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은 많이 바빴다. 전국에 있는 선학원 분원장스님들을 만나러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사찰을 찾아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선학원과 조계종의 문제는 워낙 오랜시간 동안 끌어오던 문제라서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그래서 그 전모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조계종과 선학원이 갈라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계종이 어떤 종단인지를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계종의 역사를 단지 50년으로 보면 조계종은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같은 타종단과 다를바 없는 신생종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계종은 1600년 한국불교의 정신적 물리적 전통을 이어받은 종단이다. 즉, 2600년 이어진 독신수행 전통, 매년 겨울 여름의 안거수행 전통, 멀리는 불교를 받아들인 삼국시대부터 가까이는 조선시대까지 건립된 천여개의 전통사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보 보물등의 문화재, 단일단체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임야를 소유한 불교단체가 조계종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설명 할 때에도 조계종은 곧 그 자체가 korean buddhism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조계종'이란 이름은 이 모든 물질적 정신적 자산을 담아내기엔 이름이 너무 작다.
이번에 분원장 스님을 찾아다니면서 조계종 승려증을 가진 선학원 분원장 스님들께 설명드린 내용은 2가지이다. 선학원과 조계종이 헤어져서는 안된다는 것과 분원장스님도 조계종으로 출가하였으니 당연히 조계종에 남아 계셔야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우리가 만난 분원장스님들은 대게 서운함을 감추지 않으시며 “왜 이제야 찾아다니는 거냐?”는 꾸중도 하시고 당신이 겪으신 종단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열정적으로 토로하셨다. 재단법인 선학원에 재산을 모두 증여 하신 분들은 조계종스님이지만 탈종하는 선학원을 따라가야 한다는 분도 있었다. 그동안 선학원 사찰에 산다는 이유로 다른 조계종스님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분들도 서명하기를 꺼려하셨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설명을 드리며 그동안 선학원 분원장 스님들을 한번도 찾아 뵙지 못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조계종이 마냥 자랑스럽고 지금 총무원이 잘하고 있어서 이렇게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조계종 분규와 몇년전에 일어난 도박사건, 총무원 마당에서 있엇던 스님 폭행사건등 세상의 비난을 받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우리 종단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든 조계종과 선학원이 분리되는 것은 선학원 창립정신을 보거나 한국불교의 미래를 볼 때 바람직하지 않기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법인법에 동의하지 않는 선학원 이사진들이 새로운 승려증을 발급하고 조계종과 완전한 결별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때 분원장스님들이 침묵하고 계시면 선학원 이사진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떠나간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분들 중에 시골 산속에 홀로 살고 계신 노스님이 기억난다. 우리가 그 사찰을 찾았을 때 노스님은 법당에서 나와 법당 기둥옆에 서계셨다. 나는 팔십이 되신 노 비구니 노스님이 옆에선 법당옆 향나무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노스님께 다가갔다. 법당은 많은 촛불들로 후끈했다.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신도님들이 켜놓은 촛불을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노스님은 우리의 설명을 듣더니 선학원은 조계종과 헤어져서는 안되며 당신은 죽을 때 까지 조계종스님으로 남겠다며 탈종하려는 이사진들을 나무라셨다. 옆 마을에사는 선학원 분원장스님이 탈종을 위한 서명을 받으러 몇 번 왔지만 그때마다 노스님은 서명을 거부하시고 우리의 설명을 듣고는 흔쾌히 서명을 하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떠나는 것을 법당 옆에서서 바라보시는 노스님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탐방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어떤 노스님은 1970년에 분원장 회의를 나갔을 때 처사분원장 보살분원장 들이 회의에 참석했다는 증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 때에도 이사들이 새로운 종단을 만들어야 한다며 서명하라고 해서 거부하고 그 뒤로는 분원장회의에 나가지 않았다고 들려주셨다. 선학원이 조계종스님들만이 아니라 다른 종파스님이나 재가자들을 분원장으로 임명한 사실과 새로운 종단을 만들려는 시도가 오래된 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서명을 거부하는 분들은 이야기 끝에 한결같이 송담스님의 탈종을 꼽았다. 청정한 수행승으로 이름이 높은 송담스님이 탈종하리만치 조계종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다. 나는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산수갑산으로 들어가 서당훈장으로 회향하신 경허스님이나 말년에 강원도 오두막집에 사셨던 법정스님을 거론하며 송담스님도 차라리 조계종 뿐만아니라 재단도 버리고 떠나셨다면 후학들에게 큰 회초리 되고 큰 울림이 되었을 것이지만, 88세까지 재단법인 이사장이라는 신분을 유지하시다가 재단법인 재산과 문도들을 데리고 나가는 탈종은 그 울림이 약하며 오히려 스승으로 모시고 살았던 후학들에게 허탈함만 안겨 주었다고 설명했다.
분원장 스님을 찾아 다니면서 보낸 시간은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고 느낀 경책의 시간이었다. 평소에 이웃에 사는 노스님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온 죄, 종단이 나에게 못해준것 만을 서운해하며 마치 나는 종단을 벗어나 있는 사람처럼 대안없이 종단을 비판한 죄, 조계종의 역사가 어떻고 조계종이 다른 종단과 어떻게 다른지 모르고 살아온 죄, 도반들과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이 곧 승가의 화합이요 수행임을 알면서도 나의 업력대로 살아온 죄,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자주 하면서도 본사에 노스님들이 마음놓고 말년을 지내시도록 방한칸 마련해 드리자고 지속적으로 설득하지 못한 죄...
이제 선학원은 법인법을 핑계로 조계종과 영영 이별하려고 한다. 지금의 이사진들이 이룩한 재산이 아님에도 그 모든 분원의 재산을 가지고 조계종 승적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공업이라 치부하며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정말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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