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가 당면한 교리·사상적 과제 / 재연 | ||||
[2010 불교평론 학술 심포지엄] 상좌불교, 무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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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한 학자는 고타마 붓다의 출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양적 질적 변화를 이렇게 술회했다: “불교는 그 장구한 역사 속에 유기적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 그 가운데 새로운 발전은 이전 것들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이다. 변화 과정을 간과하고 오랜 세월 이후의 마지막 결과만을 보는 사람에게 불교의 변성(變成) 능력은 마치 애벌레와 나비의 차이를 보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Edward Conz, A Short History of Buddhism, p.16] 고타마 붓다의 출현으로부터 교설(敎說)의 확립, 경전 성립, 승가(僧伽) 변천의 역사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활짝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 지역에서 일어난 종교들에 견주어 볼 때 2,600여 년의 오랜 역사에 심각한 이단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건 너무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불교는 애초부터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인간을 볼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묘사하고 설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런 상호 존중과 관용의 바탕은 다름 아닌 연기(緣起, paṭiccasamuppāda)법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연기의 원리야말로 불교사 가운데 여러 형태와 이름으로 출몰한 모든 부파를 불교라는 이름으로 유지케 한 이른바 정체성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 교리 체계는 크게 연기라는 특유의 세계관과 거기에 걸맞은 삶의 제시 및 실현 방법의 설명이다. 그러나 그 연기의 원리는 가장 단순하게는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신 권선징악 이야기의 뼈대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로부터 최신 현대 물리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어서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X’가 되기 일쑤다. 《대연경(Mahā-nidāna sutta)》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이런 사정은 우리 같은 말법(末法) 시대 중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던가 보다.
세존께서 꾸루(Kuru)족 고을 깜마싸담마에 머물고 계실 때였다.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 말했다. “희유한 일입니다, 깊고 깊어 보이던 연기(緣起)가 이리 명료하게 드러나니 실로 부사의한 일입니다.”
아난다 존자가 공언한 것처럼 연기가 유리상자처럼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면 불교 경전은 아마 현재의 십분의 일의 양에 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입멸 이후에도 오랜 세월 고타마 붓다의 입을 빌려 설해진 많은 경전들의 성립과 변천이 실은 그 연기설의 심화, 확장 과정이었으며, 일견 분방해 보이는 그 창작 활동의 성과로 남은 것들이 바로 대승경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동적인 운동들이 아무런 지향도 없이 마구잡이로 벌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보존, 회자되고 있는 대승경전들은 기실 그 내용에 있어 붓다의 가르침의 핵인 연기의 세계관과 그에 맞는 삶의 길, 대자유 해탈의 길을 열어 주고 있기 때문에 불교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에서 벗어났거나 법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불교라는 이름으로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타마 붓다의 원음을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다는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법(佛法)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래에서는 빠알리 경전에서 법의 정의(定義)로 빈번히 반복되는 정형구(定型句)를 거울 삼아 우리 모습을 비춰보려 한다.
여기 세존께서 잘 설하신 법이 있으니; [이 법은 곧]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것(sandiṭṭhika), 시간이 지체되지 않는 것(akālika), 와서 보라는 것(ehipassika), 향상으로 이끄는 것(opanayika), 슬기로운 자 스스로 체험해야 하는 것(paccattaṁ veditabbo viñūhi)이라.[SN. I. Dhajaggam.]
1)sandiṭṭhika
세계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유한하든 무한하든, 身(sarīra)과 命(jīva)이 같건 다르건, 여래의 사후가 어찌됐든 청정한 수행의 길이 그러한 견해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여기 生(jāti), 老(jarā), 死(maraṇa)가 있고, 憂(soka), 悲(parideva), 苦(dukkha), 惱(domanassa)가 있다. 나는 오로지 현재 여기에 있는(diṭṭhe va dhamme) 苦의 止滅(nighāta)을 가르칠 뿐이다.
말룽캬뿟따, 따라서 밝히지 않은 것(無記)은 밝히지 않은 대로, 설명한 것은 또 그대로 알라. 내가 밝히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계가 영원한가…… 따위다. 무슨 까닭인가? 말룽캬뿟따, 그것은 [수행의] 목적과 무관하며 청정한 삶의 바탕이 되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러한 견해가 염리(厭離), 이탐(離貪), 적멸(寂滅), 적정(寂靜), 통찰지(洞察智), 정각(正覺)과 열반(涅槃)으로 향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룽캬뿟따, 내가 밝혀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공언한 것은 苦와 苦의 발생, 苦의 소멸, 苦 소멸의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목적과 부합하며, 청정한 삶의 바탕이다. 또한 이 가르침이 염리, 이탐, 적멸, 적정, 통찰지, 정각과 열반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에 설해진 것이다. 따라서, 말룽캬뿟따, 밝히지 않은 것은 밝히지 않은 대로, 밝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알라.[MN. 63경 Cūḷa-Māluṅkya-sutta]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지금 여기서 문제의 핵과 해답을 찾지 못하고 늘 밖으로 치닫는다. 눈앞에 놓인 문제의 발생 조건과 전개 과정을 면밀히 따져 보기보다는 먼 옛적 좋았던 시절, 혹은 가당찮은 미래의 환상 속으로 달아나는 것이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전생의 업이나 내생에서의 응보로 돌려 버린다. 오랫동안 그렇게 배우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불교가 윤회설을 수용하고 있고, 또 연기설이 면면히 이어지는 업의 상속, 윤회설을 설명하는 틀로 쓰인 것은 사실이다. 경전에 연기가 언급될 때면 대부분 생(生)·노사(老死)로 마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전에 나오는 생·노사를 오로지 한 생명체의 생물학적 발생과 소멸로만 보는 데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일일일야 만생만사(一日一夜 萬生萬死)’ 한다 하지 않는가? 목숨이 붙어 있는 이 순간에도 우리는 거듭 죽고 되살아난다. 성성하게 깨어 있지 못한 것이 죽은 것이요, 헛된 것들을 쫓아 허둥대는 것이 죽은 것이다. 잠시 제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죽음을 넘나든다. 살아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죽어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이 중생들의 삶이 아닌가! 너나없이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윤회하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빠알리 경전 속에 연기가 윤회 구조를 다루고 있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연기를 다룬 모든 경전이 한결같이 전생, 금생 그리고 내생으로의 윤회를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삼세양중(三世兩重) 인과설이 후대 교학자들의 버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되기도 했던 것이다. 한 예로, “Suttanipāta에는 upadhi(집착), Majjhima Nikāya에는 āsava(漏, 煩惱)가 무명(無明) 앞에 놓여 있는 경전도 있다. 게다가 더 오래된 리스트에는 표준화된 12지(支)에 saññā(想)와 대승불교의 구원론에서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는 papañca(妄想, 戱論)가 더해진 경우도 있다.
더 이상의 차이점은 논외로 하고, 제일 중요한 점은 가장 오래된 형으로 보이는 연기 틀에는 (4)명색(名色), (5)육입(六入), (11)생(生), (12)노사(老死)의 4지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1)무명(無明), (2)행(行), (3)식(識), (6)촉(觸), (7)수(受), (8)애(愛), (9)취(取), (10)유(有)가 남게 되는데, 생략된 네 가지(4, 5, 11, 12)는 정확히 개체의 윤회를 구체화하고, 윤회하는 생명체의 운명을 표현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본래 이 틀은 윤회의 문제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며, 삼세양중 인과설은 후대 교학자들에 의해 첨가된 것일 수도 있다. 나머지 8지(1~3, 6~10)는 어느 때라도 작동하는 정신적 조건의 바탕으로, 이것들은 곧 고(苦)와 잘못된 인식의 발생과 소멸에 관계된 항목들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본래 연기 틀은 아마도 생명체의 재생과 무관하게, 단지 고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하는 것”[Edward Conze, Buddhist Thought in India, p.157]이라는 주장 등이다.
수행자가 성성하게 깨어 있다는 것은 매 순간 일어나는 감각과 마음의 흐름을 주시함으로써 갈애와 집착으로 연결되지 않게 지키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지금 이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제대로 보는 일이 곧 여실지견(如實智見, yathābhūta-ñāṇadassana)이다. ‘사물을 있는 바 그대로 통찰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사물의 무상성(無常性)과 비실체성(非實體性)을 본다는 말이고, 이는 곧 사물의 연기성을 꿰뚫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찰은 아무 내력 없이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의 선물이 아니다.
《반야심경》 첫 줄에 나오는 ‘조견(照見)’의 예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 풀이는 거의 ‘비추어 보아’로 되어 있지만 그게 무얼 어떻게 한다는 건지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산스끄리뜨 ‘vi-ava-lokayati’를 조견(照見)이라고 푼 것인데, 이는 아주 탁월한 역어의 선택으로 보인다. 먼저 ‘ava-lokayati’는 동사 내려다보다(見)이다. 문제는 접두사 ‘vi-’의 기능인데, 동사에 ①분할, ②분리의 의미를 덧붙인다. 즉, ①쪼개서 보다(분석적 시각), ②떨어져서 보다(객관적 시각)가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기능은 동사의 의미를 강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③꿰뚫어 보다(통찰, 직관)가 된다. 따라서 ③을 써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통찰이란 ① & ②라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 결과이고, 거기에 붙여진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붓다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나는 곧장 통찰지가 생긴다고 말하지 않는다. 점진적인 훈련(anupubba-sikkhā), 점진적인 실행(anupubba-kiriyā), 점진적인 행로(anupubba-paṭi-padā)에 통찰지의 성취(aññā-ārādhanā)가 있다.[MN. 70경 Kiṭāgiri-sutta]
2) akālika
비구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3) ehipassika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런 저런 경전을 다 외우더라도 그 가르침의 의미를 지혜로(paññā) 점검하지 않는다. 지혜로 점검하지 않은 법은 명백해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남을 비난하고 말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법을 익혔을 뿐이어서 외운 법의 취지를 이루지 못한다. 이렇게 잘못 받아들인 법은 오래오래 불행과 고통을 겪게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잘못 붙잡았기 때문이다.[MN. 22경. Alagaddūpamasutta]
이로 미루어 생각하면 불자의 신심(信心, saddhā)이란 붓다의 가르침이어서 그냥 믿는다는 것이 아니고, 그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그렇게 실천하면 해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 신념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opanayika
5) paccattaṁ veditabbo viñūhi
남방의 테라와다(Theravāda) 불교도들이 사용하고 있는 빠알리 니까야(Pāli Nikāya)가 불설(佛說)을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다는 것은 공히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빠알리어가 바로 고타마 붓다께서 사용했던 언어고, 그러니 오직 빠알리 니까야만이 정전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점은 율장 《소품(Cullavagga)》에 전하는 기사를 보면 자명해질 것이다. 바라문 출신 형제 비구들(Yamelu & Tekula)이 붓다께 다가가 예를 올리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출신 지역, 가문, 카스트가 다른 사람들이 출가하여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각각 자기네 방언을 씀으로써 붓다의 가르침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붓다의 말씀을 베다 언어(chando)로 바꿔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이에 붓다께서 심히 꾸짖어 나무라셨다. “이 어리석은 자들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내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나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내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조차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꾸짖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붓다의 가르침을 베다 언어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그리하면 ‘dukkaṭa(突吉羅, 惡作)’를 범한 것이다. 각기 자신의 방언으로(sakāya niruttiyā) 붓다의 가르침을 익힐 것을 허락하노라!” [Cullavagga II-33.]
이 기사를 단순히 고타마 붓다의 베다 언어(산스끄리뜨)에 대한 반감으로 해석하거나, 빠알리 니까야의 정통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다. 앞뒤 정황과 문맥을 살펴보면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을 어떤 특정 언어로 고착시켜 정전(正典)으로 삼는 것을 경계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위에 ‘익히다’로 옮긴 단어 ‘pariyapuṇati’는 사실 ’암기’한다는 말이고, 그렇게 외운 내용은 ‘암송’되었을 것이다. 여러 방언으로 암송되던 가르침이 몇 차례의 결집을 통하여 승가의 대다수가 사용하던 언어로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여기서 챙겨야 할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배우는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게 한다는 고타마 붓다의 열린 사고와 실천이다. 나아가 번역의 당위를 주장할 수 있는 전거(典據)가 된다.
세상만사 변하게 마련이다(aniccā sabbe saṅkhārā). 불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무상과 연기의 원리야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 해도 우리가 수용하고 실천하는 불교가 고타마 붓다의 본래 메시지의 깊이와 무게에서 동일한 것이라고 장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빠알리 경전 역시 이 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고, 전혀 다른 문화 배경과 고유의 문자와 언어 전통을 가진 옛 중국인들이 받아들인 불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외래 사상을 수용하는 고대 중국인들이 상당 부분 도가(道家)와 유가(儒家)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정과 함께 문화민족으로서의 자존감도 함께 작용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한역 경전이나 중국인들의 수행이 불교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다수의 교종(敎宗)과 율종(律宗)의 부단한 활동은 그 내용에 있어 무상, 무아, 공, 연기의 바른 이해와 거기에 따르는 개인적 사회적 적용과 실천에 관한 집단 지성의 고뇌이자 결실인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변화한 것이 선종이다. 이것이 오직 불교 내부의 일로 그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가와 도가, 유가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키우고 때로는 깎아 다듬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 선종은 정교하고 치밀한 교학과 도덕적 바탕에서 제 고유의 모습과 색깔을 가지고 부화한 자유분방한 나비요, 중국 불교의 꽃인 셈이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불교를 통불교(通佛敎)라 한다. 이는 중국 선종에 연결시키고자 하는 여러 문파의 법맥설(法脈說)을 다 포섭한다는 뜻과 함께 중국에서 분화한 교종, 율종, 선종과 더불어 정토종과 밀교, 더는 전래 토속신앙의 요소까지를 두루 보전하고 있다는 말로 이해되고 있다. 이것 특히 후자를 가지고 정체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불필요한 일로 보인다. 빠알리 경전에 이미 ‘dhamma-dhara, vinaya-dhara, mātikā-dhara’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M. 33경 Mahāgopālaka sutta] 간단히 말해서 ‘경전, 율장, 아비담마 전문가’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 ‘참선 전문가’는 없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 뿐이다. 또한 여러 경전에 불(buddha-anussati), 법(dhamma-), 승(saṅgha-), 계(戒, sīla-), 시(施, cāga-), 천(天, devata-)의 6수념(隨念, anussati, anussaraṇa)이 언급되고 있다.[SN 1. 218. $ 3. dhajaggam] 이것은 수념이 선(jhāna) 수행의 한 부분으로 인정되고 공존했다는 것을 말한다. 또 참선 전문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수념을 포함한 선 수행은 경전, 율장, 아비담마 전문가 모두가 일상에서 당연히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전과 아비담마는 삶과 수행의 지침이고, 계율은 승가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간직하지 않으면 안 될 도덕성의 원칙과 구체적인 규범이다. 위에서 언급한 전문가(dhara)는 교설의 부단한 전승을 위해 암송하고 분석하는 가외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한다. 불교의 교학 및 실천 체계는 전통적으로 계·정·혜 삼학의 완성으로 설명된다. 이들 세 가지는 서로 바탕이 되고 떠받들면서 향상하고 확장, 심화되는 관계에 있다. 그중에 하나가 빠지거나 온전치 못하면 나머지 둘은 무의미한 것이 되며, 하나하나는 다른 둘의 조건이자 결과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삼학의 유기적 이해와 실천을 일러 통불교라고 해야 한다면, 한 마디로 한국불교는 통불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 스스로의 문제여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문제점, 앞으로 채우고 이루어내야 할 과제를 아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 계율을 소홀히 여기는 일반적 풍조다. 여기에는 여러 문제가 뒤섞여 있지만, 우선 계율 가운데는 지키려야 지킬 수 없는 조항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승불교의 편협한 계율 이해와 형식적 지계(持戒)를 지적하고 비판하면서도 환경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 없게 되었거나 불합리한 조항들을 삭제, 수정하거나 새롭게 제정하지도 못한다. 다른 요소는 만연해 있는 결과 중심주의다. 율(律)은 초심자 길들이기에나 필요한 장치이고, 계(戒)는 편할 대로 늘였다 줄였다 말 그대로 자심계(自心戒)다. 생활 전반에 걸쳐 세속화하고 있음에도 정작 나서야 할 사회적 책무에는 무관심한 것이다. 자비, 평등, 평화의 원칙과 실천을 등한시하고 불교 수행 공동체, 승가의 일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째, 일반적으로 교학과 특정 교리의 역사적 이해가 부족하다. 한글로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전들을 보면 한눈에 우리의 실력이 보이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오래전에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한글대장경을 보면 우리 스승님들의 한문 실력, 우리말 솜씨, 거기다 가장 기본적인 교리의 이해 정도가 드러난다. ‘覺’ 자만 나오면 무조건 ‘깨달음’이고 ‘法’ 자는 그냥 ‘불법(佛法)’이며, ‘空’ 자는 모두 ‘텅 빈’이다.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소의경전이라는 《금강경》은 말할 것도 없고, 어린이 불교 법회에 나오는 코흘리개들도 달달 외우는 《반야심경》을 앞뒤 맞춰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시치미 떼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심심 미묘한 도리라고 한다. 계율, 아비달마, 위빠사나(vipassanā) 말만 나오면 소승 딱지를 붙이려 든다. 그러나 소위 대승경전에서 지계(持戒)나 혜(慧), 관(觀) 자를 다 빼면 무엇이 남고, 아비달마를 모르는데 어떻게 유식, 화엄을 읽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을 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제대로 담아 줘야 되지 않겠는가!
셋째, 수행과 일상생활의 괴리이다. 중국불교 역사에서 인도식 출가 수행자의 기본 정신인 무소유의 원칙을 버리면서까지 ‘선농일치(禪農一致)’ 즉 ‘생산활동과 수행을 분리하지 않음’을 내세운 것은 가히 혁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선종을 그 기원으로 삼는 우리 승가에 이 전통은 다만 전설로 남아 있을 뿐이다. 불교 수행의 근본 바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업설(業說)이다. 경전에서는 업(業, karma)을 ‘의도된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행자가 성성하게 깨어 있으라는 것은 신(身)·구(口)·의(意) 삼업 모두를 의도된 행위로 만들라는 말이다. 업설은 따라서, 모든 행위가 ‘주체적 결단’을 통한 의도된 행위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는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신에 입각한 자기 개발 노력은 모두 수행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얼토당토않은 무아 논리를 들이미는 것은 가소롭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일반 재가불자들에게조차 좌선만이 최고의 수행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고, 수행이 특정 카스트의 전유물로 전락한 것 같은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거기다 이미 고타마 붓다에 의해 정리된 samatha(止, 定, 寂)와 vipa-ssanā(觀, 慧, 照)의 문제를 지금까지 따지고 있다. 삼매(samādhi)를 ‘등지(等持)’라고 옮긴 옛사람들이 이미 답을 준 것이다. 이것은 곧 지(止)와 관(觀)의 균형을 말한다. 지가 빠진 관이나 조(照)가 작동하지 않는 적(寂)은 바른 선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대 적적성성(寂寂惺惺)의 논란은 둥근 공을 놓고 어디가 앞이냐를 따지는 불필요한 싸움이다. 양쪽은 똑같이 삼매를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고, 삼매 또한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 이미 여러 부파의 발생과 성쇠를 거쳤고, 인도반도 밖으로 퍼져나가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처음부터 불교는 중도임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늘 중심을 곧게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긴 불교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의 핵으로 기억하는 용수, 무착, 세친, 보리달마, 혜능 등 옛 스승들의 업적은 다름 아닌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의 정신, 현실 세계로의 복귀였다. 어느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쳤을 때, 대사회적 유연성을 잃고 굳어 갈 때, 혹은 전통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때, 둑을 뚫고 새물을 끌어들인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분들이 끌어들인 새물은 이미 거기 있었던 우물, 고타마 붓다의 연기, 중도에서 퍼 올린 것이다. 가장 오래된 샘에서 새물을 길어 냈다는 것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우리가 파야 할 우물도 바로 그 자리다.
그러나, 특정 전적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나머지를 폄하하는 흐름은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 편 가르기로 보이기도 한다. 한역경전과 빠알리어, 범어(梵語, Sanskrit) 경전을 비교하면서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역과 인도 원전의 상호 보완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역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인도어 원전을 통해 쉽게 풀리기도 하고, 역으로 인도 원전의 모호한 부분이 한역을 통해서 분명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역 전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와 인도 전적 중심의 연구 성과 역시 배척과 질시가 아닌 상호 존중과 보완의 자세가 필요하다. 한 예로 초기경전의 눈으로 후기 경전을 점검하고, 대승경전의 입장에서 초기경전을 재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각 개인, 지역사회, 한 나라, 나아가 전 세계 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연기의 세계관이다. 몸소 앞서서 그것을 보이고 퍼뜨려야 할 사회적 의무를 자진해서 짊어진 승가는 연기의 바른 이해와 실천, 곧 지혜와 자비의 두 날개로 날아가는 나비다. 그것이 바로 승가의 굳건한 뼈대요 따뜻한 피인 것이다. 만사 변하게 되어 있다.
재연 /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 강사. 원광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인도의 뿌나대학에서 석·박사과정(빨리어 전공)을 수료했다. 1985년 태국을 거쳐 1987년 인도로 건너가 생활하다 1998년 귀국, 선운사로 출가한 이후 전국 각지의 선방에서 수도하였으며, 실상사 주지를 역임했다. 《입산》 《삶은 모든 것을 버리라 한다》 《방랑시작》 등의 저서와 《혁명가 붓다》 《불교의 초석 사성제》 《수바시따》 등의 역서가 있다.
출처 / 불교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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