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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개혁

도법스님께

도법스님께


며칠전 스님을 만나 점심공양을 같이 하면서 이제 스님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스님을 적폐세력의 부역자이고 자승스님의 앞잡이라도 매도할 때, 그래도 제게 남아있는 생각은 사람들이 스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의 초지일관한 주장은 총무원장이 바뀐다고 종단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종단의 체질을 바꾸어야 하는데 그것이 대화와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도 감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우리종단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대화와 토론문화입니다. 그러나 요즘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이 꼭 스님이여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스님과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5년간 토론과 논강으로 경전을 배웠습니다. 선원에 다니다 지친 저에게 화엄학림의 토론시간은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실상사의 도반들이 누구보다 정겨운 것은 허물없이 대화와 토론을 많이 나누었던 탓일 것입니다. 그때만해도 스님은 어떤 말이든지 들어주시고 같이 고민하시고 대안을 제시하셨습니다. 스님이 지리산자락에서 펼치던 대안학교, 귀농학교, 마을학교, 사부대중공동체 활동은 한국불교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총무원에 들어오시고 자정과쇄신결사본부장을 맡고 화쟁위원장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하셨지만 지금에 와서 평가하자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왜 일까요?


첫째 사상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스님이 시도하다가 실패한 ‘종교평화선언’이나 지금도 펼치고 있는 ‘붓다로 살자’운동은 불교의 연기론과 불성사상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저는 종교평화선언에 대해서 비판의 글도 썼고 ‘붓다로 살자’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스님과 공개토론도 하였습니다.(스님과의 공개토론인줄 알고 갔는데 스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재가자들과의 토론이었습니다.) 종교평화선언에서는 ‘A가 있으므로 B가있다’. ‘A가 발생하므로 B가 발생한다’는 연기론을 A와 B에 무엇이든지 대입하여 연기를 설명하므로서 연기를 왜곡시키는 문제를 지적하였고 ‘붓다로 살자’는 붓다는 붓다로 살아지는 자이지 다시 어떻게~ 살자라고 다짐하거나 맹세하는 자가 아니라는 언어모순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스님을 설득하지 못하였고 지금은 ‘붓다로 살자’가 포교원의 포교운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삼귀의에서 ‘승가’를 ‘스님들께’라고 번역한 것과 더불어 한국불교 교학의 혼란과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사건들입니다.

저는 현재 용주사주지 범계문제. 마곡사주지 돈선거, 적광스님 폭행사건과 같은 종단의 적폐청산을 위해 조계사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불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이러한 사상적인 혼란이라고 봅니다. 지대방에서 나오는 한담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라 종단의 중요한 직책을 맡은 분이 문제가 있는 사상을 현실화 시키려는 시도가 매우 염려됩니다. 이러한 비판을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공격이라고 보지 마시고 다시 한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화쟁위원장으로서 스님이 보여주신 활동과 사부대중100인대중공사에서 스님의 태도입니다. 대화와 토론을 강조하시는 스님이 어느덧 가장 경직되어 있음을 봅니다. 스님은 끊임없이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만 하셨지 허힘탄회하게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마곡사 돈선거 문제와 용주사 주지의 은처문제, 그리고 적광스님 폭행사건에 대해서 스님이 침묵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스님은 사사건건 내가 그런 문제에 관여하게 되면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백인대중공사와 같은 대화의 장을 지속시키려면 다른 것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현실을 무시하고 건전한 대화만을 즐기는 백인대중공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서의현 사면문제를 대중공사에서 논의하고 총무원장 선거제도를 백인대중공사 의제로 가져와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을 현실문제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서의현 사면문제는 애초에 백인대중공사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풀릴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고 다만 대중들의 분노를 받아주는 역할만을 하였습니다. 백인대중공사 대중이 재심호계원장의 사퇴를 권고하여 사퇴하기는 했지만 1년도 안되어 자광스님은 동국대이사장에 선출되어 대중을 망연자실하게 했습니다. 종단집행부는 백인대중공사에게 “너희들은 실컷 이야기를 해라. 우리는 우리가 가던 길 갈게”라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대중공사를 왜 더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총무원장 선거법 문제를 대중공사에서 다룰 때도 세가지 선거법 즉, 염화미소법과 쇄신위법과 직선제법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여 직선제가 61%의 지지를 받았지만 스님은 회의 결과를 정리하면서 직선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대중공사에서 총무원장이 지지한 염화미소법이 낮은 지지율을 보이자 스님이 의도적으로 염화미소법을 탈락시키고 직선제를 추진하기 위해 백인대중공사를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종단 간부들의 힐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입장이 난처해진 스님의 입장을 배려하여 직선제라는 용어대신에 ‘획기적으로 대중이 참여하는 선거법’으로 용어를 순화시켜 종회에 전달하였습니다. 스님은 그 후로 대중공사 대중들이 직선제로 결론을 낸 것은 본래의 토론취지에 맞지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스님은 마치 초등학교 2학년 3반 아이들처럼 대중들이 스님이 던져준 주제를 가지고 스님이 원하는 부분까지만 토론하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결과야 어떻게 나오든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토론하는 방법만 중요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듯 합니다. 그렇게 토론을 이끌려고 하는 태도는 대중공사를 운영하는 태도와 맞지 않습니다. 이미 토론에 참여한 대중들은 인생의 원숙기에 든 수행자들이고 다양한 경험과 연륜으로 불자들을 지도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토론을 위한 토론을 요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대중공사에서 가장 열심히 활동하였고 사이사이에 대중공사에서 논의 되었던 문제에 대해서 계속 글쓰기로 논의를 이어가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문에 호법부의 압력을 받고 말사주지 재임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토론을 이어나가다가 종단의 압력을 받는 저같은 사람이 계속 나온다면 앞으로 누가 지속적으로 대중공사의 논의를 이어가겠습니까? 대중공사를 이끄셨던 스님의 중재가 필요한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스님이 며칠전 적폐청산을 외치는 피켓시위를 하는 우리들의 앞을 지나치시게 되어 스님께 같이 사진 찍자고 권했습니다. 스님은 불교가 사회의 희망이 되어주셔요.라는 피켓밑에 불교개혁은 직선제로부터 라는 작은 글귀를 보시더니 ‘직선제’라는 단어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81%가 원하는 직선제입니다. 설사 내가 직선제를 원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원하는 것이기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적광스님이 끌려가는 사진이나 조계종적폐가 적힌 피켓도 찍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억울한 자에게 손 내밀지 못하고 끝까지 중립?을 지키는 스님의 모습은 총무원의 직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예전 스님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종헌종법을 지켜야하듯이 처음에 정한 토론취지를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저는 우리의 토론이 종헌종법과 비교 되어서는 안되고, 종헌종법처럼 한계지워진 토론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능력이 없다, 나도 지쳤다는 스님의 고백은 한편으로 쇠약해지신 스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제 다른 분에게 스님의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혹시나 혹시나하며 8년간 기대를 해왔습니다. 이제는 그들은 스님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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