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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지리산에서 깨달음과 중도를 논하다

 

"우리 시대에 깨달은 스님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문제 의식이 희박해서 그런 것인가, 문제 의식 자체가 그릇돼서 그런 것인가"

"중도(中道)를 잘못 알고 있어서 수행자들이 무사 안일주의로 흐르고 적당주의가 되는 것 아닌가"

"요즘 스님들은 출가 4-5년이 되지 않아 복지사업을 하려는 분들이 많다. 포교라는 이름으로 하는 복지사업이 진정으로 깨달은 자들이 하는 중도행(中道行)인가"

"삶이 곧 수행이고 수행이 곧 삶이 되는 것이 중도행 아니겠는가", "스님들이 지리산성지화에 나서고 지리산 댐, 케이블카 건설에 반대하는 것이 중도행인가", "보시가 곧 수행아닌가. 요즘은 그쪽에 관심이 간다"

 

20일 오후 겨울비가 내린 경남 함양군 금선사. 스님 33명이 '움직이는 선원 동안거-지리산승가 야단법석'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과 '중도'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스님들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실내 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가는 대신 산문을 나와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지리산 숲길, 마을길을 걸으며 화두를 드는 '움직이는 선원' 순례를 시작했다. 이들은 지리산성지화 불교연대에 참여하면서 지리산을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움직임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은 대략 열흘에 한번씩 들르는 지리산 자락의 절들에서 한국 불교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별한 결론이 나오지는 않고 썩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난해 8월 남원 실상사에서 수행풍토와 간화선 제일주의 등을 논했던 '지리산 야단법석'에 이어 불교계가 현재를 고민하고 속내를 털어놓는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20일 열린 야단법석은 지난해 12월18일, 이달 8일에 이어 이번 움직이는 선원 일정 가운데 세번째로 열린 자리였다.

도법 스님(61ㆍ실상사 선덕.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의 책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를 교재로 삼았지만 이야기는 깨달음에서 중도, 불교의 깨달음을 지리산 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운동에서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까지 이어졌다.

 

 

 

   
사회에 나선 도법스님은 "밥 한그릇이 있다면 '내가 배고프니 일단 내가 먹고 배고픔을 해결한 후 솟는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삶이 소승, 즉 아라한을 추구하는 삶이라면 '밥 한그릇을 일단 나눠먹고 같이 힘내서 가자'고 하는 것이 대승, 즉 보살과 부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석가모니도 단순히 자기고통을 해결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 길을 가겠다고 했고, 그런 마음을 대자비심, 연민심"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반야심경에도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버리면 열반에 이른다고 했다. 양극단을 벗어나면 중도이고 중도를 걸으면 열반에 이른다"며 "지리산도 개발과 보존이라는 양극단의 논리에서 벗어나거나 종합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 불교의 연기적ㆍ중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지리산 성지화'라는 개념을 고안했다"고 소개했다.

2004년부터 시작한 생명평화 탁발순례운동으로 불교계 안팎에 잘 알려진 도법스님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의 '움직이는선원'에 대해 "지리산의 겨울을 만끽했다"며 힘들었지만 의미있는 수행방식이라고 말했다.

도법스님은 "앉아서 화두를 드는 것보다 훨씬 맑은 정신으로 화두를 들 수 있고 4-5시간을 걷게 되니 육체적 건강도 도모할 수 있다"며 "기존 안거 제도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며 사판승이나 포교담당 스님들도 수행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들의 '지리산 움직이는 선원'은 2월25일까지 계속된다. (함양=연합뉴스) 조채희 기자

 

 

   

▲ 20일 함양 금선사에서 열린 움직이는 선원 야단법석 모습, 구례 산동면 구간을 걷는 움직이는 선원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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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검색제공제외) 

 

 

  ............. 2008년에 귀국하자마자 탁발순례하는 스님을 서울 길상사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었습니다.

다시 인도에 올때도 인사를 드리러 실상사에 들렸습니다.

"그래 인도에 가니 뭐 배울게 많던가?"하고 물으셨고

" 예, 인도에 가길 잘 한것 같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예전의 저라고 생각하시면 큰코 다칩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과 저는 둘이서 동시에 웃었지요.

허허.. 나를 건방질 수있도록 내버려두는 스님이 그분 입니다.  

 

그동안 5년에 걸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마치고 올 동안거에는 움직이는 선원을 시작하셨음을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습니다.  

분명 도법스님의 존재나 이러한 움직이는 선원은 작금의 학국불교에 큰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발상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아무나 이 추운 겨울에 사람을 모아 길을 나설 수도 없습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사랑이 사무친 도법스님이 아니면 말입니다. 
제가 도법스님을 만나서 같이 지낸 것은 2001년도 겨울 부터입니다.

홀로 섬처럼 지내다가 실상사의 토론문화를 접하고 나서 나는 "이 길은 혼자가는 길이 아니구나" 하는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둘러앉아 불교에 대한 토론을 하였는데 그시간은 동시에 나를  토해내고 드러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명확하게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었을 지라도  "이렇게 토해내는 것, 드러내는 것 만으로도 이미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거.기.에. 도법스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묻고 따지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선배...


한국에서 지낼때 토론문화의 부재로 인하여  논리적인 사고와  대화가 안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토론의 방법은 놔 두더라도 토론의 필요성 조차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으니까요. 

"권위주의" ... 어느 단체 보다도 심하지요. 

그러다 보니 불교는 사회의 고민을 들여다 볼수 있는 시선도, 들을 수 있는 귀도 잃어버려  스스로 섬으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도법스님은 깨달음만을 목표로 점점 외골수가 되어가는 한국불교의 풍토에서 토론문화를 지속적으로 가꾸어 가고 현실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불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남을 향해서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한 일이 실상사 대안학교였고  귀농학교였고 생명평화 탁발순례였고 지금의 움직이는 선원입니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탁마의 장을 만드시는 그모습을 저는 존경합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스님에게 배운 것들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현실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나부터 잘 해야지",

누구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서자"라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도 스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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