흘러오는 갠지스강이 동쪽바다로 흘러가는 이곳은 고기가 많이 잡히는지 강가에는 많은 고깃배가 정박해 있었다. 거의 어촌이라 부를만했다. 더워지기 시작하는 한낮이었지만 강바람은 시원했다. 빠트나 앞으로 흐르는 갠지스강물을 보니 문득 바라나시 앞 갠지스강에서 잡아올린 큰 고기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분전환도 할겸 동행한 스님들께 바꿀라 존자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꿀라존자는 꼬삼비에 살던 행정관의 가정에 태어났는데 보모가 야무나 강에서 아이를 씻다가 놓쳐서 커다란 물고기가 아기를 삼켰다. 그 후 그 물고기는 바라나시 갠지스강에서 어부에게 잡혔고 바라나시에 살던 어떤부인에게 팔렸다. 부인이 고기의 배를 갈라보니 아이가 상처 없이 살아있었다고 한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바라나시에서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꼬삼비의 부모는 아이를 찾으러 바라나시에 왔고 아이는 코삼비와 바라나시 양쪽의 부모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바꿀라는 80세가 되어서야 출가했는데 그는 “내가 출가한 이래 팔십 년 동안 소의 젖을 짜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이라도 질병에 시달린 기억이 없다.”(M124)라고 스스로 고백하듯이 건강하게 160세까지 살았다한다. 이쪽에 아난다탑이 발견되었으니 강건너 저쪽에도 아난다존자의 사리탑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아직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있다면 지금 아난다 탑처럼 직선으로 보이는 강변 어딘가에 있을텐데...
고깃배가 보이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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