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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말걸기

김훈을 만나다 - 작가 김훈은 왜 여진을 빨리 죽였나.

 

 

김훈을 만나다 - 작가 김훈은 왜 여진을 빨리 죽였나.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저자와의 대화에 다녀왔습니다. 저자는 바로 작가 김훈.


오늘 계획은 느긋하게 늦잠을 잔 뒤, 주문해 놓은 김훈의 <공무도하>를 천천히 읽고 7시 30분까지 오마이뉴스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부친께서 갑자기 상을 당하시는 바람에 남양주시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겨우 첫장을 펴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나이에 비해 큰 상을 많이 치룬 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 6-7년쯤 전에 친구들과 하던 이야기가 떠 올랐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친족의 장례식에서 웃음을 보이는 게 가능하냐 아니냐, 잠을 잘 수 있느냐 아니냐를 두고 유치하게 말이 오갔던게 기억납니다.



참고로 두 친구들은 아직 한번도 친족의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장례식이라고 시종일관 울고 슬퍼하는 것만은 아니야. 먼데서 친구나 지인들이 찾아 오면 얼마나 고맙고 반갑냐. 식사하는 곳으로 안내하면서 친구랑 앉아 옛날 이야기 하면서 웃을 수도 있는 거고, 또 지인들과 반가워서 술 한잔에 미소지을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5일장 같은 거 해봐, 아예 안 잔다는 건 불가능해. 손님 안 오는 새벽같은 때에 상주가 조금씩 자면서 체력을 비축해야지 또 손님을 맞이하지.' 



제 기억으로는 별로 씨알이 안 먹혔던 거 같습니다.(웃음) 아직 장례식을 경험해 보지 못한 친구들에겐 장례식이란 무조건 진지하고 엄숙하며 철야를 해야하는 그런 의식으로만 존재했던 것이지요.



뭔가 환상 속에 그려진 장례식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장례식도 결국 사람이 하는 행사고 사람이 사람을 떠나 보내고 또 만나는, 특별하지만 또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은 무엇인데 말이지요.



과거 우리 농민들에게 장례식은 마을의 축제와도 같은 기능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있으면 그 죽음을 바탕으로 다시 삶이 핀다는 이치, 농부들은 그 이치를 온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흠, 갑자기 제가 먼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나름 작품 제목도 <공무도하>고 하니 약간은 의미있는 뻘소리가 아니었나 하면서 퉁 칩시다.(웃음)     










어쨌든 그렇게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해서 약 3시간 정도, 그러니까 김훈 작가가 대회의실에 도착할 때 쯤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정확히 말하자면 1장 남겼지만)



간단하게 제 느낌을 말하자면 버스 안에서 첫장을 펴자마자,



'얼레, 이건 소설이 아니라 스트레이트 기산데'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 사실만을 적어 놓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쉽게 말해 정 없는 신문기사의 느낌이 들었단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스트레이트 느낌의 소설을 3시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읽게 만드는게 이 작가의 힘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얼마 전에 적었던 http://kimchangkyu.tistory.com/736 - 에서 '기자의 위대함은 스트레이트기사에 있다' 라는 부분을 읽어 보시는게 좋을 듯한 느낌이 살짝 드는군요.) 



아마도 그의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의 기본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봅니다. 너무나 잘 숨겨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희미한 냄새로 알 수 있는 인간 원형에 대한 애정. 그것도 그냥 애정이 아니라 누구보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김훈식 독한 애정, 그런데 내면으로만 터뜨리는 그 애정. 그래서 터지고 난 뒤의 화약냄새만으로 추측해야 하는 그 애정. 아무리 그가 아니라고 말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흠, 저자가 아니라고 해도 독자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하다니 좀 무섭군요.(웃음) 



그런데 실제 그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면 이게 또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강연 주제는 정말 독특하게도 그가 오늘 새벽부터 나와 관찰하고 경험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수능풍경이지요. 전 들으면서 딱 이 생각이 들더군요.


'이야, 역시 김훈이구나. 시간 단위로 관찰하면서 세세하게 기록해 놓았구나.'


과거의 기자정신은 아직도 그를 이끄는 주요한 힘 중에 하나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기자가 되기 이전부터 누구보다 완벽한 기자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어쨌든 지금부터 제가 기억에 남는 그의 어록들을 하나 하나 적어 보겠습니다. 기억에 의존하므로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저는 책임없습니다. (웃음)



1. 난, 문학, 소설 말하는 거 싫어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난 삶의 이야기가 좋아요.


2. 멈춰선 도로를 보면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이 제일 앞에 서 있어어요. 참 역동적인... 생명의 투사고 맹수지요. 참으로 경건합니다.


퀵서비스 오토바이 배달부들의 노동. 그 노동을 경건하다고 표현하는 이 부분이 그를 이해하는 '절대 포인트'입니다. 


3. 화장, 여자의 지옥과도 같은 업.(수능을 치러가는데 왜 화장을 하지에서 사람들 빵 터짐.)


4. 인간이 만든 제도(수능) 안에서 애끓는 모정, 신의 힘, 다 소용이 없지요.


여기도 포인트. 김훈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무섭도록 현실적인 눈. 무섭도록 세속적인 눈.


5. 수험표 안 가지고 와서 또 집에가서 가지고 오는 애들이 있어. 이거 참 어떻게 된 애들인지.(여기서도 또 빵 터짐)     












6. 수능을 치는 데 만명정도가 안 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안써요. 걔들은 잘라서 버리는 애들이니까. 가르칠 대상에서 제외되니까. 지금은 이 아이들을 궁금해 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의 본질이 나오는 부분입니다. 아무리 자신의 무정함을 강조하고 때로는 스스로 강요한다 해도 그의 시선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면 애정의 화신으로 존재하는 김훈이 보입니다. 수능을 치지 않은 만명의 아이들을 관찰하는 시선 자체가 이미 인간에 대한 독한 애정 없인 불가능하다 이거죠.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고로 김훈은 보고 싶기 때문에 봅니다.    



7. 우리 자식들을 데리고 무슨 짓을 하는 건지.(김훈은 현 제도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은 오늘 관찰 한 것만 말할 뿐이며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8. 원고를 넘기고 나서 책을 내면 저는 내가 낸 책을 거들떠도 안 봐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뭐 결국 낸 거지. 내가 진짜 이게 아니란 건 아는데.
 


9. 이 개에게는 인간보다 100배는 더 삶의 원형질이 축척되어 있겠구나. 말을 못해서 그걸 표현하지 못할 뿐이구나.



예전에 개의 청각이 인간보다 100배는 더 뛰어 나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느꼈답니다. 이 부분듣고 속으로 씨바, 한마디 했습니다. 개의 청각이나 후각이 인간보다 수십배 뛰어 나다는 걸, '100배는 더 한 삶의 원형질이 축적되어 있겠구나'라고 표현하다니. 아, 저는 정말 씨바 외에 달리 할말이 없었습니다. 딴 책도 사봐야지. 



10.  저의 글쓰기는 밥벌이입니다. 밥벌이하는 생업. 노동은 엄숙한 것이지요. 아까 말한 퀵서비스(퀵서비스를 하는 오토바이 배달부)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노동이 성립된 다음에 예술이 표현되는 거죠. 전 그걸 거꾸로 생각하거나 모르지 않습니다. 세속의 질서를 가지고 있고 현세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이건 뭐, 김훈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라 패스. 김훈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 중 하나.



11. 저는 현실적 가치를 경멸하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난 그런 사람 아닙니다.



이 정도 쯤에서 드는 생각, 김훈은 인간의 위선을 직시하고(그러니까 엿같아도 눈 돌리지 않고)욕망을 서스럼 없이 인정한다. (그것도 남들보다 훨씬 폭 넓게) 여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김훈과 충돌하게 되는 거죠. 계속 갑니다.











12. 저는 법의 판단을 존중함으로 시민의 도리를 다한다고 생각합니다.(정연주 사장 문제에 대한 질문에)  


13. 시민의 불복종도 시민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렇게 흔치는 않지요. 어떤건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럼 무조건 시민은 복종해야 되냐는 후속질문에)


13. 연민을 감춤으로써 더 많은 연민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가 한번 더 씨바를 외칠 타이밍.


14. 젊음이 모든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는 무질서, 혼란, 야비함도 있지요. 젊음이 아름다움을 독점하는 건 아닙니다.


15. 인간과 풍경을 같은 시선으로 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건 정말 안 좋은거죠. 정말 저의 좋지 못한 점입니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훈이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게 독한 애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발언 중 하나.  


16. 저는 시인을 보면 질투가 나고 무섭습니다. 별로 머리가 좋아 보이는 사람은 아닌데(여기서 사람들 빵 터짐)저렇게 뛰어난 시를 쓰다니 하고 감탄하지요. 교수나 법관같은 직업은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인은 하늘이 특별히 간택하는 것이지요. 전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17. 여고생들이 까르르 웃어요. 그럼 그게 순식간에 전파됩니다. 마치 꽃이 피는 것 같아요. 너무 좋아요. 그런 걸 보면 인간의 아름다움을 의심하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주 보러 학교를 가는데요. 경비원 아저씨가 저를 아주 이상하게 봅니다.(여기서 사람들 또 빵 터짐)그런데 이런 풍경과 이런 아이들이 어디에나 있지 않습니까. 이게 우리 복입니다.


불현듯 피천득이 생각나는 대목... 


18. 전 여자 감정이입이 참 힘듭니다. 정말 잘 안돼요. 사실은 남한산성의 여진도 사건을 만들어서 초장에 죽여야 겠구나 생각하고, 아.. 이건 이야기 하면 안돼겠구나.(여기서 또 빵 터짐)
 

이거 무조건 오늘자 문학계 소식 원톱으로 가야 됩니다.(웃음)


19. 뭐, 어쨌든 이때다 싶으면 절대 안 놓치고 펜을 던집니다. 저는 절대 그때를 놓치지 않습니다.(소설을 언제 끝맺냐는 질문이었음)










그리고 마지막은, 모두 진지하고 발전적이며 깊이가 있는 질문을 할 때, 분위기에 안 맞는 질문을 던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질문으로 포스트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즉, 제가 질문을 했다는 뜻입니다.)



1. ,<공무도하>를 보면 노묵희가 냉장고에서 낫토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던데요. 뜬금없이 왜 낫토입니까.


답 : 왜 청국장이 아니라 낫토냐 이겁니까. 그 젊은 사람들이 밤에 청국장 끓이면 안 어울리 잖아요. 냄새나고. 그런건 중년 부부들이 그렇게 먹는 거지.(일동 웃음) 그 밤에 간단히 먹는 건데. 말도 안되는 거지.(웃음) 어쨌든 거기선 낫토가 아니면 안 됩니다. 낫토여야 해요.


한국 소설에서 야식으로 낫토를 먹는 장면이 나온 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것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써져 있는 것 아닙니까. 특히나 저는 일본에서 생활을 한 경험 탓인지 좀 더 재밌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군요.(참고로 낫토 입에도 못댐)


그는 조사 하나에도 몇날며칠을 끙끙 앓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여기서 낫토를 그냥 집어 넣었을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낫토를 먹는 사람이 많이 늘었는데 제가 일상적인 풍경이 되버린 걸 모를 수도 있고 작가가 낫토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결론은 낫토가 아니면 안된다였습니다. 젠장, 우문현답이었습니다. 제가 이렇습니다. 






2. 변소간에서 담배 피려다가 덩에서 올라오는 암모니아 가스랑 반응해서 화장실이 터져 죽은 사람이랑, 연탄가스 마시고 기껏 살리려고 고압 산소통에 넣어 놨는데 담배 필려다가 또 터져서 죽은 사람. 저 사실 이거 보고 무진장 웃었는데요. 그런 소재는 어디서 가져오십니까?


사실, 그 부분은 넣을까 말까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삶을 조롱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해서요. 예전에 그런....(여기서 또 중략. 아주 좋은 이야기) 어쨌든 그런 사건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지어 낸게 아닙니다. 슬픈 현실이었지요.


여긴 진짜 굉장히 슬픈 부분 맞습니다. 삶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그런데 우리가 가끔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면서 막 웃는 거 있지요. 아, 이거 진짜 안타깝고 무쟈게 슬픈 이야긴데 미친 듯이 웃긴거. 웃으면 안 될거 같은데 진짜 막 웃긴거. 이게 딱 그런 소재입니다. 전 이런 코드를 김훈이란 작가가 쓴다는 게 정말 신기했고 도대체 이런 이야기들의 소스를 어디서 얻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지요.


그런데 정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랍니다. 떄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는 얘기. 진짜 맞는 얘기입니다. 화장실에서 담배피지 맙시다. 혹시 그가 작년에 담배를 끊었다는 이유가...?(웃음)








집에 돌아오자 마자 한번도 안 쉬고 쭈악~ 적어 보았습니다. 그의 정치적 입장이나 삶의 방식은 저와는 완전히 반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뛰어넘을 매력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는 스스로의 판단 하에 자신의 기준을 정립한, 무척이나 선명하고 확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처럼 욕망과 위선에 당당하고, 또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거겠죠.


'씨바, 이게 현실이라고.(적어도 김훈의 기준에는) 이게 니들이 발 딛고 선 세상의 모습이자 인간의 본질이기도 한 거라고. 뜬 구름 잡는 지랄하지말고 진짜(역시 김훈의 기준)를 봐 새끼들아.' 같은 느낌이랄까요.(웃음)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신기하게 느낀 거 하나.


그의 문체가 정말 김훈 자체였다는 거.


누군가의 글을 읽고 저자를 상상했을 때, 김훈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이것도 그를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중 하나가 아닐까요.


어쨌든 오늘은 요까지!     





김훈관련 인터뷰 몇개 소개합니다.  

http://www.hani.co.kr/section-021023000/2000/021023000200009270327078.html

http://economy.hankooki.com/lpage/news/200709/e2007091911325387670.htm

http://news20.tistory.com/14

http://blog.naver.com/k2why/60004947600




출처---http://kimchangkyu.tistory.com/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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