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왜 신이 사라졌을까, 서양현대철학과 불교의 만남을 보면
야만의 시대에
지금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 한다. 왜 야만의 시대일까. 가장 대표적인 예를 ‘용산참사’에서 들 수 있다.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서민은 고통 을 감수 하는 반면에 여유 있고 힘있는 사람들을 배려 하고 ‘챙겨 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인권이 짓밟히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시대를 ‘야만의 시대’라고 들 이야기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에 대통령이 TV에 출연 하였다. 이를 방송 하기 위하여 모든 공중파 방송국들이 생중계 하였다. 국민들은 보기 싫어도 꼼짝 없이 보아야만 했다. 어느 채널을 돌려 보아도 똑 같은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말 할 때 마다 혀로 입술 핱기, 탁한 목소리등을 특징으로 한 모습을 보는 국민들은 채널 선택권을 박탈 당한 채 2시간 이상 지켜 보아야 했다. 이와 같이 반 강제성 프로를 보자 고교시절 미션 스쿨의 추억이 떠 올랐다.
미션스쿨에서
배정 받아서 간 학교는 기독교계통의 학교 이었다. 미국선교사가 세웠다는 그 학교는 학사일정이 기독교교육 위주로 돌아 가고 있었다. 따라서 교육 보다 ‘교인’을 만드는 것이 더 우선인 것처럼 보였다. 그 단적인 예가 ‘방송예배’ 이었다.
일주일 두 번 있는 방송 예배는 꼼짝 없이 참석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학교로 들어간 이상 듣기 싫어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생활을 3년간 하였다. 그런 방송예배와 대통령의 TV출연이 매우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다. 어디를 가나 기도를 하고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 한다. 그런 대통령의 사상적 배경은 당연히 기독교일 것이다.
기독교는 ‘독선적 교리’와 ‘배타적 구원관’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그런 기독교사상이 대통령의 의중에 고스란히 반영 되어 있음을 화면을 통하여 느낄 수 있었다.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을 밀어 붙이는 것이라든가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이 이를 말해 주고 있다. 기독교에서 진리는 오직 하나이다. 따라서 진리가 오로지 하나라고 주장 하는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훌륭한 의견을 내 놓아도 모두 ‘거짓’이 되고 만다. 그리고 반드시 쳐 부수어야 할 ‘악’의 세력으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독선적 진리로 무장한 대통령의 말하는 태도를 보자 고교시절 방송예배에서 목사의 일방적인 신앙강요와 오버랩 되었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미션스쿨에서 종교교육을 받아 보지 않은 사람들은 종교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잘 알지 못한다. 매주 2번씩 3년간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예배와 찬송을 강요당하고 나면 정신적으로 융단 폭격을 당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유럽에 있어서 무려 천년동안 정신을 지배 하던 때가 있었다. 서양사적으로 말할 때 중세시대이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모든 것이 신(神)중심으로 돌아 가던 시대이었다. 5세기부터 14세기까지 무려 천 년 동안 지속 되었던 중세를 역사적으로 암흑시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양역사에서 중세라는 말은 없지만 서양역사에서 중세라고 하는 시대 구분이 있었던 것은 기독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이전의 역사와 기독교 이후의 역사가 서양역사라 볼 수 있다. 이를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유럽의 시대구분 |
시 기 |
비 고 | ||
고 대 |
과거~4세기 |
로마 멸망까지 |
다신 | |
중 세 |
5~14세기 |
로만 가톨릭시대 |
신중심 | |
공백기 |
문예부흥시대 |
15세기 |
Renaissance |
우회공격 |
종교개혁시대 |
16세기 |
Reformation |
직접공격 | |
근대 |
근 대 (Modern) |
17~19세기 |
|
인간중심 |
현 대 (Post-mordern) |
20세기~현대 |
|
무신 |
서양역사를 크게 3가지로 구분 하면 고대, 중세, 근대로 구분 할 수 있다.
고대는 그리스와 로마문화로서 기독교와 그다지 관련이 없는 문화이다. 중세는 철저하게 신중심의 기독교 문화의 시대이다. 근대는 문예부흥과 종교개혁 이후를 말하는 데 신중심에서 탈피 하여 인간중심으로 옮겨간 시대를 말 하므로 기독교와 그다지 연관이 없는 시대이다.
서양 역사에 있어서 기독교가 득세하던 시대는 엄밀히 말한다면 5세기부터 14세기 까지의 천년간 ‘로만가톨릭’이 사상을 지배 하던 시기를 말한다. 이 때의 기독교의 세계관을 말한다면 피라미드 구조라 볼 수 있다.
신 |
창조주 |
숭배 |
인간 |
피조물 |
인간 |
자연 |
피조물 |
지배(인간에 의한) |
표를 보면 신이 창조주로서 최상위에 위치해 있고, 인간과 자연은 피조물로서 신중심체제인 것을 알 수 있다. 신과 자연의 중간에 위치한 인간은 위로 신을 숭배 하고 그 대가로 자연을 지배하는 권능을 신으로 받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천년왕국’ 로마 가톨릭시대는
이런 신중심주의가 가톨릭 1000년 동안 유지 되었는데 근대로 넘어 오면서 신중심이 깨지고 인간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로 넘어 가기전에 약 200년간 공백기가 있었다. 바로 문예부흥시대와 종교개혁시대이다.
문예부흥시대와 종교개혁시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것은 영어에서 잘 나타난다.
문예부흥을 영어로 르네상스(Renaissance) 라고 하고, 종교개혁을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라 하는데 모두 Re라는 접두사가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뜻은 ‘뒤로 간다’라는 뜻이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그 것은 과거로 가는 것이다. 유럽문화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문화시대로 가는 과거소급적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15세기의 문예부흥은 가톨릭 1000년에 대한 ‘우회적 공격’이라 볼 수 있고,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가톨릭 1000년을 끝내기 위한 ‘직접적인 공격’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15세기와 16세기에 걸쳐서 우회적 공격과 직접적인 공격으로 인하여 5세기부터 14세기 까지 1000년 동안 유럽의 사상을 지배 하였던 ‘천년왕국’ 로마 가톨릭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시대를 거쳐서 17세기부터 현대까지를 근대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근대를 근대와 현대로 시대 구분 하지만 서양에서는 ‘모던’ 과 ‘포스트 모던’으로 구분 한다는 것이다. 즉 모던이 근대를 말하고, 포스트 모던이 현대를 말하는 것이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의 결과는
근대의 철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인간중심주의 시대라는 것이다. 중세의 신중심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그 자리를 인간중심으로 전환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다만 초점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신과 같이 전지전능 하지 못하지만 제한적으로 나마 사유와 이성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유와 이성능력은 인식론으로 발전 하게 되고 그 정점이 ‘칸트’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근대가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바뀌게 되자 두 가지 변화가 나타났다.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이다. 즉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게 됨에 따라 산업혁명이 일어 나게 되었고, 또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게 되자 제국주의가 출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는 결국 자연의 죽음인 ‘환경파괴’와 인간의 죽음인 ‘전쟁’을 불러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자연지배à산업혁명à자연의 죽음à환경파괴
인간의 인간지배à제국주의à인간의 죽음à전쟁발발
신의 존재를 통해서 부여된 인간의 이성이 믿을 바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근대말에 나타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 하기에 이르렀다.
신과 기독교가 없는 서양
니체 이후의 서양철학사에 더 이상 신은 나타나지 않고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대신에 현대철학 사상은 실체론에서 관계론으로 바뀌었고, 신과 같이 되고 싶다던 근대의 자아론도 자아해체로 발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불교와 매우 유사 하다는 것이다.
서양현대철학의 관계론은 불교의 연기론과 유사하고, 자아해체론은 불교의 무아사상과 대단히 유사한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근대철학의 실체론à현대철학의 관계론----불교의 연기론과 유사
근대철학의 자아론à현대철학의 자아해체론---불교의 무아론과 유사
이를 두고 서양현대철학과 불교의 만남이 이루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출발점은 니체가 근대말에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나서부터이다. 그 선언 이래 현대 서양철학에 있어서 더 이상 신과 기독교를 논하지 않게 된 것이다. 즉, 즉 신이 없는 철학을 가지게 된 것이다.
불교가 대단한 이유
그런데 불교는 이미 2,500년 전부터 신이 없는 철학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즉 유일신이나 창조주를 한번도 생각해 적이 없이 2,50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불교가 살아 남았다는 사실은 종교로서 또는 철학으로서 그 만치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 불교가 신이 부재한 현대서양철학과 접목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불교의 대단한 점은 무엇일까.
첫째, 신을 도입하지 않고도 고도의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은 지구상의 유일한 종교라는 것이다.
특히 자연과학과 충동을 하지 않은 이유는 셈족의 종교인 유일신교와 크게 비교 되는 부분이다. 유일신종교가 자연의 내부원리를 자연 밖에서 초월적 논리로 설명하려 하였던 것에 반하여 불교는 자연내부에서 연기론적으로 설명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불교는 자연과학과 충돌하지 않을 뿐더러 과학이 발달 되면 발달 될수록 불교의 진면목이 더욱 더 드러나리라는 것이다. 이상 불교TV의
중세가 부활 하였나
유럽에서 신은 이미 죽었고 더 이상 기독교는 언급 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독 우리나라에서 만큼 신은 살아 있고 기독교 또한 가장 왕성한 교세를 자랑 한다. 그런 분위기는 미션스쿨에서 느낄 수 있다. 마치 유럽의 중세시대에 온 같과 같이 모든 것이 신중심체제이다. 더구나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신앙을 강요 하는 행위는 일종의 ‘정신적인 폭력 행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폭력적인 분위기를 TV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중파 방송에서 같은 시간대 방송을 한다는 것은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더구나 그 논리가 “내 뜻대로” 되어야 하고 ‘독선적’인 것이라면 유럽의 중세시대가 부활 한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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