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잠시 접고 수다…‘독서 중독자’들의 밤 | |
하루 방문객 1100명 ‘로쟈’ 등 파워 블로거 모여 염소 치며 1000권 독파 ‘파란여우’ 책 출간 축하 “소비자·직장인 껍질 깨고 소통하는 숨구멍” | |
허미경 기자 김명진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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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 하나하나 또박또박 발음하는 그는, 이야기꽃이 한창인 가운데 좀 늦게 합석한 ‘마냐’다.
지난 27일 밤 인사동의 한 밥집에 책읽기 ‘중독자’들이 모였다. 책에 탐닉하고,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 이름하여 책읽기의 고수들이요, 정작 본인들은 손사래를 치는 이름, ‘파워’ 블로거들이다. 하루 평균 1100명이 넘는 방문객을 거느린 ‘로쟈’를 비롯하여 온라인서점 알라딘 서재에서 마을을 이루어 거주하는 서재지기들이다.
자기주장 분명한 직장여성 휘모리, 출판사 편집자 아프락사스, 임용고시를 준비중이라는 멜기세덱, 자칭 백수 사회학 박사과정생 무화과나무, 전업주부 기억의집, 대학강사 로쟈, 그리고 포털사 직원인 마냐까지.
그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건 책읽기 마을의 면장으로 불리는 파란여우 윤미화씨의 책 <깐깐한 독서본능>(21세기북스)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독서본능>은 파란여우의 방대한 독서 기록을 모은 책이다. 파란여우의 생업은 ‘영세 축산업자’다. 충남 홍성의 오두막에서 염소 30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늦깎이 독서가라 했다. 마흔에 책을 읽기 시작하여 비로소 수전 손택과 마르케스, 조지 오웰과 이탁오, 박지원을 만났다고 했다. 5년 동안 그렇게 1000권의 책을 읽었다.
“주경야독이죠. 염소 치는 짬짬이 책을 읽고 또 읽었으니까요. 이른바 ‘안전빵’이라는 공무원 생활을 버리니까 자유를 얻은 대신 가난이 찾아왔어요. 생계를 위해 염소를 키웠고요. 2004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이렇게 서평을 모은 책이 됐네요. 책을 통해 재밌게 놀고 싶었어요. 당시엔 서평이란 거 없었죠. 그렇죠? 로쟈님?”
(로쟈) “그렇죠. 2004년부터 독서 블로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지요.”
(기억의집)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두고 독서인생의 첫사랑이라 했잖아요. 그게 저랑 통했어요.”
(파란여우) “그래서 내가 그분과 연애한 줄 아는 분들도 있어요.”
(휘모리) “<깐깐한 독서본능> 리스트 그대로 직장인의 책읽기 목록이 될 것 같아요. 가벼운 책에서 무거운 책까지 다양하니까요.”
성별과 나이, 직업도 다양한 ‘책 중독자’들의 수다는 늦도록 계속됐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책을 통해 세상과 만나는 열정으로 이끄는 걸까.
“직장인으로 살다 보면 드라마 얘기를 할지언정 ‘무슨 책 읽었느냐’며 책으로 소통하긴 힘들 거든요. 정치적으로도, 제가 한 시민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그걸 소통할 공간은 많지 않은 거죠. 소비자이거나, 직장인인 나에게 정치적인 활동을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온라인인 거죠.”(휘모리)
이들은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글을 올리고, 때론 ‘시국’발언을 하기도 한다. 정치사회 이슈를 많이 다루는 무화과나무는 요즘 인터넷 글쓰기 환경에 대해 조심스런 우려를 내비쳤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누리꾼과 블로거들 사이에 권력의 감시하는 눈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듯해요. 올해 저작권법이 개정됐을 때 개정된 법 내용을 싸고 우리 책마을 주민끼리도 말이 많았어요. 권력이 포털사이트 자체를 문제삼기도 했잖아요.”
이들에게 책읽기란 무엇인가. “책은 일종의 필수 조건이라 봐요. 다들 읽고 또 읽어야만 하지요.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저는 과거의 문자해독력 같은 거라고 봐요.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건 그렇게 독서능력을 갖춘 문화가 형성되면 좋겠단 바람 때문입니다. 그래야 또 당하지 않고 살 수 있겠죠. 좀더 민주적인 사회에서 살 수 있을 테고요.”(로쟈)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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