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불교 전공…번역·저술만 40여 권
불교사상 결정체 ‘순정리론’ 세계 첫 완역
인도불교사에서 아비달마(부파불교)는 단연 주류다. 우리에게 익숙한 ‘소승(小乘)’이란 명칭은 말 그대로 ‘대승(大乘)’에 의해 만들어진 상대적인 개념일 뿐 서구학계에선 이미 아비달마를 ‘주류불교(Mainstream Buddhism)’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실 아비달마불교는 붓다 입멸 이후부터 13세기 초 이슬람 침공 등으로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장 큰 불교세력을 형성했다. 또 ‘스승의 인격에 의지하지 말고 그 가르침에 의지하라’는 붓다의 유훈에 따라 오랜 세월 아비달마의 성문제자들이 결집하고 해석한 방대한 논서는 인류 정신문화의 집약체이자 보고로 재평가되고 있다. 대승 또한 아비달마의 토양에서 싹트고 성장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이런 아비달마에 대한 평가나 의의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에선 별다른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단지 초기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불과할 뿐이며 난삽한 이론을 구사하고 번뇌만 증장시키는 소승이자 영원한 비주류인 것이다.
권오민(54) 경상대 철학과 교수는 이러한 지역적·시대적 ‘편견’에 맞서 지난 30여 년 간 아비달마 연구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희유한’ 학자다. 권 교수는 2500년의 불교사상사는 바로 ‘무엇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탐구와 해석의 도정이었으며, 아비달마의 방대한 논서 또한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답변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스님이 “연못이나 강의 물도 마실 힘이 없으면서 어찌 대해를 삼킬 수 있을 것이며, 성문·연각의 이승법도 익히지 못했으면서 어찌 대승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했듯 아비달마를 모르면 대승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원효의 사상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경북 문경이 고향인 권 교수는 종립학교인 대구 능인고를 졸업한 뒤 1976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고(故) 고익진 교수와의 인연으로 초기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1981년 「원시불교의 외도비판에 대한 근본입장」이란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82년 박사과정에 들어가선 고 교수의 권유로 아비달마로 관심영역을 옮겨갔다. 초기불교는 물론 대승의 연원을 알기 위해서라도 아비달마 그 중에서도 특히 경량부의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비달마를 선택한 순간 광야에 홀로 내던져진듯한 막막함과 마주해야 했다. 당시로서는 범어나 팔리어 등 불교원전조차 접하기 어려웠으며, 제경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개념조차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아시아불교 전통에서 아비달마는 ‘소승’이고 ‘이단’이었기에 이를 연구하는 그에 대한 주변의 시선도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권 교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전통과 진리라는 권위와 신념에 기대 우리에게 주어진 불교를 주어진 방식대로 해석하고 나열하는 것은 진정한 교학 연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구사론』 등 한역 논서들을 껴안고 파고들었다. 동시에 『인도불교사』(1985), 『소승불교개론』(1986), 『초기 부파불교의 역사』(1989), 『불타의 사상』(1989), 『인도불교철학』(1990) 등 불교관련 서적들을 번역하며 아비달마 관련 논문들도 속속 발표했다. 그 와중에 1988년 경상대 철학과에 전임강사가 됐고, 1991년엔 「경량부철학의 비판적 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권 교수는 비슷한 시기 일본학자 가토 준쇼의 「경량부 연구」(1989)를 접하고서 맥이 빠져버렸다. 지금이야 그 책의 불완전함과 오류가 허다하게 눈에 보이지만 당시로선 『순정리론』에 인용된 상좌 슈리라타 학설에 근거해 저술된 그의 책에 비해 자신의 논문이 너무나도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권 교수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공부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학문에 목숨을 걸겠다고 작정했다. 본격적인 원전 번역에 집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아비담팔건도론』(1995), 『아비달마발지론』(1995), 『입아비달마론』(1995), 『아비달마장현종론』(1996), 『아비달마구사론』(2002) 등 유부의 논서를 비롯해 수론과 승론의 논서인 『금칠십론』과 『승종십구의론』(1999), 그리고 문제의 『아비달마순정리론』과 이것의 약본인 『현종론』(2009)을 번역했다.
이 가운데 4년간 천착해 완역한 세친의 『아비달마구사론』도 대단하지만, 특히 세친과 동시대 인물인 중현이 『구사론』을 비판하고 유부의 정의를 밝힌 『순정리론』은 원고지 2만매가 넘는 방대한 문헌이다. 여기에는 흔히 신유부로 알려진 중현의 사상과 이에 비판적인 세친의 학설뿐만 아니라 역사의 베일 속으로 사라진 경량부의 상좌 슈리라타의 사상을 대규모로 전하고 있으며, 당시 불교사를 밝힐만한 수많은 정보를 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순정리론』의 중요성은 전 세계의 학자들이 인정하지만 그만큼 방대하고 난해한 까닭에 완역은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순정리론』을 독파한 학자도 전혀 없을 정도다.
이런 『순정리론』이 그라고 어찌 쉬울까. 『순정리론』을 번역하는 지난 6년 동안 그는 줄곧 도시락 2개를 싸들고 다니며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연구실에서 살았다. 그의 치밀한 논리와 학문적 깊이는 이렇듯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실성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에서 비롯된다. 특히 번역 와중에도 그가 쓴 논문이 무려 50여 편에 이르며, 최근 펴낸 『불교학과 불교』(민족사)를 포함해 『아비달마불교』, 『인도철학과 불교』 등 저서도 10여 권에 이른다.
지난 여름 불교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그의 「불설과 비불설」 논문을 꼼꼼히 검토한 안성두 서울대 교수는 “그의 원전읽기의 깊이와 이차문헌에 대한 폭넓은 독서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며 “실로 이 논문은 아비달마에 대한 논자의 오랜 학문적 연찬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역작”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향한 이러한 찬사는 비단 안 교수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10년째 『구사론』을 공부하고 있는데 권 교수의 번역서를 볼 때마다 그의 치밀함과 박식함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비록 연배로는 그가 한참 후배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학자 중 한 분이다.”(은정희 전 서울교육대 교수), “전문성과 성실함, 그리고 학문의 보편성까지 두루 갖춘 학자 중의 학자다.”(고영섭 동국대 교수) “모든 교학의 중심은 아비달마이며, 권 교수는 그 아비달마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다.”(임승택 경북대 교수) “나도 아비달마 전공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대가들을 두루 만나봤다. 권 교수는 그 세계적인 대가들 중에서도 두드러진 분으로 내 학문의 이상적인 모델이다.(박창환 금강대 교수)”
권 교수는 현재 『순정리론』에 인용된 상좌 슈리라타의 학설을 통해 산실된 그의 『경부비바사』를 부분적으로 복원하고 그의 사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후 『순정리론』의 저자인 중현 사상을 집성할 예정이다. 또 ‘부파불교 사상론’을 펴내는 동시에 이를 통해 부파와 대승의 연결고리를 찾아 양자가 괴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 발전돼 왔음도 구체적으로 밝힐 계획이다.
지난 30년간 학자의 길만 걷고 있는 권 교수. 이런 그가 종종 오해를 받거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다. 직설적인 화법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롭고 독립된 사색이 결여될 때 이론적 연구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은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비판정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불교는 독립된 종교로서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法性)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권 교수. 학문적인 열정과 냉철한 비판정신으로 똘똘 뭉친 그는 이런 점에서 ‘21세기 아비달마 논사’라고 불리기에 충분하다.
■권오민 교수와의 Q&A
질문 |
답변 |
이유 |
가장 존경하는 학자는 |
세친 |
대소승을 넘나든 천부의 논사 |
가장 읽혔으면 하는
자신의 저술은 |
인도철학과 불교 |
각 학파의 출현과 사상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담아냈기 때문 |
꼭 했으면 하는 일 |
대비바사론 완독 |
불교의 모든 사상은 여기서 비롯됨 |
아비달마 이외 관심 분야는 |
유식과 인명 |
유부와 경량부의 연장 |
추천하고 싶은 책 |
가지야마 유이치의
‘인도불교철학’ |
이론체계로서 진리를
받아들이게 한다 |
늘 가슴에 새기는 구절 |
時時移移 暫到死門
(발심수행장 중) |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
진주=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출처 법보신문 1020호 [2009년 10월 26일 1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